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이케다 내각 (제3차 개조)
1. 개요
제2차 이케다 내각 (제3차 개조)는 1963년 7월 30일에 발족한 일본의 내각이다. 이케다 하야토가 내각총리대신을 맡았으며, 가야 오키노리, 오히라 마사요시, 다나카 가쿠에이 등 각료로 구성되었다. 주요 사건으로는 1963년 10월 중의원 해산과 11월의 제30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 쓰루미 사고 및 미쓰이 미이케 탄광 폭발 사고, 존 F. 케네디 암살 사건 등이 있었다. 내각 개조에 따라 자유민주당의 임원 개선도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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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각 명칭 | 제2차 이케다 제3차 개조내각 |
|---|---|
| 일본어 명칭 | 第2次池田第3次改造内閣 (다이니지 이케다 다이산지 가이조 나이카쿠) |
| 대수 | 59대 |
| 수상 | 이케다 하야토 |
| 성립 | 1963년 7월 18일 |
| 종료 | 1963년 12월 9일 |
| 여당 | 자유민주당 |
| 선거 | 제30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
| 해산 | 1963년 10월 23일 소득 배증 해산 |
| 명단 | 내각 명단 (일본 총리대신 관저 웹사이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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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케다 하야토 -
고도경제성장
고도경제성장은 1954년부터 1973년까지 일본에서 연평균 10% 이상의 경제 성장률을 기록하며 "동양의 기적"이라 불릴 만큼 빠른 경제 회복과 성장을 이룬 현상을 말한다. -
이케다 하야토 -
제2차 이케다 내각 (제1차 개조)
1961년 7월 18일에 출범한 제2차 이케다 내각을 1962년 7월에 개조하여 새롭게 구성한 제2차 이케다 내각 (제1차 개조)는 이케다 하야토가 내각총리대신을 맡았으며, 후지야마 아이이치로 사임 후 이케다 하야토가 경제기획청 장관직을 겸임하게 된 것이 특징이다. -
1963년 일본 -
제30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1963년 일본에서 이케다 하야토 총리가 고도경제성장과 도쿄 올림픽을 앞두고 정국 안정을 위해 중의원 의원 총선거를 실시했으나, 쓰루미 사고와 미쓰이 미이케 미카와 탄광 폭발 사고로 자유민주당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확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유민주당이 압승을 거두었다. -
1963년 일본 -
제3차 이케다 내각
제3차 이케다 내각은 이케다 하야토가 내각총리대신을 맡아 1963년 출범한 일본 내각으로, 고노 이치로 부총리 겸임과 각료 개편, 그리고 한일기본조약 체결 추진을 통해 전후 한국과 일본의 관계 정상화에 기여했다는 평가와 비판을 동시에 받는다. -
일본의 역대 내각 -
제2차 고이즈미 내각
제2차 고이즈미 내각은 2003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에 의해 구성되었으며, 이라크 자위대 파병 결정과 연금 개혁 추진, 후쿠다 야스오 관방장관 사임, 우정 민영화 법안 부결 등의 사건이 있었고, 자유민주당을 중심으로 구조 개혁을 추진하였으나 사회적 논란과 비판도 있었다. -
일본의 역대 내각 -
제3차 고이즈미 내각
2. 내각 구성
1963년 당시 일본의 정치 상황과 자유민주당 내 파벌 역학 관계를 고려하여, 제2차 이케다 내각 제3차 개조내각의 각료 명단과 정무 차관을 아래와 같이 구성하였다.
* 내각총리대신은 이케다 하야토 (이케다파)였다.
* 내각 각료에는 다양한 파벌 출신 인물들이 임명되었다.
* 법무대신은 가야 오키노리(구 기시파)였다.
* 외무대신은 오히라 마사요시(이케다파)였다.
* 대장대신은 다나카 가쿠에이(사토파)였다.
* 문부대신은 나다오 히로키치(이시이파)였다.
* 후생대신은 고바야시 다케지(참의원 의원)였다.
* 농림대신은 아카기 무네노리(가와시마파)였다.
* 통상산업대신은 후쿠다 하지메(오노파)였다.
* 운수대신은 아야베 겐타로(후지야마파)였다.
* 우정대신은 고이케 신조(참의원 의원)였다.
* 노동대신은 오하시 다케오(이케다파)였다.
* 건설대신, 긴키권 정비 장관, 수도권정비위원회 위원장은 고노 이치로(고노파)였다.
