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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테르 (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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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에테르는 17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빛의 전파를 설명하기 위해 가설로 제안된 물질이다. 초기에는 빛의 파동설과 입자설 논쟁에서 등장했으며, 19세기에는 빛의 파동설이 우세해지면서 에테르의 존재가 널리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마이컬슨-몰리 실험을 비롯한 여러 실험에서 에테르의 존재가 감지되지 않으면서 에테르 이론은 위기에 직면했다. 20세기 초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특수 상대성 이론은 에테르 없이도 빛의 속도 불변성을 설명하면서 에테르 개념을 불필요하게 만들었고, 현대 물리학에서는 에테르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간주된다. 아인슈타인은 일반 상대성 이론에서 공간의 물리적 특성을 '에테르'로 비유하기도 했으나, 이는 기존의 에테르 개념과는 다른 의미로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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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테르 (물리)
개요
명칭빛을 전달하는 에테르
다른 명칭빛 에테르
에테르
분야물리학 (역사적)
역할빛의 매질 (가설)
상태정지
밀도매우 낮음
투과성완전 투명
상호 작용물질과 상호 작용 없음
역사
제안 시기17세기
주요 인물르네 데카르트
크리스티안 하위헌스
아이작 뉴턴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
쇠퇴 시기19세기 말 ~ 20세기 초
주요 실험마이컬슨-몰리 실험
폐기 이유실험적 증거 부족
특수 상대성 이론과의 불일치
이론적 배경
필요성당시 빛의 파동설 지지
파동의 매질 필요
가정우주 전체에 존재
빛의 속도로 전파 가능
모든 물질 통과
문제점마이컬슨-몰리 실험 결과 모순
특수 상대성 이론과 충돌
관련 개념
관련 이론파동설
전자기학
관련 실험마이컬슨-몰리 실험
대체 이론특수 상대성 이론
참고 문헌
추가 정보구글 학술 검색 '빛을 전달하는 에테르'

2. 에테르의 변천사

크리스티안 하위헌스는 1690년에 출판된 ''빛에 관한 논문''에서 빛이 에테르를 통해 전파되는 파동이라고 가정했다.[4] 하위헌스와 아이작 뉴턴은 빛의 파동을 소리나 다른 역학적 파동처럼 유체에서 전파되는 종파로만 상상했다.[4] 그러나 종파는 복굴절을 설명할 수 없었다.[4]

아이작 뉴턴은 빛이 수많은 작은 입자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주장하며, 빛이 직선으로 이동하고 표면에서 반사되는 특징을 설명했다.[5] 하지만 빛의 입자 이론은 굴절회절을 만족스럽게 설명할 수 없었다.[5] 뉴턴은 ''광학''에서 빛보다 빠르게 진동을 전달하는 "에테르 매질"을 가정하여 굴절과 회절을 설명하려 했다.[38] 뉴턴은 이러한 진동이 열 복사와 관련이 있다고 믿었지만,[38] 현대적 이해와는 대조적으로, 뉴턴은 열과 빛을 두 가지 다른 현상으로 보았다.[38]

처음 에테르 개념은 빛의 본질이 파동인지 아니면 입자인지에 대한 논쟁에서 많이 등장하였다. 아이작 뉴턴은 프린키피아에서 ‘모든 공간이 다양한 밀도의 에테르로 가득 차 있다’고 주장하였는데 이는 중력의 원거리 작용을 설명하려는 시도였다고 생각된다.

로버트 보일은 에테르 가설을 지지했다. 보일의 주장에 따르면, 에테르는 미세한 입자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고대인들의 에테르에는 확산되고 매우 미세한 물질만이 고려되었지만, 현재 우리는 북극과 남극 사이에 특정한 경로로 움직이는 일련의 흐름이 공기 속에 항상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데 만족한다."[3]

18세기에는 뉴턴의 권위로 인해 빛의 입자설이 지배적이었지만,[96] 19세기에 토머스 영과 오귀스탱 장 프레넬은 빛의 파동설을 부활시켰다.[97] 토머스 영은 빛의 간섭 현상을 발견하여 빛의 파동설을 지지하였고,[6] 에테르의 존재를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오귀스탱 프레넬은 빛이 횡파라는 것을 밝혀내고, 빛의 파동설을 부활시켰다.[97] 횡파의 편광은 복굴절 현상을 설명할 수 있었고,[97] 회절에 대한 일련의 실험 이후 뉴턴의 입자 모델은 마침내 폐기되었다.[97] 물리학자들은 역학적 파동과 마찬가지로 빛 파동도 전파를 위한 매질이 필요하며, 따라서 모든 공간에 스며드는 에테르 "기체"에 대한 하위헌스의 아이디어가 필요하다고 가정했다.[97]

후에 토마스 영이 빛의 간섭 현상을 발견한 후로 빛이 파동이라는 주장이 대세를 이루었는데 여기에 힘입어 많은 사람들이 에테르의 존재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당시에는 뉴턴역학이 큰 성공을 거두었고 그에 따라 에테르에 대한 역학적 모델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오귀스탱 루이 코시는 어떤 종류의 "끌림"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제안했지만, 이것은 광행차 측정을 이해하기 어렵게 만들었다.[98] 조지 그린은 그러한 유체는 불안정할 것이라고 지적했다.[97] 조지 가브리엘 스톡스는 휩쓸림 해석의 지지자가 되어, 에테르가 소나무 피치와 같이 딜레이턴트(느린 속도에서는 유체이고 빠른 속도에서는 고체)일 수 있는 모델을 개발했다.[97]

‘장’ 개념은 마이클 패러데이에 의해 등장하였는데 이에 영향을 받은 톰슨이 1841년 정전기 문제에서의 역선이 무한 고체에서의 열 흐름선과 수학적으로 동등하다는 것을 보인 논문을 발표하였고, 1889년에는 열의 전도현상과 정전기 문제를 연관시켜 전자기 현상을 전달하는 매질로서 에테르의 기계적 모델을 제안했다.

