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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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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엽서는 메시지를 적어 우편으로 보낼 수 있도록 제작된 종이 카드이다. 1840년의 손으로 그린 카드가 가장 오래된 엽서로 알려져 있으며, 1860년대에 상업적으로 제작되기 시작했다. 1870년부터 1874년까지 여러 국가에서 우편엽서를 도입했고, 1874년 만국우편연합 회의 이후 국제적으로 발송되었다. 1880년대에 그림 엽서가 증가하며 엽서의 황금기를 맞이했고, 1905년부터 1915년까지 미국에서 엽서 수요가 급증했다. 엽서는 다양한 종류로 분류되며, 수집가들은 엽서의 이미지, 국가, 발행자 등을 기준으로 수집한다. 엽서는 역사적, 사회적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활용되며, 온라인 컬렉션을 통해 접근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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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서
지도 정보
기본 정보
유형우편엽서
용도우편
언어여러 언어
역사
기원1860년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초기 형태우편엽서
최초 발매1869년, 오스트리아
세계 최초오스트리아의 ‘코레스폰덴츠 카드’
종류
용도별광고 엽서
그림 엽서
기념 엽서
관광 엽서
형태별단면 엽서
양면 엽서
접이식 엽서
구성 요소
앞면수신인 주소 및 우표 부착면
뒷면메시지 기재면
재질두꺼운 종이 또는 카드 용지
한국에서의 엽서
명칭엽서(葉書), 그림엽서
일본어 명칭はがき(葉書)
규격가로 148mm, 세로 100mm
사용 방법우편물 발송
간단한 메시지 전달
기념품
디지털 시대의 엽서
대체 수단이메일
메신저
현재여전히 일부 사용
디지털 엽서이메일 엽서
모바일 앱 엽서
기타
관련 용어우편
소인
우표
우편엽서
수집엽서 수집

2. 역사

엽서 앞면, 나가사키현청, 메이지 시대


엽서 뒷면


일본어에서 '엽서'를 뜻하는 '하가키(はがき)'는 '머리말(はしがき)', 즉 '끝(端)에 쓰다(書き)'라는 의미에서 유래한 말로, 초기에는 '단서(端書)' 또는 '날개 글(羽書)'이라고도 표기했다. 고문서학에서는 문서 용지의 오른쪽 끝 부분을 '끝(端)'이라 부르는데, 이 부분에 '머리말(端書)(はしがき)'이라 불리는 간단한 메모나 쪽지를 적는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본래 '단서(端書)'는 종이 조각 등에 적은 쪽지나 그 종이 자체를 의미했다. (종이 조각에 쓴 메모를 문서에 붙인 것은 쪽지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에도 시대에는 주로 금전 관련 독촉장이나 통지 문서를 '단서(端書)'라고 불렀다.

메이지 시대에 우편 제도가 도입된 이후, 주로 '우편 엽서'라는 의미로 사용되면서 '엽서(葉書)'라는 표기가 일반화된 것으로 보인다. 오늘날 '엽서'라고 하면 보통 '우편 엽서'를 가리키지만, '엽서(葉書)'는 일본 고유의 읽기 방식(훈독)이며, 왜 '끝(端)' 대신 '잎(葉)' 자를 사용하는지에 대해서는 타라요(多羅葉)라는 나무 이름에서 유래했다는 설 등 여러 가지 주장이 있으나 정확한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다.

일본에서 우편엽서는 우편엽서로 분류되며(우편법 제21조 제1항)[59], 일반 서신 등의 우편물보다 저렴한 요금이 적용된다.

에도 시대에는 전국적으로 여러 가도가 정비되고 역참을 통한 통신망이 발달하여, 서간을 이용한 공적·사적 정보 교환이 이루어졌다. 이 중에는 오늘날의 엽서처럼 격식을 차리지 않고 간단한 내용을 전달하는 용도로 사용된 간이 서간도 있었다. 이러한 서간은 역참 외에도 하인이나 가족을 통해 전달되기도 했다.[60] 이러한 통신 문화는 메이지 시대 이후 엽서가 널리 보급되는 배경이 되었다. 메이지 시대에 우편 제도가 시작되면서, 처음에는 우표, 봉투, 편지지를 사용하는 방식이었으나 곧 한 장의 종이가 이 세 가지 역할을 모두 하는 관제 엽서 제도가 도입되어 큰 호응을 얻었다. 1900년(메이지 33년)에는 민간에서 제작한 그림엽서(사제 엽서) 발행이 허가되면서 더욱 대중화되었다. 메이지 시대 후기에는 엽서가 크게 유행하여, 단순한 통신 수단을 넘어 계절 소식 등을 전하는 매체로도 발전했다.[61] 우정민영화 이후 관제 엽서는 사라졌지만, 우편 엽서의 형태로 계속 사용되고 있다.

2. 1. 세계 엽서의 역사

립먼의 우편엽서


우편 서비스 초기부터 개인이 메시지를 적은 카드를 만들어 우편으로 보내는 일이 산발적으로 있었다.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진 그림엽서는 작가 세오도어 후크가 손으로 그린 카드였다. 후크는 1840년 풀럼(런던의 일부)에서 자신에게 페니 블랙 우표를 붙여 이 엽서를 보냈다.[2][3] 이는 우체국 직원들을 풍자한 그림이었기에 우편 서비스를 조롱하려는 장난이었을 수 있다.[3][4] 2002년에 이 엽서는 31750GBP라는 기록적인 가격에 팔렸다.[3]

미국에서는 편지 요금으로 메시지를 적은 그림이나 무지 카드를 우편으로 보내는 관습이 1848년 12월 인쇄 광고가 포함된 카드가 소인된 것에서 시작되었다.[5] 최초의 상업적으로 생산된 카드는 1861년 필라델피아의 존 P. 찰턴이 사설 우편 카드를 특허받고 그 권리를 하이먼 립먼에게 팔면서 만들어졌다. 립먼의 엽서는 장식된 테두리가 있는 "립먼의 우편 카드"로 판매되었으며,[6][1] 그림은 없었다. 미국 정부는 1861년 2월부터 사적으로 인쇄된 카드를 허용했지만, 1870년 상업적 실현 가능성에 대한 실험이 이루어질 때까지 거의 사용되지 않았다.[7][1]

"펠드포스트-코레스폰덴츠카르테"(필드포스트 서신 카드)는 1870년 프랑스-프로이센 전쟁 당시 사용되었다.


