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츠야 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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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츠야 사이다는 효고현 가와니시시에서 시작된 탄산 음료로, 1884년 미쓰비시 재벌이 탄산수를 판매하면서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히라노수'로 판매되었고, 이후 '미쓰야 히라노수'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1907년 제국광천 주식회사가 설립되어 '미쓰야 표 히라노 샴페인 사이다'를 발매했으며, 1921년 '미쓰야 샴페인 사이다'로 개칭되었다. 태평양 전쟁 중 제조가 중단되었다가 재개되었고, 1968년 프랑스 샴페인 기업의 항의로 '미츠야 사이다'로 개명되었다. 1987년 아사히 수퍼 드라이의 성공 이전까지 아사히 맥주의 경영을 지탱했다. 2004년 천연 향료와 천연수를 사용하여 판매량이 증가했으며, 2009년에는 '미츠야 사이다 올 제로'를 출시했다. 현재 다양한 종류의 제품을 판매하고 있으며, 2017년에는 국제 식미 심사 기구에서 우수 미각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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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와니시시의 역사 - 가와베군
가와베군은 효고현에 존재했던 폐지된 군으로, 고대부터 메이지 시대 초기까지 복잡한 행정 구역 개편을 거쳐 발족했으나 다이쇼 시대에 군청이 폐지되어 현재는 여러 시정촌으로 나뉘어 있다. - 가와니시시의 역사 - 아마가사키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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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역사
(가와니시시 평야 2002년 10월 촬영)
2019년 3월 28일, 원천지실과 함께 가와니시시의 문화 유산 제1호가 됨[5]||200px]]
미츠야 사이다는 효고현 가와베군 다다촌 글자 평야 (현재 가와니시시 평야)에서 평야 광천이 발견된 것에서 시작되었다. 에도 시대 말기에는 쇠퇴했지만, 메이지 시대에 영국인 이학자 윌리엄 고랜드에 의해 1881년 평야 광천이 재발견되어 탄산수 어료품 공장이 건설되었다.[4]
1884년 미쓰비시 재벌이 궁내청으로부터 다다 은광을 불하받아 "히라노수"라는 이름으로 탄산수를 판매했다. 1885년에는 메이지야가 채취권을 얻어 "잇폰야 광천"으로 개명했고, 1889년에는 "미쓰야 히라노수"라는 이름으로 판매되었다. 나쓰메 소세키와 다이쇼 천황도 히라노수를 애음했다.[5]
1907년 제국광천 주식회사가 설립되어 히라노수에 설탕을 졸인 카라멜과 영국에서 수입한 사이다 향료를 첨가한 "미쓰야 표 히라노 샴페인 사이다"를 발매했고, 1921년에 "미쓰야 샴페인 사이다"로 개칭되었다.[4]
1921년 일본맥주광천 주식회사가 설립되었고,[6] 1933년 대일본맥주 주식회사와 합병되었지만, '미쓰야 샴페인 사이다'는 계속 제조, 판매되었다. 태평양 전쟁 중에도 제조는 계속되었으나, 종전 후 1946년 7월까지 제조가 중단된 적이 있었다. 제조 재개 후에는 설탕 배급 문제로 인공 감미료 둘신을 사용했으나, 안전성 문제로 사용을 중지했다. 1951년 설탕 배급 종료 후에는 설탕을 사용한 '전당 미쓰야 샴페인 사이다'를 발매했다.[7] 1968년에는 프랑스 샴페인 기업의 항의로 '미쓰야 사이다'로 개명했다.[4]
1949년 GHQ의 지시로 대일본맥주는 아사히 맥주 주식회사와 일본맥주 주식회사로 분할되었고, 미츠야 사이다는 아사히 맥주가 계승했다. 1987년 아사히 수퍼 드라이가 히트하기 전까지 약 30년간 아사히 맥주의 경영을 지탱한 것은 미츠야 사이다의 이익이었다.[8]
1967년 "미츠야 레모라"(2대), 1970년 200ml들이 병, 1971년 캔 제품을 출시하고, 1973년에는 미츠야 후르츠 소다를 출시했다. 1972년부터는 프린트 병으로 변경되었다.
