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쿠이 히데아키
1. 개요
와쿠이 히데아키는 일본의 프로 야구 선수이다. 마쓰도시 출신으로 요코하마 고등학교 시절 '마쓰자카 다이스케 2세'로 불리며 주목받았으며, 2004년 세이부 라이온스에 입단했다. 세이부, 지바 롯데 마린스,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를 거쳐 2023년부터 주니치 드래건스에서 활동하고 있다. 2007년, 2009년, 2015년, 2020년에 다승왕을 차지했으며, 2009년에는 사와무라 에이지상을 수상했다. 2024년에는 NPB 사상 3번째로 통산 2000 탈삼진을 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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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 | 와쿠이 히데아키 |
|---|---|
| 원어 이름 | 涌井 秀章 (わくい ひであき) |
| 로마자 표기 | Wakui Hideaki |
| 출생일 | 1986년 6월 21일 |
| 출생지 | 일본 지바현 마쓰도시 |
| 신장 | 185cm |
| 체중 | 85kg |
| 포지션 | 선발 투수 |
| 투구 | 우투 |
| 타석 | 우타 |
| 등번호 | 20 |
| 데뷔 리그 | 일본 프로 야구 |
|---|---|
| 데뷔 년도 | 2005년 |
| 데뷔팀 |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 |
| 소속팀 |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 (2005년–2013년) 지바 롯데 마린스 (2014년–2019년)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2020년-2022년) 주니치 드래건스 (2023년-현재) |
| 대표팀 | 일본 |
|---|---|
| 올림픽 | 2008년 |
|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 2009년, 2013년 |
| 리그 | 일본 프로 야구 |
|---|---|
| 승패 기록 | 159승 156패 |
| 평균 자책점 | 3.59 |
| 탈삼진 | 1,998 |
| 홀드 | 16 |
| 세이브 | 37 |
| 사와무라 에이지 상 | 2009년 |
|---|---|
| 퍼시픽 리그 클라이맥스 시리즈 MVP | 2008년 |
| 퍼시픽 리그 최다승 | 2007년, 2009년, 2015년 |
| 일본 시리즈 우승 | 2008년 |
| 퍼시픽 리그 미쓰이 골든 글러브 상 | 2009년–2010년, 2015년-2016년 |
| NPB 올스타 | 2006년–2007년, 2009년–2010년, 2015년-2016년 |
|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 금메달: 2009 로스앤젤레스 (단체) |
|---|---|
|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 | 금메달: 2007 타이중 (단체) |
| 연봉 | 9000만엔 (2025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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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일본 사람 -
쇼와 천황
쇼와 천황은 메이지 천황의 손자로 태어나 124대 일본 천황으로 즉위하여 사망할 때까지 재위하며 만주사변, 중일전쟁, 태평양 전쟁 등 침략 전쟁에 관여했다는 논란이 있으며, 전후에는 상징적인 천황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했고 그의 전쟁 책임 문제는 논쟁의 대상이다. -
20세기 일본 사람 -
스가마타 데쓰오
스가마타 데쓰오는 일본의 전 축구 선수로, 수비수로 활약하며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23경기에 출전했고, 히타치 제작소 축구부에서 선수 생활을 하며 1980년과 1982년 일본 사커 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는 등 다양한 국제 대회에 출전했다. -
21세기 일본 사람 -
스가마타 데쓰오
스가마타 데쓰오는 일본의 전 축구 선수로, 수비수로 활약하며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23경기에 출전했고, 히타치 제작소 축구부에서 선수 생활을 하며 1980년과 1982년 일본 사커 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는 등 다양한 국제 대회에 출전했다. -
21세기 일본 사람 -
마쓰모토 레이지
마쓰모토 레이지는 《은하철도 999》, 《우주전함 야마토》 등 SF 만화와 애니메이션으로 유명한 일본의 만화가로, 고단샤 출판문화상, 쇼가쿠칸 만화상 등을 수상하며 SF 애니메이션 분야에 큰 업적을 남겼으며, 2023년 급성 심부전으로 사망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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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우토카
라우토카는 피지 비치레부섬 서부에 위치한 피지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이자 서부 지방의 행정 중심지로, 사탕수수 산업이 발달하여 "설탕 도시"로 알려져 있으며, 인도에서 온 계약 노동자들의 거주와 미 해군 기지 건설의 역사를 가지고 있고, 피지 산업 생산의 상당 부분을 담당하는 주요 기관들이 위치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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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코넛
코코넛은 코코넛 야자나무의 열매로 식용 및 유지로 사용되며, 조리되지 않은 과육은 100g당 354kcal의 열량을 내는 다양한 영양 성분으로 구성되어 있고, 코코넛 파우더의 식이섬유는 대부분 불용성 식이섬유인 셀룰로오스이며, 태국 일부 지역에서는 코코넛 수확에 훈련된 원숭이를 이용하는 동물 학대 문제가 있다.
2. 프로 입단 전
마쓰도시립 칸푸다이 초등학교 시절에는 소프트볼을 했으며(칸푸다이 소프트볼 팀, 현 와카바 소프트볼에 소속), 마쓰도시립 제6중학교에 진학 후 시니어 리그(마쓰도 리틀 시니어)에서 야구를 시작했다. 그 후 요코하마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고등학교 입학 때부터 마쓰자카 다이스케의 재림이라고 불렸다. 고등학교 2학년 봄에 제75회 선발 고등학교 야구 대회에 1학년 선배인 에이스 나루세 요시히사 등과 함께 출전했다. 준결승까지는 나루세의 중간 계투로 등판했고, 결승전에서는 선발로 나섰지만, 코료 고등학교 타선에 막혀 3-15로 크게 패했다.
고등학교 2학년 여름의 제85회 전국 고등학교 야구 선수권 대회 가나가와 대회 결승전에서 요코하마 상과대학 고등학교와 대결했지만, 어깨 부상을 입은 나루세가 1회에 강판, 두 번째 투수로 등판했지만 실점을 거듭했고, 타선도 부진하여 패배, 춘하 연속 출전을 놓쳤다.
고등학교 3학년 여름에는 제86회 전국 고등학교 야구 선수권 대회에 출전했다. 1회전 호토쿠가쿠엔 고등학교전에서 가타야마 히로시에게 홈런을 맞는 등 활약했고, 2회전 교토 외대 서 고등학교전에서는 연장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완봉승을 거뒀다. 3회전 메이토쿠기주쿠전 에서도 승리하였으나, 준준결승 코마대 토마코마이전에서는 사이클링 안타를 맞는 등 제구력 난조와 컨디션 저하로 완패했다.
제59회 국민체육대회 결승전에서는 다르빗슈 유가 소속된 도호쿠 고등학교를 상대로 14탈삼진을 기록하여 완투 승리했다. 고교 시절 와쿠이에 대해 요코하마 고등학교 야구부장 오구라 기요이치로는 “마쓰자카보다도 잘 참고 힘든 연습을 견뎌가며 어려움을 극복해 왔다”고 칭찬했다.
