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노다 히로유키
1. 개요
소노다 히로유키는 구마모토현 출신의 일본 정치인으로, 니혼 대학을 졸업하고 니치로 어업에서 근무하다가 1986년 아버지의 사망으로 중의원 의원에 당선되었다. 자민당, 신당 사키가케, 일본 유신회, 다음 세대당 등 여러 정당을 거쳤으며, 무라야마 내각에서 내각 관방 부장관을 지냈다. 2008년에는 아소 내각에서 정조회장 대리를 역임했고, 이후 자민당을 탈당하여 일본 새벽당을 창당하는 등 정계 재편을 주도했다. 2018년 폐렴으로 사망했으며, 욱일대수장이 추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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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어 표기 | 園田 博之 (そのだ ひろゆき) |
|---|---|
| 출생 | 구마모토현 아마쿠사군 가와우라정 (현: 아마쿠사시) |
| 사망 | 도쿄도 |
| 사망일 | 2018년 11월 11일 |
| 학력 | 니혼 대학 경제학부·대학원 경제학 연구과 |
| 경력 | 니치로 어업 종업원 |
| 소속 정당 | ( 무소속 → ) ( 자유민주당 → ) ( 신당 사키가케 → ) ( 무소속 → ) ( 자유민주당 → ) ( 일어서라 일본 → ) ( 태양당 → ) ( 일본유신회 → ) ( 차세대당 → ) ( 태양당 → ) ( 차세대당 → ) 자유민주당 (다니가키 그룹) |
| 칭호 및 훈장 | 종3위 욱일대수장 경제학사 |
| 배우자 | 정보 없음 |
| 자녀 | 정보 없음 |
| 친족 (정치인) | 아버지: 소노다 스나오 의붓어머니: 소노다 덴코 |
| 직책 | 내각관방부장관 (정무 담당) |
|---|---|
| 내각 | 무라야마 내각 무라야마 개조 내각 |
| 임기 시작 | 1994년 6월 30일 |
| 임기 종료 | 1996년 1월 11일 |
| 직책 | 중의원 의원 |
|---|---|
| 선거구 | ( 구 구마모토 2구 → ) ( 구마모토 4구 → ) 비례 규슈 블록 |
| 당선 횟수 | 11회 |
| 임기 시작 | 1986년 7월 8일 |
| 임기 종료 | 2018년 11월 11일 |
| 직책 1 | 제3대 태양당 당수 |
|---|---|
| 임기 시작 1 | 2015년 1월 1일 |
| 임기 종료 1 | 2015년 4월 30일 |
| 직책 2 | 초대 일어서라 일본 간사장 |
| 대표 | 히라누마 다케오 |
| 임기 시작 2 | 2010년 |
| 임기 종료 2 | 2012년 |
| 직책 3 | 초대 신당 사키가케 간사장 |
| 의원단 좌장 | 도모토 아키코 |
| 임기 시작 3 | 1996년 |
| 임기 종료 3 | 1998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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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마모토현 출신 -
타지리 요시히로
1994년 IWA 재팬에서 데뷔한 일본 프로레슬러 타지리 요시히로는 ECW, WWE 등 다양한 단체에서 활동하며 챔피언십을 획득했고, 독특한 스타일과 독무 기술로 유명하며 현재는 규슈 프로레슬링을 기반으로 활동한다. -
구마모토현 출신 -
야마시타 야스히로
야마시타 야스히로는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유도 무제한급 금메달리스트이자 203연승의 기록, 세계 선수권에서의 압도적 성적, 전일본 유도 선수권 9연패를 달성한 일본 유도계의 전설적인 인물이며, 은퇴 후에는 국제 유도계와 올림픽 운동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
1942년 출생 -
시어도어 카진스키
미국 수학자이자 "유나바머"로 알려진 시어도어 카진스키는 뛰어난 수학적 재능으로 대학 조교수를 지냈으나 산업 사회에 대한 비판으로 18년간 우편 폭탄 테러를 감행, 체포되어 가석방 없는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복역 중 사망했다. -
1942년 출생 -
우근민
우근민은 대한민국의 정치인이자 행정가로, 총무처 공무원 요직과 제주특별자치도지사를 역임하며 민자당, 새정치국민회의, 열린우리당 등 다양한 정당 활동을 했으나, 공직선거법 위반, 성희롱 소송 패소, 새누리당 입당 논란 등 여러 논란이 있었다. -
니혼 대학 동문 -
구상 (시인)
구상(1919-2004)은 서울 출생으로 원산에서 성장하여 니혼 대학교를 졸업하고, 한국 전쟁 종군 기자, 언론 운동, 영남일보 편집장 등을 거쳐 가톨릭 신앙을 바탕으로 시집 《초토의 시》 등을 발표했으며, 프랑스 문부성에서 세계 200대 시인으로 선정되었고 폐질환으로 사망했다. -
니혼 대학 동문 -
미우라 켄타로
미우라 켄타로는 1966년 일본에서 태어나 2021년 사망한 만화가로, 다크 판타지 만화 《베르세르크》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그의 유작은 모리 코우지의 감수 하에 연재가 이어지고 있다.
