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야마 다쓰오
1. 개요
무라야마 다쓰오는 일본의 정치인으로, 1915년에 태어나 2010년에 사망했다. 그는 대장성 관료 출신으로 세금 전문가였으며, 자유민주당 소속으로 활동하며 두 차례 재무대신을 역임했다. 1979년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당선되었으며, 자유민주당 세제 조사회 의장과 재정 확대 조사 위원회를 이끌었다. 그는 소비세 창설에 관여했으며, 재정 규율을 중시하는 인물로 평가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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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 | 무라야마 다쓰오 |
|---|---|
| 본명 | 村山 達雄 (むらやま たつお) |
| 출생일 | 1915년 2월 8일 |
| 출생지 | 일본 니가타현 나가오카시 |
| 사망일 | 2010년 5월 20일 |
| 사망지 | 일본 도쿄도 |
| 학력 | 도쿄 제국대학 법학부 (현재의 도쿄 대학) 졸업 |
| 전직 | 대장성 관료 |
| 소속 정당 | 자유민주당 |
| 칭호/훈장 | 정3위 |
| 칭호/훈장 | 훈1등 욱일대수장 |
| 세습 여부 | 없음 |
| 직책 | 제82·91-92대 대장대신 |
|---|---|
| 내각 | 후쿠다 다케오 개조내각 다케시타 내각 다케시타 개조내각 우노 내각 |
| 임기 시작 | 1977년 11월 28일 |
| 임기 종료 | 1978년 12월 7일 |
| 임기 시작 | 1988년 12월 24일 - 1989년 8월 10일 |
| 직책 | 제60대 후생대신 |
| 내각 | 스즈키 젠코 내각 |
| 임기 시작 | 1981년 5월 18일 |
| 임기 종료 | 1981년 11월 30일 |
| 직책 | 중의원 의원 |
| 선거구 | 구 니가타 3구 비례 호쿠리쿠 신에쓰 블록 |
| 당선 횟수 | 12회 |
| 임기 시작 | 1963년 11월 22일 |
| 임기 종료 | 2000년 6월 2일 |
| 기타 직책 | 자유민주당 세제조사회 회장 (제19·26대) |
| 기타 직책 상세 | 총재: 나카소네 야스히로 (1982년 12월 - 1983년 12월) 총재: 미야자와 기이치, 고노 요헤이, 하시모토 류타로 (1993년 4월 - 1996년 11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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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대학 동문 -
미시마 유키오
미시마 유키오는 1925년 도쿄에서 태어나 소설, 희곡, 평론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며 일본의 전통과 현대 사이의 갈등을 작품에 담아낸 20세기 일본 문학의 중요한 인물이며, 1970년 자위대에서 쿠데타를 시도하다 실패하고 할복 자살했다. -
도쿄 대학 동문 -
김상협
김상협은 삼양그룹 창업주의 아들이자 독립운동가의 조카로, 도쿄대 졸업 후 고려대 교수와 총장, 문교부 장관, 국무총리, 대한적십자사 총재 등을 역임한 정치인이자 교육자이며, 친일 행적 논란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가 요구된다. -
자유민주당 (일본)의 정치인 -
사토 에이사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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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민주당 (일본)의 정치인 -
이케다 하야토
이케다 하야토는 일본의 대장성 관료이자 정치인으로, 총리대신 재임 시절 '소득 배증 계획'을 추진하여 일본의 고도 경제 성장을 이끌었으며, 미일 관계 강화와 한일 국교 정상화 협상 등 외교 분야에서도 활동했다. -
훈1등 욱일대수장 수훈자 -
혼마 마사하루
혼마 마사하루는 일본 제국 육군 군인으로, 필리핀 공략전을 지휘했으나 바탄 죽음의 행진에 대한 책임으로 전범으로 처형되었고, 그의 재판은 지휘자 책임 적용 및 맥아더의 복수심 작용 등의 논란이 있다. -
훈1등 욱일대수장 수훈자 -
도고 시게노리
도고 시게노리는 조선인 도공 후손으로 도쿄 제국대학 졸업 후 외무성에 들어가 만주, 스위스, 독일, 소련 등지에서 외교관으로 활동하며 소일 중립 조약 체결에 기여했으나, 제2차 세계 대전 중 외무대신으로서 미일 관계 개선을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여 전범으로 징역 20년을 선고받았으며, 종전 과정에서 포츠담 선언 수용을 주장하여 일본 항복에 기여한 외교관이자 정치인이다.
