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다 쓰요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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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와다 쓰요시는 일본의 야구 선수로, 투수 포지션에서 활약했다. 고등학교 시절 전국 대회 출전, 대학 시절에는 도쿄 6대학 리그에서 탈삼진 기록을 경신하며 주목받았다. 2002년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에 입단하여 신인왕을 수상했고, 2003년 일본 시리즈에서 완투승을 거두며 우승을 이끌었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획득했으며, 이후 메이저 리그 볼티모어 오리올스, 시카고 컵스에서 활동했다. 2016년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로 복귀하여 다승왕을 차지했고, 2020년에는 리그 우승 결정전 승리 투수가 되었다. 2024년 은퇴를 발표하기까지, 일본 프로 야구에서 다승왕 2회, MVP 1회를 수상하며 활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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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다 쓰요시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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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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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와다 쓰요시 |
원어 이름 | 和田 毅 |
로마자 표기 | Wada Tsuyoshi |
출생일 | 1981년 2월 21일 |
출생지 | 아이치현 고난시 |
신장 | 179cm |
체중 | 80kg |
포지션 | 투수 |
투구 | 좌투 |
타석 | 좌타 |
선수 경력 | |
NPB 데뷔 | 2003년 4월 1일,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 |
MLB 데뷔 | 2014년 7월 8일, 시카고 컵스 |
NPB 마지막 경기 | 2024년 10월 1일,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
MLB 마지막 경기 | 2015년 9월 4일, 시카고 컵스 |
소속 팀 |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2003–2011) 시카고 컵스 (2014–2015)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2016–2024) |
드래프트 | 2002년 자유 획득 범위 |
등번호 | 21 |
기록 (NPB) | |
승-패 기록 | 160승 89패 |
평균자책점 | 3.18 |
탈삼진 | 1,901 (팀 기록) |
기록 (MLB) | |
승-패 기록 | 5승 5패 |
평균자책점 | 3.36 |
탈삼진 | 88 |
수상 내역 | |
주요 수상 | 일본 프로 야구 신인왕 (2003년) 일본 프로 야구 최우수 선수 (2010년) 골든 스피릿 상 (2006년) 퍼시픽 리그 베스트 나인 (2010년) 퍼시픽 리그 최다승 (2010년, 2016년) 퍼시픽 리그 승률 1위 (2016년) NPB 올스타 (2003년, 2004년, 2010년, 2011년, 2016년, 2023년) 일본 시리즈 우승 (2003년, 2011년, 2017년, 2019년–2020년) |
국가대표 경력 | |
올림픽 | 2004 아테네 동메달 |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 2006 샌디에이고 금메달 |
2. 프로 입단 전
와다 쓰요시는 아이치현 고난시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야구를 시작했다.[1] 1991년 가족과 함께 아버지의 고향인 시마네현 이즈모시로 이사했고, 시마네현립 하마다 고등학교에 진학했다.[1]
고등학교 2학년 여름, 전국 고등학교 야구 선수권 대회에 진출했으나, 아키타 상업고등학교와의 1차전에서 9회말 이시카와 마사노리에게 볼넷을 허용하며 끝내기 패배를 당했다. 이듬해 다시 전국 대회에 진출, 시바타 농업고등학교를 꺾고 8강에 올랐으나, 토요타 오타니 고등학교에 연장전 끝에 패했다. 와다는 상완 삼두근 부상에도 불구하고 "150km/h처럼 보였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인상적인 투구를 선보였다.
1998년 전국 고등학교 야구 선수권 대회에 참가한 와다는 마쓰자카 세대의 일원으로, 와세다 대학에 진학하여 인간 과학을 전공했다. 1학년 가을 도쿄 대학과의 경기에서 대학 무대에 데뷔, 투구 폼 교정을 통해 구속을 140km/h 이상으로 향상시켰다. 2학년 봄부터는 와세다 대학의 주축 투수로 활약하며 뛰어난 탈삼진 능력을 선보였다.
