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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하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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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경하는 조선 후기의 무신으로, 흥선대원군 집권기에 훈련대장, 형조판서, 강화부유수 등을 역임했다. 1866년 병인양요 당시 포도대장으로서 천주교도 학살에 관여하여 '낙동염라'라는 별칭을 얻었으며, 임오군란 이후 유배되었다가 갑신정변 때 신정왕후 등을 피신시키는 역할을 수행했다. 1891년에 사망했으며, 그의 아들 이범진은 대한제국 외교관으로, 이범윤은 간도관리사 및 독립운동가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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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하 (조선)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이름이경하
원래 이름李景夏
출생일1811년
출생지조선 한성부
사망일1891년 (향년 81세)
사망지조선 한성부
본관전주(全州)
거주지조선 한성부
부모이인달(부)
형제이원하(동복 형)
이국하(이복 서제)
배우자초배 해주 오씨
계배 풍양 조씨
그 이외 첩실 3명
자녀8남 8녀
(그 중 적삼남 이범진, 서자 이범윤)
친인척이복연(조부)
오치성(장인)
조정호(장인)
이인두(종숙부)
이기종(손자)
이위종(손자)
학력
학력1835년 증광무과 급제
관직
직책훈련대장 겸 좌포도대장
임기1864년 2월 29일 ~ 1864년 12월 13일
직책2공조판서
임기21866년 8월 26일 ~ 1866년 9월 29일
직책3좌포도대장 겸 후영사
임기31884년 2월 29일 ~ 1888년 2월 29일
군주조선 고종 이형
섭정흥선대원군 이하응
섭정2영의정 이경재
섭정3영의정 홍순목
완흥군 이희
영의정 김병국
영의정 심순택
정당무소속
경력조선국 한성부 판윤
조선국 형조판서
조선국 강화부유수
웹사이트
웹사이트두산백과

2. 생애

이경하는 조선 후기의 무신으로, 1811년(순조 11)에 태어나 1891년에 사망했다. 자는 여회(汝會), 시호는 양숙(襄肅)이며, 전주 이씨(全州 李氏) 본관으로 세종대왕광평대군(廣平大君)의 후손이자 조대비의 인척이었다. 1835년 증광무과에 급제했다.

1863년 고종 즉위 후 흥선대원군 집권기에 훈련대장, 금위대장, 형조판서 등을 역임했다. 1866년 병인양요 직전에는 한성부판윤, 강화부유수, 어영대장 등을 거쳤고, 병인양요 때는 순무사로 도성 방비를 책임졌다. 흥선대원군의 천주교 탄압 당시 포도대장으로서 많은 천주교도를 처벌하여 '낙동염라'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1882년 임오군란의 책임을 지고 전라도 고금도로 유배되었으나, 1884년 흥선대원군의 신임으로 복귀하여 좌포도대장, 후영사 등을 지냈다. 갑신정변 당시에는 왕족들을 피난시키는 역할을 했다.

2. 1. 가계와 초기 활동

본관전주 이씨(全州 李氏)이며, 조선 제4대 임금인 세종의 다섯째 아들 광평대군(廣平大君)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경력(經歷)을 지낸 이인달(李寅達)이다. 1811년(순조 11)에 출생하였다. 조대비의 인척으로 1835년 증광무과에 급제하였다.

2. 2. 흥선대원군 집권기 활동

1863년 고종이 즉위하고 흥선대원군이 집권하자 1864년 훈련대장 겸 좌포도대장이 된 뒤 금위대장(禁衛大將), 형조판서 등을 역임하였다.[1]