2. 경력
소노다 히로유키는 구마모토현 아마쿠사군 출신으로 니혼 대학을 졸업하고 1986년 구마모토현 제2구에서 아버지 소노다 스나오의 뒤를 이어 처음 당선되었다. 1993년 신당 사키가케 창당에 참여하여 대표 간사를 맡았고, 호소카와 내각에서는 여당 간 정책 조정을 담당하며 '군사'라는 별명으로 불릴 정도로 정치적 수완을 발휘했다.
2008년 아소 다로 내각에서 정조회장 대리로 활동하며 재정 재건을 위한 정책을 추진했다. 2010년 일어서는 일본에 입당했고, 이후 일본 유신회를 거쳐 차세대당 창당에 참여했다. 2015년 태양의 당 당수를 역임한 후 차세대당에 복당했다가, 같은 해 자민당으로 복당했다.
소노다는 일본회의와 연관된 역사 수정주의적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
2.1. 초기 정치 경력
1984년 아버지 소노다 스나오가 신부전으로 급사하자, 아버지의 지역구( 구마모토현 구마모토 2구)를 물려받아 제38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 자민당 후쿠다파의 지원을 받아 보수계 무소속으로 입후보했다. 나카소네파의 지원을 받은 의붓어머니 소노다 데루미츠와 경쟁 끝에 구마모토 2구에서 1위로 당선되었다. (데루미츠는 득표수 8위로 낙선).
1986년 중의원 총선거에서 당선된 동기로는 하토야마 유키오, 사이토 토시지, 미하라 아사히코, 무라이 히토시, 아이자와 이치로, 카네코 카즈요시, 타케무라 마사요시, 스기우라 마사타케, 나카야마 나리아키, 야츠 요시오, 아라이 마사카게, 이시바 시게루, 사사카와 타카시, 타케베 츠토무, 이데 쇼이치, 무라카미 세이이치로 등이 있다.
1990년 2월, 제39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했다. 1991년 11월, 미야자와 내각에서 후생 정무 차관에 취임했으며, 1992년 12월 내각 개조로 퇴임했다.
1993년 6월, 미야자와 개조 내각 불신임 결의안 표결에서 반대표를 던졌지만, 불신임안 가결 직후 자민당을 탈당하여 신당 사키가케 창당에 참여했다. 신당 사키가케 대표 간사로 취임, 같은 해 8월에 발족한 호소카와 연립 정권 하에서 여당 간 정책 조정을 위해 설치된 '여당 대표자 회의'에는 일본 신당·신당 사키가케 양당을 대표하여 참석했다. 이상주의적 분위기를 풍기는 신당에서, 소노다는 정당 간 조정을 착실하게 수행했다. 신망이 두텁고 조정에도 능숙하여 호소카와 정권 시대에는 신생당의 오자와 이치로와 대등하게 맞섰으며, '군사'라는 별명도 있었다. 호소카와 정권 말기, 다케무라 마사요시 대신 소노다를 관방 장관으로 기용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지만 고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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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신당 사키가케와 연립 정권
후쿠다 야스오에게 여당의 정책 조정을 맡을 수 있는 정조회장 대리 자리를 직접 요청하고, 요사노 가오루를 당 재정 개혁 연구회 회장으로 추대했다. 소노다 히로유키는 "사회 보장비는 더 이상 삭감할 수 없다. 소비세 증세로 안정적인 재원을 확보하는 것 외에는 재정 재건의 길이 없다. 다음 중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이 이겨도 엇갈린 국회로 정계 재편은 불가피하다. 올바른 정책을 기점으로 재편해야 한다"고 말했다. 재정 개혁 연구회는 2007년 11월, 소비세를 '사회 보장세'로 개편하고, 연금·의료·간병·저출산 대책을 충당하기 위해 2010년대 중반까지 세율을 10%까지 인상할 것을 제안했다.
