얀 스바메르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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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얀 스바메르담은 17세기 네덜란드의 과학자로, 곤충학, 해부학, 생리학 분야에 기여했다. 그는 곤충의 변태 과정을 연구하고 여왕벌이 벌집의 유일한 어미임을 밝혀내는 등 곤충학 연구에 큰 업적을 남겼다. 또한 혈관 관찰을 위한 새로운 해부 기술을 개발하고, 근육 수축 실험을 통해 근육의 부피가 변하지 않음을 밝혀내는 등 해부학 및 생리학 분야에서도 중요한 발견을 했다. 스바메르담은 43세의 젊은 나이에 사망했지만, 그의 연구는 사후에 출판되어 널리 알려졌으며, 18세기 자연 신학에도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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얀 스바메르담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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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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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일 | 1637년 2월 12일 |
출생지 | 암스테르담, 네덜란드 공화국 |
사망일 | 1680년 2월 17일(43세) |
사망지 | 암스테르담, 네덜란드 공화국 |
국적 | 네덜란드 |
종교 | 침례교 메노나이트 |
학문 | |
분야 | 곤충학 |
모교 | 레이던 대학교 |
지도 교수 | 프란시스쿠스 실비우스 |
알려진 업적 | 적혈구 기술, 곤충학 연구 |
서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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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암스테르담에서 태어난 얀 스바메르담은 약사이자 아마추어 박물학자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릴 적부터 자연에 관심을 가졌다. 24세에 라이덴 대학교에 입학하여 의학을 공부했고, 1663년 의학 학위 후보가 된 후 프랑스를 여행하며 이시, 소뮈르, 파리에서 시간을 보냈다. 1665년 가을에 라이덴으로 돌아와 1667년에 의학 박사 학위(M.D.)를 받았다.
대학 졸업 후 곤충 연구에 매달리면서 의사 개업을 바라던 아버지와 갈등을 겪었고, 결국 아버지로부터 연구 자금 지원이 끊어졌다. 연구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의사로 일하며 병원에서 사망한 환자의 해부 작업을 하기도 했다.[25]
1667년부터 1674년까지 연구를 계속하여 세 권의 저서를 출판했다. 1675년 안투아네트 부리뇽에게 경도되어 과학 연구를 그만두고 영적인 현상에 남은 생애를 바치기로 결심했다. 니콜라우스 스테노가 토스카나 대공을 위해 일하도록 권유했지만, 스바메르담은 거절했다. 토스카나 대공은 스바메르담의 표본을 12000USD에 구매하겠다고 제안하기도 했다.[26]
스바메르담은 과학 연구를 완전히 그만둔 것은 아니었으며, 사망 2년 전부터 사후 출판을 희망했던 저작을 다시 작업했던 흔적이 보인다. 43세에 말라리아로 사망하여 왈론파 교회에 묻혔다. 사후 1737년, 헤르만 부르하브가 스바메르담의 논문을 라틴어로 번역하여 『자연의 성경』(''Biblia naturae'')이라는 제목으로 출판했고, 곤충에 관한 저서는 영국의 플로이드(Thomas Floyd)에 의해 영어로 번역되어 1758년에 ''Book of Nature ; or, the History of Insects''로 출판되었다.[25]
17세기 당시 곤충에 대한 지식은 대부분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각에 머물러 있었으며, 곤충은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았다. 스바메르담은 『곤충의 자연사』(1669)에서 곤충의 변태 과정을 보여주었고,[27] 『자연의 성경』에서는 여왕벌만이 벌집의 모든 벌들의 어미임을 밝혔다.[28]
해부학 분야에서는 현미경 관찰의 정확성을 높이기 위한 기술을 개발했다. 혈관에 왁스를 주입하여 해부하는 방법을 사용했고,[29] 림프관의 판막(스바메르담 판막)과 적혈구를 발견했다. 생리학 실험에서는 개구리 다리를 이용한 근육 수축 실험을 통해 수축 시에도 근육의 부피가 변하지 않음을 보였고, 정기 유입에 의한 근육 팽창설을 부정했다.
