펩 과르디올라
1. 개요
펩 과르디올라는 스페인 출신의 전 축구 선수이자, 현재 맨체스터 시티 FC의 감독이다. 선수 시절 FC 바르셀로나에서 프리메라리가 6회 우승, UEFA 챔피언스리그 1회 우승 등을 경험했으며,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스페인 U-23 대표팀의 주장을 맡아 금메달을 획득했다. 은퇴 후 FC 바르셀로나 B팀 감독을 거쳐 2008년 FC 바르셀로나 1군 감독으로 부임, 라리가 3회, UEFA 챔피언스리그 2회 우승 등 14개의 트로피를 들어 올리며 성공적인 시기를 보냈다. 이후 바이에른 뮌헨과 맨체스터 시티를 이끌며 분데스리가,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달성했고, 특히 맨체스터 시티에서는 프리미어리그 4연패를 포함, 여러 차례 우승을 기록하며 역대 최고의 감독 중 한 명으로 평가받고 있다.
| 본명 | 조제프 과르디올라 이 살라 |
|---|---|
| 출생일 | 1971년 1월 18일 |
| 출생지 | 스페인 산트페도르 |
| 신장 | 1.80m |
| 포지션 | 수비형 미드필더 |
| 현재 소속팀 (감독) | 맨체스터 시티 |
| 로마자 표기법 | Josep Guardiola i Sala |
| 유소년 클럽 | 1981–1984: 짐나스틱 만레사 1984–1990: 바르셀로나 |
|---|---|
| 클럽 | 1988–1989: 바르셀로나 C (8경기, 1골) 1990–1992: 바르셀로나 B (53경기, 5골) 1990–2001: 바르셀로나 (263경기, 6골) 2001–2002: 브레시아 (11경기, 2골) 2002–2003: 로마 (4경기, 0골) 2003: 브레시아 (13경기, 1골) 2003–2005: 알아흘리 (36경기, 5골) 2005–2006: 도라도스 (10경기, 1골) |
| 총 출장 경기 수 | 398 |
| 총 득점 | 21 |
| 국가대표팀 | 1991: 스페인 U-21 (2경기, 0골) 1991–1992: 스페인 U-23 (12경기, 2골) 1992–2001: 스페인 (47경기, 5골) 1995–2005: 카탈루냐 (7경기, 0골) |
| 감독 클럽 | 2007–2008: 바르셀로나 B 2008–2012: 바르셀로나 2013–2016: 바이에른 뮌헨 2016–: 맨체스터 시티 |
|---|
| 올림픽 |
|---|
| 연속 우승 기록 | 바르셀로나 (16경기, 2010–11) 바이에른 뮌헨 (19경기, 2013–14) 맨체스터 시티 (18경기, 2017–18) |
|---|---|
| 정치 활동 | 카탈루냐 독립운동 지지 |
| 언급 | 역대 최고의 감독 중 한 명으로 평가받음 |
| 로마자 표기법 | Josep Guardiola i Sal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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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라도 데 시날로아의 축구 선수 -
콰우테모크 블랑코
콰우테모크 블랑코는 멕시코의 전 축구 선수이자 정치인이며, 선수 시절 공격수로 활약하며 멕시코 국가대표팀으로 120경기 출전, 1999년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우승, 2015년 쿠에르나바카 시장, 2018년 모렐로스 주지사를 역임했다. -
스페인의 도핑 위반 선수 -
카를로스 구르페기
카를로스 구르페기는 아틀레틱 빌바오에서 선수 생활 대부분을 보낸 스페인의 은퇴한 축구 선수이자 축구 지도자로, 수비형 미드필더로 활약했으며 난드롤론 양성 반응으로 출장 정지를 받기도 했지만 복귀 후 팀의 주축 선수로 활약했고 은퇴 후에는 아틀레틱 빌바오 B팀 감독 등을 역임했다. -
스페인의 도핑 위반 선수 -
알베르토 콘타도르
알베르토 콘타도르는 스페인 출신의 사이클 선수로, 투르 드 프랑스, 지로 디탈리아, 부엘타 아 에스파냐 등 주요 그랜드 투어 대회에서 여러 차례 우승하며 2000년대 후반과 2010년대 초반 사이클계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
프리미어리그 -
프리미어리그 2022-23
2022년 8월에 개막하여 2023년 5월에 폐막한 프리미어리그 2022-23 시즌은 맨체스터 시티의 우승, 엘링 홀란의 득점왕, 풀럼, 본머스, 노팅엄 포리스트의 승격, 번리, 왓퍼드, 노리치 시티의 강등으로 마무리되었으며, 특히 노팅엄 포리스트는 23년 만에 1부 리그로 복귀하여 주목받았다. -
프리미어리그 -
프리미어리그 2021-22
프리미어리그 2021-22 시즌은 맨체스터 시티의 우승, 손흥민의 공동 득점왕 수상, 그리고 코로나19 팬데믹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관련 이슈들이 있었던 잉글랜드 최상위 프로 축구 리그의 30번째 시즌이다.
2. 선수 경력
FC 바르셀로나 유스팀 출신인 과르디올라는 1990년 성인팀에 입단하여 FC 바르셀로나 B를 거쳐 1군에서 활약했다. 요한 크루이프(Johan Cruyff) 감독의 지휘 아래 '드림팀'의 일원으로 라리가 4연패(1990-91, 1991-92, 1992-93, 1993-94)와 1991-92 유러피언컵 우승을 달성하며 전성기를 누렸다. 1992년에는 이탈리아 잡지 Guerin Sportivo에서 선정한 21세 이하 최고의 선수로 뽑히기도 했다.
크루이프 감독 사임 이후에도 바비 롭슨(Bobby Robson), 루이 판 할(Louis van Gaal) 감독 아래에서 핵심 선수로 활약하며 코파 델 레이,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 유러피언컵 위너스컵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1997년에는 팀의 주장으로 선임되었지만, 잦은 부상으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2001년, 17년간 몸담았던 바르셀로나를 떠난 과르디올라는 브레시아 칼초, AS 로마 등 이탈리아 무대에서 뛰었지만, 전성기 시절의 기량을 보여주지 못했다. 또한 스테로이드 양성 판정으로 4개월 출전 정지 처분을 받는 등 시련을 겪었으나, 이후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이후 카타르 스타스 리그의 알아흘리 SC를 거쳐 멕시코 리가 MX의 도라도 데 시날로아에서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다. 2006년 5월, 16년간의 현역 생활을 마감했다.
2.1. FC 바르셀로나
1983년부터 1990년까지 FC 바르셀로나 유스팀에서 활동한 과르디올라는 1990년 성인팀에 입단한 직후 FC 바르셀로나 B에서 59경기 5골을 기록하며 1990-91 세군다 디비시온 B 우승에 기여했다. 1군팀에서는 1990-91 시즌부터 2000-01 시즌까지 공식전 382경기 11골을 기록하며 라리가 6회 우승, 코파 델 레이 2회 우승, 1991-92년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 UEFA 슈퍼컵 2회 우승, 스페인 슈퍼컵 4회 우승 등 굵직한 성과를 남겼다.
