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 (1511년)
1. 개요
이정(李貞)은 1511년에 태어나 1583년에 사망한 조선 중기의 인물이다. 그는 증 좌의정에 추증되었으며 덕연부원군에 봉해졌다. 그의 아들인 이순신은 임진왜란에서 순절하여 순충적덕병의보조공신으로 추증되었다. 이정은 변수림의 딸과 혼인하여 슬하에 네 아들을 두었으며, 73세의 나이로 사망하여 충청남도 아산시에 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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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
난중일기
《난중일기》는 이순신이 임진왜란 중 군중에서 직접 쓴 친필 일기로, 전쟁 상황과 개인적인 소회, 사회상 등이 기록된 7권의 일기이며 국보 제76호이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이다. -
이순신 -
김명원
김명원은 조선 중기 문신으로 이황의 문인이었으며, 정여립 모반 사건 수습 공로와 임진왜란 당시 도원수를 지낸 후 여러 판서를 거쳐 우의정과 좌의정에 이르렀고 재상으로 평가받았다. -
1511년 출생 -
효혜공주
효혜공주는 조선 중종과 장경왕후의 장녀로, 김희와 혼인하여 딸 김선옥을 낳았으며, 이질을 앓다 사망하여 고양의 월산대군 묘에 예장되었다. -
1511년 출생 -
미카엘 세르베투스
미카엘 세르베투스는 스페인 출신의 신학자, 의사이자 르네상스 시대 인문주의자로서, 삼위일체론 부정으로 가톨릭과 개신교 양쪽에서 이단으로 정죄받았고, 폐순환을 최초로 기술한 유럽인 중 한 명으로 알려져 있으며, 종교적 관용과 양심의 자유에 대한 논의를 촉발하고 유니테리언주의에 영향을 미쳤다. -
덕수 이씨 -
이범렬
이범렬은 대한민국의 법조인으로, 판사로 임용되었으나 시국사건 판결 논란으로 사임 후 변호사로 개업하여 제1차 사법파동의 중심인물이었으며, 국가보위입법회의 입법의원,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 대한변호사협회 헌법재판 연구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
덕수 이씨 -
난중일기
《난중일기》는 이순신이 임진왜란 중 군중에서 직접 쓴 친필 일기로, 전쟁 상황과 개인적인 소회, 사회상 등이 기록된 7권의 일기이며 국보 제76호이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이다.
2. 생애
중종 6년(1511) 7월 2일 태어났다. 중종 25년~29년경(1530~1534경) 증 정경부인(貞敬夫人) 초계 변씨 변수림(卞守琳)의 따님과 혼례 후 서울 건천동(現 서울 을지로)에 터를 잡은 것으로 추정된다.
중종 30년(1535) 장남 이희신(李羲臣)이 태어났고, 중종 37년(1542) 차남 이요신(李堯臣)이 태어났다. 인종 1년(1545) 삼남 이순신(李舜臣)이 태어났으며, 인종 1년경(1545경) 아버지인 이백록(李百祿)이 별세한 것으로 추정된다. 연도미상 사남 이우신(李禹臣)이 태어났다.
명종 1년(1546) 진소(陳訴)를 통해 아버지 이백록(李百祿)이 중종 대왕의 국휼(國恤) 때 주육(酒肉)을 갖추어 베풀고는 아들을 성혼시켰다고 잘못 녹안(錄案)된 것을 바로잡았다. 명종 9년~14년경(1555~1560경) 서울 건천동에서 충청남도 아산시 염치읍 백암리로 이주한 것으로 추정된다.
선조 6년(1573) 음서로 관직에 올라 종6품 병절교위를 지냈으며, 선조 9년(1576) 종5품 창신교위를 지냈다. 선조 13년(1580) 경진(庚辰)정월 23일 차남 이요신(李堯臣)을 39세로 참척하였다.
선조 16년(1583) 11월 15일 향년 73세로 별세하였다. 묘는 충청남도 아산시 음봉면 고룡산 자락에 쌍분으로 모셔져 있다.
