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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다하치만 신사 인물화상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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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스다하치만 신사 인물화상경은 일본 와카야마현의 스다하치만 신사에 소장된 거울로, 명문에 새겨진 내용을 통해 다양한 역사적 해석이 제시되고 있다. 명문은 443년 또는 503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대왕, 남제왕, 사마 등 인물에 대한 해석은 인교 천황, 게이타이 천황, 무령왕 등 여러 설이 존재한다. 최근에는 503년 설이 우세하다. 한편, すきえんてぃ아 씨는 명문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제시하며 기존 학설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이 거울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1838년 《기이국 명소도회》에 실려 있으며, 진구 황후가 삼한을 정복한 후 헌상되었다는 설화가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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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다하치만 신사 인물화상경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스다 하치만 신사 청동 거울 (인물화상경)
상세 정보
이름스다 하치만 신사 인물화상경 (隅田八幡神社人物画像鏡)
원어 이름스다 하치만 진자 진부쓰 가조-쿄 (隅田八幡神社人物画像鏡)
위치하시모토, 와카야마, 일본
지정일본

2. 명문

스다하치만 신사 인물화상경에는 다음과 같은 명문이 새겨져 있다.[8]

> 계미년(503년) 8월 10일 대왕의 연간에 남동생인 왕을 위하여 인판궁(忍坂宮)에 있을 때 사마께서 아우님의 장수를 염원하여 보내주는 것이다. 개중비직과 예인 금주리 등 두 사람을 보내어 최고급 구리쇠 200한으로 이 거울을 만들었도다.

이 명문은 무령왕게이타이 천황이 친형제라는 추정의 근거가 된다.[8]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무령왕릉 거울과 닌토쿠 천황의 거울, 게이타이 천황이 가진 거울의 모양이 유사하고, 부여 계통의 나라에서 금동 거울은 왕을 상징한다는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명문에는 몇몇 불분명한 부분이 있지만, "계미년 8월, 대왕의 치세에 왕자 우토가 오시사카 궁에 있을 때, 수명이 길기를 바라며 사마는 개중(開中)의 직예인(費直穢人) 이주리(今州利) 두 사람을 보내 깨끗하고 좋은 동(同) 200한(旱)으로 이 거울을 만들게 하였다"는 내용으로 잠정 번역된다. 여기서 계미년은 443년 또는 503년이다.

학계에서는 왕자 우토를 오진 천황의 손자이자 오시사카노오나카츠히메(잉교 천황)의 남동생인 왕자 오호도로 보거나, 오도노오오키미(게이타이 천황)로 보기도 한다. 계미년이 503년이면, 시마는 백제 무령왕으로 추정되며, 그의 이름은 무령왕릉에서 斯摩lzh(사마)로 기록되어 있다.

2. 1. 명문의 해석

스다하치만 신사 인물화상경의 명문은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으며, 학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다음은 명문의 주요 내용과 다양한 해석이다.
명문(김운회 번역):[8]

> 계미년(503년) 8월 10일 대왕의 연간에 남동생인 왕을 위하여 인판궁(忍坂宮)에 있을 때 사마께서 아우님의 장수를 염원하여 보내주는 것이다. 개중비직과 예인 금주리 등 두 사람을 보내어 최고급 구리쇠 200한으로 이 거울을 만들었도다.
명문의 주요 내용:

  • 계미년(癸未年) 8월: 명문이 새겨진 시기로, 443년 또는 503년으로 추정된다.
  • 십대왕(十大王): 당시의 왕을 지칭하는 표현으로, 인교 천황, 닌켄 천황 등 여러 설이 있다.
  • 남동생 왕(男弟王): 왕의 동생으로, 게이타이 천황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 의시사카궁(在意柴沙加宮): 왕이 머물던 궁궐로, 오시사카 궁으로 추정된다.
  • 사마(斯麻): 장수를 기원하며 거울을 만들게 한 인물로, 백제무령왕으로 보는 견해가 유력하다.
  • 개중비직(開中費直), 예인(穢人) 금주리(今州利): 거울 제작에 참여한 사람들로, 백제계 인물로 추정된다.
  • 백상동(白上同) 200한(旱): 거울 제작에 사용된 재료로, 최고급 구리쇠를 의미한다.