1961년 인공 감미료를 치클로로 바꿨으나, 1969년 치클로의 안전성 문제로 "전당 미쓰야 사이다"로 일원화하고 합성 착색료 사용도 중단했다.[7]
1980년 도라에몽과의 제휴를 시작으로, 1982년 『닥터 슬럼프 아라레짱』, 『닌자 핫토리군』, 1984년 『파만』(제2작)과 제휴를 이어갔다.
1984년 출시 100주년을 맞아 캔과 페트병 표기가 변경되었다. 1995년까지는 "Asahi" 로고가 측면에 표시되었지만, 1996년 아사히 음료 발족을 계기로 변경되었다.
1988년 제조 부문이 분사하여 아사히 맥주 음료 제조 주식회사가 되었고, 1996년 아사히 음료 주식회사가 되었다.
2004년 향료를 천연 원료로, 물을 천연수 100%로 바꾸어 판매량이 증가했다. 기린 레몬과 함께 강탄산을 유지하고 있다.
2009년 "미츠야 사이다 올 제로"를 출시했다. 2015년 『미쓰야 사이다 제로』, 2016년 『미쓰야 사이다 제로 스트롱』으로 개명했다.
2005년 히라노 공장이 폐쇄되었다.[10] 2016년 일부 제품에 식물 유래 원료를 사용한 올 바이오 페트병 채용을 시작했다.[11]
2017년 국제 식미 심사 기구(iTQi) 우수 미각상을 수상했다.[12][13]
2018년 다이도 드링크 자동 판매기로 공급을 시작했다.[14]
2019년 플라스틱 자원 순환 및 해양 플라스틱 문제 대책으로 "용기 포장 2030"을 수립했다.[15]
'''연혁'''
2. 1. 일본에서의 기원과 발전
효고현 가와베군 다다촌 글자 평야(현재의 가와니시시 평야)에서 평야 광천이 발견된 것이 미쓰야 사이다의 시작이다. 1881년, 영국인 이학자 윌리엄 고랜드가 궁내성의 명을 받아 이 광천을 재발견하고 탄산수 어료품 공장을 건설하였다.[4]1884년에는 미쓰비시 재벌이 궁내청으로부터 다다 은광을 불하받아 "히라노수"라는 이름으로 탄산수를 판매했다. 1885년에는 메이지야가 채취권을 얻어 "잇폰야 광천"으로 개명했고, 1889년에는 "미쓰야 히라노수"라는 이름으로 판매되었다. 나쓰메 소세키와 다이쇼 천황도 히라노수를 애음했다.[5]
1907년, 제국광천 주식회사가 설립되어 히라노수에 설탕을 졸인 카라멜과 영국에서 수입한 사이다 향료를 첨가한 "미쓰야 표 히라노 샴페인 사이다"를 발매했다. 1921년에는 "미쓰야 샴페인 사이다"로 이름이 변경되었다.[4]
일반적으로 "일본 최초(최고)의 사이다"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1868년 요코하마 외국인 거류지에서 노스 & 레이 상회가 제조 판매한 "샴페인 사이다"가 최초이다.[6][16][17] 1899년에는 요코하마 센마치의 아키모토 기노스케가 "금선 사이다"를 유통시키며, 이것이 왕관이 달린 병을 사용한 본격적인 사이다의 원조이다.
1915년 설립된 금선 음료 주식회사는 1925년 일본 맥주 광천 주식회사에 합병되었고, 금선 사이다와 미쓰야 사이다는 형제 브랜드가 되었다. 그러나 대일본 맥주 합병 후, 미쓰야 사이다로 통합되어 금선 사이다 제조는 중단되었다. 따라서 미쓰야 사이다는 일본 최고(最古)의 사이다는 아니지만, 그 역사를 계승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1980년대 초반, 홋카이도 도난 지방에서 미쓰야 사이다를 판매원으로 하여 금선 사이다라는 명칭으로 음료수가 판매된 적이 있다. 1984년 재고 소진으로 판매가 종료되었다.
2007년에는 다이도 드린코와 공동 사업으로 옛 상품을 재현한 "복각당·미쓰야 사이다"가 기간 한정으로 발매되었다. 2010년에는 새로운 디자인으로 발매, 캔에 쇼와 30년대의 마스코트 캐릭터인 인디언 어린이 3명이 그려졌다.
