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무라 신지로 (1908년)
1. 개요
야마무라 신지로 (1908년)는 일본의 정치인으로, 지바현 출신이다. 그는 가업으로 비료 및 미곡상을 경영하다 정계에 입문하여 지바현 의원을 거쳐 중의원 의원에 9번 당선되었다. 이케다 내각에서 자민당 국회대책위원장과 행정관리청 장관을 역임했으며, 신 도쿄 국제 공항 건설과 관련하여 농민들을 설득했다. 1964년 56세의 나이로 사망했으며, 사후 정삼위와 훈1등 욱일대수장을 추증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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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생일 | 1908년 3월 2일 |
|---|---|
| 출생지 | 지바현 사하라시(현 가토리시) |
| 사망일 | 1964년 10월 2일 |
| 사망지 | 알 수 없음 |
| 출신 학교 | 사하라 중학교 |
| 소속 정당 | 자유민주당 |
| 칭호/훈장 | 정3위훈1등 욱일대수장 |
| 가족 (정치인) | 장남 야마무라 신지로 (11대) |
| 직책 | 제23-24대 행정관리청 장관 |
|---|---|
| 내각 | 제2차 이케다 제3차 개조 내각 제3차 이케다 내각 |
| 취임일 | 1963년 7월 18일 |
| 퇴임일 | 1964년 7월 18일 |
| 직책 2 | 중의원 의원 |
| 선거구 2 | 지바 2구 |
| 당선 횟수 2 | 9회 |
| 취임일 2 | 1946년 4월 11일 |
| 퇴임일 2 | 1964년 10월 2일 |
| 기타 직책 | (총재: 이케다 하야토) |
| 취임일 6 | 1960년 |
| 퇴임일 6 | 1961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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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행정관리청 장관 -
우노 소스케
우노 소스케는 자유민주당 소속의 일본 정치인으로, 외무대신 등 요직을 거쳐 제75대 내각총리대신을 지냈으나 여성 스캔들로 인해 69일 만에 사임하며 최단명 내각 중 하나를 이끌었고, 시베리아 억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저서를 출판하기도 했다. -
일본의 행정관리청 장관 -
나카소네 야스히로
나카소네 야스히로는 1918년 군마현 출생으로 도쿄 제국대학 법학부를 졸업하고 일본 제국 해군에서 복무했으며, 자유민주당 소속으로 정계에 입문하여 내각총리대신을 역임하며 행정 개혁, 국철 민영화 등을 추진하다가 2019년 사망했다. -
훈1등 욱일대수장 수훈자 -
혼마 마사하루
혼마 마사하루는 일본 제국 육군 군인으로, 필리핀 공략전을 지휘했으나 바탄 죽음의 행진에 대한 책임으로 전범으로 처형되었고, 그의 재판은 지휘자 책임 적용 및 맥아더의 복수심 작용 등의 논란이 있다. -
훈1등 욱일대수장 수훈자 -
도고 시게노리
도고 시게노리는 조선인 도공 후손으로 도쿄 제국대학 졸업 후 외무성에 들어가 만주, 스위스, 독일, 소련 등지에서 외교관으로 활동하며 소일 중립 조약 체결에 기여했으나, 제2차 세계 대전 중 외무대신으로서 미일 관계 개선을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여 전범으로 징역 20년을 선고받았으며, 종전 과정에서 포츠담 선언 수용을 주장하여 일본 항복에 기여한 외교관이자 정치인이다. -
중의원 의원 -
아사누마 이네지로
아사누마 이네지로는 일본 사회당 위원장으로, 사회주의 운동가, 정치인으로서 일본 노농당 창립, 도쿄 시의회 의원, 국회 의원, 사회당 재건, 헌법 9조 개정 및 재군사화 반대 운동을 주도했으나, 1960년 미일 안보 조약 개정 반대 투쟁 중 극우 청년에게 암살당했다. -
중의원 의원 -
오히라 마사요시
오히라 마사요시는 일본의 정치인이자 제68대 내각총리대신으로, 외무대신 시절 한일 및 중일 국교 정상화에 기여했으며, 총리 재임 중 환태평양 연대 구상을 제시하는 등 활발한 외교 활동을 펼쳤으나 총선 직전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
2. 생애
1908년 3월 2일 지금의 지바현 가토리시에서 태어났다. 구제 사와라 중학교를 졸업한 뒤 가업을 물려받아 비료와 미곡상을 경영했다. 이후 정계에 투신해 지바현의회 의원이 되었으며 1946년에는 중의원 의원에 9번 당선되었다.
