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바타이 사인 칸
1. 개요
아바타이 사인 칸은 16세기 몽골의 할하부 왕족으로, 오이라트 정복과 티베트 불교 전파에 크게 기여한 인물이다. 그는 오이라트와의 전투에서 승리하여 오이라트를 정복하고, 제3대 달라이 라마 소남 갸초를 만나 불교를 받아들여 에르데니 주우 사원을 건립하는 등 몽골 불교 발전에 힘썼다. 아바타이는 1588년 사망했으며, 그의 사후 오이라트의 반란으로 아들이 살해되는 등 혼란을 겪었지만, 몽골의 불교 전파와 재통일을 시도한 마지막 통치자로 칭송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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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칭호 | 칸 |
|---|---|
| 통치 기간 | 1544년–1588년 |
| 즉위 | 1587년 |
| 전체 이름 | 아브타이 사인 칸, 바즈라 홀더의 오치라이 사인 칸 |
| 이전 통치자 | 오노쿠이 위젠 노얀 (몽골 왕자) |
| 다음 통치자 | 에르키 메르겐 칸 |
| 왕가 | 투셰트 |
| 아버지 | 오노쿠이 위젠 노얀 (몽골 왕자) |
| 출생일 | 1554년 |
| 사망일 | 1588년 |
| 매장 장소 | 에르데네 조 사원 |
| 종교 | 티베트 불교 |
| 배우자 | 알 수 없음 |
|---|---|
| 자녀 | 슈부다이, 에르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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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의 카간 -
복드 칸
복드 칸은 몽골의 종교적, 정치적 지도자로, 1911년 몽골 독립 후 칸으로 추대되어 1924년 사망할 때까지 통치했으며 그의 사후 몽골 인민 공화국이 수립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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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첸캄포
송첸캄포는 7세기 티베트 야르룽 왕조의 제33대 왕으로, 티베트를 통일하고 불교를 전파했으며, 라싸를 수도로 삼고 영토를 확장하여 중앙집권 체제를 구축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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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티외 리카르
마티외 리카르는 프랑스 출신의 작가이자 승려로, 분자 유전학 박사 학위 취득 후 티베트 불교 수행에 전념하며 달라이 라마의 통역을 맡고 인도주의 프로젝트에 기부하며 비건주의와 동물 권리를 옹호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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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탄 칸
알탄 칸은 16세기 몽골의 지배자로서 투메트부를 다스리고 명나라와 교역을 시도하다 베이징을 공격하고 화의를 맺었으며, 티베트 불교를 몽골에 부흥시키고 후허하오터를 건설하는 등 몽골의 종교적, 사회적 통합에 기여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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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도스부
15세기 몽골 부족 연합에서 시작된 오르도스부는 칭기스 칸의 영묘를 수호하며, 다얀 칸에 의해 재통일된 몽골에 복속, 알탄 칸 시대를 거쳐 청나라 지배 아래 7개의 기로 재편되었고, 현재 내몽골 자치구 오르도스 시의 기원이다.
2. 생애
2.1. 어린 시절
아바타이는 1554년 할하부의 왕족 오노후이 우이젠 노얀의 장남으로 셀렝가강 유역에서 태어났다. 그는 몽골 제국의 대칸 다얀 카안의 증손자이자, 다얀 카안의 열한번째 아들 게레센지 잘라이르의 손자였다. 정확한 생일은 기록이 전하지 않으며, 1544년생 설도 있다. 전설에 의하면 아바타이가 태어날 때 그의 손가락에 피가 묻어 있었는데, 이는 강인한 전사가 될 징조였다 한다.
아바타이의 원래 이름은 사바타이(Сабатай)로, 몽골어로 받치는 그릇을 뜻한다. 별칭 바키르(Вачир)는 몽골어로 금강석을, 아바타이 혹은 아브타이는 마법의 은사를 가진 자를 뜻한다. 가르주 타이지(галзуу тайж)라는 별칭은 몽골어로 미친 왕자를 뜻하며, 오이라트와 맹렬하게 싸워서 얻었다.
그의 초기 생애와 소년 시절에 대한 기록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 그는 외할하부의 노얀이었고, 아버지 오노후이 우이젠은 조부 게레센제 잘라이르로부터 외할하 왼쪽 일부를 영지로 받았다. 그는 아버지 사후 외할하부의 왼쪽, 동쪽의 영지를 물려받았다. 아바타이의 소유지는 케룰렌강 유역에서 항가이산맥 일부, 오논강(
2.2. 오이라트와의 교전
1564년 오이라트를 공격한 이후 그는 1567년부터 오이라트족 원정에 여러번 참여, 오이라트 4부를 굴복시켰다. 1577년 쿠브케르-게린(Хубхэр-Гэрийн) 전투에서 최종적으로 승리, 오이라트를 정복했다. 같은 해 아바타이 칸은 자신의 아들 수바가타이를 오이라트를 통치하게 하고, 홍타이지로 임명했다. 일설에는 아바타이가 아들 수바가타이를 오이라트의 칸으로 선언했다고도 한다. 전투에서의 그의 포악함은 그에게 미친 영웅(The Mad Hero) 또는 북부 할하의 미친 타이지라는 별명을 얻게 했다.