과르디올라는 요한 크루이프(Johan Cruyff)가 이끄는 드림팀의 핵심 선수로 활약하며 1991-92 시즌 라리가와 유러피언컵 우승을 이끌었다. 이탈리아 잡지 Guerin Sportivo는 과르디올라를 21세 이하 최고의 선수로 선정했다. "드림팀"은 1992-93 시즌과 1993-94 시즌에도 리그 우승을 차지했지만, 1994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1994 UEFA Champions League final)에서는 파비오 카펠로(Fabio Capello)의 AC 밀란에게 4-0으로 패했다.
1996년 크루이프 감독이 팀을 떠난 후에도 과르디올라는 바비 롭슨(Bobby Robson), 루이 판 할(Louis van Gaal) 감독 아래에서 꾸준히 활약하며 1996-97 시즌 코파 델 레이,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 유러피언컵 위너스컵 우승을 이끌었다. 1997년에는 바르셀로나의 주장으로 임명되었으나, 종아리 근육 부상으로 1997-98 시즌 대부분을 결장했다. 하지만, 팀은 리그와 컵 더블을 달성했다.
1998-99 시즌 부상에서 복귀한 과르디올라는 라리가 우승을 이끌었지만, 1999-2000 시즌에는 심각한 무릎 부상으로 시즌 후반 3개월을 결장했다. 2000-01 시즌에는 팀이 리그 4위에 그치고 UEFA 챔피언스리그 조별 리그에서 탈락하는 등 어려움을 겪었다.
2001년 4월 11일, 과르디올라는 17년간 몸담았던 바르셀로나를 떠나기로 결심했다. 2001년 6월 24일 셀타 비고와의 경기가 그의 바르셀로나에서의 마지막 경기였다. 과르디올라는 바르셀로나에서 12시즌 동안 479경기에 출전하여 16개의 트로피를 획득했다. 기자 회견에서 그는 "긴 여정이었습니다. 저는 행복하고 자랑스럽습니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사비, 안드레스 이니에스타(Andrés Iniesta), 세스크 파브레가스(Cesc Fàbregas) 등 후배 선수들은 과르디올라를 롤 모델이자 영웅으로 칭송했다.
FC 바르셀로나에서의 기록
| 대회 | 기록 |
|---|---|
| 라리가 | 우승 (1990-91, 1991-92, 1992-93, 1993-94, 1997-98, 1998-99), 준우승 (1997-98, 1999-2000), 3위 (1995-96), 4위 (1994-95, 2000-01) |
| 코파 델 레이 | 우승 (1996-97, 1997-98), 준우승 (1995-96), 4강 (1992-93, 1999-2000, 2000-01) |
| UEFA 챔피언스리그 | 우승 (1991-92), 준우승 (1993-94), 4강 (1999-2000) |
| UEFA 유로파리그 | 4강 (1995-96, 2000-01) |
| UEFA 슈퍼컵 | 우승 (1992, 1997) |
| 인터콘티넨털컵 | 준우승 (1992) |
| 스페인 슈퍼컵 | 우승 (1991, 1992, 1994, 1996), 준우승 (1993, 1997, 1998, 1999) |
| FC 바르셀로나 B | 기록 |
| 세군다 디비시온 B | 우승 (1990-91) |
2.2. 이탈리아 무대
바르셀로나에서의 전성기를 뒤로 한 채 2001-02 시즌부터 2002-03 시즌까지 브레시아 칼초, AS 로마 등에서 활동했지만 바르셀로나 시절만큼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스테로이드 양성 판정으로 4개월간 출전 정지를 받았다가 훗날 이 판정이 오진으로 판명났고 2007년 10월 23일에는 무혐의 처분을 받긴 했지만, 이탈리아에서의 선수 생활은 그다지 순탄치 못했다.
2001년 31세의 나이로 FC 바르셀로나를 떠난 과르디올라는 뉴캐슬 유나이티드 FC,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FC, 토트넘 홋스퍼 FC, 리버풀 FC, AC 밀란, 인터 밀란등의 관심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세리에 A의 브레시아 칼초와 AS 로마에서 뛰는 것을 선택했다. 그는 브레시아 입단 기자회견에서 “로베르토 바조가 있었기 때문에 이적을 결심했습니다. 그와 함께 뛸 수 있다는 것은 빅클럽 이적보다 훨씬 매력적입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의 이탈리아 도전은 성공적이었다고 말하기는 어려웠고, 2003년까지 71경기에 출전하는 데 그쳤다.
2001년 11월, 경기 후 도핑 검사에서 금지 약물인 난드롤론 양성 반응이 나와 4개월 출전 정지 처분을 받았다. 2005년에는 집행유예가 붙었지만 7개월의 유죄 판결을 받았다. 이에 대해 과르디올라 측은 "이탈리아의 도핑 검사는 부정확하다"며 줄곧 무죄를 주장하며 과학적 근거가 있는 반증을 여러 차례 제출했다. 그리고 2007년 10월, 브레시아 고등법원은 1심 판결을 파기하고 무죄 판결을 내렸다. 이렇게 6년간의 싸움 끝에 과르디올라의 결백이 마침내 증명되었다.
2.3. 카타르와 멕시코
2002-03 시즌 이후 카타르 스타스 리그의 알아흘리 SC로 이적하며 데뷔 후 처음으로 아시아 무대를 밟았으며, 두 시즌 동안 36경기 7골을 기록하며 2003-04 시즌 리그 4위를 기록했다. 당시 바티스투타 등 여러 유명 선수들이 스타스 리그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2005년 여름에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맨체스터 시티, 첼시 등 유럽 최고 클럽들의 제안을 거절했다.
2006년, 멕시코 축구 리그의 도라도스 데 시날로아 감독이었던 후안 마누엘 리요는 지도자 양성 학교에 다니던 과르디올라를 초청했다. 과르디올라는 6개월간 활약한 후, 2006년 11월에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3. 국가대표팀 경력
과르디올라는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스페인 U-23 대표팀 주장을 맡아 스페인 축구 역사상 첫 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하는데 기여했다.
1992년 10월 14일, 윈저 파크에서 열린 1994년 FIFA 월드컵 예선 북아일랜드와의 경기에서 스페인 국가대표팀 데뷔전을 치렀다. 1994년 FIFA 월드컵에서는 조별 리그 볼리비아전에서 페널티킥으로 1골을 기록했지만, 8강에서 이탈리아에게 패하며 대회를 마감했다.