프로이센의 우정 관리인 하인리히 폰 슈테판은 1865년에 딱딱한 종이로 만든 "개방형 우편 용지"를 처음 제안했다.[7][6][8] 그는 한쪽은 수신인 주소를 위해, 다른 한쪽은 간단한 메시지를 위해 남겨둘 것을 제안했으나,[8] 그의 제안은 너무 과격하다는 이유로 거부되었고, 관리들은 누구든 기꺼이 사생활을 포기할 것이라고 믿지 않았다.[8] 1869년 10월, 오스트리아-헝가리 우체국은 그림이 없는 유사한 제안을 받아들였고, 처음 3개월 안에 300만 장의 카드가 발송되었다.[6][8] 1870년 7월 프랑스-프로이센 전쟁이 발발하자 북독일 연방 정부는 오스트리아의 에마누엘 헤르만의 조언을 받아들여 군인들이 현장에서 저렴하게 집으로 편지를 보낼 수 있도록 우편엽서를 발행하기로 결정했다.[7][6]

1870년부터 1874년까지 많은 국가들이 우편엽서 발행을 시작했다. 이러한 초기 우편엽서들 중 상당수는 우표가 있는 면과 같은 면에 작은 그림이 포함되어 있었다.[7]



1874년 10월 스위스 베른에서 열린 만국우편연합 제1차 회의 이후 우편엽서가 국제적으로 발송되기 시작했다.[9][10] 베른 조약은 1875년 미국에서 비준되었다.[10]

최초로 인쇄된 그림 엽서로 여겨지는 엽서


한쪽에 그림이 있는 최초로 알려진 인쇄 그림 엽서는 1870년 프랑스 콩리에서 레옹 베스나르도(Léon Besnardeau, 1829~1914)에 의해 만들어졌다. 콩리는 프랑스-프로이센 전쟁 당시 군인들을 위한 훈련소였다. 이 카드에는 브르타뉴 공국의 문장 위에 있는 두루마리 양쪽에 무기 더미의 상징적인 그림이 담긴 석판 인쇄 디자인이 있었고, "Guerre de 1870. Camp de Conlie. Souvenir de la Défense Nationale. Armée de Bretagne|1870년 전쟁. 콩리 수용소. 국방의 기념. 브르타뉴 군대프랑스어"라는 비문이 새겨져 있었다.[11] 이것들이 최초로 알려진 그림 엽서인 것은 분명하지만, 우표를 위한 공간이 없었고 봉투 없이 발송되었다는 증거도 없다.[12]

독일에서는 올덴부르크의 서적 판매상 아우구스트 슈바르츠(August Schwartz)가 그림엽서의 발명가로 여겨진다. 1870년 7월 16일 그는 대포를 든 남자의 그림이 있는 우편엽서를 보냈는데, 이는 임박한 프랑스-프로이센 전쟁을 알리는 신호였다.[13][14]

그 다음 해에 그림이 기념품으로 기능하는 최초의 그림 엽서가 비엔나에서 보내졌다.[15] 최초의 광고 엽서는 1872년 영국에 나타났고 최초의 독일 엽서는 1874년에 나타났다. 개인 광고 엽서는 1873년경 미국에 나타나기 시작했고, 1센트의 특별 우편 요금이 적용되었다.[7] 립먼의 엽서에 영감을 준 개인 엽서들도 1873년 미국 정부 우편엽서와 동시에 제작되었다.[7][6] 이러한 개인 엽서의 뒷면에는 "서신 카드", "우편 카드" 또는 "기념 카드"라는 단어가 적혀 있었고, 적었다면 2센트의 우표가 필요했다.[7][1]

1880년대에 이미지가 담긴 엽서의 수가 증가했다. 1889년과 1890년에 새로 건설된 에펠탑의 이미지는 엽서에 대한 관심을 높여, 소위 "엽서의 황금기"를 불러일으켰다.[7] 이 황금기는 1890년대의 경기 침체로 인해 미국보다 유럽에서 약간 더 빨리 시작되었다.[7] 그럼에도 불구하고, 1893년 시카고 만국박람회는 많은 참석자들에게 "공식 기념품" 엽서를 통해 엽서의 인기를 더욱 높였다.[6][16] 이제 사적인 엽서 산업이 급성장할 무대가 마련되었고, 1898년 5월 미국 정부가 사적 엽서의 우편 요금을 2센트에서 1센트로 변경하면서 그 성장은 폭발적으로 이루어졌다.[6][16]

미국에서 약 1905년부터 1915년까지 이어진 엽서의 황금기는 사회적, 경제적, 정부적 요인들의 결합으로 인해 나타났다.[6][16] 엽서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정부의 생산 제한이 완화되었으며, 사진, 인쇄 및 대량 생산 분야의 기술 발전으로 이러한 붐이 가능해졌다.[6] 또한, 농촌 무료 배달의 확장으로 그 어느 때보다 많은 미국 가정에 우편물이 배달될 수 있었다.[6] 황금기 동안 수십억 장의 엽서가 우편으로 발송되었는데, 미국에서는 1905년부터 1915년까지 매년 거의 10억 장에 달했고, 1905년 전 세계적으로는 70억 장에 달했다.[45][17] 이 시대의 많은 엽서는 실제로 발송되지 않고 수집가들에 의해 직접 구입되었다.[44]

1901년 오스트리아 엽서


엄청난 성공을 거둔 지 수년이 지났지만, 경제적 및 정부적 요인은 결국 황금기의 종말을 가져왔다. 미국의 경우 정점은 1907년과 1910년 사이에 있었다.[6][1] 1909년, 미국 출판사들은 페인-알드리치 관세법을 통해 고품질 독일 수입품에 대한 관세를 부과하기 위해 성공적으로 로비를 벌였다.[6] 관세의 영향은 실제로 큰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고, 유럽에서의 적대 행위가 고조됨에 따라 미국으로의 엽서와 잉크 수입이 어려워졌다.[6] 유행이 자연스러운 과정을 거친 것일 수도 있다.[6] 제1차 세계 대전은 유럽의 생산 노력을 방해했지만, 엽서 생산이 완전히 중단되지는 않았다.[18] 엽서는 여전히 선전과 군대 사기 진작에 유용했다.[45][18][19]

온타리오주 암허스트버그의 달후지 거리를 묘사한 엽서, 1920년경. 온타리오 아카이브 소장 앨빈 D. 맥커디 기금 제공


전쟁 후에도 엽서 생산은 계속되었지만, 이전과는 다른 스타일로 제작되었다. 전화 사용이 증가하면서 엽서 수요는 감소했다.[6] 그러나 여전히 엽서에 대한 수요는 존재했고, "가난한 자의 전화"라고 불리기도 했다.[20] 취향이 변화함에 따라 출판사들은 풍경, 유머, 패션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다.[18] 전쟁 전에도 존재했던 "흰색 테두리" 엽서는 미국에서 1915년부터 1930년까지 대량으로 생산되었다.[6][1] 이 엽서는 고급 독일 엽서보다 잉크가 적게 필요했고 생산 기준이 낮았다.[18] 이후 1930년대와 1940년대에는 커트 타이히가 대중화시킨 인쇄 방식을 사용한 "린넨" 엽서로 대체되었다.[6][1] 마지막으로, 포토크롬(흔히 "크롬"으로 줄여서 부름) 엽서의 현대 시대는 1939년에 시작되었고, 1950년경에 탄력을 받았다.[1] 이러한 광택이 있고 다채로운 엽서는 오늘날 우리가 가장 흔히 접하는 것이다.[1] 2007년경 소셜 미디어의 인기가 높아짐에 따라 엽서 판매량은 1990년대 수준의 약 25%로 감소했고,[21] 2017년에는 J Salmon Ltd와 같은 오랫동안 자리를 잡은 인쇄업체들이 문을 닫았다.[22]

