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위로가기

바그너 (드라마)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바그너》는 토니 파머가 제작한 리하르트 바그너의 생애를 다룬 미니시리즈이다. 원래 7시간 46분 분량의 영화로 기획되었으나, 편집을 거쳐 9시간에 가까운 10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었다. 1983년 MBC에서 한독 수교 100주년 기념으로 방영되어 바그너의 음악과 생애를 한국에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리처드 버튼, 젬마 크레이븐, 바네사 레드그레이브 등이 출연했으며, 게오르그 솔티가 음악 감독을 맡아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함께 바그너의 악곡을 새롭게 녹음했다. 이 드라마는 유럽 주요 음악 저널로부터 극찬을 받았으나, 미국에서는 축약된 버전이 부정적인 평가를 받기도 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1983년 텔레비전 영화 - 1984 (광고)
    애플 맥킨토시 출시 광고 "1984"는 디스토피아적 배경에서 여성이 스크린을 파괴하는 장면을 통해 IBM의 독점을 비판하고 매킨토시를 자유와 창의성의 상징으로 제시하여 큰 광고 효과를 거두었지만, 긍정적 평가와 함께 새로운 억압 시대의 상징이라는 비판도 받았다.
  • 1983년 텔레비전 영화 - 마지막 타석
    은퇴를 앞둔 노장 야구 선수 빌리 영과 그를 응원하는 소년 알렉스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마지막 타석은 꿈을 향한 열정, 희망과 믿음의 중요성을 주요 주제로 다루며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와 타이거 스타디움을 배경으로 빌리 영의 부활과 알렉스의 기적적인 경험을 보여준다.
  • 리하르트 바그너 - 니체 대 바그너
    《니체 대 바그너》는 프리드리히 니체가 리하르트 바그너와의 관계를 다룬 에세이 모음집으로, 바그너의 음악에 대한 칭찬과 비판을 통해 그의 종교적 편견과 예술관을 비판하며 자신의 철학적 입장을 드러낸다.
  • 리하르트 바그너 - 바이로이트 축제
    바이로이트 축제는 리하르트 바그너의 예술적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1876년 독일 바이로이트에서 처음 개최된 음악 축제이며, 바그너의 작품을 중심으로 공연되고 바그너 가문의 후손들이 이끌어 왔다.
  • 1983년 드라마 - 오싱
    오싱은 메이지 시대부터 쇼와 시대까지 격동의 시대를 살아가는 한 여성의 삶을 그린 1983년 NHK 연속 TV 소설로, 가난한 어린 시절을 극복하고 성공하는 과정을 통해 인내와 끈기를 보여주며 전 세계적으로 큰 사랑을 받았다.
  • 1983년 드라마 - 대전대 고글파이브
    《대전대 고글파이브》는 암흑과학제국 데스다크에 맞서는 5명의 영웅 이야기를 그린 1982년 슈퍼전대 시리즈로, 리듬체조 액션, 검정색 수트, 최초의 타이틀 콜 등 혁신적인 시도를 통해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으며 로봇 애니메이션 제작에 영향을 미쳤다.
바그너 (드라마) - [TV프로그램]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장르전기 영화
음악
드라마
작가찰스 우드
감독토니 파머
출연리처드 버튼
작곡가리하르트 바그너
국가영국
언어영어
시즌 수1
에피소드 수10
촬영 장소더블린, 아일랜드
촬영 감독비토리오 스트라로
상영 시간466분
제작사Hungarofilm
처음 방송1983년 10월 3일
마지막 방송1983년 12월 11일
제작 정보
각본찰스 우드
감독토니 파머
출연자리처드 버튼
음악리하르트 바그너
아이반 피셔
게오르그 솔티 (지휘)
국가

언어영어
시대 설정19세기
에피소드 수10
촬영 감독비토리오 스트라로
제작사라드브로크
헝가로필름
MTV
제작알란 라이트
제작비1,000만 달러
방송 기간1983년 12월
방송 시간240분
466분 (완전판)
추가 정보
촬영비토리오 스토라토
지옥의 묵시록 촬영 감독
베르나르도 베르토루치
파리의 마지막 탱고 촬영 감독