하비에르 클레멘테 감독은 과르디올라를 후보 선수로 기용하는 경우가 많았고, 이로 인해 1996년 UEFA 유럽 축구 선수권 대회 1996 명단에서 제외되기도 했다. 반복되는 부상으로 1998 프랑스 월드컵과 2002 한일 월드컵에는 출전하지 못했다. UEFA 유로 2000에서는 8강에 진출했지만, 프랑스에 패했다. 2001년 11월 14일 멕시코와의 친선 경기가 그의 국가대표팀 마지막 경기가 되었다.
3.1. 스페인 국가대표팀
| 국가대표팀 | 년도 | 출전 | 득점 |
|---|---|---|---|
| 스페인 | 1992 | 2 | 1 |
| 1993 | 5 | 0 | |
| 1994 | 7 | 1 | |
| 1995 | 0 | 0 | |
| 1996 | 5 | 1 | |
| 1997 | 4 | 1 | |
| 1998 | 0 | 0 | |
| 1999 | 9 | 0 | |
| 2000 | 8 | 1 | |
| 2001 | 7 | 0 | |
| 합계 || 47 || 5 | |||
1992년 하계 올림픽에서 스페인 U-23 대표팀의 주장을 맡으며 스페인 축구 역사상 첫 하계 올림픽 금메달 획득에 기여했다. 같은 해 10월 14일 북아일랜드와의 1994년 FIFA 월드컵 유럽 지역 예선 3조 3차전에서 국제 A매치 데뷔전을 치렀다. 이후 라트비아와의 5차전에서 A매치 데뷔골을 신고하며 팀의 5-0 대승에 일조했다. 2001년까지 스페인 국가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A매치 통산 47경기 5골을 기록하며 1994년 FIFA 월드컵 8강, UEFA 유로 2000 8강 진출에 기여했다.
; 스페인 U-23
* 하계 올림픽 : 금메달 (1992)
| 번호 | 날짜 | 경기장 | 출전 경기 수 | 상대팀 | 점수 | 결과 | 대회 |
|---|---|---|---|---|---|---|---|
| 1 | 1992년 12월 16일 | 라몬 산체스 피스후안, 세비야, 스페인 | 2 | 2–0 | 5–0 | 1994년 FIFA 월드컵 예선 | |
| 2 | 1994년 6월 27일 | 솔저 필드, 시카고, 미국 | 12 | 1–0 | 3–1 | 1994년 FIFA 월드컵 | |
| 3 | 1996년 12월 14일 | 메스타야, 발렌시아, 스페인 | 18 | 1–0 | 2–0 | 1998년 FIFA 월드컵 예선 | |
| 4 | 1997년 2월 12일 | 호세 리코 페레스, 알리칸테, 스페인 | 20 | 1–0 | 4–0 | 1998년 FIFA 월드컵 예선 | |
| 5 | 2000년 6월 3일 | 울레비, 예테보리, 스웨덴 | 35 | 1–0 | 1–1 | 친선경기 |
한편, 과르디올라는 카탈루냐 축구 대표팀 선수로도 활동하여 1995년부터 2005년까지 7번의 친선 경기에 출전했다.
4. 지도자 경력
펩 과르디올라는 선수 은퇴 후 2007년 6월 FC 바르셀로나 B 감독으로 부임하며 지도자 경력을 시작했다. 2007-08 시즌 테르세라 디비시온 우승을 이끌며 팀을 세군다 디비시온 B로 승격시켰다.
2008-09 시즌을 앞두고 FC 바르셀로나 1군 감독으로 승격, 2011-12 시즌까지 라리가 3연패 및 1회 준우승, 코파 델 레이 2회 우승 및 1회 준우승, UEFA 챔피언스리그 2회 우승(2008-09, 2010-11) 및 2회 4강, FIFA 클럽 월드컵 2회 우승, UEFA 슈퍼컵 2회 우승,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 3회 우승 등 많은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2013-14 시즌 FC 바이에른 뮌헨 감독으로 부임하여 2015-16 시즌까지 분데스리가 3연패, DFB-포칼 2회 우승 및 1회 4강, UEFA 챔피언스리그 3회 연속 4강, FIFA 클럽 월드컵 1회 우승, UEFA 슈퍼컵 1회 우승, DFL-슈퍼컵 3회 연속 준우승을 기록했다.
2016-17 시즌부터 맨체스터 시티 FC 감독을 맡아 2023-24 시즌까지 프리미어리그 6회 우승, 1회 준우승, 2016-17 시즌 3위, FA컵 2회 우승 및 4회 4강, EFL컵 4회 연속 우승, UEFA 챔피언스리그 1회 우승(2022-23년 UEFA 챔피언스리그) 및 1회 준우승, 1회 4강, FA 커뮤니티 실드 3회 우승 및 3회 준우승을 기록하며 맨체스터 시티를 프리미어리그 최강팀으로 이끌었다.
4.1. FC 바르셀로나 B
2007년 6월, 선수 은퇴 후 펩 과르디올라는 친정팀인 FC 바르셀로나 B의 감독으로 부임하며 지도자 경력을 시작했다. 그는 2007-08 시즌 테르세라 디비시온 우승을 이끌었고, 팀을 세군다 디비시온 B로 승격시켰다.
과르디올라의 플레이 스타일은 힘과 속도보다는 창의성, 기술, 그리고 공의 움직임을 중시했는데, 이는 사비, 안드레스 이니에스타, 세스크 파브레가스와 같은 작은 체격의 스페인 출신 미드필더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특히 세스크 파브레가스는 그를 자신의 "우상"으로 묘사했다.
4.2. FC 바르셀로나
2007-08 시즌을 마친 후 바르셀로나 1군팀 감독으로 선임되어 2011-12 시즌까지 공식전 247경기 179승 47무 21패·승률 7할 2푼 4리의 놀라운 성적을 거두며 라리가 3연패 및 1회 준우승, 코파 델 레이 2회 우승 및 1회 준우승, 2번의 챔피언스리그 우승(2008-09, 2010-11), 2번의 챔피언스리그 4강 진출 (2009-10, 2011-12), FIFA 클럽 월드컵 2연패, 스페인 슈퍼컵 2연패, UEFA 슈퍼컵 2회 우승 등의 대업을 달성했다.
