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섭 (약학자)
1. 개요
이상섭은 미생물을 이용한 스테로이드 호르몬 생산 연구로 국제적 인정을 받은 약학자이다. 서울대학교 약학대학 학장, 한국생화학회 회장 등을 역임하며 한국의 생화학 및 약학 연구 발전에 기여했다. 미생물을 이용한 스테로이드 대사경로 규명, 경구용 피임제 개발, 캡사이신 연구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업적을 남겼으며, 산학협동 모델 구축과 국제 학술 교류에도 힘썼다. 1984년 대한민국학술원 저작상, 1996년 국민훈장 목련장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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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학자 -
심창구
심창구는 서울대학교 약학대학 졸업 후 동경대학교에서 약학 박사 학위를 받고 서울대학교 약학대학 교수와 한국약제학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제5대 식품의약품안전청장을 지낸 대한민국의 약학자이자 교육자, 공무원이다. -
약학자 -
이의경 (약학자)
이의경은 서울대학교에서 약학 학위를 받고 아이오와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숙명여자대학교 교수, 성균관대학교 교수를 역임하고 식품의약품안전처 처장을 지낸 대한민국의 약학자이다. -
대한민국의 생화학자 -
이기령 (과학자)
이기령은 경성제국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나가사키 대학교와 파리 대학교에서 학위를 취득한 대한민국의 생화학자로서, 서울대학교 생화학과 교수를 역임하고 대한민국학술원 종신회원을 지냈다. -
대한민국의 생화학자 -
심창구
심창구는 서울대학교 약학대학 졸업 후 동경대학교에서 약학 박사 학위를 받고 서울대학교 약학대학 교수와 한국약제학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제5대 식품의약품안전청장을 지낸 대한민국의 약학자이자 교육자, 공무원이다. -
학회장 -
김누리
김누리는 독일문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독일 문학 연구와 저서 집필, 사회적 발언 등 다양한 활동을 하는 대한민국의 독일문학자이자 대학교수이다. -
학회장 -
심봉근
심봉근은 한국 청동기 시대 문화를 주요 연구 분야로 하는 고고학자로, 동아대학교 총장을 역임했으며 한일 고고학 관계 연구에 기여했으나 일부 연구 결과에 객관성 논쟁이 있다.
3. 주요 경력
| 기간 | 직위 및 활동 내용 |
|---|---|
| 1955 ~ 1996 | 서울대학교 약학대학 조교, 전임강사, 교수 |
| 1978 ~ 1981 | 서울대학교 약학대학 학장 |
| 1981 ~ 1982 | 한국생화학회 회장 |
| 1981 ~ 1983 |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위원 |
| 1981 ~ 현재 | 대한민국학술원 회원 |
| 1983 ~ 1984 | 대한약학회 회장 |
| 1987 ~ 1991 | 한국환경과학협의회 이사 |
| 1990 ~ 1993 | 한국과학재단 연구개발심의회 위원장 |
| 1991 ~ 1994 | 대한민국 보건사회부 신약개발운영위원회 위원장 |
| 1993.02 ~ 1995.02 | 교육부 학술진흥위원회 상임위원 |
| 1993.08 ~ 1996 | 대한민국 과학기술처 유전공학종합정책심의회 위원 |
| 1993 ~ 1997 | 대한민국 보건복지부 중앙약사심의회 약효 및 안전성분과 위원장 |
| 1996.06 ~ 현재 | 서울대학교 약학대학 약학과 명예교수 |
| 1998 ~ 2001 | 한국과학기술한림원 부원장 |
| 1999 ~ 2001 | 전국과학정보기술인협회 공동회장 |
4. 생애 및 업적
미생물을 이용한 스테로이드 호르몬 생산 연구를 통해 국제적인 인정을 받았으며, 한국 생화학 및 약학 연구의 기반을 마련하는 데 기여했다.
1966년 미국 위스콘신 대학교에서 미생물에 의한 스테로이드 분해 과정을 규명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미생물의 효소 반응을 이용한 유용한 유기화합물의 생물변형(biotransformation) 메커니즘을 밝히는 연구를 수행했다.
