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도수군통제사
1. 개요
삼도수군통제사는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의 수군을 통괄하는 지휘관을 의미한다. 하삼도 수군의 기지는 경상좌수영, 경상우수영, 전라좌수영, 전라우수영, 충청수영으로 구성되었다. 각 수영은 해당 지역의 해상 방어를 담당했으며, 임진왜란을 겪으며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특히 이순신은 전라좌수영을 기반으로 활약했으며, 경상우수영은 삼도수군통제영의 기능을 수행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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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 | 조선 |
|---|---|
| 명칭 | 삼도수군통제사 |
| 원어명 | 三道水軍統制使 |
| 소속 | 조선 수군 |
| 품계 | 종2품 |
| 관할 | 조선 수군 |
| 상관 | 도원수 |
| 관저 | 삼도수군통제영 |
| 임명자 | 조선 국왕 |
| 임기 | 일정하지 않음 |
| 초대 | 이순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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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삼도수군통제사 -
원균
원균은 조선 중기 무장으로, 여진족 토벌에 참여했으며 임진왜란 때 경상우도 수군절도사를 지냈으나 이순신과의 갈등 속에 칠천량 해전에서 패전 후 전사(또는 생존)한 인물이다. -
조선의 삼도수군통제사 -
이완 (1602년)
이완은 조선 시대 무신이자 정치인으로, 인조반정 공신 이수일의 아들이며, 병자호란 참전, 북벌 계획 참여, 훈련도감 대장 16년 재직 등 군사적 능력과 국방력 강화에 기여했으나 박지원의 《허생전》에서는 북벌을 주저하는 인물로 묘사된다. -
조선의 군사 -
병마절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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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군사 -
장용영
장용영은 조선 정조 때 국왕 호위를 위해 설치된 특수 군영으로, 숙위 체계 강화를 위해 설립되어 궁궐 숙위 및 국왕 호위 임무를 수행하며, 조직 확대, 독자적인 재정 운영, 체계적인 무예 훈련을 통해 강화되었으나, 정조 사후 재정 부담과 정치적 상황 변화로 폐지되었다. -
임진왜란 -
난중일기
《난중일기》는 이순신이 임진왜란 중 군중에서 직접 쓴 친필 일기로, 전쟁 상황과 개인적인 소회, 사회상 등이 기록된 7권의 일기이며 국보 제76호이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이다. -
임진왜란 -
임진록
임진록은 임진왜란을 배경으로 실존 및 허구적 인물이 등장하여 전쟁의 전개와 사건을 다루는 한국 고전 소설이며, 민중의 고통과 저항, 국난 극복 의지를 보여주는 영웅 서사시로 평가받고, 동명의 게임 시리즈로도 알려져 있다.
3. 하삼도의 수군 기지
하삼도(下三道)는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를 일컫는 말이다. 이 지명은 《고려사》에도 등장하며, 따라서 그 이전에도 쓰였던 지명임을 알 수 있다.
* 경상도
* 경상좌수영은 경상좌도 수군절도사의 진영으로, 왜구의 침입 경로인 낙동강에서 경주 지역까지의 수로 방어를 담당하였다. 임진왜란 당시 박홍이 지휘했으나 일본군에 의해 와해되었다. 정유재란 때는 이운룡이 옥포만호를 맡았으나, 원균의 칠천량 해전 패배 이후 경상도 지역 육상 전투에 참가하였다.
* 경상우수영은 경상우도 수군절도사의 진영으로, 삼도수군통제영 기능을 수행했다. 이순신과 원균이 통제사로 재임한 임진왜란 기간을 제외하면, 대부분 경상우수사가 통제사를 겸임하였다.
* 전라도
* 1479년 성종 10년 전라도 수군절도사영이 전라좌수영과 전라우수영으로 분리되었다. 전라좌수영은 내례만호진 자리(현재 여수)에 설치되었으며, 이순신이 임진왜란 발발 1년 전인 1591년에 전라좌도 수군절도사로 임명되었다. 5관 5포를 둔 작은 기지였으나 이순신이 통제사를 겸하면서 통제영 역할을 수행하였고, 이시언 수사까지 이어졌다. 류형 부임 이후 경상우수영으로 지위가 넘어갔지만, 조선 후기 중요성이 증대되었다.