명문의 다양한 해석:| 해석 | 주요 내용 | 근거 |

| -------------- | ---------------------------------------------------------------------------------------------------------------------------------------------------------------------------------------------------------------------------------------------------------------------------------------------------------------------------------------------------------------------------------------------- | -------------------------------------------------------------------------------------------------------------------------------------------------------------------------------------------------------------------------------------------------------------------------------------------------------------------------------------------------------------------------------------------------------------- |

| 김운회 | 무령왕게이타이 천황이 친형제라고 추정한다.[8] | 명문의 내용 |

| 야마오 사치히사 | "일대십왕(日大十王)"이 닌켄 천황, "남(부)제왕(男(孚)弟王)"이 "남대적왕(男大迹王)" 즉 게이타이 천황, "사마왕(斯麻王)"이 백제무령왕이라고 한다.[5] | 명문의 내용 |

| 무령왕 관련설 | 백제 무령왕의 휘(諱)가 "'''사마(斯麻)'''"이고, 무령왕릉에서 유사한 거울이 발견된 점을 근거로, "사마"를 무령왕으로 해석하는 것이 유력하다.[6] | 무령왕의 휘(諱), 무령왕릉 출토 거울 |

| 게이타이 천황 관련설 | 남제왕(男弟王)을 즉위 전의 게이타이 천황이라고 해석한다. | 명문의 내용 |

| 기타 해석 | "일십대왕(日十大王)"을 오쿠사카 황자로 보는 설, "일십대왕(日十大王)"을 닌켄 천황으로 보고 부제왕(孚弟王)을 게이타이 천황으로 비정하는 설 등이 있다. | 명문의 내용 및 여러 가지 사료 |
명문의 의의:스다하치만 신사 인물화상경의 명문은 5세기 ~ 6세기 일본백제의 관계를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명문의 해석에 따라 당시의 정치 상황, 왕위 계승, 일본백제의 교류 관계 등을 파악할 수 있다. 특히 무령왕게이타이 천황의 관계에 대한 단서를 제공하여, 한일 고대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2. 2. 새로운 해석

새로운 해석은 すきえんてぃ아 씨가 제창한 것으로, 한자 오독 지적과 비교 언어학적 지견을 활용하여 기존 해석과는 다른 관점을 제시한다.[1]

すきえんてぃ아 씨의 해석은 다음과 같다.[1]

  • (대의) 계미년(623년) 8월, 왜 타지히 대군이 다스릴 때
  • 전령: 아우 대군이 야마토 오시사카 궁에 있을 때, 백제왕(?) 세마는 오랫동안 섬기고자 하여, 기이에 있는 왜계 백제인(?)의 태옹(부초키)과 예계 백제인 김북(투리) 두 사람을 파견했습니다.
  • 올리는 답장: 동 200개를 바치고 마쳤다. 이 거울을 만들었다.


이 해석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일십대왕(日十大王)」: 「왈십대왕(曰十大王)」으로 해석하며, 당시 발음은 "wat-dip"이다. 제24대 닌켄 천황이 아닌 제18대 한제이 천황으로 해석하며, 동생 왕은 제19대 잉교 천황이 된다.
  • 「념장수견개중비직(念長寿遣開中費直)」: "장수를 기원하여 가와치의 아타히를 파견"이 아닌, "념장봉견귀중비직(念長奉遣帰中費直)"으로 해석한다. "개(開)"는 "귀(帰)"이며, kwi= 기이(紀伊)를 의미한다.
  • 정형 서식 문서: "남(男)"은 "효(孝)"이며, "교(教)"의 약자이다. "취백(取白)"은 "소백(所白)", "한(旱)"은 "필(畢)"이다. "교(教)"는 지배자가 부하에게 답신을 요구하는 문서이며, "소백(所白)~필(畢)"은 부하로부터의 회신이다.
  • 「사마(斯麻)」: 당시 발음은 "sema"이며, "섬(島)"을 의미하는 인명으로, 일본인인지 조선인인지 불분명하다.
  • 「예인금주리(穢人今州利)」: 예족(濊族) 출신 조선인 "김북(金北) 씨"를 의미한다.
  • 제작자: 일본어 화자가 아닌 백제인으로 추정된다. "왜(倭)의 타지히(タヂヒ)"를 "와타지히(ワタヂヒ)"라는 외국어로 인식하고, 고대 조선 한문 표기 및 "예(濊)"에 대한 언급, "소백(所白)"이라는 고대 조선 사투리 한문 서식을 사용한다.