2. 제작 배경

토니 파머 감독은 원래 이 작품을 장편 영화로 기획했으나, 이후 10부작 미니시리즈로 확장했다. 처음에는 7시간 46분 분량이었지만, 일부 등장인물이 삭제된 5시간 분량으로 편집되기도 했다. 2011년에는 감독판이 고화질 및 와이드 스크린을 갖춘 3개의 DVD 세트로 재출시되었다.[2]

바그너의 손자인 볼프강 바그너의 협력과 감수 하에 제작이 이루어졌다. 노이슈반슈타인 성, 헤렌킴제 성, 뮌헨 레지덴츠, 바이로이트 축제 극장 등 실제 장소에서 촬영되었으며, 헝가리, 스위스, 이탈리아(시에나, 토스카나 주, 베네치아), 독일 (), 더블린 등 여러 국가에서 로케이션 촬영이 진행되었다.

파머 감독은 리처드 버튼의 연기에 대해 "비록 비판도 있었지만, 그보다 더 훌륭하게 해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생각한다."라고 평가했다.[3]

2. 1. 음악

게오르그 솔티가 수석 지휘자와 음악 감독을 맡았으며,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연주로 바그너의 악곡을 새롭게 녹음했다.[2] 이반 피셔도 음악 작업에 참여했다.

3. 등장인물


  • 리하르트 바그너: 리처드 버튼 (모리카와 코야 - 일본어 더빙)[13]
  • 코지마 바그너: 바네사 레드그레이브 (코지마 아이코 - 일본어 더빙)[13]
  • 민나 플래너: 젬마 크레이븐
  • 한스 폰 뷜로: 미겔 헤르츠-케스트라넥
  • 루트비히 2세: 라즐로 갈피
  • 프란츠 세라프 폰 피스터마이스터: 존 길구드
  • Sigmund von Pfeufer|지그문트 폰 포이퍼de: 로렌스 올리비에 경
  • 카를 루트비히 폰 데어 포르덴 남작: 랄프 리처드슨 경
  • 프란츠 리스트: 에케하르트 샬
  • 프리드리히 니체: 로널드 픽업
  • 마틸데 베젠동크: 마르테 켈러
  • Otto Wesendonck|오토 베젠동크de: 리처드 파스코
  • 루트비히 슈노어 폰 카롤스펠트: 페터 호프만
  • 말비나 슈노어 폰 카롤스펠트: 그윈네스 존스
  • 알베르트 니만: 제스 토마스
  • 자코모 마이어베어: 버논 돕체프
  • 카를 리터: 가브리엘 번[14]
  • 작센 국왕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투스 2세: 윌리엄 월턴 경
  • 바이에른의 마리아 안나 (프리드리히의 아내): 수잔 월턴
  • 바이에른 국왕 루트비히 1세: 지그프리트 슈타이너
  • 바이에른 왕비 마리 폰 프로이센: 바바라 레이-헌트
  • Daphne Wagner|파울리네 폰 메테르니히 공주de: 다프네 바그너[15]
  • 테일러 부인: 조안 플로우라이트 경
  • 푸시넬리 박사: 코린 레드그레이브
  • 폴레르트 부인: 프루넬라 스케일스
  • 내레이터: 앤드루 크루익생크 (도널드 모팻 - 일본어 더빙)[13]

4. 줄거리 (MBC 방영판 부제)

MBC에서 1983년 12월 13일부터 12월 23일까지 바그너 100주기와 한·독수교 100주년을 기념하여 수입, 방영한 드라마 <바그너>의 회차별 부제는 다음과 같다.[21]

