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환진
1. 개요
심환진은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인물로, 1901년 탁지부 주사로 시작하여 조선총독부 군수, 중추원 참의 등을 역임했다. 그는 일제로부터 한국 병합 기념장, 훈장을 받았으며, 광업권을 획득하고 창씨개명을 지원하는 등 적극적인 친일 행위를 했다. 이러한 행적으로 인해 친일파 708인 명단,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 포함되었다.
| 이름 | 심환진 |
|---|---|
| 원래 이름 | 沈晥鎭 |
| 출생일 | 1872년 1월 20일 |
| 임기 시작 | 1914년 9월 25일 |
| 임기 종료 | 1922년 9월 25일 |
| 총독 | 데라우치 마사타케 하세가와 요시미치 사이토 마코토 |
| 군주 | 요시히토 |
| 섭정 | 히로히토(前) |
| 총리 | 오쿠마 시게노부 (일본 총리) 데라우치 마사타케 (일본 총리) 하라 다카시 (일본 총리) 다카하시 고레키요 (일본 총리) 우치다 고사이 (일본 총리 권한대행) 가토 도모사부로 (일본 총리) |
| 본관 | 청송(靑松) |
| 출생지 | 조선 한성부 |
| 거주지 | 일제강점기 경성부 종로 |
| 사망지 | 대한민국 서울 종로구 권농동 |
| 사망일 | 1951년 9월 10일 |
| 직책 | 前 조선총독부 경상북도 상주군 군수 (前 朝鮮總督府 慶尙北道 尙州郡 郡守) |
| 정당 | 무소속 |
| 前 조선총독부 경상북도 성주군 군수 前 한국민주당 상임고문 前 민주국민당 전임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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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인명사전 수록자 -
최남선
최남선은 1890년에 태어나 1957년에 사망한 대한민국의 문인이자 독립운동가, 언론인, 역사학자이며, 《소년》을 창간하고 신체시 〈해에게서 소년에게〉를 발표하여 현대 한국 문학의 선구자로 평가받으며, 3·1 운동 독립선언서 기초, 친일 행적, 단군 연구, 《단군론》, 《불함문화론》 저술 등의 활동을 했다. -
친일인명사전 수록자 -
이원수 (작가)
이원수는 일제 강점기와 대한민국의 아동문학가로서 1926년 동시 〈고향의 봄〉으로 등단하여 동요, 동시, 동화, 소년소설 등 다양한 작품을 발표하고 한국아동문학가협회 초대 회장을 역임하며 아동문학 발전에 기여했으나, 친일 작품으로 논란이 있다. -
대한민국 정부 발표 친일반민족행위자 -
최남선
최남선은 1890년에 태어나 1957년에 사망한 대한민국의 문인이자 독립운동가, 언론인, 역사학자이며, 《소년》을 창간하고 신체시 〈해에게서 소년에게〉를 발표하여 현대 한국 문학의 선구자로 평가받으며, 3·1 운동 독립선언서 기초, 친일 행적, 단군 연구, 《단군론》, 《불함문화론》 저술 등의 활동을 했다. -
대한민국 정부 발표 친일반민족행위자 -
송영 (극작가)
송영은 일제 강점기와 북한에서 활동한 극작가로, 카프 계열 연극인으로 등단하여 노동 운동 풍자 작품을 발표했으나 친일 행적을 보였고, 광복 후 월북하여 북조선연극동맹 위원장을 지냈으며, 김일성 항일 무장 투쟁을 형상화한 희곡으로 알려졌으나 한설야 숙청 시기에 숙청되었을 가능성이 있지만 애국렬사릉에 안장된 것으로 보아 복권된 것으로 추정된다. -
1872년 출생 -
폴 랑주뱅
폴 랑주뱅은 프랑스의 물리학자로서 상자성 및 반자성 연구, 초음파 발생, 상대성 이론 전파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업적을 남겼으며, 반파시즘 운동에 참여하고 프랑스 인권연맹 회장을 역임하다가 1946년 사망하여 1948년 파리의 팡테옹에 안장되었다. -
1872년 출생 -
마이클 조지프 새비지
마이클 조지프 새비지는 오스트레일리아 출신으로 뉴질랜드 노동당 창당에 기여하고 총리직에 올라 사회 보장 제도 도입, 방송 국영화 등 정책을 추진했으며, 제2차 세계 대전 참전을 결정하고 뉴질랜드 복지 국가 설계자로 평가받았다.
2. 생애
심환진은 1901년 1월 11일 탁지부 판임관 6등 주사에 임명되면서 관직 생활을 시작했다. 1907년 탁지부 서기랑, 1908년 밀양재무서장을 거쳐 1911년부터 조선총독부 군수로 근무했다. 1924년부터는 황해도 및 경상남도 참여관을 역임했고, 1927년부터 1933년까지는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지냈다. 1939년 조선유도연합회 평의원, 1940년 정총대 등을 역임하며 일제 강점기에 활동했다.
2.1. 관료 경력
심환진은 1901년부터 1933년까지 탁지부, 조선총독부 등에서 관료로 근무했다. 1927년 6월 3일부터 1933년 6월 2일까지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역임했으며, 1927년 7월 1일 특지(特旨)에 의해 정5위를 받았다. 1928년 11월 16일 일본 정부로부터 쇼와 대례 기념장을 받았다.
관료 생활 동안 여러 지역의 광업권을 설정하기도 했다.
