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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브라운 총격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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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마이클 브라운 총격 사건은 2014년 8월 9일, 미주리주 퍼거슨에서 백인 경찰관 대런 윌슨이 흑인 청소년 마이클 브라운을 총으로 쏴 사망하게 한 사건이다. 사건 발생 전 브라운은 편의점에서 시가를 훔쳤고, 윌슨은 절도 용의자를 찾던 중 브라운과 마주쳤다. 윌슨은 브라운에게 차에서 내릴 것을 명령했고, 몸싸움이 벌어진 후 윌슨이 브라운에게 총격을 가했다. 이 사건은 지역 사회의 격렬한 시위와 전국적인 논란을 불러일으켰으며, 윌슨의 기소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대배심 심리가 진행되었다. 대배심은 윌슨을 기소하지 않기로 결정했고, 법무부 조사 결과 윌슨의 행위에 대해 시민권 침해 혐의가 없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이 사건은 "손을 들고, 쏘지 마세요"라는 구호와 함께 경찰의 과잉 진압 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촉발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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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브라운 총격 사건
위치 정보
위치미국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군 퍼거슨
사건 개요
사건 종류살인 사건, 경찰 총격
날짜2014년 8월 9일
시간12시 01분 – 12시 03분 (중부 표준시)
총격자대런 윌슨
사망자마이클 브라운
동행자도리안 존슨
보고된 부상대런 윌슨
보고된 사망마이클 브라운
기소없음
소송불법 사망 소송은 비공개 금액으로 합의됨
관련 정보
마이클 브라운 사망 원인경찰 총격
마이클 브라운 사망 당시편의점 강도 사건 연루 후 도주 중이었음
"손 들었으니 쏘지 마" 구호사건 이후 시위에서 사용되었으나, 미국 법무부 보고서에 따르면 사실이 아님
법무부 보고서 내용대런 윌슨은 자신의 생명에 위협을 느껴 총을 쐈을 가능성이 높으며 법을 위반하지 않았다고 결론 내림
추가 조사 결과2020년 새로운 검찰은 대런 윌슨에게 어떠한 혐의도 적용하지 않음
일본어 정보
사건명마이클・브라운 사살 사건
날짜2014년 8월 9일 (토요일)
시간12시 01분 ~ 12시 03분
좌표38.73847
한국어 정보
사건명마이클 브라운 총격 사건
시간오후 2시 15분경 (동부 표준시)

2. 배경

마이클 브라운 총격 사건은 2014년 8월 9일, 미국 미주리주 퍼거슨에서 발생한 사건이다. 당시 18세였던 비무장 흑인 청소년 마이클 브라운이 28세 백인 경찰관 대런 윌슨과의 언쟁 끝에 총에 맞아 사망했다.

사건 당시 브라운과 함께 있던 친구 도리언 존슨과 경찰 측 증언은 서로 엇갈린다. 존슨은 윌슨이 차창에서 브라운의 목을 잡으면서 싸움이 시작되었고, 총격 후 브라운과 존슨이 도주했으며, 윌슨이 브라운을 뒤쫓아가 위협을 받은 후 총을 쐈다고 증언했다.[66] 반면 윌슨은 브라운이 순찰차 안에서 자신을 공격하고 총을 빼앗으려 했기 때문에 총을 쐈으며, 잠시 추격 후 브라운이 멈춰 서서 자신에게 돌진해 왔기 때문에 발포했다고 진술했다.

윌슨은 몸싸움 중 2발을 포함해 총 12발을 발사했고, 브라운은 몸 앞면에 6발의 총탄을 맞았다. 이 사건은 퍼거슨 폭동의 도화선이 되었다. FBI 조사 결과, 브라운이 총격을 받기 전 두 손을 들었거나 "쏘지 마세요"라고 말했다는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67]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위대는 브라운이 그렇게 했다고 주장하며, "두 손을 들면 쏘지 마라"라는 슬로건을 사용했다.

2017년 다큐멘터리 영화 ''스트레인저 프루트''(Stranger Fruit)에는 사건 발생 10시간 반 전인 새벽 1시 13분에 브라운이 퍼거슨 마켓 앤 리커(Ferguson Market and Liquor)에 들어가는 모습이 담긴 감시 영상이 공개되었다. 영상에서 브라운은 젊은 점원에게 갈색 봉지를 건네주고, 시가릴로 한 갑을 받는다. 영화 제작자는 이것이 마리화나라고 추정했다. 브라운의 가족은 브라운이 봉지를 보관을 위해 맡겨두었다가 나중에 찾으러 왔다고 주장했으나, 상점 주인은 변호사를 통해 이를 부인하며 "마리화나와 시가릴로를 교환했다"는 주장을 일축했다.

사건 당일 오전, 윌슨 경관은 호흡 곤란을 호소하는 유아에 대한 신고를 받고 출동했다. 약 3분 후, 브라운은 몇 블록 떨어진 곳에서 담배가 든 상자를 훔치고 편의점 점원과 몸싸움을 벌이는 장면이 카메라에 포착되었다. 브라운과 그의 친구 도리안 존슨이 상점을 떠난 것은 11시 54분경이었다. 11시 53분, 경찰 무전에서 "절도 사건 발생"이라는 보고와 함께 용의자가 티셔츠를 입은 흑인이며 도주 방향과 담배 한 상자가 도난당했다는 정보가 전달되었다. 정오 12시, 윌슨은 경찰 무선국에 정규 근무로 복귀했음을 알리고, 앞서 전달받은 용의자에 대해 지원이 필요한지 무전으로 질문했는데, 곧 다른 경관으로부터 용의자를 놓쳤다는 보고를 받았다.

2. 1. 마이클 브라운

'''마이클 오랜더스 데리언 브라운'''(Michael Orlanders Darian Brown, 1996년 5월 20일 – 2014년 8월 9일)은 노르망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안 교육 프로그램을 이수했다. 사망 당시 18세로, 키는 약 1.83m, 몸무게는 약 132.45kg였다. "Big'Mike"라는 이름으로 아마추어 랩 가수 활동을 했으며, 사운드클라우드에 자신의 노래를 게시했다.[7] 바테로트 대학 직업학교에서 난방 및 에어컨 수리 교육 프로그램을 시작하기 이틀 전이었다.[8]

2. 2. 대런 윌슨

1986년 5월 14일 텍사스주 포트워스에서 태어났다. 키는 약 1.83m이며, 몸무게는 약 약 95.25kg였다.[9] 2009년 미주리주 제닝스에서 경찰관 생활을 시작했다.[9][10] 2011년 10월 제닝스 경찰서가 해체되면서 퍼거슨 경찰서로 옮겨 근무했다.[11] 2013년 2월에는 마약 관련 용의자를 체포한 공로로 표창을 받기도 했다.[11]

2. 3. 사건 발생 전 활동

2017년 다큐멘터리 영화 ''스트레인저 프루트''(Stranger Fruit)에 공개된 감시 영상에는 마이클 브라운이 사건 발생 10시간 반 전인 새벽 1시 13분에 퍼거슨 마켓 앤 리커(Ferguson Market and Liquor)에 들어가는 모습이 담겨 있다. 영상에서 브라운은 젊은 점원에게 갈색 봉지를 건네주는데, 영화 제작자는 이것이 마리화나라고 추정했다. 그리고 브라운은 상점에서 구입하지 않은 시가릴로 한 갑을 받는다. 2017년 해당 영상이 재발견되어 공개된 후, 브라운의 가족을 포함한 일부 사람들은 브라운이 봉지를 보관을 위해 맡겨두었다가 나중에 찾으러 왔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상점 주인은 변호사를 통해 이를 부인하며 상점이 "마리화나와 시가릴로를 교환했다"는 주장을 일축했다. 변호사는 "[브라운이] 물건을 돌려준 이유는 그가 미납 상품을 가지고 나가려 했고, [직원들이] 그것을 돌려받고 싶어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상점 변호사는 해당 영상이 초기 수사 이후부터 브라운의 가족과 사법 당국이 가지고 있었으며, 상점 점원이 브라운의 봉지를 돌려주는 부분이 편집되었다고 주장했다.[12] 이후 2017년 3월 13일, 세인트루이스 카운티 검찰청은 의문을 해소하기 위해 상점의 편집되지 않은 영상을 공개했다.[13]

사건 당일 오전 11시 47분, 윌슨 경관은 호흡 곤란을 호소하는 유아에 대한 신고를 받고 출동했다. 약 3분 후, 브라운은 몇 블록 떨어진 곳에서 담배가 든 상자를 훔치고 편의점(Ferguson Market) 점원과 몸싸움을 벌이는 장면이 카메라에 포착되었다. 브라운과 그의 친구 도리안 존슨이 상점을 떠난 것은 11시 54분경이었다. 11시 53분, 경찰 무전에서 "절도 사건 발생"이라는 보고가 들어왔고, 용의자가 티셔츠를 입은 흑인이며 도주 방향과 담배 한 상자가 도난당했다는 정보가 전달되었다. 11시 57분, 선발대에서 용의자가 친구를 데리고 있으며, 모자와 티셔츠, 바지 등의 자세한 복장 정보가 전달되었다. 정오 12시, 윌슨은 경찰 무선국에 정규 근무로 복귀했음을 알리고, 앞서 전달받은 용의자에 대해 지원이 필요한지 무전으로 질문했는데, 곧 다른 경관으로부터 용의자를 놓쳤다는 보고를 받았다.

3. 사건 발생

2014년 8월 9일, 마이클 브라운은 세인트루이스 카운티의 노르망디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8일 된 18세 청년이었다. 키 193cm, 체중 132kg의 건장한 체격이었다. 사건 당일 오전 11시 50분경, 브라운은 편의점에서 시가 한 갑을 강탈했다.

대런 윌슨은 1986년생으로, 2009년부터 경찰관으로 근무했으며 2011년 페르거슨 경찰서로 전근을 왔다.[69][70][71] 윌슨은 브라운과 마주치기 직전, 근처 편의점 강도 사건 용의자의 특징을 경찰 무전으로 들었다.

정오 무렵, 윌슨은 차를 운전하여 캔필드 드라이브 중앙을 걸어가던 브라운과 그의 친구 도리언 존슨에게 차도에서 벗어날 것을 명령했다. 이후 차 안에서 브라운과 윌슨 사이에 몸싸움이 벌어졌고, 윌슨은 총 12발을 발사했다. 이 중 2발은 차 안에서 발사되었으며, 브라운은 6발을 맞았는데, 모두 몸 앞면에서 맞았다.

브라운과 윌슨의 증언은 서로 엇갈렸다. 존슨은 윌슨이 브라운의 목을 잡고 싸움을 시작했으며, 발포 후 브라운과 자신이 도주했고, 윌슨이 브라운을 쫓아가 위협을 받은 후 총을 쐈다고 주장했다.[66] 반면 윌슨은 브라운이 자신의 총을 빼앗으려 했기 때문에 발포했고, 추격 후 브라운이 멈춰 서서 자신에게 돌진해 왔기 때문에 총을 쐈다고 진술했다.

브라운은 오후 12시 2분경 윌슨의 총에 맞아 사망했다.

이후 FBI 조사에서는 브라운이 총격을 받기 전에 두 손을 들었거나 "쏘지 마세요"라고 말했다는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67]

3. 1. 최초 접촉

정오, 윌슨은 차를 운전하여 캔필드 드라이브 중앙을 걸어가던 브라운과 존슨에게 차도에서 벗어날 것을 명령했다. 윌슨은 차를 몰고 떠났지만, 다시 돌아와 두 사람 바로 옆에 차를 세웠다. 브라운이 순찰차 창문을 통해 손을 뻗은 후, 브라운과 윌슨 경관 사이에 몸싸움이 벌어졌다. 차 안에서의 몸싸움 중 윌슨은 휴대하고 있던 권총 SIG SAUER P229로 두 발을 발사했고, 한 발은 브라운의 오른손에 명중했다.