패러데이와 톰슨에게 지대한 영향을 받은 맥스웰은 전자기 현상에 관한 자신의 방정식을 구체적으로 해석하기 위해서 굉장히 복잡한 기계적인 에테르 모델을 제안했다. 맥스웰은 상당히 오랫동안 에테르 이론을 지지하여 여기에 매달렸는데 가장 큰 이유는 전자기 현상에 관한 원거리 작용이라는 신비적 개념을 피할 수 있게 해주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마이클 패러데이의 힘의 선 연구를 바탕으로 1861년 논문 ""에서 자기력선을 분자 소용돌이 바다를 사용하여 모델링했다.[85][77][75][83] 그는 유전율과 자기 투과율의 비율을 이폴리트 피조가 측정한 빛의 속도에 가까운 값으로 계산하고, 빛이 전기 및 자기 현상의 원인이 되는 매질의 파동으로 구성된다는 결론을 내렸다.[85][77][75][83]

1864년 논문 "전자기장의 역학적 이론"에서 맥스웰은 발광 매질의 세부 사항을 덜 명확하게 제시했다.[37] 그는 앙페르의 법칙 유도와 플라이휠의 작용과 유사한 역학적 접근 방식을 사용하여 기전력 방정식을 정당화하고, 파동 방정식을 유도했다.[37] 맥스웰은 이 파동 방정식이 빛의 속도로 전파되는 전자기파를 나타낸다는 것을 보여주었고, 빛이 전자기 복사의 한 형태라는 견해를 뒷받침했다.

맥스웰 방정식은 모든 전자기파가 진공에서 일정한 속도 ''c''로 전파되어야 한다고 요구했다.[8] 이는 뉴턴 물리학에서 하나의 기준틀에서만 발생할 수 있으므로( 갈릴레이 상대성 이론 참조), 에테르는 맥스웰 방정식이 성립하는 절대적이고 고유한 기준틀로 가정되었다.[8]

그러나 이러한 모델에서는 에테르가 유체여야 하지만, 강철보다 훨씬 더 단단해야 하고, 질량도 점성도 0이어야 하며, 투명하고 비압축성이며 매우 연속적이어야 했다.[100]

에테르 가설의 가장 큰 어려움은 뉴턴 역학과 맥스웰의 전자기학의 모순이다. 뉴턴 역학은 갈릴레이 변환하에서 불변이었지만, 맥스웰의 전자기학은 그렇지 않았다.

갈릴레이 변환이란 관측자의 관점을 바꾸는 것이다. 뉴턴의 운동 방정식은 갈릴레이 변환을 해도 성립하지만, 맥스웰 방정식에 따르면 빛의 속도는 관측자의 운동에 의존하지 않는다. 그래서 "에테르에 대한 절대 좌표계"가 존재하고, 맥스웰 방정식은 이 좌표계에서만 엄밀하게 성립한다고 생각되었다.

2. 1. 초기 개념 (17세기)

르네 데카르트는 모든 물리 현상을 우주를 가득 채운 미세 물질의 소용돌이 운동으로 설명하려 했으며, 빛은 이 미세 물질(에테르) 속의 압력, 즉 종파라고 주장했다.[88] 데카르트의 생각을 기반으로 한 학파인 카르테지앵(cartésien)은 17세기부터 18세기까지 프랑스 학계의 주류를 차지했다.[89]

로버트 훅은 데카르트의 우주에 가득 찬 미세 물질을 '에테르'(aether, ether)라고 명명하고, 빛이 에테르를 통해 전달되는 진동이라고 주장했다.[90] 크리스티안 하위헌스는 휘겐스 원리를 도입하여 빛의 파동설의 기초를 만들었다.[92][93] 하위헌스는 빛의 파동을 역학적 파동처럼 유체에서 전파되는 종파로만 상상할 수 있었으나, 종파는 복굴절을 설명할 수 없었다. 뉴턴은 매질 속 파동으로서의 빛은 우주 공간에 뻗어있어 행성 운동을 방해할 것이므로 빛의 매질은 거부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4]

아이작 뉴턴은 빛의 입자설을 주장하면서도, 굴절회절을 설명하기 위해 빛보다 빠르게 진동을 전달하는 "에테르 매질"을 가정했다.[5] 뉴턴은 빛의 입자가 "에테르 매질"의 진동에 의해 "쉬운 반사와 쉬운 투과의 적합성" 상태가 되어 굴절과 회절이 발생한다고 설명했다.[38] 그는 "이 에테르가 무엇인지 모르겠다"라고 썼지만, 이것이 입자로 구성되어 있다면 공기나 빛의 입자들보다 훨씬 작아야 한다고 주장했다.[38] 뉴턴은 열과 빛을 서로 다른 두가지 현상으로 보았다.[38] 뉴턴의 권위로 인해 18세기에는 빛의 입자설이 주류가 되었고, 레온하르트 오일러를 제외하고는 빛의 본성에 대한 논의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96]

1720년, 제임스 브래들리연주 시차를 측정하려 했으나 실패했고, 대신 광행차를 발견했다. 브래들리는 뉴턴의 입자설에 따라 이 효과를 설명하고 빛의 속도를 추정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에테르 기반 빛 이론에서는 광행차를 설명하기 어려웠는데, 지구가 에테르를 통과해 움직여도 에테르는 별에 대해 정지해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이는 뉴턴이 파동 모델을 거부한 이유이기도 했다.

2. 2. 빛의 파동설과 에테르 (18세기 ~ 19세기)

크리스티안 하위헌스는 1690년에 출판된 ''빛에 관한 논문''에서 빛이 에테르를 통해 전파되는 파동이라고 가정했다.[4] 하위헌스와 아이작 뉴턴은 빛의 파동을 소리나 다른 역학적 파동처럼 유체에서 전파되는 종파로만 상상했다.[4] 그러나 종파는 주어진 전파 방향에 대해 하나의 형태만 가지며, 횡파와 같은 두 개의 편광을 가지지는 않는다.[4] 따라서 종파는 복굴절을 설명할 수 없었다.[4]

아이작 뉴턴은 빛이 수많은 작은 입자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주장하며, 빛이 직선으로 이동하고 표면에서 반사되는 특징을 설명했다.[5] 하지만 빛의 입자 이론은 굴절회절을 만족스럽게 설명할 수 없었다.[5] 뉴턴은 ''광학''에서 빛보다 빠르게 진동을 전달하는 "에테르 매질"을 가정하여 굴절과 회절을 설명하려 했다.[38] 뉴턴은 이러한 진동이 열 복사와 관련이 있다고 믿었지만,[38] 현대적 이해와는 대조적으로, 뉴턴은 열과 빛을 두 가지 다른 현상으로 보았다.[38]

18세기에는 뉴턴의 권위로 인해 빛의 입자설이 지배적이었지만,[96] 19세기에 토머스 영과 오귀스탱 장 프레넬은 빛의 파동설을 부활시켰다.[97] 토머스 영은 빛의 간섭 현상을 발견하여 빛의 파동설을 지지하였고,[6] 에테르의 존재를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오귀스탱 프레넬은 빛이 횡파라는 것을 밝혀내고, 빛의 파동설을 부활시켰다.[97] 횡파의 편광은 복굴절 현상을 설명할 수 있었고,[97] 회절에 대한 일련의 실험 이후 뉴턴의 입자 모델은 마침내 폐기되었다.[97] 물리학자들은 역학적 파동과 마찬가지로 빛 파동도 전파를 위한 매질이 필요하며, 따라서 모든 공간에 스며드는 에테르 "기체"에 대한 하위헌스의 아이디어가 필요하다고 가정했다.[97]

