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시 다쓰야
1. 개요
오이시 다쓰야는 일본의 전 프로 야구 선수로, 투수였다. 초등학교 때 소프트볼을 시작해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치며 투수로 활약했고, 후쿠오카 대학 부속 오호리 고등학교에서는 좌익수로도 뛰었다. 와세다 대학교에 진학하여 투수와 유격수를 겸했으며, 도쿄 6대학 야구 리그에서 통산 60경기 등판, 10승 4패, 평균자책점 1.63을 기록했다. 2010년 NPB 드래프트에서 6개 구단의 1순위 지명을 받아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에 입단했다. 2012년 1군 데뷔 후 2019년 은퇴할 때까지 세이부에서 활동했으며, 2020년 은퇴 후에는 세이부 구단에서 코치로 활동하고 있다.
| 이름 | 오이시 다쓰야 |
|---|---|
| 원어 이름 | 大石 達也 |
| 로마자 표기 | Ōishi Tatsuya |
| 출생 | 1988년 10월 10일 |
| 출생지 | 후쿠오카현 다자이후시 |
| 신장 | 185cm |
| 체중 | 94kg |
| 포지션 | 투수 / 코치 |
| 투구/타석 | 우투좌타 |
| 고등학교 | 후쿠오카대학 부속 오호리 고등학교 |
|---|---|
| 대학교 | 와세다 대학 |
| 프로 입단 |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 (2011년 ~ 2019년) |
| 드래프트 | 2010년 드래프트 1순위 |
| 첫 출장 | 2012년 5월 5일 |
| 마지막 출장 | 2019년 8월 19일 |
| 팀 |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 (2021년 ~ 현재) |
|---|---|
| 역할 | 1군 투수 코치 |
| 승패 | 1승 6패 |
|---|---|
| 평균 자책점 | 4.29 |
| 탈삼진 | 72 |
| 선수 | 15 |
|---|---|
| 코치 | 9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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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고등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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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2년
1502년은 율리우스력으로 수요일에 시작하는 평년으로, 이사벨 1세의 이슬람교 금지 칙령 발표, 콜럼버스의 중앙아메리카 해안 탐험, 바스쿠 다 가마의 인도 상관 설립, 크리미아 칸국의 킵차크 칸국 멸망, 비텐베르크 대학교 설립, 최초의 아프리카 노예들의 신대륙 도착 등의 주요 사건이 있었다. -
1988년 출생 -
유병재
유병재는 1988년생 대한민국의 코미디언, 방송 작가, 배우, 감독으로, 《SNL 코리아》 '극한직업' 코너를 통해 이름을 알렸으며,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며 독특한 유머 감각과 재치있는 입담으로 인기를 얻고 글로벌 시장에도 진출, 사회 공헌 활동에도 참여하고 있다. -
1988년 출생 -
황광희
황광희는 1988년생 대한민국의 가수이자 방송인으로, 남성 그룹 제국의 아이들 멤버로 데뷔하여 솔로 활동과 예능, 광고, 연기 등 다방면에서 활동하며 기네스 세계 기록을 달성했다. -
일본의 야구 선수 -
도마시노 겐지
도마시노 겐지는 1988년 야쿠르트 스왈로스에 입단하여 1989년 신인왕을 수상하고 빠른 발과 수비력을 갖춘 유틸리티 플레이어로 활약한 일본의 전 프로 야구 선수이자 현재 야구 해설가이다. -
일본의 야구 선수 -
다도코로 젠지로
다도코로 젠지로는 시즈오카 상업고등학교 시절 선발 고등학교 야구 대회에서 전 경기 완봉승으로 우승을 이끌었으며, 고쿠테쓰 스왈로스에 입단하여 투수로 활동, 은퇴 후에는 코치, 야구 연맹 임원, 유소년 야구팀 대표를 역임했다.
2. 프로 입단 전
오이시 다쓰야는 초등학교 2학년 때 소프트볼을 시작하면서 투수를 맡았다. 중학생 시절에는 보이스 리그의 '호크스 오노조 보이스'에서 본격적으로 야구를 시작했다. 후쿠오카 다이호리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와세다 대학에 진학했다. 대학 시절에는 입학 전 연습에서 유격수를 맡다가 오른손가락 열상 및 박리 골절 부상을 입어 투수로 전향하여 도쿄 6대학 야구 리그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2.1. 유소년 시절
초등학교 2학년 때 소프트볼을 시작하면서 투수를 맡았다. 중학생 시절에는 보이스 리그의 '호크스 오노조 보이스'에서 본격적으로 야구를 시작했다. 중학교 3학년 때 요시카와 미쓰오 등과 함께 보이스 리그 규슈 선발로 뽑혔다. 중학교 1년 선배로는 노가미 료마가 있다.
