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폴로 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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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엑스폴로 74는 1974년 대한민국 서울 여의도에서 개최된 대규모 기독교 집회이다. 한국대학생선교회(C.C.C)가 주최하고 정부와 서울시의 지원을 받아 개최되었으며, 빌리 그레이엄 목사 등 주요 인사가 참여했다. 1973년 준비를 시작하여, 전국적인 기도회와 선교 활동을 거쳐 1974년 8월 13일부터 18일까지 5일간 진행되었다. 엑스폴로 74는 한국 개신교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집회 중 하나로, 한국 교회의 급성장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대회 이후 한국 기독교의 교세가 30% 성장했다는 보고가 있다.
1957년 김준곤 목사는 미국 풀러 신학교 유학 중 빌 브라이트 (윌리엄 브라이트) 목사를 만나 한국대학생선교회 창립의 뜻을 품고 귀국했다. 1958년 10월 광주지구 개척 준비모임을 시작으로 대구, 전주, 대전, 공주, 부산 등 여러 지역에 지구가 개척되기 시작했고, 같은 해 11월 정동 제일감리교회에서 한국대학생선교회 창립예배를 드림으로써 C.C.C가 시작되었다.
1973년 11월 29일, 엑스플로 74' 개최를 위한 시무예배가 서대문구 정동의 한국대학생선교회 회관에서 거행되어 빌리 그레이엄 목사와 한경직 목사, 백낙준 전 참의원 의장, 김옥길 이화여자대학교 총장 등이 참석하였다.
1974년 8월 13일 오후 8시, "등록자 헌신의 밤"을 시작으로 엑스폴로 74 대회가 공식적으로 개막했고, 같은 날 오후 11시부터 첫 철야기도회가 시작되었다. 경찰은 대회를 위해 광장에 임시 파출소, 임시 소방서, 미아 보호소를 설치하고 여의도 부근 한강에 경비정 10척을 대기시켰다. 이날 철야기도회에는 1만 명이 참여했으며 조희각 목사, 계용익 목사가 주도하였다.
EXPLO영어 '74 대회 주요 강사는 다음과 같다.
2. 이전
1970년 서울대학교 수원캠퍼스에서 '민족 복음화 운동요원 강습회'가 열렸고, 이를 시작으로 C.C.C는 민족 복음화 운동을 실시했다. 1971년 1월 1일 0시 제야의 종소리가 울리자 김준곤 목사는 기독교방송을 통해 "민족의 가슴마다 피묻은 그리스도를 심어 이 땅에 그리스도의 계절이 오게 하자"라는 민족 복음화 운동의 목표를 공식 선언했다.
1972년 김준곤 목사는 미국 댈러스에서 열린 EXPLO '72에 참석하여 '한국 땅에서도 EXPLO 대회를 열 수 있도록 하겠다'라는 결단을 하고 동역자인 윌리엄 브라이트 목사에게 이 결단을 전했다. 귀국 후 C.C.C에도 이 결단을 알렸지만 반대 의견이 나왔고, 일부에서는 EXPLO 개최가 불가능한 약 100가지의 이유를 들어 김준곤 목사에게 반박했다. 하지만 김준곤 목사는 약 100가지의 이유를 모두 공감하며 세상의 이유가 아닌 오직 하나님께서 행하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나아가고자 하는 뜻을 말했고, 결국 모두의 동의 끝에 1973년 EXPLO '74 준비과정에 들어가게 된다.
3. 준비 과정
1974년 1월 31일, 준비임원회의가 열렸다. 2월에는 서울 YWCA와 YMCA에서 "나라를 위한 대기도회"가 개최되었다. 3월에는 전국지구 위원장 회의 및 총무 간사 회의가 열려 선교 전략을 논의했다.
4월에는 이화여자대학교 대강당에서 헨델의 메시아 오라토리오 연주회가 열렸고, 제주 아세아방송(현 제주 기독교방송)을 통해 유명 목회자의 설교가 송출되었다. 5월에는 한국대학생선교회 주최로 고등학생을 위한 교양강좌가 개최되었다.
6월에는 전국 각지에서 여성도, 목포/신안 지역, 인천/성남 지역, 영남 지역, 전북 등에서 특별 기도회 및 대회 참여 결정이 이어졌다. 7월에는 부산, 광주, 동두천 등에서 부녀대회가 개최되었고, 소록도 성도들은 기도로 참여하기로 결정했다.
