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타요시 가쓰키
1. 개요
마타요시 가쓰키는 일본의 프로 야구 선수로, 사이드암 투수이다. 고등학교 시절 투수로 전향하여 환태평양 대학교에 진학, 독립 리그를 거쳐 2014년 주니치 드래건스에 입단했다. 2017년에는 선발과 구원을 오가며 올스타전에 출전했고, 2021년에는 FA 자격을 얻어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로 이적했다. 2022년에는 부상으로 시즌 아웃되었지만, 2023년 재기에 성공하여, 2024년에도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그는 통산 152km/h의 빠른 공과 슬라이더, 슈트를 주무기로 사용하며, 2017년 아시아 프로야구 챔피언십 일본 대표로도 활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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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지션 | 투수 |
|---|---|
| 소속 구단 |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
| 등번호 | 14 |
| 투타 | 우투우타 |
| 생년월일 | 1990년 11월 4일 (33세) |
| 출생지 | 일본 오키나와현 우라소에시 |
| 데뷔 | IL / 2013년 4월 7일 NPB / 2014년 3월 29일 |
| 최종 출장 | IL / 2013년 10월 5일 |
| 연봉 | 1억 5000만 엔 (2025년) |
| 계약 정보 | 2022년부터 4년 계약 |
| 고등학교 | 오키나와현립 니시하라 고등학교 |
|---|---|
| 대학교 | 환태평양대학 |
| 실업/독립리그 | 가가와 올리브 가이너스 (2013) |
| 프로 | 주니치 드래건스 (2014–2021)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2022–현재) |
| 해외 파견 | 티그레스 델 리세이 (2014) |
| 승-패 | 46승 31패 |
|---|---|
| 평균자책점 | 2.79 |
| 홀드 | 167 |
| 세이브 | 11 |
| 탈삼진 | 480 |
| 올스타 | 3회 (2017년, 2021년, 2022년) |
|---|
| 대회 | 아시아 프로 야구 챔피언십 |
|---|---|
| 연도 | 2017 도쿄 |
| 결과 | 금메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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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현 출신 야구 선수 -
야마카와 호타카
야마카와 호타카는 압도적인 장타력을 지닌 일본 프로 야구 선수로,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에서 활약하다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로 이적하여 퍼시픽 리그를 대표하는 강타자로 자리매김했으나, 성범죄 혐의와 관련된 사회적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
오키나와현 출신 야구 선수 -
미야구니 료스케
미야구니 료스케는 일본 야구 선수로, 투수 포지션에서 활약했으며,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에서 선수 생활을 하고, 은퇴 후에는 공인중개사 시험 합격 및 드라마 출연 등 다양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
일본의 야구 선수 -
도마시노 겐지
도마시노 겐지는 1988년 야쿠르트 스왈로스에 입단하여 1989년 신인왕을 수상하고 빠른 발과 수비력을 갖춘 유틸리티 플레이어로 활약한 일본의 전 프로 야구 선수이자 현재 야구 해설가이다. -
일본의 야구 선수 -
다도코로 젠지로
다도코로 젠지로는 시즈오카 상업고등학교 시절 선발 고등학교 야구 대회에서 전 경기 완봉승으로 우승을 이끌었으며, 고쿠테쓰 스왈로스에 입단하여 투수로 활동, 은퇴 후에는 코치, 야구 연맹 임원, 유소년 야구팀 대표를 역임했다. -
일본 프로 야구 투수 -
다도코로 젠지로
다도코로 젠지로는 시즈오카 상업고등학교 시절 선발 고등학교 야구 대회에서 전 경기 완봉승으로 우승을 이끌었으며, 고쿠테쓰 스왈로스에 입단하여 투수로 활동, 은퇴 후에는 코치, 야구 연맹 임원, 유소년 야구팀 대표를 역임했다. -
일본 프로 야구 투수 -
후지타 모토시
후지타 모토시는 일본의 전 프로 야구 선수이자 지도자이며,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선수와 감독으로 활약하며 리그 MVP를 2연패하고 일본 시리즈 우승을 달성했으며, 일본 야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2. 프로 입단 전
우라소에 시립 우라소에 초등학교 1학년 때 '나카마 자이언츠'에서 야구를 시작했으며, 우라소에 시립 우라소에 중학교에서는 연식 야구부에 소속되었다. 포지션은 2루수였지만, 팀 동료였던 시마이 히로토는 "시합에 나선 모습을 거의 보지 못했다"라고 말할 정도로, 중학교 시절에는 시합 출전 기회가 거의 없었다.