2. 1. 초기 생애와 교육
얀 스바메르담은 1637년 암스테르담에서 약사이자 아마추어 수집가인 얀 야콥스 스바메르담의 아들로 태어났다.[1] 그의 아버지는 광물, 동전, 화석, 곤충 등 다양한 수집품을 보유하고 있었으며,[1] 스바메르담은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의 수집을 도우며 자연에 대한 관심을 키웠다.1661년, 스바메르담은 레이던 대학교에서 의학 공부를 시작하여 요하네스 반 호른, 프란시스쿠스 실비우스 등 저명한 학자들의 지도를 받았다.[3] 프레데릭 레이쉬, 레이니어 데 흐라프, 닐스 스텐센 (후에 가톨릭 주교이자 복자가 됨) 등과 동문수학했다.[3]
2. 2. 프랑스 유학과 연구 활동
암스테르담에서 태어난 얀 스바메르담은 1663년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 소뮈르, 파리 등지에서 시간을 보냈다.[25] 1665년 가을에 네덜란드 레이덴으로 돌아와 1667년에 의학 박사 학위(M.D.)를 받았다.스바메르담은 해부학 분야에서 현미경 관찰의 정확성을 높이기 위한 많은 기술을 개발했다. 혈관 관찰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혈관에 왁스를 주입하는 방법을 사용했다.[29] 그는 림프관의 판막(스바메르담 판막)과 적혈구를 발견했다.
2. 3. 곤충 연구와 업적
스바메르담은 곤충 해부를 시작하여 의사 자격을 얻은 후 곤충 연구에 집중했다. 1669년 《곤충 일반사》(Historia Insectorum Generalis)를 출판하여 프랑스와 암스테르담 주변에서 수집한 곤충 연구를 요약했다. 그는 곤충이 내부 해부학이 없는 불완전한 동물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주의적 개념에 반박했다.[3]
스바메르담은 자연 발생설에 반대하며, 곤충을 포함한 모든 생물의 창조가 동일한 법칙을 따른다고 주장했다. 그는 르네 데카르트의 영향을 받아 자연이 질서 정연하고 고정된 법칙을 따르며 합리적으로 설명될 수 있다고 믿었다.[7]
스바메르담은 벌이 실제로 여왕벌이며 이 생물체 안에서 알을 발견했다는 사실을 발견했지만, 이 발견을 즉시 출판하지는 않았다. 그는 매튜 슬레이드, 파올로 보코네와 서신을 주고받았으며, 빌렘 피소, 니콜라스 툴프, 니콜라스 위첸의 방문을 받았다.[8] 토스카나 대공 코시모 3세 데 메디치에게 애벌레 안에서 나비의 사지와 날개(현재 상상원반이라고 불림)를 볼 수 있다는 혁명적인 발견을 보여주기도 했다.
스바메르담은 1669년에 출간한 《곤충 일반사》에서 곤충에게 내부 해부학이 없다는 생각뿐만 아니라, 곤충이 자연 발생으로부터 기원하고 그들의 생활 주기가 변태라는 기독교적 개념 또한 공격했다.[9] 그는 모든 곤충이 알에서 기원하며, 사지가 서서히 자라고 발달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곤충과 소위 '고등 동물' 사이에 차이가 없다고 보았다. 스바메르담은 17세기의 변태, 즉 곤충의 서로 다른 생활 단계(예: 애벌레와 나비)가 서로 다른 개체를 나타낸다는 생각[11] 또는 한 유형의 동물에서 다른 유형으로의 갑작스러운 변화[12]를 반박했다.

