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익수 (168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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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익수(1682년)는 조선 시대의 인물로, 관상감 명과학 겸교수를 지냈다. 이상우의 아들이며, 이감, 이희헌의 후손이다. 1725년 우승지의 추천으로 관상감 명과학 겸교수가 되었으나, 이듬해 탈이 생겨 교체되었다. 사후 가선대부 호조참판 겸 동지의금부사로 증직되었으며, 증손자는 이현상, 4대손은 이봉녕, 이인녕, 5대손은 이재명, 6대손은 이휘선이다. 묘소는 경기도 영평군 동면에 있다.
아버지는 경안도찰방 이상우(李商雨)이고, 어머니는 학성이씨(鶴城李氏)로 훈련원주부 이정추(李廷樞)의 딸이다.
중종~명종 대의 문신 이감의 후손이며, 광해군~인조 대의 의사 이희헌(李希憲)의 5대손이다. 아버지 이상우(李商雨)는 경안도 찰방을 지냈으며, 어머니는 학성이씨(鶴城李氏)로 훈련원 주부 이정추(李廷樞)의 딸이다.
그의 아내 전주이씨는 양녕대군의 후손이자 판돈녕부사를 지내고 영의정에 추증된 이로(李輅)의 후손이다. 구체적으로는 취성군 이경(鷲城君 李熲), 계림군 이탄(鷄林君 李坦), 하창군 이린(河昌君 李璘)으로 이어지는 가계이지만, 양녕대군파 족보의 출가녀 기록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1]
간행물
승정원일기 605책 (탈초본 33책) 영조 1년 11월 27일 신유 5/11 기사
雍正(淸/世宗) 3년
1725-11-27
2. 생애
중종~명종대의 문신 이감의 후손이며, 광해군~인조 대의 의사 이희헌(李希憲)의 5대손이다. 그러나 아버지 이상우가 경기도 포천에 살던 이영구의 양자로 들어가면서, 본래 거주지인 광주 낙생면(현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에서 포천으로 이주하였다.
그는 판돈녕부사 동진(東津) 이로(李輅)의 가문과 혼인 관계를 맺었다. 첫 부인은 이로의 후손 이질(李耋)의 딸인 전주이씨였으나 일찍 세상을 떠났다. 이후 맞이한 후취 동래정씨에게서 낳은 딸 중 한 명을 이로의 다른 후손인 이동모(李東模)에게 시집보냈다. 또한 양자로 들인 이성석(李聖錫)의 딸은 이동모의 동생 이동주(李東柱)에게 시집갔다. 이 외에도 세조의 아들 덕원군 서(嶼)의 11대손 이득채(李得采)에게 시집간 손녀딸도 있었다.
1725년(영조 1년) 11월 27일, 학문과 기술이 정밀하고 밝다는 이유로 우승지 신방(申昉)의 추천을 받아 관상감 명과학 겸교수(命課學兼敎授)에 임명되었다. 당시 신방은 관상감 제조의 뜻을 전하며 "탈이 있는 본감의 명과학 겸교수 이위(李蘤)의 후임으로 사인(士人) 이익수(李益壽)가 술업(術業)이 정명(精明)하다고 하니, 이 사람을 임명하고 군직(軍職)에 붙여 관복 차림으로 항상 참여하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라고 아뢰어 영조의 윤허를 받았다.[1] 다음 날인 11월 28일에는 병비(兵批)에 의해 부사용(副司勇)으로 임명되었다.[2]
명과학 겸교수로 재직하던 중 1726년 5월 23일 탈이 생겨, 관상감 관원의 보고를 받은 우승지 황선(黃璿)이 교체를 건의하여 진사 박도욱(朴道郁)으로 대체되었다.[3]
사후에는 양아들 이성석(李聖錫)이 노인직으로 가선대부에 오르면서, 1799년 증 가선대부 호조참판 겸 동지의금부사로 추증되었다. 그의 집안 족보에는 교수를 지냈다는 사실이 기록되지 않았으나, 1970년대 이후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승정원일기를 판독하는 과정에서 관직 역임 사실이 밝혀졌다. 또한 그의 사위이자 서산군 이혜(李潓)의 11대손인 이동모(李東模)의 기록에도 '娶敎官羽溪李益壽女英祖己酉生乙亥卒'(교관 우계 이익수의 딸에게 장가들었는데, 영조 기유년에 태어나 을해년에 졸하였다)라는 내용이 있어, 그가 교관을 지냈다는 사실이 승정원일기 기록과 함께 확인되었다.
아들이 없어 동생 이인수(李麟壽)의 둘째 아들 이성석(李聖錫)을 양자로 삼았다. 그의 후손 중에는 일본에 통신사로 다녀온 증손자 이현상, 청나라 사신의 수행원으로 다녀온 4대손 분서(焚書) 이봉녕과 이문학관(理文學官) 이인녕, 문과에 급제한 5대손 이재명, 대한제국 시대의 법관이자 변호사였던 6대손 이휘선 등이 있다.
묘소는 경기도 영평군(永平郡) 동면 백아리(白鵝里, 현 포천시 일동면 백아리) 간좌(艮坐)에 있다. 묘소 근처에는 일찍 세상을 떠난 친형 이필수(李必壽) 내외의 묘가 있다.
3. 가계
본래 이익수의 가문은 광주군 낙생면(현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에 세거하였으나, 아버지 이상우가 경기도 포천에 살던 친척 이영구의 양자로 입양되면서 포천으로 이주하였다.
이익수는 판돈녕부사를 지낸 동진(東津) 이로(李輅)의 가문과 혼인 관계를 맺었다. 첫 부인은 이로의 후손인 이기(李耋)의 딸 전주 이씨였으나 일찍 사망했다. 이후 동래 정씨를 후처로 맞이하였으며, 그녀에게서 낳은 딸 중 한 명을 이로의 다른 후손인 이동모(李東模)에게 시집보냈다. 또한, 양자로 들인 이성석(李聖錫)의 딸은 이동모의 동생인 이동주(李東柱)에게 시집갔다. 손녀 중에는 세조의 아들 덕원군 서(徐)의 11대손 이득채(李得采)에게 시집간 이도 있었다.
아들이 없어 동생 이인수(李仁壽)의 둘째 아들 이성석(李聖錫)을 양자로 삼았다. 증손자는 통신사로 일본에 다녀온 이현상이고, 4대손은 청나라 사신의 수행원으로 다녀온 분서(焚書) 이봉녕과 이문학관(吏文學官) 이인녕이다. 5대손은 문과 급제자 이재명이며, 6대손은 대한제국 시대의 법관이자 변호사였던 이휘선이다.
첫 부인 전주 이씨는 양녕대군의 후손으로, 판돈녕부사 증 영의정 이로(李輅)의 후손이다. 구체적으로는 취성군 이경(鷲城君 李熲) - 계림군 이탄(鷄林君 李坦) - 하창군 이린(河昌君 李璘)의 후손이 되나, 양녕대군파 족보의 출가녀 기록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4. 후손
그의 양자인 이성석의 딸 중 한 명은 이익수의 사위 이동모의 동생인 이동주(李東柱)와 혼인했다. 또한 다른 양손녀 한 명은 덕원군의 11대손인 이득채와 혼인했다.
참조
[2]
간행물
승정원일기 605책 (탈초본 33책) 영조 1년 11월 28일 임술 17/25 기사
雍正(淸/世宗) 3년
1725-11-28
[3]
간행물
승정원일기 616책 (탈초본 33책) 영조 2년 5월 13일 갑진 24/38 기사
雍正(淸/世宗) 4년
1726-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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