3. 2. 총격 및 추격

정오, 윌슨은 캔필드 드라이브 중앙을 걸어가던 브라운과 존슨에게 차도에서 벗어날 것을 명령했다. 윌슨은 차를 몰고 떠났지만, 다시 돌아와 두 사람 바로 옆에 차를 세웠다. 브라운이 순찰차 창문을 통해 손을 뻗은 후, 브라운과 윌슨 경관 사이에 몸싸움이 벌어졌다. 차 안에서의 몸싸움 중 윌슨은 휴대하고 있던 SIG SAUER P229 권총으로 두 발을 발사했고, 한 발은 브라운의 오른손에 명중했다. 브라운과 존슨은 도주했고, 윌슨 경관은 차에서 내려 브라운을 쫓았다(존슨은 차의 그늘에 숨었다). 어느 시점에 브라운과 마주쳤을 때 윌슨은 다시 그에게 총격을 가했고, 최소 여섯 발이 모두 그의 몸 앞면에 명중했다. 브라운은 무기를 소지하고 있지 않았고, 도로에서 사망했다. 두 사람이 마주친 순간부터 브라운이 사망할 때까지 90초가 걸리지 않았다.

3. 3. 사건 직후

브라운은 12시 2분경 윌슨에게 총에 맞아 사망했다. 수 분 내에 페르구손 경찰이 현장에 도착했고, 주민들이 모여들었으며 일부는 경찰에 대한 적대감을 드러냈다.[72] 총격 사건 약 20분 후, 페르구손 경찰서장은 살인 사건 수사를 세인트루이스군 경찰(SLCPD)에 넘겼지만, 다른 사건도 있었기 때문에 SLCPD 형사들이 현장에 도착한 것은 1시 30분으로 늦어졌다.[72] 지역 내 총격 사건에 대한 안전 우려와, 군중 속 일부 적대적인 사람들이 범행 현장에 진입했기 때문에 수사는 지연되었다.[72] 세인트루이스군 검시관이 현장에 도착한 것은 2시 30분이었고, 부검을 마치고 브라운의 시신이 옮겨진 것은 오후 4시였다.[72] 현지 주민들은 시신을 4시간 동안 도로에 방치했다며 수사 당국을 비난했다.

4. 조사

이 사건은 퍼거슨 폭동의 도화선이 되었다. FBI 조사에서는 브라운이 총격을 받기 전에 두 손을 들었거나 "쏘지 마세요"라고 말했다는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다.[67]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위대는 브라운이 그렇게 했다고 주장하며, 후일 시위에서 "두 손을 들면 쏘지 마라"라는 슬로건을 사용했다.

2014년 11월 24일, 세인트루이스 카운티 대배심은 검찰관 로버트 P. 매컬락(Robert P. McCulloch)이 제시한 광범위한 증거를 바탕으로 윌슨의 불기소를 결정했다. 2015년 3월, 미국 법무부는 독자 조사 결론을 보고하고, 이 총격 사건에서 윌슨의 시민권 침해를 밝히지 못했다. 윌슨의 진술에는 법과학적 증거가 뒷받침된 반면, 그를 고소했던 목격자 중 일부는 사건을 직접 보지 못했던 것으로 드러나 신뢰할 수 없다고 판단되었다. 미국 법무부는 윌슨이 정당방위(self-defense)로 브라운을 쐈다고 결론지었다.

2020년 세인트루이스 카운티 검찰(Wesley Bell)은 윌슨을 과실치사죄 또는 살인죄로 기소할 관점에서 5개월에 걸쳐 해당 사건을 재검토한 후, 어떤 범죄로도 윌슨을 기소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68]

세인트루이스 군의 인종 구성과 거의 동일한 흑인 3명과 백인 9명으로 구성된 대배심은 2014년 8월 20일에 심리를 시작하여 3개월에 걸쳐 진행되는 이례적인 상황을 맞이했다. 대배심은 검찰 측 증거와 증언을 모두 청취하고 의사록을 기록했으며, 기소에 이르지 못할 경우 자료를 공개하기로 했다. 검찰은 로버트 P. 매컬락이 담당했으며, 그는 직접 참여하지 않고 다른 검찰보좌관 2명(카시 알리자데, 쉴라 휘얼리)에게 청문회를 맡겼다.

대배심은 3개월 동안 25일(일반적으로 며칠 만에 종료)에 걸쳐 목격자 60명으로부터 5000페이지가 넘는 증언을 듣고 윌슨 기소 여부를 심의했다. 11월 24일 밤, 매컬락 검찰관은 기자회견을 통해 대배심이 윌슨을 기소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발표에 이어 수천 페이지에 달하는 대배심 문서와 자료(의사록, 전문가 진술, 일부 목격자 증언 등)가 공개되었다. 12월에는 경찰 지휘부와 경찰 간의 응답 통신과 브라운과 함께 있던 존슨의 증언 등도 공개되었다. FBI와 군 경찰이 존슨에 대해 실시한 조사 영상은 비공개였다.

매컬락 검찰관은 아버지를 흑인에게 살해당한 인물이기 때문에 공정성이 결여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매컬락의 사임을 요구하는 청원서에는 7만 명의 서명이 모였지만, 제이 닉슨 주지사는 검찰이 위태로워질 수 있다는 이유로 해임을 거부했다. 매컬락은 나중에 자신의 배경을 당시 공개하지 않았던 것을 후회한다고 말했다.

법률 분석가들은 사건 평가를 위해 과도한 자료가 제공된 이 절차가 대배심이 불기소 결정을 내리는 데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하며, 매컬락의 비정통적인 방법에 우려를 표명했다.

4. 1. 경찰 조사

사건 발생 직후, 퍼거슨 경찰은 수 분 내에 현장에 도착하여 초동 조치를 취했다. 현장에는 주민들이 모여들었고, 일부는 경찰에 대한 적대감을 드러내기도 했다.[72] 총격 사건 발생 약 20분 후, 퍼거슨 경찰서장은 살인 사건 수사를 세인트루이스 군 경찰(SLCPD)에 넘겼다.[72]

하지만 다른 사건들로 인해 SLCPD 형사들은 오후 1시 30분이 되어서야 현장에 도착했다.[72] 지역 내 총격 사건에 대한 안전 우려와 군중 속 일부 적대적인 사람들의 범행 현장 진입으로 인해 수사가 지연되었다.[72] 세인트루이스 군 검시관은 오후 2시 30분에 현장에 도착했고, 오후 4시에 부검을 마치고 브라운의 시신을 옮겼다.[72] 현지 주민들은 시신이 4시간 동안 도로에 방치되었다며 수사 당국을 비난했다.

2014년 8월 11일, 미 연방수사국(FBI)이 사건 수사를 시작했다. FBI 세인트루이스 지부 대변인은 이 수사 착수가 사건 이후의 시위와 폭동에 의해 결정된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FBI 수사관 40명이 각 가정을 방문하여 총격과 관련된 정보를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있는 목격자를 찾았다. 이 외에도 미국 법무부 시민권과와 연방 검사가 수사에 참여했다.

2015년 3월 4일, 연방 수사는 총격 사건에서 윌슨의 시민권 침해는 없었다고 발표했다. 위험을 느꼈다는 윌슨의 진술을 반박할 만한 신뢰할 만한 증거가 검찰 측에 없었다. 다음 증거 등을 통해 윌슨의 형사 고발을 지지할 수 없다고 수사는 결론지었다. 신뢰할 만한 목격자들은 브라운이 항복하고 손을 들었다는 것을 지지하지 않았다. 윌슨은 등 뒤쪽을 쏘지 않았다. 법과학적 증거는 브라운이 윌슨 쪽으로 다가왔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많은 목격자들은 자신이 보지 못한 장면까지 상상으로 설명하거나 다른 사람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전했다.

4. 2. 법무부 조사

미 연방수사국(FBI)은 2014년 8월 11일에 이 사건에 대한 수사를 시작했다. FBI 세인트루이스 지부 대변인은 이 수사가 사건 이후의 시위와 폭동 때문에 시작된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FBI 수사관 40명이 각 가정을 방문하여 총격 사건과 관련된 정보를 가진 목격자를 찾았다. 미국 법무부 시민권과와 연방 검사도 수사에 참여했다.

2015년 3월 4일, 연방 수사 결과는 윌슨이 마이클 브라운의 시민권을 침해하지 않았다고 발표했다. 검찰은 위험을 느꼈다는 윌슨의 진술을 반박할 만한 증거를 찾지 못했다. 윌슨의 진술은 법의학적 증거로 뒷받침되었지만, 윌슨을 비난한 일부 목격자들은 사건을 직접 보지 못했거나 신뢰할 수 없는 진술을 한 것으로 밝혀졌다.

수사 결과는 다음 증거들을 통해 윌슨에 대한 형사 고발이 불가능하다고 결론지었다.

  • 신뢰할 만한 목격자들은 브라운이 항복하고 손을 들었다는 주장을 뒷받침하지 않았다.
  • 윌슨은 브라운의 등 뒤를 쏘지 않았다.
  • 법의학적 증거는 브라운이 윌슨을 향해 다가왔음을 보여주었다.
  • 많은 목격자들이 보지 못한 장면을 상상으로 설명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들은 이야기를 전했다.


미국 법무부는 윌슨이 정당방위로 브라운을 쏘았다고 결론지었다.

4. 3. 2020년 검사 재검토

2020년, 세인트루이스 카운티 검찰청장 웨슬리 벨은 마이클 브라운 총격 사건을 5개월 동안 재검토했다. 이는 다렌 윌슨을 과실치사 또는 살인 혐의로 기소할 수 있는지 판단하기 위한 것이었다.[68][73][74]

벨은 재검토 결과, "다렌 윌슨을 윤리적으로 기소할 만한 충분한 증거가 없다"고 결론 내리고, 윌슨을 어떤 범죄로도 기소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75][76][68]

5. 대배심 심리

대배심은 흑인 3명, 백인 9명으로 구성되어 2014년 8월 20일부터 이 사건을 심리했다. 심리는 3개월에 걸쳐 25일 동안 진행되었는데, 이는 일반적인 대배심 심리 기간보다 훨씬 긴 이례적인 경우였다.

세인트루이스 군 검찰관 로버트 P. 매컬락(Robert P. McCulloch)은 대배심 심리에 직접 참여하지 않고, 카시 알리자데(Kathi Alizadeh)와 쉴라 휘얼리(Sheila Whirley) 두 명의 검찰보좌관에게 맡겼다. 또한, 대배심은 모든 증거와 증언을 듣고, 의사록을 기록하며, 기소에 이르지 못할 경우 자료를 공개하는 이례적인 절차를 따랐다.

대배심은 60명의 증인으로부터 5000페이지가 넘는 증언을 듣고 대런 윌슨 경관의 기소 여부를 심의했다. 11월 24일 밤, 대배심은 윌슨을 기소하지 않기로 결정했고, 매컬락 검찰관이 기자회견에서 이를 발표했다.

매컬락 검찰관은 아버지가 흑인에게 살해당한 인물이기 때문에 공정성에 결여되지 않았는가 하는 점이 이후 비판의 초점이 되었다. 매컬락의 사임을 요구하는 청원서에는 7만 명의 서명이 모였지만, 제이 닉슨(Jay Nixon) 주지사는 검찰이 위태로워질 수 있다는 이유로 매컬락의 해임을 거부했다.

법률 분석가들은 사건 평가를 위해 과도한 자료가 제공된 이 절차가 대배심이 불기소 결정을 내리는 데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하며, 매컬락의 비정통적인 방법에 우려를 표명했다.

5. 1. 대배심 구성 및 심리

대배심은 흑인 3명, 백인 9명으로 구성되어 2014년 8월 20일부터 이 사건을 심리했다. 심리는 3개월에 걸쳐 25일 동안 진행되었는데, 이는 일반적인 대배심 심리 기간보다 훨씬 긴 이례적인 경우였다.