2.1. 유소년 시절
마쓰도시립 칸푸다이 초등학교 시절에는 소프트볼을 했으며(칸푸다이 소프트볼 팀, 현 와카바 소프트볼에 소속), 마쓰도시립 제6중학교에 진학 후 시니어 리그(마쓰도 리틀 시니어)에서 야구를 시작했다. 그 후 요코하마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고등학교 입학 때부터 마쓰자카 다이스케의 재림이라고 불렸다. 고등학교 2학년 봄에 제75회 선발 고등학교 야구 대회에 1학년 선배인 에이스 나루세 요시히사 등과 함께 출전했다. 준결승까지는 나루세의 중간 계투로 등판했고, 결승전에서는 선발로 나섰지만, 코료 고등학교 타선에 막혀 3-15로 대패했다.
고등학교 2학년 여름의 제85회 전국 고등학교 야구 선수권 대회 가나가와 대회 결승전에서 요코하마 상과대학 고등학교와 대결했지만, 어깨 부상을 입은 나루세가 1회에 강판, 두 번째 투수로 등판했지만 실점을 거듭했고, 타선도 부진하여 패배, 춘하 연속 출전을 놓쳤다.
고등학교 3학년 여름에는 제86회 전국 고등학교 야구 선수권 대회에 출전했다. 1회전 호토쿠가쿠엔 고등학교전에서 가타야마 히로시에게 홈런을 맞는 등 활약했고, 2회전 교토 외대 서 고등학교전에서는 연장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완봉승을 거뒀다. 3회전 메이토쿠기주쿠전 에서도 승리하였으나, 준준결승 코마대 토마코마이전에서는 사이클링 안타를 맞는 등 제구력 난조와 컨디션 저하로 완패했다.
제59회 국민체육대회 결승전에서는 다르빗슈 유가 소속된 도호쿠 고등학교를 상대로 14탈삼진을 기록하여 완투 승리했다. 고교 시절 와쿠이에 대해 요코하마 고등학교 야구부장 오구라 기요이치로는 “마쓰자카보다도 잘 참고 힘든 연습을 견뎌가며 어려움을 극복해 왔다”고 칭찬했다.
2.2. 요코하마 고등학교 시절
마쓰도 시립 칸푸다이 초등학교 시절에는 소프트볼을 했으며, 야구는 마쓰도 시립 제6중학교 진학 후 시니어 리그(마쓰도 리틀 시니어)에서 시작했다. 그 후 요코하마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고등학교 입학 때부터 마쓰자카 다이스케의 재림이라고 불렸다. 고등학교 2학년 봄에 제75회 선발 고등학교 야구 대회에 1학년 선배인 에이스 나루세 요시히사 등과 함께 출전했다. 준결승까지는 나루세의 중간 계투로 등판했다. 결승전에서는 선발로 나섰지만, 코료 고등학교 타선에 막혀 3-15로 대패했다.
고등학교 2학년 여름의 제85회 전국 고등학교 야구 선수권 대회 가나가와 대회에서는 결승 진출에 성공했으나, 요코하마 상과대학 고등학교에 패하며 춘하 연속 출전을 놓쳤다.
고등학교 3학년 여름에는 제86회 전국 고등학교 야구 선수권 대회에 출전했다. 1회전 호토쿠가쿠엔 고등학교전에서 홈런을 날리는 등 활약했고, 2회전 교토 외대 서 고등학교와의 경기에서는 연장전 끝에 완봉승을 따냈다. 3회전 메이토쿠기주쿠전에서는 나카타 료지에게 홈런을 맞는 등 실점했지만 팀의 역전승에 기여했다. 그러나 준준결승전 코마대 토마코마이전에서는 사이클링 안타를 맞는 등 제구력 난조로 완패했다.
국민 체육 대회 추계 대회에서 첫 상대인 코마자와 대학 부속 도마코마이 고등학교와의 경기에서 14개의 삼진을 빼앗아 완투승을 거뒀고, 결승에서는 다르빗슈 유가 소속된 도호쿠 고등학교를 누르고 우승했다. 고교 시절 와쿠이에 대해 요코하마 고등학교 야구부장 오구라 기요이치로는 “마쓰자카보다도 잘 참고 힘든 연습을 견뎌가며 어려움을 극복해 왔다”고 칭찬했다.
최고 속도 148km의 직구와 슬라이더를 던져 2004년 프로 야구 드래프트 회의에선 세이부 라이온스로부터 단독 1순위 지명을 받았다.
3. 프로 선수 시절
와쿠이 히데아키는 2004년 프로 야구 드래프트에서 자유 획득 범위로 세이부 라이온스에 입단하여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2005년: 고졸 신인임에도 개막 로테이션에 합류했다. 3월 29일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와의 경기에서 프로 첫 등판 및 선발로 나섰지만, 다카하시 신지에게 만루 홈런을 맞는 등 부진하며 프로 첫 패전을 기록했다. 이후 선발 로테이션에서 제외되었다가, 5월 15일 요미우리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 약 1개월 만에 1군 선발로 복귀했고, 6월 18일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전에서 6이닝 1실점 호투로 프로 첫 승리를 거두었다.
2006년: 선발 로테이션에 정착하여 고졸 신인 스미타니 긴지로와 함께 '10대 배터리'로 불리며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4월 23일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전에서는 첫 완투승과 완봉승을 기록했다. 6월에는 리그 1위의 평균 자책점과 3승 1패의 성적으로 월간 MVP를 수상했고, 감독 추천으로 올스타전에 처음 출전했다.
2007년: 다승왕 타이틀을 획득했다. 시즌 종료 후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출전을 위한 아시아 예선 결승 리그 일본 대표팀 멤버로 선출되었다.
2008년: 처음으로 개막 투수로 지명되었고, 베이징 올림픽에 출전했다. 클라이맥스 시리즈에서 MVP를 차지했고, 일본 시리즈 우승에 기여했다.
2009년: 16승 6패, 4완봉(퍼시픽 리그 1위), 평균자책점 2.30(2위), 199탈삼진(2위)을 기록하며 사와무라 상, 최우수 배터리상, 골든 글러브상을 수상했다.
2010-2013년: 2012년에는 마무리 투수로 전향하여 30세이브를 기록하기도 했다.
2014년: 지바 롯데 마린스로 이적하여, 4월 15일 세이부전에서 승리 투수가 되면서 역대 13번째로 12개 구단 상대 승리 투수가 되었다.
2015년: 오타니 쇼헤이와 함께 통산 세 번째 다승왕 타이틀을 획득하였다.
2016-2019년: 2017년과 2018년에는 베스트 나인상을 수상했다.
2020년: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로 이적하여, 센가 고다이, 이시카와 슈타와 함께 통산 5번째이자 4번째 다승왕 타이틀을 획득하며, 3개 구단에서의 다승왕 획득이라는 NPB 사상 최초의 기록을 세웠다.
2021-2022년: 2022년에는 오른손 중지 골절 부상을 당하기도 했다.
2023년-현재: 주니치 드래건스로 이적했다.
3.1. 세이부 라이온스 시절 (2005-2013)
와쿠이 히데아키는 2007년에 3년 연속으로 개막 로테이션에 합류하여, 개막 3번째 경기인 롯데전에서 시즌 첫 등판 및 선발로 나와 9이닝 2실점 호투로 시즌 첫 승리를 완투로 장식했다. 이후에도 호투를 이어갔고, 4월 17일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전에서는 9이닝 3안타 9탈삼진 무사사구 완봉으로 개막 4경기 4승을 기록했다. 이어진 25일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전에서는 5이닝 5실점으로 시즌 첫 패전을 기록했지만, 6월 19일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전부터 7월 18일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전에 걸쳐 5경기 5승을 기록했다. 감독 추천으로 2년 연속 올스타에 선출되어 1차전에 등판했다.