와세다 대학 시절의 상세한 활약은 "#와세다 대학 시절" 섹션을 참조하라.
2. 1. 유년 시절과 아마추어 야구 경력
와다는 1981년 야마가타현에서 태어났지만, 어린 시절은 아이치현 고난시에서 보냈다. 1987년 고난 시립 후지사토 초등학교 1학년 때 지역 야구팀인 "고난 단지 야구"에서 야구를 시작했다.[45][46] 초등학교 6학년 때 시마네현 이즈모시로 이사하여 이즈모 시립 제3중학교를 졸업했다.[45][46]1996년, 아버지의 친가가 가깝고 니타 히토시 감독이 이끄는 시마네현 하마다시의 하마다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아버지 와다 히로시는 니혼체육대학 시절 수도 대학 야구 연맹 리그에서 수위 타자 1회, 베스트 나인에 2번 선정된 경력이 있었다. 와다 쓰요시의 친동생도 릿쿄 대학에서 활약한 후 2016년에 하마다 고등학교 야구부 감독으로 취임했다.[47] (2022년 현재는 시마네현립 시마네 중앙 고교 코치[48])
1997년 제79회 전국 고등학교 야구 선수권 대회에 2학년 에이스로 출전했다. 첫 경기에서 아키타 상업고교의 에이스 이시카와 마사노리와 맞붙었다. 3대 1로 앞선 9회말, 연속 안타를 맞아 무사 1, 2루 상황에서 3루수 앞 희생 번트 타구를 와다가 1루에 악송구했고, 이를 커버하던 우익수마저 악송구하여 주자 2명이 모두 홈을 밟아 동점이 되었다. 와다는 번트 타자까지 3루에 보내고, 이후 두 타자를 고의사구로 거른 뒤 만루 작전을 펼쳤지만, 이시카와 마사노리에게 스트레이트 볼넷을 허용하여 끝내기 밀어내기 패배를 당했다.[49]
1998년 제80회 전국 고등학교 야구 선수권 대회에서는 8강에 진출했다. 첫 경기에서 도카시 가즈히로-가토 겐 배터리의 신바타 농업고교를 꺾었다. 이어진 3회전에서는 모리모토 히초리가 있는 테이쿄 고교와 맞붙어 모리모토 히초리에게 홈런을 맞았지만, 3-2로 승리했다. 준준결승에서는 후루키 가쓰아키의 도요타 오타니 고교와 연장 10회까지 가는 접전 끝에 3-4로 패했다. 와다는 전년도 가을에 상완 삼두근 파열 부상을 입어 직구 구속이 120km/h대에 머물렀지만, 테이쿄 고교 선수들은 "150km/h로 보였다"고 말했다.[50]
1999년, 와세다 대학 인간 과학부에 진학했다. 1학년 가을인 9월 12일 도쿄 대학과의 경기에서 도쿄 6대학 리그 첫 등판을 기록했다. 와다는 동기생 트레이너와 함께 투구 폼을 개선하여 고교 시절 130km/h에도 미치지 못했던 구속을 2개월 만에 140km/h 이상으로 끌어올렸다. 2학년 봄부터 선발진에 합류하여 빠른 속도로 삼진을 잡아내며 주목받았다. 고교 시절에는 클린업 타자를 맡을 정도로 타격에도 재능을 보였다.
4학년이던 2002년에는 에가와 스구루가 보유한 도쿄 6대학 야구 연맹 통산 탈삼진 기록(443개)을 경신하고 476개까지 늘렸다. 와세다 대학의 '닥터 K'로 불리며 프로 구단들의 주목을 받았다. 이른바 '마쓰자카 세대'로 불리는 동년배 중에는 호세이 대학의 도이 류타로, 게이오기주쿠 대학의 오사다 슈이치로, 릿쿄 대학의 다다노 가즈토 등 뛰어난 투수들이 많았다.