과르디올라의 플레이 스타일은 힘과 속도보다는 창의성, 기술, 그리고 볼 움직임에 의존했는데, 이는 사비, 안드레스 이니에스타, 세스크 파브레가스와 같은 후대의 작은 체격을 가진 스페인 출신 미드필더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특히 세스크 파브레가스는 그를 자신의 "우상"으로 묘사했다.
| 팀 | 시작 | 종료 | 기록 | ||||||||
|---|---|---|---|---|---|---|---|---|---|---|---|
| 경기 | 승 | 무 | 패 | 득점 | 실점 | 득실차 | 승률 | ||||
| 바르셀로나 B | 2007년 6월 21일 | 2008년 6월 30일 | 42 | 28 | 9 | 5 | 79 | 41 | +38 | 66.7 | |
| 바르셀로나 | 2008년 7월 1일 | 2012년 6월 30일 | 247 | 179 | 47 | 21 | 638 | 176 | +462 | 72.5 | |
카탈루냐 지방의 산파두에서 태어나 캄프 누(Camp Nou)에서 불과 100m 떨어진 학교를 다녔다. 13세에 바르셀로나의 유소년 시스템인 라 마시아에 입단했고, 점차 상위 연령대 팀으로 승격했다. 1990년, 카디스 CF전에서 톱팀 데뷔를 했고, 요한 크루이프 감독은 기예르모 아모르의 결장 시에 과르디올라를 기용했다. 1991-92 시즌에는 주전 자리를 확보했고, 20세의 나이에 프리메라 디비시온(라리가), UEFA 챔피언스리그(당시 UEFA 챔피언스컵) 우승의 주역이 되었다. 1992년, 이탈리아 축구 잡지 《구에린 스포르티보》에 의해 유럽 최고의 신예 축구 선수에게 수여되는 브라보 상을 수상했다.
엘 드림 팀(El Dream Team)은 1992-93 시즌, 1993-94 시즌에도 왕좌를 지키며 리그 4연패를 달성했는데, 과르디올라는 두 시즌 모두 중추적인 선수로 활약했다. 1993년 로마리우를 영입한 팀은 1993-94 시즌에도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 결승에 진출했지만, 파비오 카펠로 감독이 이끄는 AC 밀란에 0-4로 대패했다.
1994-95 시즌, 6라운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전에서 라리가 데뷔골을 기록했다. 1996년 요한 크루이프가 팀을 떠났고, 1996-97 시즌, 보비 롭슨 감독이 이끄는 팀은 코파 델 레이, UEFA 슈퍼컵, UEFA 컵위너스컵 트레블(3관왕)을 달성했다. 드림팀 시대는 지나갔고, 아이토르 베기리스타인(치키 베기리스타인)이나 흐리스토 스토이치코프의 역할을 루이스 피구나 호나우두가 이어받았지만, 과르디올라의 역할은 변함없었다. 1996-97 시즌 종료 후, 클럽은 과르디올라에 대한 AS 로마와 파르마 칼초 1913(파르마 FC)으로부터의 약 3억 페세타(350)의 오퍼를 거절했다. 계약 연장에 관한 긴 협상 끝에, 2001년까지의 새로운 계약에 서명했다.
1997-98 시즌 대부분을 종아리 부상으로 결장했지만, 클럽은 루이 판 할 신임 감독 아래서 국내 리그와 국내컵 2관왕을 달성했다. 1998년 6월 8일, 신체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수술을 받았고, 프랑스에서 열린 1998년 FIFA 월드컵에 출전하지 못했다. 1998-99 시즌에는 전선에 복귀했고, 히바우두와 루이스 피구의 활약 덕분에 다시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1999-2000 시즌에는 심각한 무릎 부상으로 시즌 후반 3개월 동안 출전하지 못했다. 2000-01 시즌 리그 경기는 4위로 마쳤고,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는 베식타스 JK와 AC 밀란에 완패하여 조별 리그에서 탈락했고, 팀은 무관에 그쳤다.
2001년 4월 11일, 유소년 시절부터 17년간 몸담았던 클럽을 떠나기로 결심했고, 6월 24일 셀틱 FC전이 FC 바르셀로나에서의 마지막 경기가 되었다. FC 바르셀로나에서는 12시즌 동안 479경기에 출전하여 16개의 타이틀을 획득했다. 셀틱 전 이후 기자회견에서 “긴 여정이었다. 나는 매우 행복하고, 자랑스럽다. 많은 친구들을 사귈 수 있었다. 나는 더 이상 행복을 찾아 헤매지 않을 것이다. 선택받은 자로서 오랫동안 지냈다”라고 말했다. 득점 수는 적었지만, 6회의 리그 우승과 1회의 UEFA 챔피언스리그(UEFA 챔피언스컵) 우승,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1992년 바르셀로나 하계 올림픽)에서의 금메달, 기타 여러 트로피를 획득했다.
2008년 UEFA 유럽 축구 선수권 대회를 제패한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의 미드필더 선수들, 특히 사비 에르난데스, 안드레스 이니에스타, 세스크 파브레가스 등에게 과르디올라는 소년 시절 우상이었고, 팀을 떠나도 존경심은 변함없었다.
은퇴 후에는 동세대의 루이스 엔리케 등과 함께 지도자의 길을 선택하여, 2007-08 시즌부터 FC 바르셀로나 B의 감독으로 바르셀로나에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취임 1년 만에 테르세라 디비시온(4부)에서 세군다 디비시온 B(3부)로 승격시켰다.
4.3. FC 바이에른 뮌헨
FC 바이에른 뮌헨독일어 감독 부임은 2013-14 시즌부터였다. 2013년 6월 24일 독일어로 첫 기자회견을 가졌고, 이틀 후 첫 훈련을 실시했다. 뮌헨에서의 첫 공식 경기는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와의 2013 DFL-슈퍼컵이었으며, 4-2로 패했다. 그러나 2013 UEFA 슈퍼컵에서 조제 무리뉴 감독의 첼시를 승부차기 끝에 꺾고 첫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2013년 12월에는 2013 FIFA 클럽 월드컵에서 우승하며 세 번째 클럽 월드컵 우승을 달성했다. 2014년 3월 25일에는 헤르타 베를린을 꺾고 분데스리가 우승을 조기에 확정지었다. 이는 분데스리가 역사상 최단 기간 우승 기록이었다. 또한 칼-하인츠 펠트캄프의 기록을 깨고 분데스리가 감독 부임 후 최장 연승 기록을 세웠다.
그러나 챔피언스리그 준결승에서는 레알 마드리드에게 합계 5-0으로 패하며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DFB-포칼 결승에서는 도르트문트를 꺾고 우승하며 시즌을 마무리했다.
2014-15 시즌에는 2014 DFL-슈퍼컵에서 도르트문트에게 패했다. 2015년 3월 11일, 샤흐타르 도네츠크를 7-0으로 대파하며 챔피언스리그 역사상 최다 점수차 승리를 기록했다. 뮌헨 감독으로서 100번째 경기에서는 포르투를 6-1로 꺾고 챔피언스리그 4강에 진출했다. 그러나 DFB-포칼 준결승에서는 도르트문트에게 승부차기 끝에 패배했다. 챔피언스리그 준결승에서는 바르셀로나에게 패하며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2015-16 시즌은 2015 DFL-슈퍼컵에서 볼프스부르크에게 승부차기 끝에 패배하며 시작되었다. 리그에서는 초반 10경기에서 모두 승리하는 등 좋은 모습을 보였다.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에서는 6경기 중 5승을 거두며 조 1위로 16강에 진출했다.