이 해에도 와쿠이는 시즌 내내 선발 로테이션을 지키며, 선발 등판한 28경기 중 11경기에서 완투했고(리그 2위), 6이닝 미만으로 강판된 것은 불과 3경기였다. 리그 최다인 213이닝을 던져 17승 10패, 평균자책점 2.79의 좋은 성적을 거두며 최다 승리 타이틀을 획득했다.
2008년에는 처음으로 개막 투수로 지명되었다. 오릭스 버펄로스와의 개막전에 선발 등판하여 8이닝 2실점(자책점 1) 호투했지만 패전 투수가 되었다. 이후 타선의 득점 지원 부족, 구원 투수진의 부진 등으로 승리를 얻지 못했고, 시즌 첫 승리는 4월 10일 롯데전이었다. 3, 4월에는 2승 3패로 부진했고, 5월 이후에도 컨디션 난조를 겪었다. 베이징 올림픽 이후 컨디션이 더욱 떨어져 정규 시즌 10승(리그 최다 3위인 11패)에 그쳤고, 평균자책점 3.90(4위)으로 만족스럽지 못한 시즌을 보냈다.
포스트 시즌을 위해 제구력을 중시했던 팔 스윙을 단련했고, 팀의 리그 우승으로 CS 2차전 1차전에 선발 등판, 6이닝 1실점 호투로 승리 투수가 되었다. 4일 간격으로 5차전에 선발 등판하여 완봉승을 거두며 시리즈 MVP를 차지했다. 요미우리 자이언츠와의 일본 시리즈 1차전에서 8이닝 1실점 호투로 승리 투수가 되었고, 5차전에서는 7이닝 5실점으로 패전 투수가 되었지만, 이틀 간격으로 7차전 5회 말부터 구원 등판, 2이닝 무실점으로 팀의 일본 시리즈 우승에 기여했다. 아시아 시리즈 결승전 퉁이 라이온스전에서 선발 등판하여 6⅔이닝 무실점으로 우승에 기여했다.
12월 12일 계약 갱신에서 35 증액된 추정 연봉 120에 사인했고, 구단의 등번호 18번 변경 제안을 수락했다. 심기일전의 의미와 이시이 가즈히사에게 야쿠르트 시절 등번호 16번을 달아주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12월 23일 등번호 변경이 발표되었다.
2009년, WBC 결승전 후 하루 휴식 후 오픈전에 선발 등판하자 와타나베 히사노부 감독이 개막 투수를 공식 발표했다. 롯데와의 개막전에서 6이닝 2실점의 끈기 있는 투구로 승리 투수가 되었다. 4월 24일 롯데전에서는 1실점 완투승으로 "매회 탈삼진과 전원 탈삼진 동시 달성"이라는 사상 첫 기록을 세웠다. 5월 15일 롯데전에서 2년 만에 완봉승, 6월 26일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전부터 7월 21일 오릭스 버펄로스전까지 5경기 5승을 기록했다.
7월에는 4경기 선발, 4승, 평균자책점 1.64로 3년 만에 두 번째 월간 MVP를 수상했다. 8월 11일 롯데전에서 개인 최다 13탈삼진으로 시즌 3번째 완봉승을 거두었다. 9월 8일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전에서 시즌 4번째 완봉승 이후 CS 진출을 위해 5일 간격 로테이션을 돌았고, 팀의 CS 진출은 실패했지만, 시즌 마지막 선발 등판에서 2실점 완투로 16승을 거두었다.
마무리 알렉스 그래먼의 부상 이탈과 대타 오노데라 치카라의 부진 등 구원진 불안 속에서, 와쿠이는 선발 등판한 27경기 중 6이닝 미만 강판이 3경기에 불과했다. 11완투, 211⅔이닝, 3555투구는 양 리그 최다였고, 16승 6패, 4완봉(퍼시픽 리그 1위), 평균자책점 2.30(2위), 199탈삼진(2위), 승률 .727(3위)로 두 번째 최다 승리 타이틀을 획득했다. 12개 구단 투수 중 유일하게 사와무라상 선정 기준 7개 항목을 모두 충족하여 사와무라상을 수상했고, 최우수 배터리상과 골든 글러브상도 수상했다.
2010년, 3년 연속 개막 투수를 맡아 롯데와의 개막전에서 8이닝 1실점 호투로 승리 투수가 되었다. 5월 15일 요코하마 베이스타스전에서 7이닝 3실점, 타석에서는 4타수 3안타 4타점으로 프로 첫 맹타상을 기록했다. 6월 25일 오릭스 버펄로스전에서 양 리그 최초 10승을 달성했고, 전반기 18경기 중 7이닝 미만 강판은 2경기로 리그 1위 타이인 11승(5패)을 기록했다. 그러나 후반기에는 피로 등의 영향으로 컨디션 난조를 보였다. 27경기 선발, 14승 8패, 평균자책점 3.67, 피안타 191개(리그 최다 1위), 피홈런 21개(2위)를 기록했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으로 개막이 연기되었지만, 4월 12일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전에서 4년 연속 개막 투수를 맡아 8이닝 3실점으로 승리 투수가 되었다. 개막 전부터 오른쪽 팔꿈치 통증에 시달렸고, 5월 6일 등록 말소 후 정밀 검사에서 유리 연골이 발견되었지만 수술 없이 17일 요코하마전에서 1군 복귀, 복귀 후 3번의 선발에서 모두 완투승을 거두었다. 9월 이후 4승을 기록하며 팀의 CS 진출에 기여했다. 오른쪽 팔꿈치 통증에도 팀 최다 178⅓이닝을 던졌지만, 9승 12패, 평균자책점 2.93을 기록했다.
2012년, 5년 연속 개막 투수를 맡았지만,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와의 개막전에서 4⅔이닝 5실점으로 패전 투수가 되었다. 개막 3경기 3패, 평균자책점 7.71로 부진하여 2군 강등 후 마무리 투수로 조정을 거쳐 5월 4일 1군 복귀, 13일 닛폰햄전에서 프로 첫 세이브를 기록했다. 그러나 여성 문제로 5월 22일 출장 선수 등록이 무기한 말소되었다. 6월 22일 1군 복귀 후 마무리 투수로 고정, 8월 말부터 9월 초까지 6연전에서 5세이브를 기록하는 등 팀의 막판 추격에 기여했다. 55경기(3선발) 1승 5패 3홀드, 평균자책점 3.71, 리그 2위 30세이브를 기록했다.
