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위스트리뷔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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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에위스트리뷔그드는 서기 980년대 붉은 머리 에이리크가 건설한 그린란드의 동부 정착지를 가리킨다. 약 5,000명의 바이킹이 거주했으나, 15세기 초 쇠퇴하여 멸망했다. 동부 정착지는 목축 중심의 생활을 했으며, 13세기에는 노르웨이와의 교역을 통해 바다코끼리 이빨을 수출했다. 1408년 이후 멸망했으며, 한랭화, 이누이트와의 문화적 갈등, 교역 감소 등이 멸망의 원인으로 작용했다. 현재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쿠야타의 일부로, 카시아르수크, 이가리쿠, 시사를루토크, 바트나흐베르피, 흐발세위 등의 유적이 남아있다.
그린란드에서의 바이킹 정착은 서기 980년대 붉은 머리 에이리크의 주도로 시작되었으며, 동부 정착지(Eystribyggð|에위스트리뷔그드non)는 그 첫 번째이자 가장 큰 규모의 정착지였다. 전성기에는 약 4,000명의 노르드인이 거주했으며[23], 초기에는 작은 사설 성당들이 지어졌으나 12세기 이후에는 석조 성당이 건설되었다[24][25]. 13세기에는 노르웨이 왕국에 편입되어 바다코끼리 이빨 등을 교역하며 번성했다[26][27]. 그러나 14세기 이후 기후 변화와 교역 부진 등 복합적인 요인으로 쇠퇴하기 시작하여[9][41][42], 15세기 초 마지막 기록을 남기고 소멸했다[38]. 이후 오랫동안 잊혔다가 18세기에 이르러 그 유적이 재발견되었다[47].
2. 역사
2. 1. 정착 초기
그린란드에서의 바이킹 정착은 서기 980년대에 시작되었다. 당시 붉은 머리 에이리크가 이끄는 바이킹은 그린란드의 세 개 정착지 중 첫 번째인 동부 정착지(Eystribyggð|에위스트리뷔그드non)를 건설했다. 동부 정착지는 현재의 쿠얄렉 지역에 걸쳐 있었으며, 에이리크스피요르드, 이가리크피요르드, 세르미크피요르드의 입구에 해당한다. 서기 1000년경에는 그린란드 전체에 약 5,000명의 정착민이 있었는데, 그중 약 4,000명이 동부 정착지에 거주했다[23].
초기 정착 시기에는 붉은 머리 에이리크의 아내가 사설 성당을 지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후 약 1세기 동안은 농장주들이 잔디를 이용해 작은 사설 성당을 짓는 것이 일반적이었다[24]. 그러나 12세기에 이르러 정착민들은 노르웨이 왕에게 요청하여 유럽에서 초대 상주 사제인 아르날도를 파견받았다. 이 시기부터 공동체 규모에 비해 상당히 큰 석조 성당이 건설되기 시작했다[25].
13세기, 노르웨이의 왕 호콘 4세 치세에 그린란드 정착민들은 노르웨이 왕국의 일부가 되기를 원했으며, 납세의 대가로 매년 무역선의 내항을 요청했다[26]. 당시 그린란드의 주요 수출품은 바다코끼리의 이빨이었으며, 이는 서부 정착지 근처의 사냥터에서 동부 정착지를 거쳐 노르웨이의 베르겐으로 운반되었다[27].
동부 정착지의 주요 거점은 다음과 같다.
2. 2. 번영과 발전
그린란드에서의 바이킹 정착은 서기 980년대에 시작되었다. 당시 붉은 머리 에이리크가 이끄는 바이킹은 그린란드의 세 정착지 중 첫 번째인 동부 정착지(Eystribyggð|에위스트리뷔그드non)를 건설했다. 이 정착지는 현재의 쿠얄렉 지역에 해당하며, 에이리크스피오르드, 이갈리쿠피오르드, 세르밀리크 피오르 입구까지 뻗어 있었다. 서기 1000년경 그린란드에는 약 5,000명의 노르드인 정착민이 있었는데, 그중 약 4,000명이 동부 정착지에 거주했다[23].붉은 머리 에이리크의 아내가 개인 예배당을 지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지만, 이후 약 1세기 동안은 농장주들이 잔디를 이용해 지은 작은 개인 예배당이 일반적이었다[24]. 그러나 12세기에 노르웨이 왕에게 정착민들이 요청하여 유럽에서 첫 상주 주교인 아르날두르(Arnaldur)가 파견되면서, 공동체 규모에 비해 상당히 큰 석조 성당 단지가 건설되기 시작했다[25].