회차방송 일자부제
제1회1983년 12월 13일내 갈 길은 어던가
제2회12월 14일지명수배자
제3회12월 15일돈돈돈
제4회12월 16일탄호이저 인생
제5회12월 19일자유! 제 자유가 왔구나
제6회12월 19일모함과 중상
제7회12월 20일어명을 어찌하오리까
제8회12월 21일나의 벗님은 어디에
제9회12월 22일전쟁과 아들 탄생
제10회12월 23일운명은 그대까지



각 부제는 리하르트 바그너의 생애에서 주요 사건이나 시기를 나타낸다. 1부 '내 갈 길은 어딘가'는 드레스덴 5월 봉기에 연루되어 수배자가 된 바그너의 초기 생애를, 2부 '지명수배자'는 취리히 망명 생활을, 3부 '돈, 돈, 돈'은 경제적 어려움과 마틸데 베젠동크와의 관계를 보여준다. 7부 '어명을 어찌하오리까'는 루트비히 2세와의 관계 회복, ''트리스탄과 이졸데'' 초연, 바그너의 추방을 다룬다.

4. 1. 제1부: 내 갈 길은 어딘가 (1849년 드레스덴)

1849년, 리하르트 바그너드레스덴에 거주하는 존경받는 작곡가였다. 그는 작센 왕국의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투스 2세 국왕을 위해 왕실 궁정 지휘자로 일했으며, 최근 작곡한 오페라 ''로엔그린''의 초연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의 아내 민나는 그들의 삶과 지위를 즐겼지만, 바그너는 늙어가는 국왕을 위한 그의 직무에 싫증을 느꼈다. 그는 대부분의 시간을 기성 체제와 귀족에 반대하는 혁명적인 팜플렛을 쓰는 데 보냈다. 결국, 5월 봉기가 발생하고 바그너는 그 배후의 중요한 인물이 된다. 작센과 프로이센 군대가 봉기를 진압하자 바그너는 수배자가 되어 취리히로 도망쳐야 했다.

4. 2. 제2부: 지명수배자 (취리히 망명)

미나는 남편과 합류하는 것을 한동안 거부하다가 마침내 취리히로 이사하여 바그너와 재회하기로 동의한다. 그녀는 그를 설득하여 다시 지휘하고 작곡하게 하고, 프랑스로 여행할 것을 촉구한다. 보르도에서 바그너는 부유한 스코틀랜드 출신 이민자인 테일러 부인을 만나 후원자가 되기로 동의하지만, 그녀의 결혼한 딸 Лоссо, Джесси|제시 로소ru와 짧은 관계를 맺는다. 파리로 여행을 간 바그너는 즉시 도시를 떠나 취리히로 돌아가라는 명령을 받는다. 취리히에서 그는 그의 좋은 친구 프란츠 리스트를 만나는데, 그는 망명 기간 동안 바그너의 오페라를 독일에서 공연하도록 주선한다. 스위스에 있는 동안 그는 그의 첫 번째 작품인 ''니벨룽의 반지''를 시작하고 웨이랜드 더 스미스에 대한 오페라를 계획한다. 그는 또한 또 다른 후원자인 리터 부인의 아들인 카를 리터라는 제자를 받는다.

4. 3. 제3부: 돈, 돈, 돈 (1850년대)

1850년대, 리하르트 바그너의 건강은 악화되어 요양원에서 치료를 받아야 했다. 그곳에서 그는 아르투어 쇼펜하우어의 저서인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읽었다. 요양에서 돌아온 그는 부유한 비단 상인 오토 베젠동크의 아내인 마틸데 베젠동크를 후원자로 맞이하여 자신의 저택에 있는 별장을 제공받았다. 별장에 자리를 잡은 바그너는 마틸데와 열정적인 편지를 주고받기 시작했고, 이는 마틸데의 남편 오토와 바그너의 아내 미나를 모두 화나게 했다. 미나는 점점 더 많은 양의 라우다넘에서 위안을 찾았다. 마틸데를 위해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작곡하기 시작한 바그너는 그의 절친한 친구인 한스 폰 뷜로와 그의 새로운 아내이자 리스트의 딸인 코지마의 방문을 받았다. 얼마 후, 미나는 용기를 내어 바그너와 마틸데에게 그들의 편지에 대해 따져 물었다.