=== 영국 엽서 ===

영국에서는 1870년에 이미지가 없는 엽서가 우체국에서 발행되었는데, 디자인의 일부로 우표가 인쇄되어 판매 가격에 포함되었다. 이 엽서는 두 가지 크기로 나왔으나, 더 큰 크기는 다루기가 약간 불편하다는 것이 밝혀져 곧 13mm 더 짧은 엽서로 대체되었다.[27] 1870년 영국 내에서 이 엽서 7,500만 장이 발송되었다.[8]

1973년 영국 우체국은 수집가들에게 인기 있는 새로운 유형의 엽서인 PHQ 카드를 도입했는데, 특히 적절한 우표가 붙어 있고 발행 첫날 소인이 찍혀 있을 때 더욱 그러했다.

1894년, 영국 출판사들은 영국 왕립우편청으로부터 엽서를 제작 및 배포할 수 있는 허가를 받았고, 이는 우편으로 발송될 수 있었다. 원래 에든버러의 인쇄 회사인 스튜어츠(Stewarts)가 영국 최초의 엽서를 제작했다고 여겨졌으나, 1991년 《Picture Postcard Monthly》에 실린 후속 연구 결과에 따르면, 영국 최초의 사진엽서는 스카버러(Scarborough)의 E.T.W. 데니스(E.T.W. Dennis)가 출판한 것으로 밝혀졌다.[28] 1894년 9월에 발행된 E.T.W. 데니스 엽서의 소인이 찍힌 두 개의 예시가 남아 있지만, 1894년에 발행된 스튜어츠 엽서는 발견되지 않았다.[29] 초기 엽서는 랜드마크, 풍경 사진, 유명인사 사진이나 그림 등이었다. 증기 기관차가 빠르고 저렴한 여행을 제공함에 따라, 해변은 인기 있는 관광지가 되었고, 이는 그 자체로 기념품 산업을 창출했다.

해변 엽서


1930년대 초, 만화 스타일의 선정적인 엽서가 널리 유행했고, 인기 절정기에는 선정적인 엽서 판매량이 연간 1,600만 장에 달했다. 이들은 종종 음탕한 성격을 띠었고, 넌센스와 말장난을 사용했으며, 전통적으로 목사, 통통한 여성, 억눌린 남편과 같은 고정관념적인 인물들을 등장시켰는데, 이는 《캐리 온 시리즈》 영화와 같은 맥락이다. 해변 엽서, 특히 선정적인 엽서의 주목할 만한 화가는 삽화가 토마스 헨리였는데, 그는 리치멀 크롬프턴의 《윌리엄 소년 시리즈》에서 윌리엄 브라운을 묘사한 것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그는 1913년 초부터 엽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여 1950년대까지 계속했다.

1950년대 초, 새로 선출된 영국 보수당 정부는 영국의 도덕적 타락에 우려를 표명하고 이러한 엽서에 대한 단속을 결정했다. 그들의 캠페인의 주요 표적은 엽서 화가 도널드 맥길이었다. 1960년대의 더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선정적인 엽서는 부활했고, 나중에는 어떤 사람들에 의해 예술 형태로 여겨지게 되었다.[30] 현재 오리지널 엽서는 수집가들 사이에서 매우 인기가 있으며, 희귀한 엽서는 경매에서 높은 가격에 거래될 수 있다. 가장 잘 알려진 선정적인 해변 엽서는 웨스트 요크셔주 홀름퍼스에 있는 출판사 밤포스가 제작했다.

노골적으로 "선정적인" 엽서의 인기가 감소했음에도 불구하고, 엽서는 여전히 영국 해변 관광의 중요한 경제적, 문화적 측면이다. 신문판매점과 노점상, 그리고 전문 기념품 가게에서 판매되는 현대 해변 엽서는 종종 이례적으로 좋은 날씨 속에서 휴양지의 모습을 여러 개 묘사하고 있다. 존 힌드는 채도 높은 색상을 사용하고 사진을 세심하게 계획했는데, 이는 20세기 후반 그의 엽서가 수집되고 키치로서 인정받게 된 이유이다. 이러한 엽서는 또한 중요한 사회사 자료로 존중받고 있으며, 마틴 파의 작품에도 영향을 미쳤다.

=== 미국 우편엽서 ===

미국 우정청은 우편엽서를 직사각형이며, 높이 약 8.89cm × 길이 약 12.70cm × 두께 약 0.02cm 이상, 그리고 높이 약 10.79cm × 길이 약 15.24cm × 두께 약 0.04cm 이하로 정의한다.[31] 그러나 일부 우편엽서는 이러한 규격에서 벗어나기도 한다(예: 특수 모양 우편엽서).

=== 사료로서의 가치 ===

1969년 파리 엽서. 1950년대 에펠탑 의자 사진


엽서는 자연 경관뿐만 아니라 건물, 정원, 공원, 묘지, 관광지 등 건축 환경도 기록하고 있다. 당시 신문에 사진이 거의 실리지 않았던 시대에 사회의 모습을 보여주는 스냅샷을 제공했다.[16] 엽서는 일반 대중이 친구 및 가족과 연락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제공했으며, 글을 많이 쓸 필요가 없었다.[16] 주요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엽서 사진작가가 그 현장을 기록했다(축하 행사, 재난, 정치 운동, 전쟁 등 포함).[16] 인기 유머, 오락, 유행 및 일상생활의 여러 측면을 기념하며, 교통, 스포츠, 직업, 종교 및 광고에 대한 정보도 제공한다.[16] 엽서는 사망 및 출생 소식, 상점 구매 및 고용 정보를 전달하는 데 사용되었다.[16]

1차 사료로서 엽서는 역사가, 문화재 보존 전문가, 계보학자 등이 수행하는 다양한 유형의 역사 연구에 매우 중요하다. 엽서는 당시의 물리적 세계와 사회적 세계에 대한 통찰력을 제공한다. 전성기 동안 엽서는 오늘날의 소셜 미디어와 유사하게 의사소통에 혁명을 일으켰다.[8] 의사소통을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엽서는 매체의 채택, 적응 및 최종 폐기 과정을 보여준다.[8] 엽서는 극장, 인종적 태도 및 전쟁 등 다양한 주제를 연구하는 데 사용되었다.[38][17][39][40][41]

2. 2. 한국 엽서의 역사

(내용 없음)

2. 3. 국가별 엽서



엽서는 각 나라의 우편 제도와 문화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발전해왔다.