2013년, WBC 대회 후 여성 문제로 구단으로부터 엄중 주의를 받았다. 선발 조정 부족으로 개막 6번째 경기인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전에 첫 등판, 6이닝 1실점으로 2년 만에 선발승을 거두었다. 개막 3연승을 기록했지만, 6이닝을 채우지 못하고 강판되는 경기가 이어졌고, 5월 19일 한신 타이거스전에서 3⅔이닝 6실점(자책점 3)으로 부진하여, 구원 투수로 보직이 변경되었다. 6월 27일 소프트뱅크전 선발 기회에서 2⅔이닝 7안타 5실점으로 부진, 2군 강등되었다. 7월 27일 오릭스 버펄로스전 선발 등판에서 6이닝 7안타 5실점으로 패전 투수가 되었고, 데니스 사파테의 부상 이탈로 다시 구원 투수로 변경되었다. 8월 9일 오릭스전에서 시즌 첫 세이브를 기록했고, 13일 오릭스전 선발 등판에서 4이닝 5실점, 20일 롯데전에서 1⅓이닝 3실점으로 부진하여 구원 투수로 기용되는 것이 결정되었다. 9월 25일부터 매 경기 등판, 10월 1일 롯데전부터 마무리 투수를 맡았다. 6일 닛폰햄전에서 팀 10경기 연속 등판, 6일 연속 세이브(6경기 연속 세이브는 사상 5번째 프로 야구 타이 기록, 6일 연속 달성은 사상 2번째)를 기록, 팀의 CS 진출에 기여했다. 45경기(11선발) 5승 7패 13홀드 7세이브, 평균자책점 3.90, 선발 평균자책점 5.70으로 부진했다.
3.1.1. 2005년: 프로 데뷔
, 와쿠이 히데아키는 고졸 신인임에도 불구하고 개막 로테이션에 진입했다. 3월 29일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와의 경기에서 프로 첫 등판 및 선발을 기록했지만, 다카하시 신지에게 만루 홈런을 허용하는 등 2⅓이닝 7안타 2사사구 7실점으로 프로 첫 패전을 기록했다. 이후 4월 5일 지바 롯데 마린스와의 경기에서도 3이닝 5실점으로 패전 투수가 되면서 선발 로테이션에서 제외되었다.
5월 15일 요미우리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 약 1개월 만에 1군 선발로 등판했고, 이어진 29일 히로시마 도요 카프와의 경기에서는 승패를 기록하지 못했지만 6⅔이닝 1안타 1사사구 7탈삼진 무실점으로 호투했다. 이후 선발 로테이션의 한 축을 담당하며, 6월 18일 야쿠르트 스왈로스와의 경기에서 6이닝 1실점 호투로 프로 첫 승리를 거두었다. 그러나 호투한 경기에서 타선의 득점 지원이 부족했고, 7월 31일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와의 경기에서 3연패를 기록하면서 다시 선발 로테이션에서 제외되어 8월 이후 1군 등판은 1경기에 그쳤다.
와쿠이는 루키 시즌 동안 1군에서 13경기에 선발 등판하여 1승 6패, 평균자책점 7.32를 기록했다. 2군에서는 9경기에 등판하여 4승 1패, 평균자책점 2.60을 기록했으며, 이스턴 리그 우수 선수상을 수상했다.
스미타니 긴지로와 함께 10대끼리 배터리를 구성하여 '10대 배터리'라고 불릴 정도로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3월 26일 오릭스 버펄로스와의 경기에서 스미타니와의 콤비로 승리 투수가 되었고, 4월 23일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와의 경기에서는 스미타니와의 배터리로 자신의 첫 완투승과 완봉승을 기록했다. 10대 배터리로서 승리 투수가 된 것은 1989년 요코하마 다이요 웨일스의 이시이 다다노리-다니시게 모토노부 이후 17년 만이었다.
6월에는 리그 1위의 평균 자책점과 3승 1패의 성적으로 자신의 첫 월간 MVP를 수상했고, 감독 추천으로 올스타전에 처음으로 출전했다. 8월 19일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와의 경기에서는 '세이부 라이온스 발족 이래 퍼시픽 리그 공식전 통산 2000승째'의 승리 투수가 되었다.
3.1.2. 2006년: 선발 로테이션 정착
涌井 秀章일본어는 2006년에 선발 로테이션에 정착하여 고졸 신인인 스미타니 긴지로와 함께 10대 배터리를 구성하여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3월 26일 오릭스 버펄로스와의 경기에서 스미타니와 함께 승리 투수가 되었고, 4월 23일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와의 경기에서는 첫 완투승과 완봉승을 기록했다. 10대 배터리로서 승리 투수가 된 것은 1989년 요코하마 다이요 웨일스의 이시이 다다노리-다니시게 모토노부 이후 17년 만이었다.
6월에는 리그 1위의 평균 자책점과 3승 1패의 성적으로 월간 MVP를 수상했고, 감독 추천으로 올스타전에 처음 출전했다. 8월 19일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와의 경기에서는 '세이부 라이온스 발족 이래 퍼시픽 리그 공식전 통산 2000승째'의 승리 투수가 되었다.
오프에는 부상으로 출전을 포기한 후쿠도메 고스케를 대신하여 미일 야구 대회 대표팀 선수로 발탁되어 1이닝을 호투했고, 저메인 다이는 "언젠가 메이저 리그에서 통할 것 같은 훌륭한 투수였다"라고 평가했다.
데뷔 초 속구 중심의 투구에서 타자에게 공을 치게 한 후 아웃을 잡는 투구폼으로 변경하여 꾸준히 승리를 쌓았다. 4월 3일 소프트뱅크전에서는 일본 프로 야구 역대 12번째로 1이닝 4탈삼진을 달성했고, 최종적으로 17승을 올려 다승왕 타이틀을 획득했다. 양대 리그 최다인 213 투구 이닝과 199개의 피안타를 기록했고, 완투 11개는 리그 2위였다.
12월에는 베이징 올림픽 출전이 걸린 아시아 예선 결승 리그 일본 대표팀에 다르빗슈 유와 함께 최연소로 선출되어 첫 경기 선발을 맡아 필리핀을 상대로 6이닝 1피안타 무실점으로 호투했다. 재계약 협상 때 구단 측의 등번호 '18'번 변경 제안을 거절했는데, "투수의 타이틀을 모두 획득할 정도가 아니라면 바꿀 수 없다"라는 등번호 18번의 중요성과 세이부 투수진 선배들에 대한 경의를 이유로 들었다.
2006년 시즌의 기록은 다음과 같다.
| 년 도 | 나 이 | 리 | 그 | 완 투 | 완 봉 | 승 리 | 승 률 | 투 구 회 | 탈 삼 진 | 방 어 율 |
|---|---|---|---|---|---|---|---|---|---|
| 2006 | 20 | 3위 | 5위 | 5위 | 6위 | 6위 | 4위 | 6위 | - |
* 굵은 글씨는 규정 투구 회수 도달 연도
3.1.3. 2007년: 다승왕 타이틀 획득
涌井 秀章일본어는 2007년 시즌 종료 후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출전을 위한 아시아 예선 결승 리그의 일본 대표팀 멤버로 선출되었다. 12월 1일 필리핀과의 첫 경기에 선발로 출장하여 6이닝 1피안타 무실점의 호투로 승리 투수가 되었다.
