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파 잉카
1. 개요
사파 잉카는 잉카 제국의 절대 군주를 지칭하며, 신체적, 도덕적 자질을 평가하는 시험과 종교 의식을 통해 선출되었다. 사파 잉카는 정치, 사회, 군사, 경제 등 모든 분야에서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며, 대규모 토목 공사, 도로망 건설, 종교 활동 장려 등을 수행했다. 또한 백성을 돌보는 역할을 수행하며, 상징물을 통해 신성함을 드러냈다. 잉카 제국은 쿠스코 왕국을 시작으로 파차쿠티 시대에 이르러 팽창했고, 스페인 정복 이후에도 꼭두각시 사파 잉카와 망명 정부가 존재했다.
2. 사파 잉카의 선출
사파 잉카는 단순한 장자 상속으로 결정되지 않았고, 엄격한 시험을 통해 신체적, 도덕적 자질을 평가받아 신이 선택한 자로 여겨졌다. 이 시험에는 태양신 인티가 잉카의 자리를 계승할 자를 지명하는 복잡한 종교 의식이 수반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잉카들은 자신의 후계를 확보하기 위해 자신이 좋아하는 아들을 공동 통치자로 임명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위라코차 잉카는 우르쿠 잉카를 왕위에 함께 세웠다. 코야(사파 잉카의 정실 부인)는 어떤 아들이 아버지를 계승하는 데 적합한지 결정하는 데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3. 사파 잉카의 권한과 역할
사파 잉카는 제국의 절대 군주로서 정치, 사회, 군사, 경제 등 모든 분야에서 막강한 권력을 행사했다. 삭사이와만과 같은 대규모 토목 공사나 도시 계획을 지시하고 감독했다.
사파 잉카의 주요 업적 중 하나는 제국 전체를 연결하는 도로망 건설이었다. 이 도로망을 통해 관리, 사절, 군대가 빠르게 이동했으며, 탐보와 현수교가 설치되어 효율성을 높였다. 제국 전역에 창고를 건설하고 광대한 식량 및 자원 재분배 시스템을 갖추어 백성들이 필요한 물품을 공급받도록 했다. 상비군 지휘관으로서 군사 식민지를 건설하여 제국을 확장하고 통치했다.
종교적으로 사파 잉카는 태양신 인티 숭배를 장려하고, 달력을 체계화했다. 정치적으로는 감찰관을 파견하여 관리들의 충성심과 효율성을 감독하고 정복된 백성들로부터 공물을 징수했다. 쿠스코를 중심으로 통합적이고 분권화된 정부를 운영했으며, 신뢰할 수 있는 총독들을 임명했다.
경제적으로 각 지방의 자원에 따라 세금을 징수하고, 쿠라카(지방 지도자)를 통해 간접 통치했다.
사파 잉카는 '와차코야'(가난한 자들의 애인이자 후원자)라는 칭호를 가지며 백성을 돌보았다. 가뭄이나 자연재해 발생 시 식량을 재분배하고, 국가 주도 프로젝트를 통해 일자리를 제공했으며, 국가 주도의 종교 축제를 장려하여 백성들의 결속을 다졌다.
4. 사파 잉카의 상징
사파 잉카는 여러 상징물을 통해 자신의 신성함을 드러냈다. 공식 석상에서는 토파야우리(topayauri케추아어)라는 홀, 우쉬누(ushno케추아어)라는 황금 왕좌, 순투르 파우카르(suntur páucar케추아어)라는 깃털 창, 그리고 마스카파이차(mascapaicha케추아어)라는 왕실 휘장을 사용했다. 마스카파이차는 보통 야우토(llauto케추아어)라는 머리띠에 달았지만, 아마차나 추쿠(amachana chuku케추아어)라는 군용 투구에 달기도 했다.
종교 의식에는 나파(napa케추아어)라는 신성한 흰 불꽃이 동행했는데, 붉은 담요로 덮고 금 귀걸이로 장식했다.
직물은 지위와 부를 상징했기 때문에, 사파 잉카는 같은 옷을 두 번 입지 않았다고 한다.
5. 잉카 제국의 역대 사파 잉카
잉카 제국의 역대 사파 잉카 목록은 다음과 같다.
