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극
1. 개요
이재극은 대한제국 고종과 같은 항렬의 왕실 종친으로, 1879년 음서로 관직에 진출하여 교관을 역임했다. 1885년 문과에 급제한 후, 1900년 경기도 관찰사를 시작으로 법부대신, 궁내부대신 등을 지내며 일제에 협력했다. 을사조약 체결 과정에서 고종을 압박하고, 한일 병합 조약 체결 후 남작 작위를 받았으며, 1919년 이왕직 장관을 역임했다. 2002년 친일파 708인 명단, 2008년 친일인명사전에 수록 예정되었으며, 2007년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이 국가로 환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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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 | 이재극 |
|---|---|
| 별칭 | 이재극 |
| 출생일 | 1864년 |
| 사망일 | 1931년 |
| 국적 | 한국 |
| 직업 | 미상 |
| 작위 | 남작 |
|---|---|
| 후임자 | 이인용 |
| 상훈 | 미상 |
|---|---|
| 배우자 | 미상 |
| 종교 | 미상 |
| 경력 | 미상 |
| 학력 | 미상 |
| 웹사이트 | 미상 |
| 저널 | [[http://www.donga.com/docs/magazine/shin/2005/10/13/200510130500006/200510130500006_1.html|전봉관의 ‘옛날 잡지를 보러가다’④] 이인용 남작 부부의 ‘소송 전쟁’] |
|---|---|
| 저자 | 전봉관 |
| 저널명 | 신동아 |
| 연도 | 2005 |
| 작성월 | 10 |
| 호수 | 553호 |
| 쪽수 | 454~469쪽 |
-
조선남작 -
김가진
김가진은 조선 말기 문신이자 대한제국 관료였으며,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로, 서얼 출신으로 관직 생활을 시작해 개화파 관료로서 독립협회에서 활동, 을사조약에 반대하고 대한협회 회장을 지냈으며, 3·1 운동 후 상하이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
조선남작 -
이항구
이항구는 대한제국 시기 관료를 지냈고 일제강점기 이왕직 차관과 장관을 역임했으며, 《고종실록》 편찬 당시 편찬위원회 부위원장으로서 일제 식민사관에 부역했다는 비판을 받아 친일반민족행위 관련 명단에 포함되었고, 그의 아버지 이완용 또한 친일반민족행위자이다. -
조선의 문신 -
정유길
정유길은 조선 중기 문신으로, 중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거쳐 명종 때 왕의 총애를 받았으며, 윤원형 탄핵에 앞장서 훈구파, 소윤파, 사림파 모두에게 존경받아 좌의정에 이르렀다. -
조선의 문신 -
윤증
윤증은 조선 중기 문신이자 소론의 영수로 우의정까지 역임한 정치가였으며, 성리학적·정치적 갈등으로 스승 송시열과 결별하고 탕평책을 지지했으나 당쟁 속에서 뜻을 이루지 못했으며, 실천적 삶을 강조한 무실학을 추구하며 조선 후기 정치와 사상에 큰 영향을 미쳤다. -
대한민국 정부 발표 친일반민족행위자 -
최남선
최남선은 1890년에 태어나 1957년에 사망한 대한민국의 문인이자 독립운동가, 언론인, 역사학자이며, 《소년》을 창간하고 신체시 〈해에게서 소년에게〉를 발표하여 현대 한국 문학의 선구자로 평가받으며, 3·1 운동 독립선언서 기초, 친일 행적, 단군 연구, 《단군론》, 《불함문화론》 저술 등의 활동을 했다. -
대한민국 정부 발표 친일반민족행위자 -
송영 (극작가)
송영은 일제 강점기와 북한에서 활동한 극작가로, 카프 계열 연극인으로 등단하여 노동 운동 풍자 작품을 발표했으나 친일 행적을 보였고, 광복 후 월북하여 북조선연극동맹 위원장을 지냈으며, 김일성 항일 무장 투쟁을 형상화한 희곡으로 알려졌으나 한설야 숙청 시기에 숙청되었을 가능성이 있지만 애국렬사릉에 안장된 것으로 보아 복권된 것으로 추정된다.
2. 생애
고종과는 8촌 형제 항렬의 왕실 종친으로, 아버지는 이조참판을 지낸 이연응(李沇應)이다.
1879년 음서로 관직 생활을 시작했으며, 1885년에는 문과에 급제하였다. 임오군란 당시 흥선대원군이 주관한 명성황후의 국장 절차에서 종척집사(宗戚執事)를 맡는 등 왕실 관련 업무를 수행했다.