4.1. 스테로이드 연구
이상섭은 미생물에 의한 스테로이드 대사 경로를 밝혀내어, 산업적으로 활용 가치가 적었던 콜레스테롤이나 식물성 스테롤로부터 스테로이드 호르몬을 생산하는 길을 열었다. 그의 스테로이드 연구는 1960년대부터 여러 국제 학술지에 발표되었으며, 생전환 메커니즘 연구는 관련 전문 서적에도 소개되었다.
이러한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1970년대 미국에서는 스테로이드 호르몬 생산이 시작되었고, 관련 기술은 한국 제약 기업에도 이전되어 국내 제약 산업 발전에 기여했다. 또한 동아제약의 지원을 받아 1968년 미생물 전환 반응 등을 이용해 경구용 스테로이드 피임제와 임신 진단약을 개발하고 국내 특허를 출원했으며, 이 공로로 1972년 보건사회부로부터 ‘약의 상’을 수상했다.
1960년대 말부터는 통증, 염증, 혈압 조절 등 다양한 생리 기능에 관여하는 프로스타글란딘류를 곰팡이와 효모균을 활용해 합성하는 연구를 진행했고, 그 결과를 1975년 미국 화학회지에 발표했다. 냉전 시대였던 1981년에는 불가리아 건국 기념 국제학술행사에 초청받는 등 국제적으로도 활발한 학술 활동을 펼쳤다.
4.1.1. 스테로이드 호르몬 생산 기술 개발
미생물에 의한 스테로이드 대사 경로를 밝혀내어, 이전까지 산업적으로 활용하기 어려웠던 콜레스테롤이나 식물성 스테롤로부터 스테로이드 호르몬을 생산하는 방법을 개발했다. 이와 관련된 여러 연구 논문을 1960년대부터 미국 화학회지, 미국 생화학회지 등에 발표했으며, 여러 생명공학 관련 전문 서적의 스테로이드 관련 장에 그의 생전환 메커니즘이 소개되었다. 1970년대에는 미국에서 그의 연구를 기반으로 스테로이드 호르몬 생산이 시작되었고, 한국의 제약 기업에도 관련 생산 기술이 이전되었다. 냉전 시대였던 1981년에는 불가리아 건국 1300주년 기념 국제학술행사(The 1st International Conference on Chemistry and Biotechnology of Biologically Active National Products)에 초청받기도 했다.
동아제약의 연구비 지원을 받아 1968년 미생물 전환 반응과 유기화학 반응을 이용하여 경구용 스테로이드 피임제 '피고로'와 임신 진단약 '프레그나'를 개발하고 국내 발명 특허를 출원했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1972년 보건사회부로부터 ‘약의 상’을 수상했다.
또한 1960년대 말부터는 국소 호르몬으로서 통증, 발열, 관절염과 같은 염증 반응, 혈압 조절, 혈액 응고, 생식 기능 조절 등 다양한 생리 기능에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진 프로스타글란딘류(prostaglandin)를 곰팡이와 효모균을 이용하여 전체 합성하는 연구를 진행했고, 그 결과를 1975년 미국 화학회지에 발표했다.
4.1.2. 국제 학술 활동
이상섭은 미생물을 이용한 스테로이드 대사 경로를 밝혀내어, 산업적으로 활용 가치가 낮았던 콜레스테롤이나 식물성 스테롤로부터 중요한 스테로이드 호르몬을 생산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이와 관련된 다수의 연구 논문을 1960년대부터 미국의 저명한 학술지인 미국 화학회지(Journal of the American Chemical Society)와 미국 생화학회지(Journal of Biological Chemistry) 등에 발표하였으며, 여러 바이오 기술 관련 전문 서적에도 그의 생전환 메커니즘 연구가 소개되었다.
그의 연구는 국제적으로도 큰 영향을 미쳐, 1970년대 미국에서는 그의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스테로이드 호르몬 생산이 시작되었으며, 관련 기술은 한국의 제약 기업에도 이전되어 국내 제약 산업 발전에 기여했다.
