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나카 다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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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야마나카 다쓰미는 일본의 전 프로 야구 선수로, 투수였다. 주쿄 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62년 주니치 드래건스에 입단하여 1970년 은퇴할 때까지 선수 생활을 했다. 1963년과 1965년에 최고 승률 타이틀을 획득하며 팀의 에이스로 활약했으며, 1966년에는 올스타전에 출전하기도 했다. 1968년에는 이틀 연속으로 대타 끝내기 홈런을 허용하는 진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26세의 젊은 나이에 내장 질환으로 인해 은퇴 후에는 스카우트와 구단 프런트에서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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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나카 다쓰미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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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 정보 | |
영어 표기 | Tatsumi Yamanaka |
원어명 | 山中 巽 |
출생지 | 아이치현 나고야시 |
신장 | 181 |
체중 | 80 |
투구/타석 | 우/우 |
수비 위치 | 투수 |
클럽 정보 | |
프로 입단 연도 | 1962년 |
첫 출장 | 1962년 4월 14일 |
마지막 경기 | 1969년 8월 14일 |
경력 | 주쿄상업고등학교 주니치 드래건스 (1962 - 1970) |
2. 선수 경력
야마나카 다쓰미는 주쿄 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62년 주니치 드래건스에 입단하여 프로 야구 선수로 활동했다. 고등학교 시절 고시엔 대회 출전 경험을 바탕으로 프로에서 뛰어난 성적을 거두며 팀의 에이스로 활약했지만, 젊은 나이에 은퇴하게 되었다.
2. 1. 고등학교 시절
야마나카 다쓰미는 주쿄 상업고등학교 1학년 때인 1959년 하계 고시엔 대회에 대기 투수로 출전했지만, 팀이 1차전에서 다카나베 고등학교에게 패하면서 등판 기회는 없었다. 당시 3학년 유격수는 이시구로 가즈히로였다. 1961년에는 에이스 투수로서 춘계 및 하계 고시엔 대회에 연속 출전했다. 춘계 선발 대회 1차전에서 고쿠라 공업고등학교에 패배했다. 하계 선수권 대회 준준결승에서 나미쇼 고등학교의 오자키 유키오와 투수전을 펼쳤으나, 팀은 0대 14로 크게 패했다.[2] 당시 팀 동료로는 동기인 3루수 에토 쇼조, 중견수 아이바 요시히로, 포수 오모리 히데오, 1년 아래인 투수 하야시 도시히코, 포수 기마타 다쓰히코 등이 있었다.2. 2. 프로 야구 선수 시절
1962년 주니치 드래건스에 입단하여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호쾌한 투구폼에서 나오는 직구를 주무기로, 포크볼, 슬라이더, 슈토, 커브 등 다양한 구종을 던지며 활약했다.2. 2. 1. 주요 활약상
1963년 15승 6패, 승률 0.714로 최고 승률 타이틀을 획득했다. 1965년에도 12승 2패, 승률 0.857로 다시 한번 최고 승률 타이틀을 획득하며 곤도 히로시의 뒤를 잇는 주니치 드래건스의 에이스로서 활약했다. 결정구는 포크볼을 무기로 삼았고 가끔 슬라이더, 슈토, 커브 등도 던졌다.1966년에는 올스타전에 출전하기도 했다.
1968년 8월 24일과 25일, 메이지 진구 야구장에서 열린 산케이 스왈로스전에서 도요다 야스미쓰에게 이틀 연속 대타 끝내기 홈런을 맞는 진기록을 세우기도 했다.[1]
2. 2. 2. 은퇴
내장 질환을 앓아 1970년 시즌 종료 후 26세의 젊은 나이로 은퇴했다. 이후 구단에 남아 전력분석원을 거쳐 프런트에 들어가 영업부 주임 등을 지냈다.[2]3. 상세 정보
야마나카 다쓰미는 주쿄 상업고등학교 시절 고시엔에 봄, 여름 연속으로 출전하며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1962년 주니치 드래건스에 입단하여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호쾌한 투구폼에서 나오는 직구를 바탕으로 2년 차인 1963년에는 15승을 거두며 최고 승률 타이틀을 획득했고, 1965년에도 다시 한번 최고 승률 타이틀을 차지하며 곤도 히로시의 뒤를 잇는 주니치의 에이스 투수로 활약했다. 결정구는 포크볼이었으며, 슬라이더, 슈트, 커브도 구사했다.