제1왕조
* 망코 카팍(기원후 1200년경-1230년경)
* 신치 로카(1230년경-1260년경)
* 로퀘 유팡키(1260년경-1290년경)
* 마이타 카팍(1290년경-1320년경)
* 카팍 유팡키(1320년경-1350년경)
제2왕조
* 잉카 로카(1350년경-1380년경)
* 야와르 우아칵(1380년경-1410년경)
* 비라코차 잉카(1410년경–1438년)
* 파차쿠티(1438년–1471년): 잉카 제국의 기틀을 다짐
* 투팍 잉카 유팡키(1471년–1493년)
* 우아이나 카팍(1493년–1527년): 잉카 제국 최대 영토 확보
* 우아스카르(1527년–1532년)
* 아타우알파(1532년–1533년): 실질적인 마지막 황제
스페인 정복 이후 잉카 부흥세력의 사파 잉카
* 투팍 우알파(1533년): 스페인의 꼭두각시
* 망코 잉카 유팡키(1533년–1544년): 스페인의 꼭두각시, 탈출 후 망명 정부 수립
* 파울루 잉카(1536년–1549년)
* 사이리 투팍(1544년–1560년)
* 티투 쿠시 유팡키(1563년–1571년)
* 투팍 아마루(1571년–1572년): 망명 정부의 마지막 황제
5.1. 쿠스코 왕국 (초기 왕조)
잉카의 최고 통치자는 중세 유럽의 왕과 비슷한 존재였지만, 왕위 계승 방식은 장자 상속이 아니라 신체적, 도덕적 자질을 평가하는 엄격한 시험을 통해 신이 선택하는 방식이었다. 이 시험에는 복잡한 종교 의식이 수반되었고, 태양신 인티(Inti)가 잉카의 자리를 계승할 자를 지명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잉카들은 자신의 후계를 확보하기 위해 좋아하는 아들을 공동 통치자로 임명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위라코차 잉카는 우르쿠 잉카를 왕위에 함께 세웠다. 사파 잉카의 정실 부인인 코야는 어떤 아들이 왕위를 계승할지에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초기 잉카 통치자들은 후린(Hurin) 부족과 관련이 있었으며, 그들의 지배는 쿠스코 지역에 한정되었다. 이들의 기원은 신화적인 쿠스코 건설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5.1.1. 제1왕조
망코 카팍(기원후 1200년경-1230년경)은 쿠스코 왕국의 시조이자 태양신 인티(Inti)의 아들로 여겨진다. 신치 로카(1230년경-1260년경)는 망코 카팍의 아들이며, 로퀘 유팡키(1260년경-1290년경)는 신치 로카의 아들이다. 마이타 카팍(1290년경-1320년경)은 로퀘 유팡키의 아들이며, 카팍 유팡키(1320년경-1350년경)는 마이타 카팍의 아들이다.
사파 잉카 1대 통치자들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이들은 후린(Hurin) 부족과 관련이 있었으며, 그들의 지배는 쿠스코 왕국을 넘어서지 못했다. 그들의 기원은 신화적인 쿠스코 건설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며, 후대의 창건 신화에 가려져 있다.
후대에 '카팍(capac)'은 족장을, '신치(sinchi)'는 지도자를 의미했다. 초기 왕조는 '하왕조'(hurin)라고도 불리며, 업적은 일부 전해지고 있지만, 상당히 전설적인 부분이 많다. 특히 초대 만코 카팍의 실존 여부는 의문시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13세기에 왕조가 시작되었다고 생각된다.
5.2. 쿠스코 왕국 (후기 왕조)
제2왕조는 하난(Hanan) 지파와 관련이 있으며, 마지막 후린 사파 잉카(Hurin Sapa Inca)인 카팍 유판키(Cápac Yupanqui)의 아들인 잉카 로카(Inca Roca)에 의해 건국되었다. 카팍 유판키 사후, 그의 또 다른 아들인 잉카 로카의 이복형제 키스페 유판키(Quispe Yupanqui)가 후계자가 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하난(Hanan)이 반란을 일으켜 대신 잉카 로카를 옹립했다.
| 제목 | 사파 잉카 | 초상 | 출생 | 왕비 | 사망 |
|---|---|---|---|---|---|
| 쿠스코의 잉카 | 잉카 로카(Inca Roca) | 카팍 유판키(Cápac Yupanqui)의 아들 | 마마 미카이(Mama Mikay) | ||
| 야우아르 우아카크(Yahuar Huacac) | 잉카 로카(Inca Roca)의 아들 | 마마 치키야(Mama Chikya) | |||
| 비라코차(Viracocha) | 야우아르 우아카크(Yáhuar Huácac)의 아들 | 마마 룬투 쿠야(Mama Runtu Quya) | 1438 | ||
| 파차쿠티(Pachacuti) | 비라코차의 아들 | 마마 아나와르키(Mama Anawarkhi) | 1471 |
1527년 단 며칠 동안만 잉카였던 니난 쿠요치(Ninan Cuyochi)는 천연두로 사망했다는 소식이 사파 잉카로 선포된 직후 쿠스코에 도착했기 때문에, 때때로 사파 잉카 목록에서 제외되기도 한다. 그는 아버지 우아이나 카팍(Huayna Capac)의 죽음을 목격했다. 예상 후계자였던 니난의 죽음은 우아스카르(Huáscar)와 아타왈파(Atahualpa) 사이의 잉카 내전(Inca Civil War)으로 이어졌고, 이는 정복자들이 잉카 제국을 정복할 때 이용한 약점이 되었다.
5.2.1. 제2왕조
* 잉카 로카 (1350년경-1380년경): 카팍 유팡키의 아들이며, 하난 부족 출신이다.
* 야와르 우아칵 (1380년경-1410년경): 잉카 로카의 아들이다.
* 비라코차 잉카 (1410년경–1438년): 야와르 우아칵의 아들이다.
* 파차쿠티 (1438년–1471년): 비라코차 잉카의 아들이며, 잉카 제국의 기틀을 다졌다.
