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긍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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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민긍호는 대한제국 군인 출신으로, 1907년 군대 해산에 반발하여 의병을 일으켜 항일 무장 투쟁을 전개한 인물이다. 그는 원주 진위대에서 복무하다가 고종 퇴위 후 봉기하여 강원도 일대에서 의병을 모집, 일본군과 교전했다. 이은찬의 의병 부대에 합류하여 관동군 창의대장으로 활약하며 100여 차례의 전공을 세웠다. 1908년 치악산에서 체포된 후, 부하들의 구출 작전 시도에 일본군에 의해 사살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했다. 그의 후손들은 안중근의 도움으로 러시아로 피신하여 카자흐스탄에 정착했으며, 외현손 데니스 텐은 피겨 스케이팅 선수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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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긍호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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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이름 | 민긍호 |
원어 이름 | 閔肯鎬 |
출생일 | 1865년 |
출생지 | 경성 |
사망일 | 1908년 2월 29일 |
사망지 | 횡성군 강림면 |
국적 | 대한제국 대한민국 임시 정부 |
직업 | 독립운동가 의병대장 |
관련 활동 | 독립운동 |
상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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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민긍호는 경성 출신으로 1898년 대한제국군에 입대하여 진위대 원주 보병 제5대대 등에서 근무하였다. 1900년 정교, 1901년에는 특무정교가 되었다.[1]
1907년 고종 퇴위 후 대한제국군 해산 명령이 내려지자, 김덕제 정위 등과 무장 봉기하여 의병을 일으켰다. 강원도 지역에서 의병을 모집, 일본군을 사살하는 전과를 올렸다. 이은찬 의병부대에 가담하여 관동군 창의대장으로 참전했다. 1908년 2월 28일 치악산에서 일본군의 기습으로 체포되었고, 다음날 부하들의 구출 작전을 우려한 일본군에 의해 사살되었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2. 1. 출생과 가계
경성 출신으로, 아버지는 민치봉이며, 어머니는 원주 원씨이다.[1] 가계에 대해서는 상세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지만, 증조부 민백규는 증 통훈대부 장례원경을 지냈고, 조부는 민수혁, 부친은 민치봉으로 이어진다.관계 | 이름 | 비고 |
---|---|---|
고조부 | 민징수(閔澄洙) | 증 지평 |
고조모 | 안동 권씨 혹은 단양 우씨 | |
증조부 | 민백규(閔百奎) | 증 통훈대부 장례원경 |
증조모 | 숙부인 담양 국씨 | |
조부 | 민수혁(閔壽爀) | |
조모 | 김해 김씨 | |
부친 | 민치봉(閔致鳳) | |
모친 | 원주 원씨 | |
부인 | 풍양 조씨 | |
장자 | 민영욱(閔泳旭) | |
손자 | 민한식(閔韓植) | |
손자 | 민국식(閔國植) | |
손녀 | 민희라(閔喜羅) | |
손녀 | 민미라(閔美羅) |
2. 2. 대한제국 군인 시절
1898년, 30대 무렵에 대한제국군인이 되어 진위대 원주 보병 제5대대 고성 분견대 부대원, 춘천 분견대 부대원으로 근무했다. 1900년 정교, 1901년에는 특무정교(특무조장, 준위에 상당)가 된 후 보병 제5대대 본대 부대원으로 근무했다.[1]3. 의병 활동