1968년 8월 24일과 25일, 메이지 신궁 야구장에서 열린 산케이 아톰즈와의 경기에서 이틀 연속으로 도요다 야스미츠에게 대타 끝내기 홈런을 허용하는 진기록을 남기기도 했다.[1]
하지만 내장 질환으로 인해 1970년 시즌을 끝으로 26세의 젊은 나이에 은퇴해야 했다.
3. 1. 출신 학교
주쿄 상업고등학교 1학년 때인 1959년 여름 고시엔에 대기 투수로 출전했지만, 1회전에서 다카나베 고등학교에 패해 등판 기회는 없었다. 이때 3학년에는 유격수 이시구로 가즈히로가 있었다. 1961년에는 에이스로서 고시엔에 봄, 여름 연속 출장했다. 봄의 선발은 1회전에서 고쿠라 공업에 아쉽게 패했다. 여름 선수권은 준준결승에서 이 대회 우승팀인 낭상의 오자키 유키오와 맞붙었지만 0-14로 크게 패했다. 당시 팀 동료로는 동기인 에토 쇼조(3루수, 요미우리 등), 아이바 요시히로(중견수, 요미우리 등), 오모리 히데오(포수, 요미우리), 1년 후배인 하야시 토시히코 (투수, 난카이), 키마타 타츠히코(포수, 주니치)가 있었다.[1]3. 2. 선수 경력
주쿄 상업 고등학교 1학년 때인 1959년 여름 고시엔에 대기 투수로 출전했지만, 1회전에서 다카나베 고등학교에 패해 등판 기회는 없었다. 1961년에는 에이스로서 고시엔에 봄, 여름 연속 출장했다. 봄의 선발은 1회전에서 고쿠라 공업에 패했다. 여름 선수권은 준준결승에서 이 대회 우승팀인 낭상의 오자키 유키오와 맞붙었지만 0-14로 크게 졌다. 당시 팀 동료로는 동기인 에토 쇼조(요미우리 등), 아이바 요시히로(요미우리 등), 오모리 히데오(요미우리), 1년 후배인 하야시 토시히코(난카이), 키마타 타츠히코(주니치)가 있었다.1962년에 주니치 드래건스에 입단했다. 호쾌한 폼에서 나오는 직구를 무기로 2년차인 1963년에는 15승(6패)을 기록하며 최고 승률(.714) 타이틀을 획득했다. 1965년에도 12승(2패), 승률 .857로 다시 같은 타이틀을 획득하는 등 곤도 히로시의 뒤를 이은 주니치의 에이스로 활약했다. 결정구는 포크볼이었고, 때때로 슬라이더, 슈트, 커브도 던졌다.
1968년 8월 24일과 25일 양일간 메이지 신궁 야구장에서 열린 산케이 아톰즈전에서 연투했을 때 도요다 야스미츠에게 이틀 연속으로 대타 끝내기 홈런을 맞는 진기록을 남겼다.[1]
이후 내장 질환을 앓게 되어 1970년 시즌 종료 후 26세의 나이로 현역에서 은퇴했다.
3. 3. 수상·타이틀 경력
3. 4. 개인 기록
- 첫 등판 : 1962년 4월 14일, 대 다이요 웨일스 1차전(가와사키 구장), 7회말부터 3번째 투수로서 구원 등판·마무리, 2이닝 무실점
- 첫 선발 등판 : 1962년 4월 29일, 대 요미우리 자이언츠 3차전(주니치 구장), 2와 2/3이닝 4실점으로 패전 투수
- 첫 승리·첫 선발 승리 : 1963년 4월 14일, 대 고쿠테쓰 스왈로스 3차전(주니치 구장), 8이닝 3실점
- 첫 완투 승리 : 1963년 8월 1일, 대 다이요 웨일스 19차전(주니치 구장), 9이닝 2실점(1자책점)
- 첫 완봉 : 1963년 8월 4일, 대 고쿠테쓰 스왈로스 18차전(주니치 구장)
- 올스타전 출장 : 1회(1966년)
3. 5. 등번호
야마나카 다쓰미일본어는 1962년부터 1970년까지 등번호 21번을 사용했다.4. 연도별 투수 성적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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