2015년 12월 20일, 바이에른 뮌헨은 과르디올라 감독이 시즌 종료 후 팀을 떠날 것이라고 발표했다. 2016년 5월 3일, 뮌헨은 챔피언스리그 준결승에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게 패하며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2016년 5월 21일, DFB-포칼 결승에서 도르트문트를 승부차기 끝에 꺾고 우승하며 뮌헨에서의 마지막 경기를 승리로 장식했다.
과르디올라는 뮌헨에서 공식전 161경기 121승 21무 19패의 성적을 거두었다. 분데스리가 3회 우승, DFB-포칼 2회 우승, UEFA 슈퍼컵 1회 우승, FIFA 클럽 월드컵 1회 우승을 달성했다.
4.4. 맨체스터 시티 FC
2016년 2월 1일, 맨체스터 시티는 과르디올라와 2016-17 시즌 시작을 위한 3년 계약을 체결했다. 과르디올라는 여름 이적시장에서 도르트문트의 일카이 귄도안, 셀타 비고의 놀리토, 샬케 04의 리로이 자네, 에버턴의 존 스톤스 등 여러 중요 선수들을 영입했다. 또한 오랫동안 팀의 주전 골키퍼였던 조 하트를 바르셀로나의 클라우디오 브라보로 교체하여 논란을 일으켰다. 하트는 그 후로 맨체스터 시티에서 다시는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다.
2016년 8월 13일, 과르디올라는 2016-17 프리미어리그 첫 경기에서 맨체스터 시티가 선덜랜드를 2-1로 이기면서 승리를 거두었다. 9월 11일, 맨체스터 더비에서 맨체스터 시티가 올드 트래퍼드에서 2-1로 승리하며, 그의 라이벌 감독인 주제 무리뉴를 상대로 여섯 번째 승리를 거두었다.
맨체스터 시티는 A매치 휴식기 전까지 선두를 달렸지만, 그 이후 팀의 성적이 하락했다. 2017년 1월 15일, 에버턴에게 0-4로 패배했는데, 이는 과르디올라 감독 경력 중 국내 대회에서 가장 큰 패배였다. 유럽 대회에서는 챔피언스리그 16강에서 AS 모나코에 원정골 규정에 따라 6-6 무승부 후 탈락했다. 2차전 경기는 과르디올라 감독의 유럽 대회 감독 경력 100번째 경기였고, 그는 61승 23무를 기록하며 최고의 성적을 거두었다. 2016-17 FA컵 준결승에서 아스널에 패한 후, 과르디올라는 감독 경력 최초로 트로피 없이 시즌을 마무리했다.
과르디올라는 리그 우승 경쟁을 위해 여름 이적 시장에서 맨체스터 시티의 수비력 향상이 필요한 부분, 특히 골키퍼와 풀백 포지션을 파악했다. 전 시즌 브라보의 부진으로 인해 에데르송이 새로운 주전 골키퍼로 영입되었다. 윙백 뱅자맹 멘디와 카일 워커도 영입되었고, 클럽의 기존 주전 풀백이었던 알렉산다르 콜라로프, 가엘 클리시, 바카리 사냐, 파블로 사발레타는 모두 방출되었다. 게다가 베르나르두 실바와 다닐루도 각각 모나코와 레알 마드리드에서 영입되었다.
2018년 2월 25일, 맨체스터 시티는 아스널을 3-0으로 꺾고 2017-18 EFL컵을 우승하며 과르디올라 감독은 클럽에서 첫 번째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4월 15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홈에서 웨스트 브롬위치 앨비언에게 1-0으로 패배하면서 맨체스터 시티는 2017-18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확정지었다. 리그 시즌을 역대 최다인 100점으로 마친 후, 과르디올라는 2021년까지 맨체스터 시티와 새로운 계약을 체결했다.
과르디올라 감독의 세 번째 시즌 동안, 맨체스터 시티는 레스터 시티로부터 리야드 마레즈를 60에 영입했다. 2018년 8월 5일, 시티는 2017-18 FA컵 우승팀 첼시를 상대로 2018 FA 커뮤니티 실드에서 2-0 승리를 거두며 시즌을 시작했다.
2019년 2월 24일, 과르디올라 감독의 팀은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9 EFL컵 결승전에서 첼시와 맞붙었다. 경기는 연장전까지 0-0으로 끝났고, 맨체스터 시티는 승부차기에서 4-3으로 승리하여 2년 연속 트로피를 차지했다. 4월 9일, 시티는 토트넘 홋스퍼의 새로운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19 UEFA 챔피언스리그 8강 1차전에서 토트넘 홋스퍼를 만났다. 경기는 시티의 0-1 패배로 끝났다. 2차전은 4월 17일 시티 오브 맨체스터 스타디움에서 열렸고, 과르디올라 감독의 팀은 토트넘을 4-3으로 이겼지만, 시티의 종료 직전 다섯 번째 골은 논란 끝에 무효 처리되었다. 총합 4-4 무승부로 토트넘이 원정 다득점으로 준결승에 진출했다. 5월 12일, 과르디올라는 2년 연속 2018-19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확정지었다. 그의 팀은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브라이턴 & 호브 앨비언을 4-1로 이기면서 98점으로 리버풀보다 1점 앞섰다. 5월 18일, 시티는 2018-19 FA컵 결승전에서 왓포드를 6-0으로 이기면서 잉글랜드 사상 최초로 국내 트레블(리그, FA컵, EFL컵)을 달성한 남자 축구팀이 되었다.
과르디올라는 2019년 여름 이적 시장에서 유벤투스의 주앙 칸셀루를 27.4와 다닐루를 포함한 금액에, 그리고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로드리를 클럽 역사상 최고 금액인 62.8에 영입하는 등 두 명의 주요 선수를 영입했다. 이러한 영입으로 시티 선수단의 가치는 10억 유로를 넘어섰고, 세계 최초로 10억 유로가 넘는 선수단을 보유한 축구 클럽이 되었다. 2019년 8월 4일, 시티는 2019 FA 커뮤니티 실드에서 리버풀과의 승부차기 끝에 승리하며 2년 연속 트로피를 차지했다. 이 경기에서 과르디올라는 프리미어리그 감독 최초로 심판으로부터 경고를 받았다. 3월 1일, 맨체스터 시티는 2020 EFL컵 결승전에서 아스톤 빌라를 2-1로 이기며 3년 연속 우승을 차지했다. 시티는 영국의 COVID-19 팬데믹으로 인한 봄철 휴식기 이후 2019-20 프리미어리그에서 2위를 차지했다. 2019-20 UEFA 챔피언스리그 16강에서 레알 마드리드를 꺾은 후, 과르디올라의 팀은 2020년 8월 15일 단판 승부 8강전에서 올랭피크 리옹과 맞붙었다. 시티는 1-3으로 패하며 3시즌 연속 8강에서 탈락했다.
