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교근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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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원교근공은 먼 나라와 동맹을 맺고 가까운 나라를 공격하는 외교 전략이다. 중국 전국 시대에 범저가 진 소양왕에게 제안하여 채택되었으며, 진나라는 이 전략을 통해 주변 국가들을 차례로 멸망시키고 중국 대륙을 통일하는 데 성공했다. 이 전략은 전근대 시대에 원거리와의 소통의 어려움과 월경지의 영토 유지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제시되었으며, 현대 외교에도 시사점을 던져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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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교근공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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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 |
구분 | 병법 |
내용 | 먼 나라와는 외교 관계를 돈독히 하고 가까운 나라는 공격하는 정책 |
관련 인물 | 범수 |
유래 | |
출전 | 사기 범수채택열전 |
원문 | 諸侯之地, 山東諸侯, 秦之魚肉也. 以秦之彊, 蠶食天下, 天下盡食, 而心弗厭. 夫 한, 위, 天下之咽喉也, 今우 선取한, 위, 拔其山東, 則 齊, 초 股, 齊, 초 股動, 則 諸侯 救之, 是以 害於 패王之大者也. 臣 竊以 爲지 計莫如厚交而박 伐, 陰탈 其割. 使 諸侯 歲獻 寸地, 以 爲秦 奉. लौटे後 秦之彊, 諸侯之 약, 入朝 拱手 而 歸恭, 懷畏 敬之心, 不敢 有反심, 則 패王之業 可成也. |
번역 | 여러 제후의 땅은 진나라의 고기와 같으니, 진나라의 강함으로 천하를 누에가 뽕잎을 먹듯 조금씩 차지하면 천하를 모두 차지하여도 만족하지 않을 것입니다. 저 한나라와 위나라는 천하의 목구멍과 같습니다. 지금 먼저 한나라와 위나라를 취하여 그 산동을 뽑으면 제나라와 초나라가 동요할 것이니, 제나라와 초나라가 동요하면 제후들이 구원할 것이므로 천하 통일에 해가 됩니다. 신이 생각하건대, 계책으로는 먼 나라와는 두터이 사귀고 가까운 나라는 쳐서 그 땅을 조금씩 빼앗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습니다. 제후로 하여금 해마다 땅을 바쳐 진나라에 바치게 하십시오. 이렇게 하면 진나라가 더욱 강해지고 제후는 더욱 약해져서, 진나라에 와서 공손히 조공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을 품고 감히 배반할 마음을 품지 못할 것이니 천하 통일의 위업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
내용 | |
설명 | 전국시대 진나라의 재상 범수가 소양왕에게 올린 진나라의 천하통일 전략이다. |
상세 내용 | 먼 나라와 외교 관계를 돈독히 하여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가까운 나라를 쳐서 영토를 넓히는 전략이다. |
장단점 | 장점: 국력을 소모하지 않고 영토를 넓힐 수 있다. 단점: 외교 관계를 유지하는 데 비용이 많이 들 수 있다. |
활용 | |
활용 사례 | 한신의 명수잔도(明修棧道 암도진창(暗渡陳倉) 국공내전 당시 마오쩌둥의 전략 |
참고 | |
반대되는 개념 | 근교원공 |
2. 유래 및 배경
중국의 전국 시대에는 여러 나라가 끊임없이 전쟁을 벌였지만, 많은 국가들이 분립되어 있었기 때문에 한 나라를 공격할 경우에는 여러 나라가 동맹을 맺어 공격하는 나라를 이중 전선 상태로 만들고, 한 나라를 공격한 후 얻은 전과를 분담하는 것이 관례였다. 전근대에는 원거리와의 긴밀한 연락을 확보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동맹 상대로는 자국과 인접한 국가가 선택되었다. 그러나 근린 동맹국과 공동으로 원거리의 타국을 공격하여 영토를 얻더라도, 월경지가 되는 경우가 많아 영토 유지가 어려워 결국은 바로 영토를 되찾게 되었다. 중국은 광대한 대륙 국가이므로, 월경지의 영토 경영·관리 방위는 본국으로부터 매우 어려웠다.