와다는 에이스로서 와세다 대학의 52년 만의 춘계·추계 리그 연패에 기여하며 2시즌 연속 베스트 나인에 선정되었다. 후지이 슈고로부터 물려받은 등번호 18번을 와세다 대학 좌완 투수의 에이스 등번호로 정착시켰다. 리그 통산 62경기에 등판하여 27승 13패, 평균자책점 1.35, 476탈삼진을 기록했다. 통산 27승은 와세다 대학 좌완 투수 최다 기록이다. 와다의 성실한 연습 자세는 토리타니 다카시, 아오키 노리치카, 히가 히사미쓰, 요다 신타로 등 후배들에게 영향을 주었고, 이는 와세다 대학 야구부 사상 최초의 리그 4연패 달성의 원동력이 되었다.
같은 해 제51회 전일본 대학 야구 선수권 대회 결승에서는 키사라기 히로시, 나가카와 가쓰히로의 아시아대에 패했고, 제33회 메이지 신궁 야구 대회 준결승에서도 도호쿠 복지대에 패해 일본 제일의 꿈은 이루지 못했다.
2. 2. 와세다 대학 시절
와세다 대학 인간과학부에 진학한 와다 쓰요시는 1학년 때인 1999년 9월 12일, 도쿄 6대학 추계 리그의 도쿄 대학전에서 첫 등판했다. 동기생 트레이너와 함께 투구폼을 연마하여 고교 시절 130km/h에도 못 미쳤던 구속을 2개월 만에 140km/h를 넘길 정도로 향상시켰다.[234] 2학년 봄부터는 뛰어난 페이스로 삼진을 빼앗는 활약을 펼쳤다.2002년에는 에가와 스구루가 갖고 있던 도쿄 6대학 야구 연맹의 탈삼진 기록(443개)을 경신하고 통산 476개의 탈삼진을 기록했다.[2] 와세다 대학의 '닥터 K'라고 불리며 프로 구단들의 주목을 받았다. 한편, '마쓰자카 세대'라고 불리는 다른 대학의 투수들, 호세이 대학의 도이 료타로, 게이오기주쿠 대학의 오사다 슈이치로, 릿쿄 대학의 다다노 가즈히토 등과도 경쟁을 벌였다.
4학년 때는 에이스로서 와세다 대학이 52년 만에 춘계와 추계 리그 연패를 달성하는 데 기여했고, 2시즌 연속 베스트 나인에 선정되었다. 후지이 슈고로부터 물려받은 등번호 18번을 와세다 대학 좌완 투수의 에이스 등번호로 정착시켰다. 도쿄 6대학 리그 통산 62경기에 등판하여 27승 13패, 평균자책점 1.35, 탈삼진 476개를 기록했는데, 통산 27승은 와세다 대학 좌완 투수 최다 기록이었다. 와다의 연습 자세는 도리타니 다카시, 아오키 노리치카, 히가 도시미쓰, 요시다 신타로 등 후배 선수들에게 영향을 주었고, 이는 와세다 대학 야구부 사상 최초의 4연패 달성의 결정적인 이유 중 하나였다.
3. 프로 선수 경력
와다는 일본 프로 야구와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에서 활약한 좌완 투수이다.
;NPB
-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2003년~2011년, 2016년~)
;MLB
;국가 대표 경력
- 아테네 올림픽 일본 국가대표팀(2004년)
-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일본 국가대표팀(2006년)
- 베이징 올림픽 일본 국가대표팀(2008년)
와다는 2003년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에서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하여, 볼티모어 오리올스(2012~2013년)와 시카고 컵스(2014~2015년)를 거쳐 2016년 다시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로 복귀했다.
