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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쿠라 겐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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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아사쿠라 겐타는 2000년부터 2015년까지 주니치 드래건스에서 선수로 활동한 일본의 야구 선수이다. 도호 고등학교 시절 149km/h의 강속구를 던지며 주목받아 1999년 드래프트에서 1순위로 주니치에 입단했다. 2002년 선발 로테이션에 합류하여 11승 11패를 기록하며 성장했지만, 부상과 부진을 겪기도 했다. 2006년에는 13승을 거두며 전성기를 맞았고, 2007년에는 월간 MVP를 수상하며 2년 연속 두 자릿수 승리를 달성했다. 2015년 은퇴를 발표하고, 이후 주니치 드래건스에서 2군 투수 코치, 1군 투수 코치를 거쳐 현재는 구단 편성부에서 프로 스카우트 및 웨스턴 담당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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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쿠라 겐타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주니치 선수 시절의 아사쿠라 겐타 ([[한신 고시엔 구장]])
주니치 선수 시절 (한신 고시엔 구장)
출생지기후현 기후시
생년월일1981년 6월 11일 (43세)
신장186cm
체중94kg
포지션투수/코치
투구/타석우투/우타
선수 경력
고등학교도호 고등학교
프로 입단주니치 드래건스 (2000년 ~ 2015년)
드래프트1999년 1순위
데뷔2000년 8월 10일
마지막 출장2015년 9월 20일 (은퇴 경기)
코치 경력
코치주니치 드래건스 (2016년 ~ 2018년)
NPB 성적
승-패65승 70패
평균 자책점4.11
탈삼진739
수상 경력
올스타1회 (2006년)
일본 시리즈 우승1회 (2007년 일본 시리즈)

2. 선수 경력

아사쿠라 겐타는 1999년 도호 고등학교 3학년 때 봄과 여름 고시엔 대회에 연속 출장하며 주목받는 투수였다. 특히 여름 대회에서는 최고 149km의 강속구를 기록하며 드래프트 상위 후보로 떠올랐고, 주니치 드래건스에 1위로 지명되어 입단했다.[37]

프로 입단 후 초기에는 제구력 난조로 어려움을 겪었다. 2000년 평균자책점 14.02, 2001년 5패를 기록하며 부진했으나, 2002년 투구 폼 교정 후 선발 로테이션에 합류하여 11승 11패로 반등했다.

2003년부터 2005년까지는 부상과 회복을 반복했다. 2003년 오른쪽 팔꿈치 박리골절 부상으로 1승 4패, 평균자책점 7.89를 기록했다. 2004년 등번호를 18번으로 변경하고 부활을 노렸으나, 선발 로테이션에 합류하지 못했다. 2005년에는 1군과 2군을 오가며 불안정했지만, 시즌 중반 이후 좋은 투구를 보였다.

2006년과 2007년은 아사쿠라의 전성기였다. 2006년 슈트를 활용한 뛰어난 위기관리 능력과 향상된 제구력을 바탕으로 13승을 거두며 주니치 드래건스의 핵심 선발 투수가 되었다. 2007년 월간 MVP를 수상하는 등 활약했지만, 시즌 막판 부진으로 팀의 센트럴 리그 2연패는 실패했다. 그러나 일본 시리즈와 아시아 시리즈 우승에 기여했다.

2008년부터 2015년까지는 부상과 부진이 겹쳤다. 2008년 오른쪽 팔 혈행 장애, 2011년 오른쪽 팔꿈치 수술 등 잦은 부상에 시달렸다. 2009년 2년 만에 규정 투구 이닝과 두 자릿수 승리를 달성했지만, 이후 뚜렷한 활약을 보이지 못했다. 2015년, 아사쿠라는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은퇴 경기에서 도조 가쓰히로를 상대로 138km/h 직구를 던져 포수 파울 플라이로 처리하며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다.[20][21][22]

2. 1. 프로 입단 전

1999년, 도호 고교 (스기타 신교와 동급생) 3학년 때 봄과 여름 고시엔투수1루수로 연속 출장했다.[37] 두 대회 모두 첫 경기에서 패했지만, 여름 대회에서는 후에 팀 동료가 되는 후쿠자와 타카히로와 투구 대결을 펼쳤고, 대회 최고 속도인 149km의 강속구를 기록하여 드래프트 상위 후보로 주목받았다.[37] 1999년 드래프트에서는 가와치 타카야 (히로시마 도요 카프)의 1차 지명에서 제외되어, 연고지인 주니치 드래건스에 1위로 지명되어 입단했다.