고대부터 여왕벌은 수컷이며 벌집을 다스린다고 알려져 왔다. 1586년 루이스 멘데스 데 토레스는 벌집을 암컷이 다스린다는 사실을 처음 발표했지만, 여왕벌이 "씨앗"을 통해 군집 내의 모든 다른 벌을 낳는다고 주장했다. 1609년 찰스 버틀러는 수벌의 성별을 수컷으로 기록했지만, 그들은 일벌과 짝짓기를 한다고 잘못 믿었다. 스바메르담은 《자연의 성서》(Biblia naturae)에서 여왕벌을 수컷으로 잘못 식별했다는 최초의 시각적 증거를 제시했다.[17] 그는 또한 여왕벌이 군집의 유일한 어미라는 증거를 제시했다.[18]
스바메르담은 5년간의 양봉을 통해 수벌이 수컷이고 침이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일벌에게서 난소를 감지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일벌을 "자연 거세"라고 식별했지만, 그들을 암컷의 본성에 더 가깝다고 묘사했다. 그는 현미경으로 관찰한 여왕벌의 생식 기관 그림을 제작했다.[19] 이 그림은 1737년에 처음 출판되었다.[18] 그의 벌집 기하학 그림은 처음에는 《자연의 성서》에 실렸지만, 자코모 필리포 마랄디가 1712년 저서에서 언급했었다.[20] 스바메르담의 벌 연구에 대한 세부 사항은 그가 서신을 통해 다른 과학자들과 자신의 연구 결과를 공유했기 때문에 이미 다른 곳에서 출판되었다. 예를 들어, 스바메르담의 연구는 1688년 니콜라 드 말브랑슈에 의해 언급되었다.[13]
2. 4. 종교적 갈등과 말년
스바메르담은 양심의 위기를 겪었고, 곤충 연구를 거부한 아버지의 영향으로 자신의 과학 연구가 창조주에 대한 찬사라는 믿음과 달리 호기심이라는 우상을 숭배하는 것은 아닌지 두려워했다.[5] 1673년에는 잠시 플랑드르 신비주의자 안투아네트 부리뇽의 영향을 받기도 했다. 1675년에 발표한 하루살이에 관한 논문 《Ephemeri vita》에는 경건한 시와 그의 종교적 경험에 대한 기록이 담겨 있었다.[5] 그는 독일 노르트스트란트에 있는 부리뇽의 종파에서 위안을 찾았고, 니콜라우스 스테노의 어머니를 만나기 위해 코펜하겐으로 갔지만 1676년 초에 암스테르담으로 돌아왔다.[13] 헨리 올덴버그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는 "나는 이 시기보다 더 바빴던 적이 없으며, 모든 건축가 중 최고가 나의 노력을 축복했다"고 설명했다.[13]1675년, 스바메르담은 병원에서 신비적인 치료를 하는 안투아네트 부리뇽에게 경도되어 과학 연구를 그만두고 영적인 현상에 남은 생애를 바치기로 결심하기도 했다. 함께 공부했던 저명한 해부학자 니콜라우스 스테노가 토스카나 대공을 위해 일하도록 권유했지만, 스바메르담은 이를 거절했다. 토스카나 대공은 스바메르담이 피렌체로 와서 곤충 컬렉션을 계속한다면, 그의 표본을 12000플로린에 구매하겠다고 제안했다.[26]
그러나 스바메르담은 과학 연구를 완전히 포기하지는 않았고, 사망 2년 전부터 사후 출판을 희망했던 저작을 다시 작업했던 흔적이 보인다. 그는 43세에 말라리아로 사망하여 왈론파 교회에 묻혔다. 사후 1737년, 네덜란드의 유명한 의학자 헤르만 부르하브가 스바메르담의 논문을 라틴어로 번역하여 《자연의 성경》(Biblia Naturae)이라는 제목으로 출판했다. 곤충에 관한 저서는 영국의 플로이드(Thomas Floyd)에 의해 영어로 번역되어 1758년에 《Book of Nature ; or, the History of Insects》로 출판되었다.[25]
2. 5. 사망과 유산
스바메르담은 1680년 43세의 젊은 나이에 말라리아로 사망했다.[25] 그의 주요 저작은 사망 당시 출판되지 않았으며, 사후인 1737년 라이덴 대학교 교수 헤르만 보어하브에 의해 ''자연의 성경''으로 출판되었다.[14][15]스바메르담의 ''곤충 일반사''는 그가 죽기 전에 널리 알려지고 칭찬을 받았다. 1680년 사망한 지 2년 후 프랑스어로 번역되었고, 1685년에는 라틴어로 번역되었다. 1705년 ''곤충사''의 저자인 존 레이는 스바메르담의 방법을 칭찬하며, "모든 것 중에서 최고"라고 말했다.[13] 그의 곤충학 연구 영어 번역본은 1758년에 T. 플로이드에 의해 출판되었다.[6]
스바메르담은 현미경 관찰과 해부 기술에 있어서도 뛰어난 업적을 남겼다. 그는 혈관을 더 쉽게 볼 수 있도록 왁스 주입을 하는 등 표본을 검사, 보존 및 해부하는 새로운 기술을 개발했다.[6] 그가 발명한 빈 인간 장기를 준비하는 방법은 나중에 해부학에서 많이 사용되었다.[6]
스바메르담은 곤충의 변태에 대한 기존의 관념을 뒤집는 발견을 했다. 그는 1669년 저서 『곤충의 자연사』에서 곤충의 변태가 성충이 되기 전에 단계적으로 형태를 변화시키는 것을 보여주었다.[27] 또한, 『자연의 성경』에서는 여왕벌만이 벌집의 모든 벌들의 어미임을 밝혔다.[28]
해부학 분야에서는 림프관의 판막(스바메르담 판막)과 적혈구를 발견했으며, 현미경 관찰의 정확성을 높이기 위한 많은 기술을 개발했다.[29] 생리학 실험에서는 개구리 다리를 이용한 근육 수축 실험을 통해 수축 시에도 근육의 부피가 변하지 않음을 보였고, 정기 유입에 의한 근육 팽창설을 부정했다.