=== 오스트리아-헝가리 ===

1869년 10월, 오스트리아-헝가리 우체국은 그림이 없는 엽서 제도를 세계 최초로 도입했다. 이는 프로이센의 하인리히 폰 슈테판이 1865년에 제안했으나 사생활 침해 우려로 거부되었던 아이디어와 유사했다.[6][8] 오스트리아-헝가리에서 엽서는 큰 성공을 거두어 처음 3개월 동안 300만 장이 발송되었다.[6][8] 이후 오스트리아의 에마누엘 헤르만의 조언은 1870년 프랑스-프로이센 전쟁 발발 시 북독일 연방이 군인들을 위한 엽서를 발행하는 데 영향을 주었다.[7][6] 최초의 기념품 용도 그림 엽서는 비엔나에서 보내졌다.[15]

=== 독일 ===

프로이센의 우정 관리인 하인리히 폰 슈테판은 1865년에 한쪽에는 주소, 다른 한쪽에는 메시지를 적는 "개방형 우편 용지"를 제안했으나, 사생활 노출을 꺼릴 것이라는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7][6][8] 그러나 1870년 프랑스-프로이센 전쟁이 발발하자 북독일 연방 정부는 오스트리아-헝가리의 성공 사례와 에마누엘 헤르만의 조언에 따라 군인들이 저렴하게 편지를 보낼 수 있도록 엽서를 발행했다.[7][6] 독일 최초의 그림 엽서는 1870년 7월 16일, 올덴부르크의 서적 판매상 아우구스트 슈바르츠가 프랑스-프로이센 전쟁을 암시하는 대포 든 남자 그림이 담긴 엽서를 보내면서 등장한 것으로 여겨진다.[13][14] 최초의 독일 광고 엽서는 1874년에 나타났다.[7]

독일에서는 엽서로 분류되는 우편물의 크기가 23.5cm × 12.5cm 이하이며, 종이의 평량은 150g/m2 - 500g/m2이다.[59] 요금 설정에는 정부 규제 기관의 승인이 필요하다.[59]

=== 프랑스 ===

한쪽에 그림이 인쇄된 최초의 그림 엽서는 1870년 프랑스-프로이센 전쟁 당시 프랑스 콩리의 군사 훈련소에서 레옹 베스나르도(Léon Besnardeau프랑스어, 1829~1914)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엽서에는 브르타뉴 공국 문장과 무기 더미 그림이 석판 인쇄되었으나, 우표를 붙일 공간이 없었고 봉투 없이 발송되었다는 증거는 없다.[11][12] 프랑스는 1872년에 공식적으로 엽서 제도를 도입했다.[9][7] 프랑스에서는 엽서를 일반 서한과 동일하게 취급하며 별도로 분류하지 않는다.[59]

=== 영국 ===

1870년, 영국 우체국은 그림이 없는 엽서를 발행하기 시작했다. 이 엽서에는 우표가 미리 인쇄되어 있었고, 두 가지 크기로 나왔으나 큰 크기는 13mm(약 1.27cm) 짧아진 크기로 곧 대체되었다.[27] 1870년 한 해 동안 영국 내에서 7,500만 장의 엽서가 발송되었다.[8] 최초의 광고 엽서는 1872년 영국에서 등장했다.[7]

1894년부터는 민간 출판사들도 왕립우편청의 허가를 받아 엽서를 제작하고 유통할 수 있게 되었다. 원래 에든버러의 인쇄 회사인 스튜어츠(Stewarts)가 영국 최초의 엽서를 제작했다고 여겨졌으나, 후속 연구 결과 스카버러(Scarborough)의 E.T.W. 데니스(E.T.W. Dennis)가 1894년 9월에 발행한 것이 최초의 사진 엽서로 확인된다.[28][29] 초기 엽서는 주로 명소, 풍경, 유명인 사진 등을 담았다. 증기 기관차 발달로 해변 휴양지가 인기를 끌면서 기념품 엽서 산업도 함께 성장했다.

1930년대에는 만화 스타일의 선정적인 엽서(saucy postcard영어)가 유행하여 연간 1,600만 장까지 판매되었다. 이 엽서들은 종종 성적인 농담이나 말장난을 담고 있었으며, 토마스 헨리와 같은 화가들이 활동했다. 1950년대 초 보수당 정부는 도덕성 회복을 명분으로 이러한 엽서를 단속했으며, 특히 화가 도널드 맥길이 주요 표적이 되었다. 그러나 1960년대 이후 사회 분위기가 자유로워지면서 선정적인 엽서는 다시 등장했고, 예술 형태로 재평가되기도 했다.[30] 웨스트 요크셔주 홀름퍼스의 밤포스 출판사가 제작한 엽서가 유명하다. 현재 오리지널 엽서는 수집가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

현대의 영국 해변 엽서는 존 힌드의 작품처럼 채도가 높은 색상과 세심하게 연출된 사진을 특징으로 하며, 키치 문화의 일부이자 사회사 연구 자료로도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1973년 영국 우체국은 수집가들을 위한 PHQ 카드를 도입했다. 이 카드는 관련 우표를 붙이고 발행 첫날 소인을 찍으면 특히 인기가 높다. 영국에서는 엽서를 일반 서한과 동일하게 취급하며 별도로 분류하지 않는다.[59]

=== 미국 ===

미국에서는 1861년 필라델피아의 존 P. 찰턴이 사설 우편 카드 특허를 내고 이를 하이먼 립먼에게 판매하면서 상업적 엽서가 시작되었다. 립먼의 엽서는 테두리 장식이 있었으나 그림은 없었다.[6][1] 미국 정부는 1861년부터 사제 카드를 허용했지만, 1873년 정부 발행 우편엽서가 등장하고 1센트의 특별 우편 요금이 적용되면서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7][1][6] 이 시기 개인 제작 엽서 뒷면에는 "서신 카드", "우편 카드", "기념 카드" 등의 문구가 있었고 2센트 우표가 필요했다.[7][1]

1893년 시카고 세계 박람회에서 판매된 "공식 기념품" 엽서는 대중적인 인기를 얻는 계기가 되었다.[6][16] 1898년, 미국 정부가 사제 엽서의 우편 요금을 1센트로 인하하면서 엽서 산업은 폭발적으로 성장했다.[6][16]

미국의 엽서 "황금기"는 대략 1905년부터 1915년까지 이어졌다. 이는 엽서 수요 증가, 정부 규제 완화, 인쇄 기술 발달, 농촌 무료 배달(Rural Free Delivery) 확대 등 여러 요인이 결합된 결과였다.[6][16] 이 시기 미국에서는 매년 거의 10억 장, 전 세계적으로는 1905년에 70억 장의 엽서가 발송되었다.[45][17]