세인트루이스 군 검찰관 로버트 P. 매컬락(Robert P. McCulloch)은 대배심 심리에 직접 참여하지 않고, 카시 알리자데(Kathi Alizadeh)와 쉴라 휘얼리(Sheila Whirley) 두 명의 검찰보좌관에게 맡겼다. 또한, 대배심은 모든 증거와 증언을 듣고, 의사록을 기록하며, 기소에 이르지 못할 경우 자료를 공개하는 이례적인 절차를 따랐다.

대배심은 60명의 증인으로부터 5000페이지가 넘는 증언을 듣고 대런 윌슨 경관의 기소 여부를 심의했다.

5. 2. 맥컬록 검사의 역할 및 비판

대배심은 흑인 3명과 백인 9명으로 구성되었으며, 이는 세인트루이스 군의 인종 구성과 거의 동일했다. 2014년 8월 20일에 시작된 심리는 3개월에 걸쳐 진행되는 이례적인 상황이 되었다.

이 대배심은 세인트루이스 군에서 선출된 로버트 P. 매컬락(Robert P. McCulloch)이 검찰을 담당했는데, 그가 발표한 이례적인 절차에 주목이 집중되었다. 대배심 청문회에는 카시 알리자데(Kathi Alizadeh)와 쉴라 휘얼리(Sheila Whirley) 두 명의 검찰보좌관이 참석했지만, 매컬락은 직접 참여하지 않았다. 대배심은 모든 증거와 증언을 듣고, 의사록은 기록되었으며, 대배심이 기소에 이르지 못한 경우 그 자료가 공개될 예정이었다.

3개월에 걸쳐 25일(일반적으로는 며칠 만에 종료됨) 동안 진행된 대배심은 목격자 60명으로부터 5000페이지가 넘는 증언을 듣고, 윌슨을 기소할지 여부를 심의했다.

11월 24일 밤, 매컬락 검찰관은 기자회견을 통해 대배심이 이 사건에서 윌슨을 기소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그의 발표에 이어 수천 페이지에 달하는 대배심 문서와 자료(의사록, 전문가 진술, 일부 목격자 증언 등)가 공개되었다.

매컬락 검찰관은 아버지가 흑인에게 살해당한 인물이기 때문에 공정성에 결여되지 않았는가 하는 점이 이후 비판의 초점이 되었다. 매컬락의 사임을 요구하는 청원서에 7만 명의 서명이 모였지만, 제이 닉슨(Jay Nixon) 주지사는 검찰이 위태로워질 수 있다는 이유로 매컬락의 해임을 거부했다. 매컬락은 나중에 자신의 배경을 당시 공개하지 않았던 것을 후회한다고 말했다.

법률 분석가들은 사건 평가를 위해 과도한 자료가 제공된 이 절차가 대배심의 불기소 결정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고 언급하며, 매컬락의 비정통적인 방법에 우려를 표명했다.

5. 3. 대배심 결정 및 여파

2014년 11월 24일, 세인트루이스 카운티 대배심은 대런 윌슨 경관을 기소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검찰관 로버트 P. 매컬락은 기자회견을 통해 이 결정을 발표했으며, 이후 수천 페이지에 달하는 대배심 문서와 자료가 공개되었다.

대배심은 흑인 3명과 백인 9명으로 구성되었으며, 3개월 동안 25일간 심리를 진행했다. 이는 일반적인 대배심 심리 기간보다 훨씬 긴 이례적인 경우였다. 대배심은 60명의 증인으로부터 5000페이지가 넘는 증언을 청취했다.

매컬락 검찰관은 대배심 절차를 이례적으로 진행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는 두 명의 검찰보좌관에게 심리를 맡기고 직접 참여하지 않았으며, 대배심에게 모든 증거와 증언을 제시하고 의사록을 공개했다. 법률 전문가들은 이러한 절차가 대배심의 불기소 결정에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매컬락 검찰관은 과거 그의 아버지가 흑인에게 살해당한 경험 때문에 공정성에 대한 비판을 받았다. 그의 사임을 요구하는 청원에는 7만 명이 서명했지만, 제이 닉슨 주지사는 이를 거부했다.

2015년 3월, 미국 법무부는 윌슨의 시민권 침해 혐의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법무부는 윌슨이 정당방위로 브라운을 쐈다고 결론지었다.

2020년, 세인트루이스 카운티 검찰은 윌슨을 기소하지 않기로 결정했다.[68]

6. 증거

마이클 브라운 총격 사건과 관련하여 총격 현장, DNA, 부검, 오디오 녹음, 증거 처리 과정 등 다양한 증거들이 제시되었다.

총격 현장은 2차선 도로에서 약 56m에 걸쳐 있었으며, 윌슨의 경찰 차량 주변과 브라운의 시신 주변에 증거물이 집중되었다. 브라운의 DNA는 윌슨의 권총, 바지, 순찰차에서 발견되었고, 이는 현장에서 몸싸움이 있었음을 뒷받침한다. 브라운의 시신은 세 차례 부검되었으며, 모두 머리를 포함해 6발의 총상을 입었고 등에는 총상이 없었다는 공통된 결과를 보였다.

CNN이 공개한 오디오 녹음에는 짧은 간격을 두고 두 차례의 연속적인 총성이 녹음되어 있었으며, 전문가 분석 결과 7초 이내에 10발의 총성이 발사되었고 6발째 이후 3초간의 휴지가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워싱턴 포스트는 증거 처리 과정에서 일반적인 법의학적 관행과 다른 문제점들을 지적했다. 윌슨이 피 묻은 손을 사진 촬영 없이 씻은 점, 최초 조사가 녹음되지 않은 점, 검시관이 현장 사진을 직접 찍지 않은 점 등이 문제로 제기되었다.

6. 1. 총격 현장

대배심에 제시된 총격 현장 증거는 2차선 도로에서 약 56m에 걸쳐 있었다. 사건 직전, 브라운은 차도인 캐니필드 드라이브 위를 동쪽으로 걸어가고 있었고, 윌슨은 서쪽으로 운전하고 있었다. 현장 증거는 서쪽에 있는 윌슨의 경찰 차량 주변과 동쪽에 있는 브라운의 시신 주변에 집중되어 있었다.

서쪽 경찰 차량 주변에는 팔찌, 야구 모자, 40구경 탄피 2개(현장 서쪽 끝과 경찰 차량 내에서 발견)와 같은 증거물이 있었고, 차량 문에는 혈흔이 묻어 있었다. 중간 부근에는 샌들이 한 짝 떨어져 있었다.

브라운의 시신은 도로 동쪽 중앙선 부근에 머리가 서쪽을 향한 채로 있었고, 경찰 차량과의 거리는 47m였다. 혈흔은 브라운의 발에서 6~7m 떨어진 상당히 동쪽에 있었다. 시신 주변에는 40구경 탄피 10개가 흩어져 있었다. 탄피의 분포로 보아 경관이 발포 후 후퇴했으며, 시신과 혈흔의 위치 관계는 브라운이 살해될 당시 윌슨 쪽으로 향하고 있었음을 시사하는 것이었다.

6. 2. DNA

브라운의 DNA는 윌슨의 권총에서 발견되었다. 브라운의 DNA는 윌슨의 바지 왼쪽 허벅지 부분과 윌슨의 순찰차 운전석 도어 핸들 안쪽에서도 발견되었다. 세인트루이스의 감찰관 마이클 그레이엄은 윌슨의 권총과 차 안에서 혈흔이 발견되었고, 브라운의 조직이 윌슨의 차 운전석 바깥쪽에서 발견되었다고 밝혔다. 이 증거는 현장에서의 몸싸움과 일치했다. 샌프란시스코의 병리학자이자 전문가 증언을 한 주디 메리넥에 따르면, 브라운의 손에 사격 잔류물이 있다는 공식 부검 결과는 브라운이 무기를 빼앗으려 했다는 윌슨의 증언을 뒷받침하는 것이거나, 총이 발사될 때 브라운의 손에서 약 10cm 떨어져 있었음을 시사하는 것이었다.

6. 3. 부검

마이클 브라운의 시신에 대해서는 세 차례의 부검이 이루어졌다. 브라운은 머리를 포함해 총 6발의 총상을 입었지만, 등에는 총상이 없었다.

현지 검시관이 작성한 카운티 부검 보고서는 오른쪽 팔에만 앞뒤로 총상이 있었지만, 브라운은 몸통 앞쪽에 총을 맞았다고 설명했다. 이 조사 보고서는 윌슨의 진술과 일치했다. 머리 꼭대기의 총상 또한 브라운이 쓰러질 때 또는 돌진할 때 발생한 것이며, 이 총격으로 즉사했다고 한다. 독극물 검사에서는 브라운의 혈액 및 소변에서 마리화나의 주요 성분인 THC이 검출되어 사망 수 시간 전에 마리화나를 흡입했음을 알 수 있었지만, 사망 당시 그 영향이 있었는지는 불명확하다고 밝혔다.

브라운 유족의 요청으로 8월 17일 뉴욕 검시관에 의해 두 번째 부검이 실시되었다. 부검 보고서에 따르면 몸통 앞쪽에 6발의 총상을 입었으며, 모두 90cm 이상 떨어진 거리에서 발사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머리 꼭대기의 총상이 치명상이 된 것으로 판단되었다.

법무장관의 지시에 따라 세 번째 부검이 실시되었고, 그 결과는 이전 두 차례의 부검 결과와 일치했다. 이 연방 부검 보고서의 자세한 내용은 한동안 비공개되었으며, 대배심이 윌슨에 대한 기소를 하지 않기로 결정한 후인 12월 8일에 공개되었다.

6. 4. 오디오 녹음

CNN은 8월 27일에 총성이 담긴 음성 기록을 공개했다. 이 녹음은 메시지 영상을 촬영하던 익명의 제3자가 우연히 녹음한 것이다. 12초 분량의 녹음에는 짧은 간격을 두고 두 차례의 연속적인 총성이 담겨 있다.

법과학 오디오 전문가와 저격 탐지 시스템 전문 업체의 분석에 따르면, 7초 이내에 10발의 총성(나머지는 잔향)이 들리고, 6발째 이후 3초간의 짧은 휴지가 있었다. 또한 10발 모두 반경 1m 이내에서 발사되었고, 사격한 사람은 움직이지 않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6. 5. 증거 처리 문제점

워싱턴 포스트는 윌슨 경관과 다른 법 집행관들의 공개된 증언에서 나타난 비정상적인 법의학적 절차를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윌슨 경관은 혈흔을 사진 촬영하기 전에 손을 씻었다. 또한 윌슨 경관이 직접 자신의 총을 증거물로 제출했고, 윌슨 경관에 대한 초기 인터뷰는 다른 직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되었으며 녹음되지 않았다. 총격 후 윌슨 경관의 얼굴 부상 사진은 페르거슨 경찰 본부가 아닌 경찰 형제회 건물에서 현지 형사가 촬영했다. 세인트루이스 카운티 검시소의 한 수사관은 범죄 현장에서 측정을 하지 않았고 현장 사진도 찍지 않았으며, 대신 세인트루이스 카운티 경찰서에서 촬영한 사진에 의존했다고 증언했다.

워싱턴 포스트는 사후 처리 과정이 일반적인 법의학적 관행과 달랐다고 지적했다. 윌슨이 피가 묻은 손을 사진 촬영 없이 씻어버렸고, 최초의 윌슨에 대한 조사가 테이프 녹음되지 않았으며, 검시관이 현장 사진을 찍지 않고 카운티 경찰의 사진에 의존했다는 사실 등이 밝혀졌다.

7. 목격자 증언

여러 목격자들이 이 사건의 일부 또는 전부를 목격하고 언론 인터뷰, 대배심 증언, 미국 법무부 조사를 받았다. 목격자들의 진술은 여러 지점에서 상충되었는데, 이는 라쇼몽 효과로 알려진 현상 때문이다.