오키나와 현립 니시하라 고등학교 진학 당시 키는 158cm, 몸무게는 40kg으로 매우 작았으나, 점차 성장하였다. 1학년 겨울, 감독의 질문에 투수 경험이 있다고 거짓말을 한 것을 계기로 타격 투수를 맡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사이드스로 투구폼을 익히게 되었다. 2학년 가을, 팀의 투수 부족으로 투수로 전향했다. 3학년 여름에는 키가 172cm까지 자랐고, 현 대회에서 등번호 10번으로 2경기에 등판했지만, 팀은 2회전에서 패배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체육 교사가 되기 위해 환태평양 대학교에 진학했다. 대학에서도 꾸준히 성장하여 키가 180cm에 달했고, 4학년 가을에는 최고 구속 144km/h를 기록했다. 대학 감독과 아버지의 권유로 2년 기한으로 독립 리그에 도전하기로 결심했다.
2.1. 유소년 시절
우라소에 시립 우라소에 초등학교 1학년 때 '나카마 자이언츠'에서 야구를 시작했으며, 우라소에 시립 우라소에 중학교에서는 연식 야구부에 소속되었다. 수비 위치는 2루수였지만, 팀 동료였던 시마이 히로토는 "시합에 나선 모습을 거의 보지 못했다"라고 말할 정도로, 중학교 시절에는 시합 출전이 어려웠다.
오키나와 현립 니시하라 고등학교 입학 당시 키는 158cm, 몸무게는 40kg으로 매우 작았고, 부내에서는 "콩알"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몸이 조금씩 성장했다. 1학년 겨울, 우에하라 겐 감독의 투수 경험 유무 질문에 "있습니다"라고 거짓말을 했지만, 이를 계기로 타격 투수를 맡게 되었다. 투구 수가 많아 편하게 스트라이크를 던지려 한 결과, 자연스럽게 사이드스로가 되었다. 2학년 때 강호교에 적응하지 못한 시마이가 니시하라 고등학교로 전학 와, 다시 팀 동료가 되었다. 2학년 가을, 팀은 하급생 투수들의 부상과 시마이의 전학 후 1년간 공식전 출장 불가 규정으로 투수 부족을 겪어 투수로 전향했다. 3학년 여름에는 키가 172cm까지 자랐고, 현 대회에서 등번호 10번으로 2경기에 등판했지만, 팀은 2회전에서 패배했다. 고등학교 시절 최고 구속은 117km/h였다.
고등학교 졸업 후, "체육 교사가 되어 야구부 감독이 되고 싶었다"라는 이유로 환태평양 대학교에 진학했다. 입학 직후 5월, 전력으로 계산하던 사이드스로 투수가 부상당하자, 다무라 타다요시 감독이 "사이드로 던질 수 있는 녀석 있나?"라고 물었고, 마타요시가 손을 들었다. 처음에는 "아직 중요한 시합에 쓸 수 있는 레벨이 아니네"라는 평가였지만, 현역 시절 사이드스로 투수였던 다무라 감독의 지도를 받으며, 1학년 가을에 최고 구속 138km/h를 기록했다. 2학년 봄 리그전 후 다무라가 퇴임했지만, 2학년 가을에는 팀 사상 첫 전국 대회인 메이지 신궁 대회 출전을 이끌었다. 대학 진학 후에도 몸은 계속 성장하여 키 180cm에 달했고, 4학년 가을에는 최고 구속 144km/h를 기록했다. 여전히 교원을 지망했지만, 다무라의 후임인 호리타 가즈히코 감독의 "독립 리그에서 야구를 계속하지 않겠나?"라는 제안과 아버지의 "젊을 때만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라는 격려에 2년 기한으로 독립 리그 도전을 결심했다. 시코쿠 아일랜드 리그 plus 트라이아웃에서 2차 시험 면제 특별 합격자(10명) 중 한 명으로 선정되었고, 가가와 올리브 가이너스로부터 드래프트 3위 지명을 받았다. 등번호는 21이다.
2.2. 고등학교 시절
오키나와 현립 니시하라 고등학교 입학 당시 마타요시는 키 158cm, 몸무게 40kg으로 매우 작아, 부내에서는 "콩알"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였다。 1학년 겨울, 우에하라 겐 감독에게 투수 경험 유무를 질문받고 "있습니다"라고 거짓말을 했지만, 이를 계기로 타격 투수를 맡게 되었다. 투구 수가 많았기 때문에 편하게 스트라이크를 던지려고 한 결과, 자연스럽게 사이드스로가 되었다.
