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환 (축구인)
1. 개요
박종환은 1960년 대한민국 U-20 대표팀 선수로 활동했으며, 1983년 FIFA U-20 월드컵에서 대한민국 U-20 대표팀을 4강으로 이끌며 지도자로서 이름을 알렸다. 이후 1989년 일화 천마의 창단 감독을 맡아 K리그 3연속 우승을 달성했으나, 선수 폭행 사건 등으로 논란이 있었다. 1996년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았으나 AFC 아시안컵에서의 부진으로 사임했으며, 2003년 대구 FC의 창단 감독을 역임했다. 2018년 여주 FC의 총감독을 맡았으며, 2023년 코로나19로 인한 패혈증으로 사망했다.
| 이름: 박종환 | |
| 본명: 박종환 | |
| 로마자 표기: Bak Jong-hwan | |
| 출생일: 1938년 2월 9일 | |
| 출생지: 옹진군, 황해도, 일제강점기 | |
| 사망일: 2023년 10월 7일 | |
| 사망지: 서울특별시 | |
| 신장: 1.71m | |
| 포지션: 오른쪽 풀백 |
| 대학 | 경희대학교 |
|---|---|
| 클럽 | 대한석탄공사 (?–1965) |
| 국가대표 | 대한민국 U20 (1960–1961) |
| 국가대표 B팀 | 대한민국 B (1962) |
| 클럽 | 서울시청 (1976–1988) 일화 천마 (1988–1996) 우한 훙진룽 (1998) 대구 FC (2002–2006) 성남 FC (2014) |
|---|---|
| 국가대표 | 대한민국 U-20 (1980–1983) 대한민국 B (1983, 1984–1986) 대한민국 (1983–1984, 1986–1988, 1990, 1995, 1996) |
| AFC 유스 챔피언십 | 금메달: 1960 말라야 |
|---|
| 아시안 게임 | 동메달: 1990 베이징 |
|---|---|
| AFC 유스 챔피언십 | 금메달: 1980 태국 금메달: 1982 태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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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석탄공사 축구단의 축구 선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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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석탄공사 축구단의 축구 선수 -
김찬기
김찬기는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및 지도자로, 선수 시절 국가대표로 활약하며 아시안 게임 은메달과 AFC 아시안컵 우승에 기여했고, 은퇴 후에는 청소년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아 AFC 유스 챔피언십 우승을 이끌었으며, 그의 아들 김석원 또한 국가대표로 활약하여 대한민국 축구 역사상 최초의 부자 국가대표 기록을 세웠다. -
1996년 AFC 아시안컵 참가 감독 -
넬루 빙가다
넬루 빙가다는 포르투갈 출신 축구 감독으로, 청소년 대표팀과 클럽팀에서 여러 차례 우승했으며, FC 서울 감독 시절 K리그 우승과 리그컵 우승을 동시에 달성했고, 사우디아라비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1996년 AFC 아시안컵에서 우승했다. -
1996년 AFC 아시안컵 참가 감독 -
가모 슈
가모 슈는 일본의 축구 선수 및 지도자로, 세레소 오사카 선수, 요코하마 F. 마리노스와 요코하마 플뤼겔스 감독을 거쳐 일본 국가대표팀 감독을 역임했으며, 요코하마 F. 마리노스의 전성기를 이끌고 일본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 B팀 감독 -
박규정 (축구인)
박규정은 일제 강점기와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로, 조선 및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활동하고 보성전문학교 축구부 주장을 지냈으며, 1954년 FIFA 월드컵에서 39세 이상의 나이로 출전한 최초의 선수라는 기록을 세웠다. -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 B팀 감독 -
박수일 (1944년)
박수일은 1944년생으로 축구 선수, 지도자, 행정가로 활동했으며, 대한민국 U-20 대표팀과 국가대표팀 선수로 활약하고 은퇴 후에는 지도자와 행정가로 활동하다 2008년 췌장암으로 사망했다.
2. 선수 경력
황해남도 옹진군 출생으로 1966년까지 실업 축구 팀 대한석탄공사에서 활약했으며, 수원 유신고등학교의 체육교사로도 근무하였다.