엔카 가수 키타지마 사부로는 미쓰야 사이다 애음가로 유명하며, 무대 공연 전에 탄산을 뺀 미쓰야 사이다를 마신다고 한다.[18]
1979년에는 오타키 에이이치가 CM송을 담당할 예정이었으나, 모델 브룩 쉴즈의 출연 불발로 무산되었다.
2. 2. 미쓰비시, 대일본맥주, 아사히맥주로의 계승
1921년, 가부토 맥주가 제국광천 주식회사와 일본제 병을 흡수 합병하여 일본맥주광천 주식회사(네즈 재벌)이 되었고,[6] 1933년에는 대일본맥주 주식회사와 병합되었다. 하지만 '미쓰야 샴페인 사이다'는 일본맥주광천의 유니온 맥주와 함께 계속 제조, 판매되었다.태평양 전쟁 중에는 사이다가 군수품이었기 때문에 제조가 계속되었으나, 전쟁 말기에는 공장을 군수 공장으로 대여하거나 전재로 설비 일부를 소실하는 등의 이유로 종전 다음 해인 1946년 7월까지 제조가 중단되기도 했다. 1946년 7월부터 제조가 재개되었지만, 정부의 설탕 배급으로 인해 사용이 허가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인공 감미료 둘신으로 대체하여 제조를 재개했다 (이후 둘신의 안전성 문제가 제기되어 자율적으로 사용 중지). 1951년에는 설탕 배급이 종료되어 설탕을 사용한 '전당 미쓰야 샴페인 사이다'도 발매되었다.[7] 프랑스 샴페인 기업들이 샴페인 명칭 사용에 대해 전국 청량 음료 연합회에 항의하면서, 1968년 '미쓰야 사이다'로 이름이 변경되었다.[4]
GHQ의 과도 경제력 집중 배제법에 따라 1949년 대일본맥주 주식회사는 아사히 맥주 주식회사와 일본맥주 주식회사로 분할되었고, 미쓰야 사이다는 유니언 맥주와 함께 아사히 맥주가 계승하였다. 이에 따라 전전의 "아사히 맥주・리본 시트론" 조합에서 "아사히 맥주・미쓰야 사이다" 조합으로 바뀌었다.
2. 3. 아사히 음료로의 변화와 현대
1921년 일본맥주광천 주식회사가 설립되었고,[6] 1933년 대일본맥주 주식회사와 합병되었지만, '미쓰야 샴페인 사이다'는 계속 제조, 판매되었다. 태평양 전쟁 중에도 제조는 계속되었으나, 종전 후 1946년 7월까지 제조가 중단된 적이 있었다. 제조 재개 후에는 설탕 배급 문제로 인공 감미료 둘신을 사용했으나, 안전성 문제로 사용을 중지했다. 1951년 설탕 배급 종료 후에는 설탕을 사용한 '전당 미쓰야 샴페인 사이다'를 발매했다.[7] 1968년에는 프랑스 샴페인 기업의 항의로 '미쓰야 사이다'로 개명했다.[4]1949년 GHQ의 지시로 대일본맥주는 아사히 맥주 주식회사와 일본맥주 주식회사로 분할되었고, 미쓰야 사이다는 아사히 맥주가 계승했다. 1987년 아사히 수퍼 드라이가 히트하기 전까지 약 30년간 아사히 맥주의 경영을 지탱한 것은 미쓰야 사이다의 이익이었다.[8]
1967년 "미츠야 레모라"(2대), 1970년 200ml들이 병, 1971년 캔 제품을 출시하고, 1973년에는 미츠야 후르츠 소다를 출시했다. 1972년부터는 프린트 병으로 변경되었다.
1961년 인공 감미료를 치클로로 바꿨으나, 1969년 치클로의 안전성 문제로 "전당 미쓰야 사이다"로 일원화하고 합성 착색료 사용도 중단했다.[7]
1980년 도라에몽과의 제휴를 시작으로, 1982년 『닥터 슬럼프 아라레짱』, 『닌자 핫토리군』, 1984년 『파만』(제2작)과 제휴를 이어갔다.