2학년 때, 시마이 히로토가 강호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니시하라 고등학교로 전학 와 다시 팀 동료가 되었다. 그해 가을, 팀은 하급생 투수들의 부상과 시마이의 전학 후 1년간 공식전 출장 불가 규정으로 인해 투수가 부족해졌고, 마타요시는 투수로 전향하게 되었다。
3학년 여름, 마타요시는 키가 172cm까지 자랐고, 현 대회에서 등번호 10번으로 2경기에 등판했지만, 팀은 2회전에서 패퇴했다. 고등학교 시절 최고 구속은 117km/h였다.
2.3. 대학교 시절
고등학교 졸업 후 "체육 교사가 되어 야구부 감독이 되고 싶었습니다. 대학에 진학한 것도 그 때문이었고, 야구부에 들어간 것도 장래에 훈련 메뉴를 생각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라며 환태평양 대학교에 진학했다. 입학 직후 5월, 주력 선수로 예상되던 사이드스로 투수가 부상당하자, 다무라 타다요시 감독이 "사이드스로 던질 수 있는 사람 있나?"라고 물었다. 이때 마타요시가 손을 들었고, 처음에는 "아직 중요한 시합에 쓸 수 있는 레벨이 아니네"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현역 시절 사이드스로 투수였던 다무라 감독의 지도를 받으며 1학년 가을에 최고 구속 138km/h를 기록했다. 2학년 봄 리그전 후 다무라 감독이 퇴임했지만, 2학년 가을에는 팀 사상 첫 전국 대회인 메이지 신궁 대회 출전을 이끌었다. 대학 진학 후에도 몸은 계속 성장하여 키 180cm에 달했고, 4학년 가을에는 최고 구속 144km/h를 기록했다. 여전히 교원 지망이었지만, 다무라 감독의 후임인 호리타 가즈히코 감독으로부터 "독립 리그에서 야구를 계속하지 않겠나?"라는 제안을 받고, "그렇게 안 되면 교사의 길을 가자. 아버지로부터도 '젊을 때만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라는 격려를 받아서"라며 2년 기한으로 독립 리그 도전을 결심했다.
3. 프로 경력
마타요시 가쓰키는 독립 리그와 일본 프로 야구를 거치며 주로 구원 투수로 활약했다.
카가와 올리브 가이너스 시절에는 뛰어난 성적으로 팀의 우승을 이끌었고, 2013년 일본 프로 야구 드래프트를 통해 주니치 드래건스에 입단했다.
주니치 드래건스에서는 2014년부터 2021년까지 8시즌 동안 셋업맨과 마무리 투수로 활약했다. 특히 2014년에는 리그 2위인 67경기에 등판하여 신인왕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다. 2017년에는 선발 투수로도 등판하여 좋은 성적을 거두었고, 일본 프로 야구 올스타전에 처음으로 선출되었다. 2018년에는 통산 100홀드를 달성했고, 2021년에는 개인 통산 최다인 33홀드를 기록하며 부활을 알렸다.
마타요시의 주니치 드래건스 시절 연도별 주요 기록은 다음과 같다.
| 연도 | 경기 | 승 | 패 | 홀드 | 세이브 | 평균자책점 | 탈삼진 |
|---|---|---|---|---|---|---|---|
| 2014 | 67 | 9 | 1 | 24 | 2 | 2.21 | 85 |
| 2015 | 63 | 6 | 6 | 30 | 0 | 3.36 | 57 |
| 2016 | 62 | 6 | 6 | 16 | 0 | 2.80 | 56 |
| 2017 | 50 | 8 | 3 | 21 | 0 | 2.13 | 82 |
| 2018 | 40 | 2 | 5 | 9 | 0 | 6.53 | 28 |
| 2019 | 26 | 3 | 3 | 3 | 0 | 4.06 | 37 |
| 2020 | 26 | 4 | 0 | 7 | 0 | 2.77 | 18 |
| 2021 | 66 | 3 | 2 | 33 | 8 | 1.28 | 52 |
2021년 시즌 후 FA 권리를 행사하여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로 이적했다. 2022년에는 셋업맨으로 활약하며 팀에 기여했으나, 부상으로 시즌을 조기에 마감했다.
3.1. 독립 리그 - 카가와 올리브 가이너스 시절
2012년 12월 13일, 마타요시는 독립 리그 시코쿠 아일랜드 리그 Plus의 카가와 올리브 가이너스와 계약했다. 등번호는 21번을 받았다.