2.2. 고등학교 시절
후쿠오카 다이호리 고등학교에 진학하여 1학년 봄부터 좌익수 레귤러로 활약했다. 2학년 가을에는 후쿠오카현 남부 대회 준준결승에서 7회 참고 기록으로 노히트 노런을 달성했다. 3학년 여름 선수권 후쿠오카 대회 첫 경기에서 밀어내기 몸에 맞는 볼을 내주며 끝내기 패배를 당했다. 재학 중에는 고시엔 구장의 전국 대회와 인연이 없었지만, 최고 구속 145km/h의 스트레이트를 기록하며 규슈 굴지의 우완 투수로 주목받았다.
2.3. 대학교 시절
와세다 대학에 진학하여 투수와 유격수를 병행했다. 입학 전 연습에서 유격수를 맡다가 오른손가락 열상 및 박리 골절 부상을 입어 투수로 전향했다.
도쿄 6대학 야구 리그에서 주로 구원 투수로 등판하여 1학년 가을부터 3학년 봄까지 4시즌 동안 38⅔이닝 연속 무실점을 기록했다. 3학년 가을 리그전에서 베스트 나인에 선정되었다. 3학년 때 U-26 NPB 선발 대 대학 일본 대표에 참가하여 1이닝 2탈삼진을 기록했다. 4학년 여름 세계 대학 야구 선수권 대회에 출전하여 미국 대표팀과의 준결승에서 중심 타자로부터 3연속 삼진을 잡았다.
도쿄 6대학 야구 리그 통산 60경기 등판, 10승 4패, 평균자책점 1.63, 217탈삼진을 기록했다. 사이토 유키, 후쿠이 마사야 등과 함께 와세다 대학 '황금 세대'의 주축 투수로 활약했다.
3. 프로 선수 시절
2010년 NPB 드래프트 회의에서 히로시마 도요 카프, 요코하마, 라쿠텐, 오릭스, 한신, 세이부 6개 구단으로부터 1순위 지명을 받았고, 추첨 결과 세이부가 교섭권을 획득했다. 계약금 1억 엔, 성과급 50, 연봉 15(추정)의 조건으로 세이부에 입단했으며, 등번호는 15번을 받았다.
2011년부터 2019년까지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에서 활동했다. 2011년과 2014년을 제외하고는 꾸준하게 1군에서 활동하였으며, 2014년에는 오른쪽 어깨 부상으로 1군에 출전하지 못했다. 2019년 시즌을 끝으로 은퇴하였다.
3.1.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 시절
2010년 NPB 드래프트 회의에서 히로시마 도요 카프, 요코하마, 라쿠텐, 오릭스, 한신, 세이부 6개 구단으로부터 1순위 지명을 받았고, 추첨 결과 세이부가 교섭권을 획득했다. 계약금 1억 엔, 성과급 50, 연봉 15(추정)의 조건으로 세이부에 입단했으며, 등번호는 15번을 받았다.
2011년부터 2019년까지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에서 활동했다. 2011년과 2014년을 제외하고는 꾸준하게 1군에서 활동하였으며, 2014년에는 오른쪽 어깨 부상으로 1군에 출전하지 못했다. 2019년 시즌을 끝으로 은퇴하였다.
자세한 내용은 하위 문단을 참고하면 된다.
3.1.1. 2011년
와타나베 히사노부 감독의 의향으로 스프링 캠프부터 선발 요원으로 조정되었다. 그러나 대학 시절 최고 155km/h를 기록했던 직구가 오픈전에서는 140km/h대 초반에 머물렀다. 전년도 마무리 투수였던 브라이언 시코스키가 오픈전 기간 중 동일본 대지진의 영향으로 일시 귀국하면서, 구원 요원으로 공식전을 1군에서 시작했다. 하지만 4월 15일 연습 중 오른쪽 어깨 통증을 호소하여 등판 기회 없이 등록이 말소되었다. 7월 21일 프레시 올스타 게임 (도야마 알펜 스타디움)에서 이스턴 리그 선발 투수로 경기를 마무리했지만, 말소 후 1군 복귀는 하지 못했고, 오른쪽 어깨 통증은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2군에서는 15경기에 등판해 6승 4패, 평균자책점 2.25를 기록했다.