그러나 횡파는 전파 매질이 유체가 아닌 고체처럼 행동해야 함을 의미하는 것처럼 보였다.[97] 오귀스탱 루이 코시는 어떤 종류의 "끌림"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제안했지만, 이것은 광행차 측정을 이해하기 어렵게 만들었다.[98] 조지 그린은 그러한 유체는 불안정할 것이라고 지적했다.[97] 조지 가브리엘 스톡스는 휩쓸림 해석의 지지자가 되어, 에테르가 소나무 피치와 같이 딜레이턴트(느린 속도에서는 유체이고 빠른 속도에서는 고체)일 수 있는 모델을 개발했다.[97]

2. 3. 전자기학과 에테르 (19세기)

마이클 패러데이는 '장(field)' 개념을 도입하고, 에테르가 힘을 전달하는 매개체라고 주장했다. 그의 이론은 힘이 전달되는 메커니즘을 설명하지는 못했다. 윌리엄 톰슨은 패러데이의 장 이론을 발전시켜 에테르 연속체 이론을 제시하고, 에테르의 물리적 모형을 발전시켰다. 톰슨은 1856년 논문에서 자신의 열 이론(동역학적 입자 운동으로 열 현상을 설명)과 랭킨의 이론(입자 핵을 둘러싸고 있는 에테르 대기의 소용돌이 운동)을 사용하여 자기 현상을 설명했다. 그는 에테르를 유체로 간주하고, 모든 물질은 연속되어 있다는 '보편 충만의 이론'을 지지했다.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은 전자기장을 역학적 관점에서 설명하기 위해 복잡한 기계적 에테르 모델을 제안했다. 그는 에테르를 세포 에테르(육각형 벌집 모양의 소용돌이관)로 표현하고, 그 주위에 유동바퀴가 존재한다고 보았다. 맥스웰은 빛이 에테르 속에서 횡적인 탄성파 형태로 전파되는 전기 변위이며, 그 속도가 빛의 속도와 같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빛은 전기 현상과 자기 현상의 원인이 되는 바로 그 매질의 횡적인 파동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추론했다.

1856년 빌헬름 에두아르트 베버와 루돌프 콜라우슈는 정전기 단위 전하와 (전자기 단위 전하인) 아브쿨롬의 비율이 빛의 속도 ''c''임을 발견했다.[7] 다음 해, 구스타프 키르히호프는 전선을 따라 신호의 속도가 빛의 속도와 같다는 논문을 발표했다.[7]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마이클 패러데이의 힘의 선 연구를 바탕으로 1861년 논문 ""에서 자기력선을 분자 소용돌이 바다를 사용하여 모델링했다.[85][77][75][83] 그는 유전율과 자기 투과율의 비율을 이폴리트 피조가 측정한 빛의 속도에 가까운 값으로 계산하고, 빛이 전기 및 자기 현상의 원인이 되는 매질의 파동으로 구성된다는 결론을 내렸다.[85][77][75][83]

1864년 논문 "전자기장의 역학적 이론"에서 맥스웰은 발광 매질의 세부 사항을 덜 명확하게 제시했다.[37] 그는 앙페르의 법칙 유도와 플라이휠의 작용과 유사한 역학적 접근 방식을 사용하여 기전력 방정식을 정당화하고, 파동 방정식을 유도했다.[37] 맥스웰은 이 파동 방정식이 빛의 속도로 전파되는 전자기파를 나타낸다는 것을 보여주었고, 빛이 전자기 복사의 한 형태라는 견해를 뒷받침했다.

1887년에서 1889년 사이에 하인리히 헤르츠는 전자기파가 빛과 동일하다는 것을 실험적으로 증명했다.[8] 이는 단일 발광 에테르의 존재를 시사했다.[8] 하인리히 헤르츠파(나중에 라디오파로 불림)는 직교하는 전기(E)파와 자기(B 또는 H)파로 구성되며, 전파 경로를 따라 어떤 형태의 물질이 필요한 것으로 보였다.[8]

맥스웰 방정식은 모든 전자기파가 진공에서 일정한 속도 ''c''로 전파되어야 한다고 요구했다.[8] 이는 뉴턴 물리학에서 하나의 기준틀에서만 발생할 수 있으므로( 갈릴레이 상대성 이론 참조), 에테르는 맥스웰 방정식이 성립하는 절대적이고 고유한 기준틀로 가정되었다.[8] 맥스웰은 바퀴와 기어를 기반으로 한 에테르의 여러 기계적 모델을 제안했고, 조지 프랜시스 피츠제럴드는 그중 하나의 작동 모델을 제작했다.

19세기 물리학자 (토머스 영)과 (오귀스탱 장 프레넬)은 빛이 횡파라고 생각하여 편광과 복굴절을 설명하고, 회절 실험을 통해 뉴턴의 입자 모델을 부정했다.[97]

(오귀스탱 루이 코시)는 에테르가 일반적인 물질에 끌린다고 생각했지만, 광행차[98]를 설명할 수 없었고, 에테르의 압축률이 음수라고 생각했다. (조지 그린)은 이러한 유체는 안정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조지 가브리엘 스톡스)는 끌림 가설을 지지하며 에테르 모델을 구축했다.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에 의해 전자기파의 존재가 예상되었고, (하인리히 헤르츠)는 전자기파의 송수신이 가능하다는 것을 실험적으로 보였다. 맥스웰 방정식에 따르면, 전자기파가 전파하는 속도 c는 유전율 ε 및 투자율 μ와 관계가 있으며, 이는 실험적으로 알려진 빛의 속도와 일치했다. 이 사실로부터 빛은 전자기파의 일종이라고 추정되었다. 그러나, 뉴턴 역학에서의 기준 좌표계 상호 관계(갈릴레이 변환)를 전제로 하면, 빛의 속도는 관측자에 따라 다르게 보여야 했다. 그래서, 에테르의 운동을 기준으로 한 절대 좌표계가 존재하며, 그 좌표계에서만 맥스웰 방정식이 엄밀하게 성립한다고 추정되었다.[99]

그러나 이러한 모델에서는 에테르가 유체여야 하지만, 강철보다 훨씬 더 단단해야 하고, 질량도 점성도 0이어야 하며, 투명하고 비압축성이며 매우 연속적이어야 했다.[100]

에테르 가설의 가장 큰 어려움은 뉴턴 역학과 맥스웰의 전자기학의 모순이다. 뉴턴 역학은 갈릴레이 변환하에서 불변이었지만, 맥스웰의 전자기학은 그렇지 않았다.