2013년 전기 리그에서 5월 '월간 그라제니상'을 수상하는 등, 12경기에 등판하여 80⅔이닝 동안 7승 1패, 평균자책점 1.34의 좋은 성적을 거두며 전기 MVP를 획득했다. 6월 22일 고치 파이팅 독스와의 경기에서는 8회 2아웃까지 단 한 명의 주자도 내보내지 않았고, 1안타 무사사구의 내용으로 9이닝 무실점을 기록했다. 이 경기에서 시마부쿠 쇼고의 끝내기 홈런으로 승리 투수가 되면서 팀의 전기 리그 우승을 이끌었다.
후기 리그에서는 다소 컨디션이 떨어졌지만, 9월 '월간 MVP'를 수상했다. 시즌 전체 24경기에 등판하여 131⅓이닝을 던져 13승 4패, 평균자책점 1.64의 좋은 성적으로 최다승 타이틀을 획득했고, '연간 그라제니상'과 투수 부문 연간 베스트 나인도 수상했다. 독립 리그 시절 최고 구속은 148km/h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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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주니치 드래건스 시절
2013년 일본 프로 야구 드래프트에서 주니치 드래건스에 지명된 마타요시 가쓰키는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마타요시의 주니치 드래건스 시절 연도별 주요 기록은 다음과 같다.
| 연도 | 경기 | 승 | 패 | 홀드 | 세이브 | 평균자책점 | 탈삼진 |
|---|---|---|---|---|---|---|---|
| 2014 | 67 | 9 | 1 | 24 | 2 | 2.21 | 85 |
| 2015 | 63 | 6 | 6 | 30 | 0 | 3.36 | 57 |
| 2016 | 62 | 6 | 6 | 16 | 0 | 2.80 | 56 |
| 2017 | 50 | 8 | 3 | 21 | 0 | 2.13 | 82 |
| 2018 | 40 | 2 | 5 | 9 | 0 | 6.53 | 28 |
| 2019 | 26 | 3 | 3 | 3 | 0 | 4.06 | 37 |
| 2020 | 26 | 4 | 0 | 7 | 0 | 2.77 | 18 |
| 2021 | 66 | 3 | 2 | 33 | 8 | 1.28 | 52 |
* 2014년: 중앙 리그에서 구원 투수로 데뷔하여 홀드와 첫 승을 기록했다. 잦은 선수 등록 말소와 재등록을 반복하며, 시즌 막바지에는 셋업으로 기용되어 첫 세이브를 올렸다. 리그 2위인 67경기에 등판하여 뛰어난 성적을 거두었으나, 신인왕 투표에서는 오세라 다이치에게 밀렸다. 시즌 후 도미니카 공화국 윈터 리그에 참가했다.
* 2015-2016년: 셋업 투수로 활약했으나, 기복 있는 투구로 잦은 선수 등록 말소와 재등록을 반복했다. 2016년 시즌 후에는 모리 시게카즈 감독의 제안으로 선발 전환을 시도했다.
* 2017년: 스프링 캠프부터 선발 투수 훈련을 받았으나, 팀 사정으로 구원 투수로 시즌을 시작했다. 이후 선발과 구원을 오가며 활약했고, 일본 프로 야구 올스타전에 처음으로 선출되었다.
* 2018년: 히로시마 도요 카프를 상대로 통산 100홀드를 달성했다.
* 2020년: 왼쪽 옆구리 부상으로 두 달 만에 복귀했다.
* 2021년: 일본 프로 야구 올스타전에 두 번째로 선출되었고, 시즌 중 국내 FA 권을 행사했다.
3.2.1. 2014 시즌
2014년 3월 29일, 마타요시는 중앙 리그에서 히로시마 도요 카프를 상대로 구원 투수로 데뷔하여 홀드를 기록했다. 4월 17일에는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를 상대로 등판하여 첫 승을 기록했다.
4월 27일에 출전 선수 등록이 말소되었으나, 5월 7일에 재등록되었다. 5월 24일 다시 등록 말소되었다가, 6월 6일에 재등록되었다. 7월 5일 자이언츠전에서는 연장 10회말 동점 상황에서 등판, 볼넷-희생 번트-적시타로 끝내기 패배를 당하며 NPB 첫 패배를 기록했다.
