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토 유키 (198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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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사이토 유키는 홋카이도 삿포로시 출신의 전 야구 선수로, 홋카이도 삿포로 제일 고등학교 시절 '손수건 왕자'라는 별명으로 인기를 얻었다. 와세다 대학을 졸업하고 2005년 고교생 드래프트 1순위로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에 입단하여 2010년 퍼시픽 리그 신인왕을 수상했다. 2014년 은퇴 후 방송 활동과 야구 관련 사업에 종사하고 있다.

사이토 유키 (1987년)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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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역 시절 (2009년 9월 19일, 한신 고시엔 구장에서)
이름사이토 유키
원어명齊藤 悠葵 (Saitō Yūki)
출생일1987년 6월 20일
출생지후쿠이현 요시다군 에이헤이지정
신장186cm
체중86kg
포지션투수
투구좌투
타석좌타
선수 경력
고등학교후쿠이현립 후쿠이 상업 고등학교
프로 입단2005년 NPB 드래프트 고교생 드래프트 3순위
소속 구단히로시마 도요 카프 (2006년 ~ 2014년)
첫 출장2006년 10월 1일
마지막 출장2012년 7월 27일
연봉 정보
연봉1,700만 엔 (201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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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87년 출생 - 김여정
    김여정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으로, 김정일과 고용희 사이에서 태어나 김정은의 여동생이며, 조선로동당 핵심 실세로 부상하여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 등 주요 외교 행사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대외적으로 강경한 어조의 담화를 발표하며 대남·대미 압박을 주도하기도 한다.
  • 1987년 출생 - 한규종
    한규종은 대한민국의 전직 스타크래프트, 스타크래프트 II 프로게이머이자 전 KT 롤스터 코치로, 선수 시절 KeSPA Cup 아마추어 입상 및 KPGA TOUR 3위 등의 경력이 있으며, 코치로서는 SK플래닛 스타크래프트 II 프로리그 12-13에서 팀을 3위로 이끌었다.

2. 프로 입단 전

(내용 없음)

2.1. 아마추어 경력

지비 소년 야구 클럽에서 야구를 시작해 후쿠이 리틀 시니어를 거쳐 후쿠이 상업고등학교에 진학했다.

1학년 때인 2003년 여름 고시엔에는 등번호 11번을 달고 출전했다. 본인이 직접 경기에 나서지는 않았지만, 소속팀 후쿠이 상업고등학교는 2회전에서 훗날 팀 동료가 되는 고쿠보 테츠야가 속한 PL 학원을 꺾었다. 이어진 3회전 이와쿠니 고등학교와의 경기에서는 팀이 뒤지고 있던 5회부터 구원 등판하여 1실점(1자책점)을 기록했으나 팀의 패배를 막지는 못했다.

이후 왼쪽 팔꿈치 통증 등으로 인해 에이스 하야시 케이스케의 백업 투수로 활동했다.

3학년 때는 봄 고시엔(선발 대회)과 여름 고시엔에 모두 출전했다. 고시엔 무대에는 총 3차례(봄 1회, 여름 2회) 출전했으며, 6경기에 등판했다. 당시 팀에는 프로 구단의 주목을 받는 우완 투수 하야시와 좌완 투수 사이토가 함께 있어 '오른쪽의 하야시, 왼쪽의 사이토'로 불리는 '트윈 타워'로 주목받았다. 투수뿐만 아니라 타자로서도 재능을 보여 고교 통산 34개의 홈런을 기록했다.

2005년 시즌 종료 후 열린 고교생 드래프트에서 히로시마 도요 카프에 3순위로 지명되어 입단했다. 당시 직구 최고 구속은 130 km/h대에 머물렀지만 뛰어난 제구력을 갖춘 것으로 평가받았다. 또한 고교 통산 34홈런과 50m 달리기 6.3초의 기록에서 알 수 있듯 타격과 주루 능력도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드래프트 지명 당시 인터뷰에서는 입단 후 목표로 "파와프로 게임에 나오고 싶다"고 말했는데, 이는 고교 졸업 1년차임에도 불구하고 《실황 파워풀 프로 야구 13 결정판》에 등장하며 실현되었다.