13세기 노르웨이의 왕 호콘 4세 시대에 그린란드 정착민들은 노르웨이 왕국의 일부가 되기를 원했고, 세금을 납부하는 대가로 매년 무역선이 방문해 줄 것을 요청했다[26]. 당시 그린란드의 주요 수출품은 바다코끼리 엄니였으며, 이는 서부 정착지 인근 사냥터에서 포획되어 동부 정착지를 거쳐 노르웨이의 베르겐으로 운송되었다[27].
2. 3. 쇠퇴와 멸망
동부 정착지에 관한 마지막 기록은 1408년 흐발세위 성당에서 열린 결혼식 기록에 등장하는 주민들에 대한 것이다.[38] 이는 다른 노르드인 정착지, 특히 서부 정착지가 버려진 지 약 50년에서 100년이 지난 시점이었다.[39][59][60] 동부 정착지는 1408년 기록 이후에도 수십 년 정도 더 유지되었을 가능성이 있지만, 정확한 멸망 시점은 알 수 없다.[40]정착지 멸망의 원인은 복합적이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14세기 이후 심화된 소빙하기로 인한 기후 한랭화가 영향을 미쳤지만[9], 사회경제적 요인들이 더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유럽과 이슬람 세계 간의 충돌이 잦아들면서 그린란드의 주요 수출품이었던 바다코끼리 상아에 대한 수요가 감소하여 교역이 부진해진 것이 경제적 타격이 되었다.[41][42]
또한, 노르드인들은 비유럽인인 이누이트와의 문화 교류를 꺼렸으며,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여 살아남은 이누이트의 생활 방식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43] 이러한 생활 방식의 보수성은 기존 방식대로 성당 건설 등에 귀중한 자원을 계속 투입하게 만들어, 상황 변화에 맞춰 정착지를 포기하거나 이주하는 등의 다른 선택을 하기 어렵게 만드는 매몰 비용 문제를 낳았다.[44]
결정적으로 한랭화로 인해 아이슬란드 및 노르웨이로 향하는 항해가 어려워지면서 유럽과의 교류가 사실상 끊겼다.[45] 이로 인해 새로운 주교가 파견되지 못하면서 교회의 권위가 약화되었고[45], 식량 확보 및 분배의 어려움은 공동체 지도자인 족장의 권위까지 흔들었을 것으로 추정된다.[46] 이러한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결국 동부 정착지는 소멸하게 되었다.
2. 4. 재발견과 현대
1723년, 그린란드에 파견되어 있던 노르웨이의 루터교 선교사가 이누이트의 안내를 받아 흐발세 성당 유적지에 도착하면서 동부 정착지는 유럽에 의해 재발견되었다. 이를 통해 동부 정착지의 멸망이 확인되었다[47]. 18세기 이후 덴마크인들은 이곳에서 양과 소 등을 기르는 소규모 목축을 재개했다[9]. 20세기 초부터는 덴마크 정부가 이누이트 생활 지원 정책의 일환으로 남부 그린란드에서 양 목축을 지원하였다. 그 결과, 21세기 초 현재 양 목축은 (비록 종사 인구나 지역 내 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작지만) 어업, 관광업과 함께 그린란드의 주요 산업 중 하나로 자리 잡고 있다[48].3. 생활상
에위스트리뷔그드에 정착한 중세 노르드인들은 그린란드의 독특하고 때로는 혹독한 자연환경 속에서 수백 년간 삶을 이어갔다. 이들의 생활상은 척박한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지속적인 노력을 보여주며, 주로 목축과 사냥에 의존하는 식생활, 그리고 현지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를 활용한 독특한 주거 및 건축 양식으로 특징지어진다. 특히 중세 온난기 이후 기후 변화는 이들의 생활 방식, 특히 식량 확보 전략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자세한 식생활과 주거 및 건축에 대한 내용은 아래 하위 문단에서 상세히 설명한다.
3. 1. 식생활
중세 노르드인 정착지의 식생활은 주로 목축에 의존했다. 초기에는 돼지 사육도 시도되었으나, 그린란드의 환경에 맞지 않아 곧 포기되었다[30] . 소는 사치품으로 여겨졌고, 양과 염소가 목축의 중심이었다[31] . 특히 토지가 척박했던 서부 정착지에서는 잔가지나 관목도 먹을 수 있는 염소의 비중이 점차 높아졌지만, 비교적 비옥했던 동부 정착지의 일부 농장에서는 소를 계속 중시하기도 했다[32] . 목축 외에는 순록과 물개 사냥이 중요한 식량 공급원이었다[33] . 농경의 경우, 노르웨이에서 아마를 들여온 흔적이 발견되었다[34] .중세 온난기가 끝나고 14세기에 뚜렷한 한랭화가 시작되면서 상황이 변했다. 겨울철에 필요한 목초의 양은 늘어났지만, 추워진 날씨로 목초지의 생산성은 오히려 감소한 것으로 보인다. 발굴된 뼈의 동위원소 분석 결과, 동부 정착지 후기로 갈수록 해산물의 중요성이 커졌음을 알 수 있다. 초기 정착민의 식단에서 농축산물이 80%, 해산물이 20%를 차지했던 반면, 14세기 그린란드 노르드인의 식단에서는 해산물의 비중이 50%에서 80%까지 증가했다[35] . 이때 주로 섭취한 해산물은 물개 고기였으며, 주변에 풍부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물고기를 먹은 흔적은 거의 발견되지 않았다[36] . 일부 학자는 유적의 해수면 상승 등으로 증거가 사라졌을 가능성을 제기하지만,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이를 반박하며, 노르드인들의 출신지인 북유럽과는 다른 식문화적 금기가 생겨 물고기를 의도적으로 피했을 가능성을 제시했다[37] .