3. 1. 후쿠오카 다이에·소프트뱅크 호크스 시절 (2003년 ~ 2011년)
와다는 신인 시절(2003년)부터 호크스의 선발 로테이션 자리를 확보하여 좋은 활약을 펼쳤다.연도 | 주요 내용 |
---|---|
2003년일본어 | |
2004년일본어 | |
2005년일본어 | |
2006년일본어 | |
2007년일본어 | |
2008년일본어 | |
2009년일본어 | |
2010년일본어 | |
2011년일본어 |
3. 2. 메이저 리그 시절 (2012년 ~ 2015년)
2011년 11월 30일, 와다는 그 해에 취득한 해외 FA 권을 행사한다고 신청했고, 기자 회견에서는 메이저 리그의 모든 구단으로부터 선발 투수로 뛸 수 있는 것을 우선으로 이적할 팀을 찾고 싶다고 말했다.[235]2012년부터 2013년까지는 볼티모어 오리올스에서, 2014년부터 2015년까지는 시카고 컵스에서 활동했다.
3. 2. 1. 볼티모어 오리올스 (2012년 ~ 2013년)
와다는 2011년 12월 14일, 볼티모어 오리올스와 3년 차 옵션을 포함한 2년 계약에 합의했다.[17]2012년 5월 11일, 와다는 왼쪽 팔꿈치 인대 부분 파열로 토미 존 수술을 받았고, 2012년 시즌 남은 기간 동안 부상자 명단에서 보냈다. 2013년 시즌은 60일 부상자 명단에서 시작했으며, 2013년 6월 1일경 오리올스에 합류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와다는 2013년 5월 16일 노포크 타이즈에서 재활 훈련을 시작했다. 2013년 6월 14일, 60일 부상자 명단에서 복귀하여 노포크로 옵션이 실행되었다.[18]
3. 2. 2. 시카고 컵스 (2014년 ~ 2015년)

2014년 1월 24일, 와다는 시카고 컵스(Chicago Cubs)와 스프링 트레이닝 초청을 포함한 마이너 리그 계약을 체결했지만,[19] 3월 23일에 방출되었다.[117] 다음 날 컵스와 또 다른 마이너 리그 계약을 다시 체결했다.[118] 6월 22일에 메이저 계약을 체결하여 40인 로스터에 들어갔다.[120][121] 7월 8일 메이저에 승격하여[122][123] 같은 날 더블헤더 두 번째 경기였던 신시내티 레즈(Cincinnati Reds)전에 선발 등판하여 메이저 데뷔를 했다. 5이닝 동안 5피안타 무실점으로 호투했지만, 후속 투수가 역전당해 승패는 기록되지 않았다.[124] 7월 23일 샌디에이고 파드레스전에 선발 등판했지만, 4이닝 5피안타 5실점 4사사구로 부진하며 메이저 첫 패전을 기록했다.[128] 7월 28일 콜로라도 로키스전에서 7이닝 1실점으로 메이저 첫 승리를 거두었다.[129]
2014년 와다는 4승 4패, 평균자책점 3.25를 기록했다. 2014년 8월 24일 볼티모어 오리올스를 상대로 7회까지 노히터를 기록했다. 그는 솔로 홈런을 허용한 후 경기에서 교체되었으며, 이는 그가 허용한 유일한 안타였다. 컵스는 2-1로 승리했고, 와다는 승리 투수가 되었다.[20] 시즌 후 400만달러의 1년 계약을 체결했다.[20]
2015년에는 왼쪽 허벅지와 어깨 부상으로[135] 부상자 명단에 올랐고, 9월에 복귀했지만 불펜에서 투구했다.[21]
3. 3.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복귀 (2016년 ~ 2024년)
와다 쓰요시는 2016년 시즌을 앞두고 일본으로 돌아와 일본 프로 야구의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와 계약했다.[22] 2016년 정규 시즌 24경기에 등판하여 15승 5패, 평균자책점 3.04, 163이닝 157탈삼진을 기록하며 퍼시픽 리그 다승왕과 승률 1위를 차지했다.[23]2017년 5월 22일 팔꿈치 수술을 받고 3개월 동안 재활에 전념했다.[24] 8월 27일 복귀하여 지바 롯데 마린스를 상대로 투구했으며, 통산 1,500 탈삼진을 기록했다.[25] 2017년 정규 시즌에는 8경기에 등판하여 4승 0패, 평균자책점 2.49, 47이닝 동안 34탈삼진을 기록했다. 11월 1일, 2017년 일본 시리즈에서 선발 투수로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를 상대로 투구했다.