갈릴레이 변환이란 관측자의 관점을 바꾸는 것이다. 예를 들어 기차 안에서 걷는 승객은 기차 밖의 사람에게는 더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뉴턴의 운동 방정식은 갈릴레이 변환을 해도 성립하지만, 맥스웰 방정식에 따르면 빛의 속도는 관측자의 운동에 의존하지 않는다. 즉, 맥스웰 방정식은 갈릴레이 변환에 대해 불변이 아니다. 그래서 "에테르에 대한 절대 좌표계"가 존재하고, 맥스웰 방정식은 이 좌표계에서만 엄밀하게 성립한다고 생각되었다.

지구의 절대 좌표계에 대한 운동에 관심이 모아졌다. 맥스웰은 지구의 운동이 빛의 속도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함으로써 지구의 절대 좌표계에 대한 운동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3. 에테르 검출 실험

마이컬슨-몰리 실험은 가장 유명한 에테르 검출 실험 중 하나이다.[62][64] 이 실험은 지구의 운동 방향과 수직 방향으로 빛을 보내 간섭무늬를 관찰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에테르가 존재한다면 지구의 운동으로 인해 간섭무늬의 변화가 예상되었으나, 실제로는 변화가 없었다.[10] 이는 에테르의 존재를 부정하는 결정적인 증거로 여겨졌다.[10]

마이켈슨-몰리 실험은 두 개의 직교 방향으로 거울에서 반사되는 빛의 시간을 비교했다.


실험의 주 설계자인 알버트 아브라함 마이켈슨은 빛의 속력을 정확하게 측정하기 위해 노력한 미국의 실험물리학자였다. 그는 에테르의 존재를 지지했지만, 실험 결과는 에테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반증이 되었다. 실험은 에테르를 빛의 속력이 c=300,000 km/s로 일정한 정지 좌표계로 보고, 지구라는 계가 속력 v로 움직이는 것으로 가정했다. 그러나 지구는 태양 주위를 공전하므로 정지 좌표계가 될 수 없다. 따라서 이 실험은 수직으로 교차하는 두 축에 의한 빛의 간섭 현상을 이용하는데, 한 축을 지구의 운동 방향과 평행하게, 다른 축을 지구의 운동 방향과 수직하게 놓았다. 간섭계 전체를 회전시키면 두 빛의 경로에 위상차가 발생하여 간섭무늬가 주기적으로 변화해야 하지만, 간섭무늬에는 어떠한 변화도 나타나지 않았다.[10]

1887년에 발표된 실험 결과, 즉 영(零) 결과는 에테르 가설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보여주는 최초의 명확한 증거였다. 마이켈슨의 1881년 최초 실험은 완전히 결정적이지 않았다. MM 실험은 약 0.01 간섭무늬의 이동을 산출했는데, 이는 작은 속도에 해당하며, 지구의 (계절에 따라 변하는) 속도로 인한 예상되는 에테르 바람 효과(0.4 간섭무늬의 이동)와는 맞지 않았다. 오차는 작아서 실제로 0일 수도 있었으므로, 에테르 바람이 없다는 귀무 가설은 기각될 수 없었다. 이후 더 현대적인 실험들은 가능한 값을 0에 매우 가까운 숫자(약 10−17)로 줄였다.

프레넬의 에테르 가설의 주요 난점은 갈릴레이 변환 하에서 뉴턴 역학의 방정식은 불변량이지만, 전자기학의 방정식은 그렇지 않다는 점이었다. 이는 비가속 실험에서 물리학은 동일하게 유지되어야 하지만, 빛은 보편적인 "에테르 좌표계"에서 이동하기 때문에 동일한 규칙을 따르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의미했다. 맥스웰은 1870년대 후반에 이 에테르에 대한 운동을 감지하는 것이 매우 쉬울 것이라고 언급했다. 지구의 운동과 함께 이동하는 빛은 정지한 에테르에 대해 움직이기 때문에 반대 방향으로 이동하는 빛과 속도가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에테르 바람" 실험들은 에테르에 점점 더 복잡한 특성을 부여함으로써 에테르를 "구제"하려는 노력을 촉발했지만, 소수의 과학자들만이 에테르 가설을 포기할 가능성을 고려했다. "에테르 휘말림" 또는 "에테르 끌림 가설" 가능성은 측정의 크기를 낮추어 실험 결과를 설명하기에 충분했지만, 광행차와 같은 자체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 올리버 로지(1893, 1897)와 루드비히 젠더(1895)의 간섭 실험, (1935), 마이켈슨-게일-피어슨 실험 등은 모두 에테르 끌림을 보여주지 못했다.[58][59][73][52][12]

로렌츠-피츠제럴드 수축 가설은 에테르를 통한 이동의 영향을 모든 것이 받는다고 가정하여, 장치의 길이가 이동 방향으로 수축되어 실험 결과를 설명하려 했다. 케네디와 쏜다이크는 1932년에 간섭계의 팔이 수축하고 광원의 주파수도 상대성 이론에 필요한 방식으로 "거의" 변한다고 결론지었다.[54][11]

19세기 후반에는 "에테르 바람"의 효과를 조사하는 실험이 많이 수행되었지만, 많은 실험에서는 실험 정밀도의 부족으로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을 수 없었다. 알버트 아브라함 마이켈슨과 에드워드 윌리엄 모리는 반투과 거울을 사용하여 직교하는 두 경로를 지나는 데 걸리는 시간 차이를 고정밀도로 측정하였다. 1887년에 그들은 에테르 바람에 의한 영향은 관측되지 않았다는 결과를 보고하였다. 이는 에테르 개념에 심각한 오류가 있음을 증명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유사한 실험은 많은 물리학자들에 의해 반복되었지만, 에테르 바람은 검출되지 않았다.

