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진 (1514년)
1. 개요
방진은 1514년 충청남도 아산에서 태어난 인물로, 조선 중기의 무관이다. 온양 방씨 출신으로 중종 때 무과에 급제하여 제주현감과 보성군수를 역임했다. 명궁으로 알려졌으며, 딸은 이순신과 결혼하여 사돈 관계를 맺었다. 이순신에게 경제적 지원을 제공했으며, 이순신은 방진의 격려와 후원 속에 무과에 급제했다. 방진은 통훈대부로, 부인은 숙인으로 증직되었으며, 묘는 아산 현충사 인근에 있다. 2004년 KBS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에 등장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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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양 방씨 -
방우정
방우정은 조선 후기 무신으로 홍경래의 난 진압에 참여하여 서정군의 좌초관으로 활약했으며, 난에 대한 경험을 바탕으로 《서정일기》를 저술하여 홍경래의 난 연구에 중요한 사료를 남겼다. -
온양 방씨 -
방우영
방우영은 조선일보의 회장으로서 조선일보의 성장을 이끌었으며, '밤의 대통령'이라 불릴 정도로 영향력이 컸고, 언론 사업 확장과 사회 공헌 활동에도 참여한 언론인이다. -
아산시 출신 -
윤보선
윤보선은 대한민국의 정치인이자 독립운동가로, 대한민국 임시정부 참여, 한국민주당 창당, 서울특별시장 및 상공부 장관 역임, 제2공화국 대통령 역임, 그리고 민주화 운동 참여 등의 활동을 했다. -
아산시 출신 -
방열 (농구인)
방열은 대한민국 농구인으로 선수, 지도자, 행정가로 활동했으며, 1962년 자카르타 아시안 게임과 1964년 도쿄 올림픽에 국가대표로 출전하고, 조흥은행 여자농구단, 쿠웨이트 농구 국가대표팀, 현대 남자 농구단 등을 지도했으며, 남자실업농구연맹 부회장, 대한농구협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
과거 급제자 -
방우정
방우정은 조선 후기 무신으로 홍경래의 난 진압에 참여하여 서정군의 좌초관으로 활약했으며, 난에 대한 경험을 바탕으로 《서정일기》를 저술하여 홍경래의 난 연구에 중요한 사료를 남겼다. -
과거 급제자 -
정여립
정여립은 조선 중기 문신으로 동인으로 전향하여 이이를 비판하다 관직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간 후 대동계를 결성했으나 반란 혐의로 자결했으며, 기축옥사로 동서인 갈등을 심화시킨 인물이다.
2. 생애
방진(方震)은 1514년 충청남도 아산시 염치읍의 온양 방씨 양반 집안에서 태어났다. 온양 방씨 판서공파로 온양 방씨 중시조 온수군(溫水君) 방운(方雲)의 22세손이다. 할아버지는 평창군수를 지낸 방흘(方屹)이고, 아버지는 영동현감을 지낸 방국형(方國亨)이다. 배우자는 남양홍씨 토홍파로 부친은 참의공 홍윤필(洪胤弼), 조부는 내자시(內資寺) 부정(副正) 홍호(洪浩, 1444년생), 증조부는 좌익원종공신 수군절도사(水軍節度使) 홍귀해(洪貴海)이다.
조선 중종 때 무과에 급제한 방진은 1535년(22세) 제주현감에 부임하여 1537년까지 근무했고, 이후 보성군수를 역임하였다. 그는 광주(廣州) 이준경과 함께 공부했으며, 이준경이 병조판서로 있을 때 그의 밑에서 일했다. 이준경(1499년~1572년)은 이순신이 10대 중·후반에 서울 친구들에게 한문을 가르치는 것을 보고 관심을 가졌다. 이순신은 1565년(21세)에 방진의 딸 상주 방씨와 결혼했는데, 당시 병조판서였던 이준경이 적극적으로 중매를 섰다. 이준경은 기묘사화에 연루된 사림들을 옹호했으며, 이순신의 조부 이백록과 친분이 있었다.
이순신은 병조판서 이준경의 추천으로 방진의 딸과 결혼했다. 당시 방진은 충청도 온양 지역의 부유한 집안이었다. 방진의 데릴사위가 된 이순신은 그의 정신적 격려와 경제적 지원 속에 1566년부터 무과 시험을 준비했고, 1576년 2월에 급제했다.