5.3. 잉카 제국
파차쿠티 이전까지 케추아인(=잉카족)은 쿠스코 주변의 작은 부족에 불과했지만, 잉카 제국(타완틴수유)의 첫 번째 사파 잉카인 파차쿠테크 이후 대제국으로 확장되었다. 파차쿠티는 쿠스코 왕국을 넘어 주변 지역을 정복하고, 잉카 제국을 건설했다. 잉카 제국은 중앙 집권적인 관료 체제와 효율적인 탐보와 도로망, 관개 시설 등을 통해 번영했다.
사파 잉카는 제국의 절대 군주였으며, 국가의 정치, 사회, 군사, 경제적 방향을 자신의 권력에 집중시켰다. 종교적으로 태양의 상징이자 조상의 아버지로 여겨지는 인티 숭배를 장려했다.
전통적으로 황제가 죽거나 퇴위할 때마다, 그의 후계자는 아버지의 상속에서 제외되었고 자신의 왕족 씨족 또는 파나카를 형성했다. 새로운 사파 잉카는 자신의 후손들에게 물려줄 토지와 전리품을 얻어야 했다.
사파 잉카는 또한 가난하고 굶주린 사람들을 돌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가난한 자들의 애인이자 후원자"라는 뜻의 와차코야 또는 와크차 쿠야크로 불리기도 했다.
파차쿠티는 4개의 주(suyu)로 제국을 재편성하고 아포라고 불리는 지방관을 배치했다. 또한 침무 왕국의 방식을 도입하여 소유권과 수리권을 분할한 후 토지 소유권은 모두 잉카 제국에 속하는 것으로 규정했다.
투팍 잉카 유팡키와 우아이나 카팍 시대에 잉카 제국은 최대 영토를 확보했다. 특히 에콰도르 남부의 카냐리케추아어 여성을 어머니로 둔 우아이나 카팍 시대에 잉카 제국은 현재 콜롬비아 남부에서 칠레 북부에 이르는 최대 영토를 가지게 되었다. 우아이나 카팍은 키토를 제2의 수도로 삼았지만, 광대한 제국을 통치하기 위해 끊임없이 전쟁을 치러야 했다.
우아이나 카팍 사후, 니난 쿠요치가 황태자 지위에서 즉위했으나 며칠 후 천연두로 사망했다. 이것이 우아스카르와 아타우알파의 왕위 계승 전쟁으로 이어져 스페인의 정복의 간접적인 원인이 되었다.
역대 황제는 다음과 같다.
* 파차쿠티 (Pacha Kutiq케추아어, Pachacutien-short, 재위 1438년-1471년)
* 투팍 잉카 유팡키 (Tupaq Inka Yupanki케추아어, Tupac Inca Yupanquien-short, 재위 1471년-1493년)
* 우아이나 카팍 (Wayna Qhapaq케추아어, Huayna Capacen-short, 재위 1493년-1527년)
* 니난 쿠요치 (Ninan Cuyochi케추아어, Ninan Cuyochien-short, 재위 1527년?)
* 우아스카르 (Waskhar케추아어, Huáscaren-short, 재위 1527년-1532년)
* 아타우알파 (Ataw Wallpa케추아어, Atahualpaen-short, 재위 1532년-1533년)
5.4. 스페인 정복 이후
스페인의 정복자인 프란시스코 피사로는 잉카 제국의 내분을 틈타 아타우알파를 감금하고 우아스카르와 아타우알파 모두를 처형하여 잉카 제국을 붕괴시켰다.
스페인은 잉카 제국의 통치 체제가 완전히 소멸될 때까지 몇몇 사파 잉카들을 임명했다. 스페인의 꼭두각시 역할을 한 사파 잉카는 다음과 같다.
* 투팍 우알파 (재위 1533년)
* 망코 잉카 유팡키 (재위 1533년-1536년): 탈출하여 망명 정부를 세웠다.
* 파우류 투팍 유판키 (재위 1537년-1549년)
* 카를로스 파우류 잉카 (재위 1549년-1572년)
일반적으로 망명 정권을 세운 망코 잉카 유팡키를 정통으로 보고, 파우류 투팍 유판키와 카를로스 파우류 잉카는 역대에 포함시키지 않는다.
망코 잉카 유팡키는 빌카밤바를 근거지로 삼아 산악 지대에서 열대 우림 지대에 걸쳐 망명 정권 "빌카밤바의 잉카 제국"을 세우고 저항했다. 빌카밤바 잉카 제국의 황제는 다음과 같다.
* 망코 잉카 유팡키 (재위 1536년-1544년)
* 사이리 투팍 (재위 1545년-1560년)
* 티투 쿠시 (재위 1560년-1571년)
* 투팍 아마루 (재위 1571년-1572년)
"마지막 잉카 황제(사파 잉카)"는 3명으로 볼 수 있다. 실질적인 마지막 황제는 아타우알파이고, 스페인인의 꼭두각시로서 명목상 즉위한 마지막 황제는 망코 잉카 유팡키이며, 망명 정권의 마지막 황제는 투팍 아마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