2. 생애
무라야마 다쓰오는 1915년에 태어났다. 그는 세금 전문가로 세금 개정 법안 개발에 참여했으며, 대장성에서 관료로 일하며 세무국장을 지냈다.
이후 자유민주당에 입당하여 두 번 재무대신을 역임했다. 1977년 11월 28일 보 히데오의 뒤를 이어 재무대신이 되었으며, 1978년 12월 8일 가네코 잇페이에게 자리를 물려주었다. 1979년 총선에서는 니가타현 제2구에서 당선되었다. 그는 자유민주당 세제 조사회 의장을 역임했으며, 당의 재정 확대 조사 위원회를 이끌었는데, 이 위원회는 이후 무라야마 위원회라고 불렸다. 그는 자유민주당 내에서 스즈키 파벌과 미야자와 파벌에 속했다.
1981년 소노다 나오의 후임으로 후생대신에 취임했다.
다케시타 노보루 내각에서 1988년 12월 27일부터 1989년 8월 9일까지 두 번째 재무대신 임기를 맡았다. 리크루트 사건 연루 의혹으로 미야자와 기이치가 사임하자, 다케시타 노보루가 재무대신 대행을 맡았고, 이후 무라야마가 그 자리를 이어받았다. 1989년 성립된 우노 내각에서도 유임되었다. 1989년 8월 9일, 하시모토 류타로가 무라야마의 뒤를 이어 재무대신이 되었다.
1993년 총선에서 중의원에 당선되어 니가타현 제3구에서 의석을 얻었다. 1996년 제41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는 비례 대표 북륙 신에쓰 블록에서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000년 6월 25일 총선거에서 자유민주당의 비례대표 명단에 포함되지 않아 정계에서 은퇴했다.
무라야마는 2010년 5월 20일 95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2.1. 어린 시절 및 학창 시절
무라야마 다쓰오는 1915년 니가타현 나가오카시 사카노우에 정에서 주식 중개인이었던 고타로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나가오카 시립 오모테마치 심상소학교와 나가오카 중학교를 졸업했다. 나가오카 중학교 2학년 때 어머니가 사망하여 누나 시즈코의 보살핌을 받았다. 당시 구제 중학교는 5년제였지만, 4학년부터 구제 고등학교 시험을 볼 수 있었다. 담임 교사의 권유로 제1고등학교에 응시하여 합격했다.
1937년(쇼와 12년) 도쿄 제국 대학 법학부를 졸업했다.
2.2. 대장성 관료 시절
무라야마는 세금 전문가로, 세금 개정 법안 개발에 참여했다. 대장성에 입성하여 이재국 소속으로, 1938년 고베 세무서장을 역임했다. 전시 중에는 육군 사정관으로 전출되었다.
1947년 8월 오사카 재무국 직세 부장, 1949년 6월 국세청 직세부 소득세 과장, 1953년 7월 국세청 직세부장 대리, 1954년 10월 1일 국세청 직세부장, 1956년 11월 나고야 국세국장, 1957년 6월 오사카 국세국장, 1959년 5월 4일 대신관방 재무 조사관(주세국 담당), 1960년 4월 12일 주세국장을 역임했다. 이케다 하야토 전 총리대신은 무라야마를 "주세국장은 무라야마 전에 무라야마가 없고, 무라야마 후에 무라야마가 없다"라고 평가했다.
2.3. 정치 활동
무라야마 다쓰오는 세금 전문가로 세금 개정 법안 개발을 도왔다. 재무성 관료 출신으로 세무국장을 지냈다.
이후 자유민주당에 입당하여 두 번 재무대신을 역임했다. 1977년 11월 28일, 무라야마는 보 히데오의 뒤를 이어 재무대신이 되었다. 1978년 12월 8일, 가네코 잇페이가 무라야마의 후임으로 임명되었다. 1979년 총선에서 그는 니가타현 제2구에서 당선되었다. 그는 자유민주당 세제 조사회 의장을 역임했다. 또한 당의 재정 확대 조사 위원회를 이끌었으며, 이 위원회는 이후 무라야마 위원회라고 불렸다. 그는 자유민주당 내에서 스즈키 파벌과 미야자와 파벌에 속했다.
1963년 대장성을 퇴관하고, 제30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 입후보하여 당선되었으며, 이후 당선 횟수는 12회였다. 자민당에서는 이케다 하야토를 영수로 하는 굉지회에 소속되었다. 1968년 운수 정무 차관, 1971년 법무 정무 차관을 역임했다.
1981년 이토 마사요시 외무 대신이 사임하자, 이토의 후임 외무 대신으로 후생 대신 소노다 나오가 자리를 옮겨 취임했고, 무라야마는 소노다의 후임 후생 대신에 취임했다.