AFC 유스 챔피언십에서는 1960년에 대한민국 U-20 대표팀으로 참가하였다.
3. 지도자 경력
1983년 멕시코 세계 청소년 축구 선수권대회에서 청소년 대표팀 감독을 맡아 청소년 대표팀을 4강에 올리면서 국민적인 영웅으로 떠올랐다. 멕시코가 공기가 희박한 고지대였으므로 대한민국에서부터 미리 마스크를 쓰고 운동을 하며 고지대에 적응했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그는 선수들의 뛰어난 팀워크를 바탕으로 다양한 전술을 선보이며 인상적인 결과를 남겼다.
이후 LA 올림픽을 앞두고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았으나, 그의 강압적인 지도 방식에 불만을 품은 일부 선수가 태릉선수촌을 이탈하는 등 분위기가 어수선해지면서 아시아 지역 예선에서 탈락했다.
1989년 K리그 팀 일화 천마의 창단 감독으로 부임해 정규리그 3연속 우승(1993년, 1994년, 1995년)의 대기록을 세웠다. 그러나 '호랑이 감독'이란 소문답게 스파르타식 조련을 했고, 이 과정에서 일화의 창단 멤버 중 하나였던 김용세가 후배들을 위해 반기를 들었으며 이로 인해 김용세는 1991년 시즌 후 이른 나이에 은퇴했다. 뒷날 김용세는 박종환과 만나 서로 쌓였던 것들을 모두 털어냈다. 1996 시즌 개막을 앞두고 단장과의 갈등으로 1996년 4월 2일 사퇴했다.
1996년 5월에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되었으나 그 해 아랍에미리트에서 열렸던 AFC 아시안컵 대회에서 무기력한 경기를 펼쳤고, 특히 이란과의 8강전에서 2-6으로 대패한 일이 결정타가 되어 국가대표팀 감독직을 차범근에게 넘겼다. 이후에는 더 이상 국가대표팀과 인연을 맺지 못했다.
2003년 대구 FC의 창단 감독으로 부임하여 2006년까지 팀을 이끌었으며, 계약 만료 후 변병주에게 감독직을 넘겼다.
2014년 성남 FC의 감독으로 현장에 복귀했으나, 선수 폭행 사건에 연루되어 불과 4개월 만에 감독직에서 사퇴했다.
2018년 K3리그 여주 FC의 창단 총감독으로 부임해 2020년까지 활동했다. 20세기에 한국 최고의 축구 감독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박종환은 1983년 FIFA 세계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에서 대한민국 U-20 대표팀을 4강으로 이끌었고, 일화 천마를 1993년부터 1995년까지 3년 연속 K리그 우승으로 이끌었다. 그는 선수들의 뛰어난 팀워크를 바탕으로 다양한 전술을 선보이며 인상적인 결과를 남겼다. 그러나 그는 선수들에게 가혹한 스타일과 폭력을 행사하여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는 폭력적인 행위로 인해 "빠따 박"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3.1. 대한민국 청소년 대표팀 (1983년 멕시코 세계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 4강)
1983년 멕시코 세계 청소년 축구 선수권대회에서 청소년 대표팀 감독을 맡아 청소년 대표팀을 4강에 올리면서 국민적인 영웅으로 떠올랐다. 멕시코가 공기가 희박한 고지대였으므로 대한민국에서부터 미리 마스크를 쓰고 운동을 하며 고지대에 적응했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그는 선수들의 뛰어난 팀워크를 바탕으로 다양한 전술을 선보이며 인상적인 결과를 남겼다.
3.2.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1983년 멕시코 세계 청소년 축구 선수권대회에서 청소년 대표팀 감독을 맡아 4강 진출을 이끌었다. 멕시코가 공기가 희박한 고지대였기 때문에 대한민국에서부터 미리 마스크를 쓰고 운동하며 고지대에 적응하는 훈련을 했다는 일화가 있다.
이후 LA 올림픽을 앞두고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았으나, 강압적인 지도 방식에 불만을 품은 일부 선수가 태릉선수촌을 이탈하는 등의 문제로 아시아 지역 예선에서 탈락했다.
