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대순 (1805년)
1. 개요
서대순은 1805년에 태어나 1876년에 사망한 조선 후기의 문신이다. 서종제의 후손으로, 서용보에게 양자로 입양되었다. 1827년 문과에 급제하여 홍문관, 규장각 등에서 관직을 시작했으며, 성균관 대사성, 이조참의, 황해도 관찰사, 한성부 판윤, 형조판서, 예조판서, 평안도 관찰사 등을 역임했다. 특히 사헌부 대사헌을 여러 차례 지냈으며, 철종의 사촌을 탄핵하기도 했다. 문장이 뛰어나고 청백리로 이름이 높았으며, 사후 효헌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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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1년 사망 -
제임스 버스비
제임스 버스비는 뉴사우스웨일즈의 포도 재배 기술자이자 뉴질랜드 영국 거주민으로 임명되어 와이탕이 조약 체결, 뉴질랜드 초기 국기 디자인 선정, 독립 선언 작성 등 뉴질랜드 초기 역사에 기여했으며, 그의 와인 제조 관련 저술은 호주 와인 산업 발전에도 영향을 미쳤다. -
1871년 사망 -
빌헬름 바이틀링
빌헬름 바이트링은 19세기 독일의 사회주의 사상가이자 혁명가로서, 정의자 동맹에서 활동하며 초기 공산주의 사상에 영향을 미쳤고, 기독교적 메시아니즘과 공산주의를 결합한 사상으로 노동자 운동을 전개했으나 후기에는 정치 활동에서 은퇴하여 논쟁적인 인물로 평가받는다. -
대구 서씨 -
서명원
서명원은 독립운동가 서재필의 종손으로, 교육학자이자 대학교수, 교육행정 관료로서 서울대학교 교수, 문교부 차관, 여러 대학교 총장을 역임하고 국가보위입법회의 입법의원, 문교부 장관, 학술회 회원, 교육개혁심의위원회 위원장 등을 지낸 인물이다. -
대구 서씨 -
서주석
서주석은 서울대학교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은 대한민국의 정치학자이자 외교안보 전문가로, 한국국방연구원에서 근무하며 민주당계 정권에서 외교안보 정책 수립에 관여했고, 노무현 정부와 문재인 정부에서 각각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정책 수석비서관, 국방부 차관, 국가안보실 제1차장을 역임하며 남북 합의 도출에 기여했으나, 5.18 민주화운동 왜곡 활동에 참여했다는 비판도 받는다. -
1805년 출생 -
윌리엄 로이드 개리슨
윌리엄 로이드 개리슨은 미국의 노예제 폐지 운동가이자 언론인으로, 1831년 노예제 즉각 폐지를 주장하는 주간지 《리베레이터》를 창간하고, 미국 반노예제 협회를 설립하여 노예제 폐지 운동을 이끌었다. -
1805년 출생 -
페터 구스타프 르죈 디리클레
19세기 독일 수학자 페터 구스타프 르죈 디리클레는 해석학과 정수론에 공헌했으며, 디리클레 등차수열 정리 증명, 푸리에 급수 수렴성 증명,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 증명 등으로 유명하고 그의 이름을 딴 다양한 수학적 개념과 정리들이 존재한다.
2. 생애
서대순은 달성 서씨 가문 출신으로, 증조부는 서신수, 할아버지는 예조판서 서유녕이다. 배천군수 서응보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으나, 아들이 없던 큰아버지 의정부영의정 서용보에게 양자로 입적되었다. 당색은 노론이었다. 1827년 문과에 급제한 후 관직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문장이 뛰어나고 청백리로 이름이 높았다. 1876년 효헌(孝憲)의 시호가 추서되었다.
2.1. 관직 생활
서대순은 1827년(순조 27) 증광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홍문관 문록과 도당록에 올랐다. 1828년(순조 28) 별겸춘추를 거쳐 검교 규장각 대교를 역임했다. 1836년(헌종 2) 3월 원릉 작헌례 때 대축관으로 참여하여 가자되었다.
1841년(헌종 7) 12월 성균관대사성, 1843년(헌종 9) 2월 이조참의를 거쳐 1846년(헌종 12) 7월 효명세자가 친히 낸 과제에 우승하여 직부 전시의 자격이 주어졌다. 1848년(헌종 14) 승지를 거쳐 1849년(헌종 15) 2월 5일 황해도관찰사로 부임하였다. 1853년(철종 4) 홍문관 부제학, 1854년(철종 5) 7월 이조참판, 11월 한성부우윤을 지냈다. 1855년(철종 6) 1월 좌윤, 형조판서를 거쳐 그해 11월 한성부판윤에 올랐다.
1856년(철종 7) 사헌부대사헌이 되었다. 그해 2월 의정부 좌참찬, 3월 형조 판서를 거쳐 7월 다시 사헌부 대사헌이 되고 1857년(철종 8) 3월 예조판서, 4월 다시 한성부 판윤이 되었다. 1858년(철종 9) 6월 사헌부 대사헌을 거쳐 1859년(철종 10) 1월 평안도관찰사로 부임하였다. 1860년(철종 11) 5월 다시 한성부 판윤이 되었다가, 그해 10월 다시 사헌부 대사헌이 되고, 11월 경평군 이세보를 탄핵하고 문외출송시켰다. 1861년(철종 12) 2월 다시 한성부 판윤이 되었다가 3월 형조판서, 11월 예조판서가 되었다. 1862년(철종 13) 1월 28일 판의금부사에 올랐다. 1863년(철종 14) 3월 경상도관찰사로 부임하였다.
1864년(고종 1) 1월 병조판서가 되었다. 1864년 3월 비변사의 유사당상이 되고 곧 오위도총부 도총관을 겸하였다. 1865년(고종 2) 12월 형조판서, 1866년(고종 3) 3월 가례도감 도제조 이하 관원들을 포상할 때 가자되어 숭록대부가 되었다. 1867년(고종 4) 1월 오위도총부 도총관, 3월 8일 유도대장, 1868년(고종 5) 7월 검교 부제학, 1869년(고종 6) 6월 판의금부사에 다시 임명되고, 12월 21일 활인서 제조, 그해 말 예조판서가 되었다. 1870년(고종 7) 1월 다시 판의금부사에 임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