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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만화 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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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월간만화 가로는 1964년 일본에서 창간된 청년 만화 잡지이다. 시라토 산페이와 나가이 카츠이치의 의기투합으로 창간되었으며, 시라토의 닌자 캐릭터에서 잡지명이 유래되었다. 《가로》는 상업성보다 작품성을 중시하고 신인 작가 발굴에 힘썼으며, 테즈카 오사무의 잡지 《COM》에 영향을 주기도 했다. 1971년 《카무이전》 완결 이후 매출 감소와 경영난을 겪었지만, 작가들과 독자들의 지지로 간행을 이어갔다. 1990년대 PC 소프트웨어 회사에 인수되었으나, 인터넷 시대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2002년 폐간되었다. 《가로》는 일본의 '예술' 만화 시사 역할을 했으며, 다양한 예술적 단계를 거치며 일본 만화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대표적인 작가로는 시라토 산페이, 미즈키 시게루, 츠게 요시하루 등이 있으며, 《카무이전》, 《키타로 야화》 등이 대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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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만화 가로 - [회사]에 관한 문서
개요
1974년 6월호 《가로》 표지
종류대안 만화 잡지
언어일본어
발행 주기월간
창간일1964년 7월
폐간일2002년 12월
국가일본
발행
회사세이린도
발행인나가이 가쓰이치

2. 역사

일본 최초의 청년만화지인 『월간만화 가로』는 대본만화 출판 등으로 알려져 있었던 편집자 나가이 카츠이치와 만화가 시라토 산페이의 의기투합으로 1964년 7월 24일 창간되었다.[33] 잡지의 제호는 시라토의 만화 「야마세」에 등장하는 닌자 “대마의 가로”에게서 비롯된 것이며, “우리들의 길(我路)”이라는 의미도 있었다.[33] 미국의 마피아 조이 갈로도 염두에 둔 것이라고 한다.[33] 나가이는 “집필자가 7명 이상 없으면 잡지로 인정받지 못했다”고 회고했는데, 창간 당시 미즈키 시게루와 시라토 산페이가 복수의 필명을 사용해 필진을 부풀려서 창간했다.[34] 처음에는 시라토의 붉은눈 프로덕션의 원조를 받아 간행되었다. 잡지 로고도 시라토가 고안했고, 레이아웃 대부분을 시라토가 구성했다. 표지 레이아웃은 주간지 『아사히 저널』을 의식해서 만들었다.[35]

1960년대의 『가로』는 시라토의 『카무이전』과 미즈키의 『키타로 야화』를 양대 기둥으로 삼아 100 페이지를 할애하고, 나머지 페이지는 츠게 요시하루, 타키타 유우, 츠리타 쿠니코, 나가시마 신지 등이 레귤러로 작품을 발표하는 형태였다.[34] 신인 발굴에도 주력했기에 매일같이 투고작이 청림당에 우편으로 날아들었다. 『가로』에 연재되는 『카무이전』에 자극받은 테즈카 오사무는 잡지 무시프로상사에서 잡지 『COM』을 창간하고 『카무이전』에 대항하는 『불새』를 연재했다.[35] 또한 『가로』는 당대 전공투 세대 대학생들에게 강한 지지를 받아갔다.[35]

『가로』는 상업성보다 작품성을 중시하고, 오리지널리티를 최우선으로 했기 때문에 편집자의 간섭이 비교적 적었다.[19] 하여 작가 측에서 자유롭게 작품을 발표할 수 있었고, 신인 발굴의 장으로서 독창적인 작품을 적극적으로 게재했다.[19] 이로 인하여 그동안 만화라는 표현을 선택한 적 없었던 아티스트들에게도 문호를 개방하는 결과가 되어, 이색적인 신인들이 속속 배출되었다.[19] 발간 3년차인 1967년에는 소학관에서 『카무이전』을 노리고 『가로』를 인수해서 자사의 남중고생 잡지 『보이즈라이프』와 통합하자는 이야기가 제기되었지만 파토로 끝났다.[19]

가이 가쓰이치는 마르크스주의 극화 작가 시라토 산페이의 작품을 홍보하고 싶어했으며, 잡지 이름은 시라토의 닌자 캐릭터 중 하나에서 따왔다.[3] 가이는 원래 이 잡지를 초등학생과 중학생들이 반군국주의와 직접 민주주의에 대해 교육받도록 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화와 함께 베트남 전쟁과 학교 점심 가격 상승에 반대하는 에세이를 게재했다.[4] 결국 대학생들에게 인기를 끌게 되었다.[5] 1965년부터, 특히 1967년부터 이 잡지는 형식과 주제가 파격적인 만화를 점점 더 많이 게재했다. 동시에, 잡지는 정치 교육 프로젝트를 포기했고, 잡지에 게재된 만화는 군국주의와 기업의 탐욕에 대한 비판을 유지했지만, 연재물은 라이언 홀름베르크에 따르면 점점 더 "사회 변화에 덜 전념"하게 되었다.[4] 『가로』의 1971년 최고 발행 부수는 8만 부 이상이었다. 이 잡지는 전공련과 정치적으로 연계되어 있었으며 좌익 학생 운동에서 큰 지지를 받았다.[5][6]

2. 1. 창간기 (1964년 ~ 1971년)

