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리크 아비달
1. 개요
에리크 아비달은 프랑스의 은퇴한 축구 선수로, 수비수로 활약했다. 그는 AS 리옹 뒤셰르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하여 AS 모나코, 릴 OSC, 올림피크 리옹, FC 바르셀로나, 올림피아코스 FC 등 여러 클럽에서 뛰었다. 특히 FC 바르셀로나에서 간암을 극복하고 선수로 복귀하여 감동을 주었으며, 프랑스 국가대표팀으로 2006 FIFA 월드컵 준우승을 경험했다. 은퇴 후에는 FC 바르셀로나의 스포츠 디렉터로 활동하기도 했다.
이미지 준비중입니다.
| 본명 | 에릭 실뱅 아비달 |
|---|---|
| 로마자 표기 | Eric Sylvain Abidal |
| 출생일 | 1979년 9월 11일 |
| 출생지 | 생제니스라발 |
| 신장 | 1.86m |
| 포지션 | 왼쪽 풀백, 중앙 수비수 |
| 유소년 클럽 | 리옹 뒤셰르 |
|---|---|
| 1996-2000 | 리옹 뒤셰르 |
| 2000-2001 | 모나코 B |
| 2000-2002 | 모나코 |
| 2002-2004 | 릴 |
| 2004-2007 | 리옹 |
| 2007-2013 | 바르셀로나 |
| 2013-2014 | 모나코 |
| 2014 | 올림피아코스 |
| 총 출장 | 328 |
| 총 득점 | 4 |
| 국가대표팀 | 프랑스 |
|---|---|
| 국가대표 출장 | 67 |
| 국가대표 득점 | 0 |
| 국가대표 데뷔 | 2004 |
| 국가대표 은퇴 | 2013 |
| FIFA 월드컵 | 준우승 (2006) |
|---|
-
로마 가톨릭교회에서 이슬람교로 개종한 사람 -
바비 후와에
바비 후와에는 네덜란드 출신으로 인도네시아에서 배우, 모델, 점성가로 활동했으며, 영화 출연과 걸 그룹 활동, 패션쇼 개최 등 다방면에서 활동하다가 수카르노 대통령 관련 스캔들에 연루된 후 점성가로 활동하며 사망했다. -
로마 가톨릭교회에서 이슬람교로 개종한 사람 -
마티외 케레쿠
마티외 케레쿠는 베냉의 군인이자 정치인으로, 1972년 쿠데타로 집권하여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채택하고 독재 정권을 수립했으며, 1990년 다당제 도입 후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하여 재집권하다가 2015년 사망했다. -
올랭피크 리옹의 축구 선수 -
지오바니 에우베르
지오바니 에우베르는 브라질 출신의 전 축구 선수로, 공격수로 활약하며 VfB 슈투트가르트, FC 바이에른 뮌헨, 올림피크 리옹 등에서 활약했고, 은퇴 후에는 바이에른 뮌헨 스카우트와 방송 해설가로 활동한다. -
올랭피크 리옹의 축구 선수 -
욘 카레브
욘 카레브는 은퇴한 노르웨이 축구 선수이자 배우로, 공격수로 활동하며 여러 클럽과 노르웨이 국가대표팀에서 활약했고, 배우로 데뷔하여 영화와 TV 시리즈에 출연했으며, 탈세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
프랑스 남자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 -
에마뉘엘 프티
에마뉘엘 프티는 프랑스의 은퇴한 축구 선수로, 수비형 미드필더로 활약하며 AS 모나코, 아스널 FC, FC 바르셀로나, 첼시 FC 등에서 뛰었고, 특히 아스널과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주요 우승을 차지했으며, 은퇴 후 축구 해설가로 활동 중이다. -
프랑스 남자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 -
에티엔 마틀레
에티엔 마틀레는 프랑스 축구 선수로, FC 소쇼에서 스위퍼로 활약하며 1930년대 후반 프랑스를 대표하는 선수 중 한 명이었고, 프랑스 국가대표팀으로 46경기 출전, 세 번의 FIFA 월드컵 출전, 리그 1 2회 우승, 쿠프 드 프랑스 1회 우승을 기록했다.