* 1377년(고려 우왕 3년) 무안 당곶포에 처음 설치된 수군은 1440년(세종 22년) 해남 황원관으로 옮겨졌고, 1465년(세조 11년) 수군절도사영으로 승격하였다. 임진왜란 당시 이억기가 전라우수사로 있었으며, 칠천량 해전에서 전사한 후 김억추, 명량 해전 직후 안위가 임명되었다. 명량 해전의 주요 본거지였으며, 대동지지에 따르면 7관 18포로 구성되어 당시 조선 수군 군영 중 가장 규모가 컸다.
* 충청도
* 충청수영은 고려 말 왜구의 침입이 잦았던 충청도 지역에 설치된 수군 기지이다. 처음에는 간단한 방어진만 있었으나, 1447년(세종 29년) 대마도 정벌 이후 수군과 기지가 정비되면서 체계가 갖춰졌고, 1466년(세조 12년)에는 충청수군절도사로 승격되었다. 주요 임무는 왜구의 침탈을 막고 한양으로 가는 조운선을 보호하는 것이었다. 임란 때는 정걸과 선거이가 재임하였으며, 정유재란 때는 최호가 지휘했으나 칠천량 해전에서 전사하였다. 이후 이순신의 휘하 장수였던 권준이 후임으로 임명되었다. 현재의 오천항 지역에 해당한다.
3.1. 경상도
경상좌수영은 경상좌도 수군절도사의 진영으로, 주로 왜구의 침입 경로인 낙동강에서 경주 지역까지의 수로 방어를 담당하였다. 임진왜란 당시 박홍이 지휘했으나 일본군에 의해 와해되어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정유재란 때는 이운룡이 옥포만호를 맡았으나, 원균의 칠천량 해전 패배 이후 경상좌수군은 경상도 지역 육상 전투에 참가하였다.
경상우수영은 경상우도 수군절도사의 진영으로, 삼도수군통제영 기능을 수행했다. 이순신과 원균이 통제사로 재임한 임진왜란 기간을 제외하면, 대부분 경상우수사가 통제사를 겸임하였다.
3.1.1. 경상좌수영
경상좌수영은 경상좌도 수군절도사의 진영으로, 주로 왜구의 침입경로인 낙동강에서 경주 지역까지의 수로 방어를 담당하였다. 최초로 설치된 곳은 부산 동래현이었고, 태종 때 울산 개운포로 이전하였다가, 1592년 동래 남촌으로 옮겨갔다. 1635년 (인조 13년)에는 최초의 장소인 감만이포로 옮겼다가 왜관과 가깝다는 이유로 1652년 (효종 3년)에 다시 동래 남촌으로 옮겨가게 되었다. 임란 당시에는 박홍이 맡았지만 일본군에 의해 와해되면서 임란이 끝날 때까지 경상좌수영은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정유재란 당시에는 전 옥포만호 이운룡이 맡았으나 원균의 칠천량 해전 이후 삼도 수군이 전멸하자 경상좌수군은 당시 경상도 지역에서 육전에 참가하였다.
3.1.2. 경상우수영
경상우수영은 경상우도 수군절도사의 진영이다. 경상도 우수영은 처음에 거제에 두었다가 1604년(선조 37년) 고성(지금의 통영시)으로 옮겼다. 경상우수영은 삼도수군통제영으로 기능하였으며, 이순신과 원균이 통제사를 역임한 임진왜란 기간을 제외하면 대부분 경상우수사가 통제사를 겸임하였다.
3.2. 전라도
1479년 성종 10년 전라도 수군절도사영이 전라좌수영과 전라우수영으로 분리되었다. 전라좌수영은 내례만호진 자리(현재 여수)에 설치되었으며, 이순신이 임진왜란 발발 1년 전인 1591년에 전라좌도 수군절도사로 임명되었다. 5관 5포를 둔 작은 기지였으나 이순신이 통제사를 겸하면서 통제영 역할을 수행하였고, 이시언 수사까지 이어졌다. 류형 부임 이후 경상우수영으로 지위가 넘어갔지만, 조선 후기 중요성이 증대되었다.