1984년 출시 100주년을 맞아 캔과 페트병 표기가 변경되었다. 1995년까지는 "Asahi" 로고가 측면에 표시되었지만, 1996년 아사히 음료 발족을 계기로 변경되었다.
1988년 제조 부문이 분사하여 아사히 맥주 음료 제조 주식회사가 되었고, 1996년 아사히 음료 주식회사가 되었다.
2004년 향료를 천연 원료로, 물을 천연수 100%로 바꾸어 판매량이 증가했다. 기린 레몬과 함께 강탄산을 유지하고 있다.
2009년 "미츠야 사이다 올 제로"를 출시했다. 2015년 『미쓰야 사이다 제로』, 2016년 『미쓰야 사이다 제로 스트롱』으로 개명했다.
2005년 히라노 공장이 폐쇄되었다.[10] 2016년 일부 제품에 식물 유래 원료를 사용한 올 바이오 페트병 채용을 시작했다.[11]
2017년 국제 식미 심사 기구(iTQi) 우수 미각상을 수상했다.[12][13]
2018년 다이도 드링크 자동 판매기로 공급을 시작했다.[14]
2019년 플라스틱 자원 순환 및 해양 플라스틱 문제 대책으로 "용기 포장 2030"을 수립했다.[15]
2. 4. 연혁
- 1884년 - '히라노 워터' 출시.
- 1899년 - '미츠야 마크'를 상표 등록.
- 1905년 - 미츠야 히라노 광천 합자회사 설립.
- 1907년
- * 2월 20일 - 미츠야 히라노 광천 합자회사와 합자회사 공작상회가 합병하여, 제국 광천 주식회사 설립.
- * 6월 - '미츠야 마크 히라노 샴페인 사이다' 출시.
- 1909년 - '미츠야 샴페인 사이다' 출시.
- 1912년 - 황실 및 각 궁가에 어용품을 납품하기 위해, 어용품 제조소 건축.
- 1916년 - '미츠야 사이다'를 상표 등록.
- 1918년 - 오사카 아사히 신문에 미츠야 사이다와 히라노 워터의 "중원 증답용" 광고가 게재.
- 1921년 - 가부토 맥주가 제국광천 주식회사와 일본제 병을 흡수 합병하여 일본맥주광천 주식회사(네즈 재벌)이 됨.[6]
- 1925년 - '미츠야 레모라'(초대) 출시.
- 1933년 - 대일본맥주 주식회사와 병합되었지만, '미쓰야 샴페인 사이다'는 일본맥주광천의 유니온 맥주와 함께 계속 제조 판매됨.
- 태평양 전쟁 중에는 사이다가 군수품이었기 때문에 제조가 계속되었지만, 말기에는 공장을 군수 공장으로 대여하거나, 전재로 설비의 일부를 소실하는 등 하였기 때문에, 종전 다음 해인 1946년 7월까지 제조가 중단되었던 시기가 있었다.
- 1946년 - 7월부터 제조가 재개되었지만, 정부에 의한 설탕 배급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사용이 해금된 지 얼마 안 된 인공 감미료 둘신으로 바꾸어 제조 재개 (나중에 둘신의 안전성에 의문이 제기되어, 자율적으로 사용 중지).
- 1951년 - 설탕 배급이 종료되었기 때문에, 설탕을 사용한 '전당 미쓰야 샴페인 사이다'도 발매.[7]
- 1952년 - '전당 미쓰야 샴페인 사이다' 출시.
- 1954년
- * 원천의 자분량이 줄어들어 발상지인 히라노 공장은 폐쇄.
- * 철도 홍제회용 '미츠야 사이다' 병 200ml 출시.
- 1961년 - 감미료를 치클로로 바꿈.
- 1967년 - "미츠야 레모라"(2대) 출시.
- 1968년 - '미츠야 샴페인 사이다'를 '미츠야 사이다'로 명칭 변경.[4]
- 1969년 - 치클로의 안전성 또한 의심받기 시작한 것을 계기로, 인공 감미료를 사용하던 모든 제품의 제조를 중단하고 설탕을 사용하던 "전당 미츠야 사이다"로 일원화. 또한 안전성을 어필하기 위해 합성 착색료의 사용도 중단하여, 현재와 같은 투명색 사이다가 됨.[7]
- 1970년 - '미츠야 사이다 SILVER' 병 200ml 출시.