3. 프로 입단 후

히로시마 도요 카프에 입단한 사이토 유키는 2006년, 고졸 신인임에도 1군에 데뷔하여 요미우리 자이언츠를 상대로 첫 등판에서 선발승을 거두는 인상적인 출발을 보였다. 이는 구단 최초의 고졸 신인 첫 등판·첫 선발·첫 승리 기록이었다. 당시 동명이인인 사이토 유키의 인기에 힘입어 '붉은 손수건 왕자'(赤いハンカチ王子일본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2007년에는 신인왕 후보로 거론되었으나, 투구 폼 난조로 부진한 성적을 기록했다. 2008년에는 등번호를 21번으로 바꾸고 시즌 중반 1군에 복귀하여 3승을 거두며 가능성을 다시 보여주었다. 2009년에는 처음으로 개막 1군 엔트리에 포함되어 선발 로테이션을 꾸준히 소화하며 9승을 기록, 팀의 주축 투수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2010년에는 다시 부진을 겪었고, 2011년에는 허리 부상 등으로 인해 1군 등판 기회를 얻지 못했다. 2012년 6경기에 등판하여 2승을 거둔 것이 마지막 1군 기록이었으며, 이후 2년간 1군 등판 없이 2014년 10월 구단으로부터 전력 외 통보를 받고 현역에서 은퇴했다.

3.1. 2006년

이듬해 2006년, 2군 리그인 웨스턴 리그에서 2점대 평균 자책점을 기록하는 안정적인 투구를 보여주어 고졸 신인임에도 1군으로 승격되었다. 10월 1일 요미우리 자이언츠와의 22차전 경기에 선발 등판하여 5이닝 동안 피안타 3개, 무볼넷, 무실점으로 호투하며 1군 데뷔전에서 첫 승리 투수가 되었다. 이는 드래프트 제도가 도입된 이후 구단 역사상 처음 나온 고졸 신인의 첫 등판·첫 선발·첫 승리 기록이었으며, 역대 4번째로 요미우리 자이언츠를 상대로 첫 등판하여 첫 선발승을 거둔 투수이기도 했다.

같은 해 고교 야구 대회에서 활약하며 '손수건 왕자'라는 별명으로 유명해진 사이토 유키와 이름이 같다는 이유로, 언론에서는 그에게 '붉은 손수건 왕자'(赤いハンカチ王子일본어)라는 별명을 붙였다. 경기 후 히어로 인터뷰에서는 실제로 붉은 손수건으로 땀을 닦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공교롭게도 사이토 유키가 1군 데뷔 첫 승을 거둔 날, 낮에 열린 노지기쿠 효고 국체 고교 야구 경기에서는 동명이인 사이토 유키 역시 후쿠치야마 세이미 고등학교를 상대로 완봉승을 거두었다.

3.2. 2007년

전년도 활약 덕분에 신인왕 수상 자격이 있었고, 주간 베이스볼 등 언론에서는 유력한 신인왕 후보로 꼽았다. 하지만 스프링 캠프 시작 무렵 투구 폼이 무너지면서 장점으로 꼽히던 제구력을 잃어버렸다. 정규 시즌에 들어서도 컨디션은 좀처럼 회복되지 않았고, 결국 웨스턴 리그에서 4승 8패, 평균자책점 6.11에 그쳤으며, 리그 최다인 12개의 피홈런과 53개의 사사구, 9개의 폭투, 66실점을 기록하는 등 매우 부진한 성적으로 시즌을 마감했다. 1군 무대에서도 2경기에 등판했지만 1패와 평균자책점 5.40이라는 기대 이하의 성적을 남겼다.

3.3. 2008년

등번호가 60번에서 21번으로 변경되었다. 시즌 초반에는 부상으로 인해 출발이 늦어졌지만, 중반부터 웨스턴 리그에서의 안정적인 투구를 인정받아 8월 30일 1군에 합류했다. 1군 복귀 경기에서 5이닝 무실점의 호투로 2년 만에 승리를 거두었고, 이후 선발 로테이션의 한 축을 담당하며 시즌 3승을 기록했다. 9월 19일 주니치 드래곤스전에서 승리한 후, 시상대에서 오다 유지성대모사로 유명한 야마모토 타카히로의 성대모사를 선보였다. 이는 고교 선배인 아마야 소이치로 등의 지시에 따른 것으로 알려졌으며, 당시 히로시마 시민 구장에서의 첫 승리였지만, 본인은 시상대에서 무엇을 할지 생각하느라 정신이 없었다고 회고했다.

3.4. 2009년

오픈전부터 좋은 결과를 거두어 처음으로 개막 1군에 진입했다. 호투해도 항상 100구 전후로 교체되는 기용법 때문에 규정 투구 이닝에는 도달하지 못했지만, 선발 투수로서 연간 안정적인 투구를 선보였다. 시즌 도중 이탈 없이 선발 로테이션을 계속 지켜냈고, 패수가 앞섰지만 9승 11패의 좋은 성적을 거두어 팀의 주축 선수 중 한 명이 되었다. 7월 15일 마쓰다 스타디움에서 열린 요코하마 베이스타즈전에서는 사에키 타카히로에게 홈스틸을 허용했다(포수는 아이자와 츠바사).