일본 최초의 청년만화지인 『월간만화 가로』는 대본만화 출판 등으로 알려져 있었던 편집자 나가이 카츠이치와 만화가 시라토 산페이의 의기투합으로 1964년 7월 24일 창간되었다.[33] 잡지의 제호는 시라토의 만화 「야마세」에 등장하는 닌자 “대마의 가로”에게서 비롯된 것이며, “우리들의 길(我路)”이라는 의미도 있었다.[33] 미국의 마피아 조이 갈로도 염두에 둔 것이라고 한다.[33] 나가이는 “집필자가 7명 이상 없으면 잡지로 인정받지 못했다”고 회고했는데, 창간 당시 미즈키 시게루와 시라토 산페이가 복수의 필명을 사용해 필진을 부풀려서 창간했다.[34] 처음에는 시라토의 붉은눈 프로덕션의 원조를 받아 간행되었다. 잡지 로고도 시라토가 고안했고, 레이아웃 대부분을 시라토가 구성했다. 표지 레이아웃은 주간지 『아사히 저널』을 의식해서 만들었다.[35]

1960년대의 『가로』는 시라토의 『카무이전』과 미즈키의 『키타로 야화』를 양대 기둥으로 삼아 100 페이지를 할애하고, 나머지 페이지는 츠게 요시하루, 타키타 유우, 츠리타 쿠니코, 나가시마 신지 등이 레귤러로 작품을 발표하는 형태였다.[34] 신인 발굴에도 주력했기에 매일같이 투고작이 청림당에 우편으로 날아들었다. 『가로』에 연재되는 『카무이전』에 자극받은 테즈카 오사무는 잡지 무시프로상사에서 잡지 『COM』을 창간하고 『카무이전』에 대항하는 『불새』를 연재했다.[35] 또한 『가로』는 당대 전공투 세대 대학생들에게 강한 지지를 받아갔다.[35]

『가로』는 상업성보다 작품성을 중시하고, 오리지널리티를 최우선으로 했기 때문에 편집자의 간섭이 비교적 적었다.[19] 하여 작가 측에서 자유롭게 작품을 발표할 수 있었고, 신인 발굴의 장으로서 독창적인 작품을 적극적으로 게재했다.[19] 이로 인하여 그동안 만화라는 표현을 선택한 적 없었던 아티스트들에게도 문호를 개방하는 결과가 되어, 이색적인 신인들이 속속 배출되었다.[19] 발간 3년차인 1967년에는 소학관에서 『카무이전』을 노리고 『가로』를 인수해서 자사의 남중고생 잡지 『보이즈라이프』와 통합하자는 이야기가 제기되었지만 파토로 끝났다.[19]

가이 가쓰이치는 마르크스주의 극화 작가 시라토 산페이의 작품을 홍보하고 싶어했으며, 잡지 이름은 시라토의 닌자 캐릭터 중 하나에서 따왔다.[3] 가이는 원래 이 잡지를 초등학생과 중학생들이 반군국주의와 직접 민주주의에 대해 교육받도록 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화와 함께 베트남 전쟁과 학교 점심 가격 상승에 반대하는 에세이를 게재했다.[4] 결국 대학생들에게 인기를 끌게 되었다.[5] 1965년부터, 특히 1967년부터 이 잡지는 형식과 주제가 파격적인 만화를 점점 더 많이 게재했다. 동시에, 잡지는 정치 교육 프로젝트를 포기했고, 잡지에 게재된 만화는 군국주의와 기업의 탐욕에 대한 비판을 유지했지만, 연재물은 라이언 홀름베르크에 따르면 점점 더 "사회 변화에 덜 전념"하게 되었다.[4] 『가로』의 1971년 최고 발행 부수는 8만 부 이상이었다. 이 잡지는 전공련과 정치적으로 연계되어 있었으며 좌익 학생 운동에서 큰 지지를 받았다.[5][6]

2. 2. 장기 침체기 (1971년 ~ 1990년)

1971년 시라토 산페이의 《카무이전》이 완결되면서 《가로》의 매출은 점차 하락세를 겪게 된다.[36] 당시 편집부의 미나미 신보, 와타나베 카즈히로 등은 "재미주의(面白主義)"를 제창하며, 만화라는 표현에 얽매이지 않는 지면 만들기를 추구했다. 그 결과, 서브컬처의 총본산적인 입장이 되었지만, 단행본 매출로 적자를 메꾸는 상황이 이어졌다.[36] 이 시기 대형 출판사들의 인수 제안이 있었으나 나가이 시게루는 이를 거절했다.[36] 한편, 《가로》를 의식해 창간된 테즈카 오사무의 《COM》은 1971년 말 폐간되었다.[36]

1980년대 들어 《가로》의 부수는 실매 3000부대로 떨어졌고, 버블 경제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목재상 창고 2층에 세들어 영업하는 경영난을 겪었다.[36] 직원들의 생활을 보장하기 어려울 정도로 경영이 악화되어, 원고료 지급이 정지되기도 했다. 다만, 생활이 어려운 만화가에게는 페이지당 500엔 정도를 지급하기도 했다.[36][22][23]

이러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나가이 사장을 지지하는 역대 작가진들의 정신적, 경제적 지원과 잡지 존속을 바라는 강한 목소리 덕분에 가늘고 길게 간행이 계속되었다.[36] 독자층은 일부 마니아, 지식인층, 서브컬처 팬들로 한정되었지만, 《가로》 입선을 등용문으로 여기는 투고자들이 많아 침체기에도 많은 유망주를 발굴했다.[36] 신입사원 모집 경쟁률도 1:100-200에 달했다.[36]

이 시기 《가로》는 단행본 매출로만 잡지의 적자를 메웠으며, 사원 편집자들은 《가로》 이외의 매체에서 단행본을 간행할 작가를 찾거나, 영업, 창고 재고 출고, 반품 정리 등을 하며 《가로》를 지탱했다.[36]