2. 2. 프로 입단 후

아사쿠라 겐타는 입단 초기 제구력 난조를 겪었다. 신인 시절인 2000년 평균자책점 14.02, 2001년 5패를 기록하는 등 부진했으나, 2002년 투구 폼 교정 후 선발 로테이션에 합류하여 11승 11패로 반등에 성공했다.

2003년부터 2005년까지는 부상과 회복을 반복했다. 2003년 오른쪽 팔꿈치 박리골절 부상으로 1승 4패, 평균자책점 7.89를 기록했다. 2004년 등번호를 18번으로 변경하고 부활을 노렸으나, 선발 로테이션 진입에 실패했다. 2005년에는 1군과 2군을 오가며 불안정했지만, 시즌 중반 이후 좋은 투구를 보였다.

2006년과 2007년은 아사쿠라의 전성기였다. 2006년 슈트를 활용한 뛰어난 위기관리 능력과 향상된 제구력을 바탕으로 13승을 거두며 주니치 드래건스의 핵심 선발 투수가 되었다. 2007년 월간 MVP를 수상하는 등 활약했지만, 시즌 막판 부진으로 팀의 센트럴 리그 2연패는 실패했다. 그러나 일본 시리즈와 아시아 시리즈 우승에 기여했다.

2008년부터 2015년까지는 부상과 부진이 겹쳤다. 2008년 오른쪽 팔 혈행 장애, 2011년 오른쪽 팔꿈치 수술 등 잦은 부상에 시달렸다. 2009년 2년 만에 규정 투구 이닝과 두 자릿수 승리를 달성했지만, 이후 뚜렷한 활약을 보이지 못했다. 2015년, 아사쿠라는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은퇴 경기에서 도조 가쓰히로를 상대로 138km/h 직구를 던져 포수 파울 플라이로 처리하며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다.[20][21][22]

2. 2. 1. 2000년 ~ 2002년: 신인 시절과 성장

2000년 아사쿠라 겐타는 프로 선수로 입단하였지만, 투구 컨트롤 난조로 9경기에 등판하여 평균자책점 14.02를 기록하며 기대 이하의 성적을 거두었다. 다음 해인 2001년에는 단 1승도 거두지 못하고 5패를 기록하며 부진했다.

그러나 2002년에는 투구 폼을 교정하여 선발 로테이션에 합류, 11승 11패의 좋은 성적을 기록했다. 비약적인 성장을 통해 첫 홈런을 기록하기도 했지만, 오른쪽 팔꿈치 박리골절 부상으로 장기간 팀을 이탈하기도 했다.[1][2][3][4][5][6][7]

2. 2. 2. 2003년 ~ 2005년: 부상과 회복

2003년에는 3월 29일 요미우리 자이언츠전(도쿄 돔)에서 시즌 첫 등판했지만, 아베 신노스케에게 만루 홈런을 맞는 등 5회 7실점으로 부진했다.[1][2] 4월 4일 요코하마 베이스타즈전(나고야 돔)에서는 완투 승리와 함께 3회말에 프로 첫 홈런을 기록하며 투타에서 활약했다.[3][4] 하지만, 그 후 3경기 연속으로 난타당하며 5월에 2군으로 내려갔다.[5] 이후 2군 경기 등판 중 5월 말에 오른쪽 팔꿈치 박리골절이 발견되었다.[6] 결국 6경기 등판에 그쳐 1승 4패, 평균자책점 7.89로 부진한 성적을 기록했다.[7] 시즌 후에는 연봉 3200만(700만 엔 감액)으로 계약을 갱신했다.[7]

2004년에는 등번호를 '''41'''번에서 '''18'''번으로 변경하며 부활을 다짐했다. 개막 직전 오른쪽 어깨 통증을 겪었지만, 5월 26일 야쿠르트 스왈로스전(메이지 진구 야구장)에서 복귀 승리를 거두었다.[8] 그러나 선발 로테이션에 합류하지는 못했다. 일본 시리즈에는 출전 선수 명단에 포함되어 등판 기회를 얻기도 했다.