1377년(고려 우왕 3년) 무안 당곶포에 처음 설치된 수군은 1440년(세종 22년) 해남 황원관으로 옮겨졌고, 1465년(세조 11년) 수군절도사영으로 승격하였다. 임진왜란 당시 이억기가 전라우수사로 있었으며, 칠천량 해전에서 전사한 후 김억추, 명량 해전 직후 안위가 임명되었다. 명량 해전의 주요 본거지였으며, 대동지지에 따르면 7관 18포로 구성되어 당시 조선 수군 군영 중 가장 규모가 컸다.
3.2.1. 전라좌수영
1479년 성종 10년 전라도 수군절도사영이 전라좌수영과 전라우수영으로 분리되면서 내례만호진 자리(현재 여수)에 설치되었다. 이순신은 임진왜란이 발발하기 1년 전인 1591년에 전라좌도 수군절도사로 임명되었다. 5관(순천, 흥양, 광양, 낙안, 보성), 5포(사도, 여도, 녹도, 방답, 발포)를 둔 작은 수군기지였지만 이순신이 연전연승을 하고, 통제사를 겸하게 되면서 통제영 역할을 수행하였다. 이순신의 후임인 이시언 수사까지는 통제영 역할을 수행하였지만 류형이 신임 통제사로 부임한 이후에는 경상우수영에 그 지위를 넘겨 주게 된다. 그러나 조선 후기로 가면서 점차 중요성이 증대되었다.
3.2.2. 전라우수영
1377년(고려 우왕 3년) 무안 당곶포에 수군이 처음 설치된 후, 1440년(세종 22년) 해남 황원관으로 옮겼다. 1465년(세조 11년) 수군절도사영으로 승격하였다. 임진왜란 당시 이억기가 전라우수사로 재임하였으며, 칠천량 해전에서 이억기가 전사한 다음에는 김억추가, 명량 해전 직후에는 거제현령 안위가 승진하여 임명되었다. 임진왜란 때 명량 해전의 주요 본거지가 되었다. 대동지지에 따르면 7관 18포로 구성되어 있어 임란 당시 조선 수군 군영 중 가장 규모가 컸다.
3.3. 충청도
충청도는 고려 말 왜구의 침입이 잦았던 지역으로, 처음에는 간단한 방어진만 있었다. 1447년(세종 29년) 대마도 정벌 이후 수군과 기지가 정비되면서 충청수영 체계가 갖춰졌고, 1466년(세조 12년)에는 충청수군절도사로 승격되었다. 주요 임무는 왜구의 침탈을 막고 한양으로 가는 조운선을 보호하는 것이었다. 임란 때는 정걸과 선거이가 재임하였으며, 정유재란 때는 최호가 지휘했으나 칠천량 해전에서 전사하였다. 이후 이순신의 휘하 장수였던 권준이 후임으로 임명되었다. 현재의 오천항 지역에 해당한다.
3.3.1. 충청수영
고려 말 왜구의 침입이 잦은 지역이었고, 간단한 형태의 방어진만 존재하다가 1447년 세종 29년 대마도 정벌과 함께 수군과 기지를 정비하고 충청수영의 체계를 갖추었으며, 1466년 세조 12년에 충청수군절도사로 승격하였다. 왜구의 침탈로부터 방어하고 한양으로 가는 조운선을 보호하는 임무를 수행하였다. 임란 시에는 정걸과 선거이가 재임하였다. 정걸은 행주대첩 당시 권율에게 화살 등 물자를 지원하여 승리에 기여하였다. 정유재란 당시에는 최호가 맡았지만, 칠천량 해전에서 그가 전사하여 후임으로 임란 시 전라좌수사 이순신 휘하의 장수였던 전 경상우수사 권준이 맡았다. 현재의 오천항 지역에 해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