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극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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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극균은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이집의 증손이며 이인손의 아들이다. 1456년 식년시에 급제하여 세조의 총애를 받았으며, 성균관 주부, 만포절제사, 전라도관찰사, 평안도관찰사, 강원도관찰사 등을 역임했다. 건주위 정벌에서 공을 세워 3등공신이 되었고, 명나라에 천추사로 다녀오기도 했다. 형조판서, 병조판서, 이조판서 등을 거쳐 1500년 우의정, 1503년 좌의정에 이르렀으나, 연산군의 폭정을 비판하다가 갑자사화에 연루되어 사사되었다. 이후 신원되었다.

이극균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이름이극균
원어 이름李克均
출생일1437년
사망일1504년 윤4월 12일
사망 원인갑자사화로 사사(賜死)
사망지인동현
국적조선
본관광주(廣州)
배우자이철근(李鐵根)의 딸
부모이인손
가족이세좌
학력 및 경력
학력식년시(式年試) 정과(丁科) 23위
최종 작위좌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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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이극균은 고려 말 문신 이집(集)의 증손으로, 아버지는 우의정 이인손(仁孫)이다. 1456년(조선 세조 2) 식년시에 급제하고 무예가 뛰어나 세조의 총애를 받았다. 1467년 건주위 정벌에 공을 세워 3등공신이 되었고, 1472년 명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왔다. 1486년 형조판서, 1495년 평안도 관찰사, 1498년 좌찬성을 거쳐 1500년 우의정, 1503년 좌의정에 올랐으나, 1504년 갑자사화에 연루되어 사사되었다.

2.1. 초기 생애와 관직 진출

이극균은 고려 말의 문신 이집(集)의 증손이며, 할아버지는 이조참의를 지낸 이지직(之直)이다. 아버지는 우의정을 지낸 이인손(仁孫)이며, 어머니는 노신(盧信)의 딸이다.

1456년(조선 세조 2) 식년시(式年試) 정과(丁科) 23위, 전체 33위로 급제하였다. 무예도 뛰어나 세조의 총애를 받아 선전관이 되었다.

1459년 성균관 주부, 회령도사, 지평, 도체찰사의 종사관을 역임하였다. 이듬해 김구, 최항, 정인지 등과 함께 《교정손자주해》(校正孫子註解)를 편찬하였다.

2.2. 북방 수비와 외교 활동

1467년 부호군으로 만포절제사가 되었다. 건주위 정벌에서 공을 세워 3등 공신으로 책록되어 노비 6구를 받았다.

1472년 (성종 3년) 천추사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이후 호조참판, 사헌부 대사헌을 역임했고, 1474년 전라도관찰사, 1477년 평안도관찰사, 1479년 강원도관찰사를 역임하였다.

2.3. 중앙 정계 활동과 갑자사화

1484년 대사헌을 거쳐 1486년 형조판서에 올랐다. 이어 병조판서, 형조판서, 한성부판윤, 의금부당상, 이조판서를 역임하였다.

1495년 (연산군 1) 평안도관찰사를 거쳐 1498년 좌찬성이 되었고, 이듬해 경변사(警邊使)로 나갔다. 1500년 우의정이 되었다. 이듬해 좌의정 성준과 함께 《서북제번기》(西北諸蕃記)와 〈서북지도〉(西北地圖)를 편찬하였다.

1502년 영의정 및 좌의정과 함께 시폐십조(時弊十條)를 왕에게 상소하였다. 1503년 좌의정이 되었다. 여러 차례 연산군의 황음(荒淫)을 바로잡으려 한 것이 화근이 되어, 이듬해 갑자사화 때 조카 이세좌와 함께 인동으로 귀양갔다가 사사(賜死)되었다. "신의 나이 70이 다 되고, 몸에 병이 쌓여 있으니, 죽어도 다른 생각이 없겠습니다만, 신이 소시부터 변방에서 일하였으며, 나라 일에는 크고 작은 것 없이 모두 진심 갈력하였습니다. 신이 반복하여 생각해 보아도, 한가지 죄도 없습니다. 이 말을 주상께 전달하기 바랍니다."라고 유언을 남기고 사사되었다. 뒤에 신원(伸冤)되었다.

3. 가족 관계

이극균의 가계는 고려 말, 조선 초의 명문가였다. 증조부 이집은 호가 둔촌으로 고려 말의 대학자였고, 할아버지 이지직은 호가 탄천으로 조선에서 이조참의를 지냈다. 아버지 이인손은 우의정을 역임했다.

형제로는 광릉부원군 이극배(영의정), 호조판서 이극감, 광천부원군 이극증(우찬성), 광원군 이극돈(좌찬성) 등이 있었다. 조카들 중에는 이조판서 이세좌, 도승지와 전라감사를 역임한 이세정 등이 현달하였다. 부인은 이철근의 딸이다.

3.1. 가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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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이름
증조부이집
조부이지직
이인손
노신의 딸
부인이철근의 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