3.5. 2010년

2010년에는 기대를 받았지만, 시즌 초반부터 부진한 경기가 이어져 방어율이 5점대에 머물렀고, 선발 로테이션에서 제외되는 등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시즌 후반부터는 어느 정도 안정감을 되찾아 프로 데뷔 후 첫 완투도 경험했다. 이 시즌에는 동료들의 도움도 있었는데, 8월 4일 요코하마 베이스타즈전에서는 아카마츠 마사토가, 보름 뒤인 8월 22일 같은 요코하마전에서는 아마야 소이치로가 홈런성 타구를 잡아내는 호수비를 보여주었다.

3.6. 2011년

개막 전부터 허리에 통증을 느끼는 등 부상이 잇따라, 1군에서 등판할 기회가 없었다.

3.7. 2012년 ~ 은퇴

2012년에는 6경기에 등판하여 2승을 거두었다. 그러나 2013년과 2014년에는 2년 연속 1군 등판 기록이 없었다. 2013년 6월 2일 웨스턴 리그 공식전에서는 프로 입단 후 유일한 홈런을 기록하기도 했다. 2014년 10월 2일, 구단으로부터 전력 외 통보를 받고 현역에서 은퇴했다.

4. 은퇴 후

2016년 5월 27일, 첫째 아이가 태어났다.

4.1. 야구 관련 사업

2015년 3월 1일에 방송된 TV 도쿄의 프로그램 『모야모야 사마즈 2』(モヤモヤさまぁ〜ず2일본어)를 통해 언더아머(Under Armour영어) BASEBALL HOUSE 가와사키 큐지점에서 근무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이후 마토바 칸이치의 뒤를 이어 점장으로 승격했다.

4.2. 방송 활동

2015년 3월 1일에 방송된 TV 도쿄의 예능 프로그램 『모야모야 사마즈 2』를 통해 언더 아머(Under Armour) BASEBALL HOUSE 가와사키 큐지점에서 근무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이후 마토바 칸이치의 뒤를 이어 점장으로 승진했다.

2020년 3월 2일부터는 주식회사 Viibar가 운영하는 동영상 배포자 매니지먼트 프로덕션 '비바'의 초기 멤버로 합류하여, 라이브 커뮤니케이션 앱 'Pococha'에서 개인 방송 활동을 시작했다.

5. 플레이 스타일

최고 구속 146km/h의 강속구와 함께 슬라이더, 커브, 체인지업 등 다양한 구종을 구사한다. 경기 중에는 주로 140km/h 전후의 직구를 던지며, 강력한 구위보다는 제구력과 예리함으로 승부하는 스타일이다. 도움닫기를 할 경우 최고 149km/h까지 던질 수 있어, 아직 신체 능력을 완전히 활용하지는 않는다는 평가를 받는다.

프로 입단 전부터 주니치 드래건스야마모토 마사를 동경하여 학생 시절부터 그의 투구 폼을 비디오로 연구해왔다. 특히 2008년 가을 캠프부터는 야마모토 마사와 같은 커브를 익히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6. 선수 정보

사이토 유키는 후쿠이 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005년 고교생 드래프트에서 히로시마 도요 카프에 3순위로 지명되어 입단한 좌완 투수이다.

고교 시절에는 하야시 케이스케와 함께 '오른쪽의 하야시, 왼쪽의 사이토'로 불리는 '트윈 타워'를 이루며 활약했고, 고시엔 무대에 총 3차례(봄 1회, 여름 2회) 출전하여 6경기에 등판했다. 또한, 고교 통산 34개의 홈런을 기록하고 50m 달리기를 6.3초에 주파하는 등 타격과 주루 능력도 갖춘 선수로 평가받았다.

프로 입단 후에는 2006년 요미우리 자이언츠를 상대로 첫 등판하여 첫 승리를 거두었으며, 이후 선발과 구원을 오가며 활동했다. 주요 개인 기록으로는 첫 등판·첫 선발·첫 승리, 첫 탈삼진(이승엽), 첫 홀드, 첫 완투승 등이 있다. 사용했던 등번호는 60번(2006년 ~ 2007년), 21번(2008년 ~ 2013년), 36번(2014년)이다.

선수로서의 자세한 기본 정보, 연도별 성적, 개인 기록, 등번호는 아래 관련 하위 섹션에서 확인할 수 있다.