1866년(고종 3) 병인양요(丙寅洋擾) 직전까지 한성부판윤(1866년 3월), 형조판서(1866년 4월), 강화부유수(1866년 5월), 어영대장(1866년 6월), 무위도통사(1866년 7월), 공조판서(1866년 8월) 등을 지냈으며, 같은 해 병인양요 때 포도대장(1866년 9월), 순무사 등을 지냈다.[1] 그해 흥선대원군이 천주교도를 탄압할 때 포도대장으로서 교도들을 수없이 학살하였는데, 죄인들을 낙동(駱洞)의 자기 집에서 심문하였으므로 사람들이 그를 염라대왕처럼 무서워하여 '낙동염라(洛銅閻羅)'라는 별칭도 있다.[1] 병인양요 막바지 때 프랑스군이 강화도를 공격하고 한강을 봉쇄하자 순무사(巡撫使)로 발탁되어 도성 방비의 책임자로 출진하였다.[1]

2. 3. 임오군란과 유배

1882년(고종 19) 무위대장으로 재직 중 임오군란의 책임을 지고 파면된 뒤 전라도 고금도에 유배되었다.

2. 4. 갑신정변과 복귀

1884년 흥선대원군의 깊은 신임으로 유배에서 풀려나와 좌포도대장이 되고, 후영사(後營使)를 지냈다. 그해 12월에 일어난 갑신정변 때에는 조대비, 명성황후, 세자(순종) 등을 아들 이범진(範晉)의 집에 피난시키기도 하였다. 주로 군사·경찰의 요직을 맡아 치안을 담당하였다.[1]

2. 5. 사망

1891년 81세로 사망하였다.

3. 가족 관계

관계이름비고
조부이복연(李復淵)
아버지이인달(李寅達)
동복 형이원하(李元夏)
부인해주 오씨(海州 吳氏)초배, 오치성(吳致聖)의 딸, 1828년 혼인, 1855년 사망
조씨(趙氏)계배, 조정호(趙鼎浩)의 딸, 1850년 재혼, 1887년 사망
단양 이씨(丹陽 李氏)
재령 이씨(載寧 李氏)
수안 이씨(遂安 李氏)
동복 동생이정하(李貞夏)당숙 이인두(李仁斗)에게 출계
이복 서제이국하(李國夏)


  • 초배 해주 오씨와의 사이에서 2남 2녀를 두었다.
  • * 장남: 이범택(李範擇, 1839년 ~ 1850년)
  • * 차남: 이범규(李範規, 1846년 ~ 1854년)
  • 계배 조씨와의 사이에서 1녀를 두었다.
  • * 양자: 이범승(李範升, 1859년 ~ 1922년) - 이복 서제 이국하(李國夏)의 차남. 1886년 정시문과 병과 급제.[1]
  • 첩실 단양 이씨에게서 서자 이범진(李範晋, 1852년 ~ 1911년)을 얻었다.
  • * 손자: 이기종(李璣鍾, 1873년 ~ 1931년)
  • * 손자: 이위종(李瑋鍾, 1884년 ~ ?)
  • 첩실 재령 이씨에게서 3남 3녀를 두었다.
  • * 서자: 이범상(李範相, 1853년 ~ 1859년)
  • * 서자: 이범윤(李範允, 1856년 ~ 1940년)
  • * 서자: 이범헌(李範軒, 1863년 ~ 1868년)
  • 첩실 수안 이씨에게서 1남 2녀를 두었다.
  • * 서자: 이범혁(李範奕, 1875년 음력 7월 12일 ~ 1878년)

3. 1. 주요 자녀들의 활동

이경하는 슬하에 7남 8녀와 양자 1명을 두었다. 주요 자녀들의 활동은 다음과 같다.

3. 1. 1. 이범진

이경하의 서자이며, 단양 이씨 소생이다.[1] 이범진대한제국의 외교관으로, 주러시아 공사 등을 역임하며 러시아와의 외교 관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1910년 경술국치 이후 일제에 항거하여 자결하였다.

3. 1. 2. 이범윤

이범윤(李範允, 1856년 ~ 1940년)은 이경하의 서자로, 어머니는 재령 이씨(載寧 李氏)이다. 간도관리사를 역임하고, 연해주 지역에서 독립운동을 주도하였다.[1] 1907년 헤이그 특사 사건에 연루되어 유배되기도 하였으나,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항일 무장 투쟁을 전개하였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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