2. 클럽 경력
(내용 없음 - 하위 섹션에서 상세 내용을 다루므로 중복을 피하기 위해 내용을 비워둠)
2.1. 초기 경력
리옹 대도시권의 생제니라발에서 마르티니크 출신 부모에게서 태어났으며, 리옹 교외의 아마추어 팀인 AS 리옹 뒤셰르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AS 모나코 유소년팀을 거쳐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2000년 9월 16일, 툴루즈 FC와의 홈 경기(3-0 승)에서 리그 1 데뷔전을 치렀으며, 모나코 소속으로 두 시즌 동안 리그 1에서 22경기에 출전했다.
2002년 여름, 당시 릴 OSC의 감독이었던 클로드 푸엘과 재회하며 이적했다. 릴에서 주전 선수로 자리 잡으며 두 시즌 동안 총 62경기에 출전했다.
2004년 여름, 당시 리그 1 2연패를 달성했던 고향팀 올림피크 리옹으로 이적하며 리옹으로 복귀했다. 리옹에서 그는 골키퍼 그레고리 쿠페, 수비수 프랑수아 클레르, 앙토니 레베이에르, 크리스, 카사파 등과 함께 강력한 수비 라인을 형성했다. 그의 합류 이후 리옹은 2004-05 시즌과 2005-06 시즌에 리그 1과 쿠프 드 프랑스 우승을 차지하며 더블을 달성했고, 2006-07 시즌에는 리그 1 우승을 추가하며 팀의 리그 6연패(아비달 합류 후 3연패)에 기여했다. 2007년 1월 17일, 르 망 UC와의 쿠프 드 프랑스 준결승전에서 프로 데뷔 후 첫 골을 기록했다.
2.2. 올림피크 리옹
리옹에서 뛰던 후반기에, 아비달은 팀이 리그 우승 7번 중 3번 연속 우승을 차지하는 데 기여하며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리옹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경기할 때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를 전담 마크했는데, 그는 "수비수로서 나의 목표는 상대를 짜증나게 만드는 것이다. 상대 선수가 나를 보고 너무 싫어서 다른 곳으로 이동해야 할 정도가 되도록 말이다."라고 설명했다. 당시 리옹의 동료 수비수로는 프랑수아 클레르크, 그레고리 쿠페, 앙토니 레베예르, 그리고 브라질 국가대표인 카사파와 크리스가 있었다.
2004년 11월 10일, 아비달은 전 소속팀 릴과의 2004-05 쿠프 드 라 리그 2라운드 쿠프 드 라 리그 경기에서 자신의 첫 골을 넣었지만, 팀은 2-3으로 패배했다. 이 골을 계기로 35년 동안 동거해 온 그의 부모님이 결혼을 결심하기도 했다.
아비달은 온세 칼다스와의 친선 경기에서 중족골 골절상을 입어 2005-06 리그 1 시즌 초반 몇 달 동안 경기에 나서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15경기에 출전하며 리옹의 5번째 연속 리그 우승(개인 통산 두 번째 우승)에 기여했다.
2.3. FC 바르셀로나
2007년 6월 29일, 아비달은 올랭피크 리옹을 떠나 FC 바르셀로나와 4년 계약을 맺었다. 이적료는 9였으며, 리옹에서 달았던 등번호 20번은 데쿠가 사용 중이었기에 22번을 받았다. 당시 후안 라포르타 회장은 아비달의 계약에 90의 바이아웃 조항이 포함되어 있으며, 바르셀로나가 향후 4시즌 내에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할 경우 리옹에 추가로 500를 지급하는 조건이 있다고 밝혔다.
아비달은 2007년 8월 26일, 라싱 산탄데르와의 원정 경기(0-0 무승부)에서 라리가 데뷔전을 치렀다. 첫 시즌에는 리그 30경기에 출전하며 팀의 리그 3위 마감에 기여했다. 프랑크 레이카르트 감독 체제 하에서 시우비뉴 등과 왼쪽 풀백 자리를 경쟁했으며, 때로는 센터백으로 기용되기도 했다.
