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응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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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신응조는 1852년(철종 3) 정시문과에 급제하여 관직에 진출한 인물이다. 흥선대원군의 측근으로 활동하며 그의 신임을 받아 여러 요직을 역임했고, 고종의 신임 또한 받아 흥선대원군 실각 이후에도 관직 생활을 이어갔다. 임오군란 당시 우의정에 임명되었으나 군란 종결 후 사퇴했으며, 좌의정을 거쳐 영중추부사에 이르렀다.

신응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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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신응조는 흥선대원군의 측근으로, 1852년(철종 3)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관직에 진출하였다. 뒤늦게 관직에 올라 부사과가 되었으나, 성균관대사성과 이조참의를 거쳐 고종 때 우승지가 되면서부터 흥선대원군의 신임을 받기 시작했다.

2.1. 관직 생활

1852년(철종 3)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관직에 진출하였다. 성균관대사성, 이조참의를 거쳐 고종 때 우승지를 역임하였다. 흥선대원군의 측근으로 활동하며 예문관제학, 이조참판, 사헌부대사헌, 홍문관제학, 강원도관찰사, 형조판서, 이조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흥선대원군 실각 후에도 고종의 신임을 받아 평안도관찰사, 홍문관제학, 사헌부대사헌, 예조판서, 예문관제학, 형조판서, 공조판서, 경상도관찰사, 판의금부사 등을 역임하였다. 임오군란 때에는 흥선대원군에 의해 우의정에 임명되었으나, 임오군란이 종결된 후 사퇴했다. 이후 판중추부사를 거쳐 좌의정에 올랐다가 영중추부사가 되었다.

2.1.1. 과거 급제

1852년(철종 3)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철종 때 뒤늦게 관직에 올라 부사과가 되고, 성균관대사성과 이조참의를 거쳐 고종 때 우승지가 되며, 흥선대원군의 신임을 받아 그의 측근으로 활동했다.

2.1.2. 주요 관직 역임

1852년(철종 3)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관직에 진출하였다. 성균관대사성, 이조참의를 거쳐 고종 때 우승지를 역임하였다. 흥선대원군의 신임을 받아 그의 측근으로 활동하며 예문관제학, 이조참판, 사헌부대사헌, 홍문관제학, 강원도관찰사, 형조판서, 이조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2.1.3. 흥선대원군과의 관계

신응조는 1852년(철종 3)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관직에 진출했다. 우승지를 역임하며 흥선대원군의 신임을 얻어 그의 측근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흥선대원군 집권기에 예문관제학, 이조참판, 사헌부대사헌, 홍문관제학, 강원도관찰사, 형조판서, 이조판서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이는 흥선대원군의 각별한 신임 덕분이었다. 흥선대원군 실각 후에도 고종의 신임을 받아 평안도관찰사, 홍문관제학, 사헌부대사헌, 예조판서, 예문관제학, 형조판서, 공조판서, 경상도관찰사, 판의금부사 등을 역임했다. 임오군란 때에는 흥선대원군에 의해 우의정에 임명되었으나, 임오군란이 종결된 후 사퇴했다. 이후 판중추부사를 거쳐 좌의정에 올랐다가 영중추부사가 되었다.

2.1.4. 고종과의 관계

흥선대원군 실각 이후에도 고종의 신임을 받아 평안도관찰사로 나갔다가 홍문관제학, 사헌부대사헌, 예조판서, 예문관제학, 형조판서, 공조판서, 경상도관찰사, 판의금부사 등을 역임하였다.

2.2. 임오군란과 그 이후

1882년 임오군란 당시 흥선대원군의 재집권으로 우의정에 임명되었으나, 임오군란이 종결된 후 사퇴하였다. 이후 판중추부사를 거쳐 좌의정에 올랐다가 곧 영중추부사가 되었다.

3. 평가

신응조는 흥선대원군의 측근으로 활동하며 그의 집권기에 이조참판, 대사헌, 형조판서, 이조판서 등 요직을 거쳤다. 임오군란우의정에 임명되기도 했으나, 군란이 종결된 후 사퇴했다. 이후 좌의정을 거쳐 영중추부사가 되었다.

3.1. 종합적 평가

신응조에 대한 종합적인 평가는 현재까지 존재하지 않는다.

4. 둘러보기

wikitext
고종 때 우의정을 지낸 신응조는 종묘 고종실에 배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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