황금기는 1909년 페인-알드리치 관세법(Payne–Aldrich Tariff Act)으로 인한 독일산 고급 엽서 수입 제한, 제1차 세계 대전 발발로 인한 유럽 생산 차질, 전화 보급 확산 등으로 인해 점차 막을 내렸다.[6][18][20] 전쟁 중에도 엽서는 선전 및 사기 진작 목적으로 계속 사용되었다.[45][18][19]

전쟁 후에는 "흰색 테두리" 엽서(1915~1930), "린넨" 엽서(1930~1940년대), 그리고 현재 흔히 볼 수 있는 광택 있는 컬러 사진의 "포토크롬" 엽서(1939년 시작, 1950년대 이후 대중화)가 차례로 등장했다.[6][1] 소셜 미디어의 발달로 엽서 판매량은 크게 감소했다.[21]

미국 우정청(USPS)은 엽서를 높이 약 8.89cm × 길이 약 12.70cm × 두께 약 0.02cm 이상, 높이 약 10.79cm × 길이 약 15.24cm × 두께 약 0.04cm 이하의 직사각형 우편물로 정의한다.[31][59] 미국에서는 정부 발행 엽서를 'postal card', 민간 발행 엽서를 'postcard'라고 구분하기도 한다.

=== 인도 ===

1879년 7월, 인도 우정청은 영국령 인도 내에서 사용할 수 있는 1/4 인도 안나 가격의 엽서를 도입했다. 이는 당시 인도에서 가장 저렴한 우편 서비스였으며 큰 성공을 거두었다.[23] 1880년에는 정부용 엽서, 1890년에는 답장 엽서가 도입되었다.[23] 엽서 서비스는 인도 독립 이후에도 계속되고 있다.

=== 일본 ===

다케히사 유메지(Takehisa Yumeji)의 엽서, 1912년


일본에서는 우표 도입 직후인 1873년 12월에 공식 엽서가 도입되었다.[24][25] 1885년에는 왕복엽서, 1900년에는 봉함 엽서가 도입되었고, 1900년부터는 사제 엽서도 허용되었다.[24]

일본의 공식 엽서는 한 면은 주소 전용, 다른 면은 내용 작성용으로 구분된다. 일본에는 독특한 엽서 문화가 있는데, 대표적으로 설날 엽서(年賀状, 넨가조일본어)와 '''왕복엽서'''(往復はがき, 오후쿠하가키일본어)가 있다. 설날 엽서는 서양의 크리스마스 카드처럼 연말연시에 주고받는 인사 카드이다. 왕복엽서는 발신인이 수신인의 답장 우편 요금을 미리 부담하는 방식으로, 두 배 크기의 용지를 반으로 접어 사용한다. 발신 시에는 往신용 면에 수신인 주소를, 답신용 면에는 발신인(자신)의 주소를 미리 적어 보낸다. 수신인은 절반을 떼어내 답신용 엽서로 회신할 수 있다. 왕복엽서는 회합 통지나 특정 장소 예약(예: 사이호지) 등에 사용된다.[58] 해외 거주자의 경우 국제 답신권을 사용한다.

=== 러시아 ===

러시아 연방 국가 표준(GOST 51507-99)은 엽서를 공개 게시를 위한 표준 직사각형 종이 형태로 정의한다.[26] 이 표준에 따라 엽서는 다음과 같이 분류된다.

  • 우표 유무: 우표가 인쇄된 엽서 / 우표가 없는 엽서
  • 그림 유무: 그림 엽서 / 그림 없는 단순 엽서
  • 그림 위치: 앞면에 그림 / 뒷면에 그림
  • 배송 지역: 러시아 연방 내 배송용 / 러시아 연방 외부 배송용(국제 우편)


=== 기타 국가 및 국제 규정 ===

1870년부터 1874년 사이에 많은 국가들이 엽서 발행을 시작했다.



1874년 스위스 베른에서 열린 만국우편연합(UPU) 제1차 회의 이후 엽서의 국제 발송이 가능해졌다.[9][10]

일부 국가(일본, 미국, 독일 등)는 엽서에 대한 규격과 양식을 정하고 우편물의 한 종류로 분류하지만, 다른 국가(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에서는 일반 서한과 동일하게 취급한다.[59]

=== 관제엽서와 사제엽서 ===

우편 사업 주체(국가 또는 공사)가 발행하는 엽서를 관제엽서, 민간 업체가 발행하는 엽서를 사제엽서라고 부른다. 관제엽서는 일반적으로 우체국이나 편의점 등에서 판매하며, 우표와 동일한 효력을 가지는 요금액면이 인쇄되어 있어 바로 발송할 수 있다. 오래된 관제엽서는 차액만큼의 우표를 추가로 붙여 사용할 수 있다. 사제엽서에는 요금액면이 인쇄되어 있지 않으므로, 해당 요금의 우표를 구매하여 붙여야 한다.

미국 영어에서는 관제엽서를 'postal card', 사제엽서를 'postcard'로 구분하지만, 영국 영어에서는 모두 'postcard'라고 부른다.

3. 엽서의 종류

엽서의 종류는 다양하며, 아래 목록의 용어 대부분은 현대 수집가들이 소장 카드를 설명하기 위해 고안한 것으로, 당시 출판사나 업계 종사자들이 사용했던 용어는 아니다.


  • 3D 엽서: 렌티큘러 인쇄나 홀로그램 같은 기술로 제작되어 그림이 3차원으로 보이는 엽서.
  • 광고 엽서: 전문 마케팅 회사들이 제작하여 광장, 커피숍 등 상업 지역에 무료로 비치하는 엽서. 보통 우편 발송 목적이 아니다.
  • 앱리케 (Applique): 천, 금속 등 다른 장식물이 부착된 엽서.
  • 아르데코 (Art Deco): 1920년대 예술 양식으로, 대칭적인 디자인과 직선이 특징인 엽서.

