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카모토 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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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오카모토 신야는 일본의 前 프로 야구 선수로, 투수였다. 아마추어 시절 여러 팀을 거쳐 2000년 드래프트에서 주니치 드래건스에 지명되어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주니치, 세이부 라이온스, LG 트윈스, 라쿠텐 골든이글스에서 활동했으며, 2004년 최우수 중간 계투 투수상을 수상했다. 은퇴 후에는 음식점을 운영하며 야구 해설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오카모토 신야
기본 정보

이미지 준비중입니다.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 시절 (2009년 8월 24일, 세이부 제2구장)
선수 이름오카모토 신야
본명岡本 真也 (오카모토 신야)
로마자 표기Shinya Okamoto
가나 표기おかもと しんや
한자 표기岡本 真或
출생지교토부 다케노군 아미노정
생년월일1974년 10월 21일
신장183cm
체중93kg
포지션투수
던지는 손
타석
프로 입단 년도2000년
드래프트 순위4순위
첫 출장 (NPB)2001년 10월 2일
첫 출장 (KBO)2010년 3월 27일
마지막 출장 (NPB)2009년 6월 27일
마지막 출장 (KBO)2010년 9월 26일
경력
아마추어교토부립 미네야마 고등학교
사토 공무점
아베 기업
야오한 재팬/암웨이 레드삭스
야마하
프로주니치 드래건스(2001-2007)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2008-2009)
LG 트윈스(2010)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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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선수 경력

오카모토 신야는 사회인 야구팀을 거쳐 일본 프로 야구(NPB)와 KBO 리그에서 활동한 투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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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니치 드래건스 시절에는 주로 중간 계투로 활약하며 최우수 중간 계투 타이틀을 획득하기도 했다.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로 이적 후 리그 우승과 일본 시리즈 우승, 아시아 시리즈 제패에 기여하였다.

2010년에는 LG 트윈스에서 뛰며 KBO 리그 최초의 일본인 선수로 기록되었고, 마무리 투수로 16세이브를 올렸다.

2011년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에 입단했으나 1군 등판 기회 없이 2군에서만 활동하다 방출되어 현역에서 은퇴했다.

2.1. 아마추어 시절

노무라 가쓰야가 졸업한 교토 부립 미네야마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인 야구팀 사토 공무점에 입사했다. 그러나 팀 해체로 사회인 시절 5개 팀을 전전하다 야마하에 입단하여 활약했다. 이후 프로 야구 드래프트에서 주니치 드래건스로부터 4위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

교토부립 미네야마 고등학교 시절 다나카 토시아키와 동기였다. 3학년 여름에 오카모토는 1번 타자를 맡았지만, 이후 관서 지역 대학과 강호 사회인 야구팀 선발에서 탈락했다. 졸업 후 신생팀인 도쿄의 사회인 야구팀 사토 건설에 입사했지만, 주 5일은 건설 현장에서 일해야 하는 등 환경이 열악했다. 3년 차에 회사가 도산하여 팀 해산이 결정되었고, 마지막 가을 도쿄도 지부 대회에서 사기미야 제작소를 상대로 호투했다. 이 모습을 본 오카지마 히로하루의 권유로, 같은 고향 출신인 오카지마가 감독으로 취임한 아베 기업으로 이적했다. 하지만 오모데 테츠시와 함께 출전 기회를 얻지 못하고 직소하여 야오한 재팬으로 이적했다. 야오한 재팬에서는 도시 대항 야구에서 선발 등판했지만, 이듬해 팀이 휴부되었다. 이후 같은 현의 강호 야마하에서 영입 제안을 받았지만, 팀 동료들과 함께 활동을 계속하기 위해 클럽팀으로 재출발한 후계 팀 암웨이 레드삭스에서 1년간 활동했다. 그러나 결국 팀이 휴부되었고, 다시 협상 끝에 야마하로 이적하여 도시 대항 야구에서 1회전 선발 등판하는 등 8강 진출에 기여했다. 2000년도 드래프트 회의에서 주니치 드래건스에 4순위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

2.2. 프로 선수 시절

오카모토 신야는 2001년 주니치 드래건스에 입단하여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초기에는 주로 중간 계투로 등판했고, 2003년부터 선발 투수로도 활약하며 4승 6패, 평균자책점 3.34를 기록했다. 2004년부터 구원 투수로 전념하여 최우수 중간 계투 타이틀을 획득하고 올스타 게임에 처음으로 출전했다. 이와세 히토키와 함께 주니치 중간 계투진의 핵심 선수였다.

2008년 FA로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로 이적하여 리그 우승, 일본 시리즈 우승, 아시아 시리즈 제패에 기여했다.