2. 3. 신세대 《가로》 (1990년 ~ 1997년)

1980년대 후반, 나가이 카츠이치가 고령과 경영 악화를 이유로 『가로』와 청림당(아오린도) 매각을 추진하면서, 마츠자와 쿠레이치의 중개로 PC 소프트웨어 개발회사 차이트의 사장 야마나카 쥰이 청림당을 인수하게 되었다.[24] 1990년 9월, 야마나카는 청림당 대표이사 사장에 취임하고, 나가이는 회장으로 물러섰다. 야마나카 사장은 나가이와 『가로』, 청림당은 삼위일체임을 재확인하고, 그 형태를 유지하면서 회사 경영, 재무, 영업, 출판사로서의 편집 체제 등을 재건하는 데 착수했다.[24]

1992년에는 나가이가 편집장에서도 사임하면서 야마나카가 편집장을 겸임했다. 네코지루 우동, 미나미군의 연인 등이 인기를 얻어 단행본 매출이 호조를 보였고, 잡지도 '명작극장'이나 '특집' 도입, 서브컬쳐 정보 대량 게재 등으로 판매량이 향상되었다. 1993년에는 창간 30주년 기념작으로 장애인 프로레슬링 다큐멘터리 영화 『무적의 핸디캡』(키타지마 유키노리 원작)을 제작했다. 1994년에는 아가타 모리오 감독이 『오토바이 소녀』를 영화로 제작하는 등 미디어 믹스를 적극 전개하여 원고료도 지불할 수 있게 되었다.[24] 이 시기 『가로』는 만화잡지보다 서브컬쳐 정보지로서의 성격이 강해졌다.

한편 1993년에는 코바야시 요시노리가 결혼 축하 퍼레이드에서 마사코 황태자비가 “천황제 반대”를 외치며 폭탄을 던지는 만화를 그렸다가 『SPA!』에 게재를 거부당하자 『가로』에 게재하는 사건이 있었다.[24]

순탄해 보였던 『가로』는 모회사 차이트가 운영체제가 MS-DOS에서 Windows로 전환되는 시대 변화에 따라가지 못하면서 경영이 악화되었다. 1996년에는 창업주이자 오랫동안 『가로』와 청림당의 얼굴이었던 나가이가 사망했다.[24][37]

이후, 다가오는 인터넷 시대를 선점하고자 1997년 당시로서는 획기적이었던 만화 웹진 『디지털 가로』(편집장 시라토리 치카오) 간행에 착수한다. 하지만 편집부 내에서는 인터넷을 거부하는 보수파와 시라토리 등 추진파가 대립했고, 시라토리가 『가로』 부편집장인 채로 차이트로 이적해 『디지털 가로』를 편집하는 변칙적인 사태가 일어났다.[24][37] 이 시도는 야마나카 사장이 무리하게 부수를 10만 부까지 늘리는 바람에 실패로 돌아갔고(최종 실매는 15000 - 18000부), 큰 적자를 보게 되었다. 하지만 시라토리는 “『가로』를 바로잡아 90년대에 부수를 3배로 늘리고, 법인으로서의 주식회사 청림당을 흑자전환시킨 것은 야마나카씨의 수완”이라고 증언했다.[24][37]

2. 4. 분열과 휴간 (1997년 ~ 2002년)

1996년, 창업자이자 오랫동안 《가로》의 편집장이었던 나가이 쇼이치가 사망했다.[24] 이후, 다가올 인터넷 시대를 선점하여 1997년 당시로서는 획기적이었던 인터넷과 코믹의 융합 잡지 《디지털 가로》(편집장 시라토리 치카오) 간행에 착수한다.[24] 하지만 편집부 내에서는 인터넷을 《가로》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여기는 수구파와 시라토리 등 추진파가 대립했고, 그 결과 시라토리는 《가로》 부편집장으로 남아 차이트로 이적하여 《디지털 가로》의 편집을 맡는, 변칙적인 사태를 맞이하게 되었다.[24]

이 선견적인 시도는 야마나카 사장이 무리하게 반입 부수를 10만 부까지 늘렸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실패로 끝나 대규모 적자를 기록하게 되었다.[24] 얼마 후 야마나카의 건강이 악화되자 1997년, 야마나카와 구면인 컴퓨터 업계 선배 후쿠이 겐이 사장 대행이 되었다.[25] 하지만, 야마나카 체제에 불만을 품고 있던 테즈카 노리코(당시 청림당 이사) 이하의 사원들이 집단 퇴사하는 사건이 발생했다.[25][26][27] 1997년 7월 7일, 이들은 보관하고 있던 작가들의 원고를 가져가고 청림당 편집부원 전원의 사표를 팩스로 차이트에 보냈다.[25][26][27] 동시에 언론과 거래처를 통해 "청림당은 발행처로서 끝장났다"라는 성명을 널리 유포했고, 이는 청림당과 차이트에 큰 피해를 입혔다.[25]

퇴직한 테즈카 노리코 등 전 청림당 편집부원들은 나가이 쇼이치가 생전에 남긴 "청림공예사"라는 이름으로 신 출판사 '''청림공예사'''를 설립하고 청림당의 후계를 칭했다. 청림당과 청림공예사 간의 소송은 화해로 종료되었다는 내용이 《가로》 2002년 2월호에 게재되었으나, 전 청림당 직원들은 당시 일은 기억하고 싶지도 않다며 취재를 거부하여, 휴간 소동의 진상은 알 길이 없다.[25]

이 소동으로 인해 차이트는 도산하고, 《가로》는 휴간했다. 이후 나가토 마사유키를 편집장으로 위촉하고 1998년 1월 복간했으나, 동년 9월 다시 휴간했다. 차이트가 도산한 후, 청림당을 원조하던 "대화당" 사장 카니에 미키히코가 사장이 되었다. 대화당 체제 《가로》는 2000년 1월호로 복간했지만, 2001년 중반부터 격월간, 2002년에는 계간, 그 뒤에는 인터넷상 통신판매로 판매형태를 변경하다가, 2002년 10월 이후 실질발행 없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정식 본지로서의 《가로》는 2002년 10월 가을호(통권 426호)가 최종 간행호가 되었다.