- 1971년 - '미츠야 사이다 실버' 캔 250ml 출시.
- 1972년 - 기린 레몬에 대항하여 하늘색 문자와 마크가 인쇄된 프린트 병으로 순차적으로 변경.
- 1973년 - '미츠야 과일 소다 자몽' 출시.
- 1974년 - '미츠야 과일 소다 포도', '미츠야 과일 소다 자두' 출시.
- 1980년 - 텔레비전 애니메이션 『도라에몽』(제2작)과의 제휴를 통해, 캔 제품에 도라에몽 디자인을 적용하거나, 병 제품에는 "도라에몽 글라스"를 증정하는 이벤트를 진행.
- 1981년 10월 - 캔 커피 '미츠야 커피' 출시.
- 1984년
- * 출시 100주년을 맞아 캔과 페트병에 표기된 "MITSUYA CIDER영어"가 현재 서체로 청색으로 변경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 * 텔레비전 애니메이션 파만 (제2작)과 제휴.
- 1985년 - '미츠야 사이다' PET 1.5L 출시.
- 1988년 - 제조 부문이 분사하여 아사히 맥주 음료 제조 주식회사가 됨.
- 1996년
- * 6월 - '미츠야 사이다' PET 500ml 출시.
- * 판매 회사인 아사히 맥주 음료 주식회사와 합병하여 아사히 음료 주식회사가 됨.
- 2004년 - 향료를 천연 원료로, 물을 천연수 100%로 바꾸어 더욱 깔끔한 맛으로 마무리하여 판매 수량이 증가.
- 2009년 - '미츠야 사이다 올 제로' 출시 (후에 '미츠야 사이다 제로' → '미츠야 사이다 제로 스트롱'으로 명칭 변경).
- 2016년 - 아사히 음료의 환경 방침에 따라 일부 제품 (1.5L 보틀 4만 상자)에 식물 유래의 원료를 사용한 올 바이오 페트병의 채용을 시작.[11]
- 2017년 6월 15일 - 국제 식미 심사 기구(iTQi)에 의한 우수 미각상을 수상.[12][13]
- 2018년 3월 - "칼피스 워터"와 함께, 다이도 드링크가 관리하는 자동 판매기로의 공급을 시작 (자동 판매기용 430ml 페트병만).[14]
- 2019년 1월 - 플라스틱 자원 순환 및 해양 플라스틱 문제의 대책에 따라, 지속 가능한 용기 포장의 실현을 위한 목표로 "용기 포장 2030"을 수립.[15]
- 2021년 - "미츠야 레모라"(3대) 출시.
3. 이름의 유래
미츠나카가 스미요시 대사의 신탁에 따라 세 개의 화살 깃털이 달린 화살을 쏘아 화살이 떨어진 곳(가와니시시)에 거성(닛타성)을 세운 전설에서 유래한다. 미츠나카는 이 화살을 찾는 데 공이 컸던 손자 하치로에게 영지와 '미츠야'라는 성, 세 개의 화살 깃털 문장을 하사했다.[4]
에도 시대 다다 신사의 가신이었던 미츠야 하타베가 이 지역을 다스렸다. 메이지 시대 메이지 정부는 외국인에게 제공할 양질의 물을 찾기 위해 일본 전국을 조사했다. 1881년 오사카 조폐국의 영국인 기술 고문 윌리엄 고랜드가 평야 광천을 분석, 탄산 가스를 많이 함유한 "이상적인 광천"으로 인정하여 탄산수 공장이 건설되었다. 이후 공장은 미쓰비시에 넘어갔고, 권리를 얻은 메이지야가 1884년 미쓰야 전설에서 이름을 따 '미쓰야 평야수'와 '미쓰야 탄산'을 발매했다. '평야수'는 탄산수의 대명사가 되었고, '미쓰야' 상표도 확립되었다.[5]
4. 제품 종류
아사히 음료가 판매 및 제조를 담당하게 된 이후, 미츠야 마크를 딴 미츠야 사이다의 자매품 및 시리즈 제품들이 발매 기간 한정으로 여러 종류 판매되고 있다. 그룹 회사인 아사히 그룹 식품에서는 미츠야 사이다 브랜드의 캔디도 발매되고 있다.