1900년 경기도 관찰사를 시작으로 주요 관직을 역임했으며, 1903년 법부대신에 임명된 이후 일제와 밀착하여 활동하기 시작했다. 을사조약 체결 당시에는 궁내부대신으로서 고종을 압박하는 역할을 했으며, 이로 인해 대표적인 친일 종친으로 지목되었다. 1910년 한일 병합 이후 일제로부터 남작 작위를 받았다. 1919년에는 구 황실 관련 사무를 처리하는 이왕직 장관에 임명되어 지속적으로 일제에 협력했다.
2.1. 관직 생활
음서로써 1879년부터 관직에 들어서 교관을 역임했다. 후에 1885년 문과에 급제했고, 임오군란 때 흥선대원군이 치른 명성황후의 장례에서 종척집사(宗戚執事)를 맡는 등 왕실 주변에서 여러 벼슬을 지냈다.
1900년에 경기도 관찰사에 임명되면서 요직을 맡기 시작하여, 1903년 법부대신에 임명되었다. 이 무렵부터 일제와 밀착하여 황실의 동정을 탐지하여 제공하는 등의 역할을 했다.
을사조약 체결 과정에서는 궁내부대신으로 일제의 뜻에 따라 고종을 협박하는 일을 맡았다. 이로 인해 종친 중 대표적인 친일파로 지목되어 나철이 을사오적을 암살하기로 했을 때 암살 대상자로 꼽히기도 했다. 1910년 한일 병합 조약 체결 후 일본 정부로부터 남작 작위를 받았다.
1919년 구 황실을 담당하는 이왕직 장관에 임명되어 계속해서 일제에 협조하며 활동하였다.
2.2. 친일 행적
1903년 법부대신에 임명된 이후부터 일제와 가까워지며 황실의 동정을 파악해 일본 측에 전달하는 등 친일적인 행보를 보이기 시작했다. 을사조약 체결 과정에서는 궁내부대신으로서 일제의 입장에 서서 고종을 압박하는 역할을 맡았다. 이러한 행적으로 인해 왕실 종친 중 대표적인 친일파로 지목되었으며, 나철 등이 을사오적 암살을 계획할 때 함께 제거 대상으로 고려되기도 했다.
1910년 한일 병합이 이루어진 후, 일본 정부로부터 남작 작위를 수여받았다. 1919년에는 대한제국 황실의 재산을 관리하고 왕족 관련 사무를 담당하던 이왕직의 장관으로 임명되어,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일제에 협력하는 활동을 이어갔다.
2.3. 일제강점기 활동
1900년 경기도 관찰사에 임명되면서 주요 관직을 맡기 시작했고, 1903년에는 법부대신에 임명되었다. 이 무렵부터 일제와 가까워져 황실의 동정을 몰래 파악하여 일본 측에 전달하는 등 친일적인 행보를 보였다.
을사조약 체결 과정에서는 궁내부대신으로서 일제의 뜻에 따라 고종을 압박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이로 인해 왕실 종친 가운데 대표적인 친일파로 낙인찍혔으며, 나철 등이 을사오적 암살을 계획했을 때 함께 제거 대상으로 지목되기도 했다.
1910년 한일 병합 조약 체결 이후에는 일본 정부로부터 남작 작위를 수여받았다. 1919년에는 옛 대한제국 황실 관련 사무를 처리하던 이왕직의 장관으로 임명되어 지속적으로 일제에 협력하는 활동을 이어갔다.
3. 사후
이재극은 사후 친일 행적이 문제되어 관련 단체들에 의해 친일파로 규정되었으며, 그의 재산 또한 국가 환수 대상이 되었다. 그의 친일 행적은 장남 이인용에게도 영향을 미쳐, 이인용 역시 친일 관련 명단에 포함되었다.
3.1. 친일파 명단 등재
2002년 민족정기를 세우는 국회의원모임이 발표한 친일파 708인 명단과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발표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에 모두 선정되었다. 두 명단에는 장남 이인용도 함께 포함되었다.
2007년 대한민국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는 이재극 소유의 재산을 친일 행위의 대가로 취득한 것으로 보고 국가 귀속 결정을 내렸다. 또한 같은 해 12월 6일 대한민국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195인 명단에도 포함되었다.
3.2. 재산 환수
2002년 민족정기를 세우는 국회의원모임이 발표한 친일파 708인 명단과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발표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에 모두 선정되었다. 장남 이인용 역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에 포함되었다.
2007년 대한민국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는 이재극 소유의 재산을 국가로 환수하기로 결정했으며, 같은 해 12월 6일 대한민국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는 그를 친일반민족행위 195인 명단에 포함하여 발표했다.
한편, 이재극은 의친왕의 5남 이수길을 양손자로 들였는데, 이수길의 부인이 과거 이재극 소유였던 파주의 토지에 대해 반환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