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제
1. 개요
여성제는 조선 시대의 문신으로, 첨정 여이량의 아들이었으나 여이징의 양자가 되었다. 1654년 문과에 급제하여 전라도 관찰사, 예조판서, 우의정 등을 역임했으며, 좌의정을 거쳐 영의정에 이르렀다. 숙종 때 박세채를 변호하다가 경원부에 유배되었으나 복귀하여 다시 정계에 진출했다. 여성제는 금천 강씨와 혼인했으나, 강씨의 고모인 민회빈 강씨 사건으로 인해 이혼했다가 복귀 후 다시 함께 생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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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5년 출생 -
쇼켄왕
쇼켄왕은 류큐국의 왕이며, 쇼호왕의 아들이다. -
1625년 출생 -
라스무스 바르톨린
라스무스 바르톨린은 17세기 덴마크의 과학자이며, 코펜하겐 대학교 교수, 학장, 총장을 역임하고, 덴마크어 문법서를 저술했으며, 방해석에서 빛의 복굴절 현상을 발견했다. -
1691년 사망 -
쉴레이만 2세
오스만 제국의 술탄 쉴레이만 2세는 메흐메트 4세의 동생으로, 카페스에서의 유폐 생활 후 즉위하여 대튀르크 전쟁 시기에 쾨프륄뤼 파즐 무스타파 파샤를 등용해 일부 성과를 거두었으나 전반적인 전황을 바꾸지는 못했다. -
1691년 사망 -
구마자와 반잔
에도 시대 유학자 구마자와 반잔은 양명학을 바탕으로 사회 현실과 민생 문제에 관심을 갖고 정치 개혁을 주장했으며, 저술 활동을 통해 사회 비판을 이어가 막말 존왕양이 운동에 영향을 미쳤다. -
함양 여씨 -
여운형
여운형은 일제강점기와 해방 직후 한국의 독립운동가이자 정치인으로, 독립운동 단체 활동, 임시정부 참여, 좌우합작을 통한 통일 노력으로 알려졌으나 해방 후 암살당했고 그의 삶과 죽음은 친일 논란과 암살 배후에 대한 논쟁을 낳고 있다. -
함양 여씨 -
여운홍
여운홍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과 임시정부 활동에 참여하고 해방 후 과도입법의원과 국회의원을 지냈으나, 친일 행적 의혹으로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정치인이다.
2. 생애
여성제는 본래 첨정(僉正) 여이량(呂爾亮)의 아들이었으나, 후사가 없었던 여이징의 양자가 되었다. 1650년 생원시에 합격하고, 1654년 참봉에 제수되었다. 같은 해 정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북평사, 지평, 집의, 동부승지를 거쳐 전라도관찰사가 되었다. 이어 내직으로 돌아와서 호조참의, 대사간, 좌부승지를 거쳤다. 1678년, 강릉부사가 되고 병조참판, 좌승지를 거쳐 예조판서에 특진되었다. 국상도감제조, 도승지를 거쳐 판의금부사, 우찬성, 좌찬성을 지냈다. 한성부판윤, 병조판서, 공조판서를 지내고 다시 이조판서를 거쳐 우의정이 되었다. 1688년, 박세채가 숙종에게 동평군 이항을 총애함이 지나치다고 간하였을 때 박세채를 변호하다가 노여움을 사서 경원부(慶源府)에 위리안치되었다. 좌의정을 거쳐 영의정에 이르렀다.
2.1. 초기 생애와 과거 급제
2.2. 관직 생활
1650년 생원시에 합격하고, 1654년 참봉에 제수되었다. 같은 해 정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북평사, 지평, 집의, 동부승지를 거쳐 전라도관찰사가 되었다. 이어 내직으로 돌아와서 호조참의, 대사간, 좌부승지를 거쳤다. 1678년 강릉부사가 되고 병조참판, 좌승지를 거쳐 예조판서에 특진되었다. 국상도감제조, 도승지를 거쳐 판의금부사, 우찬성, 좌찬성을 역임했다. 한성부판윤, 병조판서, 공조판서를 지내고 다시 이조판서를 거쳐 우의정이 되었다. 1688년, 박세채가 숙종에게 동평군 이항을 총애함이 지나치다고 간하였을 때 박세채를 변호하다가 노여움을 사서 경원부(慶源府)에 위리안치되었다. 좌의정을 거쳐 영의정에 이르렀다.
