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일
1. 개요
이주일은 1940년 강원도 고성군에서 태어난 대한민국의 코미디언이자 정치인이다. 1960년 문선대에서 코미디를 시작하여, 1980년 TBC 《토요일이다 전원 출발》로 방송에 데뷔하여 MBC 《웃으면 복이와요》를 통해 인기를 얻었다. "못생겨서 죄송합니다"와 같은 유행어와 오리춤으로 1980년대를 풍미했으며,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되어 정치 활동을 시작했다. 2001년 폐암 말기 판정을 받고 금연 운동을 펼치다 2002년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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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포중학교 동문 -
권성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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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포중학교 동문 -
김민범
김민범은 평창초, 경포중, 강릉고를 졸업하고 1992년 태평양 돌핀스에 입단하여 1994년 1군 데뷔 후 현대 유니콘스에서 주로 원포인트 릴리프로 활약했으며, 164경기 연속 무패 기록을 세우고 넥센 히어로즈에서 은퇴 후 현재는 키움 히어로즈의 원정 기록원으로 활동한다. -
고성군 (강원특별자치도) 출신 -
김득구
가난을 극복하고 한국과 동양 챔피언에 오른 프로 복싱 선수 김득구는 1982년 레이 맨시니와의 세계 선수권 경기에서 사망 후 권투 안전 규정 강화에 영향을 주었다. -
고성군 (강원특별자치도) 출신 -
유동근
유동근은 1977년 연극 배우로 데뷔하여 1980년 TBC 공채 탤런트로 정식 데뷔한 대한민국의 배우로, 드라마, 영화, 연극에서 활발히 활동하며 사극 왕 역할 등 다양한 장르를 소화했고, 다수의 연기상을 수상했으며 배우 전인화와 결혼하여 1남 1녀를 두고 있다. -
춘천고등학교 동문 -
홍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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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고등학교 동문 -
장승태
장승태는 일제강점기 강원도 영월군 출신의 정치인으로, 제7대 국회의원을 시작으로 4선 의원, 체신부 장관을 역임했으며, 97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2. 생애
1985년 사회복지협의회 후원회장을 지냈다. 1988년 한국코미디연구회 창립 회장, 연예인협회 연기분과 명예위원장, 한국 BBS 중앙연맹 부총재를 역임하였다.
1991년 11월 22일, 외아들 정창원(당시 28세, 미국 버지니아 위슬리언대 4학년)이 차량 전복 사고로 사망했다. 장례식이 끝나고 3일 후 SBS 개국 특집 프로그램에 구지윤과 공동 출연하였다.
1992년 대한민국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통일국민당 공천으로 경기도 구리시 선거구에 출마, 45.34%의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이후 SBS 심야 토크쇼 《이주일의 투나잇쇼》로 연예계에 복귀하여 정치, 재계, 사회 문화를 풍자하며 큰 인기를 얻었다. 《이주일의 투나잇쇼》 100회 특집을 끝으로 방송계를 은퇴하였다.
2.1. 어린 시절과 데뷔
1940년 10월 24일 강원도 고성군 거진읍에서 5대 독자이자 1남 1녀 중 첫째로 태어났다. 운양초등학교, 경포중학교, 춘천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경원대학교 경영대학원 최고경영자과정을 수료하였다.
1960년 문선대에서 코미디를 시작하여, 1963년 연극배우로 데뷔하였고, 1965년 《샛별악극단》사회자로 연예계에 정식 데뷔를 하였다. 김경태 PD에게 발탁되어 1980년 TBC 《토요일이다 전원 출발》로 본격적인 방송 데뷔를 하였고, MBC 《웃으면 복이와요》로 늦깎이 인기를 얻게 되었다. 못생긴 얼굴로 인해 정상적인 방송 데뷔가 어려웠던 그는, 자신의 단점을 장점으로 승화시켜 80년대를 주름잡는 "코미디의 황제"로 군림하게 되었다. "못생겨서 죄송합니다"로 대표되는 여러 유행어를 남겼고, 수지큐(Susie Q) 음악에 맞춰 추던 그의 특유의 엉덩이를 흔들며 뒤뚱뒤뚱 걷던 '오리춤'은 오랫동안 모방되었다. 동료 코미디언 이상해와 콤비를 이루며 묘기 아닌 묘기에 도전하면서 코미디 프로그램의 절정을 누볐다.
2.2. 코미디언 활동과 전성기
1960년 문선대에서 코미디를 시작하여, 1965년 《샛별악극단》 사회자로 연예계에 정식 데뷔하였다. 김경태 PD에게 발탁되어 1980년 TBC 《토요일이다 전원 출발》로 본격적으로 방송에 데뷔하였고, MBC 《웃으면 복이와요》를 통해 늦깎이 인기를 얻게 되었다. 못생긴 얼굴 때문에 정상적인 방송 데뷔가 어려웠지만, 자신의 단점을 장점으로 승화시켜 80년대를 주름잡는 "코미디의 황제"로 군림하였다. "못생겨서 죄송합니다" 등 여러 유행어를 남겼고, Susie Q영어 음악에 맞춰 엉덩이를 흔들며 뒤뚱뒤뚱 걷는 특유의 '오리춤'은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모방되었다. 동료 코미디언 이상해와 콤비를 이루어 묘기 아닌 묘기에 도전하면서 코미디 프로그램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2.3. 사회 활동
1985년 사회복지협의회 후원회장을 지냈다. 1988년 한국코미디연구회 창립 회장, 연예인협회 연기분과 명예위원장, 한국 BBS 중앙연맹 부총재를 역임하였다.