2010년 LG 트윈스에 입단하여 KBO 리그 최초의 일본인 선수가 되었다. 마무리 투수로 16세이브를 올렸지만, 시즌 후 팀을 떠났다.

2011년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에 입단했으나 1군 등판 기회 없이 2군에서만 활동하다 방출되어 현역에서 은퇴했다.

2.2.1. 주니치 드래건스 시대

2001년 3경기에 등판하여 실점은 없었다.

2002년에는 7경기에 등판했지만 부진했다.

2003년 6월 8일 히로시마 도요 카프전에서 프로 데뷔 첫 선발 등판하여 6이닝 무실점으로 승리 투수가 되면서 프로 데뷔 첫 승을 거두었다. 9월 16일 요미우리 자이언츠전에서 선발 등판하여 3승째를 거두었다. 이 경기에서 팀은 19점을 뽑아 대승을 거두었다. 이 해에는 중간 계투뿐 아니라 선발로도 12경기에 등판하여 40경기에서 4승 6패, 평균자책점 3.34를 기록했다. 투구 이닝은 97이닝이었지만, 다음 해부터는 구원 투수 전문이 되었기 때문에 이것이 프로에서의 시즌 최다 투구 이닝이다.

2004년부터 완전히 구원 투수에 전념했다. 중간 계투 우완으로서 자기 최고 기록인 63경기에 등판하여 평균자책점 2.03, 9승 4패를 기록하고 올스타 게임에 첫 출전했다. 또한 최우수 중간 계투 타이틀을 획득했다. 이 해부터 마무리 투수를 맡은 이와세 히토키와 함께 주니치 중간 계투진의 에이스로 자리잡았다. 세이부 라이온스와의 2004년 일본 시리즈에서는 5경기(1차전, 2차전, 3차전, 6차전, 7차전)에 등판했다. 3차전에서는 6회부터 등판하여 이 회에는 무실점으로 막았지만, 7회에 2점 리드를 따라잡히자 2사 만루 상황에서 알렉스 카브레라에게 역전 만루 홈런을 맞고 패전 투수가 되었다. 팀은 50년 만의 일본 시리즈 우승을 놓쳤다.

2005년 전반기에만 구원 투수로 10승을 기록했다. 허리 통증으로 후반기에 이탈했지만, 57경기에 등판하여 평균자책점 3.14를 기록했다.

2006년 중간 계투로 활약했지만, 투구폼 변경에 어려움을 겪어 안정적인 투구를 이어가지 못하고, 계투 실패가 잦았다. 세·파 교류전에서는 활약했지만, 같은 리그와의 대결에서는 평균자책점이 4점대였다.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와의 2006년 일본 시리즈 2차전에서 1점 뒤진 8회에 페르난도 세기놀에게 2점 홈런을 맞았다. 결국 이 한 경기에만 등판하고 일본 시리즈 우승을 놓쳤다.

2007년 전반기에는 평균자책점 0점대의 뛰어난 피칭을 보였다. 후반기에는 부진한 경기도 있었지만, 시즌 전체적으로는 안정적인 투구를 선보였다. 선발진이 부진했던 팀을 지탱하며 승리 공식의 한 축을 담당했다. 3년 만에 60경기 이상 등판하여 평균자책점 2점대, 리그 3위이자 개인 최다인 38홀드를 기록했다. 리그 2위에서 2007년 센트럴 리그 클라이맥스 시리즈 우승, 일본 시리즈 우승, 아시아 시리즈 우승에 공헌했다. 클라이맥스 시리즈 및 닛폰햄과의 2007년 일본 시리즈에서는 총 5경기에 등판하여 모두 무실점으로 막았다. 아시아 시리즈에서는 SK 와이번스와의 결승전 8회말에 동점 홈런을 맞았지만, 9회초에 이바타 히로카즈가 결승타를 쳐 팀은 일본 팀으로서 3년 연속 아시아 제패를 달성했다. 이 경기가 오카모토의 주니치에서의 마지막 등판이 되었다.

2.2.2.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 시대

2008년 FA 자격을 얻어 주니치로 이적한 와다 가즈히로의 보상 선수로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로 이적했다. 와타나베 히사노부 감독은 "더 바랄 나위 없는 선수를 획득할 수 있었다"라고 높게 평가했고, 오카모토 자신도 "자신에게 있어서 플러스가 되었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등번호는 주니치 시절과 같은 12번으로 결정되었다. 이적 직후, 세이부의 약점이었던 중간 계투를 강화하며 5월 중순까지 평균자책점 1점대의 활약을 펼쳐 베이징 올림픽 야구 일본 대표팀 1차 후보로 선출되었다. 그러나 시즌 후반 라쿠텐야마사키 다케시, 오릭스의 알렉스 카브레라에게 홈런을 허용하는 등 부진하여 2군으로 강등되기도 했다. 하지만 다시 1군으로 복귀하여 컨디션을 회복했고, 6년 연속 40경기 등판과 팀 내 2위인 18홀드를 기록하며 세이부의 리그 우승, 일본 시리즈 우승, 아시아 시리즈 제패에 공헌했다. 이로써 오카모토는 양대 리그에서 일본 시리즈 우승과 아시아 시리즈 제패를 경험한 첫 번째 선수가 되었다.