이케다 내각 때 자민당 국회대책위원장과 제2차 이케다 제3차 개조 내각 및 제3차 이케다 내각에서 행정관리청 장관을 역임했다. 신 도쿄 국제 공항 건설에 있어서 운수성이 추진한 도미사토 촌에의 공항 건설을 지지하며, "북소(北総)의 발전을 위해서다. (용지 매수 가격은) 반드시 100만 엔을 받게 해 주겠다"라고 농민들에게 설득했다.
1964년 10월 2일에 56세로 사망했다. 사후 정삼위에 추서되고 훈1등 욱일대수장을 추증받았다. 지역구는 장남인 야마무라 신지로가 물려받았다. 취미는 스포츠, 독서이며, 종교는 정토종이다.
2.1. 초기 생애 및 정계 입문
1908년 3월 2일에 지금의 지바현 가토리시에서 태어났다. 구제 사와라 중학교를 졸업한 뒤 가업을 물려받아 비료와 미곡상을 경영했다. 이후 정계에 투신해 지바현의회 의원이 되었으며 전후인 1946년에는 중의원 의원에 당선됐다.
이케다 내각 때 자민당 국회대책위원장과 행정관리청 장관을 지냈다. 나리타 국제공항 건설 장소로 운수성이 제안한 도미사토를 지지하며 용지 구매 비용으로 단당 100만 엔씩 주겠다며 적극적으로 농민들 설득에 나섰다.
1964년 10월 2일에 사망했다. 향년 56세. 사후 정3위에 추서되고 훈1등 욱일대수장을 추증받았다. 지역구는 장남인 야마무라 신지로가 물려받았다. 취미는 스포츠와 독서이며, 종교는 정토종이다.
2.2. 정치 활동
1908년 3월 2일 지금의 지바현 가토리시에서 태어났다. 구제 사와라 중학교를 졸업한 뒤 가업을 물려받아 비료와 미곡상을 경영했다. 이후 정계에 투신해 지바현의회 의원이 되었으며 1946년 중의원 의원에 당선됐다.
이케다 내각 때 자민당 국회대책위원장과 행정관리청 장관을 지냈다. 나리타 국제공항 건설 장소로 운수성이 제안한 도미사토를 지지하며 용지 구매 비용으로 단당 100만 엔씩 주겠다며 적극적으로 농민들 설득에 나섰다.
1964년 10월 2일에 사망했다. 향년 56세. 사후 정3위에 추서되고 훈1등 욱일대수장을 추증받았다. 지역구는 장남인 야마무라 신지로가 물려받았다. 취미는 스포츠, 독서이며, 종교는 정토종이다.
2.3. 사망
3. 가족 관계
야마무라 신지로는 지바현 사와라시(현 가토리시) 출신이다. 부친, 처, 장남 야마무라 나오요시(후의 11대 야마무라 신지로, 정치인, 1933년 4월 ~ 1992년 4월), 차남, 삼남, 사남, 오남 야마무라 아키라가 있다.
4. 취미 및 종교
5. 역대 선거 기록
야마무라 신지로는 1946년 제22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지바현 전현구에 자유당 (1945년) 소속으로 출마하여 당선된 이후, 제23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지바현 제2구), 제24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지바현 제2구), 제25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지바현 제2구), 제26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지바현 제2구), 제27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지바현 제2구), 제28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지바현 제2구), 제29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지바현 제2구), 제30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지바현 제2구)에서 당선되었다. 소속 정당은 자유당 (1945년), 민주자유당, 자유당 (1953년), 일본민주당, 자유민주당으로 변경되었다. 1963년 7월 18일부터 1964년 7월 18일까지 가와시마 쇼지로의 후임으로 행정관리청 장관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