예로부터 활을 잘 쏘는 장군을 선사(善射)라 불렀는데, 조선 선조 때 명궁으로 방진(方震)의 이름이 있었다. 《이충무공전서》의 〈방부인전〉에 방진의 활 솜씨에 관한 일화가 있다.
방진의 딸은 슬기롭고 영특했다. 이순신 장군도 방씨 부인의 인품에 감화되어 부인의 덕을 칭송하였다. 임진왜란 중 이순신은 아들을 통해 충청도 온양 본가에 있던 방씨의 소식을 들었지만, 직접 가지는 못했다. 방씨가 병으로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는 잠을 설치며 걱정하고 점까지 쳤다.
1598년(선조 24) 노량 해전에서 전사한 이순신에게 우의정이 추증된 후, 선조는 이순신의 처 방씨를 정경부인(정·종 1품 문무관의 처에게 내리는 명호로 부인으로서 최상급 품계)으로 봉하였다. 이순신처 방씨 고신교지는 대한민국 보물 제1564-8호이다. 1589년(선조 22)에 상주 방씨가 4형제에게 준 재산 분배 기록이 남아있다.
방진의 경제적 기반은 데릴사위였던 이순신에게 상속되었고, 이순신은 큰 부자가 될 수 있었다. 1594년 1월 14일자 ‘난중일기’에는 “아침에 조카 뇌의 편지를 받아보니 “아산의 산소에서 설날 제사를 지낼 때에 패를 지어 모여든 무리들이 무려 200여 명이나 산을 둘러싸고 음식을 구걸하러 올라왔다가 물러갔습니다”하였다. 놀라운 일이다.”라는 기록이 있다. 이는 방진의 아산 집이 매우 큰 부자였음을 보여주는 자료다. 200여 명이 남의 제사 음식을 얻어먹기 위해 산속까지 몰려왔다는 것은 방진의 집안이 온양 일대에서 유명한 재력가였음을 입증한다. 난중일기에 “갑오년(1594) 9월 6일 신사(辛巳), 맑고 바람이 잔잔하다. 아침에 충청수사 및 우후, 마량첨사와 같이 아침밥을 먹었다. 늦게 활터 정자로 옮겨 앉아 활을 쏘았다. 이날 저녁 종(從) 효대(孝代)와 개남(介南)이 어머니께서 평안하시다는 편지를 가지고 왔다. 기쁜 마음 그지없다. 방필순(方必淳)이 세상을 떠나고 방익순(方益淳)이 그 가족을 데리고 우리 집으로 들어왔다는 소식을 들었다.”라는 기록으로 보아 이순신이 온양 방씨 문중들과 한 집에서 생활한 것을 알 수 있다.
방진은 통훈대부(정3품)로, 부인 남양 홍씨는 숙인(淑人)으로 추증되었다. 방진의 묘는 충청남도 아산시 염치읍 백암리 현충사 인근의 방화산(方華山)에 부인 남양 홍씨와 함께 있다. 방진의 묘비는 방진의 외후손(外後孫)인 덕수 이씨(德水李氏) 전교(典敎) 이종국이 지었다.
3. 가족 관계
* 할아버지 : 방흘(方屹) - 초명 방홍(方弘)·방실(方實), 자는 이관(而寬). 평창군수를 역임하였다.
* 아버지 : 방국형(方國亨) - 자는 중규(中規,仲規)·태언(泰彦). 영동현감을 역임하였다.
* 형 : 방인(方寅) - 진사
조카사위 : 황세득(黃世得, 1547 ~ 1598) - 성주인(星州人), 자는 사구(士求), 충장공
* 동생 : 방웅(方雄) - 호군(護軍), 가선대부
조카 : 방희민(方希閔) - 임유진첨절제사, 청난원종공신. 방희민의 부인 전주 이씨 (덕림군 후손)는 임진왜란 때 왜적에게 항거하여 절개를 지킨 인물로 동국신속삼강행실도에 기록되어 있다.
* 부인 : 숙인 남양 홍씨 - 참의공 홍윤필의 딸
딸 : 정경부인 방수진
사위 : 이순신(李舜臣, 1545 ~ 1598)
* 외손자 : 이회(李薈) - 첨정
* 외손자 : 이예(李䓲) - 정랑
* 외손자 : 이면(李葂)
* 외손녀 : 덕수 이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