2005년에는 주로 선발 투수로 활약했지만, 1군과 2군을 오가며 불안정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시즌 중반부터 후반까지 좋은 투구를 보여주기도 했다. 평소 선수에 대한 비판을 거의 하지 않는 오치아이 히로미츠 감독도 이 시기의 아사쿠라에 대해서는 엄격한 언급을 자주 했다.

2. 2. 3. 2006년 ~ 2007년: 전성기

2006년에는 2월에 열린 WBC 국가대표 평가전에서 12개 구단 연합팀에 선발되어, WBC 출전팀의 이치로를 내야 땅볼로 처리했다. 개막 당시에는 이시이 히로야와 함께 롱 릴리프로 기용되었지만, 5월에 선발 투수로 기용된 이후 호투하며 승리를 쌓아갔다. 위기에 몰려도 새 구종 슈트를 구사하여 내야 땅볼 병살로 위기를 넘기는 장면이 자주 보였고, 동시에 제구력도 개선되었다. 7월 4일 요미우리 자이언츠전에서는 2002년 이후 4년 만에 완봉 승리를 기록, 감독 추천으로 올스타전에도 출전했다. 8월 16일에는 2002년 이후 4년 만이자, 개인 통산 두 번째 2자릿수 승리를 달성했다. 그 후에도 승수를 늘려, 10월 8일 요코하마 베이스타즈전에서 개인 신기록인 12승을, 14일에는 강한 면모를 보인 야쿠르트전에서 13승을 올렸다. 오치아이 히로미쓰 감독도 "아사쿠라는 작년까지와는 전혀 다르다"라고 말하는 등, 마침내 코칭 스태프의 신뢰를 얻어 선발 로테이션 투수로서 비약적인 성장을 이룬 한 해가 되었다. 일본 시리즈에서는 3차전에 선발 등판하여, 1회 초 시작부터 실점했지만 2회 이후 안정을 찾아, 후반까지 추가 점수를 허용하지 않는 호투를 보였지만 타선의 지원을 받지 못하고 패전 투수가 되었다.

2007년에는, 개막부터 선발 투수로 기용되었다. 전반에는 제구 난조로 부진했지만, 여름에 들어서면서 컨디션을 끌어올려, 7월과 8월에는 7승 1패의 좋은 성적을 기록했다. 특히 8월에는 4승 0패, 방어율 1.10으로 개인 첫 월간 MVP에 빛났다. 그러나 9월에 들어서면서 우승 경쟁 속에서 다시 컨디션이 떨어져, 12승 이후에는 방어율 8.38로 부진했다. 특히 9월 26일 자이언츠와의 맞대결에서는, 4점 리드를 지키지 못하고 와키야 료타에게 역전 홈런을 맞아 패전 투수가 되면서, 팀의 센트럴 리그 2연패를 멀어지게 했다. 9월 7일 야쿠르트전(나고야 돔)에서 12승을 올렸을 당시 방어율 2.72로 최우수 방어율을 노릴 수 있는 위치에 있었지만[9], 최종적으로는 3.36까지 수치가 떨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 첫 2년 연속 2자릿수 승리를 달성했다. 또한, 피홈런 9개는 규정 이닝 이상을 던진 센트럴 리그 투수 중에서 가장 적었다(센트럴 리그와 퍼시픽 리그를 통틀어서도 공동 2위). 나고야 돔에서는 방어율 2.11, 6승 1패로 맹활약한 반면, 지방 구장을 제외한 원정 경기에서는 2승 6패, 방어율 5.12로 안방 챔피언의 면모를 보였다. 클라이맥스 시리즈 제2 스테이지 1차전에 선발이 예정되어 있었지만 10월 9일, 훈련 후 차를 타고 귀가하던 중 교차로에서 오토바이와 인명 사고를 냈다. 이 결과 선발을 회피, 야마이 다이스케의 어깨 부상 등의 이유로 제1차전에는 제1 스테이지에 구원 등판했던 오가사와라 다카시가 급하게 선발로 나섰다. 팀은 3연승으로 일본 시리즈 진출을 확정했지만 아사쿠라 본인은 엄중 주의 처분을 받았다. 10월 30일 일본 시리즈 3차전에서는, 선발 투수로서 9개의 피안타를 허용했지만 7이닝 1실점으로 니혼햄 타선을 막아내며 일본 시리즈 첫 승리를 거두었고, 주니치 드래건스 53년 만의 일본 시리즈 우승에 크게 기여했다. 아시아 시리즈에서는 2차전에 등판하여, 6이닝 2실점의 호투로 주니치의 첫 승리를 이끌었고, 팀도 아시아 챔피언이 되었다.