3. 2. 주거와 건축
에위스트리뷔그드의 노르드인들은 그린란드의 혹독한 환경에 적응하며 독특한 주거 형태와 건축 양식을 발전시켰다. 주로 돌, 흙, 잔디 등을 이용하여 지은 집들은 추위를 효과적으로 막고 외부 환경으로부터 거주자를 보호하는 데 중점을 둔 구조를 가졌다.이 지역에는 당시 노르드인들의 생활상과 사회 구조를 엿볼 수 있는 여러 중요한 정착지 유적이 남아있다. 이 유적들은 고고학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지니며, 당시의 건축 기술과 생활 방식을 연구하는 데 핵심적인 단서를 제공한다. 주요 유적지는 다음과 같다.
유적지 | 주요 특징 |
---|---|
가르다르 | 에위스트리뷔그드의 주교좌 소재지였다. 가르다르 주교좌 성당 유적은 당시 이곳이 종교 및 사회 활동의 중심지였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이다. |
흐발세위 | 그린란드에 남아있는 노르드 유적 중 보존 상태가 가장 양호한 곳 중 하나로, 특히 교회 건축 유적이 잘 남아있다. |
브라타흘리드 | 붉은 에이리크가 처음 정착하여 농장을 일군 곳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농장 터와 작은 교회 유적이 남아있다. |
뒤메스 | 아우구스티누스회 수도원 유적이 발견된 곳으로, 종교 생활의 일면을 보여준다. |
헤룔프네스 | 다수의 의복 유물이 발굴되어 중세 노르드인들의 복식 문화를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를 제공한다. |
페투르스비크 | 여러 농장 유적 중 하나이다. |
룬데위 | 섬에 위치한 정착지 유적이다. |
바트나흐베르피 | 농장 유적지 중 하나이다. |
이러한 건축 유적들은 노르드인들이 그린란드 동부 정착지에서 자연환경에 적응하며 어떻게 공동체를 이루고 생활했는지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특히 가르다르 주교좌 성당이나 흐발세위 교회와 같은 종교 건축물은 당시 노르드 사회가 유럽 본토와 문화적으로 교류하며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였음을 시사하는 중요한 역사적 증거이다.
4. 유네스코 세계유산
에위스트리뷔그드의 유적군은 그린란드의 구야다: 빙관 연변부의 고대 스칸디나비아인과 이누이트의 농업 경관(Kujataa Greenland: Norse and Inuit Farming at the Edge of the Ice Capeng)이라는 명칭으로 2017년 제41회 세계유산 위원회에서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9] 이는 덴마크령 그린란드의 쿠얄렉 지역에 위치하며, 총 등록 면적은 34892ha, 완충 지역 면적은 57227ha이다.
이 유산은 북극 지방 농업 도입과 노르드인의 유럽 외 최초 정착 사례로서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5) 기준을 충족하여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59][9] 그린란드에서는 일리사트 아이스피오르드에 이어 두 번째 세계유산이며, 문화유산으로는 최초이다.
자세한 등재 경위, 기준, 구성 유산은 하위 문서를 참고하라.
4. 1. 등재 경위
이 유산은 2003년 1월 29일에 세계유산 잠정 목록에 등재되었고, 2016년 1월 27일에 유네스코 세계유산 센터에 정식으로 추천되었다[50]。 세계유산 위원회의 자문 기관인 국제 기념물 유적 협의회(ICOMOS)는 심사 과정에서 다른 바이킹 정착지 유적인 랜스오미도우(캐나다의 세계유산)나 북유럽의 농업 관련 유산인 외레란드 섬 남부의 농업 경관(스웨덴의 세계유산), 베가 군도(노르웨이의 세계유산) 등과 비교했을 때 세계유산으로서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가 인정된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완충 구역 내 자원 채굴 등 토지 이용 계획의 불확실성을 이유로 "정보 조회"를 권고했다[51]。 그러나 2017년 제41회 세계유산 위원회에서는 ICOMOS의 권고 사항에 대해 덴마크 당국이 적절히 대응하고 있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하여, 최종적으로 등재가 결정되었다[9]。이는 덴마크의 세계유산으로는 9번째이며, 그린란드의 세계유산으로는 일리사트 아이스피오르드에 이어 2번째이다. 문화유산으로는 그린란드 최초의 세계유산이다.