무라야마의 두 번째 재무대신 임기는 1988년 12월 27일부터 1989년 8월 9일까지 다케시타 노보루 내각에서였다. 그는 1988년 12월 9일 리크루트 사건 연루 의혹으로 미야자와 기이치가 사임한 이후 재무대신 대행을 맡았던 다케시타 노보루를 대신했다. 1989년 성립된 우노 내각에서도 유임되어, 소비세 정착, 헤이세이 원년도 예산 심의 등에 진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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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8월 9일, 하시모토 류타로가 무라야마를 재무대신으로 교체했다.
1993년 총선에서 무라야마는 중의원에 당선되어 니가타현 제3구에서 의석을 얻었다. 1996년의 제41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는 비례 대표 북륙 신에쓰 블록에서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그는 2000년 6월 25일 총선거에서 자유민주당의 비례대표 명단에 포함되지 않았고, 정계에서 은퇴했다.
3. 정책 및 평가
무라야마 다쓰오는 일본 대장성 관료 출신 세제 및 재정 전문가였다. 자유민주당 세제 조사회를 이끌었으며, 소비세 창설에 관여했다. 다케시타 노보루 총리 사임 후 후계 총리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으나, 소비세 도입 담당 대신이었던 점 때문에 우노 소스케 외무대신이 후임으로 지명되었다.
국철의 재정난을 이유로 지역 나가오카역 개축 요청을 거절한 일화에서 볼 수 있듯이, 이익 유도보다는 재정 규율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러한 성향 때문에 선거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지만, 지지자들의 결속은 굳건하여 후쿠다 내각의 대장대신 취임 시 후원회 주최 축하 모임이 약 1개월 동안 이어졌다고 한다.
애연가이자 애주가로도 알려져 있었으며, 무라야마 도미이치가 내각총리대신에 취임했을 때, 같은 "무라야마" 성씨 때문에 이탈리아 신문에 사진이 잘못 게재된 적이 있다.
3.1. 세제 전문가
무라야마 다쓰오는 세금 전문가였으며 세금 개정 법안 개발을 도왔다. 재무성 관료 출신으로 세무국 국장을 지냈다.
이후 자유민주당에 입당하여 두 번 재무대신을 역임했다. 1979년 총선에서 니가타현 제2구에서 당선되었으며, 자유민주당의 세제 조사회의 의장을 역임했다. 또한 당의 재정 확대 조사 위원회를 이끌었으며, 이후 무라야마 위원회라고 불렸다.
1993년 총선에서 중의원에 당선되어 니가타현 제3구에서 의석을 얻었다. 2000년 6월 25일 총선거에서 자유민주당의 비례대표 명단에 포함되지 않았고, 정계에서 은퇴했다.
대장성 관료 출신으로 세제·재정 전문가로서 자민당 세제 조사회를 이끌었으며, 소비세 창설에 관여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3.2. 재정 규율 중시
무라야마는 대장성 관료 출신으로 세제 및 재정 전문가였다. 자민당 세제 조사회를 이끌었으며, 소비세 창설에 관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철의 재정난을 이유로 지역 나가오카역 개축 요청을 거절한 일화에서 볼 수 있듯이, 이익 유도보다는 재정 규율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러한 성향 때문인지 선거에서는 고전을 면치 못했지만, 지지자들의 결속은 굳건하여 후쿠다 내각의 대장대신으로 취임했을 때 후원회 주최의 축하 모임이 약 1개월 동안 이어졌다고 한다.
3.3. 평가
무라야마 다쓰오는 대장성 관료 출신으로, 세제 및 재정 전문가로서 자유민주당 세제 조사회를 이끌었으며, 소비세 창설에 관여했다. 다케시타 노보루 총리가 사임한 후 후계 총리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으나, 소비세 도입 담당 대신이었던 점 때문에 우노 소스케 외무대신이 후임으로 지명되었다.
운수 정무 차관 시절, 나가오카역 개축 진정을 받았을 때 "국철의 재정난"을 이유로 거절했다는 일화가 있다. 이처럼 이익 유도보다는 재정 규율을 중시하여 선거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지만, 지지자들의 결속은 굳건하여 후쿠다 내각의 대장대신 취임 시 후원회 주최의 축하회가 약 1개월 동안 이어졌다고 한다.
애연가이자 애주가로도 알려져 있었다. 무라야마 도미이치가 내각총리대신에 취임했을 때, 같은 "무라야마" 성씨 때문에 이탈리아 신문에 사진이 잘못 게재된 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