이러한 결과에 대해 에테르 개념 자체를 부정하는 의견과 에테르가 기존에 생각했던 것보다 복잡한 성질을 가지기 때문에 검출되지 않았다는 의견으로 나뉘었다. 특히 에테르 끌림 가설에 따르면 에테르가 지구에 끌림으로 인해 에테르 바람이 매우 약해진다고 생각되었으나, 광행차를 설명할 수 없다는 문제가 있었다. 에서는 빛에 거대한 납 블록 사이를 통과시킴으로써 에테르의 운동이 질량에 끌리는지 여부를 조사하였으나, 그러한 끌림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1920년대에는 에 의해 마이켈슨과 유사한 실험이 반복되었고, 에테르 바람의 존재를 시사하는 결과가 얻어졌다. 그러나 이것은 기존의 에테르 이론에서 예상되는 값보다 훨씬 작았고, 다른 연구자들에 의한 재현 실험에서는 밀러의 결과는 재현되지 않았다. 후년의 연구에서는 밀러가 온도 변화에 의한 실험 결과에 대한 영향을 과소평가했다고 생각되었다. 또한 더욱 고정밀 실험이 반복되었지만, 결국 특수 상대성 이론과 모순되는 결과는 얻어지지 않았다.[13]

3. 1. 마이컬슨-몰리 실험 (1887)

마이켈슨-몰리 실험은 가장 유명한 에테르 검출 실험 중 하나이다.[62][64] 이 실험은 지구의 운동 방향과 수직 방향으로 빛을 보내 간섭무늬를 관찰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에테르가 존재한다면 지구의 운동으로 인해 간섭무늬의 변화가 예상되었으나, 실제로는 변화가 없었다.[10] 이는 에테르의 존재를 부정하는 결정적인 증거로 여겨졌다.[10]

실험의 주 설계자인 알버트 아브라함 마이켈슨은 빛의 속력을 정확하게 측정하기 위해 노력한 미국의 실험물리학자였다. 그는 에테르의 존재를 지지했지만, 실험 결과는 에테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반증이 되었다. 실험은 에테르를 빛의 속력이 c=300,000 km/s로 일정한 정지 좌표계로 보고, 지구라는 계가 속력 v로 움직이는 것으로 가정했다. 그러나 지구는 태양 주위를 공전하므로 정지 좌표계가 될 수 없다. 따라서 이 실험은 수직으로 교차하는 두 축에 의한 빛의 간섭 현상을 이용하는데, 한 축을 지구의 운동 방향과 평행하게, 다른 축을 지구의 운동 방향과 수직하게 놓았다. 간섭계 전체를 회전시키면 두 빛의 경로에 위상차가 발생하여 간섭무늬가 주기적으로 변화해야 하지만, 간섭무늬에는 어떠한 변화도 나타나지 않았다.[10]

1887년에 발표된 실험 결과, 즉 영(零) 결과는 에테르 가설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보여주는 최초의 명확한 증거였다. 마이켈슨의 1881년 최초 실험은 완전히 결정적이지 않았다. MM 실험은 약 0.01 간섭무늬의 이동을 산출했는데, 이는 작은 속도에 해당하며, 지구의 (계절에 따라 변하는) 속도로 인한 예상되는 에테르 바람 효과(0.4 간섭무늬의 이동)와는 맞지 않았다. 오차는 작아서 실제로 0일 수도 있었으므로, 에테르 바람이 없다는 귀무 가설은 기각될 수 없었다. 이후 더 현대적인 실험들은 가능한 값을 0에 매우 가까운 숫자(약 10−17)로 줄였다.

프레넬의 에테르 가설의 주요 난점은 갈릴레이 변환 하에서 뉴턴 역학의 방정식은 불변량이지만, 전자기학의 방정식은 그렇지 않다는 점이었다. 이는 비가속 실험에서 물리학은 동일하게 유지되어야 하지만, 빛은 보편적인 "에테르 좌표계"에서 이동하기 때문에 동일한 규칙을 따르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의미했다. 맥스웰은 1870년대 후반에 이 에테르에 대한 운동을 감지하는 것이 매우 쉬울 것이라고 언급했다. 지구의 운동과 함께 이동하는 빛은 정지한 에테르에 대해 움직이기 때문에 반대 방향으로 이동하는 빛과 속도가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에테르 바람" 실험들은 에테르에 점점 더 복잡한 특성을 부여함으로써 에테르를 "구제"하려는 노력을 촉발했지만, 소수의 과학자들만이 에테르 가설을 포기할 가능성을 고려했다. "에테르 휘말림" 또는 "에테르 끌림" 가능성은 측정의 크기를 낮추어 실험 결과를 설명하기에 충분했지만, 광행차와 같은 자체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 로지(1893, 1897)와 루드비히 젠더(1895)의 간섭 실험, 하마르 실험(1935), 마이켈슨-게일-피어슨 실험 등은 모두 에테르 끌림을 보여주지 못했다.[58][59][73][52][12]

로렌츠-피츠제럴드 수축 가설은 에테르를 통한 이동의 영향을 모든 것이 받는다고 가정하여, 장치의 길이가 이동 방향으로 수축되어 실험 결과를 설명하려 했다. 케네디와 쏜다이크는 1932년에 간섭계의 팔이 수축하고 광원의 주파수도 상대성 이론에 필요한 방식으로 "거의" 변한다고 결론지었다.[54][11]

19세기 후반에는 "에테르 바람"의 효과를 조사하는 실험이 많이 수행되었지만, 많은 실험에서는 실험 정밀도의 부족으로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을 수 없었다. 알버트 아브라함 마이켈슨과 에드워드 윌리엄 모리는 반투과 거울을 사용하여 직교하는 두 경로를 지나는 데 걸리는 시간 차이를 고정밀도로 측정하였다. 1887년에 그들은 에테르 바람에 의한 영향은 관측되지 않았다는 결과를 보고하였다. 이는 에테르 개념에 심각한 오류가 있음을 증명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유사한 실험은 많은 물리학자들에 의해 반복되었지만, 에테르 바람은 검출되지 않았다.

이러한 결과에 대해 에테르 개념 자체를 부정하는 의견과 에테르가 기존에 생각했던 것보다 복잡한 성질을 가지기 때문에 검출되지 않았다는 의견으로 나뉘었다. 특히 에테르가 지구에 끌림으로 인해 에테르 바람이 매우 약해진다는 생각이 지지되었으나, 광행차를 설명할 수 없다는 문제가 있었다. 에서는 빛에 거대한 납 블록 사이를 통과시킴으로써 에테르의 운동이 질량에 끌리는지 여부를 조사하였으나, 그러한 끌림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1920년대에는 에 의해 마이켈슨과 유사한 실험이 반복되었고, 에테르 바람의 존재를 시사하는 결과가 얻어졌다. 그러나 이것은 기존의 에테르 이론에서 예상되는 값보다 훨씬 작았고, 다른 연구자들에 의한 재현 실험에서는 밀러의 결과는 재현되지 않았다. 후년의 연구에서는 밀러가 온도 변화에 의한 실험 결과에 대한 영향을 과소평가했다고 생각되었다. 또한 더욱 고정밀 실험이 반복되었지만, 결국 특수 상대성 이론과 모순되는 결과는 얻어지지 않았다.[13]

3. 2. 기타 실험

오귀스탱-장 프레넬이 제시한 (거의) 정지된 에테르 모델과 조지 가브리엘 스톡스의 완전한 에테르 끌림 모델은 지구와 에테르의 상대 운동을 설명하기 위한 주요 모델이었다.[27][43] 그러나 스톡스의 모델은 빛의 굴절과 양립할 수 없었고, 이를 설명하기 위한 보조 가설도 설득력이 없었다. 사냐크 효과(1913) 등의 실험은 이 모델이 틀렸음을 보여주었다.[49][63] 이폴리트 피조는 1851년 피조 실험을 통해 프레넬의 끌림 계수를 실험적으로 확인했다.[49][63] 이 실험은 굴절률 ''n''인 매질이 ''v''의 속도로 움직일 때, 매질을 통과하는 빛의 속도가 ''v''와 같은 방향으로 `c/n + (1 - 1/n^2) v` 만큼 증가함을 보였다. 이는 매질이 에테르를 매질 속도의 일부로 끌어당긴다는 것을 의미했지만, 빌헬름 펠트만이 프레넬 공식의 지수 ''n''이 빛의 파장에 의존한다는 것을 증명하면서 문제가 되었다.