국내에서는 동아제약의 연구비 지원을 받아 1968년 미생물 전환 반응과 유기화학 반응을 이용하여 경구용 스테로이드 피임제 '피고로'와 임신 진단약 '프레그나'를 개발하고 국내 발명 특허를 출원했다. 이 공로를 인정받아 1972년에는 보건사회부로부터 ‘약의 상’을 수상했다.
또한, 1960년대 말부터는 통증, 발열, 염증 반응 조절 등 다양한 생리 활성을 지닌 프로스타글란딘(prostaglandin)을 곰팡이나 효모를 이용하여 완전히 합성하는 연구를 진행했다. 이 연구 결과는 1975년 미국 화학회지에 발표되어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냉전 시기였던 1981년에는 불가리아 건국 1300주년을 기념하여 열린 국제 학술 행사인 '제1차 생리활성 천연물 화학 및 생명공학 국제 학술회의'(The 1st International Conference on Chemistry and Biotechnology of Biologically Active National Products)에 초청받아 연구 성과를 발표하는 등 활발한 국제 학술 활동을 펼쳤다.
4.1.3. 경구용 피임제 및 임신 진단약 개발
동아제약의 연구비 지원을 받아 1968년, 미생물 전환 반응과 유기화학 반응을 응용하여 경구용 스테로이드 피임제 '피고로'와 임신 진단약 '프레그나'를 개발했다. 이는 산업적으로 활용 가치가 낮은 콜레스테롤이나 식물성 스테롤로부터 스테로이드 호르몬을 생산하는 미생물 대사 경로 연구에 기반한 성과였다. 이 개발로 국내 발명 특허를 출원했으며, 1972년에는 보건사회부로부터 ‘약의 상’을 수상하며 공로를 인정받았다.
1960년대 말부터는 통증, 발열, 염증, 혈압 조절 등 다양한 생리 기능에 관여하는 프로스타글란딘류를 곰팡이나 효모균을 이용하여 합성하는 연구도 진행했고, 그 결과를 1975년 미국 화학회지에 발표했다.
4.2. 캡사이신 연구
이상섭 교수는 1950년대부터 고추의 매운 성분인 캡사이신 연구를 시작하여, 이 분야에서 중요한 학문적 기여를 하였다. 그의 연구는 캡사이신의 다양한 생리 활성을 밝히고 신약 개발의 토대를 마련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4.2.1. 캡사이신 연구의 발전 과정
1950년대부터 고추의 매운 성분인 캡사이신에 관한 연구를 시작하여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다. 초기에는 고추장 속 캡사이신의 발효 연구로 시작했으나, 점차 생체 내 대사, 대사산물과 관련 효소군, 독성, 약리작용, 발암성 유무, 그리고 진통작용 연구로 범위를 넓혀 나갔다.
특히 1980년대 후반에는 다수의 캡사이신 유사체를 합성하고 이들의 진통작용과의 상관성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캡사이신 수용체의 존재를 가정하고 수용체 모델을 제시하였다. 이러한 선구적인 연구는 1997년 캘리포니아 대학교 연구진이 해당 수용체를 복제하는 성과로 이어졌으며,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유형의 진통 약물 개발이 활발히 추진되는 계기가 되었다.
4.2.2. 캡사이신 수용체 모델 제시
1950년대부터 고추의 매운 성분인 캡사이신에 관한 연구를 시작하여 현재까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처음에는 고추장 속 캡사이신의 발효 연구에서 시작하여, 점차 생체 내 대사 과정, 관련 대사산물과 효소군, 독성 및 약리 작용, 발암성 유무, 그리고 진통 작용 연구로 범위를 넓혀나갔다. 특히 1980년대 후반에는 다수의 캡사이신 유사체를 합성하고 이들의 진통 작용과의 상관성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캡사이신 수용체의 존재를 가정하고 그 모델을 제시하는 중요한 성과를 거두었다. 이러한 연구 결과는 1997년 캘리포니아 대학교 연구진이 해당 수용체를 복제하는 데 성공하면서 실증되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유형의 진통제 개발이 추진되고 있다.