2008-09 시즌에는 팀의 트레블 달성에 기여했지만, 중요한 경기에서 출전하지 못하는 아쉬움도 있었다. 2009년 2월 RCD 에스파뇰전에서 입은 고관절 부상으로 약 2개월간 결장했다. UEFA 챔피언스리그 준결승 첼시와의 2차전에서는 니콜라 아넬카에 대한 파울로 퇴장당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와의 결승전에 출전하지 못했다. 또한, 이어진 리그 비야레알전에서도 퇴장당하면서 코파 델 레이 결승전(아틀레틱 빌바오전)에도 나설 수 없었다.
2009-10 시즌, 인터 밀란에서 맥스웰이 영입되었음에도 펩 과르디올라 감독 아래에서 주전 왼쪽 풀백 자리를 유지했다. 그러나 2010년 2월에는 왼쪽 외전근 부상으로 다시 2개월간 결장하기도 했다. 2011년 1월 5일, 코파 델 레이 16강 2차전 아틀레틱 빌바오 원정 경기에서 바르셀로나 소속 첫 골을 기록했다. 이 골은 팀의 8강 진출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1-1 무승부, 원정 다득점 원칙으로 승리).
2012년 1월 18일, 코파 델 레이 8강 1차전 레알 마드리드 원정 경기에서 팀의 역전승(2-1)을 이끄는 결승골을 터뜨리며 개인 통산 두 번째 골을 기록했다 (최종 합계 4-3 승리). 이후 2012년 2월, 구단과 계약을 2013년 6월 30일까지 연장했다.
그러나 2011년 간 종양 발견과 2012년 간 이식 수술이라는 큰 시련을 겪었다. (자세한 내용은 #간 종양 투병과 복귀 참조) 투병 생활을 이겨내고 2013년 4월 그라운드에 복귀하여 팀에 공헌했지만, 2013년 5월 30일, FC 바르셀로나는 아비달과의 계약을 연장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2.3.1. 간 종양 투병과 복귀
2011년 3월 15일, FC 바르셀로나는 아비달이 간에 종양이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고 발표했고, 이틀 후 수술을 받았다. 구단은 선수의 개인 정보 보호를 위해 추가 정보 공개를 자제했다. 이 소식에 전 세계 축구계와 팬들은 소셜 네트워킹 서비스 등을 통해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다.
챔피언스리그 16강전을 앞두고 레알 마드리드와 리옹 선수들은 'Ánimo Abidal'(아비달, 힘내!) 문구가 적힌 티셔츠를 입고 경기에 나섰고,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스타디움 전광판에도 같은 메시지를 띄우며 연대감을 표했다. 2011년 3월 19일 헤타페 CF와의 홈 경기에서는 팬들이 그의 등번호 22번을 기리며 22분간 박수를 보냈다.
2011년 5월 28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2011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풀타임을 소화하며 팀의 3-1 승리에 기여했다. 경기 후 시상식에서는 주장 카를레스 푸욜이 아비달의 회복을 축하하며 주장 완장을 넘겨주었고, 그는 런던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8만 5천여 관중 앞에서 우승 트로피를 가장 먼저 들어 올리는 영광을 안았다.
그러나 2012년 3월 15일, 이전 수술로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지 않아 간 이식 수술이 필요하다는 발표가 나왔다. 4월 10일, 사촌인 제라르(Gérard)의 간을 기증받아 이식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같은 날 팀 동료들은 헤타페전 4-0 승리를 아비달에게 바쳤다. 그는 후에 동료 다니 알베스가 간 기증 의사를 밝혔으나, 그의 선수 경력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 거절했다고 밝혔다.
아비달은 2012년 5월 21일 퇴원했고, 같은 해 10월 피레네 산맥에서 훈련을 재개했다. 11월에는 축구 선수 복귀보다 건강 회복에 집중하겠다는 뜻을 밝혔으나, 12월 18일 훈련 재개 허가를 받았다.