1907년 고종 퇴위와 군대 해산에 반발하여 민긍호가 의병을 일으켰다. 민긍호는 소규모 부대를 편성하여 유격전을 펼치며 지방민의 지원을 받아 일본군에 맞섰다. 여주, 이천, 양근, 홍천 등지에서 전과를 올렸고, 이강년, 이인영과 연합하여 항일 투쟁을 전개했다.[1]
3. 1. 의병 봉기 (1907년)
1907년 8월 5일, 일제가 고종을 강제 퇴위시키고 원주 진위대를 해산하려 하자, 민긍호는 이에 반발하여 "나라에 병사가 없으면 무엇으로써 나라라 할 수 있겠는가? 군대를 거두라는 명령에 순종할 수 없다"고 분개하며 약 300여 명의 병사로 의병을 일으켰다.[1] 그는 원주 우편 취급소를 습격하고 이어 일경을 습격하는 것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항일 무장 투쟁에 나섰다.[1]민긍호는 의병부대를 소단위로 편성하여 제천, 죽산, 장호원, 여주, 홍전 등지에서 일본군과 유격전을 벌였다.[1] 일본군은 기관총 등으로 무장한 2개 중대를 보냈으나, 지방민의 도움을 받은 의병들을 잡지 못했다.[1]
8월 12일, 민긍호의 의병부대는 여주 경무 분견소를 공격하여 일경 등을 죽였다.[1] 이 일대 많은 지방민이 의병부대에 자원하여 의병부대는 수천 명으로 늘어났고, 여주, 이천, 양근 일대에서 전과를 올렸다.[1]
8월 22일, 민긍호는 이강년과 함께 충주를 공격하였으나 점령하지는 못했다.[1]
9월 7일, 민긍호는 약 600명의 의병부대를 이끌고 홍천을 습격하여 일본군에게 큰 피해를 입혔고, 춘천 남방의 정족 부근, 횡성군 봉복사 전투 등에서 전과를 올렸다.[1]
이인영이 양주에서 의병을 일으켰을 때, 민긍호는 여기에 가담하여 관동군 창의 대장이 되어 100여 회의 전투에서 전공을 세웠다.[1]
3. 2. 연합 의병 활동
1907년 8월 5일, 일제가 원주수비대를 해산하려 하자 민긍호는 "나라에 병사가 없으면 무엇으로써 나라라 할 수 있겠는가? 군대를 거두라는 명령에 순종할 수 없다"고 분개하여 약 300여 명의 병사로 의병을 일으켜 원주 우편 취급소를 습격하고 이어 일경을 습격하였다.[1]민긍호는 의병부대를 소단위 부대로 편성하였고, 소의병부대는 제천, 죽산, 장호원, 여주, 홍전 등지에서 일본군과 유격전을 벌였다.[1]
일본군은 민긍호 의병부대의 봉기에 기관총 등으로 무장한 2개 중대를 보냈으나, 지방민의 도움을 받은 의병들을 잡지 못했다.[1]
8월 12일, 민긍호 의병부대는 여주 경무 분견소를 공격하여 일본 경찰 등을 사살하였다. 일대의 많은 지방민이 의병부대에 자원하여 의병부대는 수천 명 규모로 성장했고, 여주, 이천, 양근 일대에서 큰 전과를 올렸다.[1]
8월 22일, 민긍호는 이강년과 함께 충주를 공격하였으나 점령하지는 못했다.[1]
9월 7일, 민긍호는 약 600명의 의병을 이끌고 홍천을 습격하여 일본군에 큰 피해를 입혔으며, 춘천 남방의 정족 부근, 횡성군 봉복사 전투 등에서 혁혁한 전과를 올렸다.[1]
이인영이 양주에서 의병을 일으켰을 때, 민긍호는 여기에 합류하여 관동군 창의 대장으로 임명되었고, 100여 회의 전투에 참여하며 큰 공을 세웠다.[1]
3. 3. 최후
1908년 2월 29일, 민긍호 부대는 일본군에게 발각되었다. 전투 중에 민긍호는 일본군에게 사로잡혀 강림면으로 호송되었다. 민긍호의 부하들이 그를 구출하기 위해 일본군을 습격하였으나, 민긍호는 포박된 채로 도주하던 중 일본군에 의해 사살되어 순국하였다.[1]4. 사후
대한민국 정부는 1962년 민긍호의 공훈을 기려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하였다.[1] 1980년대에 묘를 원주시 봉산동으로 이전했다.
5. 가족과 후손
관계 | 이름 |
---|---|
부인 | 풍양 조씨 |
장자 | 민영욱(閔泳旭) |
손자 | 민한식(閔韓植) |
손자 | 민국식(閔國植) |
손녀 | 민희라(閔喜羅) |
손녀 | 민미라(閔美羅) |
그의 가족들은 안중근 의사의 도움으로 두만강을 건너 러시아 제국으로 피신했다. 민긍호의 가족들은 카자흐스탄에서 살고 있다. 그의 외현손(손녀의 손녀)인 데니스 텐은 카자흐스탄의 피겨 스케이팅 선수로, 소치 동계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획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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