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극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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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극배는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1447년 문과에 급제하여 세조 즉위 후 추충좌익공신에 책록되었다. 예조참의, 공조참의, 경상도 관찰사 등을 거쳐 이조판서, 평안도도관찰사, 병조판서, 우의정, 영의정을 역임했다. 연산군 즉위 후 벼슬에서 물러나 광릉부원군에 봉해졌으며, 1495년에 사망하여 익평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이극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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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이극배는 1447년(세종 29년) 식년 문과에 급제하여 관직에 진출했다. 병조좌랑으로 있을 때 수양대군(세조)의 눈에 띄어 세조 즉위 후 추충좌익공신에 책록되었다. 이후, 1493년(성종 24) 영의정으로 승진했으며, 연산군이 즉위하자 나이를 이유로 여러 차례 치사(致仕)를 청한 끝에 이듬해 3월 치사를 허락받고 광릉부원군에 봉해졌다.

같은 해 6월에 사망했으며, 익평(翼平)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향년 74세.

2.1. 관직 생활

1447년(세종 29) 식년 문과에 급제했으며, 수양대군이 병조좌랑이던 그를 눈여겨보아, 수양대군이 세조로 즉위한 후 추충좌익공신(推忠佐翼功臣)에 책록되었다.

1457년(세조 3) 1월 판통례문사(判通禮門事)에서 예조참의로 승진해 당상관 반열에 올랐으며, 7월 공조참의 겸 경상도 관찰사로 옮겼다.

1459년(세조 5) 광릉군에 봉해지고 이후 병조참판, 예조참판 겸 집현전 제학(提學), 경기도 관찰사 등을 거쳐 1462년(세조 8) 1월 이조판서가 되었다가 7월에는 형조판서, 10월에는 예조판서로 옮겼다.

이듬해 3월 평안도 도관찰사(都觀察使)로 나갔다가 6월 아버지 이인손이 병을 얻어 다시 광릉군에 봉해졌다.

1467년(세조 13) 6월 병조판서가 되었다가 7월 이시애의 난으로 인해 군사를 거느리고 함길도로 간 한계미를 대신해 평안도 절도사(節度使)를 임시로 맡았다.

1468년(세조 14) 평안도 관찰사로 옮겼다가, 이듬해 우참찬(右參贊)으로 소환되었으며, 이후 병조판서, 좌참찬(左參贊), 판중추부사, 영중추부사를 거쳐 1485년(성종 16) 우의정에 올랐다.

1493년(성종 24) 영의정으로 승진했으며, 이듬해 연산군이 즉위하자 나이를 이유로 여러 차례 치사(致仕)를 청한 끝에 또 그 이듬해 3월 치사를 허락받고 광릉부원군에 봉해졌다.

3. 가족 관계

이극배는 명문가 출신으로, 증조부는 판전교시사를 지낸 이집이고, 조부는 형조우참의와 보문각직제학을 지낸 이지직이며, 아버지는 우의정을 지낸 이인손이다. 이극감, 이극증, 이극돈, 이극균은 이극배의 동생들로, 각각 형조판서, 판윤, 좌찬성, 좌의정을 역임했다. 이극배의 아들 이세필은 호조참판을 지냈으며, 명나라에 사신으로 가던 중 요동에서 사망했다.

3.1. 가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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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
증조부이집(1327년 ~ 1387년)
조부이지직(李之直)
아버지이인손(1395년 ~ 1463년)
어머니노신(盧信)의 딸
동생이극감(1423년 ~ 1465년)
동생이극증(1431년 ~ 1494년)
동생이극돈(1435년 ~ 1503년)
동생이극균(1437년 ~ 1504년)
부인최유종(崔有悰)의 딸
장남이세충(李世忠)
차남이세필(? ~ 1488년)
3남이세광
4남이세주(李世柱)
첫째 사위홍효손(洪孝孫)
둘째 사위남정(南禎)
셋째 사위정해(鄭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