2. 5. 사실상의 폐간 (2002년 이후)

2002년 10월에 발매된 '만화 가로/2002년 10월/가을호(통권 426호)'를 마지막으로, 정식 본지로서의 《가로》는 더 이상 발행되지 않고 있다. 예고되었던 427호는 현재까지 간행되지 않아 사실상 폐간 상태이지만, 공식적인 폐간 발표는 없었다. 2010년 9월 30일, 청림당(대화당)은 아이패드용 전자책 어플리케이션 “가로 Ver 2.0”의 판매를 개시했지만, 불과 2호만에 폐간되었다. 이는 《가로》와 무관한 동인지 창작만화 앤솔로지로, 최근의 젊은이들을 지향한 것이었다.

2010년대 들어 청림당은 보수우익 잡지 『재패니즘』을 창간하고, 반세기에 걸친 서브컬쳐 전문 출판에서 철수하면서 《가로》 시대와는 딴판인 출판사가 되었다.

한편, 1997년 퇴사한 테즈카 노리코 등의 청림공예사는 구 가로계 만화가들과 신인 만화가들이 모인 사실상의 후계잡지 『악스』를 격월로 간행하며 《가로》 시대의 기풍을 이어가고 있다.

3. 영향

《가로》는 일본에서 "예술" 만화의 시사회 역할을 했으며, 테즈카 오사무가 창간한 《COM》, 《코믹 바쿠》, 《코믹 아레》[8] 등 여러 모방 잡지에 영감을 주었다.[8] 《가로》는 시라토의 좌파적 드라마, 추상적 예술과 초현실주의, 에로-그로테스크, 펑크 등 다양한 예술적 단계를 거쳤다.[2] 다른 인기 잡지와는 달리 게재되는 작품에 정해진 주제가 없었고, 재미있으면 내용이 표면적인 형식보다 중요했다.

샤론 킨셀라는 이 잡지가 "꿈의 영역, 집단 기억과 사회 심리학"을 탐구했으며, "현대 사회의 주변부에 사는 개인에 대한 모호하고 전형적으로 허무주의적인 묘사"가 특징이라고 쓰고 있다.[2]

초기에는 "1940년대와 1950년대의 카미시바이 종이 연극, 1950년대 후반과 1960년대 초반의 대여 카시혼 만화, 1930년대와 1940년대의 어린이 삽화 소설, 근대 이전의 여행 문학과 불교 우화, 일본 민속과 괴담"에서 영감을 받은 만화가 실렸으며, 라이언 홀름베르그는 이 시기를 전통주의적이라고 부른다.[4]

《가로》는 ''소녀'' 만화, ''소년'' 만화, ''여성'' 만화, ''청년'' 만화 중 하나로 명확하게 식별되기에는 너무 전문적인 잡지로 여겨졌다.[7]

《가로》는 일본 대안 만화 제작의 예술적 중심지였기 때문에, 일본의 대안 만화는 《가로》에서 출판되지 않았더라도 종종 《가로케이》(ガロ系)라고 불린다.[9][10] 이 용어는 만화 평론가 구레 토모후사가 1980년대와 1990년대에 《애프터눈》《모닝》과 같은 잡지에서 출판된 주류 《세이넨》 만화의 스타일에 대한 《가로》의 영향을 설명하기 위해 처음 사용했다.[11]

《가로》는 만화 업계와 일본 사회 전체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가로》에서 경력을 시작한 많은 만화가들은 다른 곳에서 훨씬 더 높은 인지도를 얻는 작품을 했으며, 《가로》에 연재되었던 이야기를 바탕으로 여러 영화가 제작되었다. 일본의 현대 그래픽 디자인은 특히 킹 테리, 하야시 세이이치, 타무라 시게루와 같은 《가로》의 작가들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다. 1994년에는 가와사키 시립 박물관에서 《가로》 동문들의 특별 전시회를 열었다.

미우라 준은 "세상의 만화는 '가로계'와 '그 외'의 두 가지로 크게 나눌 수 있습니다"라는 말을 남겼다.

만화 업계 전체에서도 찾아온 만화가에게 "우리 쪽에서는 게재할 수 없지만 가로에라도 가져가 봐?"라고 말하는 것이 상투구가 될 정도로 『가로』에는 수많은 개성적인 작가가 모였다[31]。 특수 만화가 네모토 케이는 "가로는 전국의 미친 놈들의 모임이고, 미친 놈들이 모이는 비율이 일본에서 가장 높은 잡지였다고 생각한다."라고 회상하고 있다[31]

NHK연속 TV 소설 『게게게의 아내』에서는 나가이를 모델로 한 "후카자와 요이치(배우 무라카미 히로아키)"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3. 1. 만화계에 대한 영향

《가로》는 일본에서 "예술" 만화의 시사회 역할을 했으며, 테즈카 오사무가 창간한 《COM》, 《코믹 바쿠》, 《코믹 아레》[8] 등 여러 모방 잡지에 영감을 주었다.[8] 《가로》는 시라토의 좌파적 드라마, 추상적 예술과 초현실주의, 에로-그로테스크, 펑크 등 다양한 예술적 단계를 거쳤다.[2] 다른 인기 잡지와는 달리 게재되는 작품에 정해진 주제가 없었고, 재미있으면 내용이 표면적인 형식보다 중요했다.