4. 4. 제4부: 탄호이저 인생 (베네치아와 파리)

리하르트 바그너베네치아로 이사하여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완성하려 한다. 카를 리터가 리터 부인이 더 이상 바그너에게 돈을 제공할 수 없다고 알리자 그는 그와의 우정을 끊고 파리로 간다. 그곳에서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 3세의 명령으로 그의 유명한 오페라 ''탄호이저''의 새로운 버전을 공연하게 된다. 하지만 이 공연은 실패로 끝나는데, 바그너가 관례대로 2막이 아닌 1막에 발레를 넣으라고 주장한 예술적 이유와, 바그너의 후원자 중 한 명인 오스트리아 출신 메테르니히 공주의 연루가 프랑스 황제의 친오스트리아 정책에 항의하는 데 이용된 정치적 이유로 공연 중 폭동이 발생한다. 게다가 공연 직전 바그너는 반유대주의 에세이 음악 속의 유대교에 관해 유대계 작곡가 자코모 마이에르베어와 논쟁을 벌인다.

4. 5. 제5부: 자유! 제 자유가 왔구나 (유럽 방랑과 귀국)

파리에서의 실패 이후, 바그너는 스위스, 오스트리아, 러시아 등 유럽 각지를 여행한다. 그는 《니벨룽의 반지》와 《뉘른베르크의 명가수》의 자금 후원자를 찾던 중 에서 영향력 있는 평론가 에두아르트 한슬리크를 만난다. 또한 빈에서 《트리스탄과 이졸데》 상연을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한편, 미나는 드레스덴 법원에 리하르트의 사면을 계속 탄원했고, 결국 사면이 허가된다. 바그너는 귀국하지만 빚 때문에 다시 쫓기는 신세가 된다. 빈곤에 시달리던 바그너는 숨으려 했지만 결국 프란츠 제라프 폰 프피스터마이스터(바이에른 왕국의 새로운 국왕의 개인 비서)에게 발견된다. 프피스터마이스터는 바그너를 만나기를 간절히 원했다.

4. 6. 제6부: 모함과 중상 (뮌헨과 루트비히 2세)

1864년 뮌헨으로 이주한 바그너는 젊은 바이에른 국왕 루트비히 2세의 후원을 받으며 번성기를 누렸다. 그의 빚은 대부분 청산되었고 여러 오페라는 큰 성공을 거두었다. 한편, 바그너는 절친한 친구였던 한스 폰 뷜로의 아내 코지마와 불륜을 저질렀는데, 이는 코지마의 아버지 프란츠 리스트를 매우 실망시켰다. 바그너와 루트비히는 가까운 친구가 되었지만, 국왕의 신하들과 바이에른 사람들은 바그너를 못마땅하게 여겼다. 결국 바그너는 루트비히에게 선물로 그려진 자신의 초상화 비용을 지불해 달라고 요구하면서 국왕과 불화하게 된다.

4. 7. 제7부: 어명을 어찌하오리까 (1865년)

1983년 12월 20일에 방영된 <바그너> 7부 "어명을 어찌하오리까"는 밤 11시부터 11시 50분까지 방영되었다. 1865년, 리하르트 바그너는 루트비히 2세와의 관계를 회복했다. 루트비히 2세의 재상들은 바그너의 과도한 재정 요구에 의구심을 품었지만, 둘의 우정은 깊어졌다. 말비나 슈노르 폰 카롤스펠트의 병으로 주연 배우가 아프게 되면서, ''트리스탄과 이졸데'' 초연은 연기되었으나, 몇 달 후 마침내 초연이 이루어졌다. 한편, 바그너는 자서전 ''나의 삶''을 구술하기 시작했고, 그의 친구 고트프리트 젬퍼는 바그너가 오랫동안 계획했던 오페라 하우스 설계를 시작했다.