폴리 베르제르 의상, 약 1900년

  • 아르누보 (Art Nouveau): 세기말 예술 양식으로, 흐르는 듯한 선과 꽃 모양 기호가 특징이며, 사실적이기보다는 인상주의적인 그림을 담은 엽서.
  • 작가 서명 (Artist-signed): 작가의 서명이 있는 그림 엽서로, 그림은 해당 엽서를 위해 독창적으로 그려진 경우가 많다.
  • 저부조 (Bas-relief): 표면이 매우 높게 돋아 올라와 파피에마셰 같은 느낌을 주는 엽서.
  • 큰 글씨 엽서 (Big Letter): 장소 이름이 매우 큰 글씨로 표시되고, 각 글자 안에 그림이 없는 엽서. (아래의 '큰 글씨 엽서' 항목 참조)
  • 합성 엽서 (Composite): 여러 개의 개별 카드를 함께 배치하여 더 큰 그림을 형성하는 엽서. "연재" 카드라고도 한다.
  • 코트 카드 (Court Card): 1894년부터 1899년까지 영국 엽서의 공식 크기였으며, 115mm × 89mm이다.
  • 분할 뒷면 (Divided Back): 뒷면이 메시지 공간과 주소 공간으로 나뉜 엽서. 영국에서는 1902년, 미국에서는 1907년에 처음 도입되었다.[48]
  • 초기 엽서 (Early): '분할 뒷면'이 도입되기 전(미국 기준 1907년 이전)에 발행된 모든 엽서.
  • 엠보싱 엽서 (Embossed): 표면이 돋을새김 처리된 엽서.
  • 과장 엽서 (Exaggeration): 트릭 사진 등을 이용해 비현실적으로 큰 동물이나 농작물을 보여주는 엽서.
  • 접는 엽서 (Folding): 접혀서 4페이지 이상으로 구성된 엽서. 대부분 봉투에 넣어 보내야 하지만, 일부는 직접 우편 발송이 가능하다.
  • 수채 채색 (Hand-tinted/Hand-colored): 흑백 이미지에 수채화 물감과 스텐실을 사용하여 손으로 색을 칠한 엽서.
  • 빛에 비춰 보는 엽서 (Hold-to-light): 'HTL'이라고도 하며, 주로 야경 사진에 구멍을 뚫어 빛에 비추면 특정 부분이 보이도록 만든 엽서.
  • 중간 크기 (Intermediate): 코트 카드와 표준 크기 사이의 크기로, 130mm × 80mm이다.
  • 만화경 엽서 (Kaleidoscope): 회전하는 바퀴가 있어 돌리면 여러 색상과 패턴이 나타나는 엽서.

"큰 글씨" 엽서, 1940년대

  • 큰 글씨 엽서 (Large Letter): 장소 이름이 매우 큰 글자로 표시되고, 각 글자 안에 해당 지역의 명소 그림이 들어 있는 엽서.
  • 최대 크기 엽서 (Maximum Card / Maxicard): 엽서의 그림 면에 우표를 붙이고 소인으로 함께 날인한 엽서. 주로 우표 발행 첫날에 만들어진다.
  • 소형 엽서 (Midget): 90mm × 70mm 크기의 특이한 엽서.
  • 특이 엽서 (Novelty): 일반적인 엽서와 다른 모든 종류를 통칭한다. 기계 장치가 있거나(Mechanical), 물건이 부착된 엽서 등이 포함된다.[49] 특이한 크기나 모양, 또는 가죽, 나무, 금속, 실크, 코코넛 같은 특이한 재료로 만들어지기도 한다.[49]
  • 오일레트 (Oilette): 런던의 출판사 래피얼 턱 앤 선즈가 원본 유화나 수채화를 복제한 엽서에 사용한 상표명.
  • 엽서 폴더 (Postcard Folder): 얇은 종이에 인쇄된 여러 장의 그림 엽서가 아코디언처럼 접혀 바깥 봉투(폴더)에 담긴 형태. 보통 5장 이상의 카드가 들어 있다.
  • 엽서체 (Postcardese): 엽서에 사용되는 특유의 글쓰기 스타일로, 짧은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화제가 갑자기 바뀌는 경향이 있다.
  • QSL 카드: 아마추어 무선 통신에서 무선 신호 수신 성공을 확인하기 위해 교환하는 엽서.
  • 실제 사진 엽서 (Real Photo Postcard): 수집가들이 "RP" 또는 "RPPC"로 약칭하는 엽서로, 인쇄된 것이 아니라 원본 네거티브에서 직접 인화하여 만든 사진 엽서이다. 대부분 개인이나 지역 사진관에서 소량 제작되었다.[50]
  • 포상 카드 (Reward Card): 학업 성적이 우수한 학생에게 상으로 주어지는 카드.
  • 특수 재질 엽서 (Special Material): 판지 이외의 재료(예: 나무, 금속, 천)로 만들어졌거나, 그러한 재료가 부착된 엽서.
  • 표준 크기 (Standard Size): 1899년 11월 영국에서 도입된 크기로, 140mm × 89mm이다.
  • 지형 엽서 (Topographical): 거리 풍경이나 일반적인 풍경을 보여주는 엽서.
  • 분할되지 않은 뒷면 (Undivided Back): 뒷면 전체가 주소 기입용으로만 사용되는 엽서. 주로 '초기' 엽서에서 볼 수 있으며, 1907년까지 일반적으로 사용되었다. 1907년, 만국우편연합은 엽서 뒷면 왼쪽 절반에 메시지를 쓸 수 있도록 허용했다.[51] 이로 인해 인쇄업체는 그림 면의 비네트를 없애고 그림을 카드 가장자리까지 확장할 수 있게 되어, 분할 뒷면 엽서의 황금기를 맞이하게 되었다.[52][53]
  • 비네트 (Vignette): 주로 "분할되지 않은 뒷면" 엽서에서 볼 수 있는 디자인으로, 그림이 카드 전체를 채우지 않고 일부 공간을 차지한다. 이는 뒷면에 메시지를 쓸 공간이 없었기 때문에 앞면에 메시지를 적을 여백을 남기기 위한 것이었다.
  • 바로 쓰는 엽서 (Write-away): 문장의 첫 줄이 미리 인쇄되어 있고, 발신자가 나머지 부분을 채워 넣는 형식의 엽서. 초기 만화 카드에서 종종 볼 수 있다.


엽서는 기본적으로 발행 주체에 따라 관제엽서(官製葉書)사제엽서(私製葉書)로 나눌 수 있다. 이는 우편 사업을 국가나 공공기관이 운영하는 경우 나타나는 구분이다.

  • 관제엽서: 국가나 공공기관(또는 이에 준하는 사업체)이 발행하는 엽서이다. 일본의 경우, 2007년 민영화된 일본우정이 발행하는 엽서가 이에 해당하며[56], 우체국이나 편의점 등에서 판매된다. 엽서 표면에 우표와 동일한 효력을 가지는 요금 액면이 인쇄되어 있어 별도로 우표를 붙일 필요가 없다. 우편 요금이 변경된 경우, 이전 관제엽서는 차액만큼의 우표를 추가로 붙여 사용할 수 있다. 단, 요금 액면 부분을 오려내어 다른 엽서에 붙여 사용할 수는 없다. 미국 영어에서는 postal card라고 부른다.
  • 사제엽서: 민간 인쇄업체 등이 발행하는 엽서이다. 요금 액면이 인쇄되어 있지 않으므로, 발송 시 해당 요금의 우표를 붙여야 한다. 미국 영어에서는 postcard라고 부르지만, 영국 영어에서는 관제엽서와 사제엽서 모두 postcard라고 부른다.