2. 2. 4. 2008년 ~ 2015년: 부상과 은퇴

2008년에는 개막부터 선발 투수로 기용되었지만, 5월 30일 부진으로 등록이 말소되었다. 6월 22일에 1군에 복귀하여 7월 3일 한신전에서 5이닝 1실점으로 호투했지만, 같은 달 6일에 다시 전력에서 이탈했다. 오른쪽 팔의 혈행 장애 때문이었다. 재활을 거쳐 피닉스 리그에서 실전에 복귀, 호투하여 클라이맥스 시리즈 제2 스테이지 2차전 선발로 발탁되었지만, 오가사와라 미치히로에게 2타석 연속 홈런을 맞는 등 2이닝 6실점으로 부진했고 팀도 패했다. 3차전에서는 12회 말에 등판하여 1이닝 무실점으로 시즌을 마무리했다.[10]

2009년에는 개막부터 선발 투수로 주로 고야마 케이지와 배터리로 활약했다. 후반에 컨디션이 떨어져 9월 18일에 등록이 말소되었지만, 재등록 후인 9월 29일 자이언츠전(나고야 돔)에서는 6이닝 1실점으로 호투하고, 타석에서는 2점 적시 2루타를 날리는 활약으로 시즌 10승을 달성했다. 방어율은 4.04(규정 투구 이닝 달성자 중 최하위)로 완투는 없었지만, 선수 생명을 위협받았던 혈행 장애를 극복하고 2년 만에 규정 투구 이닝 달성과 2자릿수 승리를 달성했다.[11][12][13]

2010년에는 개막을 늦게 시작했지만, 야쿠르트전을 중심으로 3승을 거두었지만 6패로 부진했고, 8월 이후에는 출전 기회가 없었다. 오프에는 우승 여행 동행을 허가받았지만 성적 부진으로 스스로 사퇴했다.

2011년에는 개막 1군에 합류하여 홈 개막전인 4월 15일 한신전(나고야 돔)에서 선발 등판했지만, 4회 5실점으로 부진하며 강판, 즉시 등록이 말소되었다. 7월 9일 요코하마전(나고야 돔)에서 복귀했지만, 여기서도 4회 도중 3실점으로 강판, 7이닝 7실점 2홈런이라는 성적을 기록하며 2001년 이후 첫 무승으로 끝났다. 이후 부상이 밝혀져 8월에 오른쪽 팔꿈치 수술을 받았고, 재활에 전념했다.[14][15][16][17]

2012년에는 개막은 2군에서 시작했다. 5월 말에 1군에 승격되어 주로 패전 처리 요원으로 구원을 맡았지만, 최종적으로 16경기 등판에서 방어율 7.59로 결과를 남기지 못했다. 6월 11일에 국내 FA권을 취득했다.