이 경기 선발로 발탁되기 위해 호시노 센이치 감독이 머물던 방으로 불려갔을 때, 와쿠이 본인은 대표팀에서 제외된 것으로 착각하고 "가고 싶지 않습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재계약 협상 때 구단 측으로부터 등번호를 ‘18’번으로 변경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았지만, 이를 거절했다. 그 이유는 “투수의 타이틀을 모두 획득할 정도가 아니라면 바꿀 수 없다”라는 등번호 18번의 중요성과 ‘세이부가 되고 나서 16번을 착용한 것은 3명(마쓰누마 마사유키, 시오자키 데쓰야, 와쿠이)뿐’이라고 세이부 투수진의 한 축을 담당했던 등번호 16번의 선배들에 대한 존경심을 들었다.
3.1.4.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출전
2008년, 와쿠이는 커리어 처음으로 라이온스의 시즌 개막전 선발 투수로 지명되었다. 3월 20일 버팔로스를 상대로 시즌 개막전에 등판했지만, 140개의 공을 던지며 8이닝 동안 2점만 허용했음에도 패전을 기록했다.
와쿠이는 올림픽에 출전할 국가대표팀에 선발되어 8월 14일 조별 리그에서 중화 타이베이를 상대로 선발 등판하여 6이닝 동안 1실점으로 막아내며 승리를 거두었다. 8월 19일 중국을 상대로 2안타 완봉승(콜드 게임으로 인해 7이닝)을 기록하며 이 기세를 이어나갔다. 그러나 정규 시즌에서는 10승 11패, 평균자책점(ERA) 3.90, 이닝당 출루 허용률(WHIP) 1.29로 부진한 한 해를 보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와쿠이는 파이터스와의 퍼시픽 리그 클라이맥스 시리즈 (플레이오프) 1차전과 5차전에 등판하여 두 경기 모두 승리했고, 15이닝 동안 단 1점만 허용했다. 특히 5차전에서는 7회 2아웃까지 단 한 명의 주자도 내보내지 않았고, 3안타 완봉승으로 라이온스의 일본 시리즈 진출을 확정지었다. 와쿠이는 퍼시픽 리그 클라이맥스 시리즈 MVP로 선정되었다. 일본 시리즈에서는 3경기에 출전하여 1차전과 5차전에 선발 등판했고, 2일 휴식 후 7차전에 구원 등판하여 라이온스의 우승에 기여했다(16⅓이닝 6실점).
2008년 정규시즌에 앞서 와쿠이는 전 해에 140km/h를 넘는 스트레이트가 적었던 점을 감안하여 자율 훈련부터 구속 향상에 힘썼고, 개막 전 실전에서는 실점이 많았지만, 개막 투수로 지명되었다. 오릭스와의 개막전에서 8이닝 2실점(자책점 1)으로 호투했지만 패전 투수가 되었다. 그 후에도 타선의 득점 지원이 없거나, 구원 투수진이 리드를 지켜내지 못해 승리를 얻지 못했고, 시즌 첫 승리는 4월 10일 롯데전이었다. 3, 4월에는 2승 3패로 패가 앞섰고, 5월 이후에는 컨디션이 좋지 않은 투구가 이어졌다. 베이징 올림픽에서 귀국 후에는 컨디션이 떨어졌다.
포스트 시즌을 위해 제구력을 중시했던 팔의 스윙을 단련했고, 리그 우승을 달성한 팀은 CS 2차전 1차전에 와쿠이를 선발 등판시켜 6이닝 1실점 호투로 승리 투수가 되었다. 4일 간격을 두고 5차전에도 선발 등판하여 완봉승을 거두며 시리즈 MVP를 차지했다. 요미우리 자이언츠와의 일본 시리즈 1차전에서 8이닝 1실점 호투로 승리 투수가 되었고, 5차전에서는 7이닝 5실점으로 패전 투수가 되었지만, 이틀 간격을 두고 7차전 5회 말부터 구원 등판하여 2이닝 무실점으로 막아 팀의 일본 시리즈 우승에 기여했다. 아시아 시리즈 결승전 퉁이 라이온스전에서 선발 등판하여 6⅔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아 우승에 기여했다.
2008년 8월, 베이징 올림픽 야구 일본 대표로 선출된 와쿠이는 대만전과 중국전에 선발 등판하여 모두 승리 투수가 되었다. 대한민국전에서는 2점 뒤진 8회 초 도중부터 구원 등판했으나, 팀의 실책으로 2점을 더 실점했다. 원래 순서대로라면 다르빗슈가 구원 등판할 예정이었고, 와쿠이는 한 번 몸을 풀고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급하게 예정이 변경되었지만, 불펜의 전화가 고장나 벤치의 지시가 전달되지 않아 준비 부족 상태에서 등판하게 되었다고 오노 유타카가 나중에 밝혔다.
3.1.5. 2009년: 사와무라 에이지상 수상
2009년, 와쿠이 히데아키는 27경기에 선발 등판하여 11완투, 4완봉, 16승 6패, 평균자책점 2.30, 199탈삼진, 승률 .727을 기록했다. 특히 11완투, 211 2/3이닝, 3555투구는 양대 리그 최다 기록이었다. 4완봉은 퍼시픽 리그 1위, 평균자책점은 2위, 199탈삼진은 2위, 승률 .727은 3위였다. 이러한 성적을 바탕으로 와쿠이는 두 번째 최다 승리 타이틀을 획득했다.
시즌 초반, 마무리 투수였던 알렉스 그래먼이 왼쪽 어깨 부상으로 이탈하여 수술을 받고 시즌 아웃되었고, 그를 대신해 마무리 투수를 맡았던 오노데라 치카라도 부진으로 2군으로 강등되는 등, 세이부 라이온스는 구원진 불안에 시달렸다. 이러한 상황에서 와쿠이는 선발 등판한 27경기 중 단 3경기에서만 6이닝 미만으로 강판되는 등, 팀의 에이스로서 굳건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와쿠이는 12개 구단 투수 중 유일하게 사와무라 상 선정 기준 7개 항목을 모두 충족하여 사와무라 상을 수상했고, 최우수 배터리상과 골든 글러브상도 함께 수상했다.
시즌 후, 와쿠이는 출신지인 마쓰도 시의 시민 영예상을 수상했고, 통산 승수에 따라 시에 기부하는 것을 발표했다. 12월 15일에 진행된 계약 갱신 협상에서는 8000만 엔 증액된 추정 연봉 2억 엔을 제시받았지만 보류했다. 25일에는 대리인을 동석시켜 두 번째 계약 갱신 협상을 진행하여, 추정 연봉 2억 엔에 성과급을 더하는 조건으로 계약했다.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 출전할 국가대표팀에 선발되어, 3경기에 중간 계투로 등판하여 1승, 2.70 ERA를 기록하며 일본의 2회 연속 우승에 기여했다.
7월에는 4경기에 선발 등판하여 4승, 평균자책점 1.64의 좋은 성적으로 3년 만에 두 번째 월간 MVP를 수상했다.
감독 추천으로 2년 만에 올스타에 선출되어, 2차전에 선발 등판했다.