샤론 킨셀라는 이 잡지가 "꿈의 영역, 집단 기억과 사회 심리학"을 탐구했으며, "현대 사회의 주변부에 사는 개인에 대한 모호하고 전형적으로 허무주의적인 묘사"가 특징이라고 쓰고 있다.[2]

초기에는 "1940년대와 1950년대의 카미시바이 종이 연극, 1950년대 후반과 1960년대 초반의 대여 카시혼 만화, 1930년대와 1940년대의 어린이 삽화 소설, 근대 이전의 여행 문학과 불교 우화, 일본 민속과 괴담"에서 영감을 받은 만화가 실렸으며, 라이언 홀름베르그는 이 시기를 전통주의적이라고 부른다.[4]

《가로》는 ''소녀'' 만화, ''소년'' 만화, ''여성'' 만화, ''청년'' 만화 중 하나로 명확하게 식별되기에는 너무 전문적인 잡지로 여겨졌다.[7]

《가로》는 일본 대안 만화 제작의 예술적 중심지였기 때문에, 일본의 대안 만화는 《가로》에서 출판되지 않았더라도 종종 《가로케이》(ガロ系)라고 불린다.[9][10] 이 용어는 만화 평론가 구레 토모후사가 1980년대와 1990년대에 《애프터눈》《모닝》과 같은 잡지에서 출판된 주류 《세이넨》 만화의 스타일에 대한 《가로》의 영향을 설명하기 위해 처음 사용했다.[11]

《가로》는 만화 업계와 일본 사회 전체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가로》에서 경력을 시작한 많은 만화가들은 다른 곳에서 훨씬 더 높은 인지도를 얻는 작품을 했으며, 《가로》에 연재되었던 이야기를 바탕으로 여러 영화가 제작되었다. 일본의 현대 그래픽 디자인은 특히 킹 테리, 하야시 세이이치, 타무라 시게루와 같은 《가로》의 작가들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다. 1994년에는 가와사키 시립 박물관에서 《가로》 동문들의 특별 전시회를 열었다.

미우라 준은 "세상의 만화는 '가로계'와 '그 외'의 두 가지로 크게 나눌 수 있습니다"라는 말을 남겼다.

만화 업계 전체에서도 찾아온 만화가에게 "우리 쪽에서는 게재할 수 없지만 가로에라도 가져가 봐?"라고 말하는 것이 상투구가 될 정도로 『가로』에는 수많은 개성적인 작가가 모였다[31]。 특수 만화가 네모토 케이는 "가로는 전국의 미친 놈들의 모임이고, 미친 놈들이 모이는 비율이 일본에서 가장 높은 잡지였다고 생각한다."라고 회상하고 있다[31]

NHK연속 TV 소설 『게게게의 아내』에서는 나가이를 모델로 한 "후카자와 요이치(배우 무라카미 히로아키)"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3. 2. 사회문화적 영향

《가로》는 일본 사회와 만화 업계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1960년대 일본 사회의 좌익 운동과 학생 운동의 분위기를 반영하여, 작품들은 사회적 이슈를 다루고 비판적인 시각을 제시했다.[2] 초기에는 1940년대와 1950년대의 카미시바이 종이 연극, 1950년대 후반과 1960년대 초반의 대여 카시혼 만화 등에서 영감을 받은 만화가 실렸다.[4] 샤론 킨셀라는 이 잡지가 "꿈의 영역, 집단 기억과 사회 심리학"을 탐구했으며, "현대 사회의 주변부에 사는 개인에 대한 모호하고 전형적으로 허무주의적인 묘사"가 특징이라고 평가했다.[2]

《가로》는 일본 현대 그래픽 디자인에도 큰 영향을 주었으며, 특히 킹 테리, 하야시 세이이치, 타무라 시게루와 같은 작가들이 그 중심에 있었다. 잡지에 대한 회고전은 주류 비만화 잡지에 게재되었고, 1994년에는 가와사키 시립 박물관에서 《가로》 동문들의 특별 전시회가 열리기도 했다. 《가로》는 일본의 대안 만화 제작의 예술적 중심지였기 때문에, 일본의 대안 만화는 《가로》에서 출판되지 않았더라도 종종 《가로케이》(ガロ系)라고 불린다.[9][10]

3. 3. 한국에의 영향

《가로》는 일본에서 "예술" 만화의 시사회 역할을 하였다. 전성기에는 테즈카 오사무가 창간한 《COM》이나 《코믹 바쿠》와 같은 잡지에 영감을 주었다. 《가로》는 시라토 산페이의 좌파적 드라마, 추상적 예술과 초현실주의, 에로틱/그로테스크, 펑크 등 다양한 예술적 단계를 거쳤다. 다른 인기 잡지와는 달리, 《가로》는 게재되는 작품의 줄거리가 따라야 할 정해진 주제가 없었고, 작품에 요구되는 것은 오직 재미있을 것이었으며, 내용이 표면적인 형식보다 중요하였다.