2.3. 자민당 복당 이후
2008년, 아소 다로 총재 아래에서 정조회장 대리로 취임했다. 소노다는 아소 내각의 경제 재정 정책 담당 대신인 요사노 가오루에게 제안하여 재정 재건파의 "올바른 일을 생각하고 실행하는 모임"을 설립했다. 상승세파의 나카가와 히데나오 전 간사장 등을 견제하고, 재혁연(財革研) 제언을 기초로 한 소비세·사회 보장 개혁 구상을 09년도 세제 개정법 부칙 104조에 포함시켜 국회의 의사로 삼았다. 2009년 제45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는 자민당에 맹렬한 역풍이 불어닥치는 가운데 구마모토 4구에서 8번째 당선되었다. 같은 해 10월, 다니가키 사다카즈 총재 아래에서 간사장 대리로 취임했지만, 집행부 비판을 강화하는 요사노 가오루에 동조하여 2010년 3월에 간사장 대리를 사임했다. 같은 해 4월, 신당 결성에 대해 "자민당에서 많은 동료들을 데려가 당을 분열시켜 싸움을 하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민주당에 반대하고 싶은 사람들을 자민당만으로는 흡수할 수 없다면, 다른 당을 만들어서 가능한 많은 사람들을 흡수해 좌우에서 협공하여 민주당을 꺾으면 된다" "지금의 자민당으로는 민주당을 싫어하는 사람을 흡수할 수 없다. 정책이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제로에서 시작하지 않으면 신용을 얻을 수 없다" "자민당의 분열이라고는 말하고 싶지 않다. 현내의 형제는 초대할 수 없다"라고 말하며 자민당을 탈당하고 반자민 입장이 아닌 신당 결성을 시사했다.
2.4. 일어서는 일본, 일본 유신회, 차세대 당
소노다 히로유키는 2010년 4월 10일 일어서는 일본에 입당했다. 2012년 일본 유신회와 합당했고, 2014년에는 전 일어서는 일본 의원들과 함께 탈당하여 다음 세대 당을 창당했다.
4월 5일, 히라누마 다케오 전 경제산업대신 등과 신당 창당을 구상하던 중 일어서는 일본 참가를 위해 오시마 리모리 자민당 간사장(당시)에게 탈당계를 제출했다. 그는 탈당계를 제출하며 "참의원 선거에서 여당을 소수로 몰아넣지 않으면 기회가 없다. 정책 변경조차 하지 않을 것이다. 분노를 느껴 신당에 참가한다", "민주당이 국민을 위해 그럭저럭 하고 있었다면 정권 탈환을 천천히 할 것이다. 그러나 민주당은 국민의 환심을 사는 것만 매진하고 있다"며 반 민주당 신당이라는 인식을 표명했다. 이후 4월 10일 일어서는 일본 간사장에 취임했고, 그의 탈당계는 4월 27일 자민당 당기위원회에서 승인되었다.
2012년 11월, 이시하라 신타로를 당수로 태양의 당을 결당했으나, 11월 16일 이시하라 신타로, 하시모토 도루(오사카 유신회 대표)의 회담을 통해 창당 4일 만에 일본 유신회에 합류하기로 결정하고 해산했다. 소노다를 포함한 태양의 당 소속 국회의원들은 일본 유신회에 합류했다. 같은 해 12월 제46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구마모토 4구에 일본 유신회 공천으로 출마, 9선에 성공했다. 이는 당의 비례 큐슈 블록 지역에서 유일한 선거구 당선이었다. 구마모토 4구에는 자민, 민주 양당 모두 후보 공천을 보류했다. 선거 후, 일본 유신회 국회의원단 간사장 대리 및 집행 임원 부간사장에 취임했다.