3. 주요 연구 업적
스바메르담은 곤충학과 해부학 및 생리학 분야에서 중요한 연구 업적을 남겼다.
1669년 《곤충의 일반 역사, 또는 혈액이 없는 작은 동물의 일반 논문》(Historia insectorum generalis ofte Algemeene verhandeling van de bloedeloose dierkensla)을 출판하여 곤충 연구를 요약했다. 그는 곤충이 내부 해부학이 없는 불완전한 동물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주의적 개념과 자연 발생설을 반박했다.[3] 모든 곤충이 알에서 기원하며, 사지가 서서히 자라고 발달한다고 주장했다. 여왕벌이 벌집의 유일한 어미임을 밝혀냈고, 수벌이 수컷이고 침이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 현미경으로 관찰한 여왕벌의 생식 기관 그림은 1737년에 처음 출판되었다.[18]
해부학 및 생리학 분야에서는 왁스 주입법 등 새로운 해부학 기술을 개발하여 혈관과 림프관의 관찰을 용이하게 했다.[29] 림프관의 판막(스바메르담 판막)과 적혈구를 발견했다. 개구리 다리를 이용한 근육 수축 실험을 통해 수축 시에도 근육의 부피가 변하지 않음을 보였고, 정기 유입에 의한 근육 팽창설을 부정했다. 그는 근육 수축의 원인으로 '움직이는 영(moving spirits)'이 있다고 보는 풍선설을 반박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21]
3. 1. 곤충학
스바메르담은 곤충 해부를 시작했고, 의사 자격을 얻은 후 곤충 연구에 집중했다. 1669년 말, 《곤충의 일반 역사, 또는 혈액이 없는 작은 동물의 일반 논문》(Historia insectorum generalis ofte Algemeene verhandeling van de bloedeloose dierkensla)을 출판하여 프랑스와 암스테르담 주변에서 수집한 곤충 연구를 요약했다. 그는 곤충이 내부 해부학이 없는 불완전한 동물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주의적 개념에 반박했다.[3]스바메르담은 자연 발생설에 반대하며, 신이 곤충을 창조하지 않았다는 주장은 불경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신의 창조가 반복적으로 발생하며, 통일적이고 안정적임을 증명하려고 했다. 르네 데카르트의 영향을 받아, 자연은 질서 정연하고 고정된 법칙을 따르며 합리적으로 설명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7]
스바메르담은 모든 생물의 발생이 동일한 법칙을 따른다고 확신했다. 여왕벌이 벌집의 유일한 어미임을 발견하고 곤충 연구에 전념했다. 매튜 슬레이드, 파올로 보코네와 서신을 주고받았으며, 빌렘 피소, 니콜라스 툴프, 니콜라스 위첸의 방문을 받았다.[8] 토스카나 대공 코시모 3세 데 메디치에게 애벌레 안에서 나비의 사지와 날개(현재 상상원반이라고 불림)를 볼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곤충의 일반 역사, 또는 혈액이 없는 작은 동물의 일반 논문》에서 곤충에게 내부 해부학이 없다는 생각뿐만 아니라, 곤충이 자연 발생으로부터 기원하고 그들의 생활 주기가 변태라는 기독교적 개념 또한 공격했다.[9] 스바메르담은 모든 곤충이 알에서 기원하며, 사지가 서서히 자라고 발달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곤충의 서로 다른 생활 단계(예: 애벌레와 나비)가 서로 다른 개체를 나타낸다는 생각[11] 또는 한 유형의 동물에서 다른 유형으로의 갑작스러운 변화[12]를 없앴다.