2018년 시즌은 왼쪽 어깨 통증 재활에 전념했다.[26]
2019년 6월 5일 복귀하여 일본 프로 야구 교류전에서 주니치 드래건스를 상대로 투구했다.[27] 2019년 정규 시즌에는 12경기에 등판, 4승 4패, 평균자책점 3.90, 이닝 동안 45탈삼진을 기록했다. 10월 23일, 2019년 일본 시리즈에서 선발 투수로 요미우리 자이언츠를 상대로 등판하여 2003년 신인 시절 이후 16년 만에 승리했다.[28]
2020년 10월 27일 지바 롯데 마린스와의 경기에서 선발 투수로 등판하여 6이닝 무실점으로 18년 선수 생활 처음으로 리그 챔피언십 승리 투수가 되었다. 39세의 나이로 거둔 승리는 NPB 역사상 최고령 승리 투수 기록이었다.[29] 2020년 정규 시즌에는 16경기에 등판하여 8승 1패, 평균자책점 2.94, 85.2이닝 동안 75탈삼진을 기록했다. 2020년 일본 시리즈에서 요미우리 자이언츠를 상대로 4차전에 선발 투수로 등판하여 팀의 4년 연속 일본 시리즈 우승에 기여했다.[30]
2021년 8월 19일, PayPay 돔의 23세 청소부가 그의 글러브를 훔쳐 돈을 받고 판매하는 사건에 연루되었다.[31] 시즌에서 와다는 호크스를 위해 18번 등판하여 83탈삼진, 평균자책점 4.48을 기록했다.
2022년 7월 19일, 스기우라 타다시가 보유한 호크스 투수 최다 탈삼진 기록(1,756개)을 경신했다.[32] 9월 30일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를 상대로 NPB 통산 150승을 달성했다.[33] 2022년 정규 시즌에는 17경기에 출장, 7승 4패, 평균자책점 2.78, 81이닝 동안 75탈삼진을 기록했다.
2023년 4월 5일, 42세 1개월의 나이로 승리 투수가 되어 1991년 이마이 유타로가 세운 41세 9개월의 종전 구단 최고령 승리 기록을 경신했다.[34] 7월 19일, 마이나비 올스타 게임 2023에 6번째로 출전하여 퍼시픽 리그 최고령 선수 출전 기록을 세웠다.[35] 2023년 정규 시즌에는 21경기에 등판하여 8승 6패, 평균자책점 3.24, 100이닝 동안 86탈삼진을 기록했다.
