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대표 48인
1. 개요
민족대표 48인은 3·1 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 외에 추가로 참여한 17인을 포함한 인물들을 지칭한다. 이들은 천도교, 기독교, 일반 인사들로 구성되었으며, 박인호, 김홍규, 노헌용, 이경섭, 한병익, 김도태, 안세환, 함태영, 김원벽, 김세환, 임규, 송진우, 현상윤, 최남선, 강기덕, 정노식, 김지환 등이 포함된다. 이 중 현상윤과 최남선은 후에 변절하였으며, 일부에서는 프랭크 스코필드 박사 등을 포함하여 49인으로 부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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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대표 48인 -
최남선
최남선은 1890년에 태어나 1957년에 사망한 대한민국의 문인이자 독립운동가, 언론인, 역사학자이며, 《소년》을 창간하고 신체시 〈해에게서 소년에게〉를 발표하여 현대 한국 문학의 선구자로 평가받으며, 3·1 운동 독립선언서 기초, 친일 행적, 단군 연구, 《단군론》, 《불함문화론》 저술 등의 활동을 했다. -
민족대표 48인 -
박인호 (1854년)
박인호는 천도교 제4대 교주이자 독립운동가로, 갑오농민전쟁에 참여, 3·1 운동에 민족대표로 참여, 《조선독립신문》 발간을 주도하는 등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에 적극적으로 헌신하였다. -
3·1 운동 -
3·1독립선언서
1919년 손병희 등 민족대표 33인이 한국의 독립을 선언한 3·1독립선언서는 최남선이 초안을 작성하고 2·8 독립 선언의 영향을 받아 조선의 독립과 조선인의 자주민임을 선언하며 3·1 운동의 기폭제가 되어 대한민국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다. -
3·1 운동 -
2·8 독립 선언
1919년 2월 8일 도쿄에서 재일 조선인 유학생들이 발표한 2·8 독립 선언은 민족자결주의에 입각하여 조선의 독립을 요구하며 3·1 운동의 기폭제가 된 한국 독립운동사의 중요한 사건이다. -
한국사 -
김조국
김조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으로, 2019년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겸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으로 임명되었다. -
한국사 -
토기
토기는 점토를 구워 만든 그릇으로, 일본에서는 구움 정도에 따라 도자기, 자기와 구분되며 인류 최초의 화학적 변화 응용 사례로 식생활과 문화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왔고, 다원설이 유력한 발상지와 일본 열도 1만 6500년 전 토기 발견이 특징이며, 일본어 관점에서 정의, 역사, 제작 과정, 용도, 세계 각지 토기 문화를 설명한다.
2. 명단
3.1운동 민족대표 48인은 민족대표 33인 중 망명한 김병조와 옥사한 양한묵을 제외한 31인과 그 외 17인으로 구성되어 있다.
* 민족대표 31인 (망명한 김병조와 옥사한 양한묵을 제외한 민족대표 33인)
* 그 외 17인: 박인호, 김홍규, 노헌용, 이경섭 (이상 천도교), 김도태, 안세환, 함태영, 김원벽, 김세환 (이상 기독교), 임규, 송진우, 현상윤, 최남선, 강기덕, 정노식/정노식한국어, 김지환, 한병익/한병익한국어
3. 민족대표 48인 일람
3·1 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 외에도 17명이 추가로 참여했다. 이들은 주로 천도교, 기독교, 일반 인사들로 구성되었다.