선조 37년(1604) 덕풍부원군 충무공 이순신이 임진왜란 순절 훈공으로 순충적덕병의보조공신(純忠積德秉義補祚功臣) 대광보국(大匡輔國) 숭록대부(崇祿大夫) 의정부 좌의정(議政府左議政) 겸(兼)영(領) 경영사(經筵事)에 추증되고 덕연부원군(德淵府院君)에 봉해졌다.
3. 가계
* 증조부 : 이효조(李孝組), 통례원봉례
* 조부 : 이거(李琚, 미상~1502), 사헌부장령, 한림, 홍문관 박사, 순천부사, 병조참의
백부 : 이백복(李百福), 통훈대부 함종현령.
백부 : 이백령(李百齡), 생원.
부 : 이백록(李百祿) 호는 풍암, 평시서봉사
모 : 초계 변씨(草溪卞氏), 변성(卞誠)의 딸
본인 : 이정(李貞, 1511~1583) 증 좌의정 덕연부원군(德淵府院君)
부인 : 증 정경부인 초계 변씨(草溪卞氏, 1515~1597), 장사랑 변수림(卞守琳)의 딸
* 장자 : 이희신(李羲臣, 1535~1587), 증 병조참판
며느리 : 증 정부인 진주 강씨(晉州姜氏), 강세온(姜世溫)의 딸
* 손자 : 이뢰(李蕾, 1561~1648), 찰방
* 손자 : 이분(李芬, 1566~1619), 병조정랑
* 손자 : 이번(李蕃, 1575~1668), 효릉참봉
* 손자 : 이완(李莞, 1579~1627), 증 병조판서, 시호 강민(剛愍), 정묘호란 전사
* 차남 : 이요신(李堯臣, 1542~1580), 증 호조참판동의금부사
며느리 : 증 정부인 청풍 김씨(清風金氏), 김대신(大頣)의 딸
* 손자 : 이봉(李菶, 1563~1650), 선무원종공신 2등, 경상도병마절도사겸 오위도청부 부총관, 평안도병마절도사, 포도대장, 삼척포첨사
* 손자 : 이해(李荄, 1566~1645), 선무원종공신 2등, 훈련원주부
* 3남 : 이순신(李舜臣, 1545~1598), 덕풍부원군(德豐府院君), 시호 충무(忠武)
며느리 : 정경부인 상주 방씨(尙州 方氏; 온양 방씨)
* 손자 : 이회(李薈, 1567~1625) 선무1등공훈, 훈련원 첨정, 증 승정원 좌승지
* 손자 : 이예(李䓲, 1571~1631) 형조정랑, 증 승정원 좌승지
* 손자 : 이면(李葂, 1577~1597) 증 이조 참의, 정유재란시 왜군과 교전 중 전사
며느리(첩) : 해주 오씨(海州吳氏; 해주 오씨)
* 손자 : 이훈(李薰, 1574~1624) 무과, 증 병조참의, 이괄의 난 진압 중 전사
* 손자 : 이신(李藎, 미상~1627) 무과, 정묘호란시 종형제 이완(李莞)과 함께 전사
* 4남 : 이우신(李禹臣, 미상), 참봉
며느리 : 온양 조씨(溫陽鄭氏)
3.1. 가계도
wikitext
* 증조부 : 이효조(李孝組) - 통례원봉례
* 조부 : 이거(李琚, ?~1502) - 사헌부장령, 한림, 홍문관 박사, 순천부사, 병조참의
* 백부 : 이백복(李百福) - 통훈대부 함종현령
* 백부 : 이백령(李百齡) - 생원
* 부 : 이백록(李百祿) - 호는 풍암, 평시서봉사
* 모 : 초계 변씨(草溪卞氏) - 변성(卞誠)의 딸
* 본인 : 이정(李貞, 1511~1583) - 증 좌의정 덕연부원군(德淵府院君)
* 부인 : 증 정경부인 초계 변씨(草溪卞氏, 1515~1597) - 장사랑 변수림(卞守琳)의 딸
장자 : 이희신(李羲臣, 1535~1587) - 증 병조참판
* 며느리 : 증 정부인 진주 강씨(晉州姜氏) - 강세온(姜世溫)의 딸