1996년 아랍에미리트 아시안컵에서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되었으나, 이란과의 8강전에서 2-6으로 대패하는 등 무기력한 경기를 펼쳐 차범근에게 감독직을 넘기고 국가대표팀과 더 이상 인연을 맺지 못했다.
3.3. 성남 일화 천마 (K리그 3연패)
1989년 K리그 팀 일화 천마의 창단 감독으로 부임해 정규리그 3연속 우승(1993년, 1994년, 1995년)의 대기록을 세웠다. 선수들의 뛰어난 팀워크를 바탕으로 다양한 전술을 선보이며 인상적인 결과를 남겼다. 그러나 '호랑이 감독'이란 소문답게 스파르타식 조련을 했고, 이 과정에서 일화의 창단 멤버 중 하나였던 김용세가 후배들을 위해 반기를 들었으며 이로 인해 김용세는 1991년 시즌 후 이른 나이에 은퇴했다. 뒷날 김용세는 박종환과 만나 서로 쌓였던 것들을 모두 털어냈다. 1996 시즌 개막을 앞두고 단장과의 갈등으로 1996년 4월 2일 사퇴했다.
3.4. 대구 FC
세계 청소년 축구 선수권대회에서 청소년 대표팀을 4강에 올린 후, LA 올림픽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았으나 선수단 불화로 아시아 지역 예선에서 탈락했다. K리그 팀 일화 천마 창단 감독으로 부임, 3연속 우승을 기록했으나 단장과의 갈등으로 1996년 사퇴했다. 이 과정에서 강압적인 지도로 김용세와 갈등이 있었으나, 후에 화해했다. 아시안컵에서 이란에 대패한 후 국가대표팀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대구 FC의 창단 감독으로 부임하여 2006년까지 팀을 이끌었으며, 계약 만료 후 변병주에게 감독직을 넘겼다. 2014년 성남 FC 감독으로 복귀했으나 선수 폭행 사건으로 사퇴했다. 2018년 K3리그 여주 FC 총감독으로 부임해 2020년까지 활동했다.
3.5. 성남 FC (선수 폭행 사건)
박종환은 선수들에게 가혹한 스타일과 폭력을 행사하여 비판을 받았으며, "빠따 박"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LA 올림픽을 앞두고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았으나, 강압적인 지도 방식에 불만을 품은 일부 선수가 태릉선수촌을 이탈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1996 시즌 개막을 앞두고 단장과의 갈등으로 1996년 4월 2일 사퇴하기 전, '호랑이 감독'이란 소문답게 스파르타식 조련을 했다. 이 과정에서 일화의 창단 멤버 중 하나였던 김용세가 후배들을 위해 반기를 들었으며 이로 인해 김용세는 1991년 시즌 후 이른 나이에 은퇴했다. 뒷날 김용세는 박종환과 만나 서로 쌓였던 것들을 모두 털어냈다. 2014년 성남 FC의 감독으로 현장에 복귀했으나, 선수 폭행 사건에 연루되어 불과 4개월 만에 감독직에서 사퇴했다.
3.6. 여주 FC
2018년 K3리그 여주 FC의 창단 총감독으로 부임해 2020년까지 활동했다. 20세기에 한국 최고의 축구 감독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박종환은 1983년 FIFA 세계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에서 대한민국 U-20 대표팀을 4강으로 이끌었고, 일화 천마를 1993년부터 1995년까지 3년 연속 K리그 우승으로 이끌었다. 그는 선수들의 뛰어난 팀워크를 바탕으로 다양한 전술을 선보이며 인상적인 결과를 남겼다. 그러나 그는 선수들에게 가혹한 스타일과 폭력을 행사하여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는 폭력적인 행위로 인해 "빠따 박"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4. 행정가 경력
대한민국의 여자 축구계에도 많은 관심을 가졌으며, 1999년 여자 축구단 숭민 원더스의 단장으로 부임하여 2002년 해체할 때까지 재직하였다. 2001년 3월에는 한국여자축구연맹의 초대 회장으로 선출되었다.
4.1. 한국여자축구연맹
대한민국의 여자 축구계에도 많은 관심을 가졌으며, 1999년 여자 축구단 숭민 원더스의 단장으로 부임하여 2002년 해체할 때까지 재직하였다. 2001년 3월에는 한국여자축구연맹의 초대 회장으로 선출되었다.