4. 2. 등재 기준
세계유산 위원회는 이 유적을 세계유산 등재 기준 (5)에 따라 등재하였다.[59] 위원회는 이 농목업 지역이 아이슬란드에서 10세기 이후 정착한 노르드인 어부 및 농목업 종사자들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18세기 말경 발달한 선주민 이누이트의 농업 및 어로 기반 경제의 역사와 문화를 잘 보여준다고 평가했다.[59]특히 두 문화 집단의 접촉과 공존은 경작지, 목초지, 그리고 바다코끼리 사냥터 등으로 특징지어지는 독특한 문화 경관을 만들어냈다. 구야타(Kujataa, 에위스트리뷔그드의 그린란드어 명칭) 유적은 북극 지방에 농업이 처음으로 도입된 사례이자, 노르드인들이 유럽 대륙 외 지역에 최초로 정착한 사례라는 점에서 중요한 역사적 가치를 지닌다.[9][59][60]
4. 3. 구성 유산
세계 유산의 등록 대상은 다음 5건이다.[62] 모두 그린란드의 쿠얄렉 행정 구역에 포함된다.[9]ID | 이미지 | 등록명 | 등록 면적(ha) | 완충 지대 면적(ha) | 위치 |
---|---|---|---|---|---|
1536-001 | -- | 카시아르수크 Qassiarsuk | 11.342ha | 7.703ha | 북위 61° 9′ 52″ 서경 45° 35′ 53″ |
카시아르수크는 과거 브라타흘리드(Brattahlíð|브라타흘리드non)라고 불렸으며, 붉은 에릭이 건설한 것으로 추정되는 농장의 유적이 있다.[9] 또한 서기 1000년경의 교회 유구는 에릭의 아내가 지었다고 전해진다.[9] 5개의 구성 자산 중 관광객 수가 많은 곳이다.[9] | |||||
1536-002 | -- | 이가리쿠 Igaliku | 8.287ha | 49.524ha | 북위 61° 0′ 6″ 서경 45° 22′ 29″ |
이가리쿠에는 노르드인의 목양장 유적이 남아있다.[63] 과거 가르다르(Gardar)의 주교령이 있던 곳이며, 대성당도 지어졌다.[9] 이 대성당은 아이슬란드의 대성당에 필적하는 규모로, 당시 정착지 인구 규모에 비해 매우 컸던 것으로 평가된다.[64] 풍요로운 목초지를 보유했지만, 재러드 다이아몬드는 동부 정착지가 쇠퇴할 무렵 주변의 궁핍한 정착민들이 몰려들면서 멸망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65] 또한, 19세기부터 현대까지의 주거지가 남아 있으며, 이누이트 문화와 기독교 문화의 교류를 보여주는 묘지 등도 존재한다.[9] | |||||
1536-003 | -- | 시사를루토크 Sissarluttoq | 339ha | ― | 북위 60° 53′ 48″ 서경 45° 29′ 42″ |
노르드인의 목초지였던 곳으로, 관련 시설 유적이 남아있다.[9] | |||||
1536-004 | ![]() | 바트나흐베르피 Tasikuluulik (Vatnahverfi) | 7.542ha | ― | 북위 60° 50′ 52″ 서경 45° 23′ 24″ |
바트나흐베르피는 동부 정착지 중 "가장 풍요로운 농업 지역 중 하나"로 여겨지며,[16] 유구를 통해 스칸디나비아 등지와 유사한 농장이 운영되었음을 알 수 있다.[66] 그러나 빙하 계곡에 위치하여 빙하풍으로 인한 목초 생육 불량과 토양 침식이 발생하여 결국 포기된 것으로 추정된다.[67] | |||||
1536-005 | -- | 흐발세위 Qaqortukulooq (Hvalsey) | 7.382ha | ― | 북위 60° 47′ 33″ 서경 45° 50′ 4″ |
흐발세위에는 노르드인 유적 11곳과 툴레인 유적 2곳이 남아있다.[68] "고래의 섬"이라는 의미를 가진 흐발세위 유적은 5개 구성 자산 중 "노르드인의 가장 상징적인 유적"으로 평가받는다.[9] 동부 정착지의 마지막 기록은 흐발세위 교회에서 열린 결혼식에 관한 것이다. |
5. 소속 정착지
동부 정착지(에위스트리뷔그드)에 속했던 주요 정착지는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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