| 종교 | 이름 | 생년 | 몰년 | 출신 지역 | 신분 | 형량 | 이후 행적 | 건국훈장 훈격 | 서훈 년도 |
|---|---|---|---|---|---|---|---|---|---|
| 천도교 | 박인호 | 1864 | 1940 | 충남 예산 | 천도교 4세 교주 | 무죄 | 천도교 교역 | 독립장 | 1990 |
| 김홍규 | 1876 | 1959 | 전북 김제 | 천도교 신자 (보성사 공장감독) | 징역 1년 | - | 애국장 | 1990 | |
| 노헌용 | 1866 | ? | 황해 곡산 | 천도교 중앙총부 금융관장 | 무죄 | - | - | - | |
| 이경섭 | 1874 | ? | 황해 곡산 | 천도교 봉훈 | 징역 1년 6월 | - | 독립장 | 1962 | |
| 한병익 | 1895 | ? | 황해 수안 | 천도교 신도 | 징역 1년 | - | - | - | |
| 기독교 | 김도태 | 1891 | 1956 | 평북 정주 | 명신학교 교사 | 무죄 | 휘문고보 교사, 친일 행적 | 애국장 | 1990 |
| 안세환 | 1892 | 1927 | 평남 평원 | 평양 기독교서원 총무 | 무죄 | 복역 후유증으로 사망 | 독립장 | 1963 | |
| 함태영 | 1873 | 1964 | 함북 무산 | 세브란스예배당 조사 | 징역 3년 | 목회 활동 | 독립장 | 1962 | |
| 김원벽 | 1894 | 1928 | 황해 은율 | 연희전문 3년생 | 징역 2년 | 언론 활동 | 독립장 | 1962 | |
| 김세환 | 1889 | 1945 | 경기 수원 | 삼일여학교 학감 | 무죄 | 교육사업 | 독립장 | 1963 | |
| 일반 | 임규 | 1867 | 1948 | 전북 익산 | 경성부 일본어 교사 | 무죄 | - | 애국장 | 1990 |
| 송진우 | 1890 | 1945 | 전남 담양 | 중앙학교 교장 | 무죄 | 언론 활동 | 독립장 | 1963 | |
| 현상윤 | 1893 | 1950 | 평북 정주 | 중앙학교 교사 | 무죄 | 변절 | - | - | |
| 최남선 | 1890 | 1967 | 한성 | 출판업 | 징역 2년 6월 | 변절 | - | - | |
| 강기덕 | 1886 | ? | 함남 원산 | 보성법률상업전문 3년생 | 징역 2년 | 한국전쟁 중 입북 | 독립장 | 1990 | |
| 정노식 | 1891 | 1965 | 전북 김제 | 재일 유학생 | 무죄 | 광복 후 월북 | - | - | |
| 김지환 | 1892 | 1972 | 평북 정주 | 일본 유학 후 귀국 | 무죄 | - | 독립장 | 1963 | |
3.1. 민족대표 33인 외 17인
3·1 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 외에도 17명이 추가로 참여했다. 이들은 주로 천도교, 기독교, 일반 인사들로 구성되었다.
| 종교 | 이름 | 출신 지역 | 신분 | 형량 | 건국훈장 훈격 | 서훈 년도 |
|---|---|---|---|---|---|---|
| 천도교 | 박인호 | 충남 예산 | 천도교 4세 교주 | 무죄 | 독립장 | 1990 |
| 김홍규 | 전북 김제 | 천도교 신자 (보성사 공장감독) | 징역 1년 | 애국장 | 1990 | |
| 노헌용 | 황해 곡산 | 천도교 중앙총부 금융관장 | 무죄 | - | - | |
| 이경섭 | 황해 곡산 | 천도교 봉훈 | 징역 1년 6월 | 독립장 | 1962 | |
| 한병익 | 황해 수안 | 천도교 신도 | 징역 1년 | - | - | |
| 기독교 | 김도태 | 평북 정주 | 명신학교 교사 | 무죄 | 애국장 | 1990 |
| 안세환 | 평남 평원 | 평양 기독교서원 총무 | 무죄 | 독립장 | 1963 | |
| 함태영 | 함북 무산 | 세브란스예배당 조사 | 징역 3년 | 독립장 | 1962 | |
| 김원벽 | 황해 은율 | 연희전문 3년생 | 징역 2년 | 독립장 | 1962 | |
| 김세환 | 경기 수원 | 삼일여학교 학감 | 무죄 | 독립장 | 1963 | |
| 일반 | 임규 | 전북 익산 | 경성부 일본어 교사 | 무죄 | 애국장 | 1990 |
| 송진우 | 전남 담양 | 중앙학교 교장 | 무죄 | 독립장 | 1963 | |
| 현상윤 | 평북 정주 | 중앙학교 교사 | 무죄 | - | - | |
| 최남선 | 한성 | 출판업 | 징역 2년 6월 | - | - | |
| 강기덕 | 함남 원산 | 보성법률상업전문 3년생 | 징역 2년 | 독립장 | 1990 | |
| 정노식 | 전북 김제 | 재일 유학생 | 무죄 | - | - | |
| 김지환 | 평북 정주 | 일본 유학 후 귀국 | 무죄 | 독립장 | 1963 | |
천도교에서는 박인호, 김홍규, 노헌용, 이경섭, 한병익이, 기독교에서는 김도태, 안세환, 함태영, 김원벽, 김세환이, 일반 인사로는 임규, 송진우, 현상윤, 최남선, 강기덕, 정노식한국어, 김지환이 참여했다. 이들 중 현상윤과 최남선은 이후 변절했다.
4. 추가 인물
일부에서는 프랭크 스코필드(Frank Schofield, 한국명: 석호필한국어) 박사를 포함하여 '민족대표 49인'으로 부르기도 한다. 그 외에도 이승만, 현순, 신규식 등을 민족 지도자로 추가 언급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