AP 통신의 대배심 검토 결과, 증언에는 "일치하지 않거나, 조작되었거나, 또는 명백히 잘못된" 진술이 포함되었다. 검찰 측 로버트 매컬록은 명백히 거짓말을 한 사람들도 있었다고 말했다.

법무부 조사 결과, 윌슨의 진술을 뒷받침한 목격자들은 신뢰할 수 있는 반면, 모순되는 목격자들은 신뢰할 수 없다고 판단되었다. 브라운이 항복했거나 윌슨에게 다가가지 않았다는 주장은 물리적 증거, 다른 목격자 진술, 이전 진술과 일치하지 않았다. 윌슨의 진술을 뒷받침하는 증거를 제공한 것에 대해 지역 사회의 보복을 두려워한 목격자들도 있었다.

법무부는 9명의 목격자 진술이 윌슨을 완전히 옹호하거나 유죄로 인정하기에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 목격자 107: 브라운이 도망치기 시작했을 때 윌슨이 차량 조수석 밖에 서 있었고, 브라운이 이후 윌슨에게 돌진했는지 확신하지 못했다. 브라운이 도망치는 동안 윌슨이 총을 쏘았고, 마지막 총격은 윌슨이 브라운으로부터 약 3.05m~약 4.57m 떨어져 있을 때 발사되었다고 진술했다.

  • 목격자 106: 미니밴 운전자인 목격자 106은 브라운이 윌슨을 향해 움직이기 전에 손을 들었다는 목격자 107의 진술에 동의하지 않았다. 브라운의 행동을 "잠시 휘둘렀다"고 묘사했다. 그러나 목격자 106이 브라운을 본 시야는 윌슨의 몸에 의해 부분적으로 가려졌다.

  • 목격자 110과 111: 사건 당일 저녁 인터뷰를 받았고 흔들린 상태였으며, 목격자 111은 울고 있었다. 둘은 사건을 처음에는 차도에서, 나중에는 발코니에서 목격했다. 윌슨이 차를 후진시켜 브라운과 존슨을 막는 것을 보았지만, 조수석에서 보고 있었기 때문에 차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볼 수 없었다. 첫 번째 총격으로 존슨이 사라졌고, 브라운과 윌슨은 두 번째 총격이 발사되고 브라운이 도망칠 때까지 몸싸움을 했다. 목격자 110은 브라운이 멈춰서 피투성이가 된 왼손을 보고, 양팔을 옆으로 벌리며 "뭐야?"라는 제스처를 취하고, 손을 같은 자세로 유지한 채 윌슨을 향해 돌아서는 것을 목격했다. 브라운이 윌슨에게 "빨리" 돌아왔다고 진술했지만, 나중에 브라운이 윌슨에게 돌진하거나 달려들었다는 것을 대배심에서 부인했고 브라운의 움직임을 묘사할 수 없었다. 목격자 111은 브라운이 윌슨을 향해 "느린 동작"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 목격자 115: 사건의 휴대전화 동영상을 녹화했는데, "놈(브라운)이 그의(윌슨의) 차에 다가가서, 놈(브라운)이 그를 때렸다"고 기록했다. 총격이 멈춘 후 발코니로 나갔다가 다시 들어가서 실수로 화장대에 두고 간 휴대전화를 가져오고 가족들에게 외치고 다시 발코니로 나왔기 때문에 진술에 공백이 있다. 브라운은 항복하지 않았고 손을 들지 않았지만, 윌슨에게 다가가면서 쓰러지고 있었다. 윌슨은 일련의 총격을 가했고, 브라운은 한 팔을 땅에 대고 다른 팔은 옆에 둔 채 쓰러졌다.

  • 목격자 114: 윌슨이 차를 세우고 운전석 창문으로 몸을 내밀어 브라운에게 무언가를 말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보았다. 브라운은 손짓을 했다. 윌슨의 차는 처음에는 계속 나아갔지만, 그 후 급히 멈춰서 각도를 이루며 주차되었다.

  • 목격자 116: 비명 소리를 듣고 블라인드를 통해 밖을 내다보았다. 브라운이 윌슨의 차 안에 손을 넣고 있는 것을 보았다. 윌슨이 테이저건을 사용했지만 빗나갔다고 보고했다. 윌슨이 한두 번 총을 쏘는 소리를 듣거나 보았다. 브라운이 도망치는 것을 보고 체포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추가로 5~6발의 총성을 들은 후 다시 밖을 내다보니 브라운이 땅에 죽어 있었다.

  • 목격자 110과 141: 윌슨이 브라운이 도망칠 때가 아니라 브라운이 그를 향해 움직일 때만 브라운에게 총을 쏘았다고 보고했다.


법무부는 다른 유죄를 입증하는 목격자 진술과 일치하고, 목격자의 이전 진술과 물리적 증거와 일치하는 윌슨을 유죄로 인정할 수 있는 진술을 찾지 못했다고 결론지었다.

7. 1. 윌슨의 진술과 일치하는 증언

여러 목격자들이 윌슨의 정당방위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언을 했다. 이들은 브라운이 항복 자세를 취하지 않고 윌슨에게 돌진했다고 진술했다. 또한, 일부 목격자들은 증언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감을 호소하기도 했다.

목격자나이인종주요 진술 내용
목격자 10227세혼혈 남성윌슨이 브라운을 쫓아가다 브라운이 갑자기 돌아섰다. 브라운은 항복의 의미로 손을 들지 않았지만, 바지를 끌어올리거나 어깨를 으쓱하는 듯한 동작을 한 후 윌슨에게 돌진했다. 윌슨은 브라운이 자신에게 다가올 때만 발포했으며, 자신의 생명이 위협받았다고 생각했다.
목격자 10358세흑인 남성브라운이 윌슨의 얼굴 부위를 적어도 세 번 주먹으로 쳤다. 윌슨은 타격을 막으려고 팔을 들어 올렸다. 총성이 들린 후 브라운이 달아났고, 윌슨은 그를 쫓았다. 브라운은 멈춰서 윌슨을 향해 돌아섰고, 그의 손은 옆구리에 있었다. 브라운의 손이 들려 있는 것을 보지 못했다.
목격자 10426세혼혈 여성윌슨이 "멈춰, 멈춰, 멈춰"라고 소리치며 브라운을 쫓았고, 브라운이 달아나는 동안에는 총을 쏘지 않았다. 브라운은 돌아서서 잠시 손을 올리는 듯했지만, 곧 달리는 자세로 윌슨에게 돌진했다. 윌슨은 브라운이 자신에게 돌진할 때만 총을 쏘았고, 브라운이 다가오자 뒤로 물러섰다. 브라운이 쓰러질 때까지 윌슨의 발포와 브라운의 돌진이 반복되었다.
목격자 10874세흑인 남성경찰관이 "옳았고", "해야 할 일을 했다"고 말했다. 윌슨이 브라운에게 "멈춰" 또는 "엎드려"라고 적어도 열 번 말했지만, 브라운은 윌슨에게 돌진했다고 설명했다.
목격자 10953세흑인 남성도리안 존슨이 텔레비전에서 사건에 대해 "거짓말"하는 것을 보고 증언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브라운이 윌슨의 얼굴을 때렸고, 윌슨의 총을 잡으려고 했다. 브라운은 윌슨으로부터 달아났지만 돌아서서 경찰관에게 돌진했다. 윌슨은 정당방위로 발포했으며 처음에는 죽이려고 쏘는 것 같지 않았다고 말했다.
목격자 11331세흑인 여성윌슨의 진술을 뒷받침하는 진술을 했다. 증언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이웃의 반발"을 두려워했고, 브라운이 손을 들고 항복했다는 언론 보도와는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윌슨의 생명이 위험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목격자 136총격이 발생하는 동안 휴대전화로 화상 채팅을 하고 있었고, 총성을 녹음했다. 녹음에는 2초 안에 6발, 3초 정지 후 1발, 1초 미만 정지 후 2초 안에 3발의 총성이 담겨 있었다. 이는 윌슨이 여러 번 발포하고 각 발포 사이에 잠시 멈췄다는 진술과 일치한다.



총격 사건 후 윌슨 경찰관의 얼굴에 생긴 멍

7. 2. 윌슨의 진술과 모순되는 증언

일부 목격자들은 대런 윌슨 경관이 마이클 브라운을 냉정하게 살해했다고 주장했지만, 이후 조사 과정에서 이러한 주장은 신빙성을 잃었다. 몇몇 목격자들은 자신의 증언이 거짓임을 인정했고, 최소 한 명의 목격자는 신문 기사를 바탕으로 진술한 것으로 드러났다.

목격자 22호는 처음에 윌슨이 브라운을 냉정하게 살해하는 것을 목격했다고 주장했지만, 수사관들에게 거짓말을 했고 사건 현장을 전혀 보지 못했다고 인정했다. 그녀는 남자친구가 자신이 목격했다고 말한 정보를 전달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목격자는 총격 당시 윌슨과 다른 경찰관이 함께 있었다고 주장했지만, 다른 모든 진술에 따르면 윌슨은 브라운을 쏜 당시 현장에 있던 유일한 경찰관이었다.

목격자 35호는 윌슨이 브라운의 머리에 총을 쏘았을 때 브라운이 "무릎을 꿇고 있었다"고 말했지만, 질문을 받자 그의 증언은 무너졌고, 그는 거짓말을 했다고 인정했다.

또 다른 목격자는 브라운이 손과 무릎을 꿇고 목숨을 구걸했다고 설명했지만, 검사가 목격자에게 증거를 바탕으로 그들이 본 것은 법의학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하자, 목격자는 나중에 자리를 떠나려고 했다.

또 다른 목격자(37호)는 윌슨의 차량에서 대치하는 동안 윌슨이 브라운의 가슴에 근거리에서 총을 쏘았지만 브라운은 쓰러지지 않았고 도망가는 동안 피를 흘리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그의 진술의 진실성에 대해 더 질문을 받자 그는 자신의 진술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기를 거부했다.

이처럼 윌슨의 진술과 모순되는 증언을 한 목격자들은 검찰과 대배심의 심문 과정에서 신뢰를 잃게 되었다.

7. 3. 도리안 존슨의 증언

사건 당일 마이클 브라운과 함께 있었던 친구 도리안 존슨은 언론과 대배심에 사건에 대한 증언을 했다. 존슨의 증언은 8월 언론 인터뷰와 9월 대배심 증언에서 다소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대런 윌슨의 공격적인 행동, 브라운의 저항, 총격, 도주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8월 언론 인터뷰에서 존슨은 윌슨이 차를 세우고 욕설을 하며 인도로 올라가라고 했고, 이에 브라운과 존슨이 목적지가 가까워 곧 길에서 벗어날 것이라고 답했다고 진술했다. 윌슨은 차를 후진시켜 그들의 진로를 막았고, 문을 열려고 했지만 브라운과 존슨의 몸에 부딪혀 다시 닫혔다. 윌슨은 차 안에서 브라운의 목을 잡았고, 브라운은 벗어나려고 했지만 윌슨은 계속해서 브라운을 끌어당겼다. 존슨은 브라운이 윌슨의 총을 잡으려 하지 않았고, 윌슨이 "쏘겠다"라고 말하며 총을 쏘았다고 주장했다. 브라운과 존슨은 도망쳤고, 윌슨은 차에서 내려 도망치는 브라운에게 여러 발을 쏘았으며, 그중 한 발이 브라운의 등에 맞았다. 브라운은 손을 들고 돌아서서 "총이 없다. 쏘지 마세요!"라고 말했지만, 윌슨은 브라운에게 여러 발을 더 쏘아 사살했다고 존슨은 증언했다.
9월 대배심 증언에서 존슨은 브라운과 함께 편의점에 갔었고, 브라운이 시가릴로를 훔치고 점원을 밀쳤다고 진술했다. 윌슨이 그들을 만났을 때 욕설을 하며 인도로 올라가라고 했고, 존슨은 목적지가 가까워 곧 길에서 벗어날 것이라고 답했다. 존슨은 윌슨이 처음부터 공격적이었고, 브라운이 윌슨의 목을 잡고 "줄다리기"를 했다고 말했다. 브라운이 윌슨을 때리거나 총을 잡으려고 한 것은 보지 못했지만, 브라운의 왼팔이 차 안에 있었을 가능성은 인정했다. 존슨은 브라운이 도망치는 동안 윌슨이 발포했고, 브라운이 돌아서서 손을 들고 "총이 없다"라고 말했지만, 윌슨이 여러 발의 총격을 가했다고 증언했다.