2020-21 시즌, 맨체스터 시티는 전 시즌에 비해 수비력이 크게 향상되어 12경기에서 단 1골만 실점했다. 2020년 11월 19일, 과르디올라는 맨체스터 시티와 2023년 여름까지 2년 계약을 체결했다. 2021년 1월 31일, 시티가 셰필드 유나이티드를 1-0으로 홈에서 이기면서 감독으로서 500번째 승리를 거두었다. 이는 1월에 시티가 거둔 9번째 승리였으며, 1888년 풋볼 리그가 시작된 이후 잉글랜드 상위 4부 리그에서 한 달 동안 가장 많은 승리를 거둔 팀이 되었다. 2월 10일 스완지 시티를 3-1로 이긴 후, 과르디올라의 팀은 모든 대회에서 15연승을 기록하며 잉글랜드 1부 리그 역사상 최장 연승 기록을 경신했다.
2021년 5월 11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레스터 시티에 홈에서 패배하면서 과르디올라는 세 번째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2주 전 토트넘 홋스퍼를 1-0으로 이기고 EFL컵에서 4년 연속 우승을 차지했다. 2021년 5월 29일, 맨체스터 시티는 구단 역사상 처음으로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 진출했지만 첼시에 0-1로 패했다. 경기 후 과르디올라는 팀 선발과 수비형 미드필더를 선발하지 않은 것에 대해 비판을 받았다. 첼시 감독 토마스 투헬 또한 시티 선발 라인업에 페르난지뉴가 없는 것에 놀랐다고 말했다.
5. 감독 프로필
과르디올라는 2007-08 시즌 바르셀로나 1군 감독으로 선임된 후 2011-12 시즌까지 뛰어난 성적을 거두었다. 라리가 3연패 및 1회 준우승, 코파 델 레이 2회 우승 및 1회 준우승, 챔피언스리그 2회 우승(2008-09, 2010-11) 및 2번의 4강 진출, FIFA 클럽 월드컵 2연패, 스페인 슈퍼컵 2연패, UEFA 슈퍼컵 2회 우승 등을 달성했다.
2013-14 시즌부터 2015-16 시즌까지 바이에른 뮌헨 감독을 맡아 분데스리가 3연속 우승, DFB-포칼 2회 우승 및 2014-15 시즌 4강 진출, DFL-슈퍼컵 3연속 준우승, 3회 연속 챔피언스리그 4강 진출, 2013년 UEFA 슈퍼컵 우승, 2013년 FIFA 클럽 월드컵 우승 등을 이끌었다.
2016-17 시즌부터 맨체스터 시티 감독으로 부임하여 2022-23 시즌까지 프리미어리그 5회 우승, 프리미어리그 2016-17 3위, 프리미어리그 2019-20 준우승, 잉글랜드 FA컵 2018-19 시즌 우승 및 4번의 4강 진출, EFL컵 4연속 우승, 2020-21년 UEFA 챔피언스리그 준우승, 2021-22년 UEFA 챔피언스리그 4강, FA 커뮤니티 실드 2회 우승 및 2회 준우승, 2022-23년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 등을 달성했다. 특히 맨시티 감독으로 7시즌 중 5번의 리그 우승을 이끌며 맨시티를 프리미어리그 최강팀으로 만들었다.
과르디올라 감독의 팀들은 공을 뺏기 위한 압박(pressing)으로 유명하며, 선수들은 공을 되찾기 위해 집단적으로 상대를 압박하고 괴롭힌다. 높은 압박이 두드러지면서, 과르디올라 감독은 공을 잘 다루고 장거리 패스와 짧은 패스를 모두 잘하는 골키퍼와 수비수를 통해 이에 대응하려고 했다. 과르디올라는 자신의 전술을 끊임없이 발전시키려고 노력하며, 요한 크루이프에게서 토탈풋볼과 유사한 스타일을 배웠고, 후안 마누엘 릴로에게서도 영향을 받았다. 또한 마르셀로 비엘사에게서도 배우려고 했다. 과르디올라는 공격적인 축구에 대한 존경심을 여러 차례 언급했다.
과르디올라가 사용하는 전술은 랄프 랑닉이 고안하고 위르겐 클롭이 훌륭하게 사용한 게겐프레싱과 비슷하다. 그의 전술은 마우리치오 사리, 토마스 투헬, 그레이엄 포터, 루이스 엔리케와 같은 감독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과르디올라는 감독으로서의 유연성에 대해 칭찬을 받았다. 바르셀로나에서는 종종 인버티드 윙어와 오버래핑 공격형 풀백을 포함한 4-3-3 포메이션을 사용했고, 때때로 3-4-3 포메이션도 사용했다. 그는 나중에 바이에른 뮌헨과 맨체스터 시티에서도 이러한 포메이션을 사용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 역대 최고의 감독 중 한 명으로 여겨지는 과르디올라는 2010년대 스페인과 독일 국가대표팀의 성공과도 자주 연결된다. 위르겐 클롭은 과르디올라가 그가 상대한 팀 중 가장 힘든 팀들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2017년, 이탈리아 수비수 조르조 키엘리니는 과르디올라의 철학을 비판하며, 과르디올라 체제하의 바르셀로나와 관련된 점유율 기반의 플레이 스타일의 대중화가 이탈리아 수비수 세대를 약간 망쳤다고 말했다. 하비 알론소, 사비 에르난데스, 루이스 엔리케, 에릭 텐 하흐, 미켈 아르테타와 같이 과르디올라의 전 선수, 동료 및 코칭 스태프 구성원 여러 명이 감독직을 추구했으며, 과르디올라를 영감의 원천으로 언급했다.
수상
| 수상 | 연도 |
|---|---|
| UEFA 올해의 팀 | 2009, 2011 |
| FIFA 올해의 남자 축구 감독 | 2011 |
| 유럽 축구 올해의 감독 | 2011 |
| 유럽 축구 시즌의 감독 | 2008-09 |
| 월드 사커 올해의 감독 | 2009, 2011 |
| 옹즈도르 올해의 감독 | 2009, 2011, 2012 |
| 라리가 올해의 감독 | 2009, 2010, 2011, 2012 |
| 프리미어리그 시즌의 감독 | 2017-18, 2018-19, 2020-21 |
| 프리미어리그 이달의 감독 | 11회 |
| 글로브 사커 어워드 올해의 감독 | 2013 |
| 올해의 카탈루냐 인 | 2009 |
| Royal Order of Sports Merit | 2010 |
| LMA 명예의 전당 | 2019 |
| 글로브사커 어워드 커리어 공로상 | 2013 |
| 월드사커 선정 역대 최고의 감독 5위 | 2013 |
| 프랑스풋볼 선정 역대 최고의 감독 5위 | 2019 |
| ESPN 선정 역대 최고의 감독 18위 | 2013 |
| 글로브사커 어워드 21세기 최고의 감독 | 2020 |
5.1. 전술
과르디올라는 공을 소유하고 경기를 지배하는 데 많은 중점을 두었다. 상대팀 수비수들이 오랫동안 공을 쫓도록 하려는 의도로 경기를 운영했지만, 그의 팀들은 공을 빼앗기 위한 압박(pressing)으로도 인정받는다. 선수들은 공을 되찾기 위해 집단적으로 상대를 압박하고 괴롭힌다. 이 집단적인 압박은 공간이 적고 수비수나 골키퍼가 미드필더만큼 드리블이나 패스가 능숙하지 않은 상대 진영의 시작 지점 3분의 1 지점에서만 수행된다.
