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대순 (1805년)
1. 개요
서대순은 1805년에 태어나 1876년에 사망한 조선 후기의 문신이다. 서종제의 후손으로, 서용보에게 양자로 입양되었다. 1827년 문과에 급제하여 홍문관, 규장각 등에서 관직을 시작했으며, 성균관 대사성, 이조참의, 황해도 관찰사, 한성부 판윤, 형조판서, 예조판서, 평안도 관찰사 등을 역임했다. 특히 사헌부 대사헌을 여러 차례 지냈으며, 철종의 사촌을 탄핵하기도 했다. 문장이 뛰어나고 청백리로 이름이 높았으며, 사후 효헌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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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문신 -
정유길
정유길은 조선 중기 문신으로, 중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거쳐 명종 때 왕의 총애를 받았으며, 윤원형 탄핵에 앞장서 훈구파, 소윤파, 사림파 모두에게 존경받아 좌의정에 이르렀다. -
조선의 문신 -
윤증
윤증은 조선 중기 문신이자 소론의 영수로 우의정까지 역임한 정치가였으며, 성리학적·정치적 갈등으로 스승 송시열과 결별하고 탕평책을 지지했으나 당쟁 속에서 뜻을 이루지 못했으며, 실천적 삶을 강조한 무실학을 추구하며 조선 후기 정치와 사상에 큰 영향을 미쳤다. -
조선의 정치인 -
방우정
방우정은 조선 후기 무신으로 홍경래의 난 진압에 참여하여 서정군의 좌초관으로 활약했으며, 난에 대한 경험을 바탕으로 《서정일기》를 저술하여 홍경래의 난 연구에 중요한 사료를 남겼다. -
조선의 정치인 -
이승만
이승만은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이자 독립운동가로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을 역임하고 해방 후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으나, 독재적 통치와 부정부패에 대한 비판도 받으며 4·19 혁명 후 하와이로 망명하여 서거하였다. -
서예가 -
윤관
고려 시대 윤관은 문종 때 과거에 급제한 무신이자 정치가로, 숙종 대 왕권 강화 정책을 추진하고 여진 정벌을 주도하여 동북 9성을 축조했으나, 정치적 음모로 실각한 후 그의 묘는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
서예가 -
김집 (1574년)
사계 김장생의 아들이자 조선 중기 문신이자 예학자인 김집은 율곡 이이, 성혼의 성리학과 송익필의 예학을 계승하고 인조반정 공신을 비판하는 등 강직한 성품을 보였으며, 『신독재문집』 등의 저서를 남기고 많은 제자를 배출하여 조선 후기 예학과 정치에 큰 영향을 미쳐 문묘에 배향되고 동방 18현에 오르는 영예를 누렸다.
2. 생애
서대순은 달성 서씨 가문 출신으로, 증조부는 서신수, 할아버지는 예조판서 서유녕이다. 배천군수 서응보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으나, 아들이 없던 큰아버지 의정부영의정 서용보에게 양자로 입적되었다. 당색은 노론이었다. 1827년 문과에 급제한 후 관직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문장이 뛰어나고 청백리로 이름이 높았다. 1876년 효헌(孝憲)의 시호가 추서되었다.
2.1. 관직 생활
서대순은 1827년(순조 27) 증광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홍문관 문록과 도당록에 올랐다. 1828년(순조 28) 별겸춘추를 거쳐 검교 규장각 대교를 역임했다. 1836년(헌종 2) 3월 원릉 작헌례 때 대축관으로 참여하여 가자되었다.
1841년(헌종 7) 12월 성균관대사성, 1843년(헌종 9) 2월 이조참의를 거쳐 1846년(헌종 12) 7월 효명세자가 친히 낸 과제에 우승하여 직부 전시의 자격이 주어졌다. 1848년(헌종 14) 승지를 거쳐 1849년(헌종 15) 2월 5일 황해도관찰사로 부임하였다. 1853년(철종 4) 홍문관 부제학, 1854년(철종 5) 7월 이조참판, 11월 한성부우윤을 지냈다. 1855년(철종 6) 1월 좌윤, 형조판서를 거쳐 그해 11월 한성부판윤에 올랐다.
1856년(철종 7) 사헌부대사헌이 되었다. 그해 2월 의정부 좌참찬, 3월 형조 판서를 거쳐 7월 다시 사헌부 대사헌이 되고 1857년(철종 8) 3월 예조판서, 4월 다시 한성부 판윤이 되었다. 1858년(철종 9) 6월 사헌부 대사헌을 거쳐 1859년(철종 10) 1월 평안도관찰사로 부임하였다. 1860년(철종 11) 5월 다시 한성부 판윤이 되었다가, 그해 10월 다시 사헌부 대사헌이 되고, 11월 경평군 이세보를 탄핵하고 문외출송시켰다. 1861년(철종 12) 2월 다시 한성부 판윤이 되었다가 3월 형조판서, 11월 예조판서가 되었다. 1862년(철종 13) 1월 28일 판의금부사에 올랐다. 1863년(철종 14) 3월 경상도관찰사로 부임하였다.
1864년(고종 1) 1월 병조판서가 되었다. 1864년 3월 비변사의 유사당상이 되고 곧 오위도총부 도총관을 겸하였다. 1865년(고종 2) 12월 형조판서, 1866년(고종 3) 3월 가례도감 도제조 이하 관원들을 포상할 때 가자되어 숭록대부가 되었다. 1867년(고종 4) 1월 오위도총부 도총관, 3월 8일 유도대장, 1868년(고종 5) 7월 검교 부제학, 1869년(고종 6) 6월 판의금부사에 다시 임명되고, 12월 21일 활인서 제조, 그해 말 예조판서가 되었다. 1870년(고종 7) 1월 다시 판의금부사에 임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