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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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현충사는 충무공 이순신의 애국 충렬 정신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사당이다. 조선 후기,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존폐 위기를 겪었으나, 국민적 모금 운동을 통해 복원되었다. 1963년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구역이 확장되었으며, 현재는 문화재청 현충사관리소에서 관리하며 무료로 개방되고 있다. 주요 시설로는 본전, 옛 본전, 고택, 연못, 이순신 기념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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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충사 | |
---|---|
지도 | |
기본 정보 | |
정식 명칭 | 현충사(顯忠祠) |
위치 | 대한민국 충청남도 아산시 염치읍 백암리 |
주소 | 충청남도 아산시 염치읍 현충사길 126 |
좌표 | 36°48′12″N 127°00′59″E |
건립 | |
건립 주체 | 박정희 |
건립 시기 | 1969년 4월 27일 |
관리 | |
관리 주체 | 현충사관리소 |
소속 | 문화재청 |
시설 정보 | |
시설 종류 | 사당 |
면적 | 128만 7,243㎡ |
주요 건물 | 본전, 고택, 유물전시관 등 |
역사적 배경 | |
조성 배경 | 이순신 장군의 업적 기리기 위해 |
사당 설립 | 1707년(숙종 33) 건립 |
정화 사업 | 1960년대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대대적인 정화 사업 진행 |
사적 지정 | 1966년 12월 19일 사적 제155호 지정 |
기타 정보 | |
주요 행사 | 매년 4월 28일 이순신 탄신 기념 다례 행사 |
관련 문화재 | 이순신 친필 서간첩, 장검 등 |
관람 정보 | 연중무휴, 무료 관람 |
사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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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역사
현충사는 충무공 이순신의 호국 정신과 애민 정신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사당이다. 임진왜란 이후 유생들의 건의에 따라 조선 숙종 32년(1706년)에 건립되었다. 그러나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인해 폐지되는 수난을 겪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조선총독부의 탄압과 관리 소홀로 또다시 위기에 처했으며, 특히 이순신 묘소와 위토(位土)가 일본인의 손에 넘어갈 뻔한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에 민족적 공분이 일었고, 1931년 충무공유적보존회가 결성되어 1932년 동아일보를 중심으로 현충사 복원을 위한 국민 모금 운동이 대대적으로 전개되었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성금으로 이순신 종가의 빚을 갚고 현충사를 오늘날과 같은 모습으로 중건하였다. 이는 일제의 탄압 속에서도 민족의 힘으로 이순신 유적을 지켜낸 의미 있는 사건이다.[4][3]
2. 1. 건립과 수난 (조선 후기 ~ 일제강점기)
임진왜란이 끝난 해인 1598년 노량해전에서 이순신이 전사하자, 그의 호국 정신과 애민 정신을 기리기 위해 유생들이 조선 조정에 사당 건립을 건의했다. 이에 숙종 32년(1706년) 숙종의 명으로 현재 위치에 사당이 세워졌으며, 이순신, 이완, 이봉상 3인의 위패가 모셔졌다.그러나 1863년 흥선대원군이 어린 고종을 대신하여 섭정을 시작하며 내린 서원 철폐령으로 인해 현충사는 존폐 위기에 놓였다. 당시 유생들은 이순신의 업적을 기리는 사당을 없애는 것은 부당하다며 반발했지만, 결국 흥선대원군의 명령으로 폐지되는 수난을 겪었다.
1910년 한일 병합으로 일제강점기가 시작되면서 현충사는 조선총독부의 탄압으로 또다시 위기에 처했다. 특히 일본인이 이순신 묘소와 현충사를 위탁 관리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민족적 공분을 샀다. 이에 1932년 동아일보 주관으로 현충사 복원을 위한 국민 모금 운동이 전개되었고, 모인 성금으로 사당을 현재의 모습으로 중건하고 충무공의 영정을 다시 모셨다.