오토 폰 비스마르크 치하의 프로이센과의 전쟁 위험 등 바이에른이 외부 도전에 직면하고, 바그너의 사치스러운 생활 방식에 대한 바이에른 국민들의 불만이 커지자, 루트비히 2세는 결국 바그너를 추방해야 했다. 그동안 코지마는 바그너의 딸 이졸데를 낳았고, 미나는 바그너에게 방치된 채 홀로 죽음을 맞이했다. 얼마 후, 바그너는 주연 배우 루드비히 슈노르 폰 카롤스펠트의 죽음에 충격을 받는다.

4. 8. 제8부: 나의 벗님은 어디에 (트립셴 망명)

1983년 12월 21일에 방영된 <바그너> 8부 "나의 벗님은 어디에"는 1866년 리하르트 바그너가 코지마와 그녀의 아이들과 함께 루체른 근처의 트립셴으로 이주하면서 시작된다. 바그너의 조수가 되기 위해 왕위에서 물러나려던 루트비히 2세가 그를 찾아오지만, 바그너는 그를 설득하여 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 패배한 바이에른으로 돌아가도록 한다.

한스 폰 뷜로도 루체른을 방문하고, 코지마는 그에게 이혼을 요구하지만 거절당한다. 바그너와 코지마가 루트비히 2세에게 그들의 평판을 회복시켜 달라고 요청하여 성공하지만, 언론에 두 사람의 관계가 폭로되기도 한다. 한스 폰 뷜로가 바그너를 위한 일에 지쳐 떠나자, 바그너는 새로운 조수로 한스 리히터를 고용한다. 이후 프리드리히 니체가 방문하고, 1869년 코지마는 바그너의 아들 지크프리트를 낳는다.

4. 9. 제9부: 전쟁과 아들 탄생 (1870년)

1870년 보불 전쟁이 발발하여 이듬해 초 프로이센의 빠른 승리로 종결되면서, 바그너는 평생의 꿈이었던 완전한 통일 독일을 마침내 실현하게 된다. 이 기간 동안 바그너는 코지마와 결혼하고, 코지마의 생일 선물로 그들의 별장에서 지크프리트 목가를 연주한다.

루트비히로부터 오페라 ''라인의 황금''을 상연하라는 명령을 받지만, 바그너는 초연 하루 전에 오페라를 연기하기로 결정하고 루트비히와 다투게 된다. 결국 바그너는 극장 출입을 거부당하고, 바이로이트에 자신의 오페라 하우스를 짓기로 결정한다.

4. 10. 제10부: 운명은 그대까지 (바이로이트와 죽음)

1870년대, 바이로이트 축제극장 건설이 시작되고 대작 ''니벨룽의 반지''가 마침내 초연될 수 있게 된다. 1876년 8월의 초연에는 루트비히 2세가 참석했는데, 그는 거대한 새 성인 노이슈반슈타인 성에 살고 있었다. 바그너와 니체는 바그너의 생활 방식과 사상(그의 만연한 반유대주의를 포함)에 대해 갈등을 겪는다. 1882년 후반, 바그너는 지휘자 헤르만 레비의 지휘 아래 그의 마지막 오페라 ''파르지팔''을 공연한다.

1883년 2월, 사망하기 직전 노년의 바그너는 가족과 함께 이탈리아 베네치아로 여행을 떠난다. 그곳에서 그는 리스트와 함께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그가 알고 지녔던 사람들, 일어났던 사건들, 그리고 그가 작곡한 음악에 대해 회상한다.

5. 평가 및 영향

이 영화는 유럽 주요 음악 저널로부터 극찬을 받았다. 디 벨트(Die Welt)는 "훌륭하다... 기술적으로 훌륭하고... 음악적으로나 영화적으로 최고 수준이며, 의심할 여지 없이 전 세계에서 히트를 칠 것이다"라고 평했고[16], 선데이 타임스(The Sunday Times)는 "주목할 만한 작품. 1분도 길게 느껴지는 장면이 없다... 영국의 영광을 보여주는 영화로 스크린을 장악하는 대담한 작품"이라고 평했다[17].