8월 4일, 아사오 타쿠야가 7월 들어 6경기 연속 실점으로 부진하여 등록 말소되었다. 같은 달 9일에는 수호신 이와세 히토키마저 왼쪽 팔꿈치 통증으로 등록 말소되면서 후쿠타니 코지가 클로저로 보직을 변경했다. 이러한 팀 사정으로 마타요시는 셋업으로 기용되었고, 8월 17일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와의 경기에서 NPB 첫 세이브를 기록했다.
마타요시는 루키 시즌에 리그 2위인 67경기에 등판, 9승 1패 24홀드 2세이브, 평균자책점 2.21의 좋은 성적을 거두며 셋업으로 자리 잡았다.
같은 해 센트럴 리그 신인왕 경쟁은 마타요시와 오세라 다이치의 2파전으로 예상되었으나, 오세라 217표, 마타요시 25표로 큰 격차를 보였다. 시즌 후 마타요시는 도미니카 공화국 윈터 리그에 티그레스 델 리세이 소속으로 참가하여 17경기 0승 2패 4홀드, 평균자책점 1.69를 기록하고 12월 5일 귀국했다. 12월 20일에는 3,160만 엔 인상된 추정 연봉 40에 계약을 갱신했다.
3.2.2. 2015-2016 시즌
2015년 시즌, 마타요시는 개막 전에 일본 대표팀 강화 경기에 출전했고, 정규 시즌에는 셋업 투수로 1군에서 시즌을 시작했다. 그러나 한신 타이거스와의 개막전에서 1이닝 3실점으로 구원에 실패했고, 실점하는 경기 대부분이 여러 실점으로 기복이 심했다. 5월 15일 한신전에서도 2/3이닝 4안타 2실점으로 패전 투수가 되었다. 23경기에서 2승 2패 10홀드, 평균자책점 3.70을 기록한 후, 다음 날인 16일에 출전 선수 등록이 말소되었다. 5월 26일에 재등록된 이후에도 셋업을 맡았지만, 부진할 때 여러 실점은 계속되었고, 8월 13일 한신전에서도 가노 게이스케에게 결승 솔로 홈런을 허용하는 등 2/3이닝 4안타 1볼넷 3실점으로 패전 투수가 되었고, 다음 날인 14일에 등록 말소되었다. 8월 26일 재등록 후에는 시즌 종료까지 셋업을 맡았지만, 9월 10일 히로시마전에서는 1/3이닝 1안타 2볼넷 3실점으로 패전 투수가 되는 등, 끝까지 기복을 해소하지 못했다. 마타요시 본인도 "기복이 심한 시즌. 실력 부족을 절감했다"라고 말했고, 이 해에는 63경기에 등판하여 6승 6패 30홀드, 평균자책점 3.36의 성적을 남겼다. 오프에는 500 인상된 추정 연봉 4500에 사인했다.
2016년에도 마타요시는 셋업으로 1군에서 시즌을 시작했다. 5월 11일 DeNA전 종료 시점에서는 20경기에 등판하여 2승 6홀드, 평균자책점 3.63을 기록했지만, 그 후 7경기에서 4패를 기록했고, 5월 25일에 출전 선수 등록이 말소되었다. 6월 15일에 재등록되었지만, 같은 달 25일 자이언츠전에서는 결승 밀어내기 볼넷을 허용하고 1이닝 2안타 2볼넷 1실점으로 패전 투수가 되었다. 그 후 홀드 기회가 줄어들었고, 7월 14일에는 출전 선수 등록이 말소되었다. 8월 12일 재등록 이후에는 23경기에 등판하여 평균자책점 0.78로 회복하며 시즌 종료까지 1군에 동행했다. 이 해에는 62경기에 등판하여 6승 6패 16홀드, 평균자책점 2.80의 성적을 거두었지만, 감독 대행이었던 모리 시게카즈가 1군 감독으로 정식 취임하면서 마타요시의 선발 전환 계획을 밝혔고, 시즌 종료 후 참가한 피닉스 리그에서는 선발 투수로 등판했다. 11월 25일에는 500 인상된 추정 연봉 5000으로 계약을 갱신했다. 또한, 오프 시즌 중에 모리 감독은 "마타요시와 후쿠타니에 관해서는 선발도 시켜보겠습니다. 해보고 안 되면 원래대로 되돌릴 수도 있습니다"라고 말하며 다음 봄 캠프에서는 선발 조정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3.2.3. 2017 시즌
2017년, 마타요시는 스프링 캠프부터 선발 투수로서 조정을 진행했지만, 투수진의 불확실한 요소가 많은 팀 사정으로 인해 시범 경기에서는 유동적인 기용을 보였다. 최종적으로 4년 연속 개막을 구원 투수로 맞이했다. 주로 롱 릴리프로 3경기에 등판하여 총 8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았고, 4월 13일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전에서 NPB 첫 선발 투수로 등판하여 8이닝 2실점으로 호투했지만 승패는 기록되지 않았다. 4월 27일 야쿠르트전에서는 7이닝 5안타 무사사구 3탈삼진 무실점의 호투로 NPB 선발 첫 승리를 거두었다.
