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희립
1. 개요
송희립은 1553년 전라남도 고흥에서 태어나 임진왜란 시기 이순신 휘하에서 활약한 조선의 무관이다. 1583년 무과에 급제하여 지도만호, 양산군수 등을 역임했으며, 임진왜란 발발 후 이순신의 핵심 참모로서 옥포해전, 사천해전, 한산대첩, 부산포 해전 등 주요 해전에서 큰 공을 세웠다. 특히 명량해전에서 송희립은 "필사즉생 필생즉사"의 정신으로 왜군을 격퇴하는 데 기여했으며, 노량해전에서 이순신과 함께 명나라 진린 제독을 구출하다 중상을 입었다. 이후 전라좌도 수군절도사를 거쳐 1623년 인조반정 후 71세로 사망했으며, 세충사, 충무사 등에서 추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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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3년 출생 -
모리 데루모토
모리 데루모토는 모리 모토나리의 손자이자 모리 가문의 당주로, 고바야카와 타카카게와 기카와 모토하루의 지원을 받으며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휘하에서 공을 세웠으나,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서군 총대장으로서 실질적으로 참전하지 않아 영지를 잃고 조슈 번을 다스리게 된 인물이다. -
1553년 출생 -
정발 (1553년)
정발은 조선 중기의 무신으로, 1579년 무과에 급제하여 관직에 나아갔으며, 1592년 임진왜란 때 부산진 첨사로서 왜군에 맞서 싸우다 전사하여 충렬공 시호를 받고 좌찬성이 추증, 동래 충렬사에 배향되었다. -
조선의 무신 -
방우정
방우정은 조선 후기 무신으로 홍경래의 난 진압에 참여하여 서정군의 좌초관으로 활약했으며, 난에 대한 경험을 바탕으로 《서정일기》를 저술하여 홍경래의 난 연구에 중요한 사료를 남겼다. -
조선의 무신 -
김응우
김응우는 김일성의 고조부로 평안도 대동 출신이며, 북한에서는 제너럴 셔먼호 격침에 기여했다고 주장하나 역사적 사실과 다르다는 비판이 있고, 김일성 가문으로 이어진 전주 김씨이다. -
임진왜란 관련자 -
성혼
성혼은 조광조의 제자이자 이이와 도의를 맺고 이황을 사사한 조선 중기 문신으로, 사림파 서인에 속하여 정여립의 난과 임진왜란 시기에 활동했으며, 이황의 이기이원론을 지지하고 후학 양성에 힘썼다. -
임진왜란 관련자 -
허균
허균은 조선 중기의 문인이자 정치가로서, 홍길동전, 교산시화, 도문대작 등 다양한 저서를 남겼으나, 진보적인 사상과 정치적 사건에 연루되어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한 인물이다.
2. 생애
송희립은 1553년 전라남도 고흥군 동강면 마륜리에서 태어나 1623년 12월 20일 71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단종이 영월로 유배되자 고흥군에 은거한 송간(宋侃)의 6대손이며, 본관은 여산이다. 형 송대립과 아우 송정립과 함께 임진왜란에 참전하였다.
1583년 무과에 합격한 후 여러 관직을 거쳐 1591년 이순신 장군의 직속군관이 되었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동안 이순신 장군의 핵심 참모로 활약하며 뛰어난 지략과 용맹을 보여주었다.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정운의 군관으로 참전하여 옥포 해전, 사천 해전, 한산도 대첩, 부산포 해전 등 주요 해전에서 큰 공을 세웠다.
1597년 정유재란 때 형 송대립은 고흥 첨산전투에서 전사했지만, 송희립은 명량 해전에서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則生 必生則死)의 정신으로 왜군을 격퇴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1598년 노량 해전에서는 이순신에게 전략을 제안하여 전투 승리에 기여했으나, 전투 중 중상을 입었고, 이순신 장군은 이 해전에서 전사하였다.
전란 이후 1601년 양산군수와 다대포 첨사를 거쳐, 1611년 전라좌도 수군절도사가 되었다. 1619년에는 주사청 업무로 경상도에 파견되기도 했다.
사후 송희립은 흥양(현 전라남도 고흥군)의 세충사에 제향되었고, 《제동서원》, 《충무사》(순천, 한산, 고흥), 《무광사》 등에도 배향되었다. 광주 상무대에는 이순신, 정운 장군과 함께 송희립 장군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2.1. 출생과 가계
송희립은 1553년 전라남도 고흥군 동강면 마륜리에서 송관의 아들로 태어났다. 본관은 여산(礪山)이며, 호는 삼규당(三規堂), 자는 신중(信仲)이다. 단종이 영월로 유배되자 고흥군에 은거한 송간(宋侃)의 6대손이다. 형제로는 형 송대립과 아우 송정립이 있으며, 3형제 모두 임진왜란에 참전하였다.
2.2. 임진왜란 이전
1583년 무과에 합격하여 지도만호, 양산군수, 다대포첨사, 경상우후 등의 관직을 역임했다. 1591년 이순신 장군의 직속군관으로 발탁되어 거북선 건조와 교육, 감독을 맡았다.