미 법무부는 존슨의 증언이 증거와 일치하지 않고, 내적 모순이 있으며, 신뢰할 수 있는 목격자 진술에 의해 뒷받침되지 않기 때문에 신빙성이 없다고 결론지었다. 또한 법무부는 존슨이 마지막 총격을 목격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을 가능성에 대해 회의적이었고, 존슨이 현장에서 도망쳤거나 은폐물을 찾는 동안 총격으로부터 등을 돌리고 있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7. 4. 기타 목격자 증언

여러 목격자들이 사건의 일부 또는 전부를 목격하고 언론과 인터뷰를 하거나, 대배심에 증언을 했으며, 미국 법무부의 조사를 받았다. 목격자들의 진술은 여러 지점에서 상충되었다. 미주리 세인트루이스 대학교(University of Missouri–)의 범죄학자 데이비드 클링거(David A. Klinger)는 목격자 증언이 목격자마다 종종 다르다는 점을 언급하며, 이는 일반적으로 라쇼몽 효과로 알려진 현상이라고 말했다.

AP 통신(Associated Press)의 대배심 검토 결과, 증언에는 "일치하지 않거나, 조작되었거나, 또는 명백히 잘못된" 진술을 포함하여 여러 문제점이 발견되었다. 여러 목격자들은 공개된 증거나 다른 목격자의 진술에 맞추기 위해 증언을 바꿨다고 인정했다. 검찰 측 로버트 매컬록은 "누구든지 모든 사람의 진술을 제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물론 명백히 거짓말을 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라고 말했다.

총격 사건에 대한 법무부 조사 결과, 윌슨의 진술을 뒷받침한 목격자들은 신뢰할 수 있는 반면, 윌슨의 진술과 모순되는 목격자들은 신뢰할 수 없다고 판단되었다. 브라운이 항복했거나 윌슨에게 다가가지 않았다고 주장한 목격자들은 신뢰할 수 없었으며, 보고서는 그들의 주장이 물리적 증거, 다른 목격자의 진술, 그리고 어떤 경우에는 같은 목격자의 이전 진술과 일치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윌슨의 유죄를 가리키는 목격자 진술은 신뢰할 수 있는 것으로 판단되지 않았다. 24개의 진술은 신뢰성이 없는 것으로 판단되었고, 신뢰할 수 있는 것으로 판단된 8개의 진술은 윌슨의 진술을 뒷받침했다. 9개의 진술은 윌슨의 진술과 완전히 모순되지도 않고 뒷받침하지도 않았다. 윌슨의 진술을 뒷받침하는 증거를 제공한 것에 대해 지역 사회의 보복을 두려워한다고 보고한 목격자들도 있었다.

9명의 목격자 진술이 법무부에 의해 윌슨을 완전히 옹호하거나 유죄로 인정하기에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되었다.

  • 목격자 107: 브라운이 도망치기 시작했을 때 윌슨이 자신의 차량 조수석 밖에 서 있었다고 보고했다. 브라운이 이후 윌슨에게 돌진했는지 확신하지 못했다. 브라운이 도망치는 동안 윌슨이 브라운에게 총을 쏘았고, 마지막 총격은 윌슨이 브라운으로부터 약 3.05m~약 4.57m 떨어져 있을 때 발사되었다고 진술했다. 수사관들은 목격자 107이 목격한 일에 몹시 흔들린 모습을 보였으며, 이것이 그녀의 진술의 불일치에 기여했을 수 있다고 보고했다.

  • 목격자 106: 미니밴 운전자인 목격자 106은 브라운이 윌슨을 향해 움직이기 전에 손을 들었다는 목격자 107의 진술에 동의하지 않았다. 이 목격자는 브라운의 행동을 "잠시 휘둘렀다"고 묘사했다. 그러나 목격자 106이 브라운을 본 시야는 윌슨의 몸에 의해 부분적으로 가려져 있었다.

  • 목격자 110과 111: 사건 당일 저녁에 인터뷰를 받았고 흔들린 상태였으며, 목격자 111은 울고 있었다. 목격자 110과 111은 모두 사건을 처음에는 차도에서, 그리고 나중에는 발코니에서 목격했다. 그들은 차를 타고 집으로 가는 길에 브라운과 존슨이 길을 걷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윌슨이 자신의 차를 후진시켜 브라운과 존슨을 막는 것을 보았지만, 조수석에서 보고 있었기 때문에 차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볼 수 없었다. 첫 번째 총격으로 존슨이 사라졌고, 브라운과 윌슨은 두 번째 총격이 발사되고 브라운이 도망칠 때까지 계속 몸싸움을 했다. 목격자 110은 브라운이 멈춰서 피투성이가 된 왼손을 보고, 양팔을 옆으로 벌리며 "뭐야?"라는 제스처를 취하고, 손을 같은 자세로 유지한 채 윌슨을 향해 돌아서는 것을 목격했다. 목격자 110은 처음에 브라운이 윌슨을 향해 "빨리" 돌아왔다고 진술했지만, 나중에 브라운이 윌슨에게 돌진하거나 달려들었다는 것을 대배심에서 부인했고 브라운의 움직임을 묘사할 수 없었다. 목격자 111에 따르면, 브라운이 윌슨을 향해 "느린 동작"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 목격자 115: 사건의 휴대전화 동영상을 녹화했는데, "놈(브라운)이 그의(윌슨의) 차에 다가가서, 놈(브라운)이 그를 때렸다"고 기록했다. 목격자 115는 브라운이 싸움에서 이기고 있었고, 목격자 115의 시점에서 윌슨을 때리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다. 총격이 멈추고 목격자 115가 발코니로 나갔다가 다시 들어가서 실수로 화장대에 두고 간 휴대전화를 가져오고 가족들에게 외치고 다시 발코니로 나왔기 때문에 목격자 115의 진술에는 공백이 있다. 이 시점에서 그들은 배에 팔을 얹고 서 있는 브라운을 보았다. 브라운은 항복하지 않았고 손을 들지 않았지만, 윌슨에게 다가가면서 쓰러지고 있었다. 윌슨은 일련의 총격을 가했고, 브라운은 한 팔을 땅에 대고 다른 팔은 옆에 둔 채 쓰러졌습니다. 윌슨은 브라운의 시신을 만지지 않았고, 총을 든 채 무전기로 통화하고 있었다.

  • 목격자 114: 윌슨이 차를 세우고 운전석 창문으로 몸을 내밀어 브라운에게 무언가를 말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보았다. 브라운은 손짓을 했다. 윌슨의 차는 처음에는 계속 나아갔지만, 그 후 급히 멈춰서 각도를 이루며 주차되었다. 목격자 129는 이것이 브라운과 존슨을 차단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진술했다.

  • 목격자 116: 비명 소리를 듣고 블라인드를 통해 밖을 내다보았다. 그들은 브라운이 윌슨의 차 안에 손을 넣고 있는 것을 보았다. 목격자 116은 윌슨이 테이저 건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사용했지만 빗나갔다고 보고했다. 그런 다음 그들은 윌슨이 한두 번 총을 쏘는 소리를 듣거나 보았습니다. 목격자 116은 브라운이 도망치는 것을 보고 그가 체포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추가로 5~6발의 총성을 들은 후 다시 밖을 내다보니 브라운이 땅에 죽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 목격자 110과 141: 윌슨이 브라운이 도망칠 때가 아니라 브라운이 그를 향해 움직일 때만 브라운에게 총을 쏘았다고 보고했다.


법무부는 다른 유죄를 입증하는 목격자 진술과 일치하고, 목격자의 이전 진술과 물리적 증거와 일치하는 윌슨을 유죄로 인정할 수 있는 진술을 찾지 못했다고 결론지었다.

8. 초기 반응 및 분석

마이클 브라운 총격 사건 직후, 평화적인 시위와 시민 폭동이 수일간 지속되었다. 이는 많은 사람들이 브라운이 항복했다고 믿었고, 흑인과 백인 사이의 인종적 긴장이 오랫동안 존재했기 때문이다. 경찰은 야간 통행금지 등으로 질서를 유지하려 했고, 퍼거슨 주민들은 사건 현장 부근에서 시위를 벌였다. 8월 10일 추모일은 처음에는 평화로웠지만, 밤이 되자 일부 군중이 소란을 일으켰다. 경찰은 폭동에 대응하여 약 150명의 경찰관을 소집했다. 일부 사람들은 기업을 약탈하거나 차량을 파손했고, 경찰과 대치했다.

8월 12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브라운의 유족과 지역 사회에 애도를 표했다. 8월 14일, 랜드 폴 상원의원은 타임지에 경찰 무장 해제를 주장하는 칼럼을 기고했다.

8월 15일, 퍼거슨 경찰은 브라운이 편의점에서 강도 사건을 저질렀다는 보고서와 비디오를 공개했다. 감시 비디오에는 브라운이 시가 상자를 잡고 점원과 실랑이를 벌이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법무부는 비디오 공개를 자제하도록 촉구했지만, 제이 닉슨 주지사는 공개를 결정했다. 브라운의 유족은 이를 "처형 스타일의 살인"에 이은 명예 훼손이라 비난했다.

기자 회견에서 퍼거슨 경찰서장 톰 잭슨


보고서와 비디오 공개 당시, 브라운이 강도 용의자라는 것을 윌슨이 알고 있었는지가 쟁점이 되었다. 경찰은 이미 알고 있었다고 말했지만, 윌슨은 최초 접촉 시에는 몰랐고, 브라운이 시가 상자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용의자로 인식했다고 톰 잭슨 퍼거슨 경찰서장이 정정했다.

8월 18일 퓨 리서치 센터 조사에서는 흑인(80%)과 백인(37%) 사이에 이 사건이 "인종에 관한 중요한 문제를 제기한다"는 인식 차이가 나타났다.[77]

8월 24일 세인트루이스 평화 축제에는 마이크 브라운과 트레이본 마틴의 부모가 참석했다. 8월 25일 브라운의 장례식에는 약 4,500명이 참석했다.

시위 중 설치된 임시 추모비


퍼거슨 경찰서에 모인 시위대


10월 22일, 윌슨의 대배심 증언 내용이 세인트루이스 포스트-디스패치에 유출되었다. 미 법무부는 이를 "여론 조작 시도"라고 비난했고, 윌슨 변호단은 부인했다. 유출 내용은 윌슨의 증언을 뒷받침하며 기소 가능성을 낮추고 시위대의 분노를 증폭시켰다.

폭동을 줄이기 위해 미주리주 하이웨이 패트롤이 퍼거슨 경찰의 치안 유지를 인계받았다


퍼거슨 시위 기간 동안 SWAT 차량 위에 있던 경찰 저격수


경찰과 시위대의 충돌


11월, 대배심 발표에 따른 시위는 전국 약 170개 도시에서 발생했고, 일부는 폭동으로 이어졌다. 많은 언론과 법률 전문가들이 대배심의 기소 불발 과정을 비판했다.