그 후 선발 로테이션을 돌며 6월 6일 지바 롯데 마린스전에서는 9이닝 4안타 4볼넷 8탈삼진 무실점으로 NPB 첫 완투·완봉승을 거두었다. 교류전 종료까지 9경기 선발 등판하여 7번의 QS를 기록했고, 3승 무패, 평균자책점 2.63을 기록했지만, 리그전 재개 후에는 구원으로 전환했다.
7월 3일에는 감독 추천으로 올스타에 처음으로 선출되었고, 올스타전 제1경기에 4번째 투수로 등판했다. 후반전에도 셋업 역할을 다했고, 이 해에는 50경기(9선발) 등판하여 8승 3패 21홀드, 110이닝을 던져 평균자책점 2.13으로 맹활약을 보였다.
3.2.4. 2018-2020 시즌
2018년 8월 9일, 히로시마 도요 카프를 상대로 통산 100홀드를 달성했다. 그 해 시즌에는 40경기에 등판하여 2승 5패, 평균자책점 6.53, 9홀드, 41.1이닝 동안 28탈삼진을 기록했다.
2019 시즌에는 26경기에 등판하여 3승 3패, 평균자책점 4.06, 3홀드, 44.1이닝 동안 37탈삼진을 기록했다.
2020년 6월 27일, 왼쪽 옆구리 부상으로 진단을 받고 치료를 받았다. 재활 후 2개월 만인 9월 1일에 마운드로 복귀했다. 그 해 시즌에는 26경기에 등판하여 4승, 평균자책점 2.77, 7홀드, 26이닝 동안 18탈삼진을 기록했다.
3.2.5. 2021 시즌
2021년 7월 16일, 마타요시는 마이 네비 올스타 게임 2021에 감독 추천으로 4년 만에 두 번째로 선출되었다. 그 해 마타요시는 팀 최다인 66경기에 등판하여 3승 2패, 33홀드, 8세이브, 평균자책점 1.28을 기록하며 부활했다. 시즌 중 국내 FA 권을 취득했고, 11월 29일에 행사했다.
3.3.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시절
2021년 12월 14일,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는 마타요시와 4년 계약을 체결했다고 발표했다. 그의 연봉은 인센티브를 포함하여 4년간 총 650으로 추산되었다.
3.3.1. 2022 시즌
2022년 3월 26일, 마타요시는 소프트뱅크 호크스 투수로서 첫 선발 등판을 했다. 4월 26일,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를 상대로 NPB 역사상 150홀드를 달성한 9번째 선수가 되었다. 이후 셋업맨으로 팀에 기여했으나, 8월 9일 오른쪽 다리 골절 진단을 받아 시즌 잔여 기간을 재활에 매달렸다. 2022 시즌 정규 시즌 기록은 31경기 등판, 3승 3패, 평균자책점 2.10, 14홀드, 1세이브, 30이닝 동안 22탈삼진이다.
3.3.2. 2023 시즌
2023 시즌에는 정규 시즌에서 32경기 등판, 2승 2패, 평균자책점 2.25, 10홀드, 28이닝 동안 15탈삼진을 기록했다.
4. 국가대표 경력
2015년 2월 16일, 일본 야구 국가대표팀 소속으로 GLOBAL BASEBALL MATCH 2015에 출전했다. 같은 해 3월 10일과 11일에 도쿄 돔에서 개최된 일본 대표 강화 경기 'GLOBAL BASEBALL MATCH 2015 사무라이 재팬 대 유럽 대표' 출전 멤버로 발탁되어, 일본 대표팀에 처음으로 이름을 올렸다. 이 경기 1차전에서 4번째 투수로 등판, 1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으며 승리 투수가 되었다.
같은 해 7월 16일, 제1회 프리미어 12 일본 대표 1차 후보 선수로 선출되었으나, 최종 28인 명단에는 포함되지 못했다.
2017년 10월 12일에는 2017년 아시아 프로야구 챔피언십 일본 야구 국가대표팀에 선발되었다.
5. 선수로서의 특징
(빈 텍스트)
6. 인물 및 에피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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