4. 주요 작가 및 작품


  • 아베 신이치 - 『상냥한 사람』, 『미요코 아사가야 기분』
  • 이케가미 료이치
  • 이즈미 마사유키 - 『야행』, 『멋진 스키야키』
  • 우치다 슌기쿠 - 『미나미군의 연인』
  • 에비스 요시카즈 - 『지옥에 떨어진 교사들』, 『나는 바보가 되고 싶다』
  • 카츠마타 스스무 - 『카츠마타 스스무 작품집』
  • 카와사키 유키오 - 『나쁜 놈일수록 잘 달린다』
  • 쿠스노키 캇페이 - 『오센』, 『채설에 춤추다』
  • 사카바시 이미리 (모치즈키 카츠히로) - 『상어』, 『대충대충』, 『빨간 타이츠 남자』, 『일하는 캇파』
  • 사사키 마키
  • 시라토 산페이 - 『카무이전
  • 스기우라 히나코 - 『합장』, 『백일홍』
  • 스즈키 오니지 - 『오토바이 소녀』
  • 타키타 유 - 『테라시마쵸 기담』
  • 츠게 요시하루 - 『나사식』(『가로 증간·츠게 요시하루 특집』)
  • 츠리타 쿠니코 - 『여섯째 궁 히메코의 비극』, 『플라이트 츠리타 쿠니코 작품집』
  • 나가시마 신지 - 『방랑자』, 『만화가 잔혹 이야기』
  • 네코지루 - 『네코지루 우동』
  • 네모토 케이 - 『산다』, 『천연』, 『타케오의 세계』, 『인과 철도의 여행』, 『돼지우리 발 개집 행』, 『미래 정자 브라질』
  • 하나와 카즈이치 - 『형무소 안에서
  • 하야시 세이이치 - 『적색 엘레지』
  • 후쿠만 시게유키 - 『아직 여행을 떠나지도 않았는데』, 『나의 소규모 실패』
  • 후루카와 마스조 - 『자색의 전설』
  • 마스무라 히로시 - 『요네자아드 이야기』
  • 마루오 스에히로 - 『소녀 츠바키』
  • 미우라 준 - 『단지 난긴나우시』, 『아이덴 & 티티』
  • 미즈키 시게루 - 『키타로 야화』, 『별을 놓친 남자』
  • 무라노 모리미 - 『산사 사카야의』, 『안돼 귀신』
  • 야마다 하나코 - 『신의 악의』, 『탄식의 천사』, 『꽃피는 고독』
  • 야마다 무라사키 - 『성악 고양이』, 『신키라리』
  • 야마노 하지메 - 『4번가의 석양』
  • 요도가와 산포 - 『소년』, 『문어가 된 소년』, 『묘가 없는 남자의 이야기』

  • 아agata 모리오
  • 아카세가와 겐페이
  • 아키야마 아유코
  • 아즈마 모토
  • 아히코 마리에
  • 아라키 노부요시(사진)
  • 안자이 미즈마루
  • 이시노모리 쇼타로
  • 이즈미 하루키
  • 이즈미 마사유키
  • 이토이 시게사토
  • 이와모토 히사노리
  • 우에조노 마코
  • 우에조노 마후유
  • 오고시 고타로
  • 오쿠다이라 이라(오쿠다이라 이라)
  • 오자와 토시아키
  • 오자와 토시카즈
  • 카모자와 유진
  • 가라사와 상회(가라사와 슌이치+가라사와 나오키)
  • 가라사와 나오키
  • 칸노 오사무
  • 키쿠치 히로노리
  • Q.B.B.(쿠스미 마사유키+쿠스미 타쿠야)
  • 쿠스미 타쿠야
  • 쿠스미 마사유키
  • 코이즈미 토모히로
  • 코바야시 요시노리
  • 콘도 요코
  • 사쿠라자와 에리카
  • 시리아가리 고토부키
  • 스기사쿠 J타로(케주타로)
  • 소노 시온
  • 타카스기 단
  • 타카하마 칸
  • 타카야마 카즈마사
  • 타구치 토모로오
  • 타시로 신타로
  • 타츠미 요시히로
  • 타니 히로코
  • 타무라 시게루
  • 츠게 타다오
  • 츠노 유코
  • 토요 카타오카
  • 토마 마사카즈(토마)
  • 토모자와 미미요
  • 토리 미키
  • DOL ALL STAASS(우에조노 마후유+우에조노 마코)
  • 우오난 키리코
  • 나리타 아키
  • 니시오카 형제
  • 노마 토시
  • 하가 유카
  • 하나쿠마 유우사쿠
  • 히사우치 미치오
  • 히노 히데시
  • 히라구치 히로미
  • 후루야 우사마루
  • 마츠이 유키코
  • 마츠모토 미츠요
  • 환상의 명반 해방 동맹
  • 미기와 빵
  • 미츠하시 오토야(시바)
  • 미모토 미하루
  • 모토 hideyasu
  • 모리시타 유미
  • 모리 마사유키
  • 모리모토 키요히코
  • 야구치 타카오
  • 야마모토 룬룬
  • 유무라 테루히코
  • 요시다 미츠히코
  • 요도가와 산포
  • 요모다 이누히코
  • 와타나베 카즈히로


시라토 산페이카무이전(1964–1971), 미즈키 시게루키타로 야화, 츠게 요시하루의 나사식(1968), 하야시 세이이치의 붉은 색 엘레지(1970–1971), 네코지루의 네코지루 우동, 후루야 우사마루팔레폴리(1994–1996) 등이 대표작이다. 그 외 아베 신이치의 『미요코 아사가야 기분』, 우치다 슌기쿠의 『미나미군의 연인』, 콘도 요코의 『푸른 지평선』, 야마다 무라사키의 『내 등에 대고 말해봐』등이 있다.