8월 1일, 전국 교인 16만 명이 등록을 완료했고, 빌 브라이트 목사가 방한했다. 대회 캐치프레이즈는 "민족의 가슴마다 그리스도를 심어 이 땅에 성령의 계절이 임하게 하자"로 결정되었다. 8월 7일, 명동 세종호텔에서 기자회견이 열렸고, 8월 8일에는 이규현 문화공보부 차관이 준비위원장을 예방했다. 8월 9일, 서울시는 임시 버스 노선을 마련했고, 8월 10일에는 충남 성도들이 자전거 행사를 개최했다. 8월 12일, 전국 부녀 단합 기도회가 시작되었다.
대회 기간 동안, 여의도에는 임시 파출소, 소방서, 미아 보호소, 임시 우체국, 공중전화 등이 설치되었고, 보이스카우트와 걸스카우트가 안내를 담당했다. 30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천막촌과 학교 교실이 개방되었고, 4,000여 개의 동시 통역기가 마련되었다. 매일 오전과 오후로 나누어 '전도요원 훈련'이 진행되었다. 취사 요원만 300여 명이었고, 삼륜차 50대로 식품 재료를 운반했다. 1,000여 개의 전등 아래 100만 명이 철야 기도에 참여했다. 30만 명의 전도 요원들이 먹을 쌀만 10,000 가마니 정도였고, 대형 스팀솥 20개가 준비되었다.
4. 진행 과정
1974년 8월 14일, 경향신문은 대회에 136만 명이 운집하였다고 보도하였고, 내무부 치안본부는 70만 명으로 추산하였다.
1974년 8월 15일, 광복절 기념예배가 한경직 목사와 일본 아키라 하토리 목사의 공동 집례로 진행되었고, 양택식 서울특별시장의 환영사가 있었다. 저녁에는 철야기도회가 열렸다. 이날 10,000명의 연합 성가대가 찬송을 불렀고, 오후 10시에는 정정섭 목사가 "민족의 가슴마다 그리스도를 심어 이 땅에 성령의 계절이 임하게 하자"라는 구호를 외쳤으며, 박용익 목사의 축도로 예배가 마무리되었다. 이어서 오후 11시부터 15만 명이 참석한 가운데 부흥사 신현균 목사와 최복규 목사의 공동 주도로 철야기도회가 이어졌다. 같은 날, 체신부는 '엑스플로 74' 기념 우표 250만 장을 발행하였다.
1974년 8월 16일에는 법조인, 의사, 교수 오찬회 및 연합기도회와 철야기도회가 진행되었다. 오후 12시 30분부터 1시간 동안 법조인, 의사, 교수 오찬회가 열렸고, 오후 2시부터 5시까지는 합숙 전도훈련이 있었다. 오후 8시부터 10시까지는 찬두레이 목사와 필립 뎅 목사의 공동 인도로 3일차 예배가 진행되었고, 오후 11시부터 오관석 목사와 강달희 목사의 주도로 철야기도회가 열렸다.
1974년 8월 18일, 연합 전도대회 폐회예배를 끝으로 5일 간의 대회가 막을 내렸다. 오전 6시 30분부터 오후 12시 30분까지 합숙 전도훈련을 하고, 오후 3시부터 5시까지 폐회예배를 가졌다.
5. 주요 강사
6. 조직
전국 184개 위원회와 총무, 간사 562명이 조직되었다.
7. 결과 및 영향
엑스플로 74는 한국 개신교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집회 중 하나로, 한국 교회의 급성장에 큰 영향을 미쳤다. 대회 이후 한국 기독교의 교세가 30% 성장했다는 보고가 있다. 1974년 8월 20일 경향신문은 "우리나라의 복음 인파는 655만 명"이라고 보도했으며, 같은 날 국제기독실업인회 주최로 83개국 대표가 모여 조선호텔에서 '국제친선조찬기도회'를 개최했다. 엑스플로 74는 개신교가 사회적 영향력을 확대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8. 여담
9. 이후
- 1974년 9월 7일 김준곤 목사는 엑스폴로 74 대회를 자세하고 체계적으로 보도해 준 동아일보와 김상만 사장에게 감사패를 전달했다.
- 1975년 5월 31일부터 6월 28일까지 김준곤 목사는 중국에서 열릴 엑스플로 77'의 준비 지원과 순회 강연을 위해 타이완으로 출국하였다.
- 1985년 12월 28일부터 1986년 1월 1일까지 엑스플로 85' 대회가 엑스플로 대회 사상 두 번째로 서울특별시에서 열렸다. 이 대회에는 위성 선교대회로서 173개국 93개 도시에서 약 200만 명이 참석하였고, 95개국에 동시 중계방송을 송출하였다.
- 김준곤 목사는 2009년 9월 29일 84세로, 윌리엄 브라이트 목사는 2003년 7월 19일 소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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