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그리스 사회주의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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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범그리스 사회주의 운동(PASOK)은 1974년 그리스 군사정권 붕괴 이후 안드레아스 파판드레우에 의해 창당된 정당이다. 초기에는 좌파 민족주의, 사회주의적 성향을 보였으나, 점차 중도좌파, 사회 자유주의 정당으로 변화했다. 1981년 총선에서 승리하여 사회주의 정부를 수립했으며, 1980년대 개혁을 추진했다. 1990년대 초반 위기를 겪었지만, 1993년 재집권에 성공했다. 2004년 이후 쇠퇴기를 겪으며 여러 차례 선거에서 부진한 결과를 보였고, 2017년에는 '변화를 위한 운동'으로 재편되었다. 2022년에는 PASOK–KINAL로 재브랜딩되었으며, 현재는 사회주의 인터내셔널, 유럽 사회당 등과 연대하며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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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그리스 사회주의 운동 - [정당]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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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이름 | 범그리스 사회주의 운동 |
로마자 표기 | Panellínio Sosialistikó Kínima |
약칭 | ΠΑΣΟΚ (PASOK) |
창립일 | 1974년 9월 3일 |
해산일 | 2018년 3월 (신당 결성으로) |
후신 정당 | Κίνημα Αλλαγής |
본부 | 그리스 아테네, Xarilaou Trikoupi 50, 10680 |
슬로건 | 사회가 최우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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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상 | 녹색 }} 짙은 녹색 |
국가 | 그리스 |
청년 조직 | 파속 청년 |
학생 조직 | 범그리스 전투 학생 파벌 (ΠΑΣΠ) (대학교 조직) 범그리스 전투 학생 운동 (ΠΑΜΚ) (학교 조직; 활동 중단) |
노동조합 조직 | 범그리스 노동자 노동조합 운동 (ΠΑΣΚΕ) |
회원 수 | 189,000 (2022년) |
공식 웹사이트 | PASOK |
당가 | '오 일리오스 오 프라시노스' (푸른 태양) |
정치 | |
이념 | 사회민주주의 친유럽주의 과거: 민주사회주의 온건한 유럽회의주의 좌익 민족주의 그리스 민족주의 좌익 포퓰리즘 |
정치적 입장 | 중도좌파 |
국제 조직 | 진보동맹 사회주의 인터내셔널 |
유럽 정당 | 유럽 사회당 |
유럽 의회 그룹 | 사회민주진보동맹 |
선거 연합 | 올리브 나무 (2014) 민주주의 연합 (2015-2018) 변화를 위한 운동 (2018-2022) 변화를 위한 운동 (2022-현재) |
지도부 | |
당 대표 | 니코스 안드로울라키스 |
의회 | |
그리스 의회 | 30석 / 300석 |
유럽 의회 | 3석 / 21석 |
2. 역사
1974년 안드레아스 파판드레우가 창당한 범그리스 사회주의 운동(PASOK)은 1981년 그리스 최초의 사회주의 정부를 수립했다. 파판드레우 정부는 NATO와 EEC(현재의 EU) 가입에 대한 기존 입장을 바꾸는 등 실용적인 노선을 추구했다. 또한 대통령 권한 축소, 민법상 결혼 인정, 레지스탕스 운동 공식 인정 등 과감한 개혁을 추진했다.
1989년 선거에서 패배 후 1993년 재집권했으나, 파판드레우 총리의 건강 악화와 크레타 은행 관련 스캔들로 위기를 맞았다. 1996년 코스타스 시미티스 총리 취임 후 2004년 하계 올림픽 유치, 유로존 가입 등의 성과를 냈지만, 2004년 다시 야당이 되었다.
2009년 총선 승리로 재집권했으나, 그리스 경제 위기 속 긴축 정책 추진으로 국민들의 지지를 잃고 2012년 이후 선거에서 연이어 참패, 군소 정당으로 전락했다. 2015년 조지 파판드레우 전 총리의 탈당 및 신당 창당으로 더 큰 어려움을 겪었다.
2017년 PASOK는 중도좌파 세력 결집을 위해 신당 창당을 발표, 당명을 "변화를 위한 운동"(Κίνημα Αλλαγής|키니마 알라기스el)으로 변경했다. 2018년 포타미 등과 함께 KINAL을 결성했다.