2. 1. 1. 이순신 유적 보존 운동과 윤치호
1930년대 초, 이순신 가문의 개인적인 빚 때문에 이순신 사당의 위토(位土, 제사 비용을 충당하기 위한 토지)가 일본인 투기꾼에게 넘어갈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당시 이순신 종손가는 살림이 어려워져 돈을 빌려 쓰다가 원금 1,300원과 이자를 합쳐 총 2,100원의 빚을 지게 되었다. 1930년 9월, 채권자였던 동일은행은 여러 차례 빚 독촉 끝에 그 해 5월 말까지 갚지 않으면 위토 60두락(斗落)을 경매에 넘기겠다고 통보했다.[4] 경매에서 일본인이 가장 높은 가격을 제시하면서 이순신 관련 유적이 일본인의 손에 넘어갈 절체절명의 상황에 놓였다.이 소식을 접한 사회운동가 윤치호는 즉각 이순신 사당 위토 매입을 위한 모금 운동을 제안했다. 그는 송진우, 정인보, 김성수, 최남선 등에게 연락하여 이 문제 해결의 시급성을 호소했다. 윤치호가 이순신 후손의 빚을 대신 갚아주겠다고 나서자, 남궁 억, 한용운, 김성수, 정인보, 김병로, 조만식, 송진우, 안재홍, 홍명희, 허헌 등 각계 인사들이 즉각 동참 의사를 밝혔다.[3]
이러한 움직임이 언론을 통해 국민에게 알려지면서 민족적 관심사로 떠올랐고, 1931년 5월 26일 충무공유적보존회가 결성되었다.[4] 윤치호는 충무공유적보존회 위원장으로 선임되었으며, 남궁 억, 한용운, 정인보 등 15명의 위원이 활동했다. 전국 각지에서 약 2만여 명의 국민이 모금 운동에 참여하여 총 1만 6,021원의 성금이 모였다. 충무공유적보존회는 이 성금으로 종손가의 빚을 청산하고, 현충사를 중건했으며 위토를 추가로 매입했다.[4] 이로써 이순신 유적지와 현충사 위토가 일본인의 손에 넘어가는 것을 막아낼 수 있었다.
그러나 이순신 유족의 빚을 대신 갚는 일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윤치호는 일제로부터 불령선인(不逞鮮人)의 우두머리로 지목되어 내사를 받기도 했다.
3. 특징
이순신 장군의 애국 정신과 충렬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사당이다. 이곳에는 이순신 장군이 사용했던 장검 2자루와 옥로(玉鷺) 1구, 그리고 직접 기록한 '난중일기(亂中日記)' 등 중요한 유물이 보존되어 있다. 현충사와 그 주변 일대는 국가에 의해 성역(聖域)으로 지정되어 특별히 보호받고 있다.
4. 관리 및 운영
현재 문화재청 산하 현충사관리소가 운영하고 있다. 과거에는 소정의 입장료(어른 500원, 어린이 300원)를 받았으나 2012년부터 무료로 개방하고 있다. 매주 월요일은 휴관한다.
4. 1. 관람 시간
- '''하절기 (3월 ~ 10월):''' 09:00 ~ 18:00
- '''동절기 (11월 ~ 2월):''' 09:00 ~ 17:00
관람 종료 1시간 전까지 입장이 가능하다. 단, 반려견은 입장이 불가능하다.
5. 시설
현충사 경내에는 이순신 장군을 기리기 위한 다양한 시설들이 마련되어 있다. 주요 시설로는 이순신의 영정을 모신 본전과 숙종이 하사한 현판이 걸린 옛 본전이 있다. 또한 이순신이 젊은 시절을 보낸 고택과 그의 업적 및 관련 유물을 전시하는 이순신 기념관, 그리고 경내에 조성된 연못 등이 있다. 각 시설은 이순신 장군의 생애와 업적을 기리고 방문객에게 역사 교육의 장을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5. 1. 본전 (1967년 신축)
1967년에 새로 지어진 본전으로, 전통 한옥 양식으로 지어졌다. 내부에는 이순신의 영정이 봉안되어 있다. 본전에 걸린 현판의 글씨는 박정희 대통령이 직접 쓴 것이다.5. 2. 옛 본전 (1706년 건립)

1706년에 건립된 옛 본전은 현재의 본전과는 달리 역사적으로 오래된 건물이다. 숙종이 직접 하사한 현판이 그대로 걸려 있는 것이 특징이다. 1967년 지금의 본전이 새로 지어지면서, 옛 본전은 현재 전시 및 보존 목적으로 일반에 공개되고 있다.
5. 3. 고택
이순신이 젊은 시절 살았던 집이다. 원래는 이순신의 부인이 살던 곳이었으며, 현재는 전시 및 보존을 위해 관리되고 있다. 집 옆에는 우물인 충무정(忠武井)이 있다.5. 4. 연못
현충사 경내에 있는 인공 연못으로, 현충사 구역 확장 때 조성되었다.5. 5. 이순신 기념관
2011년 4월 28일 이순신 탄신일을 기념하여 개관하였다. 이순신의 업적과 당시 사용했던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다.참조
[1]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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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wowkorea.[...]
WoW!Korea
2014-11-16
[2]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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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신문
2017-02-03
[3]
뉴스
현충사 - 충무공 이순신장군의 옛집과 묘소, 활터
http://article.joins[...]
중앙일보
2013-03-24
[4]
뉴스
현충사관리소, 충무공 위토서 모내기 행사
http://www.daejonilb[...]
대전일보
2009-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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