높은 압박이 두드러지면서, 과르디올라는 공을 잘 다루고 장거리 패스와 짧은 패스를 모두 잘하는 골키퍼와 수비수를 통해 이에 대응하려고 했다. 바르셀로나와 바이에른 뮌헨에서는 비야르 레알과 마누엘 노이어와 같은 골키퍼들이 스위퍼 키퍼 역할을 하며 골문을 나서서 역습을 막고, 뒤에서부터 공을 뿌려주었다. 맨체스터 시티에서는 에데르송이 시티가 높은 압박을 받을 때 정확한 장거리 패스를 통해 전방으로 공을 배급했는데, 때로는 상대 전체를 벗겨내고 시티 공격수들에게 1대1 상황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시티의 수비진영에서 나오는 장거리 패스에 걸리지 않기 위해, 상대 수비진은 공격진의 높은 압박에도 불구하고 조심스럽게 깊숙이 내려앉았고, 이로 인해 중앙에 공간이 생겼다.
과르디올라는 자신의 전술을 끊임없이 발전시키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요한 크루이프 밑에서 토탈풋볼과 유사한 스타일을 배우고, 과르디올라는 친구이자 도라도스에서 감독이었던 후안 마누엘 리요 밑에서 멕시코에서 선수로 활동했던 시절의 영향을 특히 많이 받았다. 또한 마르셀로 비엘사의 도움을 받아 그에게서 배우려고 했다. 2006년 월드컵 기간 동안 엘 파이스에 기고한 사설에서 루이스 아라고네스의 스페인 팀과 리카르도 라 볼페의 멕시코 팀을 칭찬한 것은, 골키퍼를 포함한 수비수들이 뒤에서부터 공을 뿌리는, 소유를 기반으로 한 공격적인 축구에 대한 그의 존경심을 보여준다. 과르디올라는 나중에 이를 여러 차례 주요 영감으로 언급했다. 그의 사설 중 하나에서 그는 지네딘 지단을 프랑스 최고의 수비수라고 부르며, 공을 계속해서 돌리는 것 자체가 중요한 수비 전술이라고 지적했는데, 이는 나중에 과르디올라 팀의 특징이 되었다. 바이에른 뮌헨에서 과르디올라 밑에서 뛰었던 필립 람은 과르디올라의 전술이 주로 1980년대 후반 아리고 사키의 AC 밀란 팀을 본뜬 공격적인 "사키 스타일"이라고 지적했다. 유동적인 움직임, 빠른 공수 전환, 공을 소유하는 것을 강조했는데, 이는 조제 모리뉴와 나중에 디에고 시메오네가 효과적으로 사용한 엄격하게 수비적인 카테나치오 스타일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그리고 과르디올라는 이 두 스타일을 혼합한 것처럼 보이는 자신의 접근 방식을 발전시켜 왔다고 말했다.
과르디올라가 사용하는 전술은 랄프 랑닉이 고안하고 위르겐 클롭이 훌륭하게 사용한 게겐프레싱과 비슷하다. 그의 전술은 마우리치오 사리, 토마스 투헬, 그레이엄 포터, 루이스 엔리케와 같은 감독들의 접근 방식뿐만 아니라 럭비와 같은 다른 스포츠에도 영향을 미쳤다. 과르디올라는 자신의 스타일을 독일과 잉글랜드 리그에 맞게 조정해야 했지만, 그의 "축구 교육은 카탈루냐에서 비롯되었으며" 소유를 기반으로 하며 게겐프레싱과는 다르다고 인정했다. 여러 해설가들은 종종 빠른 패스, 볼 점유율, 움직임, 높은 수비 라인, 강한 압박을 중심으로 한 바르셀로나에서의 과르디올라의 공격적인 전술을 유로 2008에서 루이스 아라고네스 감독 밑의 스페인 대표팀이 사용한 티키타카 스타일과 연결짓지만, 과르디올라 자신은 이 주장을 반박했으며, 심지어 이 시스템을 비판하기도 했다. 그는 2014년에 "나는 그저 패스를 하기 위한 모든 패스, 모든 티키타카를 혐오한다. 그것은 너무나 쓸모없는 것이고 아무런 목적이 없다. 상대 골대에 공을 넣는다는 명확한 의도를 가지고 공을 패스해야 한다. 그저 패스를 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과르디올라는 감독으로서의 유연성에 대해 칭찬을 받았으며, 경력 전반에 걸쳐 여러 포메이션을 사용했다. 바르셀로나에서는 종종 인버티드 윙어와 팀에 폭을 제공하는 오버래핑 공격형 풀백을 포함한 4-3-3 포메이션을 사용했고, 때때로 3-4-3 포메이션도 사용했다. 그는 나중에 바이에른 뮌헨과 맨체스터 시티에서도 이러한 포메이션을 사용했다. 3-4-3 포메이션에서 바르셀로나의 세르히오 부스케츠와 바이에른 뮌헨의 사비 알론소와 같은 수비형 미드필더는 추가적인 수비수 역할을 하기 위해 가끔 수비 라인으로 내려왔다. 이 역할은 과르디올라 자신이 바르셀로나에서 요한 크루이프 밑에서 맡았던 역할과 유사했다. 바이에른 뮌헨에서는 필립 람과 조슈아 키미히를 미드필더로 활용하기도 했다. 과르디올라는 바르셀로나 시절에 가짜 9번을 사용하기 시작하여 리오넬 메시를 공격 라인의 중앙에 배치하여 미드필드로 내려와 중앙에서 수적으로 우위를 점하게 했다. 맨체스터 시티에서는 여러 포메이션을 실험한 후 2022-23 시즌 트레블 우승 시즌에 과거 WM 포메이션과 비슷한 3-2-2-3 포메이션의 현대 버전을 사용했다. 그는 중앙 수비수 존 스톤스를 미드필드에서 하이브리드 수비와 창조적인 역할로 활용했는데, 가디언의 조나단 윌슨은 이를 2023년 리베로와 윙하프 역할에 비유했다. 과르디올라는 또한 중앙 지역을 차지하기 위해 안쪽으로 이동하는 인버티드 풀백을 사용했고, 이전 시즌보다 더 물리적이고 직접적인 스타일로 엘링 홀란드를 전통적인 스트라이커로 활용했다.