2014년 12월 여론 조사 결과, 흑인의 과반수가 경찰과 형사 사법 제도에서 백인과 동등한 대우를 받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2015년 3월 4일, 미국 법무부는 윌슨이 기소되지 않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보고서는 윌슨의 주장을 뒤집을 증거가 없고, 브라운이 손을 들었다는 목격담은 부정확하다고 밝혔다. 오바마 대통령은 법무부의 조사 결과를 존중하며, 윌슨은 무죄 추정의 원칙에 따라 불기소 혜택을 받았다고 말했다.

2015년 6월과 7월 갤럽 여론조사에 따르면, 흑인 응답자 중 8%가 현지 경찰이 소수 민족을 "매우 공정하게" 대하고 있다고 답했고, 44%가 "공정하다"고 답했다. 비히스패닉계 백인 응답자는 29%가 "매우 공정하게", 49%가 "공정하다"고 답했다. 흑인 응답자의 38%와 비히스패닉계 백인 응답자의 18%가 "지역 사회에서 경찰의 존재감 향상"을 긍정적으로 생각했다.[78][79]

8. 1. 2014년 8월 9일 ~ 14일

브라운 사망 사건 다음 날, 평화적인 시위와 민중 폭동이 발생하여 수일간 지속되었다. 이는 많은 사람들이 브라운이 항복하는 자세였다고 믿었던 것과, 소수 흑인 인구와 다수 백인 시정부 및 경찰 간의 오랜 인종적 긴장 때문이었다. 수사관들이 사건 당시 상황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발표하면서 경찰은 통행 금지령을 설정하고 질서를 유지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고, 퍼거슨 지역 주민들은 사건 현장 주변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시위를 벌였다. 추모 행사는 평화롭게 시작되었지만 저녁 촛불 집회 후 일부 군중이 폭력적으로 변했다. 현지 경찰서에서는 약 150명의 경찰관이 진압 장비를 착용하고 집결했다. 일부 사람들은 상점을 약탈하고 차량을 파손하며, 여러 지역으로의 접근을 차단하려는 경찰관들과 대치했다. 언론에서는 9/11 이후 지역 경찰서가 시위 진압 시 군용 무기를 사용하는 추세를 집중적으로 보도했다. 사건 이후 수일 동안 주 및 연방 정부 관리들이 이 문제에 대해 의견을 개진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브라운의 가족과 지역 사회에 애도를 표했다. 켄터키 주 상원의원 랜 폴은 ''타임''지 칼럼에서 이 사건을 비극이라고 규정하고 경찰의 군사화를 해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8. 2. 2014년 8월 15일 ~ 30일

8월 15일, 퍼거슨 경찰서는 마이클 브라운이 편의점에서 시가릴로 상자를 훔치고 점원과 몸싸움을 벌이는 모습이 담긴 보고서와 영상을 공개했다. 이 영상 공개는 지역 사회의 긴장을 고조시킬 수 있다는 이유로 법무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루어졌다. 제이 닉슨 미주리 주지사는 이 공개를 "수사 중인 브라운을 비방하고 지역 사회의 분위기를 자극하려는 시도"라고 비판했다. 브라운의 가족 역시 경찰의 정보 공개 방식에 대해 "아들의 '처형식 살해' 이후 '인격 암살'"이라며 강하게 비난했다.

경찰은 불규칙하고 드문 정보 공개로 비판을 받았다. 특히, 총격에 연루된 경찰관의 이름을 공개하지 않은 점, 세인트루이스 카운티 경찰의 사건 보고서에 세부 사항이 부족한 점, 윌슨이 사건 보고서를 작성하지 않은 점 등이 문제로 지적되었다.

보고서와 영상 공개 당시, 경찰은 윌슨이 브라운을 강도 용의자로 알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퍼거슨 경찰서장 톰 잭슨은 윌슨이 처음에는 강도 사건을 몰랐고, 브라운이 시가 상자를 들고 있는 것을 보고 용의자로 인식했다고 정정했다.

8월 18일 발표된 퓨 리서치 센터 조사에 따르면, 이 사건이 "인종에 관한 중요한 문제를 제기한다"는 응답은 흑인의 80%, 백인의 37%로 큰 차이를 보였다.[23]

8월 24일, 세인트루이스에서는 마이크 브라운을 중심으로 한 연례 평화 축제가 열렸으며, 브라운의 아버지와 2012년 플로리다에서 총에 맞아 사망한 트레이본 마틴의 부모도 참석했다.

8월 25일, 브라운의 장례식에는 약 4,500명이 참석했다.

8. 3. 2014년 9월 ~ 11월 24일

2014년 10월 22일, 익명의 정보원들이 세인트루이스 포스트-디스패치에 윌슨의 대배심 증언이라고 묘사한 내용을 유출했다. 법무부는 "이 수사에서 정보의 선택적 공개는 무책임하고 매우 우려스럽다고 생각합니다. 편의점 영상이 공개된 이후, 이 사건에 대한 여론을 부적절하게 조작하려는 시도가 있는 것 같습니다."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윌슨의 변호팀은 자신들이 유출의 배후가 아니라고 부인하며, "[유출된 보고서나 수사 보고서를] 소지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세인트루이스 카운티 검사 대변인은 기자들이 정보원을 공개하도록 강제할 수 없기 때문에 유출 사건을 조사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며, "그들이 가지고 있는 정보를 보면 유출이 대배심이나 검찰청에서 나온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고 밝혔다. 대배심 증언과 관련된 유출은 법무부에 의해 이 사건에 대한 여론에 영향을 미치려는 부적절한 시도로 비난받았다. 유출된 내용은 윌슨의 증언을 뒷받침하는 증거를 언급했고, 기소 가능성을 낮추는 동시에 분노한 시위대의 불씨를 더욱 키웠다.

11월, 대배심 발표에 따른 시위가 전국 약 170개 도시(서해안 로스앤젤레스부터 동해안 보스턴까지)에서 발생했고, 일부는 폭동으로 이어졌으며, 현지 퍼거슨에서는 시위대에 의해 여러 기업들이 약탈당하고 방화 사건이 발생했다. 많은 언론 보도와 법률 전문가들이 이 사건에서 대배심이 기소에 이르지 않은 과정을 비판했다.

8. 4. 2014년 11월 24일 ~ 12월 초

대배심 발표 이후, 페르구손과 미국 전역의 다른 도시들에서 일부 폭력적인 시위가 발생했다. 시위대에 의해 페르구손의 여러 사업체가 약탈당하고 방화되었다. 미국 전역 170개 도시에서 시위가 벌어졌는데, 여기에는 세인트루이스, 필라델피아, 시애틀, 알버커키, 뉴욕시, 클리블랜드, 로스앤젤레스, 오클랜드, 미니애폴리스, 애틀랜타, 시카고, 보스턴 등이 포함된다. 많은 언론 보도와 법률 전문가들은 법 집행관과 관련된 사건에서 기소를 하지 못한 절차에 대해 비판했다.

2014년 12월 워싱턴 포스트-ABC 뉴스 여론조사에 따르면, 흑인 대다수는 경찰이나 형사 사법 시스템으로부터 백인과 동등한 대우를 받지 못한다고 믿고 있다. 백인 미국인 10명 중 6명은 경찰이 인종을 동등하게 대우한다고 믿고 있으며, 백인 미국인 중 거의 절반은 형사 사법 시스템이 동등한 대우를 제공한다고 믿지만, 백인 미국인들 사이에는 뚜렷한 당파적 분열이 있다. 보수적인 또는 공화당 성향의 백인 미국인들은 자유주의적 또는 민주당 성향의 백인 미국인들보다 사법 시스템에서 백인과 흑인이 동등한 대우를 받는다고 말할 가능성이 훨씬 더 높다.

8. 5. 2015년 3월

United States Department of Justice영어는 윌슨이 사격 사건으로 기소되지 않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보고서에는 "검찰이 윌슨의 자기 안전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주장을 반박할 만한 증거는 없다"라고 적혀 있으며, 브라운이 손을 들었다는 진술은 "물리적 및 법의학적 증거와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부정확하다"고 밝혔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 발표에 대해 "법무부의 결론은 윌슨 경관을 기소할 만한 충분한 증거가 없다고 판단하는 것이 불합리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객관적이고 철저하며 독립적인 연방 수사였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우리는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윌슨 경관은 범죄로 기소된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적법 절차와 무죄 추정의 원칙의 혜택을 받는다"고 덧붙였다.

8. 6. 2015년 6월 ~ 7월

갤럽이 2015년 6월과 7월에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흑인 응답자의 8%만이 지역 경찰이 소수 인종을 "매우 공정하게" 대우한다고 답했고, 44%는 "공정하게" 대우한다고 답했다. 반면, 비히스패닉 백인 응답자 중에서는 29%가 지역 경찰이 소수 인종을 "매우 공정하게" 대우한다고 답했고, 49%는 "공정하게" 대우한다고 답했다. 같은 여론조사에서 흑인 응답자의 38%와 비히스패닉 백인 응답자의 18%는 "지역 사회에 경찰의 더 큰 존재감"을 선호한다고 밝혔다.[24][25]

9. 국제 사회 반응

마이클 브라운 총격 사건에 대해 여러 국가 정상들과 외신들이 논평을 냈고, 국제앰네스티 등 국제 인권 단체도 반응했다.

9. 1. 국가 및 언론 반응

여러 국가 정상과 외신들이 이 사건과 그에 따른 시위에 대해 논평했는데, 여기에는 중국 신화통신, 독일 슈피겔, 이집트 이집트 외교부, 이란 이슬람 공화국 통신, 중동 전역의 시위대, 러시아 외무부, 스페인 엘 문도, 영국 메트로 등이 포함된다.

국제앰네스티(AI)는 인권 관찰자, 교육자, 연구원 팀을 페르거슨에 파견했다. 이는 이 단체가 미국에 이러한 팀을 파견한 최초의 사례였다. 국제앰네스티 미국 지부장 스티븐 W. 호킨스는 보도 자료에서 "미국은 보호할 의무가 있는 자들이 그들의 공동체가 가장 두려워하는 존재가 되도록 계속 허용할 수 없다"고 말했다. 국제앰네스티는 페르거슨에서의 인권 침해를 선언하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는 브라운 사망 사건에서의 치명적 무력 사용, 인종차별 및 과도한 경찰력 사용, 시위 권리 제한 부과, 시위대 협박, 최루탄, 고무탄 및 장거리 음향 장치 사용, 시위를 보도하는 언론에 대한 제한, 그리고 시위 진압 경찰의 책임 부족 등을 언급했다.

9. 2. 국제앰네스티

국제앰네스티(AI)는 인권 관찰자, 교육자, 연구원 팀을 퍼거슨에 파견했는데, 이는 이 단체가 미국에 이러한 팀을 파견한 최초의 사례였다. 국제앰네스티 미국 지부장 스티븐 W. 호킨스는 보도 자료에서 "미국은 보호할 의무가 있는 자들이 그들의 공동체가 가장 두려워하는 존재가 되도록 계속 허용할 수 없다"고 말했다. 국제앰네스티는 퍼거슨에서의 인권 침해를 선언하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는 브라운 사망 사건에서의 치명적 무력 사용, 인종차별 및 과도한 경찰력 사용, 시위 권리 제한 부과, 시위대 협박, 최루탄, 고무탄 및 장거리 음향 장치 사용, 시위를 보도하는 언론에 대한 제한, 그리고 시위 진압 경찰의 책임 부족 등을 언급했다.

10. 대배심 결정에 대한 반응

뉴욕시 유니온 스퀘어에서 대배심 결정 다음 날 항의하는 시위대


대배심 절차는 일반적인 대배심 절차와 여러 면에서 차이를 보이며 비정형적이었다. 미국의 대배심 절차는 비밀리에 진행되며, 기소되지 않은 사건의 경우 절차, 증거, 증언 등이 대중에게 공개되는 경우는 드물다. 맥컬럭 검사는 처음부터 절차의 투명성을 추구했으며, 기소되지 않을 경우 관련 자료를 공개할 의도로 절차를 기록했다. 전 미국 연방 판사 폴 캐설은 수사 대배심이 특이한 이유는 범죄 행위 존재에 대한 확신 없이 수사를 진행했기 때문이며, 이는 검사에 의해 상당한 개연성이 걸러진 일반적인 대배심 절차와 대조적이라고 언급했다. 맥컬럭 검사가 모든 증거를 제시하려 한 점은 일반적인 대배심이 며칠 만에 결정을 내리는 것과 달리 절차가 훨씬 오래 걸리는 결과로 이어졌다.