2024년에는 8경기에서 2승 2패를 기록하며 부상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정규 시즌 말에 구원 투수로 복귀했지만, 포스트 시즌에 출전하지 못하게 만든 왼쪽 다리 부상을 당했다. 2024년 11월 5일 은퇴를 발표했다.[36]
3. 4. 은퇴
2011년 12월 14일, 와다는 3년 차 옵션을 포함하여 볼티모어 오리올스(Baltimore Orioles)와 2년 계약을 맺었다.[17] 2012년 5월 11일, 왼쪽 팔꿈치 인대 부분 파열로 토미 존 수술을 받았고, 2012 시즌 잔여 기간 동안 부상자 명단에 있었다. 2013 시즌은 60일 부상자 명단에서 시작했으며, 2013년 6월 1일경 오리올스에 합류할 예정이었다. 5월 16일 노포크 타이즈(Norfolk Tides)에서 재활 훈련을 시작했고, 6월 14일 60일 부상자 명단에서 복귀하여 노포크로 옵트 아웃되었다.[18]2014년 1월 24일, 시카고 컵스와 스프링 트레이닝 초청을 포함한 마이너 리그 계약을 체결했지만, 3월 23일에 방출되었다. 다음 날 컵스와 또 다른 마이너 리그 계약을 체결했다. 6월 22일 트리플 A 아이오와 컵스에서 그의 계약이 선택되었고, 아이오와로 옵션되었다. 7월 8일 컵스로 다시 소환되었고, 그날 신시내티 레즈와의 더블헤더 두 번째 경기에 선발 출전했다.[19]
2014년 4승 4패, 평균자책점 3.25를 기록했다. 2014년 8월 24일 볼티모어 오리올스를 상대로 7회까지 노히트를 기록하다 솔로 홈런을 허용하며 교체되었는데, 이것이 그가 허용한 유일한 안타였다. 컵스는 2-1로 승리했고, 와다는 승리 투수가 되었다. 시즌 후 400만달러의 1년 계약을 체결했다.[20] 2015년 5월과 6월 동안 컵스에서 7번 선발 출전했지만, 어깨 부상을 입었다. 9월에 복귀하여 불펜 투수로 뛰었다.[21]
8경기에서 2승 2패를 기록하며 부상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정규 시즌 말 구원 투수로 복귀했지만, 포스트 시즌에 출전하지 못하게 만든 왼쪽 다리 부상을 당했다. 2024년 11월 5일 은퇴를 발표했다.[36]
4. 국가대표 경력
와다는 신인 시절인 2003년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에 일본 야구 국가대표팀의 일원으로 출전하여,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을 상대로 5⅓ 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아 2004년 하계 올림픽 출전권을 획득했다.[7]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 출전하여 야구 동메달 획득에 기여했다.[7] 캐나다를 상대로 2승(2004년 하계 올림픽 야구 예선에서 1승,[8] 2004년 하계 올림픽 야구 동메달 결정전에서 1승)을 거두며 12이닝 동안 단 2실점만 허용했다.
2008 베이징 올림픽에 일본 국가대표팀에 선발되었으나, 9⅓이닝 동안 6실점(5자책)을 기록하며 4.82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고 (13탈삼진), 대한민국, 쿠바, 미국에 이어 일본이 4위를 기록하는 요인 중 하나가 되었다.[11][12]
2009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의 국가대표 예비 로스터에 이름을 올렸으나,[13] 최종 28인 팀에서 제외되었다.[14]
제1회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의 일본 대표로 선출되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야구 일본 대표로 선출되었다.
그의 국가대표 경력은 다음과 같다.
- 2004년 하계 올림픽 야구 일본 대표
- 2006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일본 대표
- 2008년 하계 올림픽 야구 일본 대표
5. 플레이 스타일
와다는 독특한 투구폼을 가진 왼손 투수이다. 오버핸드 투구 궤적으로 공을 던지지만, 하체를 이용하여 투구판으로 전진하면서 던지는 팔을 뒤로 빼고 스윙을 늦춰 타자들을 속인다.[38] 팔로우 스루에 들어가서도 내디딘 발의 무릎을 닫는 안정된 하체를 가지고 있다.[187]
최고 구속 149km/h[236][237]의 스트레이트와 슬라이더, 체인지업, 커브를 던진다.[238] 슬라이더는 옆으로 움직이는 것뿐만 아니라 세로로 움직이는 것도 구사하며,[239] 2010년까지는 피타율이 1할 대를 기록하는 포크볼도 섞어 던졌다.[240][241] 투심도 던진다.[191]
스기우치 토시야는 와다의 공에 대해 "캐치볼을 했을 때의 충격은 잊을 수 없다. 깨끗한 회전으로 뻗어와서, 구속 이상으로 빠르게 느껴져서, 이건 치기 어렵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202]
통산 볼넷율은 2.46으로 스트라이크 존에 공을 모으는 능력이 있지만, 정반대의 방향으로 공이 가는 경우도 많아 구질이 다소 가벼워 홈런을 허용하기 쉬웠다.[237] 통산 탈삼진율은 8.27이며 탈삼진이 많아 “자신의 생명선은 스트레이트”라고 말했다.[242]
우에하라 고지의 공식 YouTube 채널에서 모리모토 히데키는 마쓰자카 세대에서 가장 강한 선발 좌투수로 와다의 이름을 언급했다.[204]
2006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일본 대표로 출전한 기록은 다음과 같다.