2013년 1월 팀 훈련에 복귀했고, 3월 19일에는 FC 바르셀로나 B 소속으로 FC 이스트르와의 연습 경기에 출전해 65분간 뛰었다. 마침내 2013년 4월 6일, RCD 마요르카와의 홈 경기에서 후반 20분 제라르 피케와 교체 투입되며 1년여 만에 공식 경기에 복귀하는 감동적인 순간을 맞이했다. 2주 후 레반테 UD와의 홈 경기에서는 풀타임을 소화하며 팀의 1-0 승리를 도왔다.
간 이식 수술 후 선수 복귀에 대해 전문의는 "매우 어렵다"고 전망했으나, 아비달은 이를 극복하고 그라운드로 돌아왔다. 담당 주치의는 당초 평범한 생활을 목표로 치료했으며, 프로 선수 복귀는 기적과 같다고 말했다. 아비달 본인도 복귀 후 인터뷰에서 단기간에 4~5차례 수술을 받으며 체중이 19kg이나 줄었고, 극심한 고통 때문에 의사에게 의식을 잃게 해달라고 부탁할 정도였다고 투병 생활의 어려움을 털어놓았다.
이처럼 간암을 이겨내고 복귀하여 팀에 공헌했음에도 불구하고, FC 바르셀로나는 2012-13 시즌 종료 후 그와의 계약을 연장하지 않고 방출을 결정했다.
2.4. AS 모나코 복귀
2012년, 간암 투병을 이겨내고 그라운드로 복귀했으나 시즌 후 FC 바르셀로나에서 방출되었다.
2013년 7월 8일, 33세의 아비달은 10여 년 만에 친정팀 AS 모나코로 복귀했다. 계약 기간은 1년이었고, 추가로 1년 연장할 수 있는 옵션이 포함되었다. 그는 복귀 첫 시즌에 모나코가 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을 확보하는 데 기여했고, 이후 1년 계약 연장에 합의했다.
하지만 아비달은 2014년 7월 6일 올림피아코스 FC로 이적하며 한 시즌 만에 모나코를 떠났다. 이는 FC 바르셀로나 시절 동료였던 빅토르 발데스의 AS 모나코 이적이 구단 측의 거부로 무산된 것에 실망했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2.5. 올림피아코스 FC
2014년 7월 5일, AS 모나코와 계약을 갱신한 지 이틀 만에 그리스의 올림피아코스 FC와 2년 계약을 맺으며 이적했다. 그러나 그해 12월 19일, 개인적인 사유를 들어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3. 국가대표팀 경력
2004년 8월 18일,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와의 친선 경기에서 프랑스 국가대표팀 데뷔전을 치렀다.
2006년 FIFA 월드컵 최종 명단에 포함되어 프랑스의 결승 진출에 기여했다. 그는 주로 왼쪽 수비수로 활약하며 스위스와의 조별 리그 첫 경기와 대한민국과의 두 번째 경기에 풀타임 출전했다. 하지만 이 두 경기에서 각각 경고를 받아 경고 누적으로 토고와의 조별 리그 마지막 경기에는 출전하지 못했고, 미카엘 실베스트르가 그의 자리를 대신했다. 스페인과의 16강전부터 다시 선발 명단에 복귀하여 결승전까지 모든 경기를 풀타임으로 소화했다. 이탈리아와의 결승전은 승부차기까지 이어졌고, 아비달은 팀의 세 번째 키커로 나서 킥을 성공시켰으나 팀은 패배하여 준우승에 머물렀다.
레이몽 도메네크 감독 아래에서 UEFA 유로 2008 예선전 동안 주전 왼쪽 풀백으로 활약했으며, 본선 명단에도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본선에서는 부진했는데, 특히 조별 리그 최종전인 이탈리아전에서는 중앙 수비수로 출전했지만 전반 24분에 상대 공격수 루카 토니에게 반칙을 범해 페널티킥을 내주고 퇴장당하는 등 어려운 경기를 펼쳤다. 프랑스는 이 경기에서 0-2로 패배하며 조별 리그에서 탈락했다.