3.1.6. 2010-2013년
涌井 秀章일본어는 2010년에 3년 연속 개막 투수를 맡아, 롯데와의 개막전에서 8이닝 1실점 호투로 승리 투수가 되었다. 5월 15일 요코하마 베이스타스전에서는 7이닝 3실점, 타석에서는 4타수 3안타 4타점으로 프로 첫 맹타상을 기록했다. 에이스로서 개막부터 좋은 성적을 유지하는 팀을 이끌었고, 6월 25일 오릭스전에서 양 리그에서 가장 먼저 10승을 달성하며, 감독 추천으로 2년 연속 4번째 올스타에 선출되어, 2차전에 두 번째 투수로 등판했다. 전반기에는 선발 등판한 18경기 중 7이닝 미만으로 강판된 것은 불과 2경기였고, 리그 1위 타이인 11승(5패)을 기록했지만, 후반기에는 몸이 뜻대로 움직이지 않거나 다리에 쥐가 나는 등 피로의 영향이 뚜렷해져 좋지 않은 투구가 이어졌다. 그해 정규 시즌에서는 27경기에 선발 등판하여 14승 8패, 평균자책점 3.67, 피안타 191개(리그 최다 1위), 피홈런 21개(동 2위)의 성적을 기록했다. 롯데와의 CS 퍼스트 스테이지에서는 1차전에 선발 등판하여 8이닝 1실점 호투했지만, 팀은 패했다. 오프에 2년 연속 골든 글러브상을 수상했다. 계약 갱신에서는 협상이 난항을 겪었고, 대리인을 동석시킨 두 번째 협상에서도 사인에 이르지 못했다.
2011년 1월 13일자로 연봉 조정이 일본 야구 기구에 수리되었다. 구단 제시액은 현상 유지인 220, 와쿠이의 희망액은 50 증액된 270이었고, 양측에는 50의 차이가 있었지만, 통일 계약서에 기재된 금액은 33 증액(차액의 66%)된 253으로 와쿠이의 주장이 인정되는 결과가 되었다. 정규 시즌은 동일본 대지진의 영향으로 개막이 연기되었지만, 4월 12일 닛폰햄전에서 4년 연속 개막 투수를 맡아 8이닝 3실점으로 승리 투수가 되었다. 개막부터 4경기에 선발 등판하여 평균자책점 2.12를 기록했지만, 개막 전부터 오른쪽 팔꿈치 통증에 시달렸고, 5월 6일에 등록이 말소되었다. 정밀 검사에서는 유리 연골이 발견되었지만, 수술은 하지 않고 17일 요코하마전에서 1군으로 복귀했고, 복귀 후 3번의 선발 등판에서 모두 완투승을 거두었다. 그러나 투타가 맞물리지 않아 8월 종료 시점에서 최하위로 처져 있는 팀 사정으로, 그 후 4연패를 2번 경험했다. 그러나 9월 이후 4승을 기록하자, 팀은 4위 오릭스와 불과 1경기 차이로 CS에 진출했다. 닛폰햄과의 퍼스트 스테이지 1차전에서는 5이닝 2/3을 2실점으로 강판되었지만, 무승부여도 탈락이 결정되는 소프트뱅크와의 파이널 스테이지 3차전에서는 스기우치 도시야와 숨 막히는 투수전을 펼쳤다. 0-0으로 맞이한 연장 10회 초, 페르난데스가 스기우치의 127구째를 받아 적시 2루타를 쳐 선취점을 올렸고, 스기우치는 눈물의 강판을 했다. 곧바로 이어진 연장 10회 말 2사 2루, 풀카운트 상황에서 와쿠이가 던진 127구째를 하세가와 유야가 받아 동점 적시 2루타를 쳤다. 와쿠이도 눈물의 강판을 했고, 팀은 이 경기에서 패해 파이널 스테이지에서 탈락했다. 정규 시즌에서는 오른쪽 팔꿈치 통증에 시달리면서 팀 최다인 178이닝 1/3을 던졌지만, 9승 12패, 평균자책점 2.93의 성적을 기록했고, 오프에 43 감액된 추정 연봉 210으로 계약을 갱신했다. 또한, 포스트 시즌 종료 시점에 오른쪽 팔꿈치 수술을 결심했지만, 여러 병원을 방문한 결과 수술을 피하고 이듬해 개막을 목표로 하기로 했다.
2012년에는 오픈전에서 불안한 투구 내용이 이어졌고, 5년 연속 5번째 개막 투수를 맡았지만, 닛폰햄과의 개막전에서는 4이닝 2/3을 5실점으로 패전 투수가 되었다. 이어진 4월 7일 소프트뱅크전에서 7이닝 3실점, 15일 오릭스전에서 3이닝 4실점, 개막부터 3경기 3패, 평균자책점 7.71로 부진하여 무기한 2군 강등 통보를 받았다. 개막부터 마무리 투수를 맡고 있던 엔리케 곤잘레스의 부진으로 새로운 수호신 확립이 시급해진 팀 사정으로 인해, 수호신으로서 조정을 진행했고, 5월 4일에 곤잘레스와 교체되는 형태로 1군으로 승격되었다. 같은 날 롯데전에서 정규 시즌 첫 구원 등판을 하여 1이닝을 삼자범퇴로 막았고, 5월 13일 닛폰햄전에서 프로 첫 세이브를 기록했다. 하지만 5월 18일 발매된 사진 주간지 『프라이데이』에서 여성 문제가 발각되었다. 다음 날 19일 "이번 보도로 팬 여러분과 구단, 팀 동료들에게 걱정을 끼쳐 죄송합니다."라고 사과했지만, 5월 22일에 구단은 품격을 문제 삼아 와쿠이의 출장 선수 등록을 무기한으로 말소하는 것을 발표했다. 이이다 노리아키 전무는 이 건에 대해 "한 번, 생각할 시간과 장소를 갖도록 하겠다. 프로 야구 선수로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라고 이례적인 강등 이유를 설명했다. 6월 16일에 구단은 엄중 주의와 함께 징계를 해제하는 것을 발표했고, 6월 22일에 1군으로 승격하여, 같은 날 오릭스전에서 복귀 등판했다. 23일 같은 경기에서 복귀 후 첫 세이브를 기록했고, 그 후에는 마무리 투수로 고정되어, 고정 초반에는 불안정한 투구였지만, 7월에 들어서면서 스트레이트 구속이 빨라지고, 투구 내용도 안정되어 갔다. 8월 말부터 9월 초까지의 6연전에서 5세이브를 기록했고, 닛폰햄과의 우승 경쟁이 막바지에 이르자 이닝을 넘겨가며 등판하는 등 마무리 투수로서 풀 가동했다. 팀은 리그 우승을 놓쳤지만, 최대 빚 9, 선두에서 11경기 차이에서 따라잡는 데 기여했다. 이 해에는 55경기(3선발)에 등판하여 1승 5패 3홀드, 평균자책점 3.71, 리그 2위인 30세이브를 기록했다. 오프의 11월 6일에는 "사무라이 재팬 매치 2012「일본 대표 VS 쿠바 대표」"의 일본 대표로 선출되었고, 12월 4일에는 제3회 WBC의 일본 대표 후보 선수 34인에 선출되었다. 계약 갱신에서는 구단과의 2년 계약을 거절하고, 10 증액된 추정 연봉 220의 단년 계약에 사인했다.