고대부터 여왕벌은 수컷이며 벌집을 다스린다고 알려져 왔다. 1586년 루이스 멘데스 데 토레스는 벌집을 암컷이 다스린다는 사실을 처음 발표했지만, 여왕벌이 "씨앗"을 통해 군집 내의 모든 벌을 낳는다고 주장했다. 1609년 찰스 버틀러는 수벌의 성별을 수컷으로 기록했지만, 그들은 일벌과 짝짓기를 한다고 잘못 믿었다. 《자연의 성서》(Biblia naturae)에는 여왕벌을 수컷으로 잘못 식별했다는 최초의 시각적 증거가 실렸다.[17] 스바메르담은 여왕벌이 군집의 유일한 어미라는 증거를 제시했다.[18]
스바메르담은 5년간 양봉을 통해 수벌이 수컷이고 침(stinger)이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 일벌에게서 난소를 감지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일벌을 "자연 거세(eunuchs)"라고 식별했지만, 암컷의 본성에 더 가깝다고 묘사했다. 현미경으로 관찰한 여왕벌의 생식 기관 그림을 제작했으며,[19] 이 그림은 1737년에 처음 출판되었다.[18] 벌집 기하학 그림은 처음에는 《자연의 성서》에 실렸지만, 자코모 필리포 마랄디가 1712년 저서에서 언급했었다.[20] 스바메르담의 벌 연구에 대한 세부 사항은 그가 서신을 통해 다른 과학자들과 자신의 연구 결과를 공유했기 때문에 이미 다른 곳에서 출판되었다. 니콜라 드 말브랑슈는 1688년에 스바메르담의 연구를 언급했다.[13]
17세기에는 곤충에 대한 지식이 대부분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각을 계승하고 있었으며, 곤충은 중요한 존재로 여겨지지 않았다. 스바메르담은 《곤충의 자연사》(Historia Insectorum Generalis, 1669)에서 곤충의 변태가 단계적으로 형태를 변화시키는 것을 보여주었고,[27] 여왕벌의 난소를 보여주었다. 《자연의 성경》에서는 여왕벌만이 벌집의 모든 벌들의 어미임을 밝혔다.[28]
3. 2. 해부학 및 생리학
왁스 주입법 등 새로운 해부학 기술을 개발하여 혈관과 림프관의 관찰을 용이하게 했다.[29] 림프관의 판막(스바메르담 판막)과 적혈구를 발견했다.생리학 실험도 수행하여, 개구리 다리를 이용한 근육 수축 실험을 통해 수축 시에도 근육의 부피가 변하지 않음을 보였고, 정기 유입에 의한 근육 팽창설을 부정했다. 스바메르담은 근육 수축의 원인으로 '움직이는 영(moving spirits)'이 있다고 보는 풍선설을 반박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이 아이디어는 그리스 의사 갈레노스가 지지했는데, 신경이 비어 있고 영의 이동이 근육 운동을 추진한다고 주장했다.[21] 르네 데카르트는 이 아이디어를 수력학 모델을 기반으로 발전시켜 영을 액체 또는 가스와 유사하다고 제안하고 이를 '동물성 영'이라고 불렀다.[21] 데카르트가 반사를 설명하기 위해 사용한 이 모델에서 영은 뇌실에서 신경을 통해 근육으로 흘러가 근육에 생기를 불어넣는다고 했다.[21] 이 가설에 따르면, 근육은 동물성 영이 유입되어 수축할 때 커질 것이다. 이 아이디어를 테스트하기 위해 스바메르담은 절단된 개구리 다리 근육을 소량의 물이 들어 있는 밀폐된 주사기에 넣었다.[21] 그는 신경을 자극하여 근육을 수축시켰을 때 물의 수위 변화를 관찰함으로써 근육의 부피 변화가 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오른쪽 이미지).[21] 스바메르담이 신경을 자극하여 근육을 수축시켰을 때 물의 수위는 상승하지 않고 오히려 약간 감소했다. 이는 근육으로 공기나 액체가 유입될 수 없음을 보여주었다.[21] 신경 자극이 운동으로 이어진다는 생각은 행동이 자극에 기초한다는 아이디어를 제시함으로써 신경과학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21]
스바메르담의 연구는 니콜라스 스테노가 암스테르담에서 스바메르담을 방문한 후 출판 전에 언급되었다. 스바메르담의 연구는 스테노가 1669년 《근육학 원리(Elements of Myology)》의 두 번째 판을 출판한 후에 결론이 났으며, 이는 《자연의 성서(Biblia naturae)》에서 언급되었다.[22] 1675년 스테노가 말피기에게 보낸 편지는 스바메르담의 근육 수축에 대한 연구 결과가 그의 의식의 위기를 초래했음을 시사한다. 스테노는 말피기에게 스바메르담이 수행한 실험 그림을 보냈으며, "그는 이 문제에 대한 논문을 썼지만 파기하고 이 그림들만 보존했다. 그는 신을 찾고 있지만 아직 하나님의 교회 안에 있지는 않다."라고 말했다.[23]
4. 저서
얀 스바메르담의 주요 저작은 다음과 같다.