2010년 FIFA 월드컵에도 참가하여 중앙 수비수(스토퍼)로 우루과이전과 멕시코전에 출전했다. 하지만 4년 전 월드컵에서의 활약과는 달리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특히 멕시코와의 조별리그 2차전(0-2 패배)에서는 팀의 두 실점 모두에 관여했다. 첫 번째 실점 장면에서는 상대 공격수 하비에르 에르난데스의 오프사이드 라인을 제대로 조절하지 못해 골키퍼와의 1대1 상황을 허용했고, 두 번째 실점 장면에서는 페널티 지역 안에서 상대 선수 파블로 바레라에게 반칙을 범해 페널티킥을 내주었다. 키커로 나선 콰우테모크 블랑코가 이를 성공시키면서 프랑스는 0-2로 패했다. 당시 프랑스 대표팀은 아넬카의 대표팀 퇴출 사건과 주장 파트리스 에브라의 '배신자' 발언 논란 등으로 팀 내부 분위기가 매우 혼란스러운 상태였다. 아비달은 남아프리카 공화국과의 조별 리그 마지막 경기를 앞두고 "경기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고 레이몽 도메네크 감독에게 전달했고, 결국 해당 경기에는 출전하지 않았다. 프랑스는 이 대회에서도 조별 리그 3경기 만에 탈락했다.
간 이식 수술로 인해 약 1년 반 동안 대표팀 경기에 나서지 못했으나, 2013년 8월 8일에 다시 국가대표팀에 발탁되었고, 8월 14일 벨기에와의 친선 경기에 출전하며 복귀했다. 하지만 2014년 FIFA 월드컵 최종 명단에는 포함되지 못했고, 2014년 8월 15일에 국가대표팀 은퇴를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아비달은 프랑스 국가대표팀 소속으로 총 67경기에 출전했다.
4. 은퇴 이후
2015년, FC 바르셀로나 회장 선거에 출마했던 후안 라포르타(Joan Laporta)는 자신이 당선될 경우 아비달을 기술 이사로 지명할 예정이었으나, 선거에서 조셉 마리아 바르토메우(Josep Maria Bartomeu)에게 패배했다.
2017년 6월 14일, 아비달은 FC 바르셀로나의 홍보대사로 임명되었다. 이후 2018년 6월 7일, 로베르토 페르난데스의 후임으로 구단의 스포츠 디렉터로 복귀하는 것이 발표되었다.
그러나 2020년 8월 18일, 2019-20 UEFA 챔피언스리그 8강전에서 FC 바이에른 뮌헨에게 2-8 대패를 당한 여파로 상호 합의 하에 스포츠 디렉터직 계약을 해지하며 팀을 떠났다.
5. 플레이 스타일
전성기에는 세계 최고의 수비수 중 한 명으로 평가받았다. 전술적으로 지능이 높고 다재다능한 수비수로, 위치 선정과 경기 흐름을 읽는 능력이 뛰어나 중앙 수비수나 왼쪽 풀백으로 뛸 수 있었다. 전성기에는 빠르고 강했으며, 기술과 패스 능력도 갖추고 있어 측면을 돌파하며 공격과 수비 양면에서 팀에 기여할 수 있었다.
6. 개인사
아비달은 가톨릭 가정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20대에 이슬람교로 개종했다. 그는 2003년 전직 체조 선수였던 하예트 케비르와 결혼하여 슬하에 멜리아나, 카넬리아, 레이나, 케냐, 에단 등 다섯 자녀를 두었다.
2021년 11월, 아내 하예트는 아비달이 파리 생제르맹 소속 축구 선수 케이라 하마루이와의 불륜 관계를 인정하자 이혼 소송을 제기했다. 이 사실은 하마루이 폭행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드러났다.