하위 섹션에서 현재 판매 중인 제품과 과거 판매 제품, 그리고 캔디/젤리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4. 1. 현재 판매 중인 제품
4. 2. 과거 판매 제품
미츠야 사이다의 마크를 딴 다양한 자매품 및 시리즈 제품들이 기간 한정으로 판매되고 있다. 아사히 그룹 식품일본어에서는 미츠야 사이다 브랜드의 캔디도 판매 중이다.2024년 2월 4일 현재 판매 중인 제품은 다음과 같다.
- 미츠야 PREMIUM SWEET (2024년 1월 23일)
- 미츠야 토롯토 망고 믹스 (2023년 12월 19일) ※ 기간 한정 판매
- 미츠야 유자 생강 (2023년 12월 5일) ※ 기간 한정 판매
- 미츠야 특농 머스캣 스쿼시 (2023년 11월 21일)
다음은 과거에 판매되었던 제품 목록이다.
4. 3. 캔디/젤리
아사히 그룹 식품에서는 미츠야 사이다 브랜드의 캔디와 젤리를 판매하고 있다.
5. 광고
미츠야 사이다는 다양한 광고를 통해 소비자들에게 다가가고 있으며, CM송과 CM 출연자를 활용하여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해왔다.
(CM송과 CM 출연자 정보는 하위 섹션에서 자세히 다룬다.)
5. 1. CM송
5. 2. CM 출연자
6. 기타
- 닛폰 방송의 프로그램 알고 있어? 24시(2004년 7월~2005년 9월), 뮤-코미(2006년 4월~)에서 스폰서로 참여했다.
- 미츠야 사이다 쇼트 스토리 「네 미소」 라디오 드라마와 소리 타오르네! 프로그램의 스폰서였다.
- 스타 탄생! 프로그램에 '아사히 맥주 주식회사'로 참여했다.
- 주쿄 TV 제작, 니혼 TV 계열의 바다의 날 특별 방송 (2016년~) 스폰서로 참여하고 있다. 2017년에는 '아사히 음료 스페셜'로 참여했다.
- TOKYO FM의 쿠와타 케이스케의 상냥한 밤놀이(2019년 4월~) 스폰서다.
6. 1. 여담
포털사이트인 네이버 등에서 이 키워드를 검색하면 "청소년에게 노출하기가 부적합한 키워드"로 분류된다. 이는 검색 키워드 중간에 성인 관련 단어가 포함되는 오류 때문이다. 그래서 "미츠야 소다"로 이름을 바꿔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현재 판매되는 청량 음료 중에서는 역사가 오래되었으며, 보통 "일본 최초(최고)의 사이다"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 일본에서 처음으로 사이다를 제조하여 판매한 것은 1868년 요코하마의 외국인 거류지에 있던 노스 & 레이 상회가 제조 및 판매한 "샴페인 사이다"로 알려져 있다.[6][16][17]
- 왕관이 달린 병을 사용하여 본격적으로 유통된 사이다의 원조는 1899년 요코하마 센마치의 아키모토 기노스케가 만든 "금선 사이다"이다. 거의 같은 음료를 왕관이 없는 병에 담아 판매한 것은 라무네라고 불렀다. 1900년 왕관이 수입되면서, 이후 각 회사에서 왕관이 달린 병에 담긴 사이다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아키모토는 노스 & 레이 상회에서 근무하던 니시무라 진사쿠의 조언을 받아 탄산수에 사과 향을 첨가했다. 샴페인 사이다라는 이름이 파인애플과 사과 향에서 유래했기 때문에 샴페인이라는 단어를 제외하고 사이다라는 상품명으로 했다고 한다.
- 금선 사이다는 1915년 요코하마 호라이초에 금선 음료 주식회사를 설립하지만, 1925년 일본 맥주 광천 주식회사에 합병되어 금선 사이다와 미쓰야 사이다는 형제 브랜드가 되어 잠시 함께 판매되었다. 그러나 대일본 맥주에 합병된 후, 미쓰야 사이다로 통합되어 제조가 중단되었다. 미쓰야 사이다는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사이다는 아니지만, 가장 오래된 사이다의 역사를 계승하고 있다.