3.1.2. 2012년
2012년에는 공식전 개막을 2군에서 맞이했으나, 5월 5일 지바 롯데 마린스전에서 1군 공식전에 데뷔했다. 7월 8일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전(모두 세이부 돔)에서 첫 승리를 거두었다. 1군 공식전 24경기에 등판하여 1승 1패 1홀드, 평균자책점 2.75를 기록했다.
3.1.3. 2013년
2013년에는 전년도 마무리 투수였던 와쿠이 히데아키가 선발로 복귀하면서, 1군 공식전 개막 초기에 마무리 투수로 기용되었다. 4월 4일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전(세이부 돔)에서 1군 공식전 첫 세이브를 기록했지만, 이후 등판 경기에서 투구 내용이 안정되지 않아, 히로시마에서 이적한 데니스 사파테에게 마무리 투수 자리를 내줬다. 8월 22일 지바 롯데 마린스전(QVC 마린 필드) 3회말 도중부터 코이시 히로타카의 뒤를 이어 등판했을 때, 이구치 다다히토와 스즈키 다이치에게 만루 홈런을 허용했다. 한 명의 투수가 1이닝에 2개의 만루 홈런을 허용한 사례는 일본 프로 야구(NPB) 1군 공식전 사상 4번째였지만, 코이시가 만루의 위기를 맞이한 국면에서 등판했기 때문에, 오이시에게는 실점·자책점 모두 5가 기록되었다. 1군 공식전 전체에서는 37경기 등판으로, 8세이브와 2홀드를 기록했지만, 0승 5패, 평균자책점 6.38로 부진했다. 사파테가 마무리 투수를 맡은 이후에는 패전 처리로 기용되는 경우가 많았고, 시즌 막바지에 마무리 투수로 복귀하고 나서도 컨디션이 회복되지 않아, 와타나베 히사노부 감독은 와쿠이를 마무리 투수로 다시 기용했다.
3.1.4. 2014년
大石 達也일본어는 2014년에 오른쪽 어깨 통증이 재발하여 1군 공식전에 등판할 기회가 없었다. 이스턴 리그 공식전에서도 6경기 등판에 그치며 0승 1패, 평균자책점 4.90을 기록했다. 여름에는 코칭 스태프로부터 야수로 전향할 것을 제안받았지만, "앞으로도 투수에 전념하고 싶다"며 거절하고 투수로서 계약을 갱신했다.
3.1.6. 2016년
大石 達也일본어는 2016년에 1군 공식전 36경기에 등판하여 31⅔이닝 1승, 평균자책점 1.71을 기록했다. 8월 31일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전(세이부 프린스 돔)에서는 1점 뒤진 9회초에 등판, 1이닝 3폭투(NPB 1군 공식전 1경기 최다 타이기록) 등으로 1실점했지만, 팀의 역전 끝내기 승리로 4년 만의 승리를 기록했다.
| 연도 | 소속 | 등판 | 선발 | 완투 | 완봉 | 무4구 | 승리 | 패전 | 세이브 | 홀드 | 승률 | 타자 | 이닝 | 피안타 | 피홈런 | 볼넷 | 고의4구 | 몸에 맞는 볼 | 탈삼진 | 폭투 | 보크 | 실점 | 자책점 | 평균자책점 | WHIP |
|---|---|---|---|---|---|---|---|---|---|---|---|---|---|---|---|---|---|---|---|---|---|---|---|---|---|
| 2016년 | 세이부 | 36 | 0 | 0 | 0 | 0 | 1 | 0 | 0 | 3 | 1.000 | 126 | 31.2 | 18 | 2 | 16 | 0 | 0 | 36 | 4 | 0 | 6 | 6 | 1.71 | 1.07 |
3.1.8. 2018년
2018년에는 스프링 캠프 전인 1월 5일에 오키나와현 출신 여성과 결혼했다. 그 해 1군 공식전에서는 10경기에 등판하여 1승 2홀드를 기록했지만, 평균자책점은 7.00이었다.
3.1.9. 2019년
2019년에는 1군 공식전에 2경기 등판하는 데 그쳤다. 정규 시즌 종료 후인 10월 3일 구단으로부터 전력 외 통보를 받았고, 이를 계기로 현역에서 은퇴할 것을 밝혔다. 10월 29일자로 NPB로부터 임의 은퇴 선수로 공시되었다.