2013년에는 WBC 대회 종료 후 WBC 일본 대표 합숙 중 여성 문제를 주간지에 보도받아, 3월 22일에 구단으로부터 엄중 주의를 받았다. 정규 시즌에서는 선발로서 조정 부족도 있어서, 개막 6번째 경기인 소프트뱅크전에서 시즌 첫 등판 첫 선발을 기록했고, 6이닝 1실점으로 2년 만에 선발 승리를 거두었다. 개막 3연승을 기록했지만, 6이닝을 채우지 못하고 강판되는 경기가 이어졌고, 5월 19일 한신 타이거스전에서는 3이닝 2/3을 6실점(자책점 3)으로 부진하여, 구원 투수로 보직이 변경되었다. 구원 투수에서는 부활하여, 6월 27일 소프트뱅크전에서 선발 기회를 얻었지만, 2이닝 2/3을 7안타 5실점으로 전혀 좋은 결과를 내지 못하고, 2군 강등이 결정되었다. 7월 27일 오릭스전에 선발 등판하여, 약 1개월 만에 1군 등판을 기록했지만, 6이닝 7안타 5실점으로 패전 투수가 되었고, 데니스 사파테의 부상 이탈도 있어서, 다시 구원 투수로 보직이 변경되었다. 8월 9일 오릭스전에서 시즌 첫 세이브를 기록하는 등 성과를 거두었고, 13일 오릭스전에 선발 등판했지만 4이닝 5실점했다. 마지막 기회였던 8월 20일 롯데전에서는 1이닝 1/3을 3실점으로 부진하여, 남은 시즌에서는 구원 투수로 기용되는 것이 결정되었다. 팀은 일시적으로 자력으로 CS 진출이 소멸되었지만, 9월 후반에 추격하여, 와쿠이는 9월 25일부터 매 경기 등판으로 풀 가동했고, 10월 1일 롯데전부터 마무리 투수를 맡게 되었다. 6일 닛폰햄전에서 팀 10경기 연속 등판, 6일 연속 세이브를 기록하여, 팀 6경기 연속 세이브는 사상 5번째 프로 야구 타이 기록, 6일 연속 달성은 사상 2번째였다. 10경기 연속 등판은 이나오 가즈히사를 넘어 구단 기록이 되었다. 이 경기에서 팀은 CS 진출을 결정했고, 10월 8일 롯데전에서는 와쿠이의 등판 기회는 없었지만, 8연승으로 정규 시즌 2위를 확정했다. 구원 투수로서 시즌 최종반의 역전극에 크게 기여했고, 이 해에는 45경기(11선발)에 등판하여 5승 7패 13홀드 7세이브, 평균자책점 3.90의 성적을 거두었지만, 선발 평균자책점 5.70으로 선발로서는 만족스럽지 못한 성적으로 마무리되었다.
3.2. 지바 롯데 마린스 시절 (2014-2019)
2013년 11월 19일 지바 롯데 마린스와 처음으로 입단 협상을 가졌고, 12월 18일 계약에 합의했다. 12월 25일에 입단 기자회견을 가졌으며, 등번호는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 입단 때와 마찬가지로 16번으로 결정됐다.
와쿠이는 2014년 지바 롯데에 입단하여, 2019년까지 뛰었다.
2014년에는 전반기 팀 부진으로 2군에 머물렀으나, 후반기에 반등하여 최종 8승 12패, 3년 만에 규정 투구 이닝을 채웠다. 4월 15일 세이부전에서 승리 투수가 되면서 지바 롯데 이적 후 첫 승리이자, 역대 13번째로 12개 구단 상대 승리 투수가 되었다.
2015년에는 27경기에 출전하여 14승 8패, 평균자책점 3.06, 151개의 탈삼진을 기록했다. 오타니 쇼헤이와 함께 통산 세 번째 다승왕 타이틀을 획득하였다. 7월 9일에는 오릭스 버팔로스를 상대로 노히트 노런을 달성했다.
2016년부터 2019년까지의 기록은 다음과 같다.
* 2016년: 25경기 10승 8패, 평균자책점 3.99, 122탈삼진, 51볼넷, 2완투, 1완봉. 부상으로 투구 이닝이 신인 시절 이후 가장 적었다.
* 2017년: 26경기 11승 7패, 평균자책점 3.81, 139탈삼진, 3완투, 1완봉, 172이닝.
* 2018년: 27경기 12승 8패, 평균자책점 3.69, 144탈삼진, 4완투, 1완봉, 181이닝.
* 2019년: 23경기 7승 11패, 평균자책점 4.47, 108탈삼진, 59볼넷, 1완투, 136이닝 (세이부 시절 두 번째 시즌 이후 가장 적은 이닝).
2015년부터 2019년까지의 수비 기록은 다음과 같다.
| 연도 | 구단 | 경기 | 자살 | 보살 | 실책 | 병살 | 수비율 |
|---|---|---|---|---|---|---|---|
| 2015 | 롯데 | 28 | 13 | 27 | 1 | 1 | .976 |
| 2016 | 26 | 9 | 44 | 1 | 3 | .981 | |
| 2017 | 25 | 9 | 33 | 0 | 1 | 1.000 | |
| 2018 | 22 | 8 | 30 | 1 | 3 | .974 | |
| 2019 | 18 | 2 | 14 | 0 | 1 | 1.000 |
3.2.1. 2014년: 전 구단 상대 승리 달성
4월 15일, 사이타마 현영 오미야 공원 야구장에서 열린 세이부와의 3차전에 선발 등판하여 7이닝 동안 5피안타 8탈삼진 1볼넷 2실점(투구수 110개)으로 호투하며 팀의 3대 2 승리를 이끌었다. 와쿠이는 이 경기에서 승리 투수가 되면서 지바 롯데 이적 후 첫 승리를 기록했다. 또한, 친정팀인 세이부에게서 승리를 따내면서 역대 13번째로 12개 구단 상대 승리 투수가 되었다. 2005년 교류전 도입 이후 이 기록을 달성한 10명 중 소속 구단이 2개 이상에서 달성한 것은 구보 야스토모, 이시이 가즈히사, 스기우치 도시야에 이어 역대 4번째였으며, 소속 리그에서만 달성한 것은 와쿠이가 사상 최초였다.
전반기에는 팀 부진으로 2군에 머물렀으나, 후반기에 반등하여 최종 8승 12패를 기록, 3년 만에 규정 투구 이닝을 채웠다.
3.2.2. 2015년: 통산 세 번째 다승왕
2015년에는 지바 롯데 마린스에서 좋은 투구를 이어갔다. 27경기에 출전하여 14승 8패, 평균자책점 3.06, 151개의 탈삼진을 기록했다. 오타니 쇼헤이와 함께 세이부 시절인 2009년 이래 6년 만이자 자신으로서는 통산 세 번째인 다승왕 타이틀을 획득하였다. 그는 퍼시픽 리그에서 최다승과 최다 이닝(194.1이닝)을 기록했고, 평균자책점과 탈삼진에서 2위를 기록했다. 또한 4개의 완투와 2개의 완봉승을 거두었으며, 7월 9일에는 오릭스 버팔로스를 상대로 노히트 노런을 달성했다. 그는 통산 6번째 올스타팀에 선정되었고, 두 번째 베스트 나인상을 수상했다.
* 굵은 글씨는 골든 글러브상 수상 연도
* 최다 승리: 4회 (2007년, 2009년, 2015년, 2020년) ※ 퍼시픽 리그 타이 기록 (다른 선수는 이나오 카즈히사, 노모 히데오). 3개 구단(세이부, 롯데, 라쿠텐), 3개의 시대(2000년대, 2010년대, 2020년대)에서 수상은 사상 최초.