4.2.3. 캡사이신 수용체 발견과 신약 개발
1950년대부터 고추의 매운 성분인 캡사이신에 관한 연구를 시작하여 현재까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처음에는 고추장 중의 캡사이신 발효 연구에서 시작하여 생체 내 대사, 대사산물과 관련 효소군, 독성, 약리작용, 발암성 유무, 진통작용 연구로 이어졌다. 1980년대 후반에는 많은 캡사이신 유사체를 합성하여 진통작용과의 상관성 연구를 통해 캡사이신 수용체의 존재를 가정하고 수용체 모델을 제시하였다. 1997년 캘리포니아 대학교 연구진이 이 수용체를 복제함으로써,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유형의 진통 약물 개발이 추진되고 있다.
4.3. 약학 교육 발전 기여
1981년 서울대 약대 학장으로 재직하며 종합약학연구소와 교육연구재단을 설립하여 산학협동의 기틀을 마련하고 약학 교육 및 연구 발전에 기여했다. 한국유전공학학술협의회 부위원장으로서 유전공학육성법 제정에 기여했으며, FAOB 한국대표로서 1989년 제5차 대회를 서울에 유치하고 성공적으로 개최하여 국제 학술 교류에도 기여했다. 또한 활발한 연구 활동과 특허 실용화를 통해 학문 발전에 기여했으며, 은퇴 후에는 기금을 출연하여 후학 양성에도 힘썼다.
4.3.1. 산학협동 모델 구축
1981년 약학대학 학장으로 재직하면서 종합약학연구소와 교육연구재단을 설립했다. 이를 통해 대학은 연구소를 통해 제약산업계를 지원하고, 산업계는 주식 기부로 재단을 지원하는 선순환 구조의 산학협동 모델을 구축하여 약학 교육 및 연구 발전의 기틀을 마련했다. 또한 한국유전공학학술협의회 부위원장을 맡아 학계의 의견을 수렴하여 유전공학육성법 제정에 기여했다.
아시아대양주생화학자연합(FAOB)의 한국대표로서 1989년 제5차 대회를 한국에 유치하고 조직위원장을 맡았다. 6년간의 준비 끝에 노벨상 수상자 3명을 포함한 많은 석학들을 초청하여 당시 국내 최대 규모의 바이오 학술대회인 제5차 FAOB Seoul Congress를 성공적으로 개최했다.
연구 분야에서도 저명 저널에 30여 편의 논문을 발표하고, 특허 3건을 실용화하는 등 우수한 성과를 거두었다. 은퇴 이후에는 오당 심포지엄 기금을 출연하여 젊은 후학들이 연구 결과를 발표하고 교류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주었다.
4.3.2. 국제 학술 교류
FAOB(아시아대양주생화학자연합)의 한국대표로서 활동하며 국제 학술 교류에 기여했다. 1989년 제5차 FAOB 대회의 서울 유치에 성공했으며, 대회 조직위원장으로서 6년간의 준비 끝에 노벨상 수상자 3명을 비롯한 많은 석학들을 초빙하여 국내 최대 규모의 바이오 학술대회인 제5차 FAOB Seoul Congress를 성공적으로 치러냈다.
4.3.3. 후학 양성
1981년 서울대학교 약학대학 학장으로 재직하면서 종합약학연구소와 교육연구재단을 설립했다. 이를 통해 대학은 연구소를 통해 제약산업계를 지원하고, 산업계는 주식 기부로 재단을 지원하는 산학협동의 모범적인 사례를 만들어 약학 교육 및 연구 발전의 기틀을 마련했다. 또한 한국유전공학학술협의회 부위원장을 맡아 학계의 의견을 수렴하여 유전공학육성법 제정에 기여했다.
아시아대양주생화학자연합(FAOB)의 한국대표로서 1989년 제5차 대회를 서울에 유치했다. 조직위원장으로서 6년간의 준비 끝에 노벨상 수상자 3명을 포함한 많은 석학들을 초청하여 국내 최대 규모의 바이오 학술대회인 제5차 FAOB Seoul Congress를 성공적으로 개최했다.
저명 학술지에 30여 편의 논문을 발표하고, 특허 3건을 실용화하는 등 우수한 연구 성과를 거두었다. 은퇴 이후에는 오당 심포지엄 기금을 출연하여 젊은 후학들이 자신의 연구 결과를 발표하고 교류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