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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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송인명은 조선 시대의 문신으로, 1719년 증광문과에 급제하여 관직 생활을 시작했다. 영조 즉위 후 탕평책을 추진하는 데 기여했으며, 충청도관찰사, 동부승지, 대사간, 대사성, 호조참의 등을 역임했다. 평안도관찰사, 대사헌, 예조참판, 이조참판 등을 거쳐 이조판서, 예조판서, 우참찬, 좌참찬, 호조판서, 홍문관 제학 등을 두루 역임했다. 1736년 우의정을 거쳐 1740년 좌의정에 이르렀으며, 사후 영의정에 추증되었고 시호는 충헌이다. 영조의 명으로 박사수와 함께 《감란록》을 편찬했다.

송인명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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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인명 초상
본관여산(礪山)
자명중(明仲)
호야곡(冶谷)
서하(西霞)
기천(沂川)
생애
출생1689년 9월 17일 (음력 8월 14일)
사망1747년 8월 13일 (음력 7월 29일)
관력
주요 관직이조판서
대사헌
지경연사
세자시강원찬선
한성부판윤
봉호보사원종공신 1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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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조는 조선의 제22대 왕으로, 탕평책 계승, 규장각 설치, 장용영 설치, 신해통공 실시, 수원 화성 건설 등 다양한 개혁을 추진했으며, 47세에 사망하여 건릉에 안장되었다.

2. 생애

송인명은 영조의 신임을 얻어 이조판서, 동지경연사, 예조판서, 지경연사를 역임했다. 우참찬, 좌참찬, 호조판서, 홍문관제학, 판의금부사 등 요직을 두루 거쳤으며, 이조판서로 종부시제조와 지경연사를 겸한 뒤 홍문관제학, 예문관제학, 우참찬을 거쳐 다시 이조판서가 되었다.

2.1. 관직 생활 초기

1719년(숙종 45)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예문관검열이 되었다. 영조 즉위 후 1724년 충청도관찰사를 거쳐 동부승지가 되어 조현명과 함께 탕평책 추진에 앞장섰다. 이후 대사간, 대사성을 역임하며 탕평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했고, 호조참의로 승진했다. 평안도관찰사로 부임하여 백성들의 삶을 돌보았고, 대사헌으로 재직하며 기강을 바로잡았다. 예조참판, 이조참판을 역임했다.

2.2. 탕평책 추진

영조 즉위 후 1724년 충청도관찰사에 이어 동부승지가 되어 조현명과 함께 탕평책 추진에 앞장섰다. 대사간, 대사성, 호조참의 등을 역임하며 탕평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였다.

2.3. 주요 관직 역임

1719년(숙종 45)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예문관 검열이 되었다. 영조 즉위 후 1724년 충청도관찰사에 이어 동부승지가 되어 조현명과 함께 탕평책 추진에 앞장섰다. 대사간, 대사성을 역임하며 탕평을 주장했고, 호조참의로 승진하였다. 평안도관찰사로 재직하며 백성들의 삶을 돌보았고, 대사헌으로서는 기강을 바로잡았다. 예조참판, 이조참판을 거쳐 영조의 신임을 얻어 이조판서, 동지경연사를 역임했다. 이후 예조판서, 동지경연사, 지경연사, 우참찬, 좌참찬, 호조판서, 홍문관제학, 판의금부사 등 주요 요직을 두루 거쳤다. 이조판서로 종부시제조를 겸하고 지경연사를 겸한 뒤 홍문관제학, 예문관제학, 우참찬을 거쳐 다시 이조판서가 되었다.

2.4. 정승 반열

1736년에 우의정을 거쳐 1740년에 좌의정에 이르렀다. 사후 영의정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충헌(忠憲)이다.

3. 저서

영조의 명으로 박사수와 함께 감란록 편찬에 참여하였다.

3.1. 《감란록》 편찬

영조의 명으로 박사수와 함께 《감란록》을 편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