2.3. 유배와 복귀
여성제는 본래 첨정(僉正) 여이량(呂爾亮)의 아들이었으나 후사가 없었던 여이징의 양자가 되었다. 1650년 생원시에 합격하고, 1654년 참봉에 제수되었다. 같은 해 정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북평사, 지평, 집의, 동부승지를 거쳐 전라도관찰사가 되었다. 이후 내직으로 돌아와 호조참의, 대사간, 좌부승지를 거쳤다. 1678년, 강릉부사가 되고 병조참판, 좌승지를 거쳐 예조판서에 특진되었다. 국상도감제조, 도승지를 거쳐 판의금부사, 우찬성, 좌찬성을 거쳐 한성부판윤, 병조판서, 공조판서를 지냈다. 다시 이조판서를 거쳐 우의정이 되었다. 1688년, 박세채가 숙종에게 동평군 이항을 총애함이 지나치다고 간하였을 때 박세채를 변호하다가 노여움을 사서 경원부(慶源府)에 위리안치되었다. 이후 복귀하여 좌의정을 거쳐 영의정에 이르렀다.
3. 가계
여성제의 처 금천 강씨는 강문성의 딸로 강석기의 손녀였는데 고모인 민회빈 강씨의 옥사가 있었을 때 여성제는 화가 미칠 것을 염려해 강씨와 이혼하고 새 아내 윤씨를 들였다. 그러나 옛정을 잊지 못하고 강씨와의 사이에 자식을 두어 사람들이 구차하게 여기며 비난하였다. 강빈 옥사의 무고함이 풀리자 여성제는 강씨를 데려와 윤씨와 함께 살았고, 윤씨가 먼저 죽어 강씨가 그 제사를 지냈다. 이후 강씨는 다시 고첩을 돌려받아 정경부인에 봉해졌다.
* 증조부 : 여순원(呂順元)
* 증조모 : 이영의 딸
조부 : 여우길(呂祐吉)
조모 : ?
* 아버지 : 여이량(呂爾亮)
* 어머니 : 한효순의 딸
양조부 : 여유길(裕吉)
양조모 : 신준경의 딸
* 양아버지 : 여이징(呂爾徵)
* 양어머니 : 청주 한씨 - 한준겸의 딸
부인 : 금천 강씨
* 장남 : 여필승(呂必升)
* 장녀 : 오수량(吳遂良)의 처
외손자 : 오명항(吳命恒)
* 외증조부 : 한효윤(韓孝胤)
* 외증조모 : 신건의 딸
외조부 : 한준겸(韓浚謙)
외조모 : 황성의 딸
* 이모 : 인렬왕후
* 이숙 : 조선 인조
처조부 : 강석기
* 장인 : 강문성
* 장모 : 신씨 - 신흠의 딸
3.1. 혼인 관계와 민회빈 강씨 사건
여성제는 강문성의 딸이자 강석기의 손녀인 금천 강씨와 혼인하였다. 그러나 강씨의 고모인 민회빈 강씨가 옥사하자, 여성제는 화가 미칠 것을 염려하여 강씨와 이혼하고 새 아내 윤씨를 들였다.
이후 강빈 옥사의 무고함이 밝혀지자 여성제는 강씨를 다시 데려와 윤씨와 함께 살게 하였고, 윤씨가 먼저 사망하자 강씨가 윤씨의 제사를 지냈다. 강씨는 다시 고첩을 돌려받아 정경부인의 봉작을 받았다.
여성제의 처가(妻家) 식구는 다음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