6. 수상 및 타이틀 경력
와다 쓰요시는 다승왕 2회(2010년, 2016년), 승률왕 1회(2016년), MVP 1회(2010년), 신인왕(2003년), 베스트 나인 1회(2010년) 등 화려한 수상 경력을 가지고 있다. 2006년에는 골든 스피릿상을 수상했고, 2010년에는 센트럴·퍼시픽 교류전 우수 선수로 선정되기도 했다. 아테네 올림픽 야구 동메달을 획득했다.[7]
6. 1. 타이틀
和田 毅|와다 쓰요시일본어는 2016년 일본 프로 야구 퍼시픽 리그에서 다승왕과 최고 승률 타이틀을 차지했다.[23]- 다승왕: 2회(2010년, 2016년)
- 최고 승률: 1회(2016년)
6. 2. 수상
연도 | 수상 내역 |
---|---|
2003년 | 신인왕, 일본 프로 스포츠 대상 최고 신인상, 올스타 게임 우수 선수상 (제1전)[217] |
2004년 | 올스타 게임 우수 선수상 (제2전)[218], 후쿠오카현 현민 스포츠 영예상[220], 후쿠오카시 스포츠 영예상[221] |
2006년 | 골든 스피릿 상, 후쿠오카시 스포츠 영예상[221], 후쿠오카현민 영예상 |
2008년 | 베스트 파더 옐로우 리본상 in 「프로 야구 부문」 |
2010년 | 다승왕, 최우수 선수, 베스트 나인 (투수 부문), 세・퍼 교류전 니폰생명상[216], 아사히 수퍼 드라이 베스트 플레이어즈 어워드 |
2016년 | 다승왕, 승률왕, 야나세・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MVP상[222] |
2023년 | HEROs AWARD 2023 선수 부문[223] |
2024년 | 퍼시픽 리그 연맹 특별 표창 (공로상)[219] |
2002년 | 마이니치 스포츠 대상 신인상 (아마추어 시절) |
6. 3. 국제 대회
아테네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획득했다.7. 개인 기록
와다 쓰요시는 프로 야구 선수로서 다음과 같은 기록들을 남겼다.
- 첫 등판 및 첫 선발: 2003년 4월 1일, 오사카 긴테쓰 버펄로스전(오사카 돔)
- 첫 탈삼진: 상동, 1회말 타피 로즈 상대 헛스윙 삼진
- 첫 승리 및 첫 선발 승리: 2003년 4월 9일,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전(기타큐슈 시민 구장), 6이닝 5피안타 무실점
- 첫 완투 승리 및 첫 완봉 승리: 2003년 4월 16일, 지바 롯데 마린스전(지바 마린 스타디움)
- 첫 안타: 2005년 5월 8일,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전(메이지 진구 야구장)
- 통산 1000 투구회: 2008년 9월 27일, 지바 롯데 마린스전(지바 마린 스타디움) (역대 316번째)
- 통산 1000 탈삼진: 2010년 3월 26일, 오릭스 버펄로스전(후쿠오카 돔) (역대 127번째)
- 통산 100승: 2011년 8월 3일, 오릭스 버펄로스전(교세라 돔 오사카)[245] (역대 130번째)
- 통산 1500 투구회: 2016년 5월 25일, 오릭스 버펄로스전(후쿠오카 야후오쿠! 돔) (역대 170번째)
- 통산 1500 탈삼진: 2017년 8월 27일, 지바 롯데 마린스전(후쿠오카 야후오쿠! 돔) (역대 51번째)
- 통산 150승: 2022년 9월 30일,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전(미야기 구장) (역대 50번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