4. 1. 주요 작가

시라토 산페이, 미즈키 시게루, 츠게 요시하루 등 여러 작가들이 『월간만화 가로』에서 활동했다.[12][13] 츠게 타다오, 하야시 세이이치, 츠리타 쿠니코,[12][13] 나가시마 신지, 네코지루, 후루야 우사마루, 하나와 카즈이치 등도 주요 작가로 활동했다.

  • 아베 신이치 - 『상냥한 사람』, 『미요코 아사가야 기분』
  • 이케가미 료이치
  • 이즈미 마사유키 - 『야행』, 『멋진 스키야키』
  • 우치다 슌기쿠 - 『미나미군의 연인』
  • 에비스 요시카즈 - 『지옥에 떨어진 교사들』, 『나는 바보가 되고 싶다』
  • 카츠마타 스스무 - 『카츠마타 스스무 작품집』
  • 카와사키 유키오 - 『나쁜 놈일수록 잘 달린다』
  • 쿠스노키 캇페이 - 『오센』, 『채설에 춤추다』
  • 사카바시 이미리 (모치즈키 카츠히로) - 『상어』, 『대충대충』, 『빨간 타이츠 남자』, 『일하는 캇파』
  • 사사키 마키
  • 시라토 산페이 - 『카무이전
  • 스기우라 히나코 - 『합장』, 『백일홍』
  • 스즈키 오니지 - 『오토바이 소녀』
  • 타키타 유 - 『테라시마쵸 기담』
  • 츠게 요시하루 - 『나사식』(『가로 증간·츠게 요시하루 특집』)
  • 츠리타 쿠니코 - 『여섯째 궁 히메코의 비극』, 『플라이트 츠리타 쿠니코 작품집』
  • 나가시마 신지 - 『방랑자』, 『만화가 잔혹 이야기』
  • 네코지루 - 『네코지루 우동』
  • 네모토 케이 - 『산다』, 『천연』, 『타케오의 세계』, 『인과 철도의 여행』, 『돼지우리 발 개집 행』, 『미래 정자 브라질』
  • 하나와 카즈이치 - 『형무소 안에서
  • 하야시 세이이치 - 『적색 엘레지』
  • 후쿠만 시게유키 - 『아직 여행을 떠나지도 않았는데』, 『나의 소규모 실패』
  • 후루카와 마스조 - 『자색의 전설』
  • 마스무라 히로시 - 『요네자아드 이야기』
  • 마루오 스에히로 - 『소녀 츠바키』
  • 미우라 준 - 『단지 난긴나우시』, 『아이덴 & 티티』
  • 미즈키 시게루 - 『키타로 야화』, 『별을 놓친 남자』
  • 무라노 모리미 - 『산사 사카야의』, 『안돼 귀신』
  • 야마다 하나코 - 『신의 악의』, 『탄식의 천사』, 『꽃피는 고독』
  • 야마다 무라사키 - 『성악 고양이』, 『신키라리』
  • 야마노 하지메 - 『4번가의 석양』
  • 요도가와 산포 - 『소년』, 『문어가 된 소년』, 『묘가 없는 남자의 이야기』

  • 아agata 모리오
  • 아카세가와 겐페이
  • 아키야마 아유코
  • 아즈마 모토
  • 아히코 마리에
  • 아라키 노부요시(사진)
  • 안자이 미즈마루
  • 이시노모리 쇼타로
  • 이즈미 하루키
  • 이즈미 마사유키
  • 이토이 시게사토
  • 이와모토 히사노리
  • 우에조노 마코
  • 우에조노 마후유
  • 오고시 고타로
  • 오쿠다이라 이라(오쿠다이라 이라)
  • 오자와 토시아키
  • 오자와 토시카즈
  • 카모자와 유진
  • 가라사와 상회(가라사와 슌이치+가라사와 나오키)
  • 가라사와 나오키
  • 칸노 오사무
  • 키쿠치 히로노리
  • Q.B.B.(쿠스미 마사유키+쿠스미 타쿠야)
  • 쿠스미 타쿠야
  • 쿠스미 마사유키
  • 코이즈미 토모히로
  • 코바야시 요시노리
  • 콘도 요코
  • 사쿠라자와 에리카
  • 시리아가리 고토부키
  • 스기사쿠 J타로(케주타로)
  • 소노 시온
  • 타카스기 단
  • 타카하마 칸
  • 타카야마 카즈마사
  • 타구치 토모로오
  • 타시로 신타로
  • 타츠미 요시히로
  • 타니 히로코
  • 타무라 시게루
  • 츠게 타다오
  • 츠노 유코
  • 토요 카타오카
  • 토마 마사카즈(토마)
  • 토모자와 미미요
  • 토리 미키
  • DOL ALL STAASS(우에조노 마후유+우에조노 마코)
  • 우오난 키리코
  • 나리타 아키
  • 니시오카 형제
  • 노마 토시
  • 하가 유카
  • 하나쿠마 유우사쿠
  • 히사우치 미치오
  • 히노 히데시
  • 히라구치 히로미
  • 후루야 우사마루
  • 마츠이 유키코
  • 마츠모토 미츠요
  • 환상의 명반 해방 동맹
  • 미기와 빵
  • 미츠하시 오토야(시바)
  • 미모토 미하루
  • 모토 hideyasu
  • 모리시타 유미
  • 모리 마사유키
  • 모리모토 키요히코
  • 야구치 타카오
  • 야마모토 룬룬
  • 유무라 테루히코
  • 요시다 미츠히코
  • 요도가와 산포
  • 요모다 이누히코
  • 와타나베 카즈히로