5.2. 평가
과르디올라는 2007-08 시즌을 마친 후 바르셀로나 1군 감독으로 선임되어 2011-12 시즌까지 뛰어난 성적을 거두었다. 라리가 3연패 및 1회 준우승, 코파 델 레이 2회 우승 및 1회 준우승, 챔피언스리그 2회 우승(2008-09, 2010-11) 및 2번의 4강 진출, FIFA 클럽 월드컵 2연패, 스페인 슈퍼컵 2연패, UEFA 슈퍼컵 2회 우승 등 많은 업적을 달성했다.
2013-14 시즌부터 2015-16 시즌까지 바이에른 뮌헨 감독을 맡아 분데스리가 3연속 우승, DFB-포칼 2회 우승 및 2014-15 시즌 4강 진출, DFL-슈퍼컵 3연속 준우승, 3회 연속 챔피언스리그 4강 진출, 2013년 UEFA 슈퍼컵 우승, 2013년 FIFA 클럽 월드컵 우승 등을 이끌었다.
2016-17 시즌부터 맨체스터 시티 감독으로 부임하여 2022-23 시즌까지 프리미어리그 5회 우승, 프리미어리그 2016-17 3위, 프리미어리그 2019-20 준우승, 잉글랜드 FA컵 2018-19 시즌 우승 및 4번의 4강 진출, EFL컵 4연속 우승, 2020-21년 UEFA 챔피언스리그 준우승, 2021-22년 UEFA 챔피언스리그 4강, FA 커뮤니티 실드 2회 우승 및 2회 준우승, 2022-23년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 등 뛰어난 성과를 거두었다. 특히 맨시티 감독으로 7시즌 중 5번의 리그 우승을 이끌며 맨시티를 프리미어리그 최강팀으로 만들었다.
과르디올라 감독의 팀들은 공을 뺏기 위한 압박(pressing)으로 유명하다. 선수들은 공을 되찾기 위해 집단적으로 상대를 압박하고 괴롭힌다. 높은 압박이 두드러지면서, 과르디올라 감독은 공을 잘 다루고 장거리 패스와 짧은 패스를 모두 잘하는 골키퍼와 수비수를 통해 이에 대응하려고 했다.
과르디올라는 자신의 전술을 끊임없이 발전시키려고 노력한다. 요한 크루이프에게서 토탈풋볼과 유사한 스타일을 배웠고, 후안 마누엘 릴로에게서도 영향을 받았다. 또한 마르셀로 비엘사에게서도 배우려고 했다. 과르디올라는 공격적인 축구에 대한 존경심을 여러 차례 언급했다.
과르디올라가 사용하는 전술은 랄프 랑닉이 고안하고 위르겐 클롭이 훌륭하게 사용한 게겐프레싱과 비슷하다. 그의 전술은 마우리치오 사리, 토마스 투헬, 그레이엄 포터, 루이스 엔리케와 같은 감독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과르디올라는 감독으로서의 유연성에 대해 칭찬을 받았다. 바르셀로나에서는 종종 인버티드 윙어(inverted winger)와 오버래핑 공격형 풀백을 포함한 4-3-3 포메이션을 사용했고, 때때로 3-4-3 포메이션도 사용했다. 그는 나중에 바이에른 뮌헨과 맨체스터 시티에서도 이러한 포메이션을 사용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 역대 최고의 감독 중 한 명으로 여겨지는 과르디올라는 2010년대 스페인과 독일 국가대표팀의 성공과도 자주 연결된다.
위르겐 클롭은 과르디올라가 그가 상대한 팀 중 가장 힘든 팀들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2017년, 이탈리아 수비수 조르조 키엘리니는 과르디올라의 철학을 비판하며, 과르디올라 체제하의 바르셀로나와 관련된 점유율 기반의 플레이 스타일의 대중화가 이탈리아 수비수 세대를 약간 망쳤다고 말했다.
하비 알론소, 사비 에르난데스, 루이스 엔리케, 에릭 텐 하흐, 미켈 아르테타와 같이 과르디올라의 전 선수, 동료 및 코칭 스태프 구성원 여러 명이 감독직을 추구했으며, 과르디올라를 영감의 원천으로 언급했다.
수상
* UEFA 올해의 팀 : 2009, 2011
* FIFA 올해의 남자 축구 감독 : 2011
* 유럽 축구 올해의 감독 : 2011
* 유럽 축구 시즌의 감독 : 2008-09
* 월드 사커 올해의 감독: 2009, 2011
* 옹즈도르 올해의 감독: 2009, 2011, 2012
* 라리가 올해의 감독 : 2009, 2010, 2011, 2012
* 프리미어리그 시즌의 감독 : 2017-18, 2018-19, 2020-21
* 프리미어리그 이달의 감독 11회
* 글로브 사커 어워드 올해의 감독: 2013
* 올해의 카탈루냐 인 : 2009
* Royal Order of Sports Merit: 2010
* LMA 명예의 전당: 2019
* 글로브사커 어워드 커리어 공로상 : 2013
* 월드사커 선정 역대 최고의 감독 5위 : 2013
* 프랑스풋볼 선정 역대 최고의 감독 5위 : 2019
* ESPN 선정 역대 최고의 감독 18위 : 2013
* 글로브사커 어워드 21세기 최고의 감독 : 2020
6. 논란
바르셀로나에서 감독직을 마친 후, 과르디올라는 뉴욕에서 1년간 안식년을 가졌다. 2013년 1월 7일, FIFA 올해의 세계 최우수 감독 투표에서 비센테 델 보스케, 조제 무리뉴에 이어 3위를 차지했다. 취리히에서 열린 2012 FIFA 발롱도르 시상식에서 과르디올라는 "감독직에 복귀하기로 결정했지만, 아직 팀을 정하지는 않았다."라고 밝혔다.
6.1. 도핑 의혹과 무죄 판결
2001년 11월, 경기 후 도핑 검사에서 금지 약물인 난드롤론 양성 반응이 나와 4개월 출전 정지 처분을 받았다. 2005년에는 집행유예가 붙었지만 7개월의 유죄 판결을 받았다. 이에 대해 과르디올라는 "이탈리아의 도핑 검사는 부정확하다"며 줄곧 무죄를 주장하며 과학적 근거가 있는 반증을 여러 차례 제출했다. 2007년 10월, 브레시아 고등법원은 1심 판결을 파기하고 무죄 판결을 내렸다. 이렇게 6년간의 싸움 끝에 과르디올라의 결백이 마침내 증명되었다.
그런데 무죄 판결 2년 후인 2009년 8월, 이탈리아 올림픽 위원회(CONI)가 과르디올라를 상고하면서 도핑 문제가 재점화되었다. 그러나 9월 재판에서 법원은 과르디올라 측의 주장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고, 9월 29일 CONI가 그의 무죄를 발표하며 문제가 해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