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수복
1. 개요
왕수복은 평안남도 강동군 출신의 기생 출신 대중가요 가수로, 1933년 콜럼비아레코드에서 데뷔하여 '유행가의 여왕'으로 불리며 인기를 얻었다. 1936년 일본으로 건너가 서양 음악을 공부한 후 메조소프라노 가수로 활동하며 조선 민요를 불렀다. 소설가 이효석, 경제학자 김광진과 연인 관계였으며, 김광진과 결혼 후 월북하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활동했다. 1959년 공훈배우 칭호를 받았으며, 말년까지 활동하다 사망 후 애국렬사릉에 묻혔다.
| 이름 | 왕수복 |
|---|---|
| 본명 | 왕성실 |
| 출생 | 1917년 3월 5일 |
| 출생지 | 일제 강점기 평안남도 강동군 |
| 사망 | 2003년 6월 1일 |
| 사망지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평양 |
| 직업 | 가수 |
| 장르 | 민요, 신민요 |
| 악기 | 목소리 |
| 레이블 | 콜롬비아, 폴리도르 |
| 배우자 | 이효석, 김광진 |
| 한글 | 왕수복 |
|---|---|
| 한자 | 王壽福 |
| 로마자 표기 | Wang Subok |
| 활동 시기 | 1933년 ~ 1990년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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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남강동보통학교 동문 -
황장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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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가수 -
리경숙
리경숙은 1970년 평양 출생으로 보천보전자악단에서 활동을 시작하여 공훈배우 칭호를 받고 현재 김원균명칭 평양음악대학 교수로 재직하며 북한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가수이다.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가수 -
윤혜영 (가수)
윤혜영은 1988년 '비행사의 노래'로 데뷔하여 이름을 알린 대한민국의 가수로, 군가 '포병의 노래'와 북한 노래들을 불렀으며, 2010년 숙청설 이후 조선중앙TV에 출연하여 건재함을 과시했다. -
강동군 출신 -
이태희 (1911년)
이태희는 일제 강점기 고등문관시험에 합격한 법조인으로 해방 후 검찰총장, 이화여자대학교 법정대학장 등을 역임했으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에 포함되었다. -
강동군 출신 -
김대우 (1900년)
김대우는 일제강점기 관료이며 해방 및 정부 수립 이후의 활동 기록은 미상이다.
2. 생애
왕수복은 평안남도 강동군 출신으로 어린 시절 평양기생학교에서 기생 수업을 받았다. 1933년 가수로 데뷔하여 '유행가의 여왕'으로 불릴 만큼 큰 인기를 얻었다. 1936년에는 일본에서 서양 음악을 공부하고 메조소프라노 가수로 변신했다. 소설가 이효석, 경제학자 김광진과의 연애로도 유명하다. 1942년 이효석이 사망할 때 임종을 지켰고, 이후 김광진과 결혼하여 월북 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활동했다. 1959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공훈배우 칭호를 받았으며, 사후 애국렬사릉에 묻혔다.
2.1. 초기 생애 및 데뷔
평안남도 강동군 출신으로 편모 슬하에서 자랐다. 명륜여자공립보통학교 3학년 때 학업을 중단하고 평양기생학교에 입학하였다. 평양기생학교에서 노래, 춤, 음악, 의상 등 다양한 기예를 배웠으며, 1931년에 졸업하였다.
1933년 콜럼비아레코드에서 〈울지 말아요〉와 〈한탄〉을 취입하여 최초의 기생 출신 대중가요 가수가 되었다. 이듬해 데뷔한 선우일선과 함께 기생 출신 신민요 가수로 쌍벽을 이루었다. 1935년 《삼천리》에서 실시한 인기 투표에서 선우일선, 이난영, 전옥에 앞서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같은 시기에 인기 있었던 다른 가수로 이은파와 저고리 시스터즈가 있었다.
1934년 1월, 일본 NHK에서 주최하고 일본으로 송출된 최초의 한국어 라디오 방송에 경성방송관현악단과 함께 출연했다.
2.2. 전성기 활동
1933년 콜럼비아레코드에서 〈울지 말아요〉와 〈한탄〉을 취입하여 최초의 기생 출신 대중가요 가수가 되었다. 이듬해 데뷔한 선우일선과 함께 기생 출신 신민요 가수로 쌍벽을 이루었다. 1935년 《삼천리》가 실시한 인기 투표에서 선우일선, 이난영, 전옥에 앞서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유행가의 여왕'으로 불리며 인기 정상에 있던 1936년 일본으로 건너가 개인 교습으로 서양 음악을 공부했다. 이후 메조소프라노 가수로 변신하여 주로 조선 민요를 서양 성악 창법으로 불렀다. 당시 인터뷰에서 "최승희가 조선무용을 살린 것처럼, 나는 조선 민요를 많이 노래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2.3. 연애와 결혼
왕수복은 소설가 이효석의 연인이었으며, 평양에 있는 여동생의 커피숍에서 그를 만났다. 1942년 이효석이 사망할 때 임종을 지켰다. 이후 시인 노천명의 연인이었던 경제학자 김광진과 결혼하였다. 김광진이 월북했을 때 함께 평양에 남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정착했다.
2.4. 광복 이후 ~ 북한에서의 활동
1942년 이효석이 사망할 때 임종을 지켰고, 이후 시인 노천명의 연인이었던 김광진과 결혼하였다. 김광진이 월북했을 때 함께 평양에 남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정착했다.
1953년 중앙라디오 방송위원회 전속가수로 가수 활동을 재개한 뒤, 1955년에는 국립교향악단 성악가수가 되었다. 1959년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공훈배우 칭호를 수여받았으며, 말년까지 최고의 대우 속에 활동하고 사후에는 애국렬사릉에 묻혀 있다. 1965년 김광진과 함께 판문점을 관광하는 모습이 포착되어 대한민국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다. 1977년 그녀의 60번째 생일에 김일성이 생일 선물을 보냈고, 1997년 그녀의 80번째 생일에는 김정일이 생일 선물을 보냈다.
3. 평가 및 영향
왕수복은 최규성이 제작한 책과 전시회인 '걸그룹의 선조들'에 등장했는데, 이 책은 한국 최초의 가수들 중 일부였던 여성들을 묘사하며 한국에서 K팝 걸그룹의 인기를 예고했다.
4. 수상
1959년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공훈배우 칭호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