프레넬의 에테르 가설은 뉴턴 역학과 맥스웰 전자기학의 병치에서 비롯된 난점을 가지고 있었다. 갈릴레이 변환 하에서 뉴턴 역학의 방정식은 불변량이지만, 전자기학의 방정식은 그렇지 않았다. 이는 빛이 보편적인 "에테르 좌표계"에서 이동하기 때문에 비가속 실험에서 물리학이 동일하게 유지되지 않을 수 있음을 의미했다.

19세기 후반, 알버트 아브라함 마이켈슨과 에드워드 윌리엄 모리는 반투과 거울을 사용해 직교하는 두 경로를 지나는 데 걸리는 시간 차이를 측정하는 마이켈슨-몰리 실험을 수행했다. 1887년 실험 결과 에테르 바람에 의한 영향은 관측되지 않았으며, 이는 에테르 개념에 대한 심각한 문제로 여겨졌다.

이러한 결과에 대해 에테르 개념 자체를 부정하거나, 에테르가 지구에 끌려 에테르 바람이 약해졌다는 의견이 제시되었다. 에서는 빛에 거대한 납 블록 사이를 통과시켜 에테르의 운동이 질량에 끌리는지 조사했으나, 그러한 끌림은 발견되지 않았다. 로런츠-피츠제럴드 수축 가설은 에테르 속에서 운동하는 모든 물체가 운동 방향으로 수축한다고 가정하여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케네디-쏜다이크 실험(1932)은 장치의 수축 및 빛의 진동수 변화가 예상과 일치함을 확인했다.[101]

1920년대 는 마이켈슨과 유사한 실험을 반복하여 에테르 바람의 존재를 시사하는 결과를 얻었으나, 다른 연구자들에 의한 재현 실험에서 재현되지 않았다. 밀러는 온도 변화의 영향을 과소평가한 것으로 여겨진다.

4. 에테르 이론의 종말

20세기 초, 에테르 이론은 위기에 처했다. 19세기 후반에 지구의 에테르를 통한 운동을 감지하려는 시도로 점점 더 복잡한 실험들이 수행되었지만, 모두 실패했다.[85][77][75][83] 제안된 다양한 에테르-끌림 이론들이 이러한 무효 결과를 설명할 수 있었지만, 이 이론들은 더 복잡했고, 임의적인 계수와 물리적 가정을 사용하는 경향이 있었다. 로렌츠와 피츠제럴드는 로렌츠 에테르 이론의 틀 안에서 절대 에테르의 운동이 감지 불가능한 방법(길이 수축)에 대한 더 우아한 해결책을 제시했지만, 그들의 방정식이 맞다면, 새로운 특수 상대성 이론(1905)은 에테르를 전혀 언급하지 않고도 동일한 수학을 생성할 수 있었다. 에테르는 오컴의 면도날에 의해 사라졌다.[85][77][75][83]

앞서 언급된 "에테르 바람" 실험 결과에서 에테르 바람이 검출되지 않은 것은 에테르 개념 자체를 부정하는 의견을 낳았다. 하지만 이것은 절대 시간·절대 공간을 전제했을 때에만 성립하는 부정이다. 그리고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특수 상대성 이론은 절대 시간·절대 공간을 부정하고, 에테르의 실재성을 필요로 하지 않는 간결하고 통일적인 이론 체계로 완성되었다. 이에 따라 물체가 "에테르 바람"을 받아 '''3차원 공간에서 실제로 수축한다'''는 로렌츠의 이론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되었다. 절대 좌표계 및 절대성 기준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이것이 "상대성" 이론이라고 불리는 이유이다.

아인슈타인은 더욱 근본적인 원리에서 "길이"나 "시간"과 같은 성질을 도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로렌츠 변환을 맥스웰 방정식에서 분리하여 시공간의 성질을 나타내는 기본적인 법칙이라고 가정했다. 또한 아인슈타인은 "에테르"를 물질을 나타내는 말로 하지 않고, 진공이라도 공간에는 중력장이나 전자기장이 존재하는 것으로부터, 이러한 공간을 "에테르"라고 부르는 것을 제창했다. 이 경우, 에테르에는 누구에게나 불변적인 위치나 시각의 개념이 존재하지 않으며, 따라서 "에테르에 대한 상대 운동"을 생각하는 것은 무의미하게 된다.[102]

아인슈타인이 상대성 원리를 가장 근본적인 원리로 생각한 것에 반해, 특수 상대성 이론의 기초를 세운 로렌츠는 상대성 원리의 근본이 에테르라고 생각하고, "길이 수축"이나 "시간 지연"에 나타나는 것처럼, 물체의 특성은 에테르 내의 운동에 의해 변화한다고 생각했다. 아인슈타인과의 차이는 길이와 시간에 대해 절대적인 기준을 설정하는 것을 가능하다고 생각하는가 아닌가이다. 이것은 물리철학의 문제이기 때문에 결론은 나지 않았다.