심리 초기에 검찰은 1979년 미주리주 법령을 제시했는데, 이 법령은 경찰이 “체포하거나 [피의자의] 구금으로부터 탈출을 막기 위해” 치명적인 무력을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었다. 대배심 심의 전, 배심원들은 이전 지시를 무시하고, 무장하지 않은 도주 용의자를 체포하기 위해 경찰이 치명적인 무력을 사용하는 것은 위헌이라고 명시한 ''테네시 대 가너(Tennessee v Garner)'' 판결의 판례를 사용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미주리주 법무장관 크리스 코스터는 대배심이 무장하지 않은 용의자의 도주를 막기 위해 단순히 치명적인 무력을 사용할 수 없다는 사실을 통보받기 전에 주 법에 근거한 정보를 받았음을 인정했다.[26] MSNBC의 로렌스 오도넬은 이러한 변화가 검찰이 윌슨을 기소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하려는 의도적인 시도라고 주장했다.[26] 반면, 자기방어법 전문 매사추세츠 변호사 앤드류 F. 브란카는 자기방어는 치명적인 무력 사용에 대한 독립적이고 충분한 정당성이기 때문에 오도넬의 발언은 허수아비 논법이라고 규정했다. 세인트루이스 공영 라디오는 윌슨이 가너 판결에 따라 재판에서 기소되고 유죄 판결을 받더라도, 미주리주 법이 치명적인 무력 사용을 허용했던 것을 근거로 유죄 판결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후 검찰의 사건 처리 방식, 검찰관의 윌슨 심문, 대배심 결정 발표 후 브라운 계부의 반응 등이 주목받았다.

10. 1. 비정형적인 대배심 절차



이 대배심은 여러 면에서 이례적이었다. 미국의 대배심 절차는 비밀리에 진행되며, 기소되지 않을 경우 그 의사록이나 증거, 증언이 공개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맥컬럭 검사는 처음부터 절차의 투명성을 원했고, 기소하지 않을 경우 자료를 공개할 의도로 의사록을 작성했다. 전 연방 판사인 폴 캐설은 이번 대배심이 범죄 행위가 있었다는 보장이 없는 심의였다는 점에서 이례적이었다고 지적했다(일반적으로는 기소할 만한 이유가 검사에 의해 이미 심사된다).

맥컬럭이 모든 증거를 제시하려 했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며칠 이내에 결정되는 대배심 심의가 훨씬 오래 걸리게 되었다.

재판 전에 검찰이 1979년 미주리주 법("체포하거나 구금자의 도주를 막기 위해" 살상 무기를 사용하는 것이 경찰에게 허용됨)을 제시하는 등, 정당방위에 관한 법률 정보가 배심원에게 사전에 전달된 것이 논란이 되었다. 이는 윌슨을 기소하지 못하게 하려는 검찰의 의도적인 시도였다고 주장하는 기자도 있었고[80], 정당방위에서의 살상 무기 사용은 독립적인 정당 요건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하는 법률가도 있었다. 세인트루이스 공영 라디오는 나중에, 만약 윌슨이 기소되어 재판에서 테네시 대 가너 판례(위험하지 않은 용의자의 도주를 막기 위해서만 살상 무기를 사용하는 것은 위헌)에 근거하여 유죄 판결을 받더라도, 미주리주 법을 근거로 그 유죄 판결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검찰의 사건 처리 방식에도 주목이 집중되었다. 일반적으로 검찰은 무죄 증거를 간과하지 않으며, 피고가 무죄라고 생각하면 일반적으로 기소하지 않는다. 모든 증거 제시라는 이례적인 절차는, 자의적인 제시가 심의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논쟁을 피하게 되었지만, 이 결정 때문에 맥컬럭은 현재도 비판받고 있다. 일부 검찰관은, 재판에서 승소할 가능성이 없고 이후의 수사와 민사 소송이 더 큰 비판을 야기할 것 같은 경우, 명분으로 대배심 절차를 이용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한편, 검찰이 모든 증거를 제시하는 것이 이상하다고 말할 수 없으며, 재판에서 유죄를 선고받을 가능성이 없다면(이번 경우처럼) 기소하지 않는 것은 정당화될 수 있다는 변호사 측의 의견도 있었다. 나중에 맥컬럭은, 기소장을 얻기 위해 왜곡된 증거 제출을 하지 않고 모든 증거를 포함시키는 이번 선택을 옹호했다.

뉴욕 타임스지는 검찰관에 의한 윌슨에 대한 심문이 "온화"했고, 그의 진술과 모순되는 듯한 목격자에 대한 날카로운 추궁과 대조적이었다며 객관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부분이 있었다고 보도했다. CNN은 윌슨의 증언에 대한 반대 심문 중에 시시한 질문이 있었다며 검찰을 비판했고, 윌슨이 브라운에게 두 번이나 엎드리라고 경고했다는 진술에 대해 목격자의 증언이 없었다는 점을 지적했다.

뉴욕 타임스 비디오에 따르면, 대배심의 결정이 발표된 후 브라운의 계부 루이스 헤드는 모인 시위대에게 돌아서서 "이 비굴한 놈을 불태워 버려"라고 외쳤다. 직전에는 "(단상에) 서면 내가 폭동을 일으키겠다"고 말했지만 나중에 그는 일련의 감정 폭발에 대해 사과했다.

10. 2. 검찰의 사건 처리 방식 비판

미국의 대배심 절차는 비밀리에 진행되며, 기소되지 않은 사건의 경우 절차, 증거 및 증언이 대중에게 거의 공개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번 사건에서 맥컬럭 검사는 처음부터 절차에 투명성을 제공하고자 했으며, 기소되지 않을 경우 자료를 대중에게 공개할 의도로 절차를 기록했다.

검찰의 사건 처리 방식은 다음과 같은 비판을 받았다.

인물비판 내용
로저 파롤프검찰이 진정으로 무죄를 입증하는 증거를 제외하는 경우는 드물며, 피고가 무죄라고 생각하면 일반적으로 기소하지 않는다고 지적하며, 맥컬럭 검사가 기소를 얻기 위해 증거를 제시해야 했다는 견해에 동의하지 않았다.
제이 스털링 실버대배심 사건은 법 집행 기관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지역 검찰과 경찰 간의 이해 상충을 나타낸다고 말했다.
마크 오마라이례적인 절차는 발표가 특정 결과를 얻기 위한 것이라는 주장을 피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맥컬럭 검사는 여전히 비판을 받았다고 말했다.
폴 캘런모든 증거를 제시하는 선택은 이례적이지만 논란이 되는 사건에서는 전례가 없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일부 검사들이 재판에서 성공하지 못할 사건이나 이후 수사와 민사 소송이 더 많은 비판을 야기할 사건에서 대배심 절차를 정치적 보호막으로 사용한다고 지적했다.
제프리 투빈유죄 판결은 재판에서 매우 가능성이 낮았기 때문에 무혐의 처분이 정당했을 수도 있지만, 사용된 절차는 사법 제도에 대한 신뢰를 불러일으키지 않는다는 데 동의했다.
뉴욕 타임스검찰의 윌슨에 대한 질문을 "온화한" 것으로 묘사했고, 윌슨의 진술과 모순되는 것으로 보이는 증인들에 대한 날카로운 반박과 대조를 이룬다고 말하며, 이것이 일부 사람들로 하여금 절차가 맥컬럭 검사가 주장한 만큼 객관적인지 의문을 갖게 했다고 보도했다.
서니 호스틴검찰이 윌슨의 증언에 대한 반대 심문 중에 부드러운 질문을 했으며, 특히 어떤 증인도 윌슨이 브라운에게 두 번 바닥에 눕도록 경고했다는 그의 이야기를 확인할 수 없었고, 질문을 받았을 때 증인들은 그가 그렇게 말하는 것을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는 사실을 특히 언급했다.



반면, 전국 지방 검사 협회의 윌리엄 피츠패트릭은 경찰 관련 사건에서 검사가 이용 가능한 모든 증거를 제공하고 특정 혐의를 요구하지 않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며 맥컬럭 검사의 증거 포함을 옹호했다. 맥컬럭 검사 역시 후속 인터뷰에서 기소를 얻기 위해 발표를 왜곡하지 않고 모든 증거를 포함하기로 한 선택을 옹호했다.

10. 3. 브라운 계부 반응

대배심의 결정이 발표된 후, 브라운의 계부인 루이스 헤드는 모인 시위대에게 돌아서서 "이 빌어먹을 것을 불태워버려"라고 소리쳤다고 ''뉴욕 타임스'' 비디오에 나와 있다. 잠시 전에는 "(단상에) 서면 내가 폭동을 일으키겠다"고 말했지만, 나중에 그는 이 발언에 대해 사과했다.

11. 사건 이후

2014년 9월 24일, 토머스 잭슨 퍼거슨 경찰서장은 마이클 브라운 가족에게 공개적으로 사과했다. 같은 해 11월 29일, 대런 윌슨은 보안 문제를 이유로 퇴직금 없이 퍼거슨 경찰대를 사퇴했으며, 이듬해 3월 12일, 잭슨 서장도 퍼거슨 경찰서를 떠났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총격 사건에 대한 대응 조치 중 하나로 연방 정부가 법 집행관을 위한 바디캠에 7500만달러를 지출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AP통신(Associated Press)의 미국 뉴스 디렉터 및 편집자 연례 여론 조사에 따르면, 2014년 최고 뉴스는 브라운 총격 사건을 포함한 무장하지 않은 흑인에 대한 경찰 살인 사건과 그에 대한 조사, 그리고 그 여파로 일어난 시위였다.

총격 사건이 발생한 인도에 있는 마이클 브라운을 기리는 청동 명판


세인트루이스 대학교 로스쿨 명예 교수인 로저 골드먼, 세인트루이스 대학교 법학 교수인 플랜더스, 그리고 자밀라 나시드 상원의원은 1985년 미국 대법원 판결인 ''테네시 대 가너(Tennessee v. Garner)''에 부합하도록 미주리주 법을 개정하려고 한다.

브라운 가족과 윌슨을 위한 기금이 인터넷에서 모금되었으며, 각각 수십만 달러의 기부금이 모였다.

2018년 8월, 검사 밥 맥컬로치는 개혁가 웨슬리 벨에게 두 자릿수 격차로 재선에 실패하여 28년간의 재임을 마감했다.[27]

마이클 브라운이 점원과 대치했던 퀵트립(QuikTrip)(QuikTrip) 편의점(이 사건으로 경찰이 출동함)[28]은 다음 날 다른 인근 상점들과 함께 약탈당하고 불타 버렸다.[29] 회사는 재건 대신 그 부지를 메트로폴리탄 세인트루이스 도시연맹(Urban League of Metropolitan St. Louis)(Urban League of Metropolitan St. Louis)과 구세군(Salvation Army)(Salvation Army)에 기증했다. 두 단체는 그 부지에 페르구손 지역 사회 역량 강화 센터(Ferguson Community Empowerment Center)를 건설하여 2017년에 개관했다.[29]

2018년 4월 25일, 브라운의 어머니 레즐리 맥스패든(Lezley McSpadden)은 하버드 대학교에서 열린 경찰 폭력 관련 포럼에서 자신이 페르거슨 시의회 선거에 출마할 것이라고 발표했으나, 당선되지 못했다.[44]

이 사건은 퍼거슨 폭동의 도화선이 되었다. FBI의 후일 조사에서는 브라운이 총격을 받기 전에 두 손을 들었거나 "쏘지 마세요"라고 말했다는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다.[67]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위대는 브라운이 그렇게 했다고 주장하며, 후일 시위에서 "두 손을 들면 쏘지 마라"라는 슬로건을 사용했다.