2.4. 정치 입문과 국회의원 활동
1991년 외아들의 갑작스러운 사망이라는 개인적인 아픔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1992년 대한민국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통일국민당 후보로 경기 구리시 선거구에 출마하여 45.34%의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국회의원 당선 후에는 SBS의 심야 토크쇼인 《이주일의 투나잇쇼》를 통해 정치, 재계, 사회 문화를 풍자하며 큰 인기를 얻었다.
2.5. 아들의 죽음과 투병
1991년 11월 22일, 외아들 정창원(당시 28세, 미국 버지니아 위슬리언대 4학년)이 차량 전복 사고로 사망했다. 장례식이 끝나고 3일 후, SBS 개국 특집 프로그램에 구지윤과 공동 출연하였다. 평소에 담배를 하루 2~3갑 피우던 그는 아들의 죽음 이후 흡연량이 급속히 늘었다고 한다.
2001년 11월 17일, 폐암 말기 선고를 받았다. 이후 금연 명예교사, 범국민금연운동추진위원회 공동대표, 증언형 금연 광고 촬영 등 금연 운동 캠페인을 전개하였다.
폐암 투병 중이던 2002년 8월 27일 오후 3시 15분경 국립암센터에서 숨졌다. 춘천경춘공원에 안장되었으며, 사후 국민훈장 모란장과 29회 한국방송대상 심사위원특별상이 추서되었다.
2.6. 사망
평소 담배를 하루 2~3갑씩 피우던 이주일은 1991년 아들이 사망한 이후 흡연량이 급격히 늘었다. 2001년 11월 17일 폐암 말기 선고를 받은 후, 금연 명예교사, 범국민금연운동추진위원회 공동대표를 맡고 증언형 금연 광고를 촬영하는 등 금연 운동 캠페인을 전개하였다. 폐암 투병 중이던 2002년 8월 27일 오후 3시 15분경 국립암센터에서 숨졌다. 그의 유해는 춘천경춘공원에 안장되었으며, 사후 국민훈장 모란장과 29회 한국방송대상 심사위원특별상이 추서되었다.
3. 학력
* 운양국민학교 (1948년 ~ 1954년 졸업)
* 경포중학교 (1954년 ~ 1957년 졸업)
* 춘천고등학교 (1957년 ~ 1960년 졸업)
* 경원대학교 경영대학원 수료
4. 출연 작품
이주일은 방송, 영화, 광고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했다. 그는 MBC 웃으면 복이와요, 일요일 밤의 대행진, KBS 유머 일번지, SBS 이주일의 코미디 쇼 등 다수의 코미디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또한 《뭔가 보여드리겠읍니다》, 《얼굴이 아니고 마음입니다》 등 여러 영화에 출연했으며, 농심, KT 등 다양한 기업의 광고 모델로도 활동했다.
4.1. 방송
| | 프로그램명 || 방영 기간 | ||
|---|---|---|
| MBC | 웃으면 복이와요 | 1979년 |
| MBC | 일요일 밤의 대행진 | 1981년 |
| MBC | 청춘행진곡 | |
| MBC | 청춘만만세 | |
| KBS | 유머 일번지 | |
| KBS | 코미디 명랑극장 | |
| SBS | 이주일의 투나잇 쇼 이주일의 밤의 토크쇼 | 1996년 ~ 1997년 |
| SBS | 이주일의 코미디 쇼 | 1997년 ~ 1998년 |
| KBS | TV는 사랑을 싣고 | 1999년 |
4.2. 영화
| 제목 | 개봉 연도 |
|---|---|
| 《이주일의 리빠똥 사장》 | 1980년 |
| 《뭔가 보여드리겠읍니다》 | 1980년 |
| 《별명 붙은 사나이》 | 1980년 |
| 《조용히 살고 싶다》 | 1980년 |
| 《열번 찍어도 안 넘어진 사나이》 | 1980년 |
| 《평양맨발》 | 1980년 |
| 《얼굴이 아니고 마음입니다》 | 1983년 |
| 《이파동(李派東) 대통령》 | 1980년 |
| 《무엇인가 보여드리겠습니다》 | 1980년 |
| 《별명을 가진 남자》 | 1980년 |
| 《조용히 살고 싶다》 | 1980년 |
| 《열 번 찍어도 안 넘어가는 나무》 | 1980년 |
| 《평양맨발》 | 1980년 |
| 《얼굴이 아니고 마음입니다》 | 1983년 |
4.3. 광고
5. 수상 경력
6. 저서
* 《뭔가 말되네요》 (1985)
* 《돈이 뭐길래 정치가 뭐길래》 (1992)
* 회고록 《인생은 코미디가 아닙니다》 (2002)
* 《의미》 (1985)
* 《이주일 평전, 삐딱한 광대》
* 회고록 《인생은 코미디가 아니다》 (사후 출판)
7. 기타
춘천고교 재학 시절 박종환 감독과 함께 축구부에서 활동했다. 이주일은 라이트윙, 박종환은 풀백이었다. 1982년 연예인 축구단 '무궁화축구단' 단장을 지냈으며, 2002년 서울에서 개최된 2002년 FIFA 월드컵 개회식에 휠체어를 타고 참관하기도 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과 박종환 전 감독이 1983년 FIFA U-20 세계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에서 4강 신화를 이룬 것을 계기로 인연을 맺었다.
* 콩나물 팍팍 무쳤냐
* 얼굴이 못 생겨서 죄송합니다
* 뭔가 보여드리겠다니깐요
* 일단 한번 보시라니깐요
백남봉과 이주일은 제1기로 동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