2009년 2월 4일, 등록명을 발음은 같지만 표기가 다른 岡本慎也일본어로 변경했다. 그러나 시즌 내내 부진하여 6월 27일 2군으로 강등되었고, 이후 1군으로 복귀하지 못한 채 10월 2일 방출 통보를 받았다.

2.2.3. LG 트윈스 시대

2009년 11월 LG 트윈스의 입단 테스트를 받고, 2010년 1월에 정식으로 계약을 맺어 KBO 리그 최초의 일본인 선수가 되었다. 등번호는 56번으로 결정되었고, 등록명은 오카모토 마오루였다. 우규민경찰 야구단에 입대하여 마무리 투수 자리에 공백이 생기자 마무리 투수로 기용되었다. 2010년 3월 27일, 대구에서 열린 삼성 라이온즈와의 개막 경기에 등판하여 세이브를 기록했고, 4월 3일 넥센 히어로즈전에서 한국 첫 승리를 기록했다. 7월까지는 마무리 투수로 기용되어 16세이브를 올렸지만, 여름부터 등판 기회가 줄어들었고 결국 그 해를 끝으로 팀을 떠났다. 10월 29일 LG와의 재계약이 결렬되었다.

2.2.4.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시대

2011년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에서 1군 등판 기회는 한 번도 없었으나, 2군에서 24경기에 등판해 24을 던져 1승 1패, 평균자책점 4.01을 기록했고 10월 9일에 방출 통보를 받았다.

11월 19일, 주니치 시절 스승인 호시노 센이치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감독 취임을 계기로 라쿠텐 입단 테스트를 받아 합격했다. 등번호는 61번으로 결정되었다. KBO 리그에서 NPB로 복귀한 최초의 일본인 선수였다. 그러나 아오야마 코지, 주니치 시절 후배였던 코야마 신이치로 등 몇 년 전부터 활약하던 구원 투수진에 끼어들지 못하고 1군 등판 없이 시즌을 마쳤다. 2군에서는 24경기에 등판했지만 평균자책점 4.01로 부진했고, 10월 9일 두 번째 방출 통보를 받았다. 12월 2일 자유 계약 선수로 공시되었다. 이후 현역에서 은퇴하였다.

3. 은퇴 이후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에서 현역 은퇴 후 2012년 7월 센다이시 아오바구 고쿠분초에서 곱창 전골과 우동 음식점 '우동·곱창전골 야 진'을 개업했다. 손님의 60~80%가 야구 팬이라고 하며, 시간이 날 때 프로야구 중계 해설을 하는 등 손님을 즐겁게 하고 있다고 한다. 2022년부터는 도호쿠 방송(TBC 라디오)의 야구 해설자로도 활동하고 있다.

4. 선수로서의 특징

내려찍는 슬라이더가 최대 무기였다. 현역 시절에는 주로 셋업맨으로 활약했다.

팀에서는 자신의 경험을 후배들에게 아낌없이 전수하는 좋은 형님과 같은 존재였다.

5. 수상 및 타이틀 경력

* 최우수 중간 계투 투수상 : 1회(2004년)

6. 개인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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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분내용
첫 등판2001년 10월 2일, 대 요코하마 베이스타스 26차전(나고야 돔)
첫 탈삼진상동, 9회 초 미우라 다이스케에게서 헛스윙 삼진
첫 승리2003년 6월 8일, 대 히로시마 도요 카프 14차전(나고야 돔), 6이닝 무실점
첫 홀드2005년 4월 5일, 대 야쿠르트 스왈로스 1차전(메이지 진구 구장), 6회말 무사 2번째 투수로 구원 등판, 2이닝 무실점
첫 세이브2005년 5월 18일, 대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 2차전(삿포로 돔), 8회말 5번째 투수로 구원 등판·완료, 2이닝 1실점
올스타전 출전1회 (2004년)

7.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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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등번호
2001년 ~ 2009년12
2010년56
2011년61

8. 등록명

* 岡本 真也일본어 (2001년 ~ 2008년)
* 岡本 慎也일본어 (2009년)
* 岡本 真或일본어 (2010년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