2014년 11월 24일, 세인트루이스 카운티 대배심은 검찰관(Robert McCulloch)으로부터 제시된 광범위한 증거를 바탕으로 윌슨의 불기소를 결정했다. 2015년 3월, 미국 법무부는 독자 조사의 결론을 보고하고, 이 총격 사건에서 윌슨의 시민권 침해를 밝히지 못했다. 미국 법무부는 윌슨이 정당방위(self-defense)로 브라운을 쐈다고 결론지었다.

2020년 세인트루이스 카운티 검찰(Wesley Bell)은 윌슨을 과실치사죄 또는 살인죄로 기소할 관점에서 5개월에 걸쳐 해당 사건을 재검토한 후, 어떤 범죄로도 윌슨을 기소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68]

11. 1. 윌슨 및 잭슨 사임

대런 윌슨은 2014년 11월 29일 보안 문제를 이유로 퇴직금 없이 퍼거슨 경찰대를 사퇴했다. 윌슨의 변호사는 윌슨이 자신의 존재로 다른 경찰관들을 위험에 빠뜨리고 싶지 않기 때문에 "다시는 경찰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전국변호사협회(National Bar Association)는 미주리주 공공 안전부에 윌슨의 경찰관 면허 취소를 요구하는 고소를 제기했다. 윌슨은 경찰관으로 취업하려는 시도가 실패했다.

토머스 잭슨 퍼거슨 경찰서장은 사건 발생 5개월 후인 2015년 3월 12일에 사임했다.

11. 2. 관련 소송

2015년 4월 23일, 마이클 브라운의 가족은 대런 윌슨, 토머스 잭슨, 그리고 퍼거슨 시를 상대로 부당사망 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은 7만 5천 달러 이상의 손해배상금과 변호사 비용을 청구했다. 이 소송은 주 법원에서 연방 법원으로 이송되었다. 2017년 6월 20일, 브라운의 부모와 퍼거슨 시 간의 합의가 이루어졌다. 합의 조건은 공개되지 않았으나, 퍼거슨 시 변호사는 시의 보험회사가 150만달러를 지불했다고 밝혔다.[37][38][39]

사건 당시 브라운과 함께 있었던 도리안 존슨도 2015년 4월 29일 윌슨, 잭슨, 퍼거슨 시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그는 윌슨 경관이 자신을 체포할 만한 합리적인 근거 없이 체포하려 했다고 주장하며 2만 5천 달러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이 소송 역시 주 법원에서 연방 법원으로 이송되었다. 항소 법원은 소송을 진행하도록 허용했지만,[40] 2019년 대법원은 이 결정을 뒤집고 소송을 기각하도록 명령했다.[41]

11. 3. 퍼거슨 효과

퍼거슨 효과는 지역 사회의 경찰에 대한 불신과 적대감으로 인해 적극적인 경찰 활동이 감소하여 발생하는 폭력 범죄율 증가를 의미한다.[30] 이 용어는 세인트루이스 경찰서장인 도일 샘 돗슨 3세가 퍼거슨 폭동 이후 일부 미국 도시에서 살인율 증가를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낸 것으로, 마이클 브라운 총격 사건 이후 미주리주 퍼거슨에서 경찰이 폭력 증가를 목격한 후 처음 제기되었다.[31]

11. 4. "손을 들고, 쏘지 마세요"

퍼거슨 시위에서 보인 "손을 들고, 쏘지 마세요!" 플래카드


"손을 들고, 쏘지 마세요"(Hands up, don't shoot) 또는 간단히 "손을 들고"(hands up)는 마이클 브라운 총격 사건에서 유래한 슬로건이자 제스처로, 퍼거슨과 미국 전역의 시위에서 목격되었다. 이 제스처는 경찰 폭력에 대한 저항의 구호가 되었다.

2015년 3월 4일, 미국 법무부는 총격 사건에 대한 보고서를 발표했는데, "브라운이 항복하는 자세로 손을 들고 있었다고 진술한 목격자 중 다른 물리적 증거와 일치하는 진술을 한 사람은 없다"고 밝혔으며, "조사 결과 브라운이 '쏘지 마세요'라고 말했다고 진술한 목격자는 없었다"고 밝혔다.

11. 5. 관련 사건

2014년 12월 20일, 브루클린 베드퍼드스타이베산트에서 뉴욕시 경찰관(NYPD) 두 명이 순찰차 안에서 총에 맞아 사망했다. 용의자 이스마이일 브린슬리는 며칠 전 인스타그램에 마이클 브라운과 에릭 가너 사망 사건에 대한 보복으로 경찰관을 살해할 의도를 게시했다. 브린슬리는 긴 범죄 경력을 가지고 있었고, 사건 몇 시간 전 여자친구의 배를 쏜 후 뉴욕시 지하철에서 자살했다.

2015년 3월 12일, 퍼거슨 경찰서 밖에서 경찰관 두 명이 총격을 받아 부상을 입었다. 한 명은 인근 웹스터 그로브스 출신이고 다른 한 명은 세인트루이스 카운티 경찰 출신으로, 경찰서 밖에서 열린 시위 현장에서 경비를 서고 있었다. 이틀 후, 20세의 제프리 L. 윌리엄스가 총격 사건과 관련하여 체포되었다. 윌리엄스의 변호사는 윌리엄스가 총을 쏘기는 했지만 경찰관을 겨냥한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마이클 브라운 총격 사건 1주년인 2015년 8월 9일, 브라운의 친구인 18세 타이론 해리스가 퍼거슨에서 경찰에 의해 총에 맞았다.[32][33] 같은 날, 미주리주 콜럼비아 경찰협회(CPOA)는 대런 윌슨을 "무고하지만 박해받는 경찰관"이라고 부르며 그의 인종과 그에 대한 지지 사이에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주장하며 "대런 윌슨의 날"을 선포했다.[34] ABC 계열 방송사는 해당 게시물이 삭제되기 전에 사이트에서 거의 60번이나 공유되었다고 보도했다. 그 후 CPOA는 윌슨과 "비슷한 상황을 겪는 모든 법 집행관"에 대한 지지를 게시했다.[35]

11. 6. 경찰 개혁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2014년 12월, 미국의 광범위한 경찰 개혁을 위한 권고안을 제시할 위원회를 설립했다. 위원회는 2015년 3월 2일에 중간 보고서를 발표했으며,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사망자가 발생하거나, 경찰관 관련 총격 사건으로 부상 또는 사망자가 발생하거나, 구금 중 사망 사건이 발생할 경우 "외부 및 독립적인 형사 수사를 의무화하는 정책"을 마련할 것을 권고하는 등 수많은 권고안을 포함했다.

11. 7. DOJ 퍼거슨 경찰 조사

2014년 9월 5일, 미국 법무부(US. Department of Justice)는 미주리주 퍼거슨 경찰의 인종 프로파일링 및 과잉 진압의 상습성 여부를 조사하기 위한 수사에 착수했다. 이 수사는 마이클 브라운 총격 사건에 대한 법무부의 다른 수사와는 별개였다. 수사 결과는 2015년 3월 4일 보고서로 발표되었으며, 퍼거슨 경찰은 흑인에 대한 차별과 인종적 고정관념 적용을 통해 시민들의 헌법적 권리를 상습적으로 침해했으며, "미국 헌법 수정 제1조, 제4조, 제14조 및 연방 법률을 위반하는 퍼거슨 경찰서 내 불법 행위의 관행 또는 패턴"이 있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 보고서는 사소한 범죄에 대한 영장 발부 문제에 초점을 맞추었다. 많은 주에서 영장 발부의 주요 원인은 미납 교통 위반 딱지이다.[36]

11. 8. 대중문화

마이클 브라운이 총에 맞아 사망한 달, 미국의 래퍼 더 게임, 릭 로스, 투 체인즈, 디디, 파볼러스, 월, DJ 카레드, 스위즈 비츠, 요 고티, 커런시, 프라블럼, 킹 파라오와 음반 그룹 TGT는 브라운을 추모하는 노래 "Don't Shoot"을 발표했다.[45][92]

조니 할리데이는 2017년 마지막 스튜디오 앨범 ''De L'Amour''에서 인종 범죄에 반대하고 마이클 브라운을 기리는 노래 "Dans la peau de Mike Brown"을 불렀다.[46][93]

2014년 11월 28일, 음악가이자 영화 제작자인 리처드 로시는 마이클 브라운 사건과 관련된 항의 노래를 작곡하고 녹음했다. 로시는 "경찰의 무분별한 발포의 위험에 대한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5분 만에 노래를 썼다"며 "주방 테이블에 있는 노트북으로 촬영하여 유튜브에 업로드했다"고 말했다. ''로스앤젤레스 데일리 뉴스''에 실린 노래의 시작 부분은 다음과 같다. "월요일 오후 법원에 내려가 보니/젊은 백인 경찰이 방에 들어오자 정의는 창문 밖으로 던져졌다."[47]

프린스는 2015년 볼티모어 시위에 관한 노래 "Baltimore"에서 "누군가 마이클 브라운이나 프레디 그레이를 위해 우리가 기도하는 것을 듣고 있습니까?"라고 부른다.[48][49][94][95]

2015년, 배우 에즈라 밀러는 ''The Truth According to Darren Wilson''이라는 제목의 단편 영화를 감독했다. 이 영화에서 윌슨은 자신의 사건에 대한 버전을 이야기하며, 조사관들에게 이야기하기 위해 방으로 불려 들어가는 것으로 끝맺는데, 이는 윌슨이 브라운을 불법적으로 살해했고 나중에 그날의 사건에 대해 거짓말을 했다는 것을 암시한다.[50][51][96][97]

브라운의 죽음은 드라이브-바이 트럭커스의 2016년 앨범 ''American Band''에 수록된 "What It Means"라는 노래의 주제이다.[52][53][98][99]

아이콘 제작자 마크 듀크스는 총격 사건에 대응하여 ''퍼거슨의 성모''라는 아이콘을 만들었다.[54][100]

시인 데이네즈 스미스는 사건 당일 밤에 쓴 "not an Elegy for Mike Brown"이라는 제목의 시를 발표했다.[55][56][101]

시애틀 출신 래퍼 맥클레모어는 프로듀서 라이언 루이스와의 두 번째 공동 작업인 2016년 ''This Unruly Mess I've Made''의 노래 "White Privilege II"에서 윌슨을 언급하며 "나의 성공은 다렌 윌슨을 석방한 것과 같은 시스템의 산물이다 – 유죄"라고 말한다.[57][102]

2016년, 브라운과 다른 사람들을 위한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 추모 기념물에 관한 장이 보존주의자 캐서린 플레밍 브루스의 책 "The Sustainers: Being, Building and Doing Good through the Sacred Spaces of Civil Rights, Human Rights and Social Movements"에 포함되었다. 이 책은 2017년 메리 워싱턴 대학교 역사 보존상을 수상했다.[58]

영국 포크 가수 레그 메우로스는 2017년 앨범 ''Faraway People''에 "The Lonesome Death of Michael Brown"이라는 노래를 수록했다. 이 노래 제목은 1960년대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밥 딜런의 노래 "The Lonesome Death of Hattie Carroll"을 인용한 것이다.[59][103]

시인 니콜 실리는 퍼거슨 보고서[61]에 대한 장편 지우기 시[60]인 ''The Ferguson Report: An Erasure''를 썼는데, 이는 마이클 브라운 살해 사건과 그 이후의 퍼거슨 소요 사태에 대한 논평이다. 이 책에서 발췌한 그녀의 시 "Pages 22–29"는 2021년 10월 포워드 시상을 수상했다.[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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