- 《곤충 일반사》(Historia Insectorum Generalis, 1669): 곤충의 변태 과정을 설명하고,[27] 여왕벌의 난소를 보여주었다.[28]
- 《Ephemeri vita》(1675)
- 《자연의 성경》(Biblia Naturae, 1737년, 사후 출판): 헤르만 부르하브가 출판. 마르첼로 말피기에게 영감을 받아 누에, 하루살이, 개미, 사슴벌레, 치즈 진드기, 꿀벌 등 다양한 곤충의 해부학적 구조를 묘사했다.[16] 여왕벌이 벌집 내 모든 벌들의 어미임을 밝혔다.[28]
스바메르담의 곤충에 관한 저서는 영국의 플로이드(Thomas Floyd)에 의해 영어로 번역되어 1758년에 "''Book of Nature ; or, the History of Insects''"로 출판되었다.[25]

5. 평가 및 영향
스바메르담은 17세기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과학자 중 한 명으로, 곤충학, 해부학, 생리학 분야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근대 곤충학의 선구자로 여겨지며, 특히 곤충의 변태에 대한 연구는 당시 곤충이 자연 발생하며 생활 주기가 변태라는 기존의 통념을 깨고 과학적 이해의 지평을 넓혔다.[9] 스바메르담은 모든 곤충이 알에서 기원하며, 사지가 서서히 자라고 발달한다고 주장하여 곤충과 소위 '고등 동물' 사이에 차이가 없음을 증명했다.[10]
17세기 당시 곤충에 대한 지식은 대부분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각을 계승한 것으로, 곤충은 어류나 동물에 비해 중요하지 않은 존재로 여겨졌다. 그러나 스바메르담은 『곤충의 자연사』(1669)에서 곤충의 변태가 성충이 되기 전에 단계적으로 형태를 변화시키는 것임을 보였고,[27] 『자연의 성경』에서는 여왕벌만이 벌집의 모든 벌들의 어미임을 밝혔다.[28]
스바메르담은 곤충 연구뿐만 아니라 해부학 분야에서도 현미경 관찰의 정확성을 높이는 많은 기술을 개발했다. 예를 들어, 혈관 관찰을 쉽게 하기 위해 혈관에 왁스를 주입한 후 해부하는 방법을 사용했다.[29] 또한 림프관의 판막(스바메르담 판막)과 적혈구를 발견했다. 그는 생리학 분야에서도 실험을 수행했는데, 개구리 다리를 이용한 근육 수축 실험을 통해 수축 시에도 근육의 부피가 변하지 않음을 보였고, 정기 유입에 의한 근육 팽창설을 부정했다.
스바메르담의 연구 방법과 관찰 결과는 후대 과학자들에게 영감을 주었으며, 그의 친구인 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와 니콜라 말브랑슈는 그의 현미경 연구를 사용하여 그들 자신의 자연 철학과 도덕 철학을 입증했다.[13] 또한 스바메르담은 18세기의 자연신학(자연을 통해 신의 섭리를 이해하려는 신학 사조)에도 영향을 주었다.[13] 그의 곤충학 연구 영어 번역본은 1758년에 출판되었다.[6]
현재 얀 스바메르담의 진정한 초상화는 남아 있지 않다.[24]
참조
[1]
웹사이트
Jan Jacobsz. Swammerdam
https://www.vondel.h[...]
2023-05-19
[2]
서적
Aemstel's oudheid of gedenkwaardigheden van Amsterdam
https://books.google[...]
Scheltema
18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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