4. 은퇴 이후
2019년 시즌 종료 후 세이부 구단 본부 통괄부 팜・육성 그룹 스태프로 취임했다. 2020년에는 연수를 위해 업무 제휴처인 MLB 뉴욕 메츠에 파견되어 산하 구단인 세인트 루시 메츠에서 투수 코치를 맡았다. 당초 시즌 내내 메츠와 함께할 예정이었지만,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증의 세계적 확산으로 인해 3월 17일에 일본으로 귀국했다. 귀국 후 세이부 구단의 팜・육성 그룹에 복귀하여 3군 및 육성 선수 제도 선수 지도와 데이터 분석을 담당했다.
2020년 11월 11일, 2군 투수 코치로 취임했다. 이후 2022년까지 같은 직책을 맡았고, 2023년에는 팜 투수 코치를, 2024년부터는 팜 투수 종합 코치를 담당하고 있다.
5. 선수로서의 특징
오버스로에서 평균 구속 약 141km/h, 프로 입단 후 최고 구속 149km/h의 직구와 세로 슬라이더, 포크볼, 포크볼 그립으로 던지는 체인지업을 던진다. 커브도 던질 수 있지만, 대학 시절에는 4~5구 밖에 던지지 않았다고 한다。
고교 시절부터 선발 투수로서 "경기 중 어디선가 반드시 잡히는 취약함이 있다", "경기 도중 왠지 무너진다"는 평가를 받았다。대학 3학년부터는 구원 투수로 전향하여 최고 155km/h의 직구를 무기로 활약했다.
직구에 대해서는 후지카와 큐지가 거론될 정도로 대학 시절에 성장세를 보였으며, "너무 빨라서 보이지 않는다"고도 했다. 3학년 때 도쿄 6대학 야구 춘계 리그전 릿쿄 대학과의 대전 중에 154km/h를 기록, 메이지 진구 야구장에서 측정된 구속의 최고 기록과 동률(당시)을 달성했다.
세이부 1년차(2011년) 춘계 캠프에서 불펜에서 오이시의 투구를 받은 다츠카와 미츠오(야구 해설가)는 "(히로시마의 포수 시절 배터리를 이루었던) 츠다 츠네미를 연상시킨다"는 평가를 했다。그 해 4월에 오른쪽 어깨를 다친 이후 구속이 140km/h대로 떨어졌지만, 대학 시절에 이어 속구로 헛스윙을 잡는 스타일을 유지했다。당시 투수 코치였던 도이 요시히로는 "빠르지 않아도 공의 궤적이 독특해서 타자를 꼼짝 못하게 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6. 인물
성격은 "투수보다는 포수 타입"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중학교 및 대학 시절 감독들로부터 "주장이 부족하고 너무 착하다"는 공통된 견해를 받았다.
대학 시절 팀 동료였던 후쿠이 마사야는 오이시 다쓰야를 "너무 깊이 생각하지 않는 타입"이라고 평가했다. 또한, "다른 스포츠를 시켜도 무엇이든 잘한다"라고 평가받았다.
와세다 대학 시절 후쿠이 마사야와 함께 투수진을 이끌었던 사이토 유키는, 세이부에서 현역 은퇴 직후 "대학에서 만나지 않았더라면 (졸업 후) 그대로 프로(NPB)로 갈 수 있었을지 모르겠다"라고 회고할 정도로 큰 영향을 받았다。 오이시 다쓰야가 유격수로 기용될 예정이었던 입학 전 연습 중 부상을 당하면서, 투수진과 함께 런닝을 하게 되었고, 사이토 유키의 변화구 던지는 법을 참고하며 직구(스트레이트)의 수준을 향상시켰다. 후쿠이 마사야에 대해서는, 입학 직후 시범 경기에서 150km/h대의 직구로 연달아 삼진을 잡는 것을 보고, "직구의 위력으로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4학년(2010년) 가을에 열린 NPB 드래프트 회의에서, 오이시 다쓰야, 사이토 유키, 후쿠이 마사야 모두 다른 구단으로부터 드래프트 1순위로 지명되었다. 사이토 유키는 오이시 다쓰야와 마찬가지로, 퍼시픽 리그의 구단(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에 입단했다. 센트럴 리그의 히로시마에 입단했던 후쿠이 마사야도, 오이시 다쓰야의 현역 마지막 해(2019년)에 라쿠텐으로 이적했기 때문에, 그 해에 한해 3명 모두 퍼시픽 리그나 이스턴 리그에서 플레이하는 것을 경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