2. 1. 창당과 초기 (1974년 ~ 1981년)
1974년 그리스 군사정권이 무너지고 민주주의가 회복된 후, 안드레아스 파판드레우는 "국가 독립, 국민 주권, 사회 해방, 민주적 과정"을 강령으로 내걸고 1974년 9월 3일 범그리스 사회주의 운동(PASOK)을 창당했다.[69] 초기 PASOK는 좌파 민족주의적이고 급진적인 사회주의적 성향을 띠었으며, 유로 공산주의를 우익이라고 비판할 정도로 급진적인 좌익 정당이었다.1974년 11월 총선에서 PASOK는 13.6%의 득표율로 12석을 얻어 콘스탄티노스 카라만리스가 이끄는 신민주주의당과 게오르기오스 마브로스의 중앙연합-신세력에 이어 군소 야당으로 시작했다. 그러나 1977년 11월 총선에서 25.3%의 득표율로 93석을 획득하며 주요 야당으로 부상했다.[70]
연도 | 득표수 | 득표율(%) | 의원수 | 상태 |
---|---|---|---|---|
1974년 | 666,413 | 13.6 | 12 | 군소 야당 |
1977년 | 1,300,025 | 25.3 | 93 | 주요 야당 |
2. 2. 집권과 개혁 (1981년 ~ 1990년)
1981년 10월 총선에서 범그리스 사회주의 운동(PASOK)은 48.1%의 득표율로 압승, 172석을 확보하여 1924년 이후 그리스 최초의 사회주의 정부를 수립했다.[15] 안드레아스 파판드레우 총리는 선거 운동 기간 동안 NATO와 유럽 경제 공동체(EEC) 탈퇴를 주장했으나, 집권 후 현실적인 노선으로 전환하여 그리스의 EEC 가입 재협상을 추진, EEC로부터 그리스에 대한 혜택과 보조금을 확보하는 데 뛰어난 협상 능력을 보였다.PASOK 정부는 그리스 헌법 개정을 통해 대통령 권한을 축소하고 총리와 행정부 권한을 강화했다.[16] 종교 의식 없는 민법상 결혼을 종교적 결혼과 동등하게 인정하고,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좌익 레지스탕스 운동을 공식 인정했다. 좌익 레지스탕스 전투원에게 국가 연금을 지급하고, 그리스 내전 당시 좌익 정치 망명자들의 귀환을 허가했다. 또한 국민 건강 시스템을 구축하고, 반공주의적 전후 체제의 억압적인 법률을 폐지했으며, 임금 인상과 독립적 외교 정책을 추진했다. 가족법 개혁을 통해 여성 권리를 강화하고, 1984년에는 그리스 헌병대 군경을 폐지했다.[16]
1985년 6월 총선에서 PASOK은 45.8%의 득표율로 161석을 얻어 재집권했다.[15] 그러나 1988년 말, 언론의 재정 및 부패 스캔들 보도와 파판드레우 총리 연루 의혹 제기, 1기 케인스주의 정책 이후 시행된 재정 긴축 조치로 정부 인기와 파판드레우 총리의 건강이 모두 악화되었다. 1989년 6월 총선에서 PASOK은 39.1%의 득표율로 패배하여 정권을 내주었다.
연도 | 득표수 | 득표율 | 의원수 | 상태 |
---|---|---|---|---|
1981년 | 2,726,309 | 48.1% | 172 | 집권여당 |
1985년 | 2,916,735 | 45.8% | 161 | 집권여당 |
1989년 6월 | 2,551,518 | 39.1% | 125 | 주요 야당 |
1989년 11월 | 2,724,334 | 40.7% | 128 | ND-PASOK-SYN 거국내각 참여 |
1990년 | 2,543,042 | 38.6% | 123 | 주요 야당 |
2. 3. 야당 시기와 재집권 (1990년 ~ 2009년)
안드레아스 파판드레우가 크레타 은행 부정에 연루된 혐의로 기소되었을 때, PASOK는 내부 갈등을 겪으며 위기에 빠졌다.[69] 그러나 파판드레우는 결국 무죄 판결을 받았다. 1993년 10월 선거에서 파판드레우는 마케도니아와 키프로스 문제에 대해 애국심에 호소하는 주장을 펼쳐 재집권에 성공했다. 그러나 1995년 파판드레우의 건강이 악화되기 시작하면서, PASOK는 리더십 부재라는 위기 상황에 놓였다.1996년 1월, 파판드레우는 건강 문제로 총리직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후임 총리로는 PASOK의 현대화를 주장하는 서유럽 통일주의파 후보인 코스타스 시미티스 전 상공업 장관이 취임했다. 같은 해 6월, 파판드레우는 사망했다.