일본에는 왕복엽서(往復葉書)라는 특수한 형태의 엽서도 있다. 이는 보내는 엽서(往信)와 답장용 엽서(返信) 두 장이 하나로 이어진 형태로, 일반 엽서 두 장 분량의 요금으로 판매된다. 발신인은 반으로 접어 보내는 엽서에 주소를 적어 보내고, 수신인은 가운데 절취선을 따라 떼어낸 후 답장용 엽서로 회신할 수 있다.[58] 주로 회합 참석 여부 확인 등 답장이 필요한 경우에 사용된다. 답장용 엽서에는 보통 발신인의 주소와 이름이 미리 적혀 있으며, 받는 사람이 자신에게 보내는 것이므로 이름 뒤에 '行'이나 '宛'이라고 적고, 답장하는 사람은 이를 두 줄로 긋고 '様'이나 '御中' 등으로 수정하여 보내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와이안 아로하 누이 엽서 c.1908


또한, 엽서는 인쇄된 내용에 따라 그림엽서(絵葉書) 또는 사진엽서(写真葉書)로 불리기도 한다. 사제엽서는 상품 가치를 높이기 위해 아름다운 그림이나 사진 등을 인쇄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를 통칭하여 그림엽서 또는 사진엽서라고 부른다. 일본에서는 1870년경 독일에서 시작된 사진엽서가 메이지 시대(19세기 말)에 도입되어, 1904년(메이지 37년)경 채색 목판으로 제작된 사진엽서가 크게 유행했다. 사진엽서는 사용된 이미지에 따라 사진엽서와 삽화엽서로 나뉘며, 목적에 따라 관광엽서, 기념엽서 등으로도 분류된다.[62] 명화, 인물 초상, 또는 전문 삽화가가 그린 일러스트레이션 등이 사용된다.

아래는 일본의 옛 엽서 예시이다.

4. 엽서와 관련된 논쟁

사진엽서의 등장은 국경을 넘어 이미지를 주고받는 새로운 방식을 열었지만, 동시에 여러 법적, 사회적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특정 국가에서 합법적인 엽서 이미지가 다른 국가에서는 부적절하게 여겨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일부 국가는 해변 엽서의 성적인 묘사나 고전 조각, 그림에 나타난 누드 이미지가 담긴 엽서의 취급을 거부하기도 했다.[32] 특히 초기 엽서에는 여성 누드 사진이 실리는 경우가 많았는데, 미국에서는 제작이 불법이었지만 프랑스에서 많이 만들어져 일반적으로 프랑스 엽서로 알려졌다. 종교적인 이유로 특정 이미지 사용에 반대하는 경우도 있었다. 오스만 제국은 1900년 이슬람교의 예언자 무함마드와 관련된 일부 자료의 판매 및 수입을 금지했는데, 이 금지 조치 이전에 오스만 제국을 통해 성공적으로 발송된 관련 엽서는 희귀성 때문에 수집가들 사이에서 가치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미국에서는 1873년 컴스톡법(Comstock Act)이 통과되어 우편을 통한 "음란한 내용물"의 유포가 금지되었다.[33] 1908년에는 이 법에 3893조가 추가되어 "방화, 살인 또는 암살을 선동하는 경향이 있는" 자료까지 금지 대상에 포함되었다.[33] 이 법이 린치(사적 제재) 사진이나 엽서를 명시적으로 금지하지는 않았지만, 엽서에 적힌 노골적인 인종차별적 문구나 시는 금지 대상이 되었다. 일부에서는 이러한 문구가 사진 자체보다 "더욱 증거가 될 만한 것"으로 간주되어 우편물에서 제거되었다고 보는데, 이는 문구가 "린치 사건에 항상 내포되어 있던 것을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33] 일부 지역에서는 린치 사진에 대한 자기 검열이 이루어지기도 했지만, 3893조는 미국 전역의 검열을 향한 첫걸음이었다.[33] 법 개정에도 불구하고 린치 사진과 엽서는 계속 유통되었는데, 사람들은 봉투나 우편 포장지에 넣어 보내는 방식으로 검열을 우회했다.[34]

제1차 세계 대전 중에는 검열이 더욱 중요한 역할을 했다.[35] 전쟁 참여국들은 모두 어떤 형태로든 검열을 시행했는데, 이는 국민들에게 전쟁의 참상을 숨기고 선전의 효과를 높이기 위한 목적이었다.[35] 미국 의회는 1917년 간첩법과 1918년 반역법을 통과시켜 정부, 군대, 전쟁 채권 판매 등에 대한 비판을 검열할 광범위한 권한을 확보했다.[35] 간첩법은 케이블과 우편을 포함한 통신 검열을 감독하는 중앙 검열위원회 설립의 기초가 되었다.[35]

군대에서는 군사 기밀 유출을 막고 병사들의 사기를 확인하기 위해 우편 통제가 도입되었다.[35] 연합국에서는 민간인 우편물도 검열 대상이었다.[35] 프랑스의 검열은 영국이나 미국에 비해 덜 광범위했지만 목표 지향적이었다.[35] 영국에서는 모든 우편물이 런던이나 리버풀의 검열 사무소로 보내졌고,[35] 미국은 중앙 검열위원회의 지시에 따라 여러 중앙 우체국으로 우편물을 보냈다.[35] 미국의 검열관들은 주로 스페인, 라틴 아메리카, 아시아 관련 우편물만 검토했는데, 이는 영국이 다른 지역을 담당했기 때문이다.[35] 샌안토니오 우체국에서는 단 한 주 만에 75,000통 이상의 편지를 처리하고 그중 상당수를 검열하기도 했다.[35]

전선의 병사들은 검열을 피하기 위해 나름의 방법을 사용했다.[36] 일부는 휴가를 이용해 편지를 가지고 멀리 떨어진 곳에서 부치기도 했고,[36] 엽서를 쓸 때는 검열을 의식하여 논란이 될 만한 내용이나 개인적인 문제는 피했다.[36] 병사들이 집으로 보내는 우편물에는 정부가 무료로 제공하는 야전 엽서, 저렴한 그림 엽서, 기념품으로 사용되는 자수 엽서 등이 있었지만,[37] 하지만 검열관들은 종종 그림 엽서를 문제 삼아 불승인하기도 했다.[37] 한 사례로 프랑스 검열관들이 23,000통의 편지 중 156통만 파기했는데, 그중 149통이 그림 엽서였다는 기록도 있다.[37] 모든 참전국의 검열관들은 적을 비방하거나 잔혹 행위를 옹호하는 선전물을 걸러내는 데 집중했다.[35] 예를 들어 독일 검열관들은 Jeder Stoß ein Franzos|예더 슈토스 아인 프란초스de("한 방에 프랑스인 하나씩")와 같이 적대적인 슬로건이 적힌 엽서를 차단했다.[35]