2.3. 임진왜란 활약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송희립은 녹도만호 정운의 군관으로 참전하였다. 5월 1일 거제에서 왜병을 격파하고 남해 앞바다에 머물며, 이순신과 함께 원균 등과 합동 작전을 벌일 것을 주장하여 옥포 해전, 사천 해전, 한산도 대첩, 부산포 해전 등 주요 해전에서 큰 공을 세웠다.
특히, 원균이 왜적에 겁을 먹고 도망하여 경상도 해역이 위험에 빠졌을 때, 송희립은 "적을 토벌하는 데는 우리 도와 남의 도가 따로 없다. 적의 예봉을 먼저 꺾어 놓으면 본 도 역시 보전할 수 있다"라고 이순신에게 적극적으로 진언하여 큰 신임을 얻었다. 이처럼 송희립은 이순신 장군의 핵심 참모로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2.4. 정유재란과 노량해전
1597년 정유재란 당시, 송희립의 형 송대립은 백의종군하는 이순신을 수행하며 수군 재건을 도왔고, 육지에서는 의병을 일으켜 왜군과 싸우다 고흥 첨산전투에서 전사했다. 송희립은 명량 해전에서 이순신 장군을 보좌하며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則生 必生則死)의 정신으로 왜군을 격퇴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1598년 노량 해전 직전, 송희립은 이순신에게 명군과 연합하여 육지와 바다에서 왜군을 봉쇄하는 전략을 제안하여, 이순신의 큰 칭찬을 받았다. 송희립은 "적이 이미 거점(노량)을 형성하고 있으니 힘으로 취하기는 어려움이 많으니, 이제 명군과 아군이 수륙으로 연대하여 만약 육군이 예교(曳橋)를 압박한다면 수군은 장도(獐島)에 거점하여 영남의 해로를 막을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적들은 내외로 막히고 허리 부분 역할을 못해 사천의 적은 반드시 돕지를 못할 것이며, 서로 돕고자 하여도 피차간 호령이 통하지 않아 상응할 수 없게 되면 그 군사들은 군량이 고갈되고 그 군세가 좌절되어 사면이 고립될 것이고, 결국 고니시 유키나가는 살 수 없을 것입니다."고 말했고, 이순신은 이에 크게 기뻐했다.
이러한 계책대로 육지와 바다에서 봉쇄 작전을 펼치자 왜군들의 세력은 급격히 저하되었다. 송희립은 명나라 진린 제독에게 화친을 청하는 왜군에 대해 "그들이 전령을 보내는 것은 각군에 구원을 청하여 전쟁 일자를 약속한 것이니, 마지막에 가서는 틀림없이 공격할 것입니다. 이곳은 복배(腹背)와 같은 곳이라 적의 공격을 받으면 아군은 패하게 되므로 큰 바다로 옮겨 싸우는 것보다 못할 것 같습니다."고 말했다.
11월 18일 밤, 조선 해군은 야음을 틈타 조명연합함대 146척을 앞세워 선제공격에 나섰다. 남해 관음포 앞 바다에서 왜선 500여 척과 교전 중, 명나라 전선이 집중 포위를 당해 진린이 위험에 처했다. 이때 이순신과 송희립은 왜군들의 집중포화를 뚫고 진린을 구출하는 과정에서 중상을 입었고, 이순신 장군은 다음 날 새벽 2시경에 전사했다.
2.5. 임진왜란 이후
1601년 5월 송희립은 양산군수를 제수받았고, 8월에는 다대포 첨사(多大浦僉使)로 제수받았다. 1611년 광해군 4년에는 전라좌도 수군절도사가 되었다.
1619년 67세 때 별장으로 재직하였으며, 주사청의 업무로 경상도에 파견되었다.
1623년 3월 12일 (음력) 인조반정이 일어나 광해군은 정권을 잃었으며, 그해 12월 20일 71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난다.
송희립은 흥양(현 전라남도 고흥군)의 《세충사》에 제향되었다. 그 후 장군의 호국충절을 기리는 곳은 《제동서원》, 《충무사》(순천, 한산, 고흥), 《무광사》 등에도 배향되고 있다. 육군에서는 광주 상무대에도 이순신, 정운 장군의 동상과 함께 송희립 장군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3. 가족 관계
| 관계 | 이름 | 비고 |
|---|---|---|
| 고조부 | 송사안(宋思安) | 부사(府使) |
| 증조부 | 송유정(宋有貞) | 첨사(僉使) |
| 조부 | 송옥형(宋玉衡) | 현감(縣監) |
| 부 | 송관(宋寬) | 현감(縣監) |
| 모 | 보성선씨(寶城宣氏) | 선응조(宣應祚)의 따님 |
| 부인 | 김해김씨(金海金氏) | 김사유(金泗維)의 따님 |
| 후부인 | 여산오씨(礪山吳氏) | 부사(府使) 오응정(吳應鼎)의 따님 |
| 자녀 | 송수(宋穗) | 주부(主簿) |
| 자녀 | 송색(宋穡) | |
| 자녀 | 송능(宋稜) | |
| 자녀 | 송기(宋穊) | |
| 자녀 | 송적(宋積) | |
| 형 | 송대립 | 임진왜란 공신 |
| 동생 | 송정립 | 임진왜란 공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