범저는 여러 나라를 유세하여, 처음 위의 대부로 섬겼지만, 다른 마음을 품었다고 의심받아 진으로 도망쳐 소양왕을 섬기며 '''원교근공'''을 설파했다. 즉, 먼 나라와 동맹을 맺어 인접한 나라를 공격하면, 그 나라를 멸망시켜 영토로 삼더라도 본국에서 가까우므로 방위 유지가 용이하다는 것이다. 이 방책에 감명을 받은 소양왕은 범저를 재상으로 삼아 국정을 맡겼다.
먼 제나 초와 동맹하고, 가까운 한, 위, 조를 공격한 진나라는 팽창을 거듭하여, 마침내 육국을 평정하고 중국 대륙의 통일을 이루었다.
이처럼 먼 상대와 손을 잡고 가까운 적을 처리하는 정책을 '''원교근공'''이라고 한다.
2. 1. 범수의 등장
2. 2. 진나라의 적용
전국 시대 중국에서는 여러 나라들이 끊임없이 전쟁을 벌였다. 많은 국가들이 분립되어 있었기 때문에 한 나라를 공격할 경우, 여러 나라가 동맹을 맺어 공격하는 나라를 이중 전선 상태로 만들고, 전과를 분담하는 것이 관례였다. 전근대에는 원거리와의 긴밀한 연락을 확보하기 어려워, 동맹 상대로 자국과 인접한 국가를 선택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근린 동맹국과 공동으로 원거리의 타국을 공격하여 영토를 얻더라도, 월경지가 되는 경우가 많아 영토 유지가 어려웠다.범저는 여러 나라를 유세하다 위의 대부로 섬겼지만, 다른 마음을 품었다고 의심받아 진으로 도망쳐 소양왕에게 '''원교근공'''을 설파했다. 먼 나라와 동맹을 맺어 인접한 나라를 공격하면, 그 나라를 멸망시켜 영토로 삼더라도 본국에서 가까우므로 방위 유지가 용이하다는 것이었다. 소양왕은 이 방책에 감명을 받아 범저를 재상으로 삼아 국정을 맡겼다.
진나라는 먼 제나 초와 동맹하고, 가까운 한, 위, 조를 공격하여 팽창을 거듭, 마침내 육국을 평정하고 중국 대륙의 통일을 이루었다. 이처럼 먼 상대와 손을 잡고 가까운 적을 처리하는 정책을 '''원교근공'''이라고 한다.
3. 사례: 진나라의 통일
범수는 위나라의 대부로 봉사했으나 다른 마음이 있다는 의심을 받자 진나라로 도주해 소양왕의 신하가 되어 원교근공론을 주장했다. 즉 먼 나라와 동맹을 맺고 인접국을 공격하면 빼앗은 영지가 본국에서 가깝기 때문에 방어 유지가 쉽다는 것이다. 이 방안에 감동한 소양왕은 범수를 승상으로 삼고 국정을 맡겼다.
전근대에는 일반적으로 자국과 인접한 국가와 동맹을 맺고 공동으로 원거리의 타국을 공격하여 영토를 얻더라도, 월경지가 되는 경우가 많아 영토 유지가 어려웠다. 중국은 광대한 대륙 국가이므로, 월경지의 영토 경영·관리 방위는 본국으로부터 매우 어려웠기 때문이다.
멀리 있는 제나라, 초나라와 동맹하고 가까이 있는 한나라, 위나라, 조나라를 공격한 진나라는 소양왕과 범수가 죽은 뒤에도 같은 전략 기조를 유지함으로써 팽창을 계속하여 이윽고 육국을 모두 평정, 중국 대륙의 통일을 이루었다.
4. 현대적 의의
4. 1. 한국 외교에의 시사점
4. 2. 비판적 검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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