분류:일본의 만화 잡지

분류:만화 잡지

분류:1964년 창간

분류:1960년대 일본의 만화

분류:1970년대 일본의 만화

분류:1980년대 일본의 만화

분류:1990년대 일본의 만화

분류:2000년대 일본의 만화

분류:대체 만화

분류:에로틱 만화

분류:가로계

분류:언더그라운드 만화

분류:일본의 문화 잡지

분류:일본의 폐간된 잡지

분류:1964년 창간된 간행물

분류:2002년 폐지

분류:월간지

분류:세이린도

4. 2. 대표 작품

시라토 산페이카무이전(1964–1971), 미즈키 시게루키타로 야화, 츠게 요시하루의 나사식(1968), 하야시 세이이치의 붉은 색 엘레지(1970–1971), 네코지루의 네코지루 우동, 후루야 우사마루팔레폴리(1994–1996) 등이 대표작이다. 그 외 아베 신이치의 『미요코 아사가야 기분』, 우치다 슌기쿠의 『미나미군의 연인』, 콘도 요코의 『푸른 지평선』, 야마다 무라사키의 『내 등에 대고 말해봐』등이 있다.

5. 논란 및 비판

5. 1. 차별적 표현 문제

5. 2. 경영 문제

6. 평가

참조

[1] 웹사이트 会社案内 http://www.garo.co.j[...]
[2] 서적 Adult manga : culture and power in contemporary Japanese society https://www.worldcat[...] 2000
[3] 문서 Kinsella, p. 104.
[4] 웹사이트 Ryan Holmberg on the Early Years of Garo http://comicscomicsm[...] 2022-12-09
[5] 문서 Kinsella, p. 31-32
[6] 웹사이트 'Garo', An Era of Underground Manga https://pen-online.c[...] 2022-12-11
[7] 문서 Kinsella, p. 45.
[8] 문서 Kinsella, p. 73.
[9] 간행물 Faire genre https://classiques-g[...] Classiques Garnier 2022-11-10
[10] 서적 Asia-Pacific Perspectives, Japan Plus https://books.google[...] Jiji Gaho Sha, Incorporated
[11] 문서 Kinsella, p. 189.
[12] 웹사이트 A Forgotten Manga Artist: Kuniko Tsurita https://artreview.co[...] 2021-06-01
[13] 웹사이트 The Groundbreaking Female Artist Who Shaped Manga History https://www.theatlan[...] 2021-06-23
[14] 문서 「月刊漫画ガロ」1994年1月号内の長井勝一の発言「三平さんは創立者だからね、いくら迷惑かかったってしょうがないと思うけど」
[15] 문서 その後、7月24日は「劇画の日」と呼ばれるようになった。
[16] 문서 毛利甚八『白土三平伝 カムイ伝の真実』p.110
[17] 문서 TBSブリタニカ刊『ガロ曼荼羅』の長井勝一の発言(pp.6-pp.7)
[18] 웹사이트 青林工藝舎編集部だより 2010年06月29日付 http://seirinkogeish[...]
[19] 문서 この部分はNHK連続テレビ小説『ゲゲゲの女房』でも関係者名を改変されたものの、描かれている。
[20] 문서 「「噂の武士」への嫉妬」高野慎三 (「貸本漫画史研究」13 2003.8)
[21] 문서 「アックス」vol.119(特集つげ義春生誕80周年)青林工藝社 2017年10月31日発行
[22] 문서 その旨は作品募集の欄にも常に書き添えられていた。
[23] 문서 『らもチチ 私の半生 青春編』のひさうちみちおの発言(講談社文庫版、pp.214)
[24] 웹사이트 元ガロ編集長、山中潤さんと20年ぶりに再会した http://shiratorichik[...]
[25] 웹사이트 ガロ編集部総辞職事件顛末日誌(白取特急) https://web.archive.[...]
[26] 웹사이트 原田高夕己 漫画のヨタ話:山中潤氏の語る「ガロ」 http://blog.livedoor[...]
[27] 문서 休刊号となった『ガロ』1997年8月号の「編集後記」で手塚能理子は「最終入稿の真昼間、東京は嵐。一瞬このままビルが吹っ飛べばラクになるのに、と思いながら最後のレイアウト。私も嵐のように何も気にせず荒れ狂ってみたい。気持ちいいだろうなぁ」とコメントしている。この直後、手塚を筆頭に青林堂編集部員全員が退社する事件が勃発する。
[28] 웹사이트 「ガロ」事件に関する追記PAGE14 http://www.digipad.c[...] 2002-11
[29] 문서 解雇通告後、東京都労働委員会によって不当労働行為が認定され一旦は復職したものの、労働契約書の一方的な調印・他社員との隔離的待遇や嫌ながらせなどパワハラ行為や東京管理職ユニオンの脱退を強要されるなど、再度労働委員会へ不当労働行為だとして訴えられている。
[30] 웹사이트 根本敬が語る伝説の漫画雑誌「ガロ」と蛭子能収のアブない裏話(日刊サイゾー) http://news.livedoor[...]
[31] 웹사이트 根本敬インタビュー「ガロという雑誌」 http://www.project-m[...]
[32] 문서 『月刊漫画ガロ』1996年4月長井勝一追悼号
[33] 문서 毛利甚八『白土三平伝 カムイ伝の真実』p.110
[34] 문서 TBSブリタニカ刊『ガロ曼荼羅』の長井勝一の発言(pp.6-pp.7)
[35] 웹사이트 青林工藝舎編集部だより 2010年06月29日付 http://seirinkogeish[...]
[36] 서적 らもチチ 私の半生 青春編 講談社文庫
[37] 블로그 元ガロ編集長、山中潤さんと20年ぶりに再会した http://shiratorichik[...] 2014-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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