* 자치대신, 국가공안위원회 위원장은 하야카와 다카시(미키파)였다.
* 행정관리청 장관은 야마무라 신지로(고노파)였다.
* 홋카이도 개발청 장관, 과학기술청 장관은 사토 에이사쿠(사토파)였다.
* 방위청 장관은 후쿠다 도쿠야스(오노파)였다.
* 경제기획청 장관은 미야자와 기이치(참의원 의원, 이케다파)였다.
* 내각관방장관은 구로가네 야스미(이케다파)였다.
* 총리부 총무장관은 노다 다케오(고노파)였다.
* 내각법제국 장관은 하야시 슈조였다.
* 내각관방부장관(정무)은 구사노 이치로베이(1963년 7월 30일 ~ )였다.
* 내각관방부장관(사무)은 호소야 기이치였다.
* 총리부 총무부장관은 후루야 도루였다.
2.1. 각료 명단
| 직책 | 이름 | 비고 |
|---|---|---|
| 내각총리대신 | 이케다 하야토 | 이케다파 |
| 법무대신 | 가야 오키노리 | 구 기시파 |
| 외무대신 | 오히라 마사요시 | 이케다파 |
| 대장대신 | 다나카 가쿠에이 | 사토파 |
| 문부대신 | 나다오 히로키치 | 이시이파 |
| 후생대신 | 고바야시 다케지 | 참의원 의원 |
| 농림대신 | 아카기 무네노리 | 가와시마파 |
| 통상산업대신 | 후쿠다 하지메 | 오노파 |
| 운수대신 | 아야베 겐타로 | 후지야마파 |
| 우정대신 | 고이케 신조 | 참의원 의원 |
| 노동대신 | 오하시 다케오 | 이케다파 |
| 건설대신, 긴키권 정비 장관, 수도권정비위원회 위원장 | 고노 이치로 | 고노파 |
| 자치대신, 국가공안위원회 위원장 | 하야카와 다카시 | 미키파 |
| 행정관리청 장관 | 야마무라 신지로 | 고노파 |
| 홋카이도 개발청 장관, 과학기술청 장관 | 사토 에이사쿠 | 사토파 |
| 방위청 장관 | 후쿠다 도쿠야스 | 오노파 |
| 경제기획청 장관 | 미야자와 기이치 | 참의원 의원, 이케다파 |
| 내각관방장관 | 구로가네 야스미 | 이케다파 |
| 총리부 총무장관 | 노다 다케오 | 고노파 |
| 내각법제국 장관 | 하야시 슈조 | |
| 내각관방부장관(정무) | 구사노 이치로베이 | 1963년 7월 30일 ~ |
| 내각관방부장관(사무) | 호소야 기이치 | |
| 총리부 총무부장관 | 후루야 도루 |
3. 주요 사건 및 사고
1963년 11월 9일, 일본국유철도 요코스카 선 쓰루미 사고와 미쓰이 미이케 탄광 폭발 사고가 발생하여, 이 두 사건은 훗날 “피로 물든 토요일”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11월 23일에는 케네디 미국 대통령이 암살되는 사건이 발생했고, 이케다 하야토 총리는 케네디 대통령의 장례식 참석을 위해 미국을 방문했다.
3.1. 중의원 해산 및 총선거
1963년 10월 23일에 중의원이 해산되면서 11월 21일에 제30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가 치러졌다. 총선거 기간 중인 11월 9일에는 일본국유철도 요코스카 선 쓰루미 사고와 미쓰이 미이케 탄광 폭발 사고 등 대형 참사가 잇따라 발생하여 훗날 “피로 물든 토요일”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총선거 투표일 바로 다음 날인 11월 23일에는 케네디 미국 대통령이 암살되는 사건이 발생했고, 이케다 하야토 총리는 케네디 대통령의 장례식 참석을 위해 미국을 방문했다.
3.2. 쓰루미 사고
1963년 11월 9일, 제2차 이케다 내각 (제3차 개조) 하에서 일본국유철도 요코스카 선 쓰루미 사고와 미쓰이 미이케 탄광 폭발 사고 등 두 건의 대형 참사가 발생하여, 훗날 "피로 물든 토요일"로 불리게 되었다.
3.3. 미쓰이 미이케 탄광 폭발 사고
1963년 11월 9일에 미쓰이 미이케 탄광 폭발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는 일본국유철도 요코스카 선 쓰루미 사고와 함께 “피로 물든 토요일”이라고 불리는 대형 참사 중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