1996년 9월 선거에서 시미티스는 그리스의 유로 지역 가입을 주장하며 (파판드레우 시대에 우세했던 PASOK 내부의 그리스 민족주의적 세력은 감소하고 있었다) 선거에서 승리하였다.
연도 | 득표수 | 득표율 | 의원수 | 상태 |
---|---|---|---|---|
1990년 | 2,543,042 | 38.6% | 123 | 주요 야당 |
1993년 | 3,234,777 | 46.9% | 170 | 집권 여당 |
1996년 | 2,813,245 | 41.5% | 162 | 집권 여당 |
2000년 | 3,007,596 | 43.8% | 158 | 집권 여당 |
2004년 | 3,002,531 | 40.6% | 117 | 주요 야당 |
2007년 | 2,727,853 | 38.1% | 102 | 주요 야당 |
2009년 | 2,997,530 | 43.9 % | 160 | 집권 여당 |
코스타스 시미티스 총리 아래에서, PASOK는 1997년 9월 2004년 하계 올림픽 개최권을 획득하고, 2001년에는 유로존에 편입되는 등의 성과를 거두었다.
코스타스 시미티스는 2000년 4월 총선에서 43.8%의 득표율과 158석으로 근소한 차이로 재선에 성공했는데, 이는 거의 20년 가까이 집권해 온 정당으로서는 상당한 성과였다.
연도 | 득표율 | % | ±증감율 | 의원수 | +/− | 순위 | 대표 |
---|---|---|---|---|---|---|---|
1994년 | 2,458,619 | 37.6% | +1.7 | 10 | +1 | #1 | 안드레아스 파판드레우 |
1999년 | 2,115,844 | 32.9% | -4.7 | 9 | -1 | #2 | 코스타스 시미티스 |
2004년 | 2,083,327 | 34.0% | +1.1 | 8 | -1 | #2 | 게오르기오스 파판드레우 |
2009년 | 1,878,859 | 36.6% | +2.6 | 8 | ±0 | #1 | 게오르기오스 파판드레우 |
2. 4. 경제 위기와 쇠퇴 (2009년 ~ 2015년)
2004년 총선에서 패배하여 야당이 되었으나, 2009년 그리스 총선에서 43.9%의 득표율로 승리하며 재집권했다.[20] 그러나 정권 교체 직후 그리스 경제 위기가 발생하며 PASOK 정부는 긴축 재정 정책을 추진할 수밖에 없었고, 이는 국민들의 반발을 샀다. 2011년 10월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92%가 정부에 실망했으며, 5%만이 차기 선거에서 PASOK 정부가 국가에 최선이라고 답했다.[12]2012년 5월 총선에서 PASOK는 13.2%의 득표율로 제3당으로 추락하는 참패를 겪었다.[22] 이후 신민주당과의 연립 정부에 참여했으나, 지지율 하락은 계속되었다. 2015년 1월 총선에서는 4.7%의 득표율로 제7당으로 전락하며 군소 정당으로 전락했다. 이는 그리스 경제 위기에 대한 책임론과 더불어, 전 총리 조지 파판드레우의 탈당 및 신당 창당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72][73]
연도 | 득표수 | 득표율 | 의원수 | 상태 |
---|---|---|---|---|
2009년 | 2,997,530 | 43.9% | 160 / 300 | 집권 여당 |
2012년 5월 | 833,452 | 13.2% | 41 / 300 | 제3당 |
2012년 6월 | 756,024 | 12.3% | 33 / 300 | 신민주당과 연립 정부 구성 |
2015년 1월 | 289,482 | 4.7% | 13 / 300 | 제7당 |
2. 5. 변화를 위한 운동 (2015년 ~ 현재)
2015년 총선에서 PASOK는 의석과 득표율이 더욱 감소하여 의회 제6당으로 추락했다. 이는 선거 직전 전 총리이자 전 당수였던 파판드레우가 PASOK를 탈당하고 신당 "민주사회주의자 운동"을 결성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72][73] 같은 해 9월에 다시 실시된 총선에서는 민주좌파와 정당 연합을 맺어 이전보다 4석 증가한 17석을 획득하며 제4당이 되었다.2017년 7월, PASOK는 더 넓은 중도좌파 세력을 모으기 위해 새로운 정당 결성을 발표했다.[74] 11월에는 당명을 "변화를 위한 운동" (Κίνημα Αλλαγής|키니마 알라기스el)으로 결정했다.[75] 2018년 3월, 중도좌파 정당인 포타미 (강) 및 다른 사회민주주의자들과 함께 KINAL을 결성했다.[76]
3. 역대 지도부
2007년



202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