* 1932년 9월 4일: 충청남도 공주군 반포면, 주외면, 계룡면 소재 금은광(金銀鑛) 836,900평(2766611.57m2)
* 1933년 6월 20일: 경기도 광주군 동부면 소재 사금 856,500평(2831404.96m2)
* 1933년 12월 13일: 강원도 횡성군 청일면 소재 금은광 617,000평(2039669.42m2)
* 1937년 9월 11일: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소재 금은광 986,000평(3259504.13m2)
1939년 11월 1일 조선유도연합회 평의원을 역임했으며, 1940년 전후에 정총대(町總代)를 역임하는 동안 창씨개명을 적극 지원했다. 이러한 행적으로 인해 친일파 708인 명단의 중추원 부문과 도 참여관 부문,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자 명단의 중추원 부문과 관료 부문,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 포함되었다.
2.1.1. 탁지부 주사 및 서기랑 (1901년 ~ 1908년)
1901년 1월 11일 탁지부 판임관 6등 주사에 임명되었고, 1907년 6월 20일 탁지부 서기랑(書記郞)으로 임명되었다. 1908년 1월 1일 탁지부 판임관 2등 주사를 역임했고, 같은 해 3월 밀양재무서장을 역임했다.
2.1.2. 조선총독부 군수 (1911년 ~ 1922년)
1911년 6월 26일 조선총독부 군수로 임명되었고, 7월 1일 경상북도 문경군수로 부임하였다. 1912년 8월 1일 일본 정부로부터 한국 병합 기념장을 받았으며, 1913년 3월 12일 경상북도 하양군수, 1914년 3월 1일 경상북도 성주군수, 1914년 9월 25일 경상북도 상주군수, 1922년 5월 30일 경상북도 칠곡군수를 역임하는 등 조선총독부의 식민 통치 행정에 적극 참여하였다.
1915년 6월 24일부터 1917년 7월 10일까지 경상북도 지방토지조사위원회 임시위원을 역임했고, 1918년 12월 일본적십자사로부터 특별사원으로 추천되었다. 1920년 5월 15일부터 6월 12일까지 일본지방행정시찰단에 참여했으며, 1921년 6월 27일 훈6등 서보장을 받았다.
2.1.3. 도 참여관 및 징계위원 (1924년 ~ 1927년)
1923년 12월 27일 고등관 4등에 올랐으며, 1924년 12월 1일 황해도 참여관에 임명되었다. 1924년 12월 9일부터 1926년 9월 6일까지 황해도 문관보통징계위원을 역임했고, 1925년 7월 20일 임시간이국세조사부 위원으로 임명되었다. 1926년 7월 22일 일본 정부로부터 훈5등 서보장을 받았으며, 같은 해 9월 22일 경상남도 문관보통징계위원으로 임명되었다. 1926년 9월 6일부터 1927년 6월 2일까지 경상남도 참여관을 역임했고, 1927년 2월 21일 고등관 3등에 올랐다.
2.2. 중추원 참의 (1927년 ~ 1933년)
1927년 6월 3일부터 1933년 6월 2일까지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역임했다. 1927년 7월 1일 특지에 의해 정5위를 받았고, 1928년 11월 16일 일본 정부로부터 쇼와 대례 기념장을 받았다. 중추원 참의는 일제 식민 통치에 대한 자문 역할을 수행하였다.
2.3. 광업권 획득 (1932년 ~ 1937년)
1932년 9월 4일 충청남도 공주군 반포면, 주외면, 계룡면 소재 금은광(金銀鑛) 2766611.57m2에 대한 광업권을 설정했다. 1933년 6월 20일 경기도 광주군 동부면 소재 사금 2831404.96m2에 대한 광업권을 설정했다. 1933년 12월 13일 강원도 횡성군 청일면 소재 금은광 2039669.42m2에 대한 광업권을 설정했고, 1937년 9월 11일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소재 금은광 3259504.13m2에 대한 광업권을 설정했다.
3. 친일반민족행위 규명
심환진은 1901년 탁지부 주사를 시작으로 1907년 탁지부 서기랑, 1908년 밀양재무서장을 역임했다. 1911년부터는 조선총독부 군수로 임명되어 경상북도 문경군수, 하양군수, 성주군수, 상주군수, 칠곡군수를 차례로 지냈다. 1912년에는 일본 정부로부터 한국 병합 기념장을 받았다.
1915년부터 1917년까지 경상북도 지방토지조사위원회 임시위원을 지냈고, 1920년에는 일본지방행정시찰단에 참여했다. 1921년 훈6등 서보장을 받았으며, 1923년 고등관 4등, 1924년 황해도 참여관에 임명되었다. 1926년에는 훈5등 서보장을 받았고, 같은 해 경상남도 참여관을 역임했다.
1927년부터 1933년까지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지냈으며, 1927년 특지로 정5위를 받았다. 1928년에는 일본 정부로부터 쇼와 대례 기념장을 받았다. 1932년부터는 충청남도, 경기도, 강원도 등지에서 금광, 은광, 사금 광업권을 설정하여 채굴 사업을 벌였다.
1939년 조선유도연합회 평의원을 지냈고, 1940년 전후에는 정총대로서 창씨개명을 적극 지원했다.
3.1. 친일 명단 등재
심환진은 친일파 708인 명단의 중추원, 도 참여관 부문과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자 명단의 중추원, 관료 부문,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 포함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