  • "''바그너''는 ''간디'', ''레즈'' 및 아벨 강스의 ''나폴레옹''과 같은 뛰어난 영화 전기 작품과 함께 언급될 수 있다... 바그너는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촬영을 한 영화 중 하나이다."[4]
  • "완벽한 성공작... 훌륭하다... 기술적으로 훌륭하다... 음악적으로나 영화적으로나 최고 수준이다... 분명히 전 세계를 돌며 개선 행진을 벌일 것이다."[5]
  • "기념비적인 영화... 완벽한 예술 작품... 진정으로 선구적이다..."[6]
  • "놀라운 사건... 조금도 길지 않다... 영광스러운 영국 영화... 스크린을 압도한다... 크고 활기찬 작품"[7]


하지만 미국에서는 4시간이 조금 넘는 대폭 축약된 버전이 PBS에서 방영되었기 때문에, 뉴욕 타임스(The New York Times)는 "과장된 키치"나 "거대한 재앙"이라고 평했다[18].

5. 1. 한국에서의 수용

1983년 MBC에서 한독 수교 100주년과 바그너 100주기를 기념하여 특별 방영하였다.[21] 1983년 12월 13일부터 12월 23일까지 매일 밤 11시부터 방영되어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편성으로 큰 화제를 모았다. 이 드라마는 바그너의 음악과 생애를 한국 대중에게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6. 소설

A. C. H. 스미스의 소설 ''바그너''는 이 영화를 바탕으로 쓰여졌다. 1983년 독일어와 이탈리아어판이 출판되었고([1]), 2012년 영어판도 출간되었다([2]). 현재 영어판으로도 이용 가능하다.

자세한 내용은 A. C. H. Smith의 바그너 소설화([3])를 참조.

참조

[1] Vimeo Vimeo https://vimeo.com/76[...]
[2] 간행물 Limelight, July 2011: Palmer talks Wagner Limelight 2011-07
[3] 서적 Rich! The Life of Richard Burton
[4] 뉴스 Opera News, November 1983 – Richard Hornak Opera News 1983-11
[5] 뉴스 Die Welt, November 1983 Die Welt 1983-11
[6] 뉴스 Der Spiegel, November 1983 Der Spiegel 1983-11
[7] 뉴스 The Sunday Times, November 1983 The Sunday Times 1983-11
[8] 뉴스 Richard Burton Stars in Wagner on 13 https://www.nytimes.[...] The New York Times 1986-10-24
[9] 뉴스 RICHARD BURTON AS WAGNER https://www.nytimes.[...] The New York Times 2021-05-01
[10] 뉴스 BURTON'S LAST MAJOR ROLE WAS AS WAGNER https://www.mcall.co[...] The Morning Call 2021-05-01
[11] 간행물 Limelight, July 2011: Palmer talks Wagner Limelight 2011-07
[12] 서적 Rich! The Life of Richard Burton
[13] 문서 江守徹など、計200名となった。
[14] 뉴스 Irish screen legend Gabriel Byrne says advice from acting icon Richard Burton helped to shape his Hollywood career https://www.thesun.i[...] The Irish Sun 2021-05-01
[15] 문서 ワーグナーの子孫。
[16] 뉴스 Die Welt, November 1983 Die Welt 1983-11
[17] 뉴스 The Sunday Times, November 1983 The Sunday Times 1983-11
[18] 뉴스 Richard Burton Stars in Wagner on 13 https://www.nytimes.[...] The New York Times 1986-10-24
[19] 문서 지옥의 묵시록》의 촬영 감독.
[20] 문서 파리의 마지막 탱고》의 촬영 감독.
[21] 뉴스 안방극장서「바그너」와 만난다 http://newslibrary.n[...] 경향신문 1983-12-10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