6.1. 기본 정보

지비 소년 야구 클럽에서 야구를 시작하여 후쿠이 리틀 시니어를 거쳐 후쿠이 상업고등학교에 진학했다.

1학년 때 여름 고시엔에 등번호 11번을 달고 출전했다. 본인이 직접 경기에 나서지는 못했지만, 소속팀 후쿠이 상업고등학교는 2회전에서 훗날 팀 동료가 되는 고쿠보 데쓰야 등이 속한 PL 학원을 상대로 승리했다. 이어진 3회전 이와쿠니 고등학교와의 경기에서는 팀이 뒤지고 있던 5회부터 구원 투수로 등판하여 1자책점을 기록했으나 팀은 패배했다. 이후 왼쪽 팔꿈치 통증 등으로 인해 에이스 하야시 케이스케의 백업 투수 역할을 맡기도 했다.

3학년 때는 봄 고시엔(선발 대회)과 여름 고시엔에 모두 출전했다. 고시엔에는 총 3차례(봄 1회, 여름 2회) 출전하여 6경기에 등판했다. 당시 팀에는 프로 구단의 주목을 받는 우완 투수(하야시 케이스케)와 좌완 투수(사이토 유키 본인)가 함께 있어 '오른쪽의 하야시, 왼쪽의 사이토'라는 '트윈 타워'로 불렸다. 타자로서도 재능을 보여 고교 통산 34개의 홈런을 기록했다.

2005년 고교생 드래프트에서 히로시마 도요 카프로부터 3순위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 입단 당시 직구 구속은 130 km/h대였지만 뛰어난 제구력을 갖춘 것으로 평가받았으며, 고교 통산 34홈런과 50m 달리기 6.3초의 기록에서 알 수 있듯이 타격과 주루 능력 또한 뛰어난 선수였다. 드래프트 지명 후 인터뷰에서는 입단 후 목표로 "실황 파워풀 프로 야구에 나오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는데, 이는 고교 졸업 1년차임에도 불구하고 게임 《실황 파워풀 프로 야구 13 결정판》에 등장하면서 실현되었다.

선수 경력
* 후쿠이 상업고등학교
* 히로시마 도요 카프 (2006년 ~ )

6.2. 연도별 성적

* 첫 등판·첫 선발·첫 승리 : 2006년 10월 1일, 대 요미우리 자이언츠 22차전(도쿄 돔), 5이닝 무실점
* 첫 탈삼진 : 상동, 1회말에 이승엽으로부터
* 첫 홀드 : 2010년 6월 22일, 대 한신 타이거스 8차전(요나고 시민 구장), 9회초에 6번째 투수로서 구원 등판, 2와 1/3이닝 무실점
* 첫 완투 승리 : 2010년 8월 22일, 대 요코하마 베이스타스 20차전(MAZDA Zoom-Zoom 스타디움 히로시마), 9이닝 1실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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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소속팀등판선발완투완봉무볼넷홀드승률타자이닝피안타피홈런볼넷고의사구사구탈삼진폭투보크실점자책점평균자책점WHIP
2006히로시마2200010001.0003910.161200700110.870.77
2007200000100.00081.220100100115.401.80
2008660003100.75013432.12141601261013123.341.14
2009272500091100.450582133.0140144813714069593.991.41
201023162004701.364459100.0135133723493063625.581.72
2012650002300.40012327.22421601131017165.201.45
통산: 6년6654200192301.45213453053283412038167901641514.46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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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수












2006히로시마20000----
2007201001.000
2008603001.000
20092733631.929
201023525001.000
201260610.857
통산6687141.952

6.3. 개인 기록

; 투수 기록
* 첫 등판·첫 선발·첫 승리: 2006년 10월 1일, 대 요미우리 자이언츠 22차전 (도쿄 돔), 5이닝 무실점
* 첫 탈삼진: 상동, 1회말 이승엽으로부터 헛스윙 삼진
* 첫 홀드: 2010년 6월 22일, 대 한신 타이거스 8차전 (요나고 시민구장), 9회초 6번째 투수로 구원 등판, 2와 1/3이닝 무실점
* 첫 완투승: 2010년 8월 22일, 대 요코하마 베이스타즈 20차전 (MAZDA Zoom-Zoom 스타디움 히로시마), 9이닝 1실점

; 타격 기록
* 첫 안타: 2009년 6월 7일, 대 오릭스 버펄로스 3차전 (MAZDA Zoom-Zoom 스타디움 히로시마), 5회말 히라노 요시히사로부터 우전 안타

6.4. 등번호

* 60 (2006년 ~ 2007년)
* 21 (2008년 ~ 2013년)
* 36 (201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