2014년 8월 1일, 일본유신의회 분당에 따라 다음 시대의 당 결당에 참여, "고문(渉外担当)"에 취임했다. 당 임원 목록에서는 최고 고문 이시하라 신타로와 당수 히라누마 다케오 사이에 열거되었다. 같은 달 26일 에구치 가쓰히코 입당 후에는 소노다와 같은 "고문" 직함을 사용하면서 "(渉外担当)" 표기는 없어졌다. 같은 해 12월 제47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는 구마모토 4구에서 10선에 성공했고, 같은 달 25일 양원 의원 총회 의장에 취임했다.
2.5. 태양의 당과 자민당 복당
2015년 1월 8일, 차세대 당을 탈당하고 태양의 당으로 이적하여 당수에 취임했다. 같은 해 5월 1일, 태양의 당 해산으로 차세대 당에 복당했다. 2015년 6월, 제189회 국회 폐회 후 차세대 당을 탈당하고 자민당으로 복당 신청을 할 것을 표명했다. 같은 해 9월 25일, 전 당수 히라누마 다케오와 함께 정식으로 탈당했다. 간사장이었던 타니가키 사다카즈의 노력도 있었고, 10월 2일, 자민당 당기위원회는 "정치인으로서 두 사람의 경험과 식견을, 앞으로는 자민당 활동에 활용해야 한다"는 등의 이유로 히라누마와 함께 소노다의 복당을 승인했다. 고이즈미 신지로의 간청으로 "2020년 이후의 경제 재정 구상 소위원회"의 고문을 맡았다.
2.6. 사망
소노다는 2018년 11월 11일 폐렴으로 사망했다. 2017년부터 폐암 치료를 받으면서 의원 활동을 했지만, 같은 해 11월 11일 폐렴으로 도쿄도의 병원에서 사망했다. 소노다의 사망에 따라 차점자인 미야자키 마사히사가 11월 21일에 보궐 당선되었다. 이후, 일본 정부는 사망일을 기하여 소노다에게 종삼위를 서임하고, 욱일대수장을 추증했다. 묘소는 미나토구 린센지이다.
3. 정책 및 활동
소노다 히로유키는 역사 수정주의 로비 단체인 일본회의와 연관되어 있으며, 그의 후처인 소노다 텐코(아버지의 두 번째 부인이자 미망인)는 대표 위원회의 구성원이었다.
* 2014년 시점에서는 선택적 부부별성 제도 도입에 대해 "어느 쪽이라고도 말할 수 없다"고 하고 있다. 1998년에는 동 제도를 요구하는 청원을 제출했다.
* 우정 민영화 당시, "모두가 불안해하는 것은, 계획대로 정말 잘 진행될지 여부이다. 채산성도, 말하는 것처럼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여, 그런 것이 정말 결실을 맺을지 여부이다. 그것을 목표로 노력해야 하지만, 매우 걱정스러운 점이 많다...", "우체국에서 세 가지 서비스가 계속 이루어지는지 여부. 그런 것도 잘 검증해서, 만약 그것에 지장이 생기고 있을 경우 어떤 시책을 강구할 것인가. 그런 것도 필요하다..."라고 답변했다.
4. 논란
* 2004년, 정치인의 연금 미납 문제가 문제가 되었을 때 2년 8개월분의 미납이 판명되었다。
* 2013년 효고현 니시노미야시 내의 NPO 법인・니시노미야 장애인 고용 지원 센터 협회로부터 현금 약 2을 수령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치자금 수지 보고서에 기재하지 않은 사실이 2017년 12월 일부 신문 보도를 통해 밝혀졌다. 해당 협회 측은 소노다를 정치자금 규정법 위반 혐의로 도쿄 지방 검찰청에 고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 2017년 6월, 해당 NPO 법인에 대한 추징 과세와 관련하여 이이즈카 아츠시 국세청 차장에게 "세무 조사는 잘못되었다. 재조사해 주실 수 없겠는가"라고 전화했다。
* 2018년 10월 10일, 도쿄지검 특수부는 정치자금 규정법 위반 혐의로 고발된 소노다 등을 불기소 처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