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충 (전한)
1. 개요
왕충은 전한의 인물로, 아버지 왕신의 뒤를 이어 갑후에 봉해졌다. 원수 6년에는 곽거병의 건의로 황자들의 지위를 논의하며 유굉, 유단, 유서를 제후왕에 봉할 것을 상주했다. 시호는 경이며, 아들 왕수가 작위를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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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행적
왕충(王充중국어)은 원광 3년(기원전 132년) 아버지 왕신의 뒤를 이어 갑후(蓋侯)에 봉해졌다.
원수 6년(기원전 117년), 대사마거기장군 곽거병은 무제에게 황자들이 장성하였으니 그에 걸맞은 지위를 내려줄 것을 건의하였다. 무제는 이를 허락하고 어사대부 장탕에게 일을 처리하게 하였다. 태상 왕충은 승상 장청적·어사대부 장탕·대행령 이식·태자소부 안과 함께 논의를 거쳐 유굉·유단·유서와 함께 왕충을 제후왕에 봉할 것을 상주하였다.
사후 시호를 경(頃)이라 하였고, 아들 왕수가 작위를 이었다.
2.1. 갑후 계승
원광 3년(기원전 132년), 아버지 왕신의 뒤를 이어 갑후(蓋侯)에 봉해졌다.
2.2. 제후왕 봉작 논의
원수 6년(기원전 117년), 대사마거기장군 곽거병은 무제에게 황자들이 장성하였으니 그에 걸맞은 지위를 내려줄 것을 건의하였다. 무제는 이를 허락하고 어사대부 장탕에게 일을 처리하게 하였고, 태상 왕충은 승상 장청적·어사대부 장탕·대행령 이식·태자소부 안과 함께 논의를 거쳐 유굉·유단·유서와 함께 왕충을 제후왕에 봉할 것을 상주하였다.
2.3. 사후
시호를 경(頃)이라 하였고, 아들 왕수가 작위를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