손자 : 이뢰(李蕾, 1561~1648) - 찰방
손자 : 이분(李芬, 1566~1619) - 병조정랑
손자 : 이번(李蕃, 1575~1668) - 효릉참봉
손자 : 이완(李莞, 1579~1627) - 증 병조판서, 시호 강민(剛愍), 정묘호란 전사
차남 : 이요신(李堯臣, 1542~1580) - 증 호조참판동의금부사
* 며느리 : 증 정부인 청풍 김씨(清風金氏) - 김대신(大頣)의 딸
손자 : 이봉(李菶, 1563~1650) - 선무원종공신 2등, 경상도병마절도사겸 오위도청부 부총관, 평안도병마절도사, 포도대장, 삼척포첨사
손자 : 이해(李荄, 1566~1645) - 선무원종공신 2등, 훈련원주부
3남 : 이순신(李舜臣, 1545~1598) - 덕풍부원군(德豐府院君), 시호 충무(忠武)
* 며느리 : 정경부인 상주 방씨(尙州 方氏; 온양 방씨)
손자 : 이회(李薈, 1567~1625) - 선무1등공훈, 훈련원 첨정, 증 승정원 좌승지
손자 : 이예(李䓲, 1571~1631) - 형조정랑, 증 승정원 좌승지
손자 : 이면(李葂, 1577~1597) - 증 이조 참의, 정유재란시 전사
* 며느리(첩) : 해주 오씨(海州吳氏; 해주 오씨)
손자 : 이훈(李薰, 1574~1624) - 무과, 증 병조참의, 이괄의 난 진압 중 전사
손자 : 이신(李藎, ?~1627) - 무과, 정묘호란시 종형제 이완(李莞)과 함께 전사
4남 : 이우신(李禹臣, ?) - 참봉
*** 며느리 : 온양 조씨(溫陽鄭氏)
4. 재산
5. 평가 및 의의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아버지인 선교랑 평시서 봉사 이백록(李百祿)에 대한 잘못된 녹안을 당대 영의정인 윤인경 등을 통해 진소(陳訴)하여 해결한 것을 알 수 있다. 이를 통해 비록 관직 생활을 하지 않았지만 4대조인 정정공 이변(李邊), 조부인 이거(李琚)의 영향으로 사대부들과 교류가 있었으며, 잘못을 바로잡고자 노력한 강단 있는 성격임을 알 수 있다.
부인 초계 변씨(草溪卞氏)가 1588년 3월 12일에 작성한 별급문기를 보면, 전국에 노비 총 21명(노 12명, 비 9명)과 토지(영광, 나주, 고흥, 영변, 은율, 은진, 아산, 온양 등)를 소유하고 있어 몰락한 양반 집안은 아니었다. 슬하 형제들에게 재산 증여가 이루어졌는데, 장남 이희신(李羲臣)은 가문 상속자로 승중(承重) 분급되었고, 차남 이요신(李堯臣)은 선조 6년(1573) 노 3명, 비 3명을 각각 분급받았다. 삼남 이순신(李舜臣)은 선조 9년(1576) 무과 급제 후 노 7명, 비 1명을 분급받았고, 막내 이우신(李禹臣)은 명종 19년(1564) 노 2명, 비 2명을 분급받았다.
덕연부원군(德淵府院君) 이정(李貞)의 아들 대에서 참판공파(羲臣), 율리공파(堯臣), 충무공파(舜臣)로 나누어졌다. 이정(李貞)이 1555년~1560년 사이 충청남도 아산시 염치읍 백암리 일대에 터를 잡은 이후 덕수 이씨 덕연부원군 후손(율리공파, 충무공파)들의 집성촌이 되었으며, 장자 이희신(李羲臣)의 후손인 참판공파는 이백록(李百祿)의 묘가 있는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고기동 일대에 터를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