4.2. 숭민 원더스
대한민국의 여자 축구계에도 많은 관심을 가져, 1999년 여자 축구단 숭민 원더스의 단장으로 부임하여 2002년 해체할 때까지 재직하였다. 2001년 3월에는 여자축구연맹의 초대 회장으로 선출되었다.
5. 논란
5.1. 강압적 지도 방식 및 폭력
6. 사망
여주 FC 총감독에서 물러난 후 축구계를 은퇴하고 쓸쓸한 말년을 보냈다. 집이 없어 지인의 집에서 생활하다가 요양병원으로 옮겨 생활했으며, 2022년 2월 13일 TV조선의 스타다큐 마이웨이에 출연하여 근황을 알렸다. 방송에서 자신이 지도한 선수 중 한 명이 손흥민의 부친 손웅정이라고 언급했다.
2023년 코로나19에 감염된 이후 패혈증으로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축구 결승전이 열린 2023년 10월 7일에 향년 85세의 일기로 타계했다. 서울에서 사망했다.
논란이 많았던 축구인임에도 멕시코 세계 청소년 축구 선수권대회 4강 등의 공로를 인정받아 대한축구협회 주관으로 축구협회장으로 장례가 치러졌으며, 10월 9일에 영결식이 열렸다. 장지는 경기도 성남시의 영생원 에덴공원이다. 대한축구협회는 그를 원로로 칭하며 애도하였고, 잔니 인판티노 FIFA 회장도 대한축구협회에 공문을 보내 애도했다.
2023년 10월 15일 스타다큐 마이웨이에서 추모 특집을 방송했다.
7. 일화
1983년 멕시코 세계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에서 대한민국 청소년 대표팀의 활약은 현지 언론에 의해 '붉은 복수의 여신(Red Furies)'이라고 불렸다.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애칭이자 축구 서포터즈 클럽의 이름인 붉은악마는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대한민국 청소년 축구팀은 아시아 지역 예선에서 탈락하여 본래 대회에 참가할 수 없었으나, 1982년 아시안 게임 축구 준결승에서 쿠웨이트와의 경기 도중 발생한 선수와 코치들의 주심 집단 구타 사건으로 국제 축구 연맹으로부터 2년간 국제 대회 참가를 금지당한 북한을 대신하여 출전, 4강에 오르는 기적을 이뤄냈다. 한편, 박종환 감독은 이주일과 춘천고등학교 동창생이며 평생 절친한 친구로 지냈는데, 춘천고등학교를 3년간 다녔으나 대학 드래프트에 뽑히지 못해 1년 더 다녀 본인(박종환)이 이주일과 동급생이 되기도 했다.
8. 수상 경력
* 체육훈장 백마장(1983년)
* 대한민국 체육상 지도자부문(1984년)
* K리그1 감독상(1993년, 1994년, 1995년)
* 아시아축구연맹(AFC) 올해의 감독(1995년)
* AFC 공로상(2010년)
8.2. 감독
박종환은 여러 축구팀 감독을 역임하며 다양한 수상 경력을 가지고 있다.
서울 시티 감독 시절, 한국실업축구연맹전(춘계)에서 1978년, 1980년, 1988년에 우승하였고, 한국실업축구연맹전(추계)에서는 1985년에 우승했다. 전국축구선수권대회에서는 1980년, 1982년, 1986년에 우승을 차지했다.
대한민국 U-20 감독으로서는 AFC 청소년 선수권 대회에서 1980년과 1982년에 우승을 이끌었다.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감독 시절에는 1990년 아시안 게임에서 동메달을 획득했다.
일화 천마 감독으로서는 K리그1에서 1993년, 1994년, 1995년 3회 연속 우승을 달성했고, 한국 리그컵에서는 1992년에 우승했다. 아시안 클럽 선수권 대회에서는 1995년에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개인 수상 경력으로는 한국실업축구연맹전(춘계) 최우수 감독(1978년, 1980년), 전국축구선수권대회 최우수 감독(1980년, 1982년), K리그1 올해의 감독상(1993년, 1994년, 1995년), AFC 올해의 코치(1995년) 등이 있다.