2013년에는 작년에 이어 개막은 2군에서 시작했다. 5월 6일에 1군에 등록되어, 5월 12일 히로시마 도요 카프전에서 2년 만에 선발 등판했지만, 4회 5실점(자책점 4)으로 부진했다. 그 후, 선발 1경기, 구원 1경기에 등판했지만 결과를 남기지 못하고, 5월 21일에 2군으로 강등되었고, 그대로 시즌이 종료되었다. 시즌 오프 계약 갱신에서는 추정 연봉 1800만으로 계약 갱신했다.[18]

2014년에는 4월 25일 야쿠르트전(메이지진구 야구장)에서 시즌 첫 선발 등판하여, 6이닝 2실점으로 1403일 만에 승리 투수가 되었다. 그 해에는 4승 6패의 성적을 남긴 것이 평가되어 계약 갱신에서 연봉을 700만 엔 인상했다.[19]

2015년에는 개막을 1군에서 맞이했지만, 구원으로 3경기에 등판한 후, 그 해를 마지막으로 현역에서 은퇴할 것을 발표했다. 9월 16일에는 나고야 구장 내 시설에서 은퇴 기자 회견을 개최했다. 은퇴를 결심한 이유로, 수년 전부터 자신이 원하는 공을 던질 수 없게 된 것을 들었다. 또한, "상대 타자에게 안타를 맞아도, 지금까지와는 달리, 분함을 느낄 수 없게 되었다. '이런 마음으로 야구를 하면 안 된다'라고 생각했다" "혼자서 결정할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앞으로도 야구와 관련되고 싶다'라는 소망은 강하다"라는 심정을 토로했다. 9월 20일에 1군에 복귀하자, 같은 날 요미우리전(나고야 돔) 8회 초 1사 1루에서 "타자 1명 한정"이라는 조건으로 은퇴 등판했다. 전년도까지 동료였던 대타 도조 가쓰히로를 상대로 첫 번째 공에 138km/h의 직구로 포수 파울 플라이로 처리했다. 11월 30일자로 일본 야구 기구(NPB)에서 임의 은퇴 선수로 공시되었다.[20][21][22][23]

3. 은퇴 후

2015년 11월 28일, 아사쿠라는 주니치 드래건스 구단 직원으로 팀 통괄 본부 편성에 배속되었다.[24] 공식 발표 전인 같은 달 10일에는 12구단 합동 트라이아웃(구사나기 구장)을 시찰했다.[25]

2016년에는 2군 투수 코치로 계약하여 코치 경력을 시작했고, 이후 1군 투수 코치를 맡기도 했다. 그러나 2018년 팀 평균자책점이 리그 최악을 기록하면서 계약이 종료되었다. 2019년부터는 주니치 구단 편성부의 프로 스카우트·웨스턴 담당으로 활동하고 있다.[34][35][36]

3. 1. 코치 경력

2016년 1월 16일, 아사쿠라는 주니치 드래건스의 2군 투수 코치로 계약했다. 이는 허리 디스크 수술을 받은 1군 투수 코치 곤도 신이치의 장기 휴양[26]에 따른 조치였다. 2군 투수 코치였던 오쓰카 아키후미가 잠정적으로 1군을 지도하게 되면서, 아사쿠라는 등번호 '''97'''번[28]을 받고 2군 투수 코치를 맡게 되었다. 곤도 코치가 복귀한 이후에도 아사쿠라는 편성부원과 2군 투수 코치직을 겸임하며 오쓰카와 함께 2군 투수진을 지도했다.[29]

2017년에도 다카야마 이쿠오, 오가사와라 다카시와 함께 2군 투수진을 지도했다. 그러나 9월 1일, 1군 투수 코치진의 배치 전환에 따라 시즌 최종전까지 2군 투수 코치 등록 상태로 1군에 동행하게 되었다.[30] 9월 4일에는 투수진 부진의 책임을 지고 코치 등록에서 제외된 토모리 유이를 대신하여 1군 투수 코치로 배치 전환되었다.[31]

2018년에도 1군 투수 코치를 맡았으나, 팀 평균자책점은 4.36으로 리그 최악을 기록했다. 결국 10월 18일, 구단은 다음 시즌 계약을 맺지 않기로 발표했다.[32][33]

3. 2. 프런트 경력

2015년 11월 28일 주니치 구단 직원으로서 팀 통괄 본부 편성에 배속되었다.[24] 같은 해 11월 10일 12구단 합동 트라이아웃(구사나기 구장)을 시찰하는[25] 등, 편성부원으로서의 활동에 전념했다.