1580년과 1581년 아바타이는 오이라트를 공격, 더 서쪽으로 쫓아냈고 오이라트인은 이르티시강과 알타이 일대로 흩어지게 되었다. 아바타이의 세력은 주로 몽골 북서부 외할하 지역과, 오이라트의 남부와 동부에 영향을 주었다. 동시에 그는 몽골 제국의 카간 투멘 자삭투 카안의 명목상의 우월성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2.3. 달라이 라마와의 만남
아바타이 칸은 불교 경전을 공부하고 몽골로 돌아와 불교를 전파하는데 열정적이었다. 1577년 투메드부의 호르호트로 가서 제3대 달라이 라마 소남 갸초를 만나 가르침을 받았으며, 제3대 달라이 라마로부터 올제이 사인 칸(Очирай Сайн Хан 또는 Өлзийт сайн хан 斡齐赖赛因 汗)의 존호를 받았다. 몽골어로 올제이는 축복, 수복, 길상함을, 사인은 현명함을 뜻한다. 초그드 오치르 노문 사인 카안(цогт очир номун сайн хаан, 위엄있는 금강저와 같은 크고 현명한 카안)이라는 칭호도 받았는데, 초그드는 위엄과 영광, 오치르는 불교의 금강저를 의미한다.
1580년경, 아바타이는 알탄 칸이 티베트 불교 겔룩파(황교파)로 개종하고 소남 갸초를 자신의 영토로 초청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아바타이는 투메드부의 귀화성(현, 내몽골 자치구 후얼하오터 시)에 온 라마 쉬레게튀 귀시 초지와를 초빙하여 티베트 불교의 기본 교리를 강독, 설파하게 하였다.
할하부의 수령 아바타이 칸은 달라이 라마와 회견하고 불교 전파에 힘썼으며, 1586년에는 카라코룸의 폐허 위에 몽골 최대의 사원인 에르데니 주우 사원을 건립했다. 아바타이는 외할하에서 샤머니즘을 금지하고 티베트 불교를 할하 몽골의 국가 종교로 선언했다. 조로아스터교 포교를 지원하기도 했다.
2.4. 불교 포교 활동
아바타이는 1585년에 카라코룸 옛 수도의 남쪽 외할하 우부르항가이에 에르데니 주우 수도원(Эрдэнэ Зуу хийд, 光顯寺, ལྷུན་གྲུབ་བདེ་ཆེན་གླིང티베트어)의 건설을 명령했다. 고대 몽골 수도 카라코룸의 인근 유적에서 나온 돌들이 건축에 사용되었고, 수도원에는 압타이가 달라이 라마로부터 받은 이미지와 유물들이 봉헌되었다. 그는 외할하에 사찰 에르데니스를 건립하고 만주석리 쿠툭투에 봉헌했다. 티베트 불교 겔룩파를 막북에 전파했다.
1587년 혹은 1586년 아바타이는 1583년에 사망한 투메드부 알탄 칸을 위해 추모하기 위해 라사에서 그곳을 여행했던 제3대 달라이 라마인 소남 갸초를 만나기 위해 귀화성으로 갔다. 그는 소남 갸초로부터 대원 울제이 칸(大元 瓦齊爾汗 혹은 大威儀 瓦齊爾汗)이라는 존호를 받았다. 할하부에서 최초로 칸의 직책을 받았다.
2.5. 사망
1588년 아바타이 칸이 사망하고 그의 유해는 에르데니 주우 사원에 안장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아들 슈부우다이가 오이라트 족장들에게 살해되었다. 그의 영토는 후일 투시예트칸부와 사인노얀칸부로 발전하였다. 따라서 아바타이를 투시예트부의 실질적인 창시자로 보는 견해도 있다.
그가 죽은 후, 오이라트족은 반란을 일으켰고, 아들 수바가타이는 오이라트에 패하고 살해되었다. 1609년경 아바타이의 종조부 아시카이의 손자 슈루이 우바시가 새로운 콩타이지 정권을 설립, 코토고이드부(알탄 칸 왕조)를 세워 오이라트를 감시, 지배했다. 그러나 할하부계 몽골과 오이라트와 그 후신인 준가르 사이의 대립, 갈등은 18세기 준가르가 청나라에 정복될 때까지 계속되었다. 다른 아들 에르히는 1588년 메르겐 칸이라 자처하였다.
1921년 몽골 인민 혁명 이전까지 몽골에서는 아바타이 칸에게 바치는 특별한 숭배가 번성했다. 그는 원나라가 멸망한 후 몽골 재통일을 시도하고, 몽골에 불교를 전파하려 노력한 마지막 통치자로 칭송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