선수 시절 간 이식 수술을 받은 아비달의 축구 선수로서의 복귀에 대해 전문의는 "매우 어렵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는 2013년 4월 기적적으로 그라운드에 복귀했다. 담당 주치의에 따르면, 당초 목표는 평범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치료하는 것이었으며, 현역 프로 축구 선수로 복귀한 것은 기적이라고 말했다. 복귀 후 인터뷰에서 그는 단기간에 4~5차례의 수술을 받고 체중이 19kg이나 줄었으며, 견딜 수 없는 고통 때문에 의사에게 의식을 잃게 해달라고 부탁했던 적도 있다며 투병 생활의 고통을 회상했다.
7. 수상 내역
리옹
*리그 1: 2004–05, 2005–06, 2006–07
*트로페 데 샹피옹: 2004
바르셀로나
*라리가: 2008–09, 2009–10, 2010–11, 2012–13
*코파 델 레이: 2008–09, 2011–12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 2009, 2010, 2011
*UEFA 챔피언스리그: 2008–09, 2010–11
*UEFA 슈퍼컵: 2009, 2011
*FIFA 클럽 월드컵: 2009, 2011
올림피아코스
*수페르리가: 2014–15
프랑스
*FIFA 월드컵 준우승: 2006
개인
*리그 1 올해의 팀: 2005, 2006, 2007
*UEFA 올해의 팀: 2007
*LFP 올해의 수비수: 2011
*트로페오 알도 로비라: 2012
*글로브 사커 어워즈: 선수 경력상 2012
*프레미오 인테르나치오날레 자친토 파케티: 2013
7.1. 클럽
| 클럽 | 시즌 | 리그 | 국내컵 | 리그컵 | 대륙 대회 | 기타 | 합계 | |||||||
|---|---|---|---|---|---|---|---|---|---|---|---|---|---|---|
| 디비전 | 출전 | 득점 | 출전 | 득점 | 출전 | 득점 | 출전 | 득점 | 출전 | 득점 | 출전 | 득점 | ||
| 리옹 뒤셰르 | 1996–97 | 디비지옹 도뇌르 | — | — | ||||||||||
| 1997–98 | — | — | ||||||||||||
| 1998–99 | — | — | ||||||||||||
| 1999–2000 | — | — | ||||||||||||
| 합계 | ||||||||||||||
| 모나코 B | 2000–01 | CFA | 8 | 0 | — | — | — | — | 8 | 0 | ||||
| 모나코 | 2000–01 | 리그 1 | 8 | 0 | 0 | 0 | — | 1 | 0 | — | 9 | 0 | ||
| 2001–02 | 14 | 0 | 2 | 0 | 1 | 0 | — | — | 17 | 0 | ||||
| 합계 | 22 | 0 | 2 | 0 | 1 | 0 | 1 | 0 | 0 | 0 | 26 | 0 | ||
| 릴 | 2002–03 | 리그 1 | 27 | 0 | 1 | 0 | 2 | 0 | — | — | 30 | 0 | ||
| 2003–04 | 35 | 0 | 1 | 0 | 2 | 0 | — | — | 38 | 0 | ||||
| 합계 | 62 | 0 | 2 | 0 | 4 | 0 | 0 | 0 | 0 | 0 | 68 | 0 | ||
| 리옹 | 2004–05 | 리그 1 | 29 | 0 | 3 | 0 | 1 | 1 | 7 | 0 | — | 40 | 1 | |
| 2005–06 | 14 | 0 | 1 | 0 | 1 | 0 | 6 | 0 | — | 22 | 0 | |||
| 2006–07 | 33 | 0 | 1 | 0 | 3 | 1 | 7 | 0 | — | 44 | 1 | |||
| 합계 | 76 | 0 | 5 | 0 | 5 | 2 | 20 | 0 | 0 | 0 | 106 | 2 | ||
| 바르셀로나 | 2007–08 | 라리가 | 30 | 0 | 6 | 0 | — | 10 | 0 | — | 46 | 0 | ||
| 2008–09 | 25 | 0 | 2 | 0 | — | 5 | 0 | — | 32 | 0 | ||||