2019년부터 주니치 구단 편성부의 프로 스카우트·웨스턴 담당으로 활동하고 있다.[34][35][36]

4. 상세 정보

아사쿠라 겐타는 지방 구장에 강했으며, 2009년까지 58승 중 11승을 지방 구장에서 거두었다. 출신지인 기후의 나가라가와 구장과 부친 쪽 조부모가 사는 후쿠이의 후쿠이 현영 구장에서도 승리했다.

4. 1. 수상 및 타이틀 경력


  • 월간 MVP (투수 부문): 2007년 8월
  • 출신지별 동서 대항전 우수 선수 (2002년)

4. 2. 개인 기록

; 이정표 기록

; 기타 기록

  • 올스타 게임 출장: 1회 (2006년)

4. 2. 1. 첫 기록

투수 기록
타격 기록


4. 2. 2. 기록 달성 경력

; 투수 기록

; 타격 기록

; 이정표 기록

; 기타 기록

  • 올스타 게임 출장: 1회 (2006년)

4. 2. 3. 기타

4. 3. 등번호

아사쿠라 겐타 선수의 등번호
연도등번호
2000년 ~ 2003년41
2004년 ~ 2005년18
2006년 ~ 2015년14
2016년81
2017년97[1]
2018년81[1]


5. 연도별 투수 성적

볼넷승리패전세
이브홀드승률타자투구
회피
안타피
홈런볼넷고의
사구사구탈삼진폭투보크실점자책점평균
자책점WHIP2000년주니치91000010--.0009517.1365702910322714.022.482001년159000050--.00023649.26043411314133305.441.892002년313071011110--.500843200.11931063741497171582.611.282003년66100140--.20015329.24851610230131267.892.162004년1410000330--.50023853.06472102387027244.081.602005년16162005700.41743998.112344012654049433.941.662006년252121013600.684636154.21551233231076051482.791.222007년292630012700.632717171.2173950441055067643.361.302008년1291003402.42925556.16752001302027213.361.542009년242400010800.556655151.1159144529837078684.041.352010년990003600.33319541.15681302310029265.661.672011년220000100.000347.0102400400879.002.00통산 : 12년1921631620616302.49244961030.211448534618306754335034423.861.45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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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웹사이트 朝倉 初アーチだ 完投チーム一番乗りだ  竜3連勝 強い!!強い!!強い!! http://chuspo.chunic[...] 中日新聞社 2003-04-05
[5] 웹사이트 中日ドロ沼6連敗、朝倉またもKOで二軍落ち http://www.sanspo.co[...] 産業経済新聞社 2003-05-03
[6] 웹사이트 手術なら今季絶望 朝倉右ひじ骨折 http://chuspo.chunic[...] 中日新聞社 2003-05-29
[7] 웹사이트 竜契約更改…厳冬暖冬悲喜こもごも 朝倉▼700万、山北△1500万 http://chuspo.chunic[...] 中日新聞社 2003-12-10
[8] 웹사이트 朝倉、奪首!復活星!! 右ひじ骨折克服418日ぶり勝利 http://chuspo.chunic[...] 中日新聞社 2004-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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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뉴스 中日 退任のコーチ陣があいさつ 森脇氏「森監督と一蓮托生」 近藤氏「責任を取らないと」 https://www.sponichi[...] 스포츠니폰 2018-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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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뉴스 第81回全国高校野球選手権...5日目 第4試合 1回戦 東邦 対 滝川二 https://shun-basebal[...] 自由気ままに野球観戦 2022-04-07
[38] 뉴스 이승엽, 시즌 15번째 2루타...3경기 연속 안타 https://sports.news.[...] 스포츠조선 2022-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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