3. 거울의 형태

스다하치만 신사 인물화상경은 청동으로 만들어졌으며, 지름은 19.9cm이다. 근세의 지지류에도 이 거울에 대한 기록이 있는 것[4]으로 보아, 오래전에 출토된 것은 확실하지만, 정확한 출토 연대나 장소는 알 수 없다. 거울 뒷면 중앙에는 둥근 꼭지가 있고, 안쪽에는 고대 중국의 전설적인 인물인 동왕부(東王父)·서왕모(西王母) 등 9명의 인물이 새겨져 있다. 그 주위에는 반원과 사각형으로 이루어진 문양대가 있고, 바깥쪽에는 톱니 모양의 거치문(鋸齒文)이 있다. 가장자리에는 한자 48자로 된 명문이 왼쪽으로 돌아가며 새겨져 있다.

이 거울의 원본이 된 화상경(畫像鏡)은 오사카부 야오시의 군가와니시즈카 고분, 후지이데라시의 나가모치야마 고분, 교토부 교타나베시의 톳카 고분, 후쿠이현 와카사정의 니시즈카 고분, 도쿄도 고마에시의 가메즈카 고분 등에서 같은 형태의 거울 또는 그것을 다시 본떠 만든 거울이 발견되었다. 그러나 원본 거울과 이 거울은 동왕부, 서왕모를 중심으로 그려진 문양이 모두 반대로 새겨져 있다.

4. 역사적 의의

스다하치만 신사 인물화상경은 일본어의 고유 명사가 한자를 사용하여 표기된 최초기의 예시 중 하나이다.[3] 고대 일본에서 대왕 호를 기록한 금석문으로는 이나리야마 철검 명과 에다후네야마 철도 명이 있으며, 이 인물화상경도 대왕 호가 언제부터 사용되었는지를 아는 실마리가 된다. 또한, 언제 야마토의 왕이 대왕이라 칭하게 되었는지를 해명하는 실마리 중 하나로 주목받고 있다.

무령왕릉에서 발굴된 무령왕릉 거울과 닌토쿠 천황의 거울, 그리고 게이타이 천황이 가진 거울의 모양이 유사하다. 부여 계통의 나라에서는 금동 거울은 왕을 상징했다. 이러한 고대 명문을 근거로, 한국 학자 김운회는 게이타이 천황과 백제 무령왕의 형제 관계를 추론한다.[1]

《기이국 명소도회》에 묘사된 스다 하치만 신사 거울의 수묵화


이 거울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1838년에 출판된 《기이국 명소도회》의 3권에 실려 있다. 이 텍스트에 따르면, 이 거울은 스다 하치만 신사에서 대대로 전해져 소중히 여겨졌다. 신사의 승려들은 이 거울의 역사에 대한 전통적인 설명을 들려주었는데, 이 설명에 따르면 진구 황후가 한국의 삼한을 정복한 후 "그 땅의 사람들"에게서 헌상받았다고 한다. 그녀의 한국 침략이 역사적 사건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다. 이 텍스트는 거울의 역사적 기원에 대한 다른 이론들을 언급하고 있으며, 명문에 사용된 글자를 분석하여 유물의 연대를 추정하려 시도한다. 이 텍스트에는 또한 거울의 수묵화가 포함되어 있다.

5. 기록



이 거울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1838년에 출판된 《기이국 명소도회》 3권에 실려 있다. 이 책에 따르면, 이 거울은 스다하치만 신사에서 대대로 전해져 소중히 여겨졌다. 신사의 승려들은 이 거울의 역사에 대해, 진구 황후가 한국의 삼한을 정복한 후 "그 땅의 사람들"에게서 진구 황후에게 헌상되었다는 전통적인 설명을 들려주었다. 그녀의 한국 침략이 역사적 사건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다. 이 책은 거울의 역사적 기원에 대한 다른 이론들을 언급하고 있으며, 명문에 사용된 글자를 분석하여 유물의 연대를 추정하려 시도한다. 이 책에는 또한 거울의 수묵화가 포함되어 있다.[1]

참조

[1] 뉴스 야마토 왕조의 중시조, 게이타이천황은 무령왕의 아우 http://www.pressian.[...] Pressian 2008-12-05
[2] 문서 人物画象鏡 東京国立博物館
[3] 서적 かな : その成立と変遷 岩波書店
[4] 문서 紀伊国名所図会 森岡隆
[5] 서적 継体天皇と即位の謎 吉川弘文館 2020-03-10
[6] 서적 継体天皇と即位の謎 吉川弘文館 2020-03-10
[7] 서적 継体天皇と即位の謎 吉川弘文館 2020-03-10
[8] 뉴스 게이타이천황은 무령왕의 아우 http://www.pressian.[...] 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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