3.2.3. 2016-2019년
2016년, 와쿠이는 25경기에 출전해 10승 8패, 평균자책점 3.99를 기록하며 다소 하락한 성적을 보였다. 122개의 탈삼진과 51개의 볼넷을 기록했고, 2개의 완투와 1개의 완봉승을 거두었다. 부상으로 인해 투구 이닝이 158.2이닝으로 줄었는데, 이는 신인 시절 이후 가장 적은 기록이었다. 이 해에는 올스타팀과 개인상 수상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2017년에는 26경기에 출전하여 11승 7패, 평균자책점 3.81, 139개의 탈삼진을 기록하며 반등했다. 3개의 완투와 1개의 완봉승을 거두었고, 172이닝을 소화했다. 통산 7번째 올스타팀에 선정되었고, 세 번째 베스트 나인상을 수상했다.
2018년에는 27경기에 출전하여 12승 8패, 평균자책점 3.69, 144개의 탈삼진을 기록하며 좋은 활약을 이어갔다. 4개의 완투와 1개의 완봉승을 거두었고, 181이닝을 소화했다. 통산 8번째 올스타팀에 선정되었고, 네 번째 베스트 나인상을 수상했다.
2019년은 지바 롯데 마린스에서의 마지막 시즌이었다. 와쿠이는 23경기에 출전하여 7승 11패, 평균자책점 4.47로 부상과 기복 속에 시즌을 마쳤다. 108개의 탈삼진과 59개의 볼넷을 기록했으며, 1개의 완투를 기록했지만 완봉승은 없었다. 136이닝을 소화했는데, 이는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 시절 두 번째 시즌 이후 가장 적은 이닝이었다. 이 해에는 올스타팀과 개인상 수상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3.3.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시절 (2020-2022)
2019년 12월 19일, 지바 롯데 마린스는 와쿠이 히데아키를 현금 트레이드로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로 이적시켰다. 12월 23일, 구단은 와쿠이의 입단 기자 회견을 열었다.
3.3.1. 2020년: 3개 구단 다승왕 달성
2019년 12월 19일에 금전 트레이드로 라쿠텐으로 이적이 결정되었다. 등번호는 16번이다.
2020년, 춘계 캠프에서 고야마 신이치로 투수 코치가 현역 시절에 던지던 싱커를 습득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의 영향으로 120경기제의 단축 시즌이 되었고, 개막도 6월로 연기되었지만, 개막 로테이션에 합류하여 6월 24일 닛폰햄전에서 이적 후 첫 등판, 첫 선발 투수로 나섰다. 7이닝 4피안타 2실점으로 호투하며 이적 후 첫 승리를 거두었고, 6, 7월에는 6경기에 선발 등판하여 평균자책점 2.89, 리그 1위의 5승, 탈삼진율 9.88의 좋은 성적을 기록, 본인 통산 4번째이자 4년 만의 월간 MVP를 수상했다. 퍼시픽 리그 3개 구단에서의 월간 MVP 수상은 사상 최초였다. 8월 5일 소프트뱅크전에서는 9회 1사까지 무안타 무실점의 호투를 선보였다. 가와시마 게이조에게 중전 안타를 허용하여 노히트 노런은 놓쳤지만, 그 1안타만 허용하여 이적 후 첫 완봉승을 거두었고, 그 후에도 연승을 이어가 같은 달 19일 닛폰햄전에서는 8이닝 1실점의 호투로 개막 8연승을 달성했다.
시즌 최종반에는 부진했지만, 이 해에는 시즌 내내 선발 로테이션을 지켜 2년 만에 규정 이닝에 도달, 20경기 선발로 리그 3위의 130이닝을 던졌고, 11승 4패, 평균자책점 3.60을 기록했다. 센가 고다이, 이시카와 슈타와 함께 본인 통산 5번째이자 4번째 다승왕 타이틀을 획득하여, 3개 구단에서의 다승왕 획득은 NPB 사상 최초의 쾌거가 되었다.
3.3.2. 2021-2022년
涌井 秀章일본어는 2021년에 본인 통산 3년 만이자 10번째 개막 투수로 지명되었으며, 퍼시픽 리그 3개 구단에서의 개막 투수는 사상 최초였다. 닛폰햄과의 개막전에 선발 등판하여 7이닝 4피안타 무실점으로 승리 투수가 되어, 3개 구단에서의 개막전 선발 승리 투수는 사상 최초의 쾌거였다. 3, 4월에는 6경기에 선발 등판하여 평균자책점 1.51, 팀 1위의 4승으로 좋은 성적을 내어 팀 선두의 원동력이 되었고, 본인 5번째 월간 MVP를 수상했다.
그러나 5월에는 4경기에 선발 등판하여 1승 3패, 평균자책점 8.27, 6월에는 3경기에 선발 등판하여 1승 2패, 평균자책점 6.35로 부진하여, 6월 19일에 출장 선수 등록이 말소되었다. 7월 3일의 롯데전에서 1군으로 승격되었고, 승패는 기록되지 않았지만 6이닝 2실점으로 호투했다. 다만, 이어진 10일의 세이부전에서는 3이닝 6실점, 도쿄 올림픽에 의한 중단 기간 이후의 2선발에서는 모두 2이닝에서 강판되었고, 8월 23일에 다시 출장 선수 등록이 말소되었다. 10월 15일에 중간 계투로 1군에 승격되어 4경기에 등판하여 평균자책점 2.25를 기록했지만, 이 해에는 21경기(17선발) 등판하여 6승 8패, 평균자책점 5.04라는 성적으로 마무리했다. 오프에 50 감액된 추정 연봉 110으로 계약을 갱신했다.
2022년에는 개막을 2군에서 맞이했지만, 4월 1일에 노리모토 다카히로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양성 반응으로 선발 등판을 회피하여 급히 1군으로 승격되었다. 같은 날의 소프트뱅크전에서 시즌 첫 등판 첫 선발이 되었고, 타선의 지원이 없어 패전 투수가 되었지만 6이닝 1실점으로 호투했다. 이어진 4월 9일의 닛폰햄전에서 시즌 첫 승리를 거두었고, 5월 4일의 닛폰햄전에서는 2년 만의 완투승으로 본인 3연승을 기록했다. 다음 날 5일 팀 사정으로 출장 선수 등록이 말소되었고, 2군에서의 조정 등판을 거쳐, 5월 18일의 롯데전에 선발 등판했지만, 4회 선두 타자 나카무라 쇼고의 투수 땅볼이 오른손 중지 부위에 맞아서 부상으로 강판되었다. 검사 결과 오른손 중지 골절로 진단되었고, 볼트 3개를 삽입하는 고정 수술을 받았다. 비슷한 부상으로 선수 생활에 복귀한 프로 야구 선수의 예는 드물고 선수 생명이 위협받는 큰 부상이었지만, 8월 10일의 2군 경기에서 실전 복귀, 9월 8일의 소프트뱅크전에서 1군 복귀를 이루었고, 6이닝 3피안타 2실점으로 승리 투수가 되었다. 이 해에는 10경기 선발 등판하여 4승 3패, 평균자책점 3.54라는 성적을 거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