- 1980년대 초반 홋카이도 도난 지방에서 미쓰야 사이다를 판매원으로 하여 금선 사이다라는 이름으로 음료수가 판매되었다. 구식 사이다 병 처분을 위해 병 값을 보증하지 않고 구매자가 일회용으로 사용하는 원웨이 방식으로 1병에 60JPY의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되었다. 고풍스러운 병 모양과 소박한 맛이 인기를 끌었지만, 1984년에 재고 소진과 함께 판매가 종료되었다.
2007년에는 다이도 드린코와 공동 사업으로 옛 상품을 재현한 "복각당·미쓰야 사이다"를 기간 한정으로 발매했다. 2010년에는 새로운 디자인으로 발매되어 캔에 쇼와 30년대의 마스코트 캐릭터인 인디언 어린이 3명이 그려져 있다. 어느 캔이든 "미쓰야 사이다"가 아사히 음료의 등록 상표임이 기재되어 있다. 다이도는 이전에 삿포로 음료와도 공동 사업을 진행하여 "복각당·리본 시트론"을 발매했다.
유명한 애음가로는 엔카 가수 키타지마 사부로가 있다. 그는 무대 공연 전에 반드시 탄산을 뺀 미쓰야 사이다를 마신다.[18]
1979년에는 오타키 에이이치가 CM송을 담당할 예정이었다. "투명 걸"이라는 카피와 CM 모델이 브룩 쉴즈로 결정되어 있었다. CM송은 퍼레이드(밴드)의 "선샤인 걸"에 이토 아키라가 새로운 일본어 가사를 붙인 커버 버전이었다. 그러나 브룩 쉴즈를 사용할 수 없게 되어 무산되었다. 이후 노래 녹음은 이루어졌으며, "사이다 79 (선샤인 걸)"라는 제목으로 『NIAGARA CM SPECIAL Vol.1 3rd Issue 30th Anniversary Edition』에 수록되었다.
7. 제공 방송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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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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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旧三ツ矢記念館」「源泉地室」が「三ツ矢サイダー」発祥の地である兵庫県川西市の“文化遺産”第一号に認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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清涼飲料水(ラムネ・サイダー)の近代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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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8章 コーラの来襲と荒波を超え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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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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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7章 三ツ矢、ゼロからの再起 スーパードライの「生みの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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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10章 三ツ矢サイダーが愛される理由 地・サイダーブー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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ホームセンターコーナン川西平野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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国内初のバイオペットボトルでCO2削減!三ツ矢サイダー(1.5リットル)に注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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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界で認められた日本生まれの「三ツ矢サイダー」iTQi(国際味覚審査機構)優秀味覚賞受賞!
https://www.asahiinr[...]
アサヒ飲料株式会社
2018-10-28
[13]
뉴스
アサヒ飲料、「三ツ矢サイダーiTQi受賞記念ラベル」を期間限定発売
https://www.nikkei.c[...]
日本経済新聞社
2018-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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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행물
"「三ツ矢サイダー430mlPET」、「カルピスウォーター430mlPET」2商品をダイドードリンコ(株)の自動販売機へ商品供給 2018年3月下旬より開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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アサヒ飲料株式会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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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ツ矢サイダー、3年ぶりのリニューアルでプラスチック削減(AMP[アン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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清涼飲料よもやま話 第9話「サイダー、シトロン、レモン、ライム等の透明炭酸飲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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紅白引退の“御大”に意外な過去…北島三郎は漫才師だっ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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素材や製法にこだわってきた「三ツ矢」の自信の逸品『三ツ矢クラフトコーラ』1月18日より発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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サザンオールスターズ:38年ぶりに三ツ矢サイダーCM出演 海の日には一度きりの特別版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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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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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いきものがかり 新曲「青のなかで」(三ツ矢サイダーテーマソング)TVCMが3月12日から放送開始。本日よりオリジナルノベルティが当たる配信予約キャンペーンもスタート!"
https://e.usen.com/n[...]
encore(USEN)
2024-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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