| 2009–10 | 17 | 0 | 2 | 0 | — | 10 | 0 | 3 | 0 | 32 | 0 | |||
| 2010–11 | 26 | 0 | 5 | 1 | — | 8 | 0 | — | 39 | 1 | ||||
| 2011–12 | 22 | 0 | 5 | 1 | — | 9 | 0 | 3 | 0 | 39 | 1 | |||
| 2012–13 | 5 | 0 | 0 | 0 | — | 0 | 0 | — | 5 | 0 | ||||
| 합계 | 125 | 0 | 20 | 2 | 0 | 0 | 42 | 0 | 6 | 0 | 193 | 2 | ||
| 모나코 | 2013–14 | 리그 1 | 26 | 0 | 3 | 0 | 0 | 0 | 0 | 0 | — | 29 | 0 | |
| 올림피아코스 | 2014–15 | 수페르리가 엘라다 | 9 | 0 | 0 | 0 | — | 6 | 0 | — | 15 | 0 | ||
| 통산 합계 | 328 | 0 | 32 | 2 | 10 | 2 | 69 | 0 | 6 | 0 | 445 | 4 | ||
올림피크 리옹
* 리그 1: 2004-05, 2005-06, 2006-07
* 트로페 데 샹피옹: 2005, 2006, 2007
FC 바르셀로나
* FIFA 클럽 월드컵: 2009, 2011
* UEFA 챔피언스리그: 2008-09, 2010-11
* UEFA 슈퍼컵: 2009, 2011
* 라리가: 2008-09, 2009-10, 2010-11, 2012-13
* 코파 델 레이: 2008-09, 2011-12
*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 2009, 2010, 2011
7.2. 국가대표팀
2004년 8월 18일,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와의 친선 경기에서 프랑스 국가대표팀 데뷔전을 치렀다. 그는 프랑스 대표로 총 67경기에 출전했으며, 득점은 기록하지 못했다.
2006년 FIFA 월드컵 명단에 포함되어 프랑스의 결승 진출에 기여했다. 주로 왼쪽 수비수로 뛰었으며, 토고와의 조별리그 경기를 제외한 모든 경기에 선발 출전하여 풀타임을 소화했다. 토고전은 이전 두 경기에서 받은 경고 누적으로 출전하지 못했다. 이탈리아와의 결승전에서는 승부차기 세 번째 키커로 나서 성공했지만, 팀은 준우승에 머물렀다.
레이몽 도메네크 감독 아래에서 UEFA 유로 2008 예선전에서도 주전으로 활약했다. 그러나 본선에서는 이탈리아와의 조별리그 경기에 중앙 수비수로 출전했다가 전반전에 페널티킥을 내주고 퇴장당했다. 프랑스는 이 경기에서 0-2로 패배하며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2010년 FIFA 월드컵에도 중앙 수비수(스토퍼)로 출전하여 우루과이전과 멕시코전에 나섰다. 특히 멕시코와의 조별리그 2차전에서는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프랑스는 0-2로 패배했는데, 아비달은 두 실점의 원인을 모두 제공했다. 첫 번째 실점 장면에서는 상대 공격수 하비에르 에르난데스의 오프사이드 라인을 제대로 맞추지 못해 골키퍼와의 1대1 상황을 허용했고, 두 번째 실점은 페널티 지역 안에서 파블로 바레라에게 반칙을 범해 페널티킥을 내주었다. 키커로 나선 콰우테모크 블랑코가 이를 성공시키며 쐐기골을 넣었다. 아비달은 개최국 남아프리카공화국과의 마지막 경기에는 출전하지 않았고, 프랑스는 또다시 조별리그에서 탈락하는 아쉬움을 남겼다.
| 국가대표팀 | 년도 | 출전 경기수 | 득점 |
|---|---|---|---|
| 프랑스 | 2004 | 1 | 0 |
| 2005 | 3 | 0 | |
| 2006 | 15 | 0 | |
| 2007 | 12 | 0 | |
| 2008 | 9 | 0 | |
| 2009 | 5 | 0 | |
| 2010 | 6 | 0 | |
| 2011 | 9 | 0 | |
| 2012 | 1 | 0 | |
| 2013 | 6 | 0 | |
| 합계 | 67 | 0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