현대에 와서는 엽서의 개방적인 형태가 개인정보 보호와 관련된 논쟁을 낳고 있다. 엽서는 기본적으로 등기우편과 달리 카드 형태여서 통신 내용이 타인에게 노출될 수 있다. 기업들이 보내는 청구서나 영수증처럼 내용의 비밀 유지가 필요한 경우, 과거에는 등기우편을 이용했지만 최근에는 우편 요금을 절약하기 위해 엽서를 사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 경우, 내용이 보이지 않도록 가림막 스티커를 붙이거나, 얇게 접착된 형태의 엽서(압착엽서 또는 봉함엽서[57])를 사용한다. 일반 가정이나 개인 상점에서도 봉함엽서를 만들 수 있는 키트가 판매되기도 한다. 한편, 우체국 직원에게는 비밀유지의무가 있어 업무상 알게 된 정보를 재직 중은 물론 퇴직 후에도 누설하는 것이 우편법 제8조에 의해 금지되어 있다.

5. 엽서의 가치

엽서는 단순히 메시지를 전달하는 수단을 넘어, 그 시대의 사회와 문화를 담아내는 중요한 기록물로서 가치를 지닌다. 엽서는 자연 경관뿐만 아니라 건물, 정원, 공원, 묘지, 관광지 등 다양한 건축 환경을 기록하고 있다. 특히 신문에 사진이 흔하지 않던 시절에는 사회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스냅샷 역할을 했다.[16]

엽서는 일반 대중이 글을 많이 쓰지 않고도 친구나 가족과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는 편리한 방법을 제공했다.[16] 또한, 축하 행사, 재난, 정치 운동, 전쟁과 같은 주요 사건이 발생했을 때, 엽서 사진작가들은 현장을 기록하여 중요한 역사적 순간을 포착했다.[16] 엽서에는 당시의 인기 유머, 오락, 유행, 일상생활의 다양한 모습이 담겨 있으며, 교통, 스포츠, 직업, 종교, 광고에 대한 정보도 찾아볼 수 있다.[16] 심지어 사망이나 출생 소식, 상점 구매 내역, 고용 정보 등을 전달하는 데 사용되기도 했다.[16]

이러한 이유로 엽서는 1차 사료로서 역사가, 문화재 보존 전문가, 계보학자 등이 수행하는 다양한 역사 연구에 매우 중요한 자료로 활용된다. 엽서는 당시의 물리적 세계와 사회적 세계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제공하며,[8] 극장, 인종 문제, 전쟁 등 다양한 주제 연구에도 사용되어 왔다.[38][17][39][40][41] 엽서는 사회사 연구에서도 중요한 자료로 인정받고 있다.

커뮤니케이션 측면에서 볼 때, 엽서는 전성기에 오늘날의 소셜 미디어와 유사하게 의사소통 방식에 혁명을 일으켰다.[8] 커뮤니케이션 연구자들은 엽서를 통해 특정 매체가 사회에 받아들여지고, 변화에 적응하며, 결국 사용이 줄어드는 과정을 연구할 수 있다.[8]

현재 전 세계의 도서관, 기록 보관소, 박물관에는 방대한 양의 엽서 자료가 소장되어 있으며, 이 중 상당수가 디지털화되어 온라인으로 접근 가능하다.[42] 전문가들은 이러한 귀중한 자료를 더 많은 사람이 쉽게 접할 수 있도록 디지털화 작업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주요 온라인 엽서 컬렉션은 다음과 같다.

6. 엽서 수집

엽서 수집은 엽서가 우편으로 발송되기 시작한 직후부터 시작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 수집은 세계 박람회에서 기념품으로 제작된 엽서를 수집하면서 시작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이 엽서들은 수집가(기념품 사냥꾼)를 염두에 두고 특별히 제작되었다.[16] 이후 엽서의 황금기 동안 수집은 주류 취미가 되었다.[16] 엽서를 구입하고, 우편으로 보내고, 수집하는 열풍은 종종 "엽서광(postcarditis)"으로 불렸으며, 구매된 엽서의 절반까지 수집가에 의해 구매되었다.[43][44] "The Jolly Jokers", "The Society for the Promulgation of Post Cards", "Post Card Union"과 같은 클럽들이 엽서 교환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생겨났으며, 각 클럽에는 수천 명의 회원이 있었다.[45] 엽서 앨범은 빅토리아 시대 거실에서 흔히 볼 수 있었으며, 많은 중산층과 상류층 가정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16]

오늘날에도 엽서 수집은 여전히 인기 있고 널리 퍼진 취미이다. 엽서의 가치는 주로 그 위에 묘사된 이미지에 의해 결정된다. 수집가에게 중요한 다른 요소로는 국가, 발행자 및 저자를 들 수 있다. 온라인 카탈로그는 수집가 웹사이트와 클럽에서 찾아볼 수 있다.[46] 이러한 카탈로그는 각 엽서에 대한 자세한 정보와 함께 사진을 제공한다. 또한 이러한 웹사이트에는 수집 관리 도구, 거래 플랫폼 및 수집가 간의 토론을 지원하는 포럼이 포함되어 있다. 미국에서 가장 오래 운영되는 클럽은 1946년에 설립된 "뉴욕 메트로폴리탄 엽서 클럽(Metropolitan Postcard Club of New York City)"이다.[47]


  • 귀지 토시히코(貴志俊彦) 『만주국의 비주얼 미디어――포스터·엽서·우표』吉川弘文館, 2010년

참조

[1] 웹사이트 Postcard History {{!}} Smithsonian Institution Archives https://siarchives.s[...] 2018-11-23
[2] 웹사이트 Oldest picture postcard http://www.guinnessw[...] 2017-03-01
[3] 뉴스 Oldest postcard sells for £31,750 http://news.bbc.co.u[...] 2012-06-16
[4] 뉴스 Oldest picture postcard in the world snapped up for £31,750 The Independent 2002-03-09
[5] 웹사이트 Pre History of the Postcard 1848–1872 http://www.metropost[...] Metropolitan Postcard Club of New York City 2013-02-01
[6] 웹사이트 Stamped Cards and Postcards https://about.usps.c[...] 2014-09-01
[7] 웹사이트 MetroPostcard History of Postcards 1873–1897 http://www.metropost[...] 2020-04-01
[8] 웹사이트 Tweeting by mail: The postcard's stormy birth https://www.latimes.[...] 2013-06-22
[9] 웹사이트 Chicago Postcard Museum – How to Age a Postcard http://www.chicagopo[...] 2020-04-01
[10] 웹사이트 Treaties and Other International Agreements of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1776–1949 Compiled under the direction of Charles I. Bevans LL.B. https://avalon.law.y[...] 2020-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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