4. 1. 로렌츠 에테르 이론

헨드릭 로렌츠는 1892년부터 1904년까지 에테르가 완전히 정지해 있다는 가정을 바탕으로 전자-에테르 이론을 개발했다.[31] 이 이론에서 에테르의 전자기장은 전자들 사이의 매개체 역할을 하며, 이 장의 변화는 빛의 속도보다 빠르게 전파될 수 없다. 로렌츠는 마이켈슨-몰리 실험을 설명하기 위해 길이 수축(1892)[30] 개념을 도입하고,[30] 빛의 굴절과 피조 실험을 설명하기 위해 국소 시간(1895) 개념을 도입했다.[31] 이후 조셉 라모어(1897, 1900)[28][29]와 로렌츠(1899, 1904)[32][33]에 의해 로렌츠 변환이 공식화되었으며, 여기에는 국소 시간과 관련된 시간 지연이 포함된다.[28][29][32][33] 로렌츠는 에테르에 정지해 있는 시계가 나타내는 시간을 "진정한" 시간으로, 국소 시간은 수학적 도구로 간주했다.[34][35]

앙리 푸앵카레는 로렌츠의 연구를 수학적으로 발전시켜 상대성 원리를 여러 차례 공식화하고 전자기학과 조화시키려 했다.[39][40][41][42] 그는 빛의 속도의 일정성을 자연 법칙을 단순화하기 위한 가정으로 보았고,[39][40] 1900년과 1904년에 로렌츠의 국소 시간을 빛 신호에 의한 시계 동기화의 결과로 해석했다.[39][40] 1905년 푸앵카레는 상대성 원리를 중력을 포함한 자연의 일반 법칙으로 확장하고, 전자기 방정식의 로렌츠 공변성을 증명했다.[41][42] 그러나 그는 에테르 개념을 완전히 버리지 않았기 때문에, 많은 과학사가들은 그가 특수 상대성 이론을 발명하지 못했다고 평가한다.[81][82][75]

에테르 가설의 가장 큰 문제점은 뉴턴 역학과 맥스웰전자기학의 모순이었다. 뉴턴 역학은 갈릴레이 변환에 대해 불변인 반면, 맥스웰 방정식은 그렇지 않았다. 맥스웰 방정식에 따르면 빛의 속도는 유전율과 투자율에 의해 결정되는데, 이 값들은 관측자의 운동과 무관하므로 빛의 속도는 모든 관측자에게 동일해야 했다. 따라서, "에테르에 대한 절대 좌표계"가 존재하여 맥스웰 방정식이 이 좌표계에서만 성립한다고 여겨졌다. 지구의 절대 좌표계에 대한 운동, 즉 "에테르 바람"은 광속의 변화로 나타날 것이라고 예상되었다.

4. 2. 특수 상대성 이론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특수 상대성 이론은 갈릴레이 변환과 뉴턴 역학을 수정하여 에테르 이론에 큰 영향을 주었다. 아인슈타인은 빛의 속도가 일정하며, 빛의 파동성을 설명하기 위한 매질인 에테르가 필요 없음을 밝혔다.[22] 그는 로렌츠 변환이 맥스웰 방정식과의 연결을 초월하여 관성 기준계의 공간 및 시간 좌표 간의 기본적인 관계를 나타냄을 보였다. 즉, 공간이나 시간에서의 위치 개념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관찰자의 위치와 속도에 따라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15]

특수 상대성 이론의 발전으로 단일한 보편적인 기준계를 설명할 필요성이 사라졌고, 19세기의 광 에테르 이론에 대한 수용도 함께 사라졌다. 이는 물체가 "에테르 바람"을 받아 '''3차원 공간에서 실제로 수축한다'''는 로렌츠의 이론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아인슈타인은 "에테르"를 물질을 나타내는 말이 아닌, 진공이라도 공간에는 중력장이나 전자기장이 존재하는 것으로부터, 이러한 공간을 "에테르"라고 부르는 것을 제창했다. 이 경우, 에테르에는 불변적인 위치나 시각의 개념이 존재하지 않으며, "에테르에 대한 상대 운동"을 생각하는 것은 무의미하게 된다.[102]

특수 상대성 이론은 에테르 개념을 불필요하게 만들었고, 현대 물리학에서는 에테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본다.

5. 아인슈타인과 에테르

아인슈타인은 초기에는 에테르 개념에 큰 관심을 가졌다.[17] 그의 초기 연구는 지구가 에테르를 통과하는 속도를 측정하는 실험에 관한 것이었다.[18] 1916년, 일반 상대성 이론에 대한 연구를 완료한 후, 로렌츠는 아인슈타인에게 일반 상대성 이론 내에서 에테르가 재도입되었다고 추측하는 편지를 보냈다. 아인슈타인은 "새로운 에테르"에 대해 이야기할 수는 있지만, 그 에테르에 대한 운동에 대해서는 이야기할 수 없다고 답장했다.[23][24][25][26][78][84][79]

1918년, 아인슈타인은 새로운 에테르 정의를 공개적으로 언급했다.[23] 1920년대 초, 로렌츠 에테르를 상대성 이론과 조화시키려는 시도를 했다. 그는 특수 상대성 이론이 에테르의 정지 상태를 제거했지만, 에테르가 가속도와 회전에 물리적 현실을 부여하는 데 사용될 수 있기 때문에 에테르를 배제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이 개념은 일반 상대성 이론에서 완전히 설명되었는데, 여기서 물리적 특성은 공간에 귀속되지만, "에테르"에는 어떤 물질이나 운동 상태도 귀속될 수 없다.[79][24][19]

1924년 "에테르에 관하여" 논문에서 아인슈타인은 뉴턴의 절대 공간이 "역학의 에테르"이고, 맥스웰과 로렌츠의 전자기 이론 내 에테르는 절대적인 운동 상태를 가지는 "전자기학의 에테르"라고 주장했다. 특수 상대성 이론에서도 가속도는 절대적이지만, "에테르의 서로 다른 위치에서 동시 상태에 대해 절대적인 의미로 이야기하는 것이 더 이상 불가능"하여 에테르는 4차원적인 것이 되었다. "특수 상대성 이론의 에테르"는 여전히 "절대적"이지만, 일반 상대성 이론의 에테르는 물질의 영향을 받고 물질이 에테르의 구조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절대적이지 않다.[25]

이 상대론적 에테르와 고전적 에테르의 유일한 유사점은 공간의 물리적 특성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의 "새로운 에테르"는 1905년 에테르를 포기한 그의 견해와 모순되지 않으며, 어떤 "물질"이나 운동 상태도 귀속될 수 없다. 아인슈타인의 "에테르"라는 단어 사용은 과학계에서 거의 지지를 받지 못했다.[78][84][79]

"에테르 바람" 실험에서 에테르 바람이 검출되지 않은 것은 에테르 개념 자체를 부정하는 의견을 낳았지만,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특수 상대성 이론은 절대 시간·절대 공간을 부정하여 에테르의 실재성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아인슈타인은 진공이라도 공간에는 중력장이나 전자기장이 존재하므로 이러한 공간을 "에테르"라고 부르는 것을 제창했다. 이 경우, "에테르에 대한 상대 운동"을 생각하는 것은 무의미하다.[102]

6. 한국에서의 에테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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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논문 On the Relative Motion of the Earth and the Luminiferous Ether
[65] 논문 Is Rotatory Polarization Influenced by the Earth's Motion? https://zenodo.org/r[...]
[66] 논문 Does Motion through the Aether cause Double Refraction?
[67] 논문 Über die durch Bewegung eines im homogenen elektrischen Felde befindlichen Dielektricums hervorgerufene elektrodynamische Kraft https://archive.org/[...]
[68] 논문 L'éther lumineux démontré par l'effet du vent relatif d'éther dans un interféromètre en rotation uniforme
[69] 논문 Sur la preuve de la réalité de l'éther lumineux par l'expérience de l'interférographe tournant
[70] 논문 Der Fizeausche Versuch über die Änderung des Polarisationsazimuts eines gebrochenen Strahles durch die Bewegung der Erde http://gallica.bnf.f[...]
[71] 논문 The results of an electrical experiment, involving the relative motion of the Earth and the Ether, Suggested by the Late Professor FitzGerald https://archive.org/[...]
[72] 논문 The Mechanical Forces Acting on a Charged Electric Condenser Moving through Space http://gallica.bnf.f[...]
[73] 논문 Ueber die Durchlässigkeit fester Körper für den Lichtäther https://archive.org/[...]
[74] 서적 Physics in my generation https://archive.org/[...] Pergamon Press
[75] 서적 Electrodynamics from Ampère to Einstein https://archive.org/[...] Clarendon Press
[76] 논문 From classical to relativistic mechanics: Electromagnetic models of the electron http://www.tc.umn.ed[...] 2004-04-16
[77] 논문 The Optics and Electrodynamics of Moving Bodies http://www.mpiwg-ber[...]
[78] 논문 Studies in the history of general relativity Birkhäuser
[79] 논문 Albert Einstein's New Ether and his General Relativity http://www.mathem.pu[...]
[80] 논문 Über die experimentellen Grundlagen des Relativitätsprinzips
[81] 서적 Albert Einstein's special theory of relativity. Emergence (1905) and early interpretation (1905–1911) https://archive.org/[...] Addison–Wesley
[82] 서적 Subtle is the Lord: The Science and the Life of Albert Einstein Oxford University Press
[83] 서적 Nineteenth-century aether theories Pergamon Press
[84] 논문 Why Einstein reinvented the ether
[85] 서적 A History of the Theories of Aether and Electricity Longman, Green and Co.
[86] 논문 Über die Fragen, welche die translatorische Bewegung des Lichtäthers betreffen (Referat für die 70. Versammlung deutsche Naturforscher und Aerzte in Düsseldorf, 1898)
[87] 문서 에테르의 어원은 그리스어의 아이테르 ({{el|αιθήρ}})이며, 라틴어를 거쳐 영어가 되었다. 아이테르의 원의는 "태우다" 또는 "빛나다"이며, 고대 그리스 이래, 하늘을 채우는 물질을 가리키는 데 사용되었다. 영어에서는 "이써"처럼 읽힌다.
[88] 서적 증보판 데카르트 저작집 백수사
[89] 문서 [[#広重(1960)|広重(1960)]] p.24
[90] 문서 [[#広重(1960)|広重(1960)]] p.31
[91] 문서 1675년에 [[오레 로머]]가 목성의 위성의 식 관측으로부터 빛의 속도의 유한성을 결론지었던 곳이었다.
[92] 문서 뉴턴보다 앞서, 빛은 에테르 속을 전파하는 종파라는 가설을 주장했지만, 뉴턴은 이 생각을 부정했다. 만약 빛이 종파라면, 그 진행 방향 이외에 특별한 방향을 가질 수 없고, 편광과 같은 현상은 생각할 수 없다. 따라서, 편광의 방향에 따라 굴절의 정도가 달라지는 복굴절 등의 현상을 설명할 수 없다. 이 점에 대해, 뉴턴은 빛의 입자는 구형이 아니고, 그 "측면"의 방향의 차이에 따라 복굴절이 일어난다고 생각했다. 뉴턴이 빛은 파동이 아니라고 생각한 이유는 다른 것도 있었다. 만약 에테르가 공간에 충만하고 에테르 상호 작용에 의해 빛이 전달된다면, 에테르가 거대한 물체, 즉 행성이나 혜성의 운동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렵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그러한 영향은 관측되지 않으므로, 에테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93] 서적 Traité de la lumière
[94] 문서 [[#広重(1968)|広重(1968)]]
[95] 문서 [[#広重(1960)|広重(1960)]] p.43
[96] 문서 [[#広重(1960)|広重(1960)]] p.63
[97] 문서 그러나 이 설에도 문제가 남는다. 당시의 물리학에서는, 빛의 파동이 전파하기 위해서는, 수면의 파동이나 음파와 마찬가지로 어떤 매질이 필요하다고 생각되어, 가스상의 에테르가 공간에 충만하고 있다는 호이겐스의 생각이 지지되고 있었지만, 빛을 이러한 매질 속의 횡파로 생각하는 것은 어렵다. 횡파를 전달하려면, 에테르의 개개의 입자는 강하게 결합하여 끈과 같은 것이 되어야 하며, 유체상의 에테르에서는 종파만 전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강한 결합을 가진 끈 모양의 에테르가 보통 물질과 상호 작용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은 이상하고, 뉴턴이나 호이겐스가 종파에 집착한 것은 이 때문이다.
[98] 문서 광행차는, [[제임스 브래들리]]에 의해 [[연주 시차]]의 측정 시에 발견되었다(1728년). 브래들리는, 이것을 뉴턴의 이론에 따라 해석했다. 즉, 빛의 미립자가 날아오는 것처럼 보이는 방향은, 지구의 운동의 방향과 속도에 의존한다고 생각함으로써 측정 결과를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고, 또한, 지구의 운동의 속도와 광행차로부터 빛의 속도를 알 수 있었다. 이것은, 수직으로 낙하하는 빗방울이, 고속으로 이동하는 전차 안에서는 비스듬히 내리는 것처럼 보이는 현상과 같은 해석이다. 한편, 빛이 에테르의 진동이라고 생각하는 경우에는, 광행차를 설명하는 것은 어려웠다. 지구가 에테르 속을 운동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구 주위의 에테르는 뒤섞이지 않고 정지하고 있고, 즉 지구와 에테르는 거의 상호 작용하지 않는다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뉴턴은, 이 생각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99] 문서 오늘날의 [[특수 상대성 이론]]의 관점에서는, 맥스웰 방정식은 어떤 [[관성 좌표계]]에서도 성립한다고 여겨지고, 갈릴레이 변환을 포함하는 뉴턴 역학이 더 부정확하다고 생각되고 있다.
[100] 문서 맥스웰은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 다음과 같이 썼다. (Maxwell, James Clerk (1878), "Ether", Encyclopædia Britannica Ninth Edition 8: 568–572)
[101] 논문